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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 그런가? 힘도 빠지고 다 귀찮아… 고기 드시면 좋아져요

 

중앙일보 / 2017-05-03 01:03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에 사는 김창기(70)씨의 저녁 밥상에 10가지 반찬이 올라왔다. 이 중 9가지는 버섯볶음·취나물·쑥된장국·김치·샐러드·브로콜리 등 채소였다. 채소가 아닌 것은 고등어조림이 유일했다. 김씨는 이날 저녁만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한 게 아니다. 2010년부터 이런 식단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채식이 건강에 좋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다.

김씨는 “고혈압이 있고 위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다들 ‘채식이 좋다’고 해서 고기를 거의 먹지 않게 됐다”며 “고기를 잘 안 먹어도 아직까진 건강에 별문제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육류뿐 아니라 생선도 즐기지 않는 편이다. 이날 저녁 식탁에 올라온 고등어조림도 거의 먹지 않았다.

한국 노인은 고기를 잘 안 먹는 경향이 있다. 김씨처럼 채소 위주 식사가 좋다고들 믿는다. 또 나이 들면서 치아가 망가지고 소화 기능이 떨어져 육류를 꺼린다. 국민건강영양조사(2015)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3명 중 1명은 단백질을 권장량보다 덜 먹고 있다.

실제 그럴까.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경로당을 찾았다. 13명의 노인에게 ‘일주일에 몇 회 육류를 섭취하는지’를 물었다. 7명은 한 번도 안 먹고 4명은 1회, 2명은 3회 이상 먹는다고 답했다.

서월심(79·여)씨는 “10년 전부터 고혈압을 앓아 왔고 이가 안 좋아 틀니를 끼고 있는데 씹기가 불편해 한 달에 한 번 고기를 먹을까 말까 한다”고 말했다. 서씨는 나물·김치·국을 먹는다. 서씨는 “병원에서 의사가 ‘음식을 골고루 먹으라’고 한다. 그래도 육류를 잘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의사와 영양 전문가들은 “노인이 고기를 덜 먹는 게 건강에 좋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잘라 말한다. 오히려 나이 들수록 고기를 챙겨 먹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화는 나이 들면서 전체적인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걸 말한다. 영양을 잘 섭취하고 적절히 운동하면 건강수명(질병 없이 건강하게 사는 기간)을 늘릴 수 있다.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살코기 위주로 고기를 잘 챙겨 먹는 것이 건강한 노화의 열쇠”라며 “건강한 노화를 방해하는 장애물은 근육량이 감소하는 근육 감소증인데, 고기를 잘 먹어야 근육의 원료인 단백질을 효율적으로 섭취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근육 감소증은 면역력과 신체 회복력을 떨어뜨린다. 이종영 강북삼성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만성질환은 수십 년 후에 증상이 나타나지만 근육 감소는 근골격계를 약하게 해 낙상이나 무력감으로 이어진다. 생활의 활력을 떨어뜨려 활동량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노인은 단백질을 충분히 먹고 평소에 체력을 다져 놓아야 큰 병에 걸렸을 때 견딜 수 있다. 이종영 교수는 “기초체력이 떨어져 있으면 수술 후에 염증이 오래가고 회복이 잘 안 돼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젊은 사람은 평소에 여유 근육이 있어 괜찮지만 노인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기대(68·서울 서대문구)씨는 하루 3시간 걷기를 할 정도로 체력을 유지한다.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이 없다. 비결은 육류 섭취다. 이씨는 “살코기를 삶아서 수육으로 먹거나 김치찌개에 넣어 먹는다. 매일 운동하고 활동할 수 있는 건 고기를 충분히 먹은 덕분”이라고 말했다.
 
단백질을 적게 먹으면 사망 위험이 높아진다. 김혜련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1998, 2001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토대로 30세 이상 남녀 8941명의 사망률 등을 12년간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단백질을 하루 권장량의 75% 미만 먹는 노인은 권장량을 섭취하는 사람에 비해 사망 위험이 24% 높았다.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은 61% 높았다. 김 연구위원은 “단백질 섭취 부족은 중장년층보다 노인에게서 사망 위험을 더 높이는 것으로 나왔다”며 “건강수명을 늘리려면 건강한 노화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 노인을 대상으로 올바른 영양 섭취를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수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심장에도 근육이 있다. 단백질이 충분하지 않으면 심장 운동력이 떨어지고 심혈관계 질환의 사망률이 올라갈 수 있다”며 “단백질이 제대로 공급돼야 신진대사가 원활해지고 체내 염증 수치가 줄어 만성질환과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기에는 필수아미노산과 철분이 풍부하다. 라미용 삼성서울병원 임상영양파트장은 “단백질이 제 기능을 하려면 필수아미노산의 도움이 필요하다. 필수아미노산은 체내에서 만들지 못하므로 식품, 특히 고기를 섭취해 보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색육(붉은 살코기)에는 체내흡수율이 높은 철분인 ‘헴철’이 풍부하다. 헴철의 체내흡수율은 25~40%로 식물성 식품의 비헴철(5~17%)보다 높다. 임수 교수는 “노인 만성질환자의 약 3분의 1은 빈혈을 앓는다. 적색육을 먹으면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라미용 파트장은 “철분이 혈액을 만들고 혈액이 풍부해야 체력이 좋아진다”고 강조했다.

고기를 먹으면 콜레스테롤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해 섭취를 피하는 경향이 있다. 콜레스테롤이 높으면 상당수 노인은 고기 섭취를 끊으려 한다. 그러나 지방 함량이 적은 돼지고기의 앞다리살이나 소고기의 사태 부위를 먹으면 콜레스테롤이 거의 올라가지 않는다. 양질의 살코기는 고혈압·고지혈증 같은 혈관질환을 악화시키지 않는다. 고기를 먹을 때는 양념을 적게 하고, 구이보다 삶아 먹는 게 좋다.

국내엔 육류 권장섭취량이 없다. 문현경 단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한국영양교육평가원장)가 국민건강영양조사를 토대로 권장치를 만들었다. 문 교수는 65세 이상 1일 육류 섭취 권장치로 여성에겐 51.4g을, 남성에겐 93.4g을 제시했다. 문 교수는 “권장량만큼 먹는 노인이 10~30%에 불과하다. 60대에 접어들면 고기를 충분히 먹는 게 좋다”고 했다.

고기를 씹는 게 불편하면 다지거나 갈아서 완자나 전을 만들어 먹으면 된다. 조리 전에 키위·배를 갈아 넣으면 고기가 부드러워진다. 다만 만성신장병 환자는 고기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 임수 교수는 “신장 기능이 약한 사람은 단백질을 필요 이상으로 먹으면 신장 기능이 떨어져 단백뇨로 악화된다. 의사에게 섭취량을 처방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고기 먹을 땐 이렇게
부위는 양질의 살코기 위주로 먹는다. 쇠고기는 사태·우둔살, 돼지고기는 안심·앞다리살이 좋다. 닭고기는 껍질을 제거하고 가슴살을 먹는 게 좋다. 마블링(근 내 지방)이 많은 쇠고기는 지방 함량이 높으니 피한다.
요리할 때 육류를 자를 땐 결 반대 방향으로 자르거나 얇게 자르면 씹기 쉽다. 키위·배·파인애플을 넣으면 고기가 부드러워진다. 침 분비가 줄어 고기를 삼키기 불편하면 국물이 있게 조리한다.
간은 고기 본연의 맛을 느끼고 짜게 먹지 않기 위해 가능하면 소금 간이나 양념을 줄인다. 카레 같은 향신료를 사용하거나 들기름·참기름을 넣어 입맛을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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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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