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어는 안전한데 덜익은 패티가 왜 문제?
중앙일보 / 2017-07-28 00:04
고기, 먹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먹을 수도 없고. 덜 익은 패티가 들어있는 햄버거를 먹은 4살 여자 어린이가 용혈성 요독증후군, 일명 햄버거병(HUS)에 걸렸다는 주장이 나온 이후 햄버거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해당 아동의 감염 경로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덜 익은 패티를 ‘범인’으로 단정짓는 분위기다. 뿐만 아니다. 삼계탕 수요 등으로 여름철 판매량이 증가하는 닭고기를 둘러싼 안전 문제도 함께 도마 위에 올랐다. 가금류를 먹을 때 주로 발생하는 캄필로박터균에 의한 식중독 때문이다. 주로 닭과 오리의 창자 등에 있는 캄필로박터균은 열에 약해 조리 과정에서 가열하면 쉽게 사멸한다. 하지만 생닭을 씻을 때 물이 튀면서 주변 식재료를 오염시키거나 생닭을 날로 먹는 채소와 동일한 도구로 조리하면서 균이 옮겨가기에 닭만 익혔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한국 구이문화는 대체로 안전
그렇다면 고기는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익혀 먹어야 안전할까. 윤요한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한국의 구이문화 자체가 두껍게 먹는 서양과 달라 비교적 안전하다”고 말한다. “아무리 두꺼워도 대체로 고기 두께가 1㎝ 미만으로 얇기 때문에 눈으로도 쉽게 조리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 학계에서 따로 구이온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정해놓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와 달리 주로 스테이크 등 두꺼운 고기를 즐겨 먹는 미국· 캐나다 같은 서구에선 권장 온도가 있다. 기준은 가장 가운데 부분의 온도를 뜻하는 중심 온도(심부 온도)다. 윤 교수는 “중심 온도가 71~77℃면 소고기는 물론 이를 갈아 만든 패티 등 모든 육류가 대체로 다 안전한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스테이크 고기를 핏기운 없이 바싹 익혀먹는 ‘웰던’ 고기가 77℃다.
소고기는 표면만 익히면 안전
소고기는 피가 흥건한 ‘레어’로도 흔히 먹는다. 덜 익혀 먹는 셈인데, 과연 안전할까. 소고기 안전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균이 세균성 장염을 일으키는 대장균 O157이다. 최근 논란이 된 햄버거병의 원인도 O157이다. O157에 오염된 음식을 먹으면 보통 3~4일 후 심한 복통과 설사, 미열을 동반하는 장염 증상이 나타난다. 무시무시해 보이지만 열에 약해 75℃ 이상에서 가열하면 죽는다. 또 하나 다행인 점은 이 균이 육질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고 고기 표면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표면만 잘 익혀먹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레어’로 먹어도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무리 두꺼운 스테이크를 ‘레어’로 먹는다 하더라도 표면은 다 익혀서 나오기에 O157 대장균은 다 사라진 셈이다. 따라서 소고기는 취향에 따라 굽기 정도를 조절하면 된다. 참고로 고기 겉부부만 살짝 굽는 레어의 중심온도는 63℃, 선홍빛이 돌 정도인 미디움은 71℃, 속까지 완벽하게 익힌 웰던은 77℃다.
돼지고기는 바싹 조리해야 안전
돼지고기는 바싹 익혀먹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국립수의과학검역원도 돼지고기는 중심 온도를 77℃로 잘 익혀 먹을 것을 권한다. 이는 돼지고기 기생충 때문이다. 돼지고기에 있는 갈고리촌충과 그 유충인 유구낭미충은 원래 사람 몸 속에 있다가 대변을 통해 알이 유출되고, 그걸 먹고 자란 돼지고기를 사람이 먹으면 다시 사람 장 속에서 기생충이 성장한다. 1980년대 이후 국내에선 돼지사육시스템이 위생적으로 바뀌면서 인분을 돼지사료로 쓰지 않는다. 그래서 89년 이후 돼지고기를 통한 기생충 발견 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다. 이를 근거로 최근 돼지고기를 웰던 보다 살짝 덜 익힌 미디엄 웰던이나 미디엄으로 주는 레스토랑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감염 위험이 사라진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윤요한 교수는 “국산 돼지고기는 위생적으로 처리되고 있을지 몰라도 수입산 돼지고기 소비량이 많은 만큼 안전을 위해서라면 속까지 익혀먹으라”고 당부했다.
패티는 속까지 완벽하게 익혀야
다만 똑같은 쇠고기나 돼지고기라도 갈아서 패티나 떡갈비를 만들었을 땐 바싹 익혀 먹어야 한다. 왜일까. 소고기라면 고기 표면에 붙어있던 O157균이 분쇄 과정에서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기에 안까지 완벽하게 익혀 먹어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패티나 떡갈비 등이 일반 구이용 고기보다 두까운 데다 때로는 채소 등을 함께 넣어 만들기 때문에 팬에서 구웠을 때 속은 익지 않은 채 겉면만 타기 쉽다는 점이다. 김창훈 더플라자 조리기획 담당 셰프는 “패티처럼 갈아서 만든 고기는 팬에서 약불로 겉면을 먼저 익힌 후 오븐에 넣어 속까지 완벽하게 구워야 안전하다”고 말했다.
닭·오리도 속까지 잘 익혀야
그렇다면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돼지고기처럼 완전히 익혀먹는 것을 추천한다. 다행히 한국은 주로 닭을 통째로 튀기거나 삶아 먹기 때문에 닭으로 인한 식중독 발병은 낮은 편이다. 캐나다 공중보건기구(Public Health Agency of Canada, PHAC)에 따르면 닭을 통째로 조리할 때 중심 온도가 85℃는 돼야 안전하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보다 온도가 높은 건 크기가 있는 데다 뼈까지 있어 익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김창훈 셰프는 “닭의 크기나 불 세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120~150℃에서 3분 정도 조리하고 다시 180℃로 온도를 높여 1~2분 정도 튀기면 바삭한 식감의 통닭을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삼계탕은 닭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40분~1시간 정도 끓여야 속까지 잘 익는다. 찔렀을 때 피가 묻어나오지 않으면 다 익은 것이다. 같은 닭이라도 조각으로 잘랐을 때는 중심온도가 74℃면 충분하다. 조류인플루엔자(AI)는 75℃ 이상 온도에서 5분 이상 가열하면 완전히 파괴된다. 특히 요즘처럼 더운 여름에는 더욱 유의해야 한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윤수정씨는 “소고기처럼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는 고기라도 여름엔 부패하기 쉽기 때문에 되도록 구입 후 빨리 먹고 가급적 제대로 잘 구어 먹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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