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추석節食… 흉년 구제하고 소화제 역할도
[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추석節食… 흉년 구제하고 소화제 역할도
조선일보 / 2016-09-17 15:21
[51] 토란국
토란국은 추석에 빠지지 않는 절식(節食)이자 가을 미각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조선 후기 문인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 8월령에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명절 쇠어보세/신도주, 올벼송편, 박나물, 토란국을/산사에 제물하고 이웃집과 나누어 먹세”라는 구절이 나온다.
토란은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도 등장할 만큼 한민족이 즐겨온 식재료다. 문헌에는 1236년 편찬된 ‘향약구급방’에 처음 등장한다. ‘산가요록’은 1450년대 어의(御醫) 전순의가 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 책인데, 이 책에 토란 심고 저장하는 법과 토란대 김치, 토란떡 등이 등장한다. 전순의가 “토란은 흉년을 구제할 수 있다”고 적었을 정도로 구황작물로서 가치가 높았다.
토란은 토련(土蓮), 준치(蹲鴟), 토지(土芝), 황독(黃獨), 부자(鳧茈), 옥삼(玉糝), 우(芋)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허균은 ‘도문대작’이란 책에서 “토란(芋): 호남과 영남 지방 것이 모두 좋아 아주 크다. 서울 지방에서 나는 것은 맛은 좋은데 작다”고 평했다.
‘고산유고’에서 윤선도는 광진나루터에서 잘 익힌 토란으로 국을 끓여준 주인의 마음씨가 얼마나 고마운지 노래했다. 이처럼 토란은 국으로 많이 먹었다. 토란국은 대개 소고기로 국물 낸 곰국에 넣어 먹었고 일부는 된장국으로 먹었다. 전이나 김치, 단자, 장아찌로 요리하거나 구워 먹기도 했다. 토란에 쌀가루를 섞어 끓인 옥삼갱(玉糝羹)이란 죽도 있었다.
과식하기 십상인 추석에 토란국은 소화제 역할을 한다. 토란의 전분은 감자·고구마 등 다른 전분보다 입자가 작아 소화가 쉽다. 수분이 많아 먹기도 편하다. 투박하고 소박한 토란국 한 그릇에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는 추석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