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의 미식 탐식 과식] 한국 최고의 떡국을 찾아서… ‘등심 떡국’ VS ‘장 떡국’
[김유진의 미식 탐식 과식] 한국 최고의 떡국을 찾아서… ‘등심 떡국’ VS ‘장 떡국’
조선비즈 / 2017-01-01 10:17
20년 구력의 식객, 김유진이 추천하는 강순의 ‘등심 떡국’ 경북 ‘장 떡국’… 등심의 기름이 다시마, 간장, 마늘과 어우러져 향이 일품인 등심 떡국… 간장에 버섯 볶아 올린 중독성 있는 장 떡국
20년이 넘게 전국을 뒤졌다. 맛있는 집이 있다면 천 리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을 만나면 금광이라도 만난 듯 쾌재를 불렀다. 그렇게 길 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맘때면 느닷없이 떡국이 땡긴다. 당긴다가 맞는 표현이지만 왠지 떡국은 ‘땡기다’라고 쓰고 싶다. 어금니에 쩍쩍 들러붙는 점성 때문일까 아니면 걸죽한 국물 때문일까, 어깨가 시리면 떡국이 그리워진다. 오늘은 지금까지 맛칼럼니스트 김유진이 만난 최고의 떡국 이야기를 좀 풀어놓을까 한다. 딱 한 번 맛을 보았는데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 떡국이 김치명인 강순의 선생의 ‘등심 떡국’이다. 떡국이라고 하면 예의 사골 국물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한우의 등심 부위로 끓인 이 떡국을 맛본다면 사골 육수를 마다하게 될 것이다.
◆ 참기름과 간장, 마늘, 다시마 우린 물이 등심의 향을 포박해
조리도 아주 간단하다. 일단 핏물을 빼고 재탕, 삼탕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초 간단 명품 떡국의 조리는 냄비에 잘게 썬 등심을 넣는 것으로 시작된다. 바닥에 들러붙지 말라고 넣는 것인지 향을 짜내기 위해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참기름과 다시마 우린 물도 소주잔으로 하나쯤 넣고 볶기 시작한다. 부엌은 한우의 향으로 꽉 찬다. 다진 마늘도 좀 넣어주고 간장도 넣어 등심의 진미를 뽑아낸다. 고기가 익으면 물을 적당히 붓고 끓이다 떡을 넣어주면 끝이다. 숟가락으로 가늠을 한다. 떡은 물론이고 고기 덩어리와 국물까지 단번에 들어 올리려면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이럴 때는 보통 떡을 두어 점 숟가락 바닥에 앉히고 큼직한 등심 조각을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 이 두 녀석만 입으로 옮기면 혀가 화를 낼지도 모른다. 국물이 꼭 필요하다. 적셔진 것처럼 아주 적은 양이라도 좋으니 반드시 국물이 곁들여져야 한다. 고개를 디밀어 떡국 대접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뇌가 지시한다. ‘호호 불어 뜨거운 김을 빼란 말이야’ 숟가락을 바로 혀 위에 올리지 않는다. 반백 년 정도 살면 경험으로 알 수 있다. 고기 국물 속에 숨어 있는 열기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입술에 슬쩍 대본다. 먹기도 전에 뜸을 꽤 들인 모양이다. 온도가 적당하다. 숟가락을 쑥 밀어 넣고는 연신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한 곳에 오래 머금으면 혀를 델지도 모를 일이다. 거의 자동반사다. 방정맞게 혀를 놀려 고기와 떡을 어금니로 옮긴다. 딱 세 번만 씹어보면 등심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사실 이 부위는 국물로 쓰기에 적당하지 않다. 기름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기름과 간장 그리고 마늘과 다시마 우린 물이 포박을 해서인지 향이 도망가지 않고 그대로 갇혀있다. 옅은 간장 향이 코끝을 간질이고 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등심 향이 뒤를 따른다. 호위무사처럼 민첩하다. 사골 육수 속에서 몸을 푼 떡은 특특하게 퍼지기 마련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맑은 고기 국물에서 불은 떡살은 적당히 쫀득댄다. 전반적으로 색은 좀 거무튀튀하나 맛 하나만큼은 그 어느 지역의 떡국에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다.
◆ 경상북도의 장 떡국, 간장과 버섯만으로 감칠맛 우려내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떡국도 있다. 경상북도 지역의 떡국이 그 주인공이다. 조선시대 조리서인 시의전서에 적힌 조리법을 아직도 대물림하고 있다. 일명 태양떡국이라고도 불리는 장 떡국의 조리 과정을 보고 있자면 초등학생도 따라할 수 있겠다 싶다. 맹물을 넣은 냄비를 불 위에 올리고 끓인다. 넣는 것이라고는 집 간장과 채 썬 표고버섯 두 숟가락 정도가 전부다. 시의전서 전통 연구소 소장님에게 세 번이나 물었다. 정말 간장과 버섯만 넣느냐고. 이따가 맛을 보면 안다는 대답이 반복된다. 떡을 어슷 썰지 않고 동그랗게 내리 썬다. 그 모양이 태양을 닮기도 했거니와 동전과도 흡사하다. 풍년과 재운을 기원했다는 설이 이어진다. 아무 것도 넣지 않은 흰떡, 단호박을 반죽에 넣은 노란 떡 그리고 자색 고구마를 함께 넣어 뽑은 보라색 떡까지 화려하다. 펄펄 끓는 국물에 간장 향이 깊이 배어있다. 직업병일까? 코앞에서는 간장 향이 나는데 뒤통수에서는 메주의 향이 느껴진다. 떡이 끓기를 기다리며 표고버섯을 참기름에 볶는다. 잠깐 사이 벌어진 일이다. 대신 고명으로 올릴 계란 지단을 만드는 데는 꽤 공이 들어간다. 사기대접과 방짜 유기 중 어느 그릇에 떡국을 먹고 싶냐고 물어온다. 잠시 망설이다 ‘둘 다요’라고 대답했다. 그 맛의 차이가 궁금했다. 곱게 덜어놓은 떡국을 대접째 들어 코에 들이댄다. 간장 향이 진하다. 할머니의 손맛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에게는 분명 거부감이 날 수 있는 내음이 스멀스멀 오른다. 떡국을 들어 입으로 옮기는 행위는 등심 떡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 고명에 욕심을 내느라 떡과 볶은 버섯 그리고 지단을 뜨는 데 꽤 공이 들어갔다. 그래도 판단이 옳았다 싶다. 만약 셋 중 하나라도 가벼이 여겨 제외했더라면 제대로 된 상주 지역의 장 떡국을 만끽하지 못했을 것이다. 짭쪼롬한 간장 국물과 감칠맛 나는 버섯, 그 위에 폭신하고 달게 씹히는 계란지단까지. 평안북도가 원적인 촌놈에게는 새롭기 그지없는 별미다. 고기가 빠진 잔치 음식이라… 뭔가 2% 부족해 보이는 이 녀석의 매력은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야 진가가 발휘된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모텔 방의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데 갑자기 낮에 먹었던 그 간장 떡국이 자꾸만 어른거린다. 머릿속에 떡국을 떠올리는 순간 침샘은 무방비 상태가 되고야 말았다. 방안 어딘가에서 짙은 간장 향이 피어오르는 것만 같다. 허리를 곧추세워 자세를 잡고 심호흡을 한다. 허사다. 방안을 두어 바퀴 맴돌다가 결국 프론트에 전화를 걸고 말았다. “죄송한데… 장 떡국 배달하는 데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