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음식으로 즐겨 먹은 ‘바닷속 봄나물’
춘추 음식으로 즐겨 먹은 ‘바닷속 봄나물’
조선일보 / 2017-03-08 03:06
[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58] 미역
미역국이라고 하면 산모나 생일을 떠올리지만 원래는 이맘때 먹는 시식(時食)이었다. 바닷가 사람들은 미역을 '바닷속 봄나물'이라 불렀다. 허균은 도문대작(屠門大嚼·1611년)에서 “올미역(早藿): (강원도) 삼척에서 정월에 딴 것이 좋다”고 했고 ‘조선요리제법(1921)’은 ‘메역국(미역국)’을 겨울 혹은 춘추 음식으로 조리법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미역은 ‘물에서 자라는 여뀌(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란 뜻으로 머욕, 메역, 미역으로 불렀다. 한자로는 해곽(海藿), 해대(海帶), 해채(海菜), 감곽(甘藿) 등으로 적었다. 오래전부터 한민족이 즐겨 먹어왔다.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1091~1153)은 고려도경(高麗圖經·1123년)에 “고려 사람들은 미역을 귀천 없이 널리 즐겨 먹고 있다”고 적었다. 이색(李穡·1328~1396)은 목은시고(牧隱詩藁)에서 “거센 바람에 파도는 드높아서, 미역 따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테라, 조용히 씹노라니 맘이 아득해지네”라고 읊었다.
산후 조리를 위해 미역국을 먹는 건 동양에서도 한국에만 있는 풍속이다. 이익(李瀷·1681~1763)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미역(海藿)이 산부(産婦)의 선약이 된다는 것은 동방의 풍속에서 중요한 처방'이라 적었다. 조선 후기 문신·학자 성대중(成大中·1732~1809)은 청성잡기(靑城雜記)에서 “어미 고래는 새끼를 낳을 때가 되면 반드시 미역이 많은 바다를 찾아 실컷 배를 채운다”며 산모가 미역을 먹는 것은 자연에서 배운 조상들의 지혜임을 밝히고 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역에 포함된 N-3지방산(SA+EPA)이 산모에 좋은 것으로 밝혀졌다. 1964년 국내에서 미역 양식이 성공하면서 더욱 친근한 음식이 되었다.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에서 “배고플 때 먹는 미역은 달기도 하다”고 했다. 봄에 나는 미끈하고 보드라운 생미역을 국이나 무침으로 먹다 보면 겨우내 추위에 움츠러든 미각이 방울방울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