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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이화주는 잔으로 따라 마실 수 없고 수저로 떠먹어야 할 정도로 걸죽한 수프처럼 생겼다. 좌측의 큰 그릇은 막걸리처럼 물을 탄 이화주.

 

 

유기산이 풍부한 고급탁주

봄이면 어느 들녘에서나 꽃바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광양 섬진강변의 설중매화(雪中 梅花)를 시작으로 여수의 동백꽃과 개나리, 살구꽃, 진달래가 남풍을 타고 북쪽으로 치달리는데, 4월 하순부터는 경기 북부지방까지 과수원마다 특히 눈 같이 희고 고운 자태의 배꽃(梨花)이 하얀 꽃동산을 이룬다.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지만 이 배꽃이 절정에 달하면 집집마다 빚는 술이 있는데, 바로 ‘이화주(梨花酒)’이다. 하지만 이화주는 “배꽃이 필 때 술을 빚는다.”하여 명명하게 된 술이지, 실제로 배꽃이 사용되는 가향주(加香酒)는 아니다.

 

이화주는 고려시대 때부터 빚어졌던 술로, 술 빛깔이 희고 된죽과 같아 그냥 떠먹기도 하고, 한여름에 갈증이 나면 찬물에 타서 마시기도 하는 매우 특별한 술로, 여느 술과는 달리 특별히 멥쌀로 누룩을 만드는데다 멥쌀가루로 구멍떡이나 설기떡을 만들어 술을 빚는데, 알코올도수는 낮지만 유기산이 풍부하고 감칠맛이 뛰어나 고급탁주로 분류된다.

 

이화주는 술 빚는 방법이 매우 독특하다. 술을 빚는데 물이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며, 방문에 따라서는 백설기, 구무떡(구멍떡) 등 다양한 방법이 전해오고 있다. 이화주에 대한 기록으로 [동국이상국집], [한림별곡] 등으로 알려져 있으며, 술빚는 방문을 기록한 최초의 기록은 1450년경 전순의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산가요록]을 시작으로, [규곤시의방]과 [요록], [주방문], [역주방문], [산림경제], [고사십이집], [임원경제지], [양주방], [언서주찬방] 등을 들 수 있다. 이화주에 대한 기록이 이렇게 많은 문헌에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화주가 사대부나 부유층에서 빚어 마셨다는 사실의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기록으로 전해지는 이화주 담는 법

이화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1450년경의 [산가요록]에 수록된 이화주 방문을 보면, “2월초가 좋다”고 하였고, 술 빚기 전에 별도의 전용 누룩인 ‘이화곡(梨花麯)’을 빚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화곡 만드는 법은 “2월 상순쯤 멥쌀 다섯 말을 물에 담갔다가, 이튿날 곱게 빻아 깁체에 여러 번 쳐서 물을 적당량 부어 치대서 오리 알 모양으로 만들어 그대로 쑥으로 싸되, 쑥 길이 그대로 맞추어 싸서 빈 섬에 담아 온돌방에 놓고 빈 섬으로 덮어 띄우는데, 7일이 지나면 뒤집어놓고 또 7일 후에 뒤집어 놓으며, 다시 7일 후에 꺼낸다. 거친 껍질을 벗기고 서너 조각으로 쪼개서 마른 상자에 담고 홑 보자기로 덮어서 날씨가 맑은 날이면 매일같이 볕에 말린다.”고 하였다.

 

이어, 이화주를 빚는 법은 “배꽃이 필 무렵 누룩(이화곡)을 꺼내어 가루로 빻고 깁체에 쳐서 내리고 다시 고운 모시베로 다시 쳐서 고운 누룩가루를 만든다. 멥쌀 10말을 가루를 내어 깁체에 쳐서 손바닥 크기의 구멍떡(공병)을 빚어서 끓는 물에 삶아 잠시 두었다가, 큰 그릇에 담아 뚜껑을 덮어 밖에 두면 식는다. 떡을 아주 조금씩 떼어 술독에 담는데, 준비해 둔 누룩가루를 쌀(떡) 1말당 5되 분량으로 넣고 두세 번 짓이겨 섞어준다(떡이 말라 있으면, 떡 삶았던 물을 조금씩 뿌려주면서 섞는다). 구멍떡은 손바닥 크기로 충분히 식혀서 독 안쪽 가장자리에 돌려 안치고 가운데는 비운다. 빚은 지 3~4일 후에 독을 열어보아 온기가 있으면 바로 밖에 내어 차게 식힌 후, 다시 제자리에 옮겨 놓는다. 서늘한 곳에 두었다가 5월 15일쯤 열어 사용하면 그 맛이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하였다.

 

이화곡을 제조하는 모습.

완성된 누륵밑.

 

한편, [규곤시의방/음식디미방]의 이화주 방문은 “복숭아꽃이 필 때에 쌀 튀겨 작말하여 누룩을 만들어 서늘한 곳에 두었다가, 여름에 백미를 깨끗이 씻어 곱게 빻아 구멍떡을 만들어 익도록 삶아 식거든, 쌀 한말에 누룩 서되 혹은 두되씩 넣되, 누룩가루를 두서너 번 체에 쳐야 부드러워진다, 서되를 넣으면 오래 있어도 상하지 않고, 두되를 넣으면 오래 못 둔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이화주를 빚는 시기와 방법에서 [산가요록]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문헌이나 가문비법에 따라 주방문이 다른 것은 이화주만이 아니지만,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이화주’라는 명칭과 관련하여 문헌기록이나 전승 가양주마다의 술이름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배꽃이 필 때 술을 빚는다”는 [산가요록]의 기록에 따른 이화주류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규곤시의방/음식디미방]에서는 누룩에 대한 언급 없이 3가지 방법의 술(이화주) 빚기와 함께 “배꽃이 필 무렵 누룩을 빚는다.”다고 하는 한 가지 방문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화주는 술을 빚는 시기와 누룩을 빚는 시기의 차이에 따른 두 가지 방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 익은 후 수저로 떠서 먹거나 냉수에 타서 마셔

필자가 옛문헌을 바탕으로 해석한 기본적인 이화주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가장 중요한 일은 쌀누룩 곧 이화곡(梨花麯)을 만드는 것이다. 쌀을 하루나 이틀간 불렸다가 가루 내어, 적당량의 물을 섞어 달걀만한 크기로 뭉쳐서 볏짚이나 솔잎 속에 묻고, 온돌 위나 실내에 두고 7~10일가량 띄운다. 완성된 누룩은 껍질 부분을 벗겨내고 서너 조각으로 쪼개서 햇볕에 바짝 말렸다가 매우 고운가루로 빻아 술을 빚는데 이용한다.

 

이화곡이 만들어지면, 씻어 불린 멥쌀을 가루 내어 백설기를 짓거나 구무떡을 만들어 삶고 건져서 인절미 형태로 만든 다음, 이화곡 가루를 섞고 버무려 술독에 담아 안치는데, 이때 떡과 누룩가루 외에 물을 넣지 않는 까닭에 누룩가루와 떡이 골고루 섞이지 않는다. 따라서 떡과 누룩가루가 잘 섞어지게 하려면 절구에 담고 절굿공이로 매우 치거나, 누룩가루를 혼합하기 전에 미리 고운 엿기름가루를 조금 넣고 주물러서 떡반죽이 매우 질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떡반죽과 누룩가루를 혼합하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술독에 안칠 때 꼭꼭 눌러서 다져 담는 것이 요령이다. 떡이 삭지 않고 굳어지게 되면 망치기 십상이다.

 

이화주를 빚을 때 술맛을 달게 하려면 누룩가루의 양을 늘리도록 하고, 술을 독하게 하려면 누룩가루를 적게 넣도록 하는 것이 요령이라고 하겠다. 또한 일체 날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여야 술이 산패하지 않는 비결이다. 또한 여름철에 이화주를 빚을 경우에는, 술독을 서늘한 물속에 담가 두고 술을 익히면, 술이 지나치게 끓어 넘치거나 산패하는 일이 없어 좋다.

 

이렇게 하여 발효가 끝난 이화주는 흡사 농축 요쿠르트와 같은 된죽 형태를 띤다. 날씨가 더워지는 여름철에도 빚어 마실 수 있으며, 그 빛깔은 엷은 미색이거나 흰색을 간직하고 있어, ‘백설향(白雪香)’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화주는 다 익은 후에도 수저로 떠서 먹는데, 여름철에 걸쭉한 이화주를 냉수에 타서 마시면 유기산과 여러 가지 영양소가 풍부하여 한결 시원한 맛과 함께 갈증까지 씻어준다. 흔히 달고 부드러운 맛을 가리켜 ‘달보드레하다’는 말을 쓰는 것을 보는데, 바로 이화주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독특한 맛과 시원스레 느껴지는 달콤한 향이 특징이다.

 

발효가 끝난 이화주는 흡사 농축 요쿠르트와 같은 된죽 형태를 띤다.

 

나이 많은 노인과 어린 아이들의 간식, 혹은 사돈댁 인사음식으로 사용돼

한편, 20여년 전에 이화주를 가양주로 빚어오고 있는 영주지방의 무안박씨 가문과 안동지방의 안동김씨, 문화류씨 가문에 대한 이화주 조사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은, 과거에는 이화주가 나이 많은 노인과 갓 젖을 뗀 어린 아이들의 간식으로 곧잘 이용되었고, 부유층이나 사대부가에서는 출가할 자녀의 혼사에 사돈댁 인사음식으로 장만해가는 것이 풍습이었다는 것이다.

 

안동김씨 가문에 전해오는 이화주(가루술)에 대한 얘기로, “옛부터 넉넉한 집안에서나 빚어 노부모 봉양에 사용하는 술이었다. 또 출가한 딸이 친정에 오면 딸에게 만들어 주어 사돈집에 보내는 인사음식으로 쓰는 등 귀한 술이었다. 쌀로만 만들기 때문에 영양식으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겨 마셨으며, 더울 때와 배고플 때 갈증해소와 허기를 달래주는 청량음료로 즐겼다.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나 여인네들도 취기를 조금 느낄 정도여서 다들 애음했다.”면서, “이화주는 배꽃이 필 때 빚는 술인데, 특히 한여름에 더위를 탈 때 냉수나 얼음물에 풀어서 한잔 들이키고 나면 갈증이 말끔하게 씻기는 까닭에 집안 어른들이 즐긴 술인데 반하여, 젖을 뗀 어린 아이가 배고파 할 때는 젖 대신 간식으로 이 이화주를 떠먹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팔자 좋은, 귀한 집 자식들은 젖 뗄 무렵부터 어머니에게서 술 마시는 일부터 배운 셈이구나’하는 우스운 생각과 함께, 이화주보다 훌륭한 영양간식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화주가 요쿠르트 보다 훨씬 더 훌륭한 전통 발효식품이라는 사실이 국내 학자들의 연구 결과로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 영주전문대학 가정학과 김정옥 교수는 [전통 이화주의 주조와 그 품질에 관한 연구]란 박사학위 논문에서 ‘“20일간 주조된 이화주의 수분 함량은 47.01%, 잔당 28.07% 글루코스 29.09%였으며, 1년간 숙성된 이화주에도 글루코스가 17.43% 함유되었다. 무기질 중 Ca, Mg, K 및 Na이 다량 함유되었고(0.7-33mg%), Mn, Fe, Zn, Cu, Cr 및 Pb이 미량(0.12-35ppm) 함유되었다. 총 아미노산은 담금 직후가 4.23%, 담금 100일 후에는 4.55%이었고, 아스파르트산 등 17종의 아미노산이 정량되었으며, 주조 중 메티오닌(methionine)과 타이로신(tyrosine)이 현저하게 증가하였다.”면서, “숙성 1년 된 이화주는 풍미와 전반적 기호성이 가장 높게 평가되었으며, 저장성에 있어서도 가열처리나 보존제의 첨가없이 장기 저장이 가능할 뿐 아니라, 저장 후에도 아밀라아제(amylase)의 활성도가 상당히 높아서 소화를 촉진할 수도 있는 저알코올성 전통주로써 개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고 발표,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화주가 건강주로 인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맥이 끊긴 데에는, 앞서 기록에서 보았듯 누룩을 쌀로 빚는데다 물을 넣지 않는 까닭에 술을 빚기가 힘든데 반해, 알코올 도수가 낮아 막걸리보다도 취기가 오르지 않아 서민들의 기호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탁주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밀누룩에 가급적 적은 양의 쌀로 빚는 경제적인 술을 가리키는데, 대부분이 물을 많이 타서 양을 늘려 막걸리로 마셨던 까닭에 이화주처럼 누룩까지 쌀로 빚은 술은 값이 비싸고, 술빚는 방법에서 차이를 보여 고급탁주로 분류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서민층에선 엄두도 내지 못하였을 것이고, 사대부나 부유층이 아니면, 비경제적인 술이란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이화주가 일반화되지 못하고 맥이 끊어진 이유라고 생각된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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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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