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관리들이 아끼던 술

‘명주삼절(名酒三絶)’이란 말이 있다. 술의 향기와 맛, 색을 가리키는 것으로 ‘명주삼절’ 중 특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색깔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술인 관서(關西) 지방의 감홍로(甘紅露)을 소개하고자 한다.
관서감홍로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밀주단속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겼던 술인데, 한말의 학자이자 시인이기도 했던 육당 최남선에 의해 먼저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최근에 다시 조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남선은 그의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의 3대명주’ 가운데 관서감홍로를 으뜸으로 꼽고, 다음으로 전라도의 이강고와 죽력고를 다음으로 소개하면서, 제조방법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소개해 놓았다.
관서감홍로는 술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관서지방에서 생산되고, 그 맛이 달고(甘) 붉은 빛깔(紅)을 띄는 이슬 같은 술(露)’이라는 뜻이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의 특산명주로 알려져 왔던 까닭에 ‘관서감홍로’ 또는 ‘평양감홍로’로도 불려져 오게 되었다. 관서감홍로는 조선시대 중기 1787년의 간행된 것으로 알려진 [고사십이집]을 비롯 1827년의 [임원십육지], 1849년의 [동국세시기] 등의 여러 옛 문헌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들 문헌에 “관서감홍로는 세 번 고아서 만든 소주를 이용하여 만든 만큼 맛이 매우 달고 맹렬하며, 술 빛깔이 연지와 같아 홍로주 가운데서도 으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관서감홍로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구전해온다. 과거 조선시대에 외직(外職)의 지방 관리로서 최고의 선망 관직은 평양감사였다고 한다. 때문에 벼슬길에 오른 사람이면 평양감사가 되는 것을 가문의 영광이자 출세를 보장받는 길로 여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정기간 그 직에 있게 되면 승진이나 보직 순환의 예에 따라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중앙부처에서 어느 평양감사를 내직(內職)으로 승차시켜 불러들였는데, 정작 당사자인 평양감사는 ‘내직승차는 감사하나 계속해서 평양감사로 봉직(奉職)할 수 있게 해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한다. 그 이유를 알고 보니, ‘감홍로를 못 잊어 평양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평양감사도 저 싫다 하면 하는 수 없다’는 말이 생겨났다는 속담도 있고 보면, 감홍로의 맛을 보지 않고서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이 불가하다고 하겠다. 관서감홍로의 향기와 맛이 과연 어떠하였기에 권세도 부귀영화도 마다하였을까?
한편 관서감홍로 외에도 조선시대 관리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던 또 다른 술로 영광지방의 강하주(薑荷酒)가 있다. 영광지방의 강하주에 얽힌 다음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영광고을 현감이 내직으로 승차해 홍문관으로 발령을 받았는데도, 내직 승차를 마다하고 ‘이 고을 현감으로 봉직할 수 있게 해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한다. 그 연유를 물으니, ‘영광고을의 강하주와 참조기가 맛이 좋은데 승차해 한양으로 가게 되면, 더 이상 강하주와 조기를 맛볼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는 것이다.
과거 조선시대 선비들이 간구했던 대망(大望)은, 과거에 등과해 입신양명하는 것이었다. 특히 홍문관의 관원이 되는 것은 학문하는 선비들 사이에서는 명성과 함께 출세를 보장받는 요직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도 홍문관 관원이 되는 것 보다 영광고을 현감으로 봉직하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얘기는 당시 이 고을의 특산주였던 강하주의 명성을 뒷받침해준다고 할 것이다. 강하주는 현재 보성 회천면 율포리에 사는 도화자 씨가 맥을 이어 전라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45호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