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반역자가 들여왔다?
아시아경제 / 2017-06-11 08:00
맛깔나는 음식의 언어를 찾아서… (23)수박
최근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가장 생각나는 과일은 시원한 수박이다. 벌써부터 청과물 시장 여기저기서 잘 익은 수박을 쪼개 손님들에게 맛을 보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를 보면 ‘무더운 여름 평상에 앉아 수박 한 통 잘라 빨간 속살 베어 물면 입안으로 시원한 단물이 주룩 흐르겠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 생각만으로 더위가 가시는 것도 같다.
수박은 말 그대로 물이 많은 박이다. 국어사전에선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풀이라고 설명하며 열매의 속살은 붉고 달아 식용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16세기 문헌에서는 ‘슈박’이라고 쓰기도 했는데 이는 수박의 옛말이다. 하지만 이보다도 ‘서과(西瓜)’나 ‘수과(水瓜)’라는 한자 표기가 많았다.
수과는 수박과 같이 수분 함량이 많다는 뜻이 반영된 명칭이다. 서과는 수박이 서쪽에서 전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박의 원산지는 아프리카로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재배됐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수박이 들어온 때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 수박이 들어온 이야기는 흥미롭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은 조선의 별미음식을 소개한 ‘도문대작’이라는 책을 썼다. 여기에 “고려시대 홍다구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개성에 수박을 심었다”는 내용이 있다. 홍다구(1244~1291)는 당시 고려를 침략한 원나라(몽골)의 장수였다. 외세의 침략과 함께 당시 서과라고 불리는 수박이 들어온 셈이다. 그런데 홍다구는 몽골인인 아닌 고려인이었다고 한다.
홍다구의 할아버지는 홍대순, 아버지는 홍복원이다. 홍대순과 홍복원은 원나라의 고려 침략을 도운 반역자로 기록돼 있다. 홍다구 역시 대를 이어 원나라를 등에 업고 조국인 고려의 백성들을 괴롭혔다. 그 유명한 삼별초의 항쟁을 토벌한 자가 바로 홍다구다.
그가 수박을 고려에 들여온 이유는 맛난 과일을 전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몫 잡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프리카가 고향인 수박을 재배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홍다구도 수박으로 큰 이득을 챙기지는 못했다. 한때 선비들은 겉과 속의 색이 다른 수박을 보면 반역자 홍다구를 떠올리고 먹기를 꺼렸다고 한다.
그렇다고 지금 수박을 보고 새삼 홍다구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다만 수박 한 통 먹으며 모여 앉아 두런두런 얘기 나눌 때 우리가 수박을 먹게 된 뒷이야기 곁들이는 것은 그 맛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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