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b'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5.07.05 허브, 집에서 키울땐…
  2.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마지막 회>] 토사곽란, 통증, 관절염에 효과
  3.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16] 잘못 쓰면 死藥 관절염, 근육마비, 풍, 강심에 특효, ‘초오’
  4.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15] 어혈 풀고 굳은 것 깨뜨리다, ‘옻’
  5.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14] 열과 조(燥) 다스려 오장의 맥(脈) 살린다, ‘맥문동’
  6.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13] 담음(痰飮)으로 인한 일체의 질환 치료, ‘반하’
  7.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12] 화중지왕 ‘모란’과 꽃의 재상 ‘작약’
  8.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11] 약용 꽃의 대부, ‘노루귀·현호색·산자고’
  9.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10] 항암, 강력 진통 효과… 대약왕수(大藥王樹), ‘비파나무’
  10.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9] 신선이 되는 약의 으뜸 ‘국화(菊花)’
  11.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8] 금(金)하고도 바꾸지 않는 지혈용 약초 ‘삼칠’
  12.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7] 위장병에 좋은 ‘산사’, 심장병·고혈압에도 특효
  13.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6] 신선이 되는 선약, ‘꾸지뽕’에 대한 단상
  14.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5] 이름만 좋은 하눌타리? 난치병 치료에 특효! ‘과루실’
  15.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4] ‘다래·솔나리·지치…’ 마음이 부자 되는 늦여름 약초산행
  16.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3] 장 기능 허약체질에 최고의 영약 ‘삽주’
  17.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2] 수험생·정신노동자에게 좋은 총명탕 재료 ‘석창포’
  18. 2015.07.05 [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1] 산정(山精)으로 불리는 신선의 약초 ‘하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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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 집에서 키울땐…

 

세계일보 / 2011-05-13 09:41

 

 

레몬 밤·로즈마리 고기요리에 유용… 최소 6시간은 햇빛에… 물은 조금만

허브는 요리에 넣기도 하고 차(茶)로 우려내 마실 수 있는 데다 공기 정화와 아로마 효과까지 있어 활용도가 높은 작물이다. 허브는 물을 많이 주면 향기가 약해지고 뿌리가 쉽게 썩기 때문에 약간 건조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것이 좋다. 오전 햇빛은 허브에게 보약이다. 하루에 최소 6시간 정도 햇빛을 받도록 하는 게 좋다. 집에서 키우기 좋은 허브들을 소개한다.

● 로즈마리

로즈마리는 독특하고 강한 향 때문에 육류요리에 많이 사용한다. 햇볕이 잘 들고 석회질이 풍부한 땅에서 잘 자란다. 가정에서는 계란 껍질이나 조개 껍질을 으깨서 화분 위에 올려놓으면 좋다. 약간 건조한 듯 하게 물을 주면 된다.

● 라벤더

라벤더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어 침실에 두면 좋다. 라벤더차는 숙면에도 효과가 좋다. 빛이 충분해야 하고 고온다습한 환경을 피해 서늘하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가꾼다. 줄기를 잘라 다발로 묶어 옷장이나 방안에 걸어 두면 곰팡이가 잘 끼지 않는다. 목욕제로 활용하면 신선한 향기를 오랫동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요리용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 레몬 밤

잎에서 레몬 향이 나는 허브다. 햇볕이 잘 드는 남향에서 잘 자란다. 아파트 베란다나 실내에서는 유기질이 풍부한 흙을 큰 화분에 넣어 재배하면 의외로 기르기 쉽다. 여름철 레몬 밤 잎을 약간 짓이겨 향이 나게 한 후 제빙용기에 넣고 물을 부어 얼리면 레몬 향이 나는 얼음이 만들어진다. 특유의 레몬향으로 고기요리 및 샐러드와 후식에까지 널리 이용할 수 있다.

● 민트

우리말로 박하라고 하며 스피어민트, 파인애플민트, 애플민트, 페퍼민트 등 종류도 다양하다. 고온과 건조에 약한 편이며 반그늘에서 잘 자란다. 요리에는 스피아 민트가 가장 많이 이용된다. 상쾌한 향기와 풍미 때문에 요리의 소스와 향을 내는 재료로 이용할 수 있다. 페퍼민트는 생체로 샐러드에 넣어도 좋고, 주스나 물에 넣어 마시면 청량감을 더해 준다. 특히 산뜻한 향과 살균효과는 입 냄새를 막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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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마지막 회>] 토사곽란, 통증, 관절염에 효과

 

신동아 / 2012-12-24 16:14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고 했다. 요새는 안 그런 것 같다. 꼴뚜기가 건강식품으로 얼마나‘인기 짱’인데. 냉동된 중국산까지 수입하지만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시장에 가도 제철에 나오는, 알이 통통 밴 꼴뚜기는 운이 좋아야 구경한다. 그런데 과일전 망신이라는 모과도 만만치 않다. 최근 한의사 집단이 공분하고 나선 대목과도 관련이 있다. 늦가을 모과차 향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로 신관 편하게 시작하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못하다.

 

한국피엠지라는 국내 제약업체가 내놓은 천연물 신약이 하나 있다. ‘레일라정’이다. 유명 대학 교수가 자신이 세운 천연물신약개발업체를 통해 7년여 연구개발 끝에 만든 골관절염치료제다. 임상 결과 레일라정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관절염치료제 화이자의 ‘쎄레브렉스’에 비해 부작용은 훨씬 적고 효과는 더 나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염진통과 연골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약이라고 한다. 이런 기능은 기존의 양방약으론 좀 어렵다.

 

양방약으로 둔갑한 활맥모과주

 

이 개발업체는 보건복지부장관상 수상의 영예도 안았다. 연간 2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되는 신약 레일라정을 개발한 공로로 말이다.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좋은 약을 개발했으니 그 대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구차스러운 얘기를 좀 하면, 이렇게 레일라정을 시장에 내놓은 한국피엠지는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신약 허가를 받았는데 그 직후 악재가 터졌다. 의사들에게 수입차를 제공하고 리스 비용은 회사에서 내주는 식의 지능적인 리베이트를 주다가 전담수사반에 적발된 것이다. 그런데도 며칠 뒤 의료급여결정을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자. 레일라정은 모과가 주성분인 ‘활맥모과주(活脈木瓜酒)’라는 한약 그 자체다. 하나도 다르지 않다. 활맥모과주는 타계하신 원로 한의사 배원식 씨가 만든 관절염 비방으로, ‘한방임상보감’이라는 저서에서 이를 공개했다. 실력 있는 한의사들은 그때그때 작방(作方)해서 약을 쓰므로 공개만 하지 않는다면 웬만한 처방이 비방(秘方)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분은 이를 공개했다. 어쨌든 그의 활맥모과주는 모과 8근, 당귀 천궁 각 5근, 우슬 8근, 천마 5근, 오가피 8근, 홍화 6근, 육계 8근, 속단 4근, 진교 위령선 의이인 각 5근, 방풍 4근을 분말해 소주에 넣고 숙성시켜 만든다. 주치(主治)는 요통, 요각통, 퇴행성관절염, 류머티스관절염, 견비통, 견배통, 항강증, 구안와사, 버거씨 병 등이다.

 

 

레일라정의 처방 구성은 이 활맥모과주와 일점일획도 다르지 않다. 배원식 씨 처방의 구성 약물들을 그대로, 하나도 다르지 않게 그대로 에탄올로 추출(모과 당귀 방풍 속단 오가피 우슬 위령선 육계 진교 천궁 천마 홍화를 25% 에탄올 연조엑스)해 만든 약이다. 이걸 정제(錠劑)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정제 약이 양의사만 쓸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 됐다. 천연물신약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아니 언제는 한약이 간독성이 심각하다, 음양오행이 의학이냐 하면서 절대 먹어선 안 된다고 하더니 이게 다 무슨 일인가. 간독성과 음양오행은 제형을 바꾸면 허공으로 날아가는 모양이다. 참고로 의사가 환자에게 레일라정을 처방하면 건강보험공단에서 약가(藥價)를 주는 의료급여결정이 내려졌지만, 최근의 복잡한 사정을 반영해 약가를 확정하지 못하고 좀 늦어지고 있다.

 

도대체 한약이 환골탈태해 양의사만 쓸 수 있는 약으로 바뀐 이 천연물 신약이란 뭘까.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생약(한약재) 성분을 이용해 개발한 의약품 중 구성 성분과 효능이 새로운, 현대의학적으로 연구 개발된 의약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개발했다는 신약을 보면 뭐가 현대의학적인지, 무슨 구성 성분과 효능이 새로운 건지 정말 의아스럽다.

 

하여간 정부는 천연물신약연구사업단을 만들어 여기에 엄청난 규모의 국가예산을 투입했다. 거의 1조 원에 가까운 액수라고 한다. 그렇지만 원래의 천연물신약연구사업의 취지가 무엇이었든, 이 사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피해가 큰 국내 제약업체, 다국적 제약사들의 오리지널(특허로 보호받는 신약)에 치이고, 제네릭(특허가 끝나 카피해서 쓰는 약) 시장도 모두 내줄 수밖에 없게 된 제약업체들의 이익을 돌보는 정책이 됐다고 보는 게 중론이다.

 

천연물신약의 폐해

 

천연물신약 시장이 커지면 한약재를 생산하는 가난한 국내 농가의 소득 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제약사들이 국내 약재는 단가가 비싸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중국산 등 수입 약재를 주로 써왔기 때문이다. 최근 농가들이 이를 좌시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입장이다. 혹시 이런 얘길 할지도 모르겠다. 중국산이든 뭐든 생약재에서 추출한 약이다. 독성검사나 임상실험, 뭐 안전성 검사도 과학적으로 잘했겠지. 솔직히 그동안 미덥지 않은 한약 달여서 이를 비싸게 팔아먹은 한의사 집단에는 안된 일이지만, 환자 입장에서 보면 더 좋은 일이잖아. 글쎄, 그것도 모를 일이다. 몇 번의 고시 변경으로 과학적이라는 것의 문턱, 천연물신약 허가 요건이 무척 낮아졌다는 것만 말하겠다. 수출이라도 좀 되나? 약이 아니라 건강기능식품으로 팔린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현재 활맥모과주와 다름없는 레일라정을 포함해 스티렌정(쑥 추출물), 조인스정(으아리꽃뿌리, 하눌타리뿌리, 하고초 3종 추출물), 모티리톤정(현호색, 나팔꽃씨 2종 추출물) 등 7개 품목의 약물이 천연물신약으로 허가받아 의사들이 처방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 됐다. 이 중에는 한의사가 만들었지만 정작 한의사는 쓸 수 없는 약도 있다. 70여 가지의, 한약재로 만든 이런 신약들이 조만간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왜 이렇게 난리가 나는 걸까. 영세 제약업체도 큰 개발비용을 들이지 않고 전문의약품을 만들어 대박 사건을 터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례가 하나 있다.

 

동아제약에서 2003년에 쑥(애엽)을 알코올 추출해 만든 천연물신약 스티렌정이 그 대박 사례다. 작년 한 해 의료보험 청구 실적이 무려 870억 원이었다. 최근 3년간 생산 실적을 보면 3000억 원대. 그러나 수출 실적은 2억 원대로 초라하다. 그도 건강기능식품으로 팔렸다. 철저히 국내용이다. 스티렌은 속쓰림이나 위염 등의 예방치료제인데, 까놓고 말하면 단순히 쑥물을 정제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 이 스티렌정이 대박을 터뜨린 까닭은 우리나라의 의료 환경과 관계가 크다. 우리나라 병·의원들은 관행적으로 거의 모든 약 처방에 위장약을 함께 넣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디스크 초기로 진단받고 몇 가지 알약을 받았다고 하자. 약의 명칭은 다르나 근육이완제와 소염진통제다. 긴장된 골격근을 풀어주는 손페리정이나 카르몰정과, 비스테로이드성 해열진통소염제인 아크로펜정 또는 아세클로페낙 성분제제, 부종을 동반한 염증을 완화시키는 단백질분해 효소 브로멜린장용정, 소염진통제 알비스정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여러 가지 위장장애와 심혈관계 장애를 초래하며 간독성도 있다. 그래서 반드시 위장약을 함께 처방한다. 제산제인 탄산칼슘 성분의 카니트정, 역류성식도염과 궤양성 위염에 쓰이는 에소메프라졸 성분의 약 등이 많이 쓰였는데 요샌 동아제약의 천연물신약 스티렌정이 빠지지 않는다. 한약방에서 감초 쓰듯 모든 처방에 기본으로 스티렌정을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대박이 날 수밖에. 한 가지 더 말하면, 이 업체의 모티리톤정도 스티렌정처럼 잘 쓰인다. 현호색과 나팔꽃씨(견우자)의 알코올 추출물인 모티리톤정 역시 위장약이기 때문이다. 복부팽만감, 트림, 구토, 속쓰림 등 운동불량성 소화기 장애를 개선한다고 한다.

 

생약을 좀 아는 이라면 위장장애를 예방할 목적으로 그렇게 쑥물이나 이런 유의 약을 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다. 필자도 이런 목적으로 이들을 쓸 일이 거의 없다. 솔직히 병의원의 그 양방 처방약들을 포함해 이런 약들을, 예를 들어 환자의 몸에 맞춘 정교한 작방으로 약을 쓰는 한의사들이, 어쩔 수 없이 써야 한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그 약들의 조악함과 처방 구성의 단순함 때문에 자괴감으로 잠을 못 이룰 이가 많지 않을까 싶다. 뭐, 그들처럼 별생각 없이 제약업체가 ‘과학적’으로 만들어준 알약들을 ‘과학적’으로 쓰면서 부작용 리스트만 참고하면 되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거습진통(去濕鎭痛) 효과

 

모과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요즘 시장에 나오는 모과를 보면 못생긴 모과는 옛말이다. 울퉁불퉁 못나기는커녕 하나같이 큼직한 데다 매끈매끈한 진노랑 피부를 자랑하는, 육덕 좋은 미녀 모과들이다. 거름도 주고 잘 키우는 덕에 호강을 해서 주름이 펴진 모양이다. 시골 외진 곳에나 가야 과일전 망신인 못난이 모과들을 볼 수 있다. 모과란 이름은 ‘나무에 달린 참외’를 뜻하는 목과(木瓜)에서 변한 것이다. 은은하고 달콤한, 그 매혹적인 향기와는 달리, 맛이 시고 떫은 데다 육질이 단단해 날로는 먹을 수 없는 과일이다. 그래서 주로 썰어서 설탕이나 꿀에 재워 모과차를 만들거나 술로 담가 먹는다. 감기 기운으로 몸살이 나거나, 기관지에 염증이 있어 기침이 날 때, 체하거나 설사가 났을 때, 또 소변이 너무 잦을 때도 모과차가 좋다.

 

‘동의보감’에선 모과에 대해 “맛이 시고 성질은 따뜻하다. 곽란(霍亂)으로 몹시 토하고 설사하고 배가 아픈 위장병에 좋다. 또 쥐가 심하게 나는 것, 설사 후 갈증이 심한 것 등과 분돈(복대동맥의 박동이 과잉항진되거나 장의 경련 등으로 유발되며, 전신적인 허약 상태에서 주로 나타난다. 배속에서 덩어리가 위로 올라오고 숨이 막힐 듯한 증상이 많다), 각기(脚氣), 수종, 소갈, 구역을 치료한다. 힘줄과 뼈를 튼튼히 하고 다리와 무릎에 힘이 없는 것을 고친다”고 했다.

 

모과는 신맛으로 기혈(氣血)을 잘 수렴한다. 그래서 토하거나 설사가 심해 몸에서 전해질과 수분이 빠져나가서 오는 근육의 경련을 잘 잡는다. 모과에 향유 백편두 후박 복령 등을 가미한 육화탕이 유명하다. 또 서근통락(舒筋通絡)을 해 손발저림 등을 잘 잡는다. 수렴을 잘하므로 항이뇨작용도 크다.

 

무엇보다 거습진통(去濕鎭痛) 효과가 뛰어나다. 다리가 붓고 무겁고 땅기며 근육이 위축되어 걷기 힘든 각기 증상 등에 주효하다. 한약 처방으론 빈소산(檳蘇散) 등이 유명한데, 조기에 쓰면 이런 질환도 잘 치료된다. 풍습으로 인한 관절염, 예를 들면 허리에서 다리까지 걸치는 통증질환, 좌골신경통에도 모과가 잘 듣는다. 풍습성이거나 척추병변 좌골신경통의 경우, 어혈을 치고 소통을 보는 약재인 단삼 천궁 작약 속단 등과 진통을 주로 보는 진교 위령선 방풍 등을 가미해서 약을 쓴다.

 

배원식 씨의 활맥모과주도 모과를 군약(群藥)으로 해서 위의 약물들을 적절히 배합해 퇴행성이나 류머티스관절염과 요각통, 좌골통 등에 득효한 처방이다. 역시 모과를 군약으로 해 백굴채(애기똥풀), 현호색, 강활, 위령선(으아리꽃뿌리), 독활(땅드릅), 당귀, 건지황, 작약, 창출(삽주), 진피, 유향, 몰약, 홍화(잇꽃) 등을 배합한 활락탕이란 처방은 극심해진 온갖 통증에 잘 듣는다.

 

관절염이 오래되면 부종이나 근위축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 경우 모과에 황기 등의 약재를 가미해 쓰면 근위축을 막고 부종도 가라앉힌다. 다발성신경염, 말초신경염, 근육류머티즘에도 모과가 좋다. 또 화위지사(化胃止瀉) 효능으로 구토, 설사, 소화불량, 복통, 위경련, 급성 장염으로 인한 장교통(腸絞痛) 등 다양한 소화기 질환을 치료하는 상용약으로 쓸 수 있다. 모과는 항이뇨작용이 있어 울열로 인해 소변이 단적(短赤)하고 잘 나오지 않을 경우엔 써서는 안된다. 동의보감엔 뼈와 이를 상하게 하므로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고 적혀 있다. 참고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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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16] 잘못 쓰면 死藥 관절염, 근육마비, 풍, 강심에 특효, ‘초오’

 

신동아 / 2012-11-23 17:10


 

 

제주 백록담 분화구 안에 핀 한라돌쩌귀. 초오의 한 종류다.

 

 

 

 

 

투구꽃, 각시투구꽃, 세뿔투구꽃, 놋젓가락나물, 참줄바꽃, 지리바꽃, 이삭바꽃, 세잎돌쩌귀, 그늘돌쩌귀…. 가을이 되면 우리나라 전국의 깊은 산속에서 하늘색과 흰색의 예쁜 꽃을 피우는 초오(草烏)속(屬·genus)의 풀이름이다. 우리나라에 18종이 있다. 세계적으로는 200여 종 된다. 이름은 제각각 다르지만 투구를 쓴 듯한 모양의 꽃 생김새와 갈래 진 잎사귀가 어슷비슷해서 거기서 거기다. 다 자연에 기대어 살던 농경시대 옛사람들이 붙인 이름이겠다. 전문가들이나 야생화에 밝은 사람은 이들의 차이를 용케 구별해내는 모양이지만 눈이 어두운 필자는 다른 물체에 기대어 감고 오르는 넝쿨성에 가까운 것만 놋젓가락나물이라 식별할 뿐이다. 그 외에는 잘 모르기도 하고 성가시기도 해서 그냥 다 투구꽃 또는 돌쩌귀라고 부른다.

 

이들의 덩이뿌리는 초오(草烏)라는 이름으로 통칭된다. 한약재의 이름이기도 한 초오는 미나리아재빗과의 놋젓가락나물과 등속 근연식물(바꽃류)의 괴근(塊根), 즉 덩이뿌리를 가리킨다. 전초(全草)를 그냥 초오라고 부르기도 한다. 절기상으로 찬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한로(寒露)쯤의 써늘한 가을날 산자락 여기저기서 꽃을 피우며, 그 꽃이 볼 만해 관상용으로 집마당에 심는 이도 많다.

 

한로와 상강(霜降) 사이인 10월 중순경, 전남 화순의 어느 산을 오르며 초오의 뿌리를 캤다. 모근(母根) 옆에 붙은 새 덩이줄기(側子)가 통통하니 잘 여물었다. 초오꽃이 눈에 많이 띄기도 해서 약초 캐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랜만에 오른 이 산의 중턱 거북바위 옆에는 보기 드물게 큰 키를 자랑하던 꾸지뽕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초오 뿌리를 캐며 겸사겸사 가보았더니 그 큰 나무가 아예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번 여름 태풍을 못 이기고 넘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다른 나무들은 부러진 채로 그 자리에 있는데 꾸지뽕나무가 있던 곳만 자취도 없이 감쪽같다. 아무래도 사람의 손을 타는 수난을 당한 듯했다. 사라져버린 꾸지뽕나무가 있던 주변에 무더기를 이루며 핀 초오의 푸른 꽃색들이 유독 더 처연해 보인다. 하릴없이 약초의 뿌리를 캐며 무너져가는 이 탐욕의 시대를 생각했다.

 

한약재로 쓰이는 초오의 덩이뿌리는 그저 몸에 좋기만한 여느 약재들과 다르다. 위중한 병에 걸린 환자의 극심한 통증과 마비를 몰아내는 신통한 약이지만 한순간에 사람의 숨을 끊어놓는 무서운 독(毒)이기도 하다. 과거엔 임금이 추상같은 어명과 함께 내리던 사약의 재료로 부자, 비상 등과 함께 이 초오를 썼다. 만물을 숙살(肅殺)하는 서릿발 같은 기운으로 신경을 마비시키고 사지를 오그라 붙게 하는 맹독성의 독품(毒品)인 것이다. 고전에도 “대독(大毒)하다. 이를 달여서 고(膏)를 낸 사망(射罔)을 활에 묻혀 짐승을 쏘면 바로 죽는다”고 했다. 그래서 제대로 법제(法製) 않고 멋모르고 초오를 먹었다간 큰일이 난다. 요즘도 이 초오를 잘못 먹고 사망했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온다.

 

 

치풍(治風)의 으뜸 오두

 

동의보감엔 “초오는 대독(大毒)하다. 풍한습(風寒濕)으로 인해 몸이 마비되거나 아픈 비증(痺症)을 치료한다”고 했다. 최근의 본초서들을 보면 ‘초오의 성미와 효능은 오두(烏頭)와 비슷해 한습(寒濕)을 몰아내고 풍사(風邪)를 흩어지게 한다’고 쓰고 있다. 또 ‘몸속의 양기를 살려내는 보양(補陽)의 효능은 부자(附子)에 미치지 못하지만, 풍을 치료하고 동통이 심하거나 저리고 마비되는 증상을 고치는(去風通痺) 효능은 부자보다 우수하다’고 했다.

 

한습은 차고 습한 성질의 나쁜 기운이다. 한습이 몸에 있게 되면 피부와 근육과 뼈마디가 뻣뻣해지고 저리고 아프다. 습은 잘 이동하지 않으므로 통처가 일정하게 고정되는 경향이 있다. 만성적인 관절통이나 류머티스 관절염, 척추염과 근육통, 좌골신경통 등을 비롯한 다양한 신경통, 뇌혈관 파열 등으로 인한 편마비 등 각종 마비증상 등이 그 예다.

 

풍사는 바람처럼 잘 움직이는 성질의 사기(邪氣)다. 통증이 일정한 곳에 있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며 돌아다닌다. 통증질환이나 마비, 중풍으로 인한 신체의 이상은 대체로 이 풍한습이 결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모든 질환에 초오가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산 사천부자의 자근인 부자.

 

 

 

 

 

초오와 그 효능이 비슷하다는 오두는 무슨 약물인가. 설명을 좀 하고 넘어가야겠다. 오두나 부자나 다 미나리아재빗과 초오속 식물인 중국 사천부자(Aconi-tum carmichaeli Debx.)의 덩이뿌리다. 같은 식물의 뿌리인데 원뿌리인 모근(母根)이 오두, 새끼뿌리인 자근(子根)이 부자다. 중국 쓰촨성, 산시성 등이 원산지이므로 당연히 우리나라에선 자생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대부분을 수입해 쓰는 약재다. 부자와 오두로 이름을 달리해 부르는 이유는 모자(母子)의 구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약성이 좀 다르기 때문이다. 둘 다 속을 뜨겁게 데워서 한기(寒氣)와 풍습을 몰아내는 온리약(溫裏藥)이지만, 부자는 치한(治寒)의 으뜸(長)으로 불리고, 오두는 치풍(治風)의 으뜸으로 불린다. 부자는 한을 더 다스리고 오두는 풍을 더 다스린다는 말이다.

 

인문학에 관심이 좀 있는 이라면 플라톤의 파르마콘을 말하면 금방 부자를 떠올린다. 부자는 약이면서 동시에 독으로 유명한 약물이다. 그 성미가 열(熱)하지만 유독(有毒)하다. 물론 잘못 쓰면 유독하다. 아무 때나 유독한 것은 아니다. 부자의 열은 신체 장기의 기운이 막다른 상황까지 가 사지가 싸늘하고 맥이 곧 끊어질 것 같은 이들을 살려낸다. 이른바 회양복맥(回陽復脈)한다. 그러나 그 독은 잘못 쓰면 사람을 죽인다. 물론 법제를 해 독을 완화시킨 부자를 쓰니까 죽음에 이르지는 않지만.

 

오래전 안방의 인기를 모았던 대하드라마 ‘허준’에서도 이 부자 이야기가 나온다. 부자의 독에 무지한 이가 양기가 다 떨어져서 죽게 된 어미를 부자를 써서 살려내긴 했다. 그런데 너무 욕심을 부려서 부자를 계속 쓰다 그 독으로 눈을 멀게 만들고 말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법제 부자도 지나치게 쓰면 포도막염 같은 안질환이 생기기도 하고 심하면 실명(失明)도 한다. 증상에 맞게 잘만 쓰면 그럴 리는 없다. 칼날이 날카로우면 다루는 사람도 신중을 기해야 하는 법.

 

법제도 잘해야 되지만 또 적절히 쓰는 것이 중요하고 치고 빠질 때도 잘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부자를 쓸 증상인지 아닌지 변증(辨證·질병의 증후를 변별하고 분석하는 행위)을 잘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한의사들도 웬만큼 경험 있는 이가 아니면 탈이 날까봐 이 부자 쓰기를 겁낸다. 하지만 이런 독품을 잘 써야 큰 병을 잘 고친다. 홍삼 같은 것은 아무나 써도 탈이 잘 안 난다. 변증이 크게 필요 없다. 기껏해야 건강식품이지 약이라 할 수 없다. 그러니 무슨 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보화장양(補火長陽)의 약 부자

 

그렇지만 이 홍삼도 체질과 증에 안 맞으면 탈을 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 별 탈이 안 나 보이는 것도 사실은 의사의 변증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홍삼도 그러한데 부자 같은 독품을 쓸 때 변증을 못하면 큰 일이 난다. 변증을 잘하냐 못하냐가 의사의 실력을 판가름한다. 그래서 변증을 잘하는 이가 명의가 된다.

 

구한말의 한의사 중에 부자를 잘 써서 명의로 이름을 날린 분이 한 분 있다. 석곡 이규준 선생이다. 장비가 조조의 진중(陣中)에 뛰어들어 장팔사모 쓰듯 거침없이 부자를 써 험한 병을 고쳤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이부자다. 이분이 부자 쓴 처방을 보면 그 과감함에 가히 기가 질릴 정도다. 물론 부자만 잘 쓰신 게 아니고 뭇 병에 대한 작방(作方)이 신통해서 필자에게도 크게 공부가 된다. 변증을 잘하셨다는 얘기다. 석곡의 제자인 무위당 이원세란 분도 부자를 잘 썼다. 역시 명의로 이름을 날렸다. 이분의 제자들이 부산과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을 하다 지금은 소문학회라는 이름으로 석곡 선생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 조선의학을 계승하고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크다.

 

보화장양(補火長陽)하는 부자는 잘만 쓰면 참으로 좋은 약이다. 그래서 몸이 냉해 신진대사가 떨어진 이들에게 투여하는 보약 중에도 많이 쓴다. 그러나 부자와 달리 오두는 거풍지통(去風止痛)하는 힘이 더 강해 보약에는 잘 안 쓴다. 모자간이지만 힘이 다르다. 주로 풍한습으로 인한 비증과 역절풍(류머티스성 관절염), 손발이 굳어지며 오그라들어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지구련(四肢拘攣), 반신불수 등에 쓴다. 한(寒)보다는 풍(風)에 더 치중한다. 흔히 오두를 천오(川烏)라고도 하는데, 야생식물인 초오와 달리 중국의 사천부자는 오래전부터 천변에 인접한 밭에서 키우는 재배작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오두의 구근은 야생 초오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굵다. 야생의 초오는 엄지손톱만한 씨감자 크기인데, 오두와 그 자근인 부자는 북감자처럼 굵직굵직하다. 원래의 종자가 차이가 있어 한계가 있겠지만, 우리나라 야생 초오도 거름 주고 해서 밭에서 키운다면 혹시 오두나 부자처럼 굵직하게 자랄지도 모르겠다. 자근이 생기지 않은 오두를 따로 천웅(天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북한의 놀라운 치료사례

 

한약재 초오. 미나리아재빗과 식물의 덩이뿌리를 캐 말린 것이다.

 

 

 

 

임상적으로 초오는 부자나 오두보다 잘 쓰이는 약은 아니다. 아마 일반 한의원에선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쓸 일도 그다지 없다. 필자의 경우는 천오가 들어가는 처방에 법제를 잘한 초오를 더러 쓴다. 금궤요락에 나오는 처방 중 대오두전이나 오두탕에 더러 쓸 일이 있기 때문이다. 중풍환자에게 쓰기도 한다. 그러다 한번 된통 혼난 경험도 있다. 할머니 한 분에게 이 초오를 썼다가 수족이 오그라들고 전신마비가 와 감두탕을 끓여 복용시키면서 4시간여를 말 그대로 사투를 벌였다. 정말 혼쭐이 났다. 다행히 더 이상의 큰일은 없어서 별 탈 없이 지나갔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하다.

 

초오를 써서 치료하는 질환들은 어깨관절 주위염, 사지와 허리의 관절통, 섬유조직염, 신경통 등 각종 동통질환이 많다. 중풍이나 구안와사 반신불수에도 쓴다. 중국에선 위암이나 간암환자에게 주사액으로 치료를 한 사례들이 있다.

 

과거 한약업사들의 처방 채록집을 보면 중풍환자나 백반증 등에 이 초오를 쓴 처방들이 눈에 띈다. 참 대담하게 약을 썼다는 생각이 든다. 양의학이 시원찮았던 1960~70년대에 이분들은 위험을 마다않고 겁나는 약들을 썼다. 부러운 생각도 든다. 북한의 동의치료경험집성을 보면 이 초오를 가지고 만든 초오환으로 류머티스관절염 환자 80사례와 근육류머티즘 34사례에서 3~6주의 치료 후 통증이 멎거나 경미해진 비율이 82.6%였다고 하고 있다.

 

정신분열증이나 신경쇠약증에도 초오를 이용한 약으로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또 심근염에 의한 부정맥환자들을 대상으로 법제하지 않은 초오를 환제로 만든 초오환을 써 큰 효과를 봤다. 20명의 환자 중 10명이 완치됐고 호전된 환자가 7명이었다. 약을 투여하면서 속이 메스껍거나 입술이 저리고 손발이 저리는 증상을 호소하면 투여량을 조절했다. 초오 가루로 1알이 50mg 되게 환약을 만들어 한번에 한 알씩 하루 3회 투여하다 이상이 없으면 매일 한 알씩 양을 늘려 복용하게 했다. 이런 사례들은 모두 다 동의학적인 변증을 하면서 치료한 것들이므로 일반인은 참고로 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이 초오로 당뇨병을 치료한 이들의 경험담이 좀 나온다. 법제를 잘한 초오를 써서 신중하게 투여한 분들도 있다. 아무래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겠다.

 

 

10~11월 캐면 독성 적어

 

초오는 주로 봄과 가을에 뿌리를 캔다. 독성을 줄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감초와 검은콩 삶은 물에 담갔다가 말리거나, 소금물에 넣고 보름 이상 두었다가 건조시킨다. 동변(12세가 안 된 사내아이의 오줌)에 담았다가 찬물에 씻어서 말리는 방법도 있다. 부자나 오두는 주로 아코니틴(Aconitine) 성분을 비롯한 여러 가지 알카로이드의 독성을 이용해 약효를 낸다. 초오에도 역시 이들 성분이 많다. 초오, 부자, 오두에는 아코니틴 말고도 하이겐아민 등 여러 가지 알카로이드가 있는데 이들은 매우 강력한 심장독성물질이자 신경독성물질이다. 또 강심제이자 강력한 진통제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복용하면 부정맥과 호흡근 마비를 일으켜 심하면 죽게 되지만, 수취를 해서 독성을 잘 빼내면 약이 된다. 법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 아코니틴 성분과 알카로이드의 양이 100배까지 차이가 나기도 한다. 아코니틴은 또 오랜 시간 끓이면 아코닌이라는 물질로 바뀌어 독성이 크게 줄어든다. 강심작용이 큰 하이겐아민은 오래 끓여도 파괴되지 않기 때문에 그 효과가 줄어들지 않는다.

 

 

 

 

초오의 중독증상은 처음에는 가려움이나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다가 작열감과 어지러움, 부정맥, 숨 가쁨, 구토증, 운동마비 등이 나타난다. 중독 시에는 감두탕을 먹거나 북어 끓인 물을 마시면 완화된다. 초오의 채취 시기는 10월 중순경이 가장 좋은데, 10월경부터 11월에 채취한 것이 아코니틴이 비교적 적고 강심 성분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옛사람들도 나름대로 지혜로웠다고 해야 할 대목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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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15] 어혈 풀고 굳은 것 깨뜨리다, ‘옻’

 

신동아 / 2012-09-25 14:05


 

 

충북 단양군 가곡면 말금마을 `옻나무 샘`. 수령 90이 넘은 옻나무가 옆에

서 있다. 샘물이 몸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경전의 숲’ 모임 시즌 1이 끝났다. 시즌 1에는 ‘장자(莊子)’내편을 읽었다. 시골 목사, 방송국 PD, 치과 의사, 혈액 암 전공 의대 교수와 개원 한의사 등 7명이 모여 각자의 분량을 맡아서 원문을 강독했다. 다들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고 자기 몫의 삶이 바쁘고 힘들다. 그런데도 끄떡없이 해냈으니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시중에 나온 번역본들을 참조해서 지난겨울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우리 한의원에 모여 공부한 끝에 거의 반 년이 걸려 끝났다. 이렇게 일부를 독해만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를 번역해 꼼꼼히 각주를 달고 해설하신 분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장자의 국내 번역본과 해설서는 거의 다 참조했는데, 개인적으로 캐나다 리자이나대학에서 비교종교학을 가르치시는 오강남 교수의 번역과 해설이 단연 돋보였다. 신학을 하셔서 그러리라. 통찰의 깊이가 있다.

 

장자에 의하면 선택의 여지없이 특정한 국가체제에 태어나서 사는 동안 먹고살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노심초사해야 하는 일들이 모두 ‘부득이(不得已)’한 일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 세간(世間)에서 사는 일 모두가 부득이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속에서 이로운 것만 취하려 하고 이롭지 못한 것은 피하려 하니 괴롭고 고통스럽다.

 

 

옻 관리였던 장자

 

하지만 저것은 이래서 나에게 좋고 이것은 그러지 못해 나쁘다는 따위의 분별심만 거둔다면 사뭇 달라진다. 나와 타자(他者) 모두에게 두렵고 힘든 세상의 뭇 파도가 남태평양의 짙푸른 해변에서 서핑이라도 하듯 올라탈 만한 일이 된다. 그것이 내편 ‘인간세(人間世)’에 나오는 장자의 ‘승물이유심(乘物而遊心)’이다. 누구나 어쩔 수 없이 파도(物)를 탄다. 부득이한 일이 아닌가. 그 파도에 대한 분별을 버리고 파도의 흐름을 타고 마음을 자유롭게 노닐도록 하라는 것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불안과 절망의 시대를 살았던 장자의 얘기다. 크다 작다, 좋다 싫다, 쉽다 어렵다, 있다 없다 하는 분별을 여의면 된다. 왜 인간은 이것을 못하는가. 왜 파도에 호오(好惡)가 있는가. 일미(一味) 아닌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인간들에 대한 그의 탄식이 들리는 듯하다. ‘인간세’에 나오는 글 한토막이다. 마치 선시(禪詩) 같다.

 

“저 빈 것을 보라.                                                          (瞻彼?者)

텅 빈 방이 뿜어내는 흰 빛.                                             (虛室生白)

행복은 분별을 여읜 고요함에 머무르는 것.                        (吉祥止止)

머무르지 못하면 몸은 앉아 있어도 마음은 달리는 것이니라. (夫且不止 是之謂坐馳)”

 

나를 잊는 좌망(坐忘)과 마음을 굶기는 심재(心齋)를 말하던 장자도 역시 세간에서 먹고살아야 했으므로 부득이하게 직업을 가졌다. ‘칠원리(漆園吏)’라는 관직이다. 하는 일이 우습게도 옻나무 밭을 관리하는 거였다. 그런데 장자의 시대에는 생각 외로 이 칠원리가 상당한 직책이었다. 기원전 4세기 장자가 살았던 중국의 전국시대에는 옻나무 밭, 곧 칠원(漆園)을 나라에서 직접 관리했다. 왜냐하면 먹이 발명되기 전에는 옻칠이 왕실이나 관청에서 문서를 작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옻이 없으면 문서를 만들 수 없었다. 당시엔 죽간(竹簡)이나 갑골에 이 옻칠액으로 글을 썼는데, 죽정(竹挺)이라는 대나무로 만든 펜으로 옻나무 액을 찍어 썼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문서를 죽간칠서(竹簡漆書)라고 한다. 공자나 맹자 시대의 문서 대부분이 죽간칠서였다. 국가 행정에서 문서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하면 옻의 안정적인 조달은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칠원리가 옻나무 밭을 잘못 관리하면 일국의 행정이 큰 차질을 빚게 되므로 자칫 잘못하면 그 책임을 지고 벼슬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벌도 받았다.

 

 

노장사상의 태두인 장자는 옻나무 밭을 관리하는

‘칠원리(漆園吏)’였다.

 

 

 

옻나무가 그냥 내버려두어도 아무 데서나 잘 크고 쉽게 죽지 않는 나무였으면 굳이 나라에서 옻나무 밭을 만들어 관리할 것까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옻은 생육조건이 무척 까다롭다. 다른 나무보다 씨앗의 발아율이 낮아서 번식시키기 어렵다. 또 씨앗이 발아한 후 잔뿌리가 제자리를 잡는 데 3년 정도가 걸린다. 잘 자라지 못하고 죽는 게 많다는 얘기다. 그러니 옻액에 대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선 옻나무 밭을 두고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옻나무 씨앗의 발아율을 높이기 위해 씨앗을 짚불에 살짝 볶아서 심기도 했는데, 그렇게 하면 자연 상태에서보다 발아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이런 방법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 홍만선의 ‘산림경제’에도 실려 있다. 아무튼 옻나무는 관리를 잘해야 했다.

 

장자가 칠원리 직책을 얼마나 유지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행적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장자가 죽은 뒤 200년쯤 뒤에 쓴 사마천의 ‘사기(史記)’ 장주열전에 초나라 위왕(魏王)이 사자를 보내 재상이 돼주기를 청했으나 가볍게 거절했다는 것으로 보아 옻나무 밭을 계속 지키며 지내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아무튼 그는 극히 궁핍한 생활을 했으나 부귀와 영화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잡편의 열어구(列禦寇)에는 그런 장자의 모습이 잠깐 비친다. 그 앞에서 자신의 영달을 뽐내는 조상(曺商)이라는 세객(說客)에게 장자는 “세상의 부귀는 권력자의 항문에 난 치질을 빨아 얻은 것과 같다”고 일갈한다. 언젠가는 다 떨어진 신발에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위왕을 만났다. 위왕이 “선생은 왜 그리 지쳐보이는가”하고 비웃자, 장자는 “지친 것이 아니라 단지 가난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지금같이 어리석은 군주와 못난 신하가 있는 곳에서는 어느 누가 병들고 지치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가 있겠는가”라며 한마디 덧붙인다. 가난과 궁핍이라는 파도를 타고도 자유로웠다.

 

우리나라 역시 왕실에서 많은 양의 옻을 필요로 해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옻나무 심기를 권장한 기록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칠기를 비롯해 가구, 제기, 병기, 미술공예품 등 고급스러운 생활용품의 제작에 옻은 필수적이었다. 흔히 무언가를 표면에 바를 때 칠을 한다고 하는데 옻나무를 가리키는 칠(漆)에서 나왔다. 옻칠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게 하는 말이다. 조선시대에도 옻 생산을 독려했는데 관청에서 무리하게 징수하는 통에 백성의 원성을 사는 일이 적지 않았다.

 

 

 

 

 

옻의 항암작용

 

그런데 이 옻나무는 옻칠을 하는 도료로만 쓰임새가 한정되지 않는다. 약이다. 그것도 암과 같은 불치의 질환을 치료하는 영약이다. 옻 속의 후스틴과 피세틴 등 몇 가지 성분이 항암작용을 한다. 항간에 인산의학으로 유명한 김일훈 옹은 옻을 난치병 치료의 기본 약재라고까지 말한다. 그는 유방암을 비롯한 여러 가지 난치성 질환에 이 옻을 오리나 닭과 함께 넣고 조리해 복용하면 효험이 크다고 했다.

 

실제로 옻은 항암제로 쓰여서 혁혁한 성과를 보였다. 옻나무 진액에서 독성을 제거해 만든 ‘넥시아’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말기 암 환자들을 10년 이상 생존시켰다.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암센터의 한의사 최원철 씨가 이뤄낸 쾌거다. 이 바닥이 워낙 말만 많은 곳인데, 그의 성과는 말로만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과학적인 데이터, 논문자료 다 있다. 어쨌든 이 시대는 과학적이라고 해야 통하는 세상이니까. 덕분에 한동안 그는 갖가지 딴죽걸기와 논란의 중심에 서 있어야 했다. 개인적인 고초도 컸던 것 같다. 주류 의학인 양의학계에서 이런 일을 해냈다면 반응이 사뭇 달랐을 것이다.

 

옻은 한약재로 쓰일 때는 건칠(乾漆)이라고 한다. 맨 처음 옻나무에서 얻어진 진은 우윳빛이다. 고운 모시나 명주 등으로 불순물을 걸러내는데 이를 생칠(生漆)이라 한다. 이 생칠은 수분이 많으므로 햇빛이나 숯불로 수분을 증발시키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렇게 하면 투명한 옻액이 된다. 이를 투명칠(透明漆)이라 한다. 한약재로 쓰이는 건칠은 흑갈색의 수지 덩어리인데, 생칠 속의 우루시올 성분이 공기 중에서 산화해 색이 변한 것이다.

 

동의보감은 건칠이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맵고 독이 있다”고 했다. 흔히 어혈(瘀血)을 삭히고 몸속의 궂은 덩어리를 깨뜨리며 여성의 생리가 끊어진 것 등을 치료하는 약으로 썼다. 활혈거어(活血祛瘀)하는 약재다. 요샛말로 전립선염이라고 할 수 있는 산가(疝痂)를 치료하고, 회충 등 배 속의 기생충을 없애는 데에도 썼다. 중국 금나라 때의 저명한 의가인 장원소(張元素)는 “오래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린 적체를 삭혀내고, 응결된 어혈 덩어리를 깨뜨린다(削年深堅結之積滯, 破日久凝結之瘀血)”고 했다.

 

건칠은 뜨겁고 매운, 신온(辛溫)한 약이다. 역시 아무에게나 좋은 약은 아니다. 몸이 차고 냉랭한 사람에게 쓴다. 이런 이들에게서 생긴 적체와 어혈에 쓴다. 염증이 많거나 몸이 더운 사람에겐 써서는 안 된다. 그런데 옻에는 독이 있다. 자칫 잘못 쓰면 부작용이 극심하다. 이른바 옻독이다. 한의학에선 칠창(漆瘡)이라고 한다. 옻액의 우루시올 성분이 이 옻독을 일으키는 물질인데, 옻에 예민한 사람은 1μg(마이크로그램)의 우루시올에도 피부염이 생긴다.

 

이 옻독을 없애기 위해 건칠을 쓸 때는 판판한 돌 위에 건칠을 올려놓고 불을 피워서 약재에서 연기가 올라올 때까지 가열한다. 그렇게 몇 차례 연기를 빼내면 웬만하면 옻독이 오르지 않는다. 요즘은 옻나무 진액이나 옻 껍질에 용매를 첨가하고 고열처리를 해서 독성을 제거하는 기술특허를 내 독성이 제거된 옻 진액을 대량으로 생산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필자의 경험으론 거의 옻이 오르지 않는다. 전남 화순에 사는 지인 한 분이 솜씨가 있으셔서 이 옻액을 만들어 보내주셨다. 한 달 넘게 음료수 마시듯 먹었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옻나무는 흔히 참옻나무, 개옻나무, 검양옻나무, 붉나무 등으로 분류한다. 참옻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다. 우리나라 산야에선 보기 어렵다. 그래서 대개 밭에서 재배하는 것은 참옻나무이고 산야에 흔히 보이는 것이 개옻나무, 검양옻나무다. 약재나 칠의 원료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참옻나무다. 그런데 옻나무 종류가 아닌데 잎사귀의 생김새가 옻나무와 흡사한 나무가 많다. 어린 잎을 따다가 장조림을 하거나 맛있는 부각을 만드는 멀구슬나뭇과의 참죽나무도 옻나무와 잎이 비슷해 구별이 쉽지 않다. 얼마 전 일이다. 농가의 밭에 심어진 옻나무를 참죽나무로 잘못 알고 옻잎을 먹고 전신에 시뻘겋게 옻독이 오른 환자 한 분을 치료한 일이 있다. 참옻의 새순이나 어린 잎은 맛이 달아서 보양식품으로 식용하기도 하는데, 이분은 참죽나무 잎이 참 맛이 좋다며 많이 먹었다. 옻을 쉽게 타는 체질이기도 했다.

 

 

옻독의 양면성

 

옻 잎을 먹은 후 한나절 동안은 별다른 기미가 없었다. 단지 잇몸 주변이 좀 부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하루가 지나자 입 주변의 피부와 입술이 퉁퉁 부어올랐다. 곧 부기가 얼굴 전체로 번졌다. 작열감과 가려움이 너무 심해 민간처방으로 들기름을 바르고 꽃게를 끓여 국물을 마신 후 좀 완화됐다. 그렇게 괜찮아지나 했더니 다음 날 온몸으로 열이 퍼지고 전신의 피부가 성이 나서 살갗이 터지고 진물이 났다. 양방의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 먹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한의원에 내원한 환자를 살펴보니 등과 복부, 목 주변, 가슴, 손목과 다리, 허벅지까지 온통 시뻘겋게 옻독이 올랐다. 특히 항문과 고샅 주변 등 여린 피부조직의 발적(發赤)이 심하다. 가려움이 극심하다.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이 온몸에서 열이 나면서 가려움이 심해서 이를 긁어대느라 밤에도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급히 한약을 조제해 투여하고 침을 놓으면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2~3일여가 지났는데도 크게 진전이 없었다.

 

필자는 환자의 동의를 얻어 토종약재 전도사로 항간에 유명한 최 모 씨가 옻독의 특효약이라고 했던 ‘칠해목(까마귀밥여름나무)’을 구해서 투여했다. 이 까마귀밥여름나무의 줄기와 잎이 옻독에 신통한 효과가 있어서 이를 끓여 복용하면 첫날부터 소양감과 발적, 작열감 등이 없어지고 부어오른 피부 표면이 꾸덕꾸덕하게 마른다는 것이다. 점차 모든 증상이 없어져서 3~7일 만에 완전히 좋아진다고 했다. 북한 동의학 자료를 많이 참조했지만 최 씨 본인의 경험도 덧붙였다. 이 나무 줄기와 잎을 끓여 복용시키면서 필자는 잔뜩 기대했다. 최 씨가 쓴 글을 보고는 왜 진작 이를 구해다 쓰지 않았을까 필자의 무지를 탓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약물 복용 후 옻독의 증상이 개선되기는커녕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작용이 튀어나왔다. 환자의 멀쩡했던 한쪽 팔이 손목에서 어깨까지 뽀빠이 팔처럼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만져보면 고무처럼 탱탱한 것이 아무래도 림프부종이었다. 옻독의 증상인 피부의 소양감과 발적, 작열감 어느 것 하나도 호전이 안 됐다. 3~4일을 속을 끓이며 지켜보았으나 차도는커녕 터무니없는 부작용만 생긴 것을 확인하고 모든 기대를 내렸다. 환자를 볼 낯이 없었다.

 

어찌됐든 수습을 해야 했다. 부기가 빠지지 않는 팔에 부항을 써서 사혈(瀉血)을 했다. 며칠 동안 필사적으로 사혈을 한 것이 주효했는지 다행히 팔의 부기가 빠지기 시작해, 부어오른 팔은 원상으로 돌릴 수 있었다. 다시 한약을 조제해 투여하고 소양감이 심한 피부를 사혈하고 침을 놓고 하여, 치료를 시작한 지 보름쯤 지나자 옻독이 대부분 진정됐다. 국소적으로 소양감과 발적이 남아 있었지만 큰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옻독으로 고생은 하지만 질병을 앓는 것과는 다르다. 혹시 고생한 만큼 몸이 더 좋아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환자도 크게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치료를 받는 것보다 빨리 좋아졌다고 생각한 듯도 하다. 다행이다. 하여간 옻독을 잘못 처치한 탓에 필자도 교훈을 적잖이 얻었다. 옻독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밖으로 뿜어내는 것이 치법(治法)이다. 신통한 효과가 있다고 선전하는 것에 혹하지 말자 등등이다. 앞으로 칠해목만큼은 안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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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14] 열과 조(燥) 다스려 오장의 맥(脈) 살린다, ‘맥문동’

 

신동아 / 2012-08-24 13:45


 

 

연보라색 꽃을 피우는 맥문동.

 

 

 

부추나 꽃무릇(석산)의 잎처럼 생긴 길쭉한 잎사귀가 사철 무성하다. 언뜻 보면 춘란(春蘭)으로 착각한다. 겨울에도 좀처럼 시들지 않고 푸르고, 웬만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바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맥문동(麥門冬)에 관한 얘기다. 추위를 잘 이기는 보리를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졌는데 알뿌리의 모양이 보리알과 비슷해 그렇다는 설도 있다. 그냥 맥동(麥冬)이라고도 한다.

 

고려 때 의약서 ‘향약구급방’에는 동사이(冬沙伊)라고 기록돼 있다. 동사이는 겨울에도 푸르른 겨우살이를 한자로 음차한 말이다. 동의보감에는 우리말로 ‘겨으사리불휘’라고 적고 있고, 중국에선 부추(?)를 닮았다는 뜻으로 오구, 마구, 우구라 했다. 좀 난데없지만 불사의 영약이란 의미로 불사초(不死草)라고도 하고, 돌계단 주변에 많이 심어서 계전초(階前草)라는 이명(異名)도 있다.

 

야생의 맥문동은 우리나라 전국의 산야에 많다. 요새는 지자체에서 도심의 도로 주변이나 공원의 공터, 관광지에 정말 많이 심어 놨다. 조경용으로 적당한 지피식물(地被植物·잔디처럼 낮게 자라 지표를 덮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산의 등산로 주변에도 굳이 잡목들을 베어버리고는 이 맥문동을 지피용으로 심은 곳도 많다. 그래서 아무리 조경이라지만 정도가 심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맥문동은 그늘에서도 무리지어 잘 자라며 가뭄과 추위를 잘 견딘다. 예부터 뜰의 가장자리나 마당의 길섶에 많이 심었다.

 

 

불사초로 불린 까닭

 

잎사귀도 그렇지만 연보라색의 물결을 이루는 꽃들이 더 볼만하다. 무성한 잎들 사이 길게 꽃자루가 올라와 6~8월경에 총상꽃차례로 꽃이 핀다. 시골에 가보면 장독대가 있는 뜨락과 정원 한쪽의 이끼 낀 돌들 사이에 맥문동을 무더기로 심은 집이 더러 있다. 그늘진 마루에 앉아서 꽃들을 보고 있으면 자줏빛 주단을 깔아놓은 듯하다. 한여름 무더위로 상한 기운이 적이 안정된다. 전남 구례의 유서 깊은 한옥 곡전재(穀田齋) 같은 곳에서 그런 소슬한 풍경을 누릴 수 있다.

 

맥문동 열매는 푸른 구슬같이 꽃자루에 둥글둥글 맺혔다가 가을이 되면 검은색으로 익는다. 겨울까지 붙어 있는 흑구슬 같은 열매를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약재로 쓰는 것은 뿌리와 줄기 부분이다. 약재로 쓰기 위해선 2년 이상 자란 맥문동을 꽃이 피기 전인 봄철에 캐야 한다. 알뿌리의 씨알이 굵기 때문이다. 수북한 수염뿌리 끝에 송골송골 매달린 흰색의 알뿌리를 채취해 맑은 물에 담그고 불린 다음 가운데에 박힌 심을 빼고(去心) 말려서 쓴다. 거심하지 않고 써야 더 좋다는 말도 있다. 꽃은 자주색이 흔하지만, 흰색으로 피는 소엽 맥문동도 있다. 잎사귀에 흰 줄무늬가 있는 것 등 관상용 변종이 좀 있다.

 

맥문동에는 진나라 시황과 얽힌 이야기가 전해온다. 진시황에게 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왔는데 부추 잎과 비슷하게 생긴 풀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다. 기이하게 여긴 시황이 방술에 능한 귀곡자(鬼谷子)에게 물었다. “기이하다. 그 새가 물고 있는 풀잎이 무엇인가?” 귀곡자가 대답했다. “불사초의 잎입니다. 죽은 사람을 그 풀잎으로 덮어두면 사흘 안에 살아납니다. 동해에 있는 삼신산(三神山) 중 영주에서 납니다.” 진시황은 귀곡자의 말을 듣고 기뻐해 방사 서복(徐福)의 무리를 바다로 보내 찾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불사초를 구해 돌아오지 못했다. 시황은 마지막까지 불사약을 찾아 모산과 낭야, 동해 등지를 순행했지만 미처 수도인 함양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하북의 사구에서 객사했다.

 

방사들의 말을 너무 믿은 진시황을 상대로 귀곡자가 희대의 사기극을 벌였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귀곡자도 정말 불사초가 있다고 믿고 있었던 걸까. 후세의 사람들은 항간의 약초들 중에서 이 불사초를 추정하다 이파리가 부추 잎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맥문동을 불사초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더 허망하다. 산과 들, 집 주변, 도처에 흔해빠진 게 맥문동인데. 귀곡자가 진시황과 방사들을 제대로 골탕 먹였다는 얘기가 된다.

 

동해 삼신산까지 서복의 무리를 애써 보낼 필요도 없었다. 어쨌든 본초강목을 비롯한 옛 의서에는 맥문동을 불사초라고 굳이 적고 있다. 생각하건대 맥문동에 불사의 효능이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만물이 얼어붙는 겨울에도 잎이 죽지 않고 푸른 까닭에 그 생명력을 기려서 불사초라고 하지 않았을까.

 

 

자음청열(滋陰淸熱)의 약재

 

사실 맥문동은 그 억척스러운 생명력으로 따지면 불사초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예를 들어 맥문동의 알뿌리를 수확하고는 포기를 쭉쭉 갈라서 흙바닥에 그 뿌리를 아무렇게나 던져놔도 좀처럼 죽지 않고 잘 살아난다. 들판의 어느 잡초보다도 더 강인하다.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지만 양지에서도 잘 산다. 매연이 많은 척박한 도로 주변에서도 끄떡없이 사계절 푸릇푸릇하다. 억척스러울 만큼 힘이 좋은 풀이다. 그러고 보니 믿을 것은 아니지만, 혹시 그 약효에도 그런 힘이 있는 것은 아닐까. ‘동의보감’에 나타난 맥문동의 효능은 이렇다.

 

‘성질은 약간 차다. 맛이 달고 윤택하다. 독이 없다. 심장을 보하고 폐를 맑게 한다. 정신을 진정시키며 맥기(脈氣)를 안정시킨다. 허로(虛勞·기혈이 손상되어 나타나는 빈혈이나 신경쇠약 등 만성적인 소모성 질환)로 인해 열이 나고 입이 마르고 갈증이 나는 것을 다스린다. 폐위(肺?·폐의 열로 인해 체액이 소모되어 생기는 병)로 피부와 털이 거칠어지고, 가쁘게 기침하고 숨찬 증상, 열독(熱毒)으로 인해 몸이 검어지고 눈이 누렇게 변한 것을 치료한다.’

 

허로나 폐위, 열독은 열(熱)과 조(燥)의 증상이다. 열은 알겠는데 조(燥)는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진액, 오장(五臟)의 체액이 모두 고갈돼 부족해진 상태를 가리킨다. 조가 먼저고 열이 뒤따른다. 자동차로 말하면 엔진은 돌아가는데 엔진오일이 부족한 상황이다. 오일이 떨어져 냉각과 세정, 윤활작용을 못하면 발열이 심해진다. 결국 엔진이 눌어붙는다. 인체도 거의 비슷하다. 사람의 몸도 오일과 같은 진액이 부족해지면 열이 난다. 그래서 입 안이 마르고 갈증이 나고, 피모(皮毛)가 거칠어지고 살과 근육이 위축되며 몸이 기름지지 못하고 마른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어서 엔진이 눌어붙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지만, 어쨌든 전조 증상이 나타난다. 심화(心火)로 인한 불면증, 위열로 인한 위장장애(식욕감퇴, 팽만감 등), 맥기(脈氣)가 안정되지 못해 심장이 제멋대로 뛰는 부정맥 같은 증상 등이다. 열과 조로 인해 몸의 기운이 쉽게 소모되는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살이 잘 찌지 않는 이들은 일견 단단해 보이긴 한다. 그러나 당장에 큰 병이 없더라도 그의 몸은, 사실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잘 처리 못해 심장이 늘 불안하다. 오일이 바닥난 자동차 엔진이 툴툴거리기 시작하듯, 진액이 부족하면 조만간 이런 증상들이 찾아든다.

 

 

 

 

 

신경쇠약, 당뇨, 고혈압, 면역계의 이상과 호르몬의 대사장애를 비롯한 현대인의 만성적인 각종 소모성 질환도 그 범주 안에 든다. 물론 현대문명의 산물인 부적절한 먹을거리와 공해환경, 화학적 의약품 등으로 몸이 혼탁해진 까닭도 있다. 그러나 밤낮을 모르고 에너지를 퍼내 쓰고 과도한 스트레스 환경에서 지나치게 심기(心氣)를 억누르고 소모해도 그런 증상이 찾아온다. 오장이 조한 상태에 있는데 그 기능을 지나치게 항진시킨 결과다.

 

그렇다면 열과 조를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 차지 않은, 미량(微凉)한 물로 열을 식히고 눅진눅진한 진액성 물질을 보충해 오장이 안정되게 해줘야 한다. 맥문동은 성질이 조금 차고 맛이 달고 질이 윤택하다. 미량하면서도 진액이 풍부하다. 그래서 오장의 음(陰)인 체액을 보태고, 심장과 폐와 위장의 열(煩熱)을 맑게 한다. 이렇게 자음청열(滋陰淸熱)하는 약재로는 맥문동을 따라갈 만한 것이 없다.

중국 도홍경의 ‘명의별록’에는 맥문동이 ‘마른 몸을 살찌고 건장하게 하며(令人肥健), 얼굴색을 좋게 한다(美顔色)’고 적고 있다. 모두 열과 조로 인해 내부의 진액이 마른 증상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몇 마디 더 옮기면 이렇다.

‘족위(足?)로 종아리 근육이 마르고 힘이 빠져 불구가 되는 것을 다스린다. 위열(胃熱)이 심해 자주 허기지는 증상을 다스린다. 음정(陰精)을 보익해 정신을 진정시키고 폐의 기운을 안정시키며 오장을 편안히 한다.’

 

 

폐 윤택, 심장 안정

 

감기에 걸려 양방의원에서 한 달 가까이 감기약을 먹은 환자 이야기를 해보자. 독한 양약을 계속 먹었지만 차도가 없다. 기침만 더 심해졌다. 한번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기 시작하면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서 거의 죽을 지경이 될 때까지 해댄다. 이로 인해 온몸이 결리고 가슴과 허리와 등짝이 꿈쩍을 못하게 아프다. 구역질을 하고 토하기도 하지만 가래가 많지는 않다. 야간에 더 심해 잠을 자다 느닷없이 기침을 하느라 숙면을 취할 수가 없다. 여기서 그냥 내버려두면 결국엔 병원으로 가서 갖가지 겁나는 질병 명을 달고 치료를 받다가 제풀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될 것이 분명하다.

 

맥문동탕(麥門冬湯) 열 첩에 기침이 잡혔다. 맥문동탕은 맥문동이 군주와 같은 역할을 하는 군약(君藥)으로 쓰인다. 반하(끼무릇), 인삼, 감초, 대추 등이 신하가 되어 맥문동을 보좌한다. 폐의 진액이 말라 해수(咳嗽)가 심해질 때, 특히 백약(百藥)이 무효일 때, 맥문동탕은 드라마틱한 효과를 낸다. 실제 주위를 보면 이런 환자가 꽤 많다. 아마도 진해제로 염산트리메토퀴놀, 염산슈도에페드린 따위를 과다하게 쓴 탓이리라. 감기를 고친다는 약이 오히려 기관지의 진액을 말려 더 심한 증상을 초래한 것이다. 맥문동은 이로 인한 폐의 조와 열을 다스렸을 뿐이다. 부족한 진액을 보태주고, 진액이 부족해 생긴 열을 가라앉혔다. 열이 더 심한 이는 여기에 죽엽(시누대 잎)이나 석고를 더 넣어 쓴다.

 

맥문동이 폐에 작용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을 양음윤폐(養陰潤肺)라고 한다. 그러나 진액이 부족한 곳은 폐만이 아니다. 소화기도 그렇다. 맥문동이 위장 등의 소화기에 작용하면 익위생진(益胃生津)이다. 인후와 혀(舌)가 건조하고 장조(腸燥)로 인한 변비가 있을 때 쓴다. 심장도 그렇다. 맥문동이 심장에 들어가면 청심제번(淸心除煩)을 한다. 현대적으로는 강심 및 안심작용이다.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의 진액이 손상돼 나타나는 증상들, 예를 들면 부정맥이나 불면증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사무실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장인의 경우 맥문동을 차(茶) 대신 마시면 좋다. 그러나 조해서 바짝 마르고 정신적으로 불안한 이가 쓰면 좋지만, 습(濕)이 많아 소통이 잘 안되고 불안하다면 먹으면 안된다. 오히려 습을 더 조장한다. 병을 더 만드는 꼴이 된다.

 

 

양음익기(養陰益氣)의 생맥산

 

 

맥문동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고급 약재다.

 

 

 

소아의 불면증에도 좋다. 심화가 왕성한 아이들은 심신이 안정되지 못하고 다동불안(多動不安) 증상이 잘 생긴다. 맥문동을 끓여서 음료 대신 주면 잠도 잘 자고 마음도 편해진다. 소아의 틱 장애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도 체액이 부족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역시 맥문동 음료가 도움이 된다. 맥문동은 또 조와 열로 인한 고혈압에도 효과가 있다. 굳어진 혈관을 연화하고 혈압을 떨어뜨리는데 도움이 된다. 여성의 생리통이나 생리불순에도 조가 주증이라면 당연히 이 맥문동이 군약으로 들어간, 이를테면 온경탕(溫經湯) 같은 약이 크게 효과를 낸다. 노인들의 심계항진이나 부정맥에도 맥문동이 들어간 자감초탕(炙甘草湯) 같은 약들이 참 잘 듣는다.

 

‘맥을 못 춘다’는 우리말이 있다. 여름철에 땀을 많이 내는 데다 장마철의 꿉꿉한 무더위에 시달리다보면 영 기운을 차릴 수가 없게 된다. 식욕도 없고 숨이 차고 매사에 피곤해져 일을 해도 좀처럼 의욕이 안 난다. 역시 장(臟)의 진액이 조해진 까닭이다. 그러나 여름철에 미리 생맥산(生脈散)을 상복해 이 진액을 보충한다면 이렇게 맥을 못 출 일 따윈 없다. 맥문동 8g에 인삼과 오미자를 각각 4g씩 쓴다. 처방이 간단해 집에서도 쉽게 끓일 수 있다. 여기에 향유와 백편두를 적당량 넣으면 맛도 약효도 더 좋다. 인삼 대신 황기를 쓰기도 한다.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중국 금·원 시대 의학 학파) 중 한 명인 이동원의 양음익기(養陰益氣)하는 명방(名方)이다.

 

생맥산은 시들시들 생기를 잃어가는 오장의 맥을 팔팔하게 되살려낸다. 그래서 기력을 솟구치게 한다. 여름이라는 힘든 절기를 음식이나 약물을 통해 이겨낸다는 사유는 서양의 근대의학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동아시아적 세계관의 히든 카드들이다. 생맥산은, 그러나 단지 더위를 이기는 약인 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당뇨로 갈증이 극심할 때도 생맥산이 대효(大效)하다. 또 충혈성 심부전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심계와 불면이 있으며 숨차고 땀이 그치지 않을(自汗) 때도 쓴다. 동계를 진정시키므로 부정맥에도 쓴다. 굳이 말하자면 강심제이고 안심제이다.

 

 

 

 

맥문동은 어디에 좋은 약인가. 부정맥, 당뇨, 심부전, 불면, 고혈압, 감기에 쓰는가. 아니다. 조와 열을 다스리는 맥문동의 의미를 알면 그 쓰임이 고정되지 않는다. 장자(莊子)의 말이 있다. ‘도(道)의 추(樞)가 환중(環中)을 얻으면 열고 닫는 것이 자유롭다.’ 무엇이 어디에 좋다는 식의 약물 이해로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양방이 범한 오류들을 생약으로 거듭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병이 결코 낫질 않으며 터무니없는 부작용만 생긴다.

 

집 주변의 흔한 풀뿌리로도 병을 치료할 수 있으려면 가장 먼저 뉴턴-카르테시안의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논리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쉽지는 않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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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13] 담음(痰飮)으로 인한 일체의 질환 치료, ‘반하’

 

신동아 / 2012-07-25 15:17
 

 

겉껍질을 벗겨 햇볕에 말린 반하.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40~50대라면 더러 보리밭에서 반하(半夏)를 캔 기억이 있을 것이다. 5~6월경이면 보리농사가 끝난 밭에서 반하를 캐는 일에 할 일 없는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이 죄다 나서곤 했다. 반하가 돈이 됐기 때문이다. 한줌이라도 캐서 한약방에 들고 가면 용돈이 됐다. 장터에 나가도 곧장 돈으로 바꿨다. 반하가 현금이나 진배없었다. 머리가 좀 커진 애들은 반하를 판 돈을 조금씩 모아 연애할 때 쓰거나 가출자금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햇볕에 말리려고 장독 위에 올려둔 반하를 몰래 훔쳐가는 반하 도둑도 더러 있었다.

 

사람냄새 물씬 풍기던 농촌 공동체가 해체되기 전의 일이다. 개발과 발전이란 미명하에 온 천지를 자본의 탐욕에 종속시키기 전의 세상. 세상이 정말 많이 변해버렸다. 도시는 비대해지고 그 도시의 숨통이 턱턱 막히는 화차(火車) 안에서 인간들은 빠져나오지 못하지만, 푸른 생명이 살갑게 숨 쉬는 시골엔 사람이 없다. 화차 안에서 웰빙 타령들을 한 덕에 반하 캐던 보리밭이 좀 늘긴 했다.

 

6월 초. 야산 밭의 둔덕 아래에서 반하를 캤다. 손을 안 탄 덕에 씨알들이 굵다. 씨감자만큼이나 큰 ‘왕건이’도 있다. 꽃이 피었다가 진 알뿌리들이 대체로 크다. 햇볕을 꺼려 그늘지고 물기가 좀 있는 곳을 좋아한다. 반하를 캐다가 나무 아래 그늘을 찾아 누웠다. 온 산천이 푸른데 바람이 한 번씩 불면 금은화(忍冬) 꽃향기가 은은하다. 무상의 행복감. 둔덕의 바위 위에 마구 뒤엉켜 큰 넝쿨을 이룬 마삭줄(絡石藤)도 향기로운 흰 꽃들을 피워냈다. 마삭줄 꽃도 이 계절이 아니면 보기 어렵다.

 

반하는 우리말로 ‘끼무릇’이라 한다. 꿩이 밭에서 이 반하를 먹고 배 속을 뜨겁게 해 알을 낳는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꿩의 무릇’이라고도 한다. 끼무릇도 아마 그런 뜻이겠다. 꿩을 뜻하는 ‘끼’가 잘 먹는 무릇이란 정도.

 

 

반하 毒 다스리는 생강 법제(法製)

 

 

 

 

 

‘본초강목’은 ‘예기(禮記)’ 월령(月令)을 인용해 “5월에 반하가 나오는데 이때가 대략 여름의 절반이 되므로 반하라고 했다”고 적고 있다. 수전(守田), 수옥(水玉)이란 이명이 있다. 단전으로 기를 내린다 해서 수전이라고 한다는 고상한 해석도 있지만 그냥 밭을 지킨다는 뜻으로 소박하게 해석해도 되겠다. 그 생김새가 둥글둥글하므로 수옥이라 했다. 보리농사가 끝나는 하지 이후에 주로 채취한다. 콩알만한 둥근 덩이줄기를 캐어 잔뿌리를 제거하고 물에 담가 겉껍질을 벗겨서 햇빛에 말린다. 이것이 생반하(生半夏)다. 그러나 이 생반하를 그냥 먹으면 큰일 난다. 조금만 먹어도 입과 목구멍이 견딜 수 없이 아리고 조직의 마비감이 온다. 반하의 독성 때문이다.

 

반하 독은 구강 같은 점막조직을 주로 자극한다. 심하면 조직 괴사도 초래한다. 그러나 생강즙에 하룻밤 정도 담가서 불린 다음 그늘에 말리면 그 독성이 없어진다. 여기에 백반을 소량 넣는다. 생강을 도와서 반하의 독을 제거하고 담(痰)을 없애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이를 강반하(薑半夏)라고 한다. 반하를 약용할 때는 이 강반하를 쓴다. 반하를 잘 먹는 꿩도 반드시 밭 주변의 생강을 쪼아 먹고 반하 독을 다스린다고 한다. 그만큼 생강 법제가 중요하다.

 

이 강반하에 석회와 감초를 더 넣어 법제한 것을 법반하(法半夏)라고 한다. 생반하를 생강 없이 백반으로만 법제하기도 한다. 청반하(淸半夏)라고 한다. 조금씩 쓰임새가 다르다. 누룩처럼 만드는 반하곡(半夏)이라는 것도 있다. 강반하를 가루 내어 통밀가루, 적소두(팥), 행인(살구씨) 등을 넣고 발효시켜 만든다. 여기에 조각자(?角子)의 즙을 더하거나 죽력(대나무에 열을 가해 추출한 목초액), 또는 백개자(겨자씨)를 더 넣기도 한다. 닥나무잎에 싸서 바람에 말려 약용한다.

 

 

천지가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주역(周易)에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란 말이 있다. 흔히 궁하면 통한다고 한다. 그러나 주역의 이 말은 모든 현상은 변하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궁하면 언젠가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거라는 위안을 주는 말이 아니다. 달이 차면 이지러지게 되어 있다. 이지러진다는 것은 돌이켜 순환한다(變)는 것이다. 차기만 하고 이지러지지 않는다면 불통이고, 이지러졌다 차는 것은 통(通)이다. 그 통의 프로세스가 곧 지속(久)이다. 지속가능한 것은 모두 돌이키는, 순환하는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 이성은 자연의 생명력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생산해냈다. 그것을 진보라고 역설해왔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만들어놓고 돌이키자니 세상이 아득하다. 사람도 암과 같은 큰 병의 진단이 떨어지면 다들 피부를 가르고 살과 장기를 적출하고 최악의 상황도 감수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여류감독 콜린 세로의 ‘뷰티플 그린’이란 영화는 이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상상력을 통해 돌이킨다. 머나먼 우주 한 행성이 봉착했던 문명의 문제들을 ‘신문예부흥’이란 이름의 대수술을 통해서. 한때 그들 문명도 지구의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과 똑같은 문제들에 봉착했다. 다름 아닌 화폐와 시장, 거대도시, 자동차와 가전제품, 과학기술공학, 핵, 석유 문명과 물질 환원주의, 환경오염, 자본가, 부패한 정치인, 국가체제다. 쓰레기 처분하듯 이들을 내다버렸다. 이 모두를 추방하고 불매하고 거부하는 전 행성인의 필사적인 무브먼트를 통해서. 고고학 교과서에 나오는 오래전의 일이다. 프랑스식 코미디로 웃음을 자아내는 이 영화보다 더 불온한 상상력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콜린 세로가 그려낸 ‘뷰티플 그린’의 세상은 그렇게 화폐와 자동차를 박물관 진열장에 집어넣고도 물물교환과 4시간 정도의 노동만으로 자급자족하는 말 그대로 ‘로하스’의 세상이다. 국가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이 그랬듯이 대표자들이 모여 산상회의를 한다. 굳이 말하면 아나코 코뮤니즘이다. 자연 속에서 욕심 없이 살아서 이곳의 인간은 평균수명도 300살로 늘어났다. 학교에선 텔레파시로 사물과 대화하는 정신감응력을 배운다. 거의 천인(天人) 수준으로 진화했다고나 할까.

 

동양에서는 천지(天地)와 인간이 하나다. 천지가 탈이 나니 사람의 몸과 마음도 탈이 나고, 사람의 심신이 아프니 천지가 아프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 멀쩡하지 않은데 그의 몸과 마음이 도대체 멀쩡할 리가 없다. 그의 몸과 마음이 천지요, 천지가 그의 몸과 마음이다. 일(一)이 다(多)요, 다(多)가 일(一)이다.

 

 

체액이 정체돼 생기는 담음(痰飮)

 

반하는 역(易)에서 말한 궁즉변, 변즉통을 한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을 돌이킨다. 무슨 말인가. 반하는 담음(痰飮)을 치료한다. 담음이란 우리 몸의 수기(水氣), 물이 순환하지 못하고 한 곳에 머물러서 흩어지지 않게 된 것을 가리킨다. 하천의 물이 흐르지 않고 고이면 걸쭉해지고 종내는 썩어 악취를 풍기는 오수가 된다. 몸의 물인 체액(體液)도 흐르지 못하면 엉키고 썩어서 온갖 병을 부른다.

 

십중구담(十中九痰)이란 말이 있다. 질병이 10가지면 9가지가 담음으로 인한 병이란 말이다. 실체론적인 양의학과 달리 순환론적인 세계관의 산물인 한의학은 담음을 그렇게 크게 여긴다. 생각해보자. 우리 몸무게의 50~60%를 수분이 차지한다. 몸의 절반 이상이 물, 체액이다. 끊임없이 순환하기 때문에 썩지 않는다. 이 체액이 움직이지 않고 걸쭉한 가래 같은 것이 되어 몸의 이곳저곳에 고여 있다면 어떻게 될까. 동의보감에 나오는 왕은군의 ‘담론(痰論)’을 보면 그 증상들이 이렇다.

 

“담으로 인해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럼증이 생기는데 눈앞이 아찔하고 귀에서 소리가 나고 입과 눈이 푸들거리고 눈썹과 귓바퀴가 가려워진다. 팔다리에 유풍(부종)이 생겨 단단하게 부어서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은 듯도 하며, 혹은 잇몸이 부으면서 뺨이 가렵고 아픈데 일정치 않다. 혹은 트림이 나고 신물이 올라오며 명치 밑이 쓰리고 구역질과 딸국질이 난다. 목이 메고 끈끈한 가래가 있는 듯해 뱉어도 나오지 않고 삼켜도 넘어가지 않는다. 목구멍으로 나오는 가래의 색깔이 그을음 같고 복숭아나무 진 같고 조갯살 같기도 하다. 혹은 명치 밑에 얼음이 있는 것 같고 왼쪽 젖가슴이 때때로 싸늘하면서 아프다. 발목이 시큰거리고 약해지며 허리와 등이 갑자기 아프기도 하고, 팔다리의 뼈마디도 여기저기 안타깝게 아파서 굴신하기가 어렵다. 힘줄이 땅겨 다리를 절기도 한다. 등뼈 가운데 손바닥 크기의 얼음이 있는 듯 시리면서 아프고, 온몸에 스멀스멀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도 같다. 혹은 눈 둘레가 검고 눈시울이 깔깔하거나 가렵고 입과 혀가 잘 문드러진다. 목둘레에 멍울이 생기기도 하고 가슴과 배 사이에 두 가지 기운이 뒤엉킨 듯하며 머리와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기도 한다. 정신을 자주 놓는 전광증(정신분열증)이 생긴다. 중풍이 되어 팔다리가 뒤틀리기도 한다. 폐결핵처럼 밭은 기침이 잦다. 혹은 명치 아래가 들먹거리고 놀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며 누가 잡으러 오는 것처럼 무섭다. 숨이 차면서 기침이 나고 토하기를 잘 하고 군침이 잘 고인다. 푸르스름한 물과 검은 즙 같은 것을 뱉는다. 치질이 되어 대변에 피고름이 섞여 나오기도 한다. 꿈속에서 괴이한 것들이 나타나는 악몽에 시달린다. 이와 같이 몸의 안팎에 생기는 병이 몇 백 가지인지 알 수 없는데 모두 담으로 인한 병이다.”

 

반하는 이와 같이 담음으로 생긴 일체의 병을 다스린다. 몸 안의 수기(水氣)가 순환되지 못하고 머물러 담음으로 굳어진 것을 녹여서 본연의 수기로 되돌리기 때문이다. 또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된 것들도 흩뜨리고 삭혀 몸 밖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하는 걸까.

 

 

 

 

 

몸 안의 물을 돌이키다

 

 

반하의 잎.

 

 

 

약리적인 설명 대신 반하의 기미(氣味)로만 보자면 이렇다. 반하의 겉껍질을 벗기면 속 알맹이는 점액이 많아 매끄럽다. 그 맛(味)은 목구멍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맵다. 반하는 그 매끄러움(滑)으로 거스르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내려서(下降) 돌게(宣通)하고, 매운맛으로 고여서 굳어진 것을 열고 내보낸다(開泄). 이를 ‘개선활강(開宣滑降)’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돌지 않아 머무르고, 뭉쳐서 돌이킬 수 없게 된 몸 안의 물을 신통하게 돌이킨다.

 

‘신농본초’에선 반하가 “상한으로 인한 한열과 심하(心下)가 딴딴하게 굳어지고 맺혀서 그득해진 것을 치료한다. 기를 내린다. 인후가 붓고 아픈 것을 다스린다. 머리가 어지럽고 아프고 기가 위로 치밀어 기침하는 것, 가슴속이 꽉 차 숨도 못 쉬게 답답하고 속이 메스꺼운 증상을 치료한다. 또 배 속이 막혀 배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과 화(火)가 올라와 땀이 나는 것 등을 다스린다”고 했다. 모두 반하가 ‘개선활강’해 담음으로 변한 수기를 되돌리기 때문이다.

 

환자를 보다보면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심한 어지러움과 두통, 메스꺼움을 호소하면서 늘 위장이 체한 듯해 늘 ‘끄륵’ 소리를 내고 배변도 불쾌해져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지만 호전되지 않는다. 진단이라고 해야 어지러움이 심한 경우는 이석증이라고 하거나 위장장애는 역류성 식도염, 혹은 영양부족, 스트레스성 혈액순환장애, 일반적으로는 신경성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도 이들 환자는 갈수록 고통이 심해진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눈앞이 안개가 낀 듯 어른거리거나, 한 물건이 두 개 이상으로 보이는 시야장애를 호소한다. 어느 순간 심한 피로감이 들고 산소가 부족한 듯 전신이 무력해지고 숨통이 막힌다. 음식물을 못 먹는 것은 아니나 위장이 딱딱하게 굳어진 듯해 소화 장애가 극심하다.

 

신물이 오르고 가래와 같은 걸쭉한 이물이 목구멍으로 올라오기도 하고, 몸 이곳저곳이 마비되기도 한다. 벌레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이상도 느낀다. 몸에서 느껴지는 한열(寒熱)이 다른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머리엔 열이 나는데 수족과 배, 등은 시리다. 건망증이 심해지기도 한다. 더러 혼절도 한다.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도 많다. 요즘에야 그렇지 않겠지만 전에는 귀신이 들렸다고 푸닥거리를 하기도 했다.

 

 

창출, 복령, 진피 등과 함께 써야

 

사실 담음으로 인한 병은 요즘에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우선 스트레스가 심하다. 또 하나는 먹을거리의 문제다. 현대인은 온갖 유해 첨가물이 범벅된 음식물에 노출되어 있으며, 먹을거리가 흔해져 과식과 폭식을 되풀이하고 식사시간도 일정치 않다. 노폐물이 누적되지 않을 수 없다. 이 노폐물들이 몸 안의 체액을 이루고 흘러 다니는데 그 몸이 멀쩡할 수가 있을까. 어찌 보면 현대인의 몸은 과학문명이 만든 과로와 스트레스, 온갖 감언이설로 분식한 혼탁한 먹을거리와 화학물 의약품이 조장한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오염물질로 썩은 하천인 것이다.

 

물론 반하 홀로 이 담음을 다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하가 아니면 이들을 딱히 해결할 수 없다. 반하는 창출(삽주)과 복령, 진피 등과 잘 어울린다. 반하곡은 담음이 굳어져 담적(痰績)이 되어서 병이 중해진 경우 이를 삭혀서 대소변으로 따라 나가게 하거나 흩뜨려서 창(瘡)이 되게 해 치료한다. 더 이상 수기로 되돌리기 어려울 때 반하곡을 쓴다.

 

 

 

 

반하는 천남성과에 속한다. 5월경 독특한 생김새의 꽃이 핀다. 긴 혀를 내민 뱀의 머리를 닮은 것도 같고 혹은 두루미의 머리를 닮은 것도 같다. 천남성과의 꽃들이 대체로 특이하다. 남성(南星)의 꽃들은 여지없이 킹코브라가 혀를 날름거리는 형상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몸의 차크라를 열어 의식의 각성에 이르게 하는 쿤달리니가 뱀의 형상이다. 임맥과 독맥을 주천하는 대소주천도 뱀의 움직임으로 그려진다. 커다란 뱀이 제 꼬리를 문 원형(圓形)의 우로보로스가 원초적인 합일을 의미하듯, 뱀은 순환하는 힘을 상징한다. 반하의 꽃이 그 뱀의 머리를 닮아 보이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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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12] 화중지왕 ‘모란’과 꽃의 재상 ‘작약’

 

신동아 / 2012-06-25 18:01


 

 

19세기에 그려진 모란도.

 

 

 

‘화중지왕(花中之王)’. 꽃 중의 왕이다. 모든 꽃이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꽃이라는 것이다. 무슨 꽃일까. 모란이다. 이 꽃을 ‘국색천향(國色天香)’이라고도 했다. 나라의 최고 미녀요, 가장 빼어난 향기를 자랑한다는 뜻이다. 꽃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모란은 지금 같으면 세계꽃박람회에서 미스월드, 또는 미스유니버시아드를 차지한 꽃이다. 못해도 미스차이나나 미스코리아는 된다.

 

별의별 예쁜 꽃이 많은 요즘에는 화중지왕에 대해 달리 볼 수도 있겠다. 이국적이고도 늘씬하고 농염한 꽃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중국이나 우리나라 등 적어도 동아시아 안에선 이 모란을 꽃 중의 꽃, 미녀 중의 미녀로 쳤다. 당나라의 절세미녀 양귀비도 이 모란꽃에 비유했다. 그런데 적자(赤紫)색의 화려하고 풍성한 모란꽃을 보면, 경국지색이었다는 양귀비의 이미지가 대충 떠오르기도 한다. 늘씬하면서도 섹스어필하는 현대의 미녀와는 다르게 그려질 수밖에 없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이 그린 베니스의 미녀들처럼 풍염한 미(美)가 아니었을까.

 

모란꽃을 얘기하는데 시성 이백(李白)의 시가 빠질 수 없다. 어느 봄날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와 함께 침향정에 나와 활짝 핀 모란꽃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난간에 기대앉은 양귀비를 보다가 어느 것이 사람이고 어느 것이 꽃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당장 한림봉공 이백을 불러들이라 명했다. 술집에서 거나하게 취해 있다 창졸지간에 끌려온 이백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한 바가지 물세례를 받고서야 정신을 차린 이백이 거침없이 붓을 놀리니 세 편의 시가 경각에 이뤄졌다. 그것이 저 유명한 청평조사(淸平調詞) 3수다. 그중 세 번째 시다.

 

 

꽃과 절세미녀가 서로를 보고 즐거워하니 (名花傾國兩相歡)
바라보는 군왕의 입가에 절로 웃음이 일도다 (長得君王帶笑看)
향기로운 봄바람은 온갖 근심을 날리누나 (解釋春風無限恨)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어 서니 (沈香亭北倚欄干)

 

 

모란은 한자명으로는 ‘목단(牧丹)’이다. 모란이란 이름이 여기서 유래했다. 이명(異名)으로 ‘목작약(木芍藥)’이라고도 하는데 모양이 작약 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모란과 작약은 둘 다 미나리아제빗과이지만 모란은 나무이고 작약은 풀이다. 이 둘은 꽃과 잎, 전체적인 생김새가 서로 비슷하다. 꽃피는 시기도 5~6월경으로 비슷하다. 각별히 관심이 있지 않으면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초본(풀)인 작약을 일부러 초작약(草芍藥)이라고도 한다.

 

이리 봐도 예쁘고 저리 봐도 예쁘다는 뜻으로 ‘앉으면 모란, 서면 작약’이라는 말도 있다. 그렇게 모란과 작약은 우열을 가르기 어렵다. 그러나 화품의 품계를 정확히 따지면 작약이 모란보다 한 급 밀린다. 예부터 화왕을 모시는 재상이란 뜻으로 화상(花相)이라고 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왕인 모란이 만인지상(萬人之上)이면, 화상인 작약은 일인지하(一人之下)다. 모란이 먼저 피고 작약이 그 뒤를 따라 피기 때문에 마치 재상이 왕을 보필하는 듯해서 그 품계를 정했다는 얘기도 있다. 어디까지나 옛사람들의 품평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라는 시로 유명한 영랑 김윤식 선생 생가(전남 강진읍 탑동마을)에 모란꽃이 활짝 폈다.

 

 

 

 

측천 命 거부한 화중지왕

 

모란은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키가 1m 정도 자라는 작은 나무다. 5~8조각의 꽃잎들로 이뤄진 적자색 혹은 백색의 꽃은 피어서 일주일쯤 지나면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 구절에서처럼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긴 듯’ 어느새 꽃잎이 뚝뚝 지고 만다.

 

전통적으로 모란은 청열양혈(淸熱凉血)하는 소중한 약으로 쓰였다. 청열양혈이란 피가 뜨거워져 솟구치거나(出血) 몸에 열이 나고(身熱) 피부에 반진이 돋는 증상들을 다스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를 들면 땀도 안 나는데 뼛속에서 열이 나는 듯한 증상 등에 모란을 쓴다. 이를 한의학에선 ‘음(陰) 속에 들어간 화(火)를 사(瀉)한다’고 한다. 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이란 유명한 한약에 이 모란이 들어간다. 물론 약으로 쓰는 것은 목단피(牧丹皮) 즉, 모란의 뿌리껍질이다. 단단한 목심부를 제거하고 껍질을 말려 쓴다.

 

 

 

 

 

동의보감에는 모란의 뿌리껍질에 대해 “성질이 조금 차고 맛이 쓰고 매우며 독이 없다”고 쓰여 있다. 또 “배에 생긴 단단한 덩어리와 어혈을 없앤다. 피가 몰려 생긴 요통을 낫게 한다. 종기의 고름을 빼내고 타박상으로 인한 어혈을 삭게 한다”고 했다. 여성의 질환에 많이 쓰이는데 경맥(硬脈)이 막혀 생리가 나오지 않는 증상과 산후에 일어나는 제반 기혈(氣血) 병을 치료한다.

 

우선 모란의 뿌리껍질, 목단피는 항균소염하는 효능이 뛰어나다. 티푸스나 대장균, 포도상구균, 이질균, 콜레라균에 항균작용을 한다. 또 원인이 무엇이든 고열로 인한 토혈이나 코피, 혈뇨, 항문의 출혈 등에 효과가 있다. 과로로 인한 요통과 관절통, 타박상으로 어혈이 생긴 증상에도 좋다. 청혈진정(淸血鎭靜) 효과가 있어 신경성 두통에도 쓸 수 있다. 또 만성비염이나 비갑개의 종창에도 치료효과가 있다. 류머티스열의 초·중기에도 쓴다.

 

삼국사기의 선덕여왕 이야기에서도 나오지만 모란은 원래 향기가 없는 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난초의 향기를 유향(幽香)이라 하고 매화의 향기를 암향(暗香)이라 하면서 모란의 향기는 이향(異香)이라 한 까닭은 별다른 향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꽃은 향이 없는데 반해 뿌리껍질인 목단피는 향이 진하다. 끓여놓으면 그 냄새가 고약할 지경이다. 비위가 약한 이는 냄새를 맡는 것도 무척 힘들다. 목단피가 들어가는 약은 약맛도 조금 성가셔지기 때문에 다른 약과 배합하는 데 신경을 쓰게 된다. 그래서 단방(單房)으로 목단피를 쓰기는 좀 어렵다. 또 약성이 뚜렷한 약재이므로 더더욱 함부로 쓸 수 없다.

 

모란에는 낙양화, 백량금(百兩金), 부귀화(富貴花)라는 이명이 더 있다. 낙양화는 중국의 낙양에서 핀 모란이 가장 아름답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북송 때 문인 구양수의 ‘낙양목단기(洛陽牧丹記)’에는 모란이 낙양화가 된 전설이 좀 다른 버전으로 나온다. 절대권력을 과시하던 당나라의 여황제 측천무후가 어느 겨울날 꽃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내일 아침 상원(上苑)에 놀러갈 테니 늦지 말고 모두 꽃을 피우라.”

 

이 명령을 나무판에 써서 걸어두자 다음 날 아침 모든 꽃이 무후의 명령대로 일제히 폈다. 그런데 오직 꽃의 왕 모란만이 오만하게 따르지 않았다. 불을 때서 억지로 꽃을 피우게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화가 난 무후가 상원의 모란을 모두 뽑아 낙양으로 추방해버렸다. 이 때문에 모란을 낙양화로 부르게 됐는데 그때 모란이 불에 그을린 탓에 줄기가 검은빛을 띠게 됐다고 한다.

 

백량금은 모란이 황금 100량만큼이나 귀하다는 데서 나온 것이고, 부귀화는 부귀를 가져다주는 꽃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조선 후기의 민화에도 이 모란꽃이 단골로 나오는데, 역시 부귀영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왕가의 하연(賀宴)을 비롯해 서민의 전통 혼례복이나 심지어 신방(新房)의 병풍에도 이런 의미로 모란이 많이 그려진다.

 

화왕 모란과 함께 짝을 이루는 꽃의 재상 작약(芍藥)도 모란 못지않게 꽃 모양이 화려하고 넉넉하다. 그래서 우리말 이름도 함박꽃이다. 붉은색, 분홍색, 백색 등으로 꽃이 피는데 변종이 많아서 꽃 색도 무척 다양하다. 중국에선 서기 3세기경인 진(晉) 대에 이미 관상용으로 재배되었다 한다. 모란보다 그 역사가 더 오래됐다고도 전해진다.

 

 

선비 닮은 예기(藝妓)의 꽃

 

모란이 풍염한 절세미녀나 군주라면 작약은 재주 있는 선비나 예기(藝妓)를 연상시킨다 할까. 원래 작약의 작(芍)은 얼굴이나 몸가짐이 아름답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흔히 작약의 뿌리를 약용할 때 백작약과 적작약으로 나누는데 이는 당나라 때 본초습유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전에는 약으로 쓸 때에 그다지 구분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백작약은 보혈(補血)약으로 쓰며 적작약은 목단피와 같은 청열사화약으로 쓴다. 백과 적의 구분은 일단은 꽃 색깔로 하지만 약재로 쓸 때는 흔히 외피를 벗겨내지 않은 것을 적, 벗겨낸 것을 백으로 쓴다.

 

 

 

 

 

깊은 산중에 핀 산작약.

 

 

 

작약이 우리나라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 의종 때다. 의종이 상림(上林)에서 꽃을 보다가 군신(君臣)에게 명해 작약을 소재로 시를 올리라 했더니 그중 황보탁(皇甫倬)의 시가 으뜸이었다. 이로 인해 황보탁의 문명(文名)이 일세에 드날리게 됐다고 한다. 또 충렬왕의 비(妃) 제국공주가 수영궁 향각의 어원에서 만개한 작약을 보고 시녀에게 한 송이를 꺾어라 명해 손에 들고 완상하다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가 고려사에 전한다.

 

그러나 원예종으로 심기 이전부터 우리나라 산야에도 자생하는 작약이 있었다. 그동안 마구잡이로 채취한 탓에 요새는 깊은 산중에서나 귀하게 만날 수 있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 식물로 지정돼 함부로 채취하면 큰일 난다. 잎사귀나 뿌리의 생김새가 재배 작약과는 약간 차이가 난다. 꽃도 홑꽃으로 다르다. 적색과 백색의 2종이 있는데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백색이 흔히 보이고 적색의 꽃이 귀하다.

 

작약에 관련된 아름답고 애틋한 전설이 하나 있다. 중국 쓰촨성에 한 선비가 홀로 살고 있었는데 만나는 사람도 없이 하루 종일 책이나 읽고 지내니 적적하기 그지없었다. 매일같이 대하는 것이 책이고 가끔 뜰에 나가 작약 꽃을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집에 미모의 처녀가 찾아왔다. 그녀는 선비의 시중들기를 간청했다. 처녀는 하루 종일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현숙한데다 교양도 있고 글재주도 있어 어느 사이 선비의 말동무가 됐다. 그렇게 이 처녀와 밀월같이 달콤한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전부터 알고 지내던 유명한 도인이 선비를 찾아왔다. 그래서 처녀를 찾아 인사를 시키려는데 아무리 찾아도 기척이 없었다. 선비는 처녀를 찾아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담벼락에 몸이 스며든 채 얼굴만 내민 그녀를 만났다. 처녀의 말이 자신은 작약의 화정(花精)인데 선비를 흠모해 오래 모시려 했으나 도인이 와서 정체를 간파당해 숨게 되었노라고 했다. 더 이상 인간세상에서 선비와의 인연을 지속할 수가 없게 되었다면서 서서히 얼굴이 담벼락 안으로 들어가더니 종내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선비는 망연자실하니 있다가 그 후 수년을 넋을 잃은 이처럼 지냈다.

 

한방에선 작약의 뿌리를 약용한다. 동의보감을 보면 “성질이 평하고 약간 차며 맛은 시고 쓰다. 조금 독이 있다” 했다. 주된 효능은 “몸이 저리고 쑤시고 아픈 것(血痺)을 낫게 하고 혈맥을 잘 통하게 하며, 굳어지고 뭉친 내장근과 골격근을 정상화하고(緩中), 악혈(惡血)을 흩어지게 하고, 종기를 가라앉힌다. 또 극심한 복통을 멎게 한다. 일체의 여성 병과 산전 산후 제병에 쓴다. 생리가 잘 나오게 하며 치루와 등창 등에도 쓴다” 등이다.

 

 

작약, 세상 모든 약초의 절반

 

작약을 잘 쓸 수 있다면 한의학의 절반을 정복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사실 한의학의 절반이라기보다는 광대무변한 약초의 세계에서 그 절반이 아닐까도 싶다. 그 정도로 작약은 온갖 질환에 쓰여서 중요하고도 큰일을 해내는 약물이다. 감기에서부터 중풍이나 각종 내상질환의 치료까지 작약을 빼놓고는 한의학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여기서는 작약이 펼치는 치유의 세계를 간신히 곁눈질하는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작약은 적작약과 백작약으로 나눠서 그 약성을 따지지만 솔직히 적백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우선 작약의 가장 큰 효능은 보혈(補血)이다. 혈허(血虛)로 인한 모든 병증에 쓰인다. 그러나 단독으로 써서는 큰 효과가 없다. 당귀나 숙지황 등 다른 보혈제와 가미해 쓸 때 효과가 있다.

 

또 하나의 효능은 통증과 경련을 그치게 하는 지통지경(止痛止痙)의 효능이다. 그렇다고 작약이 진통제이거나 항경련제인 것만은 아니다. 어쨌든 여러 가지 급만성의 통증질환 및 경련증상에 대단히 효과가 좋다. 이를테면 위경련 등에 작약을 위주로 다른 약재를 적절히 가미하면 금방 효과를 본다. 다리에 쥐가 나는 증상에도 작약이 즉효를 보인다. 복부의 경련성 통증에도 다량의 작약을 쓰면 해결된다.

 

 

 

 

일반적으로 적작약의 효능으로 분류되지만, 작약은 열로 인한 출혈증상을 치료하는 데도 우수한 효과가 있다. 또 어혈을 흩뜨리므로 뇌졸중에 의한 편마비나 폐색성혈전혈관염 등에 작약이 효과가 있다. 또 여성의 월경기나 산후병들을 치료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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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11] 약용 꽃의 대부, ‘노루귀·현호색·산자고’

 

신동아 / 2012-05-25 09:48


 

 

봄이 지나면 한 해가 다 간 것이라고 노래한 시인이 있었던 것도 같다. 필자에겐 연초록과 연분홍빛으로 피어난 어린 속잎들로 온 산야가 파스텔 톤으로 장엄(莊嚴)하다가 어느 순간 무차별한 녹색으로 짙어질 때, 한 해가 다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잠깐 벅찬 숨을 고르고 눈인사를 하는 사이 무심히 곁을 스쳐 지나가는 야속한 여인처럼, ‘천지는 어질지 않다(天地不仁)’는 노자(老子)의 말처럼, 돌이킬 수 없는 순환의 바퀴가 굴러가고 한순간 그대가 착각했을 뿐이라는 듯 만물은 멈추지 않고 유전한다.

 

겨우내 꽃 소식을 지켜보던 아파트 앞마당의 매화와 산수유가 환한 꽃망울을 터뜨렸을 때 도리어 참을 수 없는 무상(無常)을 느끼는 것은 그래서일까. 그러나 무상하다는 말은 한순간 한순간이 복음(福音)이라는 말과 같다.

 

봄날은 가지만 순환의 짧은 틈새마다 꽃이 핀다. 야산 산록에서 알싸한 생강냄새가 나는 생강나무와, 향기가 너무 좋아 길손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길마가지꽃이 서둘러 봄소식을 알리더니, 뒤이어 매화와 산수유가 꽃을 피우고 보춘화, 개불알꽃, 머위꽃, 현호색, 산자고의 꽃이 피었다. 산과 들에 노루귀, 얼레지, 바람꽃, 진달래, 벚꽃이 피고 도로변 여기저기 개나리꽃, 목련꽃, 애기사과꽃, 농촌 마을에선 장미과의 유실수들, 모과꽃, 명자꽃, 사과꽃, 앵두꽃, 복숭아꽃, 살구꽃, 배꽃이 축제라도 벌이듯 만개한다. 그렇게 꽃이 피면서 단 한순간도 그 생멸의 흐름을 붙잡을 수 없는, 아쉬운 봄날은 한들거리는 봄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봄에 피는 산과 들의 조그만 꽃들 중에도 약으로 쓰이는 게 여럿 있다. 노루귀, 현호색, 산자고 등이 그것이다. 따져보면 약 아닌 것이 없지만 그중에서 좀 추려보자면 그렇다. 이른 봄, 산록의 잔설이 녹으면 앙증맞고 소담한 꽃이 잎보다 먼저 고개를 내미는 노루귀는 잎의 생김새가 귀여운 노루의 귀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흰색, 분홍색, 청색 등 여러 색으로 꽃이 핀다. 따사로운 봄기운이 느껴지기엔 아직 이른 시기에 산비탈 그늘진 곳이나 계곡 부근에 무리지어 피는 노루귀의 꽃은 흡사 봄을 맞는 여신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전역에 흔하지만 꽃피는 기간이 짧아 아차하면 못 보고 지나간다.

 

 

두통, 폐결핵 효용 노루귀

 

 

노루귀.

 

 

 

한방에선 이를 장이세신(獐耳細辛)이라고 한다. ‘장이’는 노루귀란 뜻이다. ‘세신’은 그 맛이 얼얼하니 매운 데가 있다 해서 붙여졌다. 흔히 족도리풀이라 하는 세신(細辛)과는 생김새나 종이 다르다. 꽃이 진 후에 세 갈래가 진 잎사귀가 땅바닥에 붙어나는 게 더 앙증맞다. 어린 잎은 식용할 만해서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한다.

 

한의원의 한약재로 쓰이지는 않으나 민간에서 단방(單方)약으로 써왔다. 6~7월경 전초를 채취해 두통 등에 진통제로 쓰거나 폐결핵, 오줌소태(임질), 설사 등에 쓰기도 하고 상처가 곪아서 잘 낫지 않는 화농성 피부질환에 전초를 달여서 세척제로 쓴다. 미나리아재빗과 식물이 대부분 그렇듯 뿌리에 독성이 있으므로 생식은 금한다.

 

산과 들판, 밭 주변을 걷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봄꽃 중 하나가 현호색이다. 약간 눅눅하고 습한 곳을 좋아한다. 가녀린 줄기에 보라색 혹은 분홍색의 꽃이 5~10개씩 총상꽃차례로 피는데, 3월 말이나 4월 초쯤이면 밭두렁 옆 시골길이나 천변의 둔덕에서도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꽃 생김새가 종달새 머리 깃을 닮았다 해 희랍어 속명이 종달새를 뜻하는 ‘콜리달리스’다. 보라색의 꽃과 섬세하게 여러 갈래가 진 잎의 생김새가 사랑스러워 몇 무더기 캐다가 집 마당이나 화분에 심고 싶어진다.

 

온 산천에 흔하게 나는 이 현호색의 우리말 이름이 없다는 게 좀 의아스러운데, 워낙 한약재로 유명한 탓에 한약 명칭이 그대로 굳어져버리지 않았나 싶다. 조심스럽게 주변의 흙을 파보면 여린 꽃줄기 밑에 의외로 큼직한 알뿌리가 묻혀 있다. 잔 것은 콩알만하지만 큰 것은 조그만 감자알만하다. 이 덩이줄기가 한방에선 현호색(玄胡索), 또는 연호색(延胡索)으로 불리며 모르핀을 능가하는 진통제로 쓰인다. 신경통과 관절통, 생리통, 협심통 등에 뛰어난 지통(止痛)효과를 낸다. 혈액의 순환을 돕고 굳은 피를 없애므로 타박으로 붓고 어혈이 심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약재다.

 

 

 

 

 

앵속(양귀비)과에 속하는 현호색은 전통적으로 활혈거어약(活血祛瘀藥·혈액의 순환을 촉진하고 어혈을 제거하는 약)으로 분류된다. 대개 5~6월경 덩이줄기를 채취해 외피를 제거한 후 물에 넣고 끓여 내부의 색이 황색이 될 때까지 삶아서 말려 쓴다.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매우며 독은 없다. 그러나 어혈약이므로 임신부나 출혈질환이 있는 환자에겐 신중하게 써야 하는 약이다.

 

 

현호색, 모르핀 능가한 진통효과

 

현호색.

 

 

 

동의보감에는 현호색의 효능을 “산후에 굳은 피로 인해 생긴 모든 병을 치료한다. 생리가 고르지 못한 것과 배 속의 뭉친 덩어리, 산후의 혈훈(어혈로 인한 어지럼증) 같은 여성의 혈병(血病)을 다스린다. 유산을 시키며 타박상으로 인한 어혈을 삭히고 파혈(破血)한다”고 적혀 있다. 또 “심통(가슴앓이)과 소복통(아랫배의 통증)을 신통하게 다스린다”고 했다.

 

본초강목에서는 “능히 혈중기체(血中氣滯)와 기중혈체(氣中血滯)를 풀어서 일신의 상하 모든 통증을 다스리는데, 그 쓰임이 적중하면 신묘한 효과를 이루 다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사례가 몇 가지 있다.

 

“형목왕의 비(妃) 호씨가 메밀로 만든 면을 즐겼는데 자주 화를 냈다. 그러다 위에 병이 들었는데 가슴앓이가 심해 통증을 참아낼 수 없을 지경이 됐다. 의원들이 약을 썼지만 목구멍으로 약이 넘어가기 전에 모두 토하니 효과가 없었다. 덩달아 대변도 수일씩을 못 보았다. ‘뇌공포자론(雷公?煮論)’에 심통으로 곧 죽을 듯하면 급히 현호색을 써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이 현호색을 가루 내 따뜻한 술에 타 먹게 했더니 비로소 토하지 않았는데, 약이 들어가자 곧 변을 보고 통증이 사라졌다.”

 

“나이 50쯤 되는 이가 설사와 복통으로 곧 죽게 돼 관까지 맞춰놓았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현호색 3전을 가루 내 미음으로 먹였다. 극심한 복통이 가라앉더니 일도에 통증의 10 중 5가 잡혔다. 이후 조리를 잘해 회복됐다.”

 

“한 사람이 병이 들었는데 몸의 반쪽만 통증이 극심했다. 내로라하는 의원들이 혹은 중풍이라 하고, 혹은 중습이라 하고, 혹은 각기라 해 약을 썼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의원 하나가 이는 기혈(氣血)이 응체(凝滯)된 탓이라 진단하고 현호색과 당귀 계피를 등분해 가루 내 따뜻한 술로 먹였더니 차도가 보였다. 얼마 뒤 병이 나았다.”

 

4월 초쯤 들판에 나가 이 현호색을 캤다. 마침 지나가던 남녀 한 쌍이 지켜보더니 궁금증을 못 참고 그게 뭐냐고 물어온다. 대충 이야기를 듣고는 그들도 좀 떨어져서 쭈그려 앉아 캐기 시작했다. 산과 들에서 뭘 캐거나 뜯거나 하는 일은 전염성이 강하다. 수십만 년을 지속했던 채집경제 시대의 유전자가 남아 있어서일 것이다.

 

현대의 약리적 연구에 의하면 현호색에는 15종의 알카로이드가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내복하게 되면 이 알카로이드들이 모르핀이나 코데인과 비슷한 효과를 내어 강력한 진통작용을 한다. 식초를 넣고 초(炒)하여 쓰면 알카로이드 용해도가 크게 높아진다. 전통적으로도 진통효과를 높이기 위해 현호색을 초초(醋炒·식초에 담그고 불에 볶음)해 써왔다.

 

현호색은 진통효과가 뛰어나지만 지속성이 있으면서도 독성이 없다. 급성통증에 많은 양을 써도 효과가 뛰어나면서 부작용이 크게 없고, 만성통증의 경우 오래 써도 그 효과가 일정하게 지속된다. 어혈로 인한 통증뿐 아니라 염증성 통증에도 쓰인다.

 

위궤양으로 출혈이 생겨 통증이 격심하고 대변색이 흑색이 될 때 현호색을 20g 정도 쓰면서 다른 어혈약을 배합하면 효과가 좋다. 현호색은 또 협심통을 멎게 하므로 단삼이나 도인 등을 배합해 쓰면 심근의 일과성 허혈증상이나 산소결핍증상을 개선하고 흉부의 발작성 통증과 압박감을 완화할 수 있다. 류머티스 관절염이나 좌골신경통, 요추신경통, 삼차신경통 등 각종 신경통, 생리통이나 여성의 골반 내 만성 염증질환, 자궁염 등에도 효과가 크다. 꽃이나 잎사귀의 생김새가 현호색과 비슷한 산괴불주머니가 있는데, 덩이줄기가 없고 꽃도 노란색으로 핀다. 현호색이 지고난 뒤에 꽃이 피기 때문에 구별이 쉬 된다.

 

 

 

 

 

항염, 해독 산자고(山茨菰), 천연 항암제 산자고(山慈姑)

 

산자고.

 

 

 

산자고(山茨菰)는 까치무릇, 물구 등 우리말 이름이 더 정겹다. ‘동의보감’에서도 산자고의 향약명을 ‘가무릇’으로 쓰고 있다. 백합과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남의 햇볕이 잘 드는 풀밭에 흔하다. 보통 3월 중순부터 꽃을 피워 4월이면 양지바른 산기슭의 풀밭이나 들판, 시골의 밭둑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너무 흔해서 그냥 지나친다.

 

부추잎을 닮은 가늘고 길쭉한 잎들 사이로 줄기 한 대가 올라와 별 모양의 소박한 흰 꽃을 피운다. 꽃잎 바깥쪽에 진한 자주색 줄무늬가 나 있는 게 인상적이다. 학명은 툴리파 에둘리스(Tulipa edulis)다. 에둘리스는 ‘먹을 수 있는’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비늘줄기는 장아찌의 재료로 쓰이기도 하는데, 독성이 조금 있어서 물에 우려 삶거나 구워 식용한다. 민간에서는 종기나 옹종(癰腫·독으로 생긴 종창)을 치료하거나 뱀, 독충의 독을 제거하는 약재로 썼다.

 

그런데 이 산자고가 천연 항암제라는 난데없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와서 좀 살펴봤다. 터무니없기도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이것은 이름이 같은 탓에 빚어진 오해 같다. 아니면 의도적인 오해이거나. 본초서에서 청열해독약으로 분류하는 산자고(山慈姑)는 이 산자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본초서에 등재된 산자고는 백합과의 이 산자고가 아닌, 난(蘭)과의 식물이다. 향약(鄕藥)명은 약난초인데 두견란(杜鵑蘭)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남부지방(전북 내장산 이남)의 계곡 주변 숲이나 해안가에서 자란다. 중국은 쓰촨성 등 남방이 주산지다. 5~6월에 연한 자줏빛 꽃이 핀다. 둥근 알뿌리를 약재로 쓰는데 해독, 부은 종기나 상처를 치료하는 소종(消腫), 맺힌 것을 푸는 산결(散結)의 효능이 뛰어나다. 최근에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천연물 항암제로 분류되고 있다. 유선암, 비강암, 식도암, 폐암 등에 쓰이며 피부암이나 자궁암에는 외용한다.

 

이 산자고는 흔히 편도선염이나 후두염 등 인후질환과 경부임파결핵에 치료제로 쓰인다. 종기가 나 붓고 열이 날 때 내복하거나, 연고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100가지 독을 풀고 각종 악창과 종기에 뛰어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자금정(紫金錠)이란 전설적인 한약에도 이 산자고가 들어간다.

 

백합과의 산자고(까치무릇)는 난과의 산자고(약난초)와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그런데도 까치무릇 산자고에 약난초 산자고의 약성이 천지분간 못하고 뒤섞인 데에는, 미안하지만 우리나라 동의보감의 잘못이 큰 듯하다. 이 두 식물을 구분하지 못하고 난과의 산자고를 까치무릇으로 알고, 약난초의 약성을 옮겨 쓰는가 하면, 약초의 형태도 약난초와 까치무릇의 두 가지를 모두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단은 중국의 본초서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이는데, 동의보감이 인용한 중국의 고전 본초서들이 산자고라는 이름으로 이 두 식물을 다 기술하고 있다. 이런 오류 탓에 오해도 아주 ‘당당하게’ 한다. 까치무릇 산자고가 경부임파결핵에 효과가 있고 항암효과도 있는 약초라는 것이다.

 

까치무릇의 약효를 굳이 따진다면 같은 백합과인 무릇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한약명이 야자고(野茨菰)인 무릇은 ‘석림(신장결석)을 고치고 종기를 삭이며 소갈을 가라앉힌다’(동의보감)고 되어 있다. 까치무릇과 달리 무릇은 비늘줄기의 크기가 주먹만하다. 양파와 비슷하게 생겼다. 흉년에 그 뿌리를 캐어 삶아 먹기도 한다. 필자도 어렸을 때 이 무릇을 먹어본 적이 여러 번 있다. 본초서엔 무독(無毒)하다고 되어있지만, 경험상 독성이 조금 있어서 물에 담가 우려낸 다음에 삶는다. 어쨌든 이 두 산자고가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봄날이 가기 전 올봄엔 산에 몇 차례 올라 진달래꽃을 따먹었다. 진달래의 분홍색처럼 사람들의 마음 빛이 훤해질 수 있다면.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의 진달래라는 시 한 구절이 느닷없이 생각났다. “연분홍 살빛으로 뒤척이는 저 산골짜기 어지러워라, 환장허것네.”

 

 

 

 

생강나무꽃, 길마가지꽃, 매화꽃, 산수유꽃, 보춘화 향기도 애써 맡았다. 알싸하고 청신하고 은은하고 보드랍다. 아쉬운 봄날이 지나가기 전에 현호색과 산자고의 뿌리도 캤다. 그래도 아쉬운 그 봄날은 한들거리는 바람처럼 어깻죽지 사이로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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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10] 항암, 강력 진통 효과… 대약왕수(大藥王樹), ‘비파나무’

 

신동아 / 2012-04-25 13:56


 

 

한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비파나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집을 떠올리면 말 그대로 황량한 느낌이다. 전남 해남군 황산면 신성리. 얼마나 궁벽진지 황산면 장터로 나가려면 낮은 야산 잔등이로 난 길들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족히 20리를 걸었다. 보리와 고구마, 조, 고추, 담배, 면화 등 밭작물을 심었던 땅은 회백색의 박토인데다 희끗희끗한 곰팡이가 낀 갯돌 같은 게 많아서 흙이 반, 자갈이 반이었다. 참외나 수박 같은 것도 자라다 만 것처럼 자잘해 도시에서 파는 번듯한 제 크기의 과채를 좀처럼 기대하기 힘들었다.

 

구황식물인 고구마와 감자가 그나마 잘되었다. 지금 봐도 한 해 농사라고 지어봐야 먹고살기 참 팍팍했겠다 싶은 곳이다. 키 작은 다박솔, 사스레피나무, 정금나무 같은 관목이 듬성듬성 자랐다. 황량한 느낌의 야산 두어 개를 더 넘으면 바다가 나왔다. 여름이면 이 바닷가의 암벽에 원추리가 많이 피었는데, 주변의 배경과 어울리지 않게 기다란 줄기에 노란 꽃을 매단 게 영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잡이가 어려운 암석해안이라 겨우 진주고둥이나 소라 따위를 줍고 막 허물을 벗어 개펄 바닥을 기어 다니는 어린 뻘떡게(꽃게)와 장뚱어를 잡았다.

 

광주에서 교편을 잡게 된 부친을 따라 일찌감치 우리 식구가 시골집을 떠난 뒤에도 조부모님은 그곳에서 사셨다.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방학이 되면 나는 해남으로 끌려 내려가서 보리밥과 조밥을 먹어야 했다. 겨울에는 고구마만으로 세끼를 때우기도 했던 것 같다. 젊었을 땐 궂은일을 모르다 나이 들어 외진 땅에 들어와 뙤약볕에 호미질로 나날을 보내게 된 할머니는 팔자타령이 입에 붙었다.

 

뒤에 선친이 만든 가계보(家系譜)를 보니 동학 때 문래면 접주(接主)를 한 증조(曾祖)께서 우수영 전투에서 패해 도명(逃命)하기 위해 숨어들어온 곳이 이곳이라 했다. 증조가 접주를 하신 게 사실이었는지 아닌지보다 전투에 패해서 도명을 했다는 것이 더 눈길이 간다. 왜 그런 궁벽한 곳에서 땅을 갈고 살아야 했는지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영웅, 가인의 과실

 

중국 악기 비파는 비파나무 잎과 모양이 꼭 닮았다.

 

 

 

시골집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린 시절이 그리운 이유도 있지만 집 마당에 있던 한 그루 비파(枇杷)나무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목포에서 사셨던 할아버지가 보고들은 식견이 좀 있으셔서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비파나무 말고도 앞마당에는 배나무 두어 그루와 포도나무, 복숭아와 무화과나무 등이 있었다. 이 과일나무들 덕분에 산 밑으로 멀리 떨어져 다른 민가들보다 초라해보였던 초가집이 그래도 사람 사는 곳으로 비쳤던 것 같다. 배나무와 다른 나무들은 제법 커서 생각해보니 증조부 때나 심었을 듯싶다. 비파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다는 것만 빼놓으면 크기나 생김새가 다른 나무에 비해 영 보잘것없었다. 그렇지만 한겨울에 눈을 맞으면서도 조그만 꽃을 피우는 게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참으로 신기했는데, 열매를 맺는 것도 남달라서 뭇 과일나무의 과실들이 익기에는 아직 이른 7월 초여름에 살구같이 싯노란 열매를 매달았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비파나무의 비파란 이름은 잎사귀의 생김새가 ‘비파(琵琶)’라는 중국의 전통악기와 비슷하다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최근에 우연히 중국 영화 ‘초한지’를 봤더니 항우의 여인 우희 역의 류이페이(劉亦菲)가 비파를 연주하는데,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악기의 생김새가 비파의 잎과 정말 흡사하다. 본초서를 보면 비파나무의 잎을 ‘엽대여려이(葉大如驢耳)’라 했는데 ‘큰 잎이 흡사 나귀의 귀처럼 생겼다’는 뜻이다. 재미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비파는 중국의 양쯔강 중상류지역이 원산지인 늘 푸른 나무이며 따뜻한 남쪽에서만 자라는 나무다. 장밋과의 식물로 겨울에 노란 꽃들이 가지 끝에서 핀다. 암술과 수술을 같이 가지고 있어 자가 수정이 가능하므로 특별히 다른 곤충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열매를 맺는다. 학명은 ‘에리오보트리아’이다. 부드러운 털을 뜻하는 ‘에리온’과 포도를 뜻하는 ‘보트리스’가 합쳐진 말인데, 비파 잎에는 연한 잔털이 많고 둥근 열매들은 포도송이같이 열리므로 꽤나 적절한 이름 같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선 비파 열매를 탄환(彈丸)에 비유했다.

 

이 비파나무는 감나무나 밤나무처럼 온대지방 민가에서 흔히 심는 나무가 아니어서 남쪽의 해안지역을 벗어나면 잘 모르는 이가 많다. 그런 탓에 우리말 이름도 있질 않다. 그러나 중국에선 이 남방과일을 즐기는 이가 많았는지 삼국지의 조조가 비파를 너무 아껴 몰래 비파열매를 따먹은 병졸을 적발해 괘씸죄로 사형시켰다는 얘기도 있고, 또 당나라의 절세미녀 양귀비가 이 열매를 각별히 좋아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일설에는 양귀비가 용안육이란 과일을 즐겼다고도 하는데 어느 게 사실인지 잘 모르겠다. 송나라의 유명한 시인 소동파는 천하의 미식가로도 이름이 높았는데 손님들을 맞으면 곧잘 이 비파를 대접했다고 한다.

 

 

더위 병 치료하는 단 과일

 

중국의 문인화 중 채색을 하는 남종화에는 비파나무를 소재로 한 그림이 많은데, 길쭉 넓적한 비파 잎과 함께 주황색에 가까운 노란 비파열매가 꽤나 먹음직스럽게 그려진다. 비파열매의 크기는 살구보다 약간 작고, 잘 익으면 달콤한 맛에 더해 신맛이 살짝 느껴진다. 육질이 부드럽고 수분이 많아 상큼하니 먹을 만한데, 열매 속에 상수리 크기만 한 굵은 적갈색 씨앗이 두세 개씩 버티고 있어 정작 과육이 두껍지 않은 게 좀 아쉬운 과일이다.

 

중학교를 다닐 무렵이다. 여느 해 방학 때처럼 시골집에서 여름을 나다가 세 살 터울의 삼촌과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나갔다. 별생각 없이 작열하는 햇빛을 받으며 바위에 앉아 있었던 것이 탈이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이 메스꺼워졌다. 숨 쉬기가 힘들어져 땅바닥에 축 늘어졌다. 일사병, 흔히 더위 먹었다고 하는 것인데 한방에선 ‘서병(暑病)’이라 한다. 모질게 더위를 먹었는지 수일을 혼수상태로 보냈다. 정신을 좀 차린 뒤에도 영 기력을 못 찾고 한동안 끙끙 앓았다. 그렇게 더위 먹어 죽기도 했다더니, 깜냥에도 보통 힘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방 안에 누워서 한동안 앓던 기억이 소나무 기둥의 묵은 송진내와 변변한 벽지 한 장 못 바른 황토 토벽의 흙냄새, 들깨기름을 잔뜩 먹인 시멘트 포대 장판지의 냄새들과 어우러지며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그때 할머니가 단방약(單方藥)으로 먹였던 게 익모초와 비파였다. 소태맛처럼 쓴 익모초는 약이 되기는 했겠지만 비위가 약해서 도무지 먹지 못하자 비파를 따서 즙을 내어 먹였다. 고열로 인해 가뭄 든 논처럼 말라붙은 입안으로 들어오는 달콤새콤한 비파 즙은 감로수가 아닐 수 없었다. 더 먹일 것이 없어 속을 끓이던 조모가 나중엔 덜 익은 배까지 따서 즙을 내 주기도 했지만, 이것 역시 잘 익은 비파의 맛에 도무지 견줄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 감미로운 비파 즙 덕분에 어쩌면 병치레를 떨치고 빨리 회복됐으리라는 생각도 드는데, 왜냐하면 비파는 더위로 인한 병치레에 잘 부합하는 약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파는 여름날 갈증을 풀고 가슴의 기운을 시원하게 내려서 상초의 열을 다스리며, 폐의 기운을 이롭게 하고, 오장을 윤택하게 한다. 조모가 ‘본초강목’에 나오는 이런 비파의 약성을 알고 있을 리 만무하지만, 경험적으로는 이해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타 지역 사람들은 듣도 보도 못하는, 겨울이 그다지 춥지 않은 따뜻한 남쪽 해안지방, 해남이나 완도 같은 섬 지역에서나 구경할 수 있었던 비파는 어떻게 보면 퍽이나 귀한 과일이었는데, 시골집에 내려가도 때를 못 맞추면 천신(薦新)하기 어려웠던 그 비파를 그해에는 운 좋게 독차지하게 됐다.

 

더위로 인해 그렇게 된통 고생하고 집으로 올라온 나는 두 번 다시 해남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 후로는 방학 때 시골에 내려가지 않아도 됐다. 몇 년 뒤 홀로 되신 조모가 광주로 올라오셨고 삼촌이 선산까지 팔고 밤 짐 싸서 서울로 떠난 뒤, 시골집은 그 무렵 이농 바람으로 인해 버려진 농가들의 운명이 그랬듯, 지붕도 구들도 무너져내린 폐가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나도 그리움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30대 중반쯤 서울에서 일이 생겨 해남에 내려갔다가 짬을 내어 시골집을 찾았다. 구들장만 남아 있는 집터 안마당엔 이름을 알 수 없는 가시덩굴과 산딸기, 찔레나무 같은 잡목이 무성했다. 누가 다 베어버린 건지 마당 앞의 비파나무와 다른 과수들도 종적이 없어졌다.

 

그 뒤 언젠가 해남 연동의 녹우당에 갔다가 고산 윤선도박물관 앞에서 비파나무를 봤다. 마침 열매가 노랗게 익었다. 관리인의 눈을 피해 몰래 몇 알 따먹었는데 어렸을 때의 그 맛이 아니다. 아무래도 다디단 과일들에 익숙한 요즘 사람 입맛으로는 비파를 그렇게 맛있는 과일이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다. 크기가 작아서 먹을 게 별로 없다는 것도 흠이다.

 

 

잘 쓰면 약, 못 쓰면 청산가리

 

몇 해 전 완도에서 이 비파나무를 개량해 열매를 크게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는 얘기를 듣고 옛 생각도 나 수소문해 사봤다. 그런데 크기가 조금 더 크긴 하나 단맛이 더 있는 것도 아니고 기왕의 비파와 비교해 그만그만하다. 과일로서 돈 대접받기는 여전히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이 비파나무가 남쪽지방에서 수익 작물로 각광받으며 많이 재배되는 것은 과일보다는 열매와 잎이 가진 약효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중국에선 비파나무를 ‘대약왕수(大藥王樹)’라고도 하는데 비파열매, 비파 잎, 줄기와 꽃도 모두 약으로 쓴다. 약왕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대단한 약효가 있는 게 분명하다.

 

‘동의보감’에선 비파열매에 대해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폐의 병을 고치고 오장을 윤택하게 하며 기를 내린다’고 했다. 약리적으로는 당류와 주석산, 사과산, 비타민 A, B, C가 풍부하다. 몸의 열을 내리고 손상된 체액을 보충하며 갈증을 풀고 구토증을 가라앉힌다. 그래서 여름에 더위 먹어 갈증이 심하고 땀이 그치지 않고 식욕이 없을 때 비파 즙이 효과가 좋다. 기관지염 초기에 쓰기도 한다. 기침이 심하고 누런 가래가 나올 때 비파열매를 살구씨와 귤껍질, 패모 등과 함께 쓴다. 그렇지만 이 정도를 가지고 대단한 약효가 있다고 하기에는 그렇다.

 

 

마트에서 파는 비파나무의 열매는 옛날의 그 맛이 아니다.

 

 

 

비파열매는 그렇다 치고 비파 잎은 어떨까. ‘성질이 평하고 맛이 쓰며 독이 없다. 기침하면서 기운이 치밀어 오르고, 음식이 내려가지 않고, 위가 차서 구토하고 딸꾹질하는 것과 갈증을 치료한다. 잎의 등 쪽에 솜털이 있는데 반드시 불에 구워 천으로 그 솜털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털이 폐로 들어가 오히려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역시 이 정도를 가지고 약왕(藥王)의 생색을 내기에는 그렇다.

 

자료를 찾아봤더니 비파 잎에는 ‘아미그달린’과 구연산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다. 아미그달린은 살구씨(행인)나 복숭아씨(도인) 등 과일의 씨앗에 많은 성분이다. 포도씨, 사과씨, 아몬드나 매실에도 이 성분이 있다. 청산(靑酸) 배당체의 일종인 아미그달린은 위장에 들어가 분해되면 시안화수소와 몇 가지 다른 물질로 바뀐다. 이 대목이 중요한데, 아미그달린이 가수분해돼 생긴 시안화수소는 흔히 청산가리라고 불리는 유독성 물질이기 때문이다. 이 시안화수소는 그러나 다량으로 섭취했을 때는 독성을 나타내지만 소량일 때는 우리 몸속에서 대단한 치료효과를 발휘한다. 살구씨나 복숭아씨를 한방에서 중요한 약으로 취급하면서도 한번에 다량을 쓰지 않는 것은 이 시안화수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톤이 말한 ‘파르마콘’, 곧 약이면서 동시에 독이다.

 

 

신묘한 약효, 비파엽 압찰법

 

가장 큰 효능은 진통작용이다. 신경통을 비롯한 웬만한 통증에는 다 효과가 있다. 또 진해 거담하는 효능도 뛰어나다. 최근에는 아미그달린이 시안화수소로 바뀌면서 강력한 항암작용을 한다는 연구도 나왔다. 아미그달린은 몸에 들어가기 전에는 전혀 독성이 없지만 위장에 들어가 시안화수소로 분해됐을 때의 치사량은 405mg 정도라고 한다. 이만한 양이 일시에 몸에 들어가려면 사과씨 250g을 모아서 한꺼번에 먹어야 한다. 그 독성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닌 듯하다.

 

비파 잎의 아미그달린을 활용하는 방법은 전탕해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비파엽 요법’이라고 해 일본에서 민간요법으로 쓰였다는 비파 잎 압찰법이 유명하다. 일본 삿포로 철도병원의 후쿠시마(福島) 박사에 의해 발굴돼 알려진 비파엽 요법은 비파 잎을 불에 구워서 환부에 잎을 대고 문지르는 소박한 민간요법인데 거짓말처럼 보일 정도로 거의 만병을 치료하는 기적적인 효능을 발휘한다.

 

 

 

 

그는 이 방법으로 결핵성 복막염과 소아마비, 하복부와 허리의 농양, 소화불량으로 인한 각종 소모성 질환, 야뇨증 같은 증상을 치료했는데 암을 비롯한 각종 난치병, 성인병에도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했다. 비파 잎에서 나온 시안화수소가 가스 상태가 되어 몸에 흡수되면서 그런 효과를 낸다는 것인데 여기에 착안한 비파 잎 뜸이 소개된 바 있다. 필자도 한의원에서 이 뜸을 더러 활용하고 있는데 격외의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생각해보니 대약왕수란 이름이 허투루 붙었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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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9] 신선이 되는 약의 으뜸 ‘국화(菊花)’

 

신동아 / 2012-03-23 15:06


 

 

야생 감국.

 

 

 

‘식국(食菊)’이란 말이 있다. ‘국화를 먹는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양기가 가장 치성한 음력 9월 9일을 중양절(重陽節)이라 했다. 조상들은 이 무렵 피는 국화꽃을 완상하며 술 위에 국화꽃잎을 띄워 국화주를 마셨다. 국화꽃을 아예 날로 먹기도 하고, 국화뿌리를 적시며 흘러나오는 국화수를 받아다 마시기도 했다. 국화떡도 만들고 화전(花煎)도 부쳐 먹었다. 국화가 삿된 것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힘도 있고, 또 오래 살고 늙지 않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국화주, 국화차 등이 식국의 예가 되겠다. 조선 순조 때 편찬된 부녀자 생활 지침서 ‘규합총서’에 보면 국화주 담그는 법이 나온다. 국화꽃 말린 것 2되쯤을 주머니에 넣어 한 말들이 술독에 담가두면 향내가 술독에 가득해진다고 적고 있다. 국화꽃은 말린 뒤에 더 향기롭다. 잘 말린 국화꽃 한두 송이를 찻물에 우려낸 국화차는 그 향기가 그윽하고 쌉싸래하며 뒷맛이 오래간다. 어린 시절 시골에선 봄에 나온 국화의 움과 어린 잎으로 나물을 하거나 국을 끓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국화꽃으로 튀김도 한다. 좀 생소하다. 사찰요리를 잘 하시는 보살님이 한 분 계시는데 이분의 손끝만 닿으면 산야와 집 주변에 널린 초근목피가 세간에 보기 드문 메뉴로 변한다. 그이가 가끔 만드시는 메뉴 중에 국화꽃 튀김이 있다. 눈과 입으로 즐기는 재미가 유별날 것 같다. 얼마 전 “국화꽃 튀김 맛 좀 보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혹이 달라붙어 답변이 돌아왔다. “요즘 음식궁합에 대해 주부들의 관심이 높은데 식재료의 약성과 음식궁합에 대해 한의사가 몇 마디 거들고, 국화꽃 튀김을 비롯한 참살이 사찰요리도 맛보면서 국악도 듣는 그런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보자”고 한다.

 

 

동리국(東籬菊)에 말을 잊다

 

국화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국, 하국, 추국, 동국으로 나뉜다. 요즘은 계절과 무관하게 꽃이 나오니 절기 따지기가 우습지만, 아무래도 국화는 늦가을의 꽃으로 치는 게 제격이다. 그것도 겨울 초입쯤 되어야 국화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남녘의 시골집 울타리에 심은 노란 국화는 동지섣달 한겨울에도 조그만 꽃을 피운다. 세상의 꽃이란 꽃은 다 저버린 엄동설한에 꽃을 피우니 그 기상이 특이하다.

 

국화는 매화, 난초,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다. 또 모란, 작약과 함께 3가품(佳品)이라고 한다. 모진 서리가 내려 뭇 꽃이 속절없이 다 시든 뒤에도 오연히 꽃을 피우는 그 꿋꿋한 기상을 기려 옛 선비들은 ‘오상고절(傲霜孤節)’ 또는 ‘오예풍로(傲·#53659;風露)’라고도 했다. 국화에서 선비의 의기와 절개를 보았던 것이다. 세 벗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매화를 청우(淸友), 연꽃을 정우(淨友), 국화를 가우(佳友)라고 한다. 또 ‘동리가색(東籬佳色)’이라는 별명도 있다. 동쪽 울타리의 예쁜 빛깔이란 뜻. ‘가색’은 아름다운 여인을 가리키기도 하니까 예쁜 여인을 연상해도 되겠다. ‘동리(東籬)’라는 말의 연원은 동진(東晋) 때 시인 도연명의 ‘음주(飮酒)’라는 시에서 비롯한다. 이 시 속에 등장하는 동쪽 울타리 아래 핀 국화가 ‘동리국(東籬菊)’이다.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꽃을 따다가 한가로이 남쪽 산을 바라본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저물 녘 산기운 아름답고, 새들은 날아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자연 속에서 유일자적하는 은사(隱士)의 심경을 담고 있는, 천고의 걸작으로 칭송되는 구절이다. 동리국은 국화를 읊조리는 후세 동아시아 문사들의 아키타입이 됐는데, 여기에 은사와 벗하는 예쁜 꽃, 또는 여인의 이미지를 덧붙여 동리가색이 되었다. 은사 자신의 이미지를 이입해 ‘동리군자(東籬君子)’라고 하기도 한다. 조선조의 실학자 홍만선의 ‘산림경제’ 양화편(養花篇)에 이런 말이 나온다. “도연명이 아끼던 동리국은 자줏빛 줄기의 노란 꽃인데, 국화의 본성이 서향을 좋아하므로 동쪽 울타리에 심는다.”

 

이번 설에 필자도 고향에 내려갔다가 동쪽 울타리 밑에서 동리국을 봤다. 줄기가 약간 자줏빛을 띠었다. 아무렴, 도연명의 동리국이 꼭 아닌들 또 어떠랴. 늦서리도, 매서운 겨울 기운도 아랑곳하지 않고 싱싱하게 핀 노란 국화의 향을 맡으며 한동안 돌 섶에 쭈그려 앉았다. 도연명의 시 후반부에 ‘이 가운데 숨어 있는 참뜻이 있나니, 이를 헤아리다 말을 잊었다(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란 대목이 이어진다. 문득 그 구절의 뜻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진속(眞俗)의 분별을 여의고 말을 잊은 그 경지를 세속의 일에 분주한 일개 범부가 감히 넘보기 어렵다.

 

 

장수 회춘의 약재 감국(甘菊)

 

‘신농본초경’은 국화를 상약(上藥)의 하나로 쳤고, 선가(仙家)에선 연년익청(延年益靑) 즉, 수명을 늘이고 회춘하는 약의 재료로 썼다. 한약명으로는 ‘감국’이라 한다. 신농본초경의 상약은 생명을 기르고 기를 돋우며 장수하는, 독이 없어 오래 먹을 수 있는 120가지의 약물인데, 이들은 석(石)부와 초(草)부, 목(木)부 등으로 나뉜다. 감국은 그중 초부의 랭킹 2위 약물이다. 석창포가 초부의 랭킹 1위이고, 3위가 인삼이다. 그냥 가나다 순으로 순번을 매긴 게 아니다. 선인(仙人), 또는 신선이 되는 약들의 으뜸이기에 앞자리에 올렸다.

 

이 감국을 먹고 신선이 된 이들에 대한 전설은 어느 약물보다도 많다. 팽조(彭祖)는 감국을 먹고 무려 1700세를 살았는데, 얼굴빛이 청년과 같았다. 강풍자라는 이는 감국과 잣을 평생 먹고 신선이 됐고, 유생이란 이도 백국(白菊)의 즙으로 단약을 만들어 1년을 먹고 500세를 살았다. 사실에 가까워 보이는 얘기도 있다. 허난성 난양현의 어느 산중에 감곡(甘谷)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이 계곡의 물이 국화의 군락지에서 발원해 국화의 자액(滋液)을 품고 흘렀다. 이 물을 먹고 사는 주민은 모두 장수했다. 평균 수명이 120~130세나 됐다. 이런 사실이 알려져 외지인과 관리들도 그 물을 마셨는데 역시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한다. 후에 풍기와 현기증의 병이 있던 남양 태수 왕창, 유관 등이 소문을 듣고 매달 이 물을 길어 마셨는데 모두 나았다 한다. 한나라 때 문헌에 나오는 얘기다.

 

‘옥함방(玉函方)’이란 의서에 ‘왕자교(王子喬)’가 감국으로 만든 선약 처방이 나온다. 왕자교는 태자의 신분을 버리고 숭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 신선이 된 이라 한다. 그의 처방은 백발을 검게 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변백증년방(變白增年方)’으로, 제법은 다음과 같다.

 

음력 3월 일진(日辰)의 지지가 인(寅)이 되는 첫 번째 날(上寅日), 국화의 움을 채취한다. 이를 옥영(玉英)이라 한다. 6월 상인일에는 잎을 채취하는데 용성(容成)이다. 9월 상인일에 채취한 꽃은 금정(金精)이다. 12월 상인일에 채취한 뿌리를 장생(長生)이라 한다. 이들을 그늘진 곳에서 100일간씩 말린 후 취합해 가루로 만들고 꿀로 반죽해 오동나무열매 크기로 빚는다. 7환씩 술과 함께 음복하는데, 하루 3회 먹는다.

 

 

 

 

 

100일을 먹으면 몸이 가볍고 윤기가 난다. 1년을 먹으면 흰머리가 검은 머리로 바뀐다. 2년을 먹으면 묵은 이가 빠지고 새로 난다. 5년을 먹으면 80세의 노인이 어린아이가 된다. 왜 상인일에 채취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꽤나 지성스러워야 하며 시간도 상당히 소요된다는 것은 분명한데, 제법(製法)이 어렵지 않다. 아무 국화나 쓰지는 않았을 터. 해보아서 효과가 없으면 왕자교의 감국과 달라서 그렇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모를 일이니 집앞 뜨락에 국화를 심어 소일 삼아 해볼 만하다. 이것만으로도 가히 신선놀음이라 하겠다.

 

“국화는 관상하는 것만으로도 노인에게 회춘의 영약이 된다. 국화를 먹으면 그 공효(功效)를 이루 말할 수 없다.”

 

 

고열, 두통, 어지럼증, 저림 치료

 

남송 4대가 중 한 명인 양만리의 말이다. 이렇게 사람을 오래 살게 하는 꽃이라는 뜻으로 국화를 연수화(延壽花), 연수객(延壽客), 장수화(長壽花), 연령객(延齡客)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신화와 전설이 그 힘을 잃은 오늘 같은 과학의 시대에도 국화는 과연 그러할까.

 

국화의 품종은 전 세계적으로 3000종이 넘는다. 이름도 가지가지다. 그러나 약으로 쓸 때는 크게 2종으로 나눈다. 감국(甘菊)과 야국(野菊)이다. 이 둘은 모두 야생한다. 화훼용으로 키운 꽃송이가 큰 가국(家菊)은 약으로 쓰지 않으나, 일부는 그 상태와 맛을 살펴 감국 대용으로 쓴다. 감국은 꽃이 노란색이고 맛이 달아 식용할 수 있으며 약으로 쓴다. 그래서 진국(眞菊)이라고도 한다. 꽃 크기가 동전만 하다. 우리나라엔 남쪽지방의 산야나 바닷가 주변에 주로 자생한다. 요즘은 더욱 야생의 감국을 찾기가 어렵다. 많이 채취해서 그런지, 서식지가 좁아 그런지는 알 수 없다. 본초강목에는 “국화는 종류가 많은데, 약으로 쓰는 진국은 꽃이 홑잎이면서 크기가 작고 황색이며 잎은 진한 녹색으로 작고 얇으며, 절기에 맞춰 늦가을에 핀다”고 쓰여 있다.

 

화훼용 가국은 중국 당나라 무렵 감국과 산구절초를 교잡해 만들어졌다 전해지는데 감국의 기미(氣味)를 갖춘 게 더러 있다. 이 중에서 농약을 치지 않고 약용으로 재배된 것을 감국 대신 쓴다. 요즘 시중에 감국으로 유통되는 국화는 대부분 이것이다. 원래의 감국과는 다르나 일반적으로 감국으로 통칭한다. 집에서 야생 감국 대신 약용이나 식용으로 쓸 만한 가국으로는 시골집 울타리에 심어진, 꽃송이가 자그마한 황색 혹은 백색의 국화를 연상하면 되겠다. 주의할 것은 화훼용으로 나오는 일반 국화는 절대 식용불가다. 진딧물이 많아서 농약을 엄청나게 친다.

 

야국은 ‘고의(苦薏)’라고도 하는데 생김새가 감국과 비슷하나 꽃이 작다. 맛이 써서 식용하지 않는다. 감국보다 향기가 강하고, 전국의 산야에 흔하다. 이 야국을 야생 감국으로 잘못 알고 채취해 국화차 등을 만들기도 하는데 주의해야 한다. 구별법은 간단하다. 꽃잎을 먹어서 단맛이 나면 감국이고 맛이 쓰면 야국이다. 옛 본초서는 ‘감국은 사람을 오래 살게 하나(延齡), 야국은 사람의 기운을 뺏는다(泄人)’고 적고 있다. 야국으로 함부로 국화차를 끓이거나 먹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조가 그린 야국.

 

 

 

감국의 효능에 대해 신농본초경은 “풍으로 머리가 어지럽고 붓고 아픈 증상을 치료한다. 눈알이 빠질 듯하고 눈물이 흐르는 증상과, 피부의 죽은 살, 악풍과 습으로 생긴 순환부전을 고친다”고 했다. 또 “오래 먹으면 혈기가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노화를 이겨내고 오래 산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는 ‘성질이 평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장위를 편안케 하고 5맥을 고르게 한다. 풍으로 인한 어지럼증, 두통을 다스린다. 눈의 정혈을 기르고 눈이 빠질 듯하거나 눈물이 자주 나는 증상을 고친다. 풍습(風濕)으로 몸이 저리고 아픈 증상을 치료한다’고 쓰고 있다. 정리하면 감국은 연년익청(延年益靑), 소산풍열(消散風熱), 양간명목(養肝明目) 한다.

 

야국도 약으로 쓰긴 하나 그 용도가 제한적이다. 동의보감은 ‘여성의 배 속에 생긴 어혈을 푸는 데 쓴다’는 정도로 기술하고 있다. 보(補)가 아니고 사(瀉)다. 요즘의 본초학은 청열해독(淸熱解毒)하는 것으로 그 약성을 기술하고 있지만 그 효과가 미약하다.

 

현대의 약리적 연구를 살펴보자. 우선 국화는 열을 발산시키는 효능, 청열작용이 상당히 강하다. 대량으로 쓰면 현저한 해열작용을 하는 아데닌과 스타치드린 등이 함유돼 있다. 고열을 동반하는 독감 등에 뽕잎(桑葉) 등과 섞어 쓰면 더 효과를 발휘한다. 국화와 뽕잎의 궁합을 이용한 처방으로 ‘상국음(桑菊飮)’이 있는데 살구씨와 개나리열매, 박하잎과 도라지, 감초 등을 더해 효과를 극대화했다. 봄, 겨울에 흔한 고열성 감기의 초기 치료에 잘 듣는다. 대부분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다.

 

 

콜레스테롤을 녹인다

 

감국에는 비타민A가 많아 각막염이나 결막염 같은 안질환이나 인후염에도 효과가 크다. 사물이 뚜렷이 안 보이고 눈에 혼탁이 생기는 증상, 안저정맥출혈, 안저동맥경화, 시신경염, 시신경망막염, 누낭염, 각막궤양 등의 급만성 안질을 모두 치료한다. 국화차를 평소 자주 마시면 안질환을 예방할 수 있겠다.

 

신선을 꿈꾸었던 고인들의 ‘연년익청’은 어떨까. 국화 속에 포함되어 있는 미량원소 중에는 셀레늄이 가장 많다. 이 셀레늄이 항노화 물질임은 이미 밝혀져 있다. 국화의 연년익청이 실제로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또 국화 속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크롬 성분은 콜레스테롤을 분해하고 체외 배설을 촉진해 심혈관질환을 치료한다. 항암효과도 있다. 일본에선 쥐를 가지고 항암 실험한 결과 암세포 성장 억제율이 55%로 나타났다. 이 정도면 현대과학이 연년익청의 효능을 실증하고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국화는 심장의 관상동맥을 확장하고 혈류량을 크게 증가시켜 관상동맥경화로 인한 고혈압과 협심증을 예방한다. 뇌혈관 순환장애에도 개선효과가 크다. 또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므로 동맥경화와 고지혈증에 좋다. 국화만 단독으로 쓸 수 있지만, 산사 같은 약물을 배합하면 더 효과가 크다. 참고로 가지를 함께 먹으면 더욱 좋다. 가지에는 혈관을 연화시키는 효능이 있어 동맥경화로 인한 고혈압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커진다.

 

국화에는 중추신경을 진정시키는 성분도 있다. 그래서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인한 두통, 현기증, 동계, 불면, 전신무력감 등을 치료한다. 파킨슨병 등에도 그 이용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국화 두 송이를 넣은 한 잔의 차는 마음을 맑게 하고, 눈을 밝게 하며, 수명을 늘인다”는 옛말이 있다. 국화차는 감국의 꽃송이를 그늘에 말려 향기가 날아가지 않게 밀봉해두었다가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신다. 이 국화차에 인동꽃이나 구기자, 뽕잎, 쇠무릎, 산사 등을 넣어도 궁합이 잘 맞는다. 인동꽃은 피부질환과 동맥경화에 좋다. 구기자를 넣으면 눈을 밝게 하고 연년익청하는 힘이 커진다. 쇠무릎은 고혈압과 협심증에 좋다. 산사는 고지혈증에 좋다.

 

 

 

 

겨울날 안 그래도 몸과 마음이 추운데, 들려오는 소식이 모두 우울하다. 물가는 치솟는데 가계경제는 더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사람살이가 이토록 힘든 시기가 또 있었을까 싶다. 희망이 필요하다. 마음을 맑힐 시원한 국화차 한잔이 그래서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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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8] 금(金)하고도 바꾸지 않는 지혈용 약초 ‘삼칠’

 

신동아 / 2012-02-24 11:36


 

 

삼칠 뿌리와 잎, 줄기는 인삼과 닮았다.

 

 

 

간경화로 복수가 차오른 한 지인 이야기다. 극심한 독감까지 겹쳐 딱 죽을 지경이 되었다. 도리가 없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치료 도중 내장출혈이 심해졌다. 혈액응고제를 써야 하는데 그러자니 심혈관을 틀어막는 혈전이 더 문제였다. 폐에서도 출혈이 생겼다. 지혈을 하면서 동시에 활혈(活血)을 할 수 있는 약은 현대의학엔 없다. 온갖 현대적 장비를 갖췄다지만 병원으로선 속수무책, 두 손을 들었다.

 

이분은 2년여 지난 현재까지 건강하다. 그동안 운동도 열심히 해서 몸이 전보다 더 좋아졌다. 병원에서 거의 사망선고를 받으신 분인데, 그냥 자연치유가 된 걸까. 당연히 아니다. 퇴원하고서 그이는 한 가지 약물을 가루 내어 계속 복용했다. 그 약물은 바로 삼칠(三七)이라는 약초의 뿌리 삼칠근(三七根)이다. 이 약초가 난마같이 얽힌 그의 병을 해결했다.

 

완도에 사는 환자 한 분은 만성 C형 간염으로 고생을 했다. 인터페론이 듣지 않고 약물 부작용도 심했다. 만성 피로와 식욕부진, 근육통과 관절통을 호소했다. 삼칠근을 가루 내어 3개월여 복용하게 했더니 혈액검사 결과 C형 간염바이러스가 나오질 않았다. 피로감과 전신통증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지혈 효과 탁월

 

중국에선 난치병의 하나인 재생불량성 빈혈에 이 삼칠근을 투여해 환자의 건강을 회복시킨 사례가 꽤 있다. 그중 한 예다. 14세 된 소년으로 기운이 없어서 말하기도 어려웠고 비위가 너무 약해져 음식도 먹지 못했다. 눈에도 총기가 없고 정신도 나른해 생기가 없어 보이는 아이였다. 그의 잇몸에서도 피가 났고 피부에는 멍이 든 것처럼 자반이 생겼다. 골수검사 결과 재생불량성 빈혈로 진단됐다. 그런데 익힌 삼칠근을 가루 내어 3개월을 복용하고는 모든 증상이 호전되었다.

 

삼칠근은 일반인에게 좀 생소한 약초이지만 과거엔 이런 말도 있었다. ‘북인삼(北人蔘) 남삼칠(南三七).’ 천하의 영약으로 이름난 인삼은 북방에서 나고, 삼칠은 남방에서 난다는 말이다. 삼칠이 대체 무슨 약초이기에 감히 인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성을 얻은 걸까. 청나라 때 의가 조학민은 ‘본초강목습유’에서 이렇게 썼다. “인삼은 보기(補氣)제일이고, 삼칠은 보혈(補血)제일이다.” 인삼이 기를 보하는 데 으뜸인 약물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삼칠이라는 약초는 혈을 보하는 데 으뜸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청대의 의가 진사탁은 이렇게 말한다. “삼칠근은 지혈(止血)을 시키는 신기한 약이다. 몸의 상 중 하의 출혈뿐 아니라 몸 밖으로 새는 모든 출혈에도 이 약 한 가지면 즉각 효과를 본다. 보혈하고 보기하는 약에 넣으면 그 효능이 더욱 신통하다.”

 

한방의 ‘편자황(片仔黃)’이란 약에 대해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다. 국내에서도 광동제약에서 한동안 편자환이란 이름으로 생산했다가 지금은 만들지 않는 듯하다. 중국 의술이 과장이 좀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 약이 급만성 간염이나 간경화 등에 탁효(卓效)가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항생제가 안 듣는 일체의 염증성 질환과 좌상, 화상, 등창을 비롯해 치주염, 중이염, 인후통 등과 같은 소소한 질환에도 효과가 크다. 이 약의 주된 약재가 삼칠근이다. 성분의 85%가 삼칠근이고 사향과 웅담 등이 소량 들어간다.

 

중국 정부에서 그 처방 구성을 국가기밀로 숨기고 있다는 ‘운남백약(云南白藥)’도 삼칠근이 주된 약재다. 1924년 중국 윈난성의 곡환장이라는 한 중의사에 의해 만들어져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운남백약은 타박으로 인한 골절과 출혈성 외상질환 등에 신통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1970년대 초에 이 운남백약은 저우언라이 총리의 지시하에 운남백약 공장이 세워져 지금까지 외과의 성약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 삼칠이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명나라 때 이시진의 ‘본초강목’에서다. 그러니까 16세기 전까지는 중국의 의가들도 이 약초에 대해선 잘 몰랐다는 얘기다. 근세에 와서야 본초서에 그 얼굴을 내민 약물인 것이다. 어쨌든 이시진은 “삼칠은 중국 광서성 반동의 깊은 산중에서 채취하는데, 뿌리를 햇볕에 바짝 말려 쓴다. 황흑색의 단단한 원추형 덩어리가 마치 백급의 뿌리 같다. 마디가 있다. 인삼의 맛과 흡사해 미감(微甘)하고 쓰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다른 이름으로 ‘금불환(金不換)’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금불환’은 금과도 바꿀 수 없다는 뜻이다. 그토록 귀중한 약초라는 말이겠다.

 

 

 

 

삼칠밭과 약재용 삼칠근.

 

 

 

 

삼칠은 오가피나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따지고 보면 인삼과 한집안 식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분류상 인삼 속이다. 또 삼칠의 뿌리, 삼칠근을 먹어보면 거의 인삼 맛이 난다. 잎사귀의 생김새나 열매도 인삼의 그것과 흡사하다. 그래서 삼칠인삼이라고도 한다.

 

 

중국 남방에서 자라는 인삼과

 

하지만 삼칠은 인삼과 달리 따뜻한 중국 남방에서만 자란다. 삼칠의 원산지는 중국 광시성의 더바오현으로 알려지는데, 이 지역은 연평균 기온이 섭씨 15~20℃ 되는 곳이다. 여름이 길고 다습하며 겨울도 온난하다. 애석하지만 우리나라는 기후조건이 맞지 않아 애초 자생하지 않는다. 겨울을 나기가 어려워 노지에서 재배하기도 쉽지 않다.

 

삼칠의 원산지 더바오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윈난성 원산(文山)이 있다. 요즘 중국에서 생산되는 삼칠근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나온다. 그밖에 광시성 오저우, 장시성, 구이저우성, 쓰촨성 일부 지역에서도 나온다. 모두 윈난과 인접한 중국 남방의 따뜻한 지역이다.

 

삼칠은 흔히 ‘전칠(田七)’이라고도 불린다. 더바오현에서 나오는 이 삼칠이 인근의 전주(田州)로 헌납되었기 때문에 이곳의 유명한 약재라는 이유로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산칠(山漆)’이라고도 한다. 칼이나 창, 화살에 살이 찢어지고 뼈가 상한 금창(金瘡)을 마치 칠(漆)이 부러진 나무를 붙이듯 신통하게 치료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삼칠근의 효능을 알아보기 전에 삼칠(三七)이라는 특이한 이름이 붙은 곡절을 좀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가지가 3줄기이고 그 가지에 잎이 7개씩 달려 그 형상을 따서 삼칠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다른 하나는 3~7년간 자란 뿌리만 약효가 있고, 1~2년근은 아무 효과가 없기 때문에 삼칠이라고 했다는 설이다. 이와 관련해 회자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옛날 중국 광시성의 어느 고을에 한 낭중(郎中·당시 남방지역에서 의사 노릇을 했던 관직)이 있었다. 이 고을 위사(衛士)가 코피를 자주 흘렸는데 낭중이 주는 가루약을 먹고 코 안에 그 가루를 뿌리면 곧 나았다. 눈치 빠른 위사는 낭중이 무슨 약초를 쓰는지 눈여겨두었다. 어느 날 고을 지부대인의 독자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내로라하는 의원들을 불러다 치료했으나 차도가 없었다. 위사는 신통하게 지혈하는 약초를 눈여겨보았던 터라 그 뿌리를 캐가지고 지부대인에게 바치며 “이 약초는 그 효과가 신통하므로 곧 나을 것입니다”라며 호언했다.

 

그러나 약초를 달여 먹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지부대인의 아들은 출혈이 멈추지 않아 마침내 죽고 말았다. 대로한 지부대인이 위사를 잡아들여 죄를 물었다. 위사가 저간의 사연을 토설해 덩달아 낭중도 붙들려오게 됐다. 낭중은 위사가 캐온 약초를 보고는 한숨을 쉰 후 말을 했다.

 

“이 약초는 반드시 3~7년을 자란 것을 써야 하는데 위사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1년근을 썼으니 무슨 약효가 있었겠습니까.”

 

 

 

 

 

위궤양에도 효과

 

그러고는 곧 칼을 들어 자신의 팔에 크게 상처를 낸 후 가루약을 꺼내 일부를 먹고 일부는 상처에 뿌렸다. 그러자 곧 출혈이 멈추고 상처가 아물었다.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모두 놀랐다.

 

실제로 삼칠은 파종으로부터 수확까지 3년 이상이 걸린다. 약효도 3~7년 된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본초강목’ 등 고전의서에 나오는 삼칠의 효능은 출혈을 멈추는 지혈(止血), 어혈을 흩뜨리는 산혈(散血), 종기와 부은 상처를 삭히는 소종(消腫) 및 통증을 가라앉히는 정통(定痛)이다.

 

우선 삼칠은 지혈효과가 뛰어나다. 신체 내외의 모든 출혈증상에 즉각적인 효과를 보인다. 또 지혈 후에도 어혈이 생기지 않게 한다. 지혈을 하면서도 산혈, 곧 활혈하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한, 삼칠의 돋보이는 효능이다. 지혈과 산혈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아직까지 현대의학도 해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혈전이 두려워 지혈제를 쓸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이때 삼칠근은 너무도 긴요한 약물이 된다.

 

타박상이나 골절, 도검(刀劍)상에 내복하거나 외용해도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 즉 칼이나 흉기에 찔려 출혈이 그치지 않을 때 삼칠근 가루를 환부에 뿌리거나 내복하면 곧 지혈이 된다. 과거 전장에 나가서 도검에 베여 부상한 병사들에게 삼칠근은 아닌 게 아니라 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약일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한 운남백약은 삼칠에 다른 약물을 더 넣어 이런 효능을 극대화한 것이다.

 

위장이나 십이지장의 궤양으로 인한 토혈과 출혈, 대장출혈, 여성의 붕루(자궁출혈), 산후의 지속적인 출혈에도 당연히 효과가 크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옹종(몸의 안팎에서 피부나 장기가 곪고 붓는 증상)으로 통증이 심한 경우에도 삼칠근의 가루를 환부에 도포하면 곧 낫는다. 가히 혈병(血病)의 성약(聖藥)이라 할 만하다.

 

최근의 삼칠근 연구 성과를 보자. 일본이나 중국에선 관상동맥성 심장질환에 보조치료제로 쓴다. 삼칠근 가루를 2~4g씩 하루 2~3차례 복용하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삼칠근에는 플라보노이드글리코시드라는 성분이 있어서 관상동맥의 혈류량을 크게 증가시켜 동맥압을 떨어뜨리며, 심근의 산소소비량을 감소시켜 심교통과 협심증을 치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고혈압을 떨어뜨리며 저혈압을 정상화한다. 만성간염과 간경화에도 효과가 있어서 GOT, GPT수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도 보고된다. 만성C형 간염에도 두드러진 개선효과가 있다.

 

삼칠근의 효능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뇌혈관의 출혈을 멎게 한다는 것이다. 뇌출혈에 의한 반신불수를 흔히 중풍이라고 한다. 뇌출혈이 생기면 치료가 됐다고 해도 그 삶의 질은 거의 결딴난다. 수족을 못쓰고 질질 끌고 다니거나 자리에 드러누운 채 영영 사람구실을 못하게 된다. 한 번 뇌출혈이 생기면 재차, 삼차 내혈관이 터질 가능성이 많다. 삼칠근은 뇌혈관의 출혈을 멈추게 할 뿐 아니라 뇌혈관 파열 후 혈액순환장애를 개선하고 혈압을 떨어뜨려 뇌혈관이 다시 터지지 않도록 한다. 몸이 마비가 된 경우에도 삼칠근을 복용하면 뇌의 혈액순환이 개선되므로 회복이 현저히 빨라진다.

 

얼마 전 정치인 김근태 씨가 뇌정맥혈전증 치료를 받다가 치료 도중 뇌출혈이 생겨 사망했다. 혹시 이 삼칠근을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한국에서도 어렵게 재배 성공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오가피나무과의 삼칠과는 전혀 다른 삼칠을 기술한 대목이 나온다. 요즘 말하는 ‘국삼칠(菊三七)’이다. 이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또 한 종의 삼칠이 있는데 잎사귀가 국화와 쑥의 그것을 닮았고, 늦여름에 노란꽃이 핀다. 꽃이 금실처럼 생겨 완상할 만하다. 줄기가 1~2m 정도 크게 자라고 뿌리도 우엉뿌리처럼 크다. 예의 삼칠과 그 효능이 같아서 금창절상(金瘡折傷)과 출혈 및 상하(上下)의 혈병을 치료한다.”

 

국삼칠은 국화과에 속하는, 삼칠과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그러나 약효는 삼칠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 이시진도 이를 삼칠로 분류했다. 최근에 와서 오가피과의 삼칠과 구별하기 위해 국삼칠이라고 하고 있다. 이 국삼칠의 재배에 성공한 이가 국내에 한 분 있다. 경북 영주에 사는 이병규 씨다. 10여 년 전 중국에서 우연히 삼칠의 효능에 눈을 떠 그때부터 국삼칠 재배에 도전했는데, 우리나라 토양과 기후에 적응하기 어려워 그동안 실패를 거듭하다 최근 대량으로 재배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아직까진 뿌리를 약재로 내다팔 정도는 아니다. 잎과 줄기를 효소화해 차로 만들어내는 정도다. 국삼칠의 잎과 줄기에도 역시 뿌리와 같은 효능이 있어 약재로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국삼칠도 윈난이나 쓰촨, 구이저우 같은 남방에서 주로 자라는 약초다. 이병규 씨의 국삼칠 재배가 기후와 풍토의 차이를 극복하고 성공한 것을 보면 오가피나무과의 삼칠도 한번 재배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려 1000%나 되는 엄청난 관세를 물고 중국의 삼칠을 수입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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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7] 위장병에 좋은 ‘산사’, 심장병·고혈압에도 특효

 

신동아 / 2012-01-25 13:31


 

 

 

 

 

 

 

산사(山査)나무 아래’라는 영화를 봤다. 베이징올림픽 개막공연을 연출했던 장이머우 감독의 최근 작품이다. 1960~70년대 문화혁명기 중국의 토속적인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섬세하고 정감 어린 연출로 연인들의 순수하고 절절한 사랑을 그려냈다. 왜 장이머우가 거장인지 알겠다. 흔해빠진 러브스토리인데도 이렇게 가슴이 아리고 애틋해질 수 있다니.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없어도 짧은 고갯짓, 흔들리는 눈빛 하나에 모든 것을 담았던 때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울림이 그대로 전해지는 사랑. 조선조 여류시인 매창(梅窓)이 “송백(松柏)처럼 늘 푸르자 맹세하던 날, 님을 사랑하는 마음(恩情)은 바닷속처럼 깊기만 했다”라고 했을 때 바로 그런 사랑이다. 푸른 소나무 옆에서 눈길을 떨구고 있는 매창의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 이걸 사랑의 동아시아적 방식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의식과 육체가 서구적으로 도벽된 이 척박한 시대엔 까마득히 잊혀버린, 케케묵은 고릿적 사랑의 방식이다.

 

장이머우는 매창의 송백 대신 산사나무를 상징으로 삼아 섬세한 연출로 우리에게 그런 사랑법이 한때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그가 그려낸 것은 시대의 아픔과 교직되며 피어난 순수하고 절절한 사랑이지만, 그 사랑법의 상실과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 ‘상실의 시대’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 진짜 주제였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에겐 그래서 영화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게 적지 않았다.

 

 

서양의 ‘메이 플라워’

 

영화에서 산사나무는 두 연인의 순수한 사랑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 산사나무 아래서 둘의 사랑이 시작되고 끝난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산사나무 꽃이 필 무렵 남자는 그 나무 아래에 묻힌다. 사전을 들춰보니 산사나무의 꽃말이 ‘유일한 사랑’이다. 왜 하필 산사나무였을까 했더니 연관이 있다.

 

동양의 산사나무는 주로 약재로 쓰는 나무다. 열매가 소화가 잘되게 하고 적체된 음식물을 내리는 건위제로 쓰인다. 신곡, 맥아와 함께 ‘삼선(三仙)’이라 불리는 소식약(消食藥)의 대표적인 약재다. ‘약방의 감초’보단 못하지만 감초만큼이나 많이 쓰인다. 한의사라는 직업적 관점에서는 약재로나 쓰지 사랑타령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나무다.

 

장미과에 속하는 산사나무는 우리나라에선 ‘아가위나무’ 또는 ‘찔광이’라고 한다. 화창한 5월에 무성한 초록잎 사이로 흰 꽃무더기를 피워내는 산사나무는 사실 우리가 친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청춘을 아름다운 순백의 사랑으로 유혹할 만한 나무다. 요즘은 공원의 조경수나 가로수로도 심기 때문에 산에 올라가지 않아도 그 꽃을 쉽게 볼 수 있다. 햇빛을 좋아해 양지바른 야산의 능선이나 숲 가장자리에서 잘 자란다. 영화에서도 양지바른 산 언덕배기에서 가지를 드리우고 연인들에게 그늘진 쉼터를 내줬다.

 

8월경이면 구슬만한 열매들이 붉게 익는다. 꽃사과의 열매와 흡사하지만 열매 표면에 자디잔 흰 반점들이 점점이 박혀있고 꼭지 쪽에 꽃받침 자국이 남아있는 게 다르다. 사과나무와 한 족보여서 익은 열매는 새콤하고 달큼한 사과맛이 난다. 이 열매를 따다 씨앗을 제거하고 말린 것을 약재로 쓴다. 이를 산사육, 또는 산사자라고 하는데, 흔히들 그냥 산사라고 부른다. 당구자(棠毬子)라고도 한다.

 

 

 

 

 

동양과 달리 산사나무는 유럽에서는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민속나무다. 유럽에서도 약재로 쓰긴 한다. 유럽 산사나무의 열매를 크라테거스(Crataegus)라고 하는데, 강심제로 많이 쓰인다. 그보다는 5월을 대표하는 나무로 삼아 ‘메이플라워(May flower)’라고 할 정도로 그 꽃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고대 희랍에선 산사나무 꽃이 희망의 상징으로 봄의 여신에게 바치는 꽃이었다. 지금도 5월1일이면 산사나무 꽃다발을 문에 매달아두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아테네 여인들은 산사나무 꽃을 행복의 상징으로 여겨 결혼식날 머리장식으로 썼고, 로마에서는 산사나무 가지가 마귀를 쫓아낸다고 생각해 아기 요람에 얹어두기도 했다. 영국에서도 5월이 되면 태양숭배와 관련된 축제를 열었는데 이때 활짝 피어나는 산사나무 꽃은 5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전통주 산사춘 원료

 

얼마 전 지인이 이 산사나무 열매를 한 자루 가득 가져왔다. 산에 갔더니 이 열매가 잔뜩 열려 있어서 땄다는 것. 꽃사과 열매는 아닌 듯하고 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전통주 산사춘의 재료라고 했더니 산사주를 한번 만들어보겠단다. 그가 들고 온 열매는 검붉게 너무 잘 익어서 약재로 쓰기는 곤란했다. 산사는 적당히 익어 시고 떫을 때 따서 약용으로 쓴다. 또 오래 묵은 것일수록 약성이 좋다. 과육이 물컹해지도록 익으면 신맛이 거의 없다. 달달한 맛이 난다. 수분이 많아서 효소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알코올에 재어두면 곧바로 산사 와인, 즉 산사춘이 된다.

 

산사와 관련된 옛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마을에 계모가 전 부인의 아들을 심하게 구박해 매일 설익은 밥을 주고 밭일을 시켰다. 흉칙한 계모는 아이를 병들게 해 일찍 죽게 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설익은 밥을 매일 먹고 위장이 상해 점점 몸이 마르고 복통이 심해지게 된 아이는 산에 올라 슬피 울다 산사나무 열매를 보게 됐다. 붉게 익은 산사 열매가 먹음직스러워 이를 따 먹었더니 신통하게도 배도 아프지 않고 소화가 잘돼 속이 편해졌다. 아이는 이후 설익은 밥을 먹고는 꼭 산사 열매를 따 먹었다. 점점 살이 오르고 몸이 건강해졌다. 뒤에 이 이야기가 알려져 산사는 소화력을 돕고 위장병을 치료하는 데 긴요한 약으로 쓰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에는 산사에 대해 “식적(食積)을 내리고 묵은 체증(滯症)을 푼다. 기가 뭉친 것과 적괴, 담괴, 혈괴 등 몸속에 뭉친 덩어리를 삭힌다. 비장을 튼튼히 한다. 답답하게 막힌 흉격을 연다. 이질을 다스린다. 종창이 빨리 곪아 터질 수 있게 한다”고 쓰고 있다.

 

식적은 음식물이 소화되지 못하고 남은 노폐물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평소 속이 더부룩하고 가슴이 답답하며 배가 아프고 가스가 잘 차고 대변을 시원하게 보지 못한다면 위와 장에 식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몸의 컨디션이 좋을 리 없다. 만성적인 피로 상태와 담음두통, 목덜미가 무겁고 아픈 항강증, 경우에 따라선 식적요통 등을 수반한다.

 

노파심에서 하는 얘기지만, 이 식적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양방병원에 가서 내시경으로 진단한다면 바보짓이다. 한의학의 식적은 언어와 대상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서양의학의 실체론적 세계관과 부합하는 개념이 아니다. 증상과 상태의 집합이지 종양덩어리처럼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변에 만성적인 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은데, 내시경 진단을 받아봐야 서양의학은 체기(滯氣)의 존재를 밝혀내지 못한다. 체증 자체가 실체론적인 언어가 아니다. 이것은 서양의학이 이런 증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양방 병원에서는 위장에 염증이 없으니까 큰병이 아니다, 신경성이라는 말이나 듣기 십상이다.

 

 

내시경으로 볼 수 없는 체증

 

산사는 소화흡수 기능을 증진시키고 위장을 튼튼히 하는 최고의 건위제다. 현대인은 고기를 많이 먹고 식품첨가물이 들어간 빵이나 인스턴트식품을 많이 먹기 때문에 소화기질환을 달고 사는 이가 많다. 산사는 식적, 특히 육류의 과다섭취로 인해 육적(肉積)이 생겨 소화가 안 되고 늘 배가 더부룩한 증상을 다스리는 데 탁효가 있다. 산사의 과육에 지방분해효소가 많아서 지방이 많이 든 음식물을 잘 소화시키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이런 산사의 성분을 이용해 육류를 요리할 때 산사를 쓰기도 했다.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 소동파의 ‘물류상감지(物類相感誌)’에 “늙은 닭을 삶을 때 산사 열매를 넣으면 고기가 부드러워진다”는 기록이 있다.

 

산사는 장위의 소화흡수 기능이 많이 떨어져 식욕이 없고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음식이 내려가지 않는 증상에 효과가 좋다. 이로 인해 몸이 여위고 늘 변비에 시달릴 때 산사 40g에 맥아(엿기름) 40g, 빈랑 12g을 환제(丸劑)로 만들어 복용하면 큰 효과를 본다.

 

 

 

 

 

쫄깃쫄깃한 맛을 내기 위해 빵이나 밀가루식품에 많이 첨가하는 식물성 단백질 ‘글루텐’은 소화장애를 일으키기 쉽다. 성인 100명 중 1명꼴로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다고도 한다. 이로부터 만성적인 소화불량과 복부의 팽만, 더부룩함, 복통, 설사, 변비 등 위장장애가 심하고 전신적인 피로감과 여드름, 기미 등의 피부질환을 호소하는 경우에도 위의 환제가 효과가 있다. 단, 위산과다가 심한 경우엔 쓰기 어렵다. 위장에서 소화효소의 분비를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소화가 잘되게 하고 적체된 음식물을 내리는 ‘소식약’으로서의 산사의 효능이다. 그런데 산사의 효능이 이 정도에 그친다면 요즘은 무척 섭섭한 일이 된다. 고혈압과 심장병, 동맥경화에 좋은 것은 물론, 콜레스테롤 수치까지 떨어뜨리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한의학 용어로는 ‘활혈화어(活血化瘀)’의 효능이다.

 

관상동맥의 경화로 인한 심장병의 경우 대부분 고혈압을 수반한다. 산사에는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류의 저항을 줄여 혈압을 떨어뜨리는 배당체와 락톤,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있어서 이를 개선하는 효과가 크다. 혈압을 내리는 산사의 효과는 생약이기 때문에 완만하긴 하나 지속성이 뛰어나다. 산사를 꾸준히 복용하면 그 효과가 매우 좋은 것으로 알려진다.

 

요즘 산사의 이런 효능은 구미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산사나무 잎에서 추출한 물질이 울혈성 심부전 환자의 수명을 연장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미국 심장학회는 산사나무 잎 추출물을 2681명의 환자에게 2년간 투여해 실험 했는데, 그 결과 6개월, 18개월 생존율이 크게 높아졌다. 일부 환자에서는 돌연 심장사도 지연되는 효과를 보였을 정도라고 한다. 예부터 산사를 강심제로 썼던 유럽에서는 이미 심부전 치료에 이를 이용하고 있다.

 

 

콜레스테롤 수치 내려

 

또 산사는 콜레스테롤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최근의 약물 중에서도 혈중지질을 떨어뜨리는 데 가장 큰 효과가 있는 약물로 알려지고 있다. 열매에 들어 있는 트리테르펜사포닌 성분은 콜레스테롤로 인한 동맥경화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것으로 임상에서 입증되었다. 이 성분은 혈압을 낮추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혈압이나 심장병이 있는 사람은 산사를 보물처럼 여길 만하다. 흔히 관상동맥경화로 인한 심장질환과 협심증엔 잘 말린 산사열매 35~50g을 진하게 달여 하루 3회 정도 나눠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전통적으로도 산사는 활혈화어, 곧 혈액의 순환을 돕고 몸속의 궂은 피를 없애는 약으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기혈이 약해진 임산부나 여성에게 많이 쓰인다. 산후에 오로(惡露)가 그치지 않고 어혈이 빠지지 않으면 복통이 심해지고 출혈이 멈추지 않게 된다. 산사는 자궁을 수축시키면서 어혈을 빼내기 때문에 임부의 자궁을 빨리 안정시키고 통증을 가라앉히고 출혈을 그치게 한다. 또 통경작용이 있어서 생리가 계속되고 하복부의 통증이 그치지 않을 때도 효과가 좋다. 우리 한의원에서도 이런 질환에 산사를 많이 쓴다.

 

 

 

 

산사 열매에는 식물성 교질인 콜로이드가 많아 끓여놓으면 묵처럼 잘 응고된다. 이 때문에 식품으로서도 이용가치가 있다. 예전에는 산사를 보드랍게 가루 내어 꿀에 타 떡을 만들기도 했다. 산사정과(正果)도 만들었다. 산사나무는 순백의 꽃도 눈길을 끌지만 잎사귀의 모양새도 매우 독특해 잎맥까지 파인 불규칙한 생김새가 인상적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한번만 보면 쉽게 산사나무를 구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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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6] 신선이 되는 선약, ‘꾸지뽕’에 대한 단상

 

신동아 / 2011-12-23 14:23

 

잘 익은 열매를 달고 있는 꾸지뽕나무.

 

 

 

 

 

두보의 시 ‘북정(北征)’에 “산열매들이 숱하게 열려서 선약인 듯 단사(丹砂)처럼 붉다”는 구절이 있다. 진홍색의 단사는 신선이 되는 선약(仙藥) 중의 으뜸이다. 10월경 이 단사의 색깔처럼 붉게 익는 꾸지뽕 열매를 따러 산을 올랐다. 매년 가을 무상의 수확을 안겨주는, 자갈이 많은 산비탈에 다른 활엽수들 속에 숨어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꾸지뽕나무가 하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꾸지뽕나무는 잔가지까지 거덜 나 있었다. 붉은 단사는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았다. 이미 누군가의 손을 탄 지 오래였다.

 

그 꾸지뽕나무가 내 것이나 됐던 것처럼 속이 상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언제 붕괴할지 모를 것 같은 초경쟁사회 대한민국이다. 꾸물거리다간 자칫 야산의 나무 열매도 차지하기 어렵게 된 게 분명하다. 아닌 게 아니라 올가을엔 산악회에서 떼로 몰려다니는 ‘아줌마부대’도 꾸지뽕에 관심을 보였다. 얼추 비슷하게 생긴 산딸나무 열매를 꾸지뽕이라고 잘못 알고 우루루 몰려드는 꼴도 여러 번 봤다. 심상치 않았다. 몸에 좀 좋다 하면 남아나는 게 없는 세상이다.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이 추억과 그리움 때문에 눈길을 주던 하찮은 산열매가 아니다.

 

 

산뽕나무와 달리 줄기에 날카로운 가시

 

꾸지뽕나무를 잘 모르는 이들도 있을 테니 설명을 좀 하겠다. 시골에서 자란 40~50대라면 친숙하겠지만. 이 나무는 우리나라 황해도 이남의 산야 전역에 흔하다. 산기슭 양지쪽이나 계곡 주변, 마을 부근에서 많이 자란다.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흰 뜨물 같은 끈끈한 수액이 뚝뚝 떨어진다. 좀 성가시다. 대체로 키가 작은 관목이다. 그러나 필자가 화순 춘양면 산속에서 본 꾸지뽕나무들은 떡갈나무 같은 주변의 교목들보다도 키가 컸다. 소교목이라 해야 더 맞을 듯하다.

 

5~6월에 서로 다른 나무에서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10월경에 암나무에서 붉게 익는 둥그런 열매는 과육이 달고 맛이 있어 날것으로 먹을 수 있다.

 

뽕나뭇과에 속하지만 생김새가 여러모로 뽕나무와 다르다. 한자로는 ‘자목(木)’ 또는 ‘자상(桑)’이라고 한다. ‘자()’는 산뽕나무를 뜻한다. 그러나 민간에서 흔히 산뽕나무라 부르는 것과는 다르다. 가지와 줄기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게 꾸지뽕나무다. 뽕나무나 산뽕나무에는 가시가 없다. 이 때문에 ‘가시 자(刺)’를 넣어 ‘자자(刺)’, 가시나무뽕이라는 뜻인 ‘형상(荊桑)’으로 부르기도 한다. 잎 모양도 다르다. 뽕잎보다 크기도 작고 뽕잎에는 있는 톱니가 없어서 확연히 구별된다.

 

열매도 뽕나무의 오디와는 모양이 전혀 달라 호두과자 비슷하게 생겼다. 중국에선 둥근 추를 닮아서 가자(佳子), 또 여지(枝)라는 열매와 비슷하다고 해서 야여지 또는 산여지라고도 한다. 검붉게 잘 익은 꾸지뽕 열매는 단맛이 강하지만 덜 익은 열매는 예의 끈적끈적한 흰 뜨물이 많아서 비위가 상한다.

 

정약용 같은 실학자는 꾸지뽕을 가리켜 “형상(荊桑)도 양잠에 쓰니 심을 만하다”고 했다. 꾸지뽕이라는 이름도 이 나무의 잎으로도 누에를 키울 수 있어서 ‘굳이 뽕’이라 부르다가 소리 나는 대로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중국 고대의 훈고학서 ‘이아(爾雅)’엔 꾸지뽕잎을 먹여 키운 누에를 ‘극견(棘繭)’이라고 하며, 그 실로 금슬을 만들면 소리가 매우 청아하다고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지역에 따라 굿가시나무라고도 하고, 활뽕나무라고도 한다. 활뽕나무는 재질이 잘 휘고 단단한 이 나무로 만든 활을 최고로 쳤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꾸지뽕을 가리키는 ‘자()’엔 황적색이란 뜻도 있다. 꾸지뽕 나무를 우리면 나무의 수액이 황적색으로 변한다. 이를 자황(黃)이라 하는데, 임금이나 신분이 귀한 이의 옷을 만들 때 쓰이던 물감이었다고 한다. 과거엔 나름대로 쓰임새가 있었던 나무다. 그러던 것이 근대화 이후 양잠농가들조차 사라지면서 촌구석의 어린 애들이나 그 열매를 탐하는, 별 볼일 없는 야산의 잡목이 되었다.

 

 

꾸지뽕을 둘러싼 과장 광고

 

노자는 ‘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임(反者 道之動)’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건 되돌아간 정도가 아니다. 요사이 꾸지뽕은 쓸모없는 잡목에서 ‘단사’와 같은 선약(仙藥)으로 그 신분이 엄청나게 바뀌었다. 위암, 식도암, 폐암, 간암 등 흉악한 병을 고치는가 하면 여성의 자궁질환에 특효여서 자궁암이나 자궁근종을 씻은 듯 낫게 하는 영약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동안 급격한 변화가 부담스러워 은인자중하며 내공을 키우는 듯하더니 최근엔 행보가 당당해졌다.

 

얼마 전 사고를 한 건 쳤다. 강원도 모 지역의 영농조합에서 통 크게 중앙 일간지와 경제신문에 이 ‘선약’ 꾸지뽕을 전면광고했다. “100% 국내산 꾸지뽕으로 당뇨, 고혈압을 한방에!” 광고 모델로 나선 신바람전도사 황모 교수의 웃는 얼굴이 실려있다.

 

선정적인 광고 문구는 위력을 발휘했 다. “꾸지뽕이 그렇게 좋다더구먼.” 필자 주변에서도 갑자기 꾸지뽕에 ‘필이 꽂힌’ 사람 수가 늘어났다. 저런 정도의 광고라면 의약품도 아닌데 허위 과대광고로 문제되지 않을까 했다. 필자가 꾸지뽕 수확의 기쁨을 빼앗긴 것도 이 광고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꾸지뽕 열매는 호두과자처럼 생겼고, 맛이 달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꾸지뽕으로서는 적잖이 억울한 느낌이 없지 않을까 싶다. 벌써 10여 년 전 진주MBC에서 방영한 ‘약초와의 전쟁’이란 다큐멘터리에서 꾸지뽕은 겨우살이, 하고초, 느릅나무, 와송과 함께 5대 항암약초로 대접받았던 귀한 몸이다. 꾸지뽕나무 추출물이 폐암세포를 죽이는 경이로운 영상도 찍혀 전국적으로 전파를 탔다. 그사이 자잘한 홍보성 프로그램에 한두 번 얼굴이 팔린 게 아니었다.

 

그뿐인가. 토종약초연구소 소장 최진규씨는 “갖가지 암에 민간요법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데 자궁암에 특히 효과가 탁월하다”고 했다. 동물실험을 통해 갖가지 암세포에 대한 억제작용이 입증됐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임상에 활용되어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중국 상하이의 28개 병원에서 소화기암 환자에게 써 큰 효과를 거두었는데 대부분이 3~4기의 말기 암환자였다는 글도 돌아다닌다. 현대의학이 포기한 말기폐암을 고쳤다는 부산의 장모 할아버지 체험수기도 인터넷상에서 유명하다. 신부전증에 간경화 말기 증상, 간암까지 꾸지뽕나무 추출물을 먹고 좋아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사실 뽕나무와 달리 꾸지뽕나무는 일반 한약재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식물이다. 민간에서 쓰던 초약(草藥)이다. 동아시아 최고의 본초서인 ‘본초강목’을 제외하면 고전 본초서들은 이를 그다지 중요한 약물로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본초구원, 일화자본초, 본초습유 등에서 그 약성에 대해 두서너 줄 간단한 설명을 찾아볼 수 있는 정도다. 한국이나 중국의 대학 본초 교재에서는 이를 아예 다루지 않는다.

 

우리나라 동의보감은 어떨까. 이 책은 병고에 시달려도 비싼 약재를 구하기 어려웠던 백성들을 위해 쉽게 구할 수 있는 향약재를 잘 쓰도록 의도했던 의서다. 그래서 이런 민간약을 빠뜨리지 않고 다루고 있다. 하지만 역시 그 내용이 너무 소략하다.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다. 독이 없다. 풍허이롱(풍허로 귀가 먹은 증상)과 학질을 치료한다”가 전부다.

 

꾸지뽕에 대해 가장 상세한 내용을 다룬 것은 ‘본초강목’이다. 근자에 나온 중약대사전도 이 본초강목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성의 붕중(崩中·자궁출혈 또는 월경과다)을 낫게 한다. 어혈로 인한 학질을 다스린다. 탕액으로 술을 빚어 먹으면 풍허로 인해 귀먹은 증상이 낫는다. 과로하여 허약해지고 몸이 마르는 것, 허리와 신장이 냉하여 꿈속에서 사정(泄精)하는 증상을 다스린다. 신(腎) 기운을 통하게 해 오래된 이명과 이롱(귀머거리)을 고친다. 눈앞에 실이나 파리 같은 것이 어른거리는 증상(飛絲入目)에 꾸지뽕나무 즙액을 눈에 떨어뜨리고 물을 적신 솜으로 닦으면 좋아진다. 침침한 눈을 밝게 하려면 가지를 달인 물로 눈을 자주 씻는다. 소아의 중설(重舌·혀 밑의 연부조직이 염증으로 부어서 작은 혀가 더 생긴 것 같은 증상)에 뿌리를 달인 물로 거듭 씻어주면 효과가 있다.”

 

 

자궁암과 당뇨, 고혈압에 좋아

 

이 꾸지뽕이 도대체 어떻게 고혈압과 당뇨를 고치고 자궁암을 비롯해 온갖 암에 신통한 효과를 내는 약이 된 걸까. 이는 다 현대 약리학적 연구의 산물이다. 이 꾸지뽕에 플라보노이드와 루틴, 모르틴, 가바 등의 약리적 물질이 많다는 것이다.

 

플라보노이드는 과일이나 채소에 많은 성분이다. 강한 항산화작용을 한다. 암 예방효과가 있다. 암세포를 제거하거나 전이를 억제하는 생체 메커니즘을 유도하기도 한다. 심장에도 좋다. 혈관을 튼튼히 해 혈압을 안정시킨다. 그러나 체내에 들어가면 대부분 배설되므로 흡수율이 낮아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얘기도 있다. 생체에서 일어나는 일과 실험실에서 얻은 실험결과는 명백히 다르기 때문이다.

 

루틴이라는 성분은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해주고 당뇨를 예방한다. 항암작용도 한다. 모르틴도 항암효과가 있다.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는 항불안작용, 항우울작용을 한다. 혈압강하효과, 간기능 개선효과도 있다.

 

이런 물질이 다량 함유된 꾸지뽕나무니 그 약리적 효과가 기가 막힐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러나 한마디만 붙이겠다. 이들 성분은 우리가 흔히 먹는 채소나 과일, 또 녹차에도 많다. 이런 성분이 있으니 특효약이라는 단선적인 사유가 과학은 아니다.

 

꾸지뽕이 효과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꿩 잡는 게 매다. 필자가 잘 아는 40대 부부가 있다. 부인이 심한 저혈압으로 힘이 없어 늘 드러눕기만 했다. 안색도 좋지 못했다. 그런데 꾸지뽕이 혈압에 좋다는 말을 들은 남편이 열매를 따서 술을 담가 부인에게 권했다. 한두 잔씩 꾸지뽕술을 마신 뒤 일년 남짓 지나서 부인의 혈압이 정상이 됐다. 혈색도 살아났고 몸도 그다지 처지지 않게 됐다. 필자가 주워들은 사례는 이외에도 많다.

 

 

 

 

 

말린 꾸지뽕나무 뿌리.

 

 

 

 

요사이 꾸지뽕나무를 가지고 건강식품 사업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말기 자궁암을 씻은 듯이 낫게 하고 각종 암에도 효과가 크다는 ‘꾸지뽕 기름’을 최고로 친다. 정확히 말하면 기름이 아니라 꾸지뽕 나무의 수액을 추출한 것이다. 뿌리나 줄기를 오지항아리에 넣고 왕겨로 일주일여 불을 때서 수액을 빼낸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추출한 수액은 탄 냄새도 나고 먹기가 고약해 현대적인 기계장비로 추출하기도 한다.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암환자라면 십중팔구 이걸 사 먹게 될 것 같다. 필자도 한번 만들어볼까 유혹을 느낄 정도다.

 

‘태평성혜방’이란 중국의 고대 의서에도 그런 유혹을 하는 신통한 술이 하나 나온다. 꾸지뽕 뿌리를 가지고 빚는 술인데, 이름을 ‘자근주(根酒)’라고 한다. 신장이 허해서 오랫동안 낫지 않는 청력장애, 귀울음과 이롱을 씻은 듯이 고친다. 현대의학이 포기한 이명환자가 주변에 한둘이 아니다. 재미있어서 제법(製法)을 소개한다.

 

“꾸지뽕뿌리 20근(한 근은 600g)과 석창포뿌리 5근을 준비해 각각 물 10말(1말은 18L)씩을 넣고 5말이 될 때까지 달인다. 벌겋게 달군 쇳조각 20근을 5말의 물에 담가 식힌 후 맑은 물만 따른다. 이 물을 철락음(鐵落飮)이라 한다. 여기에 꾸지뽕 달인 물, 석창포 달인 물을 섞는다. 도합 15말의 물에 쌀 2섬과 누룩 2말을 넣고 술을 빚는다. 술이 다 익으면 자석 3근을 가루 내어 술에 넣고 사흘 밤을 재운다.”

 

이렇게 만든 술을 주야로 취하도록 마신다. 그러면 어느 틈에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게 된다고 한다.

 

 

의약품을 둘러싼 빅브러더

 

빈손으로 산을 내려오며 뜬금없이 영화 한 편을 떠올렸다. 김재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다. 이 영화는 식당과 미디어의 탐욕과 조작에 관한 블랙코미디다. 복잡한 얘기 다 빼면 얼추 이런 내용이다. 방송3사 TV에 나오는 대한민국의 맛집들은 다 조작이다. 식당도 음식도 사장에 종업원까지 모조리 사기다. 돈만 주면 지상파 TV에 맛집으로 소개되고 메뉴까지 그 자리에서 만들어준다. 방송을 본 대중은 그 맛집에 몰린다. 하지만 그 맛집은 십중팔구 맛이 없다. TV에 먹음직스럽게 소개된 그 메뉴도 없다. 방송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다. 물론 극히 드물게 맛이 있는 집도 있긴 하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사람들은 미디어와 식당의 너무도 부적절한 관계에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영화 내용을 모르는 분은 반드시 한번 보시기 바란다. 우선 너무 재미있다. 방송사를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쓴 수법도 기막히다. 그러나 그냥 재미만 있지 않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관람자의 마음도 결코 편치 않다.

 

커넥션의 주연은 방송사와 PD, 식당과 방송을 연결하며 고수익을 올리는 브로커, 그리고 대박의 꿈을 꾸는 맛집들이다. 그렇지만 트루맛쇼는 이 거짓 쇼를 강요해온 빅브러더가 누구인가 묻는다. 영화 속의 브로커와 음식평론가는 TV의 거짓쇼가 가능한 것은 우리나라 맛집 소비자의 수준이 그 정도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빅브러더는 ‘그들’이 아닌 우리의 ‘저급한’ 욕망이라는 것이다. ‘바로 당신들 수준이 그 정도니까 방송사들이 조작한 그런 맛집에 몰리잖아. 그러니까 거짓 쇼가 계속되는 거고.’ 비아냥에 가깝다.

 

맛집과 미디어만 부적절한 관계일까. 건강사업은 더 그렇지 않을까. 어느 때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즈음 미디어에서 특정식물에 대한 홍보가 집중되는 것을 허투루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반인의 식물에 대한 정보력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이로 인해 산야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겪는 수난이 극심해졌다. 호깨나무(지구자), 오가피나무 같은 것들은 이젠 야생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흔해빠진 맹감나무까지 중금속 해독에 좋다며 거덜내고 있는 판이다. 꾸지뽕도 그동안 수난이 많았다. 뿌리째 캐내는 통에 개체수가 많이 줄었고, 요즘 들어서는 더 심해졌다.

 

트루맛쇼에서 그렇듯 꾸지뽕이란 아이템으로 대박을 노리며 백세건강의 욕망을 자극하는 구조화된 커넥션이 있고,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정보와 이미지를 좇아 욕망을 충족시키려 애쓴다. 미디어가 오감을 자극하면 사람들이 몰려들고 대박이 날 것이다. 똑같다. 욕망이라는 빅브러더는 맛집에만 있지 않다.

 

생각해보면 꾸지뽕은 별것도 아니다. ‘공포의 마케팅’으로 초국적 거대 제약업체가 전 지구적으로 유포한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 타미플루를 비롯해 에이즈 치료제, 각종 백신, 항암제, 하다못해 동네 내과의원에서 취급하는 헬리코박터제균제 등은 애당초 관람객, 소비자의 저항이나 반성이 불가능한 빅브러더의 빅브러더가 아니던가.

 

 

 

 

요새는 조류인플루엔자바이러스나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실체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항암제나 헬리코박터 제균제는 실제와는 거리가 먼 극단적인 환원주의의 산물일 수도 있다. 그것이 도대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말인지 모르겠다. 부처의 눈을 뜨고 보면 인간은 꿈처럼 허망한 가짜 세상에서 사는 동물이 아니던가.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무명(無明)을 기반으로 중생의 탐진(貪嗔)이 정교하게 빚어낸 허구의 세상에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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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5] 이름만 좋은 하눌타리? 난치병 치료에 특효! ‘과루실’

 

신동아 / 2011-10-25 10:19


 

 

하눌타리 덩굴과 열매인 과루실.

 

 

 

 

 

 

 

중국 양쯔강 하류에 동굴이 많은 큰 산이 하나 있는데, 수목이 울창하고 안개와 구름이 자욱하게 산정을 덮고 있어서 신선들이 사는 산으로 여겨졌다. 여느 날처럼 이 산에서 나무를 하던 나무꾼이 목도 마르고 피로해 잠시 앉아 쉬고 있었다. 문득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꾼이 그 소리를 따라가보니 커다란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동굴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달게 목을 축인 나무꾼은 나무 그늘 아래 누웠다가 설핏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결에 웬 사람 소리가 났다. 비몽사몽 중에 맞은편 나무 그늘에서 바둑을 두는 두 노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꾼은 혹시 저들이 신선이 아닐까 생각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한 노인이 “우리 동굴에 올해 황금박이 두 개나 열렸네” 하고 말하자 다른 노인이 “쉿!” 하며 “건너편에 나무꾼이 자고 있는데 다 듣겠네” 하며 주의를 줬다.

 

“듣는다고 해도 뭘 걱정하나. 동굴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할 텐데.”

 

“그렇지. 칠석날 정오에 동굴 앞에 서서 ‘하늘 문 열려라, 땅 문 열려라, 황금박의 주인이 들어간다’ 하고 주문을 외워야 동굴 문이 열리지.”

 

나무꾼은 그 이야기를 듣다 잠을 깼다.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방금 봤던 노인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꿈치곤 너무도 생생해 나무꾼은 꿈속에서 들은 대로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드디어 칠석날이 되었다. 나무꾼은 산으로 올라가 동굴 앞에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며 돌문이 열렸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번쩍이는 물체가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하늘로 뻗은 나무덩굴에 금빛 찬란한 박 두 개가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흥분한 나무꾼은 진귀한 보물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따들고는 한달음에 산을 내려왔다. 집에 와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든 것은 보물은커녕 식용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열매였다. 나무꾼은 크게 실망해 이를 마당에 내던져버렸다.

 

며칠 뒤 나무꾼은 다시 그 동굴 가까이 나무를 하러 갔다. 그러다 누워서 쉬고 있는데 또 그 노인들이 나타났다. 다시 노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는데, 그들이 황금박을 도둑맞은 걸 아쉬워하고 있었다. 노인들은 황금박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지만 용도를 알면 황금보다 더 귀한 약재라고 했다. 그 열매를 달여 먹으면 낫기 어려운 폐의 병을 고치고 열을 내리는 좋은 약이라는 것이었다.

 

나무꾼은 내던져버린 황금박을 찾아 정성스럽게 그 씨를 땅에 심었다. 그리고 이듬해 가을에 주렁주렁 황금박이 열렸다. 마침 그해 기침과 가래가 끓고 숨결이 가빠지는 환자와 폐병 환자가 많았다. 나무꾼은 황금박의 열매를 달여 환자들에게 주었는데 모두 병이 나았다. 주변에 이 신기한 약의 이름을 물어봤지만 아는 이가 없었다. 그 후 이 약재의 덩굴이 나무나 울타리를 타고 기어올라가 높은 누각(樓) 같은 곳에서 참외(瓜) 같은 열매를 연다 하여 ‘과루(瓜蔞)’라고 부르게 됐다. 과루는 ‘신농본초’는 ‘괄루(?樓)’라 쓰고 있고, ‘과라(果?)’라고도 하는데 이외에도 이명(異名)이 많다.

 

 

열매는 과루실

 

시골 마을 돌담장을 담쟁이덩굴처럼 무성하게 덮고서 소박한 흰 꽃을 피워내는 과루는 우리 이름으로 ‘하눌타리’라 한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산야나 인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이다. 덩굴손이 있어 호박이나 오이처럼 큰 나무나 담장 울타리 등에 잘 달라붙어 높은 꼭대기까지 뻗어 올라간다. 이로 인해 ‘하늘타리’ 또는 ‘하눌타리’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 과루를 ‘천원자(天圓子)’라고도 해 이를 번역한 것이 하눌타리가 됐다는 말도 있다.

 

박과(호로과)의 식물로 꽃도 박꽃처럼 밤에 피어서 아침까진 실타래를 푼 듯 여러 갈래로 갈라진 꽃을 피우다가 낮이 되면 조막손같이 오므라든다. 7~8월에 수꽃과 암꽃이 같은 줄기마디에 달린다. 암꽃은 꽃만 있는 수꽃과 달리 둥근 씨방이 달려 있는데, 수꽃의 화분을 받아들이면 꽃이 떨어지고 씨방이 커지기 시작한다.

 

장마가 끝나고 오곡이 익는 가을이 오면 하눌타리는 시든 잎들 사이로 황금색의 빛깔 좋은 열매들을 내보인다. 이 열매를 ‘과루실(瓜蔞實)’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옛이야기 속의 나무꾼이 그랬듯이 과루실을 거들떠보는 이는 거의 없다. 생긴 건 그럴듯하지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눌타리는 담을 치료하는 약재로 많이 쓰인다.

 

 

 

 

 

 

 

머루를 닮은 개머루나 다래를 닮은 개다래처럼 과루실도 수박이나 참외를 닮았지만 식용할 수 없는, 빛깔만 좋은 개살구다. 그런 이유로 민간에서 흔히 ‘개수박’또는 ‘쥐참외’라고 한다. 기침이나 해수에 좋다고 서너 개 따다 말려두는 이들이 간혹 있을 뿐 다들 하찮게 여긴다. 겨울에 먹을 게 없는 새들이나 쪼아 먹도록 내버려둔다.

 

그래서 나온 속담이 하나 있다. ‘이름만 좋은 하눌타리’다. 겉모양새나 이름은 그럴듯한데 실속이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하눌타리를 이렇게 개살구 취급하는 것은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치다. 열매와 뿌리, 잎까지 현대의학으로도 안되는 난치병을 치료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약재다.

 

‘언제 쓰자는 하눌타리냐’라는 속담도 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과 비슷하다.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무식해서 쓰지를 못하는 답답한 인간을 비꼬는 말로도 쓴다.

 

한의학에 ‘십중구담(十中九痰)’이라는 말이 있다. 10가지 병 중 9가지가 담병(痰病)이라는 뜻이다. 흔히들 신체의 어느 부위에 심한 근육통이 왔을 때 담이 결린다고 하거나 눈 아랫부분이 거무스레해지는 증세인 ‘다크 서클(dark circles)’이 있으면 담이 많다고 한다. 탁한 가래가 많은 침을 뱉을 때도 담이 성하다는 말을 쓴다. 이 정도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담의 용례다.

 

심장 부위가 아프면서 등짝이 쩍 벌어질 듯한 증상이나 명치끝이 답답해지고 툭하면 체하거나 속이 메스껍고 토하고 위와 장이 굳어져 온몸이 아픈 것, 머리가 어지러워 갑자기 혼절하는 증상도 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담이란 단어가 붙은 한의학적 질병 명칭은 수십 가지가 넘는다. 그러나 담이란 말은 서양의학에는 없는 개념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눌타리는 이 담을 치료하는 약재의 하나다. 그런데 과거에도 이 하눌타리가 어떤 병에 쓰이는지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듯하다. 조선 중기의 실학자 홍만종의 ‘순오지(旬五志)’에 실린 이야기다. 담병에 걸려 눕지도 앉지도 못하고 고생하던 어떤 이가 이 하눌타리를 따다 그냥 벽에 걸어두고만 있었다. 어느 날 그 집에 놀러 왔던 사람이 보고 말했다. “당신은 담을 앓으면서 왜 저 하눌타리를 안 쓰고 걸어놓기만 하고 있는 거요?” 그제서야 병자가 화들짝 놀라며 “아니, 저게 담을 치료하는 데 좋다는 거요?” 하고 반문했다. 여기서 ‘언제 쓰자는 하눌타리냐?’ ‘어디에 쓰자는 하눌타리냐?’라는 속담이 생겨났다고 한다. 기침이나 해수에 좀 쓸 요량으로 걸어두었지만 담으로 인해 생긴 흉비와 결흉 같은 어려운 병증을 고치는 약인지는 몰랐던 모양이다.

 

‘명의별록’이나 ‘동의보감’ 등 옛 의서에 나오는 하눌타리의 효능은 다음과 같다. 흉비(胸痺)를 낫게 한다. 심과 폐를 윤택하게 하고 손발의 거친 주름을 없앤다. 피를 토하는 증상과 사혈장풍(항문으로 피를 쏟는 것으로 오래된 치질 등에서 많이 보이는 증상), 숨이 차고 담이 있는 기침(痰喘)과 결흉(結胸)을 낫게 한다 등이다.

 

 

담으로 인한 흉비에 큰 효과

 

흉비는 담음이나 어혈 등으로 인해 가슴이 그득하면서 얼굴이 붓거나 숨이 차고 아파서 반듯이 눕지 못하는 병이다. 가슴이 막히고 흉부의 통증이 심해져 등까지 통증이 뻗치는 증상을 동반한다. 이를 심통철배(心痛徹背)라고 한다. ‘금궤요락’의 과루실을 이용한 처방을 보면 천식 기침 가래 호흡촉박 등 증상과 함께 대부분 심통철배를 기술하고 있는데, 임상에서도 대부분 격렬한 통증 때문에 호흡할 때 가슴과 등이 빠개질 듯하므로 숨조차 쉬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이 흉비를 현대의학의 협심증이나 관상동맥성 심질환 또는 이와 유사한 병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필자도 이런 증상을 치료해본 일이 꽤 있는데 이때 과루실이 꼭 쓰인다. 물론 과루실 한 가지만 쓰는 것은 아니다. 증상에 따라 반하나 혜백, 황련, 지실 등의 약재가 배합되는데 과루실이 주된 역할을 한다. 이 과루실이 들어간 처방들은 그 효과가 너무 드라마틱해 하루 이틀 만에 병이 호전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약은 효과가 더디다는 속설과 달리 그 신속한 치료효과에 환자도 놀라고 의사도 놀란다.

 

결흉은 명치끝이 그득하니 아프고 가슴이 이유 없이 두근거리며 속이 쓰리고 신물이 오르기도 하며 상열감이 있는 증상이다. 예의 심통철배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 따라선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하고, 계단을 오르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어지럽기도 하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끊이질 않고 식생활이 불규칙한데다 외식이 잦은 현대인에게 흔한 증상이다. 양의학은 속 쓰리고 신물이 자주 오르는 증상을 보고 역류성식도염 등으로 진단해 제산제와 진통소염제, 소화제 등을 쓰지만 증상이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도 과루실이 위력을 발휘한다. 담음(痰飮)이 변해 생긴 병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환자 중 역류성식도염 진단을 받고 오랫동안 양약을 먹었지만 호전과 재발을 되풀이하다 과루실과 황련, 반하가 든 처방으로 치료된 예가 적지 않다. 어떤 환자는 본태성 고혈압으로 수십 년 동안 양약을 복용하다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차올라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늑골 부위가심하게 딴딴하게 굳어 있고 살짝 눌러도 통증이 심했다. 과루실이 들어간 위의 처방으로 그런 증상이 없어지고 몸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소갈병의 성약 과루근

 

약리적으로 보면 과루실의 주성분은 트리테르페노이드 사포닌이다. 이 성분은 폐암과 후두암, 복수암(腹水癌), 육종 등의 암을 억제하는 항암효과가 인정된다. 씨앗인 과루인에도 있지만 열매의 껍질에 이 성분이 더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도 씨앗만 쓰는 것보다 열매 전체를 쓰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것도 잘 익은 숙과가 효과가 크다. 중국의 근대 명의 장산뢰도 ‘본초정의’에서 ‘흉비를 치료하고 소종산결(염증을 가라앉게 하고 맺힌 덩어리를 푼다는 뜻의 종양 치료법)하는 데는 껍질과 씨가 다 있는 전(全)과루를 써야 한다. 그런데 덜 익은 것을 채취해 말려놓은 것은 보기에는 좋으나 약력이 약해 효과가 없으니 차라리 안 쓰는 것이 낫다’고 하고 있다.

 

하눌타리 열매, 과루실만 약이 되는 게 아니다. 곡괭이질을 해 과루의 뿌리를 캐보면 무나 고구마처럼 생긴 길쭉한 덩이뿌리가 나오는데 이를 ‘과루근’이라 한다. ‘천화분(天花粉)’이라고도 부른다.

 

이 과루근은 한방에선 ‘소갈(消渴)의 성약(聖藥)’이라 부를 정도로 그 대접이 극진한 약이다. 소갈은 물을 많이 마시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데도 몸은 여위고 소변량은 많아지는 증상이다. 현대적으로는 당뇨병이나 요붕증에 해당된다. 그러나 과루근엔 인슐린처럼 곧바로 혈당을 내리는 효과는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갈을 치료한다는 걸까.

 

하기야 현대의학의 인슐린도 혈당을 조절할 뿐 당뇨를 치료하는 것은 아니다. 약물치료는 진즉에 포기했다. 안되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현대의학이 손든 것이 어디 당뇨뿐인가. 고혈압, 관절염, 비염, 아토피 등등 흔하디흔한 질환들조차 치료하는 흉내만 내고 있지 초저녁에 포기한 질환들이다.

 

과루근은 치료 기전이 전혀 다르다. 체내의 열로 인해 진액이 소모되어 입이 마르는 증상에 열을 내리고 진액을 보충해 갈증을 푼다. 당뇨로 인해 생기는 소갈증도 열로 인해 진액이 소모되어 나타나므로 이를 치료한다는 것이다. 소갈의 성약이라는 말을 견강부회해 당뇨병을 치료하는 약이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어쨌든 물을 벌컥벌컥 마셔대는 ‘다음(多飮)’을 증상으로 하는 당뇨에 효과가 있다.

 

동의보감에는 “소갈로 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면서 그득한 것과 장위에 오래된 열로 몸과 얼굴이 누렇고 입이 마르는 것을 치료한다”고 했다. 또 “고름과 종독을 삭히며 유옹(유선염과 유방의 종양)과 치루를 고친다. 월경을 잘 통하게 하고 타박으로 인한 어혈을 푼다”고 하고 있다.

 

과루근은 각종 화농성 질환, 유선염, 황달에 좋다. 그리고 임신 때 태반의 융모가 지나치게 증식해 마치 포도송이처럼 자궁 안에 가득 차는 포상기태나 자궁암 등에도 응용하면 효과가 있다. 육종과 복수암 세포를 억제한다. 월경불순을 바로잡고 자궁의 건강을 돕는 효과도 있다.

 

 

 

전남이나 제주 등 남쪽지역에선 하눌타리의 등속식물인 노랑하눌타리가 많이 자란다. 열매가 약간 타원형인 것이 하눌타리와 다르다. 약으로 쓰는 데는 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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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4] ‘다래·솔나리·지치…’ 마음이 부자 되는 늦여름 약초산행

 

신동아 / 2011-09-26 17:44


 

 

 

 

 

 

 

 

 

주요 생필품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MB물가지수가 오르고, ‘바구니물가’도 팍팍 올랐다. 석유값이 오르면서 공공요금의 상승세가 피부로 느껴진다. Y씨의 살림도 내리막이다. 올해만 지나가면 좀 나아지려나 한 게 벌써 몇 년째다. 정권 바뀌며 기대가 컸는데 몇몇 대기업은 대박이어도 자영업자 Y씨의 가계경제는 쪽박이 분명했다. ‘부자 되세요’ 광고문구에 덩달아 곧 부자 될 것 같던 허망한 마음을 조금씩 비우기 시작하면서 Y씨는 주말마다 산행을 했다. 몇몇 지인이 함께 했다.

 

Y씨 일행은 7월 산행에서 등산가방 절반이 차도록 다래를 땄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처럼 마음이 즐거웠다. 충만감. 여느 등산객들처럼 죽자고 산자락만 오르던 이들이 얼마 전부터 이른바 ‘약초산행’을 하면서 생긴 마음의 변화다. 꾼들처럼 산삼 같은 걸 캐서 재미 보자는 취지는 아니었고, 취미 삼아 풀이름도 알아보고 야생화도 좀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돌아다니다보니 지천에 널린 게 다 약초였다. 등산도 하고 약초지식도 쌓고 집으로 들고 가는 ‘부수입’도 생기는 ‘일석삼조’가 됐다. 왜 진작 자연에 관심을 갖지 못했는지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우선 어지간한 산이면 등산길 초입에서 흔히 보이는 풀들. 관심이 없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들인데 사실은 다 약초다. 관절을 튼튼히 하고 어혈을 푸는 쇠무릅(우슬), 자연산 비아그라 비수리(야관문), 축농증과 비염에 쓰는 도꼬마리(창이자), 기미와 습진에 좋은 뱀도랏(사상자), 폐의 기운을 돋우는 맥문동, 꽃은 천연 해열제이고 줄기는 신경통과 담통에 효과가 큰 금은화(인동), 신장을 튼튼히 하는 기생식물 새삼(토사자), 부인병의 성약인 엉겅퀴(대계)·조뱅이(소계)·익모초, 심장병과 폐농양, 대상포진에 특효가 있는 하눌타리(과루실), 소갈(당뇨병)의 특효약 하눌타리 뿌리(천화분) 등이 눈에 띈다.

 

 

알면 약초, 모르면 잡초

 

 

등산객이 산에서 약초를 촬영하고 있다.

 

 

 

 

 

 

 

요즘 한창 꽃을 피우는 마타리(패장초), 뚝갈, 등골나물, 쉽사리(택란), 산국, 이삭여뀌(금선초)도 쓰임새만 잘 알면 손색없는 약초다. 알면 약초, 모르면 그저 줘도 잡초일 뿐이다.

 

산속으로 좀 더 들어가 몸에 적당히 땀이 나기 시작하면 보이는 약초들이 있다. 푸른빛 꽃이 관상용으로도 괜찮겠다 싶은 간장약 용담초, 기관지와 폐에 좋은 도라지(길경), 뿌리를 씹으면 혀끝이 얼얼해오는 신경통약 족도리풀(세신), 위장병에 좋은 삽주(백출,창출), 피로회복제인 둥굴레(옥죽), 출혈을 멎게 하는 오이풀(지유), 중풍으로 수족을 못 쓸 때에 긴요한 진교와 천남성, 계곡 주변에 사람키만큼 크게 자라는 두통약 구릿대(백지), 관절통 근육통에 쓰는 강호리(강활), 아토피와 무좀에 좋은 봉황삼(백선), 요통에 쓰는 어수리(독활), 상기도염이나 기관지염에 효과가 큰 바디나물(전호), 약방의 감초만큼이나 많이 쓰이는 보혈약 승검초(토당귀)…. 어디선가 진한 향내가 발길을 이끈다 싶으면 어김없이 더덕을 발견하게 된다.

 

붉나무에 기생해서 주렁주렁 달라붙은 오배자, 참나무 기생식물인 항암제 겨우살이, 자극성이 강한 향신료 산초열매, 뼈에 좋다는 딱총나무, 빨갛게 익은 꾸지뽕, 야생 오가피 열매 등도 Y씨 일행의 눈길을 벗어날 수 없다.

 

Y씨는 올해 다른 때보다 더 유념해서 산을 다녀선지 다래가 눈에 많이 들어왔다. 봄부터 앙증맞은 다래꽃을 눈여겨봤었는데 올여름 쏠쏠한 수확을 안긴 것이다. 술꾼과는 거리가 먼 Y씨도 다래로 술을 담가 다래주를 먹어보려 한다.

 

다래는 머루와 함께 대표적인 야생과일로 꼽힌다. 전국의 깊은 산골짜기에서 자라는 다래는 한방에서 미후도라고 한다. 손가락 굵기 정도의 둥근 열매로, 빛깔은 푸르고 단맛이 강하며 9∼10월에 익는다. 열을 내리고 갈증을 멈추게 하며 이뇨작용도 한다. 만성간염이나 간경화증으로 황달이 나타날 때, 구토가 나거나 소화불량일 때도 효과가 있다. 비타민 C와 타닌 성분이 많아서 피로를 풀어주고 불면증에도 도움을 준다.

 

약리적으로 비타민과 유기산, 당분, 단백질, 인,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칼슘, 철분, 카로틴 등이 풍부해 항암 식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위암을 예방하고 개선하는 데 효과가 크다. 천성적으로 약하게 타고난 소화기에 늘 조바심을 갖는 Y씨에게 영약이 될 것 같다.

 

Y씨 일행의 다음 산행 목표는 꾸지뽕 따러 가기다.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꾸지뽕나무 몇 그루를 찜해놓고 익기만을 기다렸던 터. 정력을 강화시킨다니 그 기다림이 더 감질나다. 이 역시 술로 담가 선선한 달밤에 풍월주인(風月主人) 흉내라도 한번 내볼 생각이다. 하수오, 오미자, 천문동, 삽주, 산초, 딱총나무열매 등으로도 술을 담글 만하고, 잡다한 약초를 한데 모아 효소를 만들면 건강식품으로 즐길 수 있다.

 

Y씨에겐 뭇산이 자신만이 소유한 곳간처럼 느껴진다. 공짜 ‘수확’을 할 때면 큰돈 되는 것도 아닌데 터무니없이 마음이 부자가 된다. 이것은 또 그가 일상생활에서 힘을 내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여기는 숲 속 약초 천국’

 

공무원으로 일하는 K씨는 7월 중순 토요일 첫새벽에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강원도 정선의 깊은 산골이다. 서울과 천안 등 각지에서 차를 몰고 달려올 정겨운 이들을 생각하며 카메라를 다시 점검한다. 이번 산행의 목적은 솔나리를 보는 것이다. 멸종위기종인 솔나리를 카메라에 담는 것. 나머지는 모두 덤이다.

 

 

 

 

 박새(여로).

 

 

 

 

 

 

목적지에 도착한 K씨 일행은 잠시 회포를 풀고 계곡을 따라 산을 올랐다. 바디나물이 보라색꽃을 피우고 있고 여름꽃인 주홍색 동자꽃도 아름답다. 국화과의 절굿대도 둥근 공 모양의 꽃을 피웠다. 절굿대 뿌리의 생약명은 누로다. 열을 내리고 젖이 안 나올 때 주로 쓴다. 꽃은 추골풍이라 해 피를 잘 돌게 하는 약이 된다. 어린잎은 나물로도 먹는다.

 

박새(여로)도 흰꽃을 활짝 열었다. 꽃은 관상용으로 심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뿌리를 잘못 먹었다간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수 있는 독초다. 옛날에 사약을 만들 때 천남성 초오 등의 독초를 함께 넣었다고 한다. 그 독성 때문에 적당히 쓰면 중풍 황달 종창 등에 효능이 있다. 구토를 다스릴 때나 살충제의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뿌리에서 멜라닌 생성과 관련되는 효소인 티로시나아제의 활성을 막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피부미백 화장품 원료로서 그 가치를 시험받고 있다.

 

발이 푹신할 정도로 토질이 좋아서 산삼이 꽤 나온다는 산인데 아직까지 K씨 일행은 운이 없다. 병조희풀 군락과 능선 뒤편의 참당귀군락을 지나쳐 K씨 일행은 드디어 수줍게 분홍빛 꽃을 피운 솔나리와 만났다. 이파리가 솔잎을 닮았다고 해서 솔나리라 불리는 이 풀은 개체수가 해마다 줄어들어 멸종위기 2급 식물로 지정됐다. 강원도의 깊은 산속에서 주로 자란다. 한약명은 백합이다. 해수 기침 폐결핵 각혈 등에 사용한다. 구황기엔 식용하기도 했다. 모두들 연분홍의 그 소박한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느라 몰아지경이다.

 

K씨는 6년째 블로그를 운영하며 약초에 대한 글과 산행기를 올리고 있다. 그의 약초 관련 글은 전문적이다. 약물의 특허와 관련된 일을 하기 때문에 그의 블로그엔 생약을 이용한 각종 특허정보로 가득하다. 약초 사진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전문가 수준의 사진들을 올린다. 얼마 전에는 출판사로부터 블로그의 글과 사진을 모아서 출판을 한번 해보자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

 

솔나리를 뒤로하고 진교와 잔대(사삼)꽃도 신물나게 찍고 뱀차즈기 군락지를 지나서 산길을 헤매다보니 속단과 민백미꽃 군락지가 펼쳐진다. 5~7월에 흰 꽃이 피는 민백미꽃은 이제 열매를 달고 있다. 뿌리가 국수다발처럼 가늘고 희다 해서 백미라는 이름이 붙었다. 두통 관절염 임병 신장염 부종 등에 쓴다. 청열작용이 강하므로 병증을 잘 파악해 써야 한다. 어린잎은 강장제로 효능이 있어서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는데 독성이 있어서 충분히 우려서 데친다.

 

아아, 지치와 시호도 있다. 일행 중 누군가가 결국 감흥을 이기지 못하고 이 산의 일급비밀을 발설하고 만다.

 

“여기는 푸른 숲 속의 약초 천국이다.”

 

 

꿀맛 약초 수제비

 

지치는 한약명이 자초(紫草)다. 볼품없는 흰색의 조그만 꽃이 핀다. 그러나 뿌리는 다르다. 지치는 그 뿌리가 자줏빛에 가까운 붉은색을 띠어서 자초라고 부른다. 지초라고도 한다. 뿌리에서 자주색 염료를 얻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우리 생활과 친숙하다. 진도의 유명한 홍주도 이 지치 뿌리를 재료로 해서 빚은 술이다. 예전에는 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는데 요즘은 깊은 산속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귀해졌다.

 

수십 년 동안 약초를 캐며 살아온 약초꾼들이나 시골 노인들 중에는 팔뚝만한 지치 뿌리를 캐 먹고 고질병이나 난치병을 고쳤다는 얘기를 하는 이들이 있다. 혹자는 암 치료의 성약(聖藥)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 효과가 산삼보다도 낫다는 설도 있다. 약성이 빼어나다는 말들이다.

 

전통적으로는 홍역이 유행할 때 해열을 위해 썼다. 피부에 습진이나 반진 등이 생겨 발열이나 혈열이 있을 때도 효과가 크다. 그래서 부스럼이나 종기가 났을 때나 태독(아토피) 건선 백납 등에도 쓴다.

 

면역을 억제시키는 물질인 시코닌 등을 함유하고 있어 면역기능이 항진되어 일어나는 건선이나 관절염, 담마진, 혈관염(자반증) 등에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 화농성 염증에도 그 효과가 탁월하다.

 

하지만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심장질환이나 뇌질환의 경우엔 조심해야한다. 지초는 혈액응고 효과가 있어 혈전의 형성이 문제가 되는 질환인 관상동맥경화나 뇌경색에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갑상선 기능항진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시호는 상한(독감)으로 발열과 오한이 교대로 일어나는 증상, 유행성 열병으로 안팎의 열이 풀리지 않을 때 주로 쓴다. 학질에도 썼다. 이담작용이 강하고 독성은 약하다. 산형과의 식물로 우산살이 펼쳐진 것 같은 노란색 꽃이 핀다. 줄기는 푸르고 자줏빛이 나며 잎은 댓잎 같다. 시호 뿌리에 들어 있는 시호 사포닌은 만성 신장염이나 간염에 뛰어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치와 시호는 모두 석회암층에서 잘 자란다. 이곳이 석회암지대에 속하는 모양이다.

 

 

 

 

K씨 일행은 오늘 귀한 약초를 많이 만났다. 내려오는 길에 반하와 땃두릅, 둥근 이질풀, 마타리도 촬영하고 일정을 마감했다. 산에서 내려온 K씨 일행은 능이버섯과 좀싸리버섯, 표고버섯으로 도시에선 구경할 수 없는 특별한 맛의 수제비를 끓였다. 행복감이 밀려온다. 마침내 점잖은 K씨도 참을 수 없다. “수제비 끓인 아무개님은 능이 수제비집 개업하세요.” 아무개님의 말이다. “참나, 이런 재료를 아무데서나 구한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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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3] 장 기능 허약체질에 최고의 영약 ‘삽주’

 

신동아 / 2011-08-25 14:05


 

 

 

 

 

 

 

 

이운(怡雲)’이라는 말이 있다. ‘구름을 즐긴다’는 뜻이다. 중국 남조의 제·양나라때 유명한 도사이자 의가인 도홍경(陶弘景·452~536)이 제나라 고제의 부름을 받았다. “산중에 무엇이 있길래 그대는 미련을 두고 조정으로 돌아오지 않는가?”

 

도홍경은 이렇게 답시를 썼다. 이 시에서 이운이란 말이 나왔다.

 

 

산중에 무엇이 있느냐고요?       (山中何所有)

산마루에 흰 구름이 많지요.       (嶺上多白雲)

다만 홀로 즐길 뿐이지              (只可自怡悅)

그대에게 가져다줄 순 없습니다. (不堪持贈君)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지면 그리워지는 게 있다. 세속을 벗어나 산중에서 경(經)을 읽으며 약초뿌리나 캐고 사는 삶이다. 필자에겐 그렇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혹여 꿈만 꾸다가 이 세상의 연기(緣起)에 묶여 그저 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아무 근심걱정 없이 자연을 벗하며 사는 은자(隱者)의 소요로운 경지. ‘이운’이 담고 있는 뜻이다. 그러나 ‘구름을 즐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번뇌와 탐욕으로 물든 의식을 가지고 될 일이 아니다. 시쳇말로 먹고살기 바빠 마음 편히 하늘의 구름을 쳐다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모산(茅山)의 도사 도홍경은 일찌감치 ‘이운’의 삶을 꿈꾸었다. 40세가 되자 그는 제나라의 꽤 높은 관직을 내팽개치고 식솔을 끌고 강소성 모산의 산속으로 들어갔다. ‘영명(永明)의 치(治)’로 이름 높은 제나라 무제가 그를 못 잊어 모산에 여러 번 사람을 보냈지만 응하지 않았다.

 

후에 양나라의 무제도 그에게 하산해 국정을 보필하기를 권했다. 도홍경은 한 폭의 그림을 무제에게 보냈다. 무제가 그림을 펼쳐보니 물소 두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소 한 마리는 청산녹수 사이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금으로 된 멍에를 쓰고 힘들어했다. 무제는 이를 보고 더는 하산을 권하지 않았다. 다만 국가에 중대한 일이 생기면 사람을 그에게 보내 자문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그를 ‘산중재상’이라 불렀다.

 

 

선학(仙鶴)이 천년을 지킨 약초

몇 년 전 중국 당국이 ‘삽주’를 활용해 ‘사스’ 예방약을

만든 적이 있다.

 

 

도교 모산종의 창시자인 도홍경은 모산의 산중에서 유불도 삼교를 겸수(兼修)하면서, 도교의 외단술과 양생술을 깊이 연구했다. 갈홍(葛洪) 이후 가장 뛰어난 연단가로 알려진 그는 의학에도 정통해 ‘본초경집주’‘명의별록’ 등을 남겼다. 그의 ‘본초경집주’는 처음으로 약초의 분류체계를 세워 오늘날까지 줄곧 인용된다.

 

도홍경이 은거한 모산은 도교 모산파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모산 삽주(茅蒼朮)라는 약초의 산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삽주는 중국에서는 출(朮)이라고 하는데, 국화과의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의 야산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약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삽주는 중국의 그것과 종이 좀 다르다. 어쨌든 수년 전 사스(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가 유행일 때 중국 당국에서 이 삽주를 활용한 처방들을 사스 예방 및 치료약으로 내놓아 한동안 중국에서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다.

 

삽주는 위와 장을 튼튼히 하는 작용이 뛰어나 장기능이 허약한 이에겐 최고의 영약이라 할 수 있다. 위장의 찬 기운과 담음을 몰아내 밥맛이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지게 한다. 또 관절이나 체내의 풍습을 치료한다. 그래서 식욕부진, 복부창만, 오심, 구토, 설사를 비롯해 몸이 무겁고 나른한 증상에 쓰인다. 관절에 물이 차는 삼출성 류머티즘과 수족저림, 관절통, 부종 등을 치료하며, 습사가 심한 유행성 질병과 감기 등에도 많이 사용된다.

 

 

 

 

 

동아시아 최고(最古)의 본초서 ‘신농본초경’은 삽주에 대해 “맛이 달고 쓰며 따뜻하다. 독이 없다. 풍한습으로 인한 비증(수족이 저리고 아픈 증상)을 치료한다. 죽은 기육을 살리고 경(몸이 뻣뻣해지는 증상)과 저(악성 종기, 피부병)를 다스린다. 땀을 그치게 하고 열을 제거한다. 음식을 잘 소화시킨다.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배고픔을 잊게 된다. 일명 산괴(山괴)라 한다”고 적고 있다.

 

이 삽주는 흔히 창출(蒼朮)과 백출(白朮) 두 종류로 나뉜다. 그런데 도홍경 이전에는 구분이 없이 그냥 출로 통용됐다. 북송 때의 구종석은 “상한고방과 신농본초경에는 출이라고만 했지 창출과 백출로 나누지 않았다. 그런데 도은거(隱居·도홍경의 호)가 출에 두 가지가 있다고 해 그 후 창·백의 두 종으로 나뉘었다”고 쓰고 있다.

 

 

적출과 백출 차이

 

 

모산의 도사 도홍경은 단면이 붉은색을 띠는 모산 삽주를 주의 깊게 관찰해 이를 적출(赤朮)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또 잎의 생김새와 뿌리줄기의 맛, 약성 등의 차이를 소상히 기술했다. 그 내용을 보면 적출은 잎이 작고 백출은 잎이 크다, 또 적출은 잎자루가 없는 데 반해, 백출은 잎자루가 있고 털이 있다, 뿌리는 적출이 조금 쓴맛이 나며 기름(정유 성분)이 많은데, 백출은 맛이 달고 기름이 적다 등등이다. 도홍경은 약재의 생산지와 채집시기, 채집방법과 약물의 감별법, 제련과정 등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견해를 덧붙였다. 모두 도홍경 스스로 경험해 얻은 내용으로 당대의 어느 의가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홍경이 모산 삽주의 특징을 살려 이름 지은 적출은 어느 틈에 이름이 바뀌어 송나라 이후에는 의가들이 모두 창출로 표기하게 된다. 오늘날 중국 약전에선 창출을 모(茅)창출과 북(北)창출로 나누는데, 이 모창출이 바로 모산의 삽주를 가리킨다. 북창출은 만주삽주로 불리며 모창출과는 잎의 생김새나 뿌리의 기미가 조금 차이가 난다.

 

요즘의 식물명으로 ‘가는잎삽주’라고 하는 모창출은 남(南)창출이라고도 하며 유감스럽지만 우리나라에선 나지 않는다. 북창출도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에서 자생하는 삽주는 일본의 관동지방에서 많이 나는 관(關)창출의 일종인데, 중국에서는 약전에 수록하지 않은 식물이다. 약재로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약재로 쓰기 때문에 주로 관동지역에서 수출용으로 재배되고 있다. 그래서 도홍경이 “동경출(東境朮)은 크지만 매운맛이 없어 쓰지 않는다”고 한 것이 관창출, 곧 우리나라 삽주를 가리키는 것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다. 중국의 창출을 구하기 어려운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이를 창출로 써왔다.

 

도홍경이 ‘본초경집주’를 써 6세기까지의 동아시아 본초학을 집대성했다면, 이시진은 ‘본초강목’으로 16세기까지의 본초학의 정화를 집대성한 약성이라고 할 수 있다. 도홍경이 모산에서 삽주를 찾은 뒤 거의 1000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모산 삽주와 관련해 마침 이시진의 이야기가 하나 전한다.

 

모산의 도관을 참배하고 이 산에서 약초를 캐던 이시진은 바위틈에서 자라는 큰 삽주를 보았다. 향기가 멀리까지 코를 찔렀고 신령한 기운이 감돌았다. 삽주가 자라는 바위의 생김새도 한 마리 학과 같았다. 그는 바위를 타고 올라가 삽주 뿌리를 캤다. 괭이질을 하는 도중에 조그만 돌이 하나 떨어져 나왔다. 학의 벼슬처럼 생긴 부위에서 부러진 돌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난데없이 피가 일곱 방울 뚝뚝 떨어졌다. 이시진이 놀라 뒤로 물러서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바위가 학으로 바뀌어 하늘 높이 날아갔다. 삽주 뿌리를 캐서 보니 신기하게도 쪼개진 면에 핏빛 반점이 일곱 개가 있었다.

 

 

음벽을 치료하는 난치병의 특효약

 

 

그 후 모창출은 단면에 적색의 반점이 일곱 개가 있으며 선학이 지키는 신성한 약초여서 다른 곳의 삽주보다 약효가 월등하게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신선이 되어 우화등선했다는 도홍경의 유지가 있어 혹시 선학이 1000년 동안 이시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여담이지만 도홍경은 85세에 승천해 신선들이 사는 봉래도로 갔다고 한다. 고서시(告逝詩) 한 수를 쓴 후 하늘로 올라갔는데, 지상에 남아 있는 몸에서 수일 동안 향기가 진동했고 구름과 연기가 모산의 온 산천에 자욱했다고 전한다.

 

역대 본초서의 삽주 그림들. 왼쪽부터 송대 당신미, 송대 왕계선, 명대 이시진이 본초서에 수록한 그림이다.

 

 

 

 

 

 

 

 

 

 

삽주의 뿌리 사진.

 

 

 

 

 

 

 

 

판소리 흥보가를 듣다보면 ‘남양 초당 경 좋은데 만고지사 와룡단’이란 말이 나온다. 만고지사는 삼국지에 나오는 촉의 제갈공명을 가리킨다. 제갈량이 출사하기 전 초려를 짓고 살았던 곳이 하남성 남양현이라고 한다. 이 무렵의 일인 듯하다. 갈홍의 ‘포박자’에 전하는 얘기가 하나 있다.

 

전쟁과 기근으로 사람들의 삶이 피폐하기 짝이 없었던 한나라 말 하남성 남양현에서 문씨 성을 가진 여자가 난리를 피해 호산(壺山) 산속으로 도망을 갔다. 산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굶주림으로 다 죽게 되었는데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삽주를 캐먹으라고 일러줬다.

 

그녀가 삽주의 뿌리를 캐 먹자 배고픔이 없어지고 점점 몸에 기력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삽주를 캐 먹으며 산속에서 10여 년을 살다 고향을 찾아 돌아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모두 놀라워했다. 문씨의 안색은 마치 앳된 아가씨 같았고 기력도 젊은 남자 못지않았다. 문씨의 얘기가 사람들 사이에 전해져 남양현 인근에선 삽주가 신약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 남양현에 진자황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의 부인 강씨가 문득 병에 걸렸다. 식욕이 고르지 못하고 얼굴빛이 누렇고 몸이 무거워져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진자황은 사방에서 의원을 청해 치료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어느 날 그는 문씨의 이야기를 듣고 삽주를 캐다 처에게 복용을 시켰다. 그랬더니 강씨의 병이 나은 것은 물론 안색과 기력이 20대와 같이 됐다.

 

북송 때의 한림학사이자 의가인 허숙미의 ‘보제본사방’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허숙미 본인이 음벽(飮癖)이라는 병을 앓은 지 30년이 되었다. 음벽은 소화기질환으로, 명치가 더부룩하고 식욕이 없으며 음식을 먹지 않아도 배가 차 있는 것 같고 신물을 토하기도 하는 증상이다. 병이 깊어지면서 희한하게 여름이 되면 몸의 한쪽은 땀이 나지 않고 다른 한쪽은 땀이 났다.

 

그는 소싯적부터 매일 시를 읊고 문장을 짓는 데 시간을 보내다보니 운동량이 매우 부족했다. 세월이 흘러 어린 시절의 건강한 체력이 점차 쇠약해지고 식욕도 부진해졌다. 독한 약을 써도 큰 효과가 나질 않아 모든 약을 물리치고는 다만 삽주를 가루 내어 대추살과 섞어 환으로 만들어서 하루 3번씩 3개월을 복용했다. 그랬더니 음벽이 나아 배가 아프고 구토하던 증상이 다 없어졌고 답답하던 흉격이 편해지고 식욕이 살아났으며 땀도 정상이 되었다. 시력도 좋아져 등불 아래서 조그만 글씨도 쓸 수 있었다. 모두 삽주의 뛰어난 효과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위암에 효과 있다는 주장도

 

본초학에서 방향화습약으로 분류하는 삽주는 건위제로 소화불량증에 널리 쓰이지만 신장 기능이 약해져 소변량이 적을 때, 위염이 있거나 몸이 붓고 어지럼이 있을 때, 습사로 인해 온몸이 아플 때도 쓴다. 아트락틸론이라는 정유 성분이 있어서 진정작용과 방향성 건위작용을 한다. 비타민A 및 비타민D도 함유되어 있어 야맹증에도 효과가 있다. 항암작용도 있어서 중국에서는 폐암과 위암에 효과를 보았다는 보고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민간에서 위암에 좋은 효과를 보았다는 사례가 꽤 있다.

 

최근 국내에선 삽주 추출물이 비듬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효능이 있고 치주질환과 치은염에도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피부미백을 위한 식이섭취물로 연구되기도 하고 또 삽주에 쑥과 안신향을 가미해 멸균향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도 나오고 있다.

 

 

 

 

7월경부터 9월 사이에 흰 꽃이 피는 삽주는 야생화로도 제법 품격이 있다. 국화과 꽃답게 향기도 좋다. 겨울이나 초봄에 잎이 떨어지고 줄기가 남아 있을 때 캔다. 우리나라 삽주는 섬유질이 많은 모근, 수삽주를 창출로 쓰고 전분이 많은 덩이진 어린 뿌리줄기, 암삽주를 백출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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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2] 수험생·정신노동자에게 좋은 총명탕 재료 ‘석창포’

 

신동아 / 2011-07-25 18:08


 

 

계곡 바위틈에서 자라는 석창포.

 

 

 

 

 

 

 

청정한 계곡 주위로 수백 년 된 비자나무숲이 아름다운 전남 화순 천태산 개천사에서 금요일 저녁마다 속인(俗人) 열댓 명이 모여 경전을 읽는다. 주지스님이 숫타니파타 강의와 참선을, 도반 한 명이 태극권을 지도한다. 모두들 회색의 도시를 벗어나 졸졸거리며 물안개를 피우는 계곡을 찾아서 그 물로 목을 축이고 소슬한 산사의 정취를 누린다. 계곡 주변의 때죽나무, 찔레, 금은화 꽃향기가 한데 어우러져서일까. 세상을 잠깐 떠나온 것뿐인데 산사의 밤이 꿀보다 달콤하다.

 

요사채의 불빛도 꺼지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가 수를 놓는다. 이 산의 계곡 바위틈과 그늘진 돌무더기 위에 석창포(石菖蒲)가 도 닦는 은자처럼 숨어산다. 노자는 “곡신(谷神)은 죽지 않는다. 이를 현묘한 암컷(玄牝)이라 한다. 이 암컷의 문을 천지의 뿌리라 한다”고 했다. 천태산의 조그만 계곡들엔 ‘곡신’이 살아 있다. 멸종 위기의 반딧불이가 보이는 것이 그 증거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계곡과 하천에서 반딧불이가 살고, 그 계곡엔 반딧불이의 먹이가 되는 다슬기가 살고, 바위와 돌에는 이들이 먹고살 만한 이끼류가 붙어산다. ‘현묘한 암컷의 문’으로부터 나온 계곡의 물은 이들을 키우며 쉼 없이 흐른다.

 

천태산 골짜기는 생명을 키우는 순환의 고리가 끊기지 않아 스스로 그러하고(自然), 억지로 하지 않아도 다 하는(無爲而無不爲) 본연의 상태를 간직하고 있다. 곡신이 죽지 않고 현묘한 암컷의 문이 살아 있는 곳이라야 맑은 물과 이슬로 몸을 씻고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며 석창포가 산다. 청신한 창포향이 계곡 주위에 은은히 퍼지게 하는 일은 인위(人爲)로서는 어렵다.

 

 

머리 감는 데 쓰는 창포와는 달라

 

필자가 이곳에서 석창포를 처음 본 것은 수년 전의 일이다. 우연히 겨울등산을 왔다가 발견한 석창포는 한겨울에도 푸르고 싱싱한 잎줄기를 자랑했다. 잎사귀를 뒤척이면 은은한 향기가 손에 뱄다. 한의사가 약초의 실물을 직접 보고 그것이 자라는 곳을 살피는 순간의 기쁨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마치 숨은 보물을 찾은 듯하다고나 할까. 두어 뿌리를 캐 뿌리의 생김새를 보고 돌아와 부리나케 자료를 뒤졌다.

 

흔히 창포 하면 보라색이나 노란색 꽃이 피는 붓꽃과의 꽃창포를 떠올리기 쉽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꽃창포는 오월 단오에 잎과 뿌리를 우려내 머리 감는데 쓰는 창포속의 식물과는 조금도 관련이 없다. 약재로도 쓰지 못한다. 약재로 쓰는 것은 천남성과의 창포인데 여기엔 두 가지가 있다. 창포(菖蒲)와 석창포다. 둘 다 물을 좋아하지만 창포는 주로 호수나 연못가의 습지에서, 석창포는 냇가나 산간 계곡의 흐르는 물가 바위틈이나 돌무더기 사이에서 자란다.

 

약용이라하지만 창포는 기미와 약성이 달라 약재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단오에 머리감는 데 쓰는 정도다. 뿌리를 캐서 씹어보면 비린내가 난다. 맵고 알싸한 맛의 석창포와 확연히 다르다. 민간에선 비린내 나는 이 창포를 백창(白菖) 또는 수창(水菖)이라고 한다. 한때 약재상들이 이 창포을 썰어다가 석창포라고 유통시키는 일이 많았다. 서울 경동시장에서도 그런 사례가 흔했는데 요즘은 그렇게까지 지각 없지는 않다.

 

석창포의 잎줄기는 마치 양날이 선 칼, 검(劍)처럼 매끈하게 생겼다. 그 때문에 ‘수검초(水劍草)’라고 불린다. 옛날 도인들이 석창포를 가리키며 속인들이 잘 모르게 쓰던 은어라고 한다. 무더기로 자라는 모습이 흡사 부추와 같다고 하여 ‘요구’라고도 하는데 ‘곡술(曲術)’에 “요임금 시대에 하늘의 정기는 밭으로 내려와 부추가 되고, 음기는 감응해 창포가 되었다”고 한 데서 유래한다. 또 구절창포(九節菖蒲)라고도 한다. 석창포의 뿌리는 언뜻 지네처럼 보일 만큼 마디가 많은데, 한 치 길이에 아홉 마디(一寸九節)는 되어야 약효가 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서 대량 재배도

 

 

석창포는 직장인 등 정신노동자에게 좋은 성분을

담고 있다.

 

 

 

 

 

창포와 석창포는 겉으로 쉽게 식별할 수 있다. 창포는 보통 키가 60~90㎝ 정도로 자라고 잎줄기가 뿌리에서부터 곧게 선다. 잎맥이 있어서 꼿꼿하다. 뿌리가 대나무 뿌리처럼 굵고 마디가 성기며 통통하다. 석창포는 아무리 자라도 30~50㎝ 정도다. 가는 잎줄기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자란다. 중국 청대 의가 이시진이 지은 ‘본초강목(本草綱目)’은 요즘의 어느 서적보다도 그 차이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못이나 늪지에 나며, 잎줄기가 부들을 닮고 뿌리가 굵고 높이가 두세 자까지 자라는 것은 니창포(泥菖蒲)다. 백창(白菖)이라고도 한다. 시냇물이나 산간 계곡에 나며, 부들 닮은 잎줄기에 뿌리가 가늘고 높이가 두세 자까지 자라는 것은 수창포(水菖蒲)다. 계손(溪蓀)이라고 한다. 이들과 달리 물과 돌 사이에 나며, 뿌리가 수척하고 촘촘한 마디가 있으며 높이가 겨우 한 자 남짓 자라는 것이 석창포다. 관상용으로 심기도 하는데 한 해가 지나 봄이 되어 잎을 잘라주면 자를수록 잎이 가늘어지고, 숟가락 자루처럼 뿌리의 마디가 변한다. 그 중 뿌리의 길이가 두세 푼, 잎의 길이가 한 치쯤 되는 석창포를 특별히 전포(錢蒲)라고 부른다. 약재로는 석창포를 써야 하며, 나머지는 모두 적당치 않다. 석창포는 새 잎이 묵은 잎을 대신하며 자라나므로 사계절 내내 푸르다.”

 

세간에 함초박사로 유명한 해남의 박동인씨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꽤나 까다로울 듯한 이 석창포를 엉뚱하게도 비닐하우스에서 대량 재배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다. 유기농퇴비를 써 생육을 촉진시켜 2~3년이면 출하가 가능할 정도로 키워냈다. 신통방통한 일을 한 그는 이 석창포가 앞으로 대단히 주목받는 약재가 될 것이라고 호언했다. 왜 그런가 물었다. 그는 대뜸 “이젠 두뇌의 시대 아니냐, 바로 머리를 좋게 하는 약이 석창포다. 도시에 살면 스트레스가 많아 심혈관질환이 늘어난다. 그런데 석창포는 막힌 심장의 구멍을 뚫어주는 약이다. 또 눈을 밝게 하고 귀도 잘 들리게 하며 목소리도 잘 나오게 한다. 그러므로 현대인에게 갈수록 긴요한 약물이다”라며 거침없이 쏟아냈다. 걸걸한 그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보니 요즘 사람들에게 딱 필요한 약이다.

 

동의보감을 보면 “석창포는 심장의 구멍(心孔)을 열어주고 오장을 보한다. 구규(九竅: 눈, 귀, 코의 여섯 구멍과 입, 항문, 요도의 세 구멍)를 잘 통하게 한다. 눈과 귀를 밝게 하며, 음성이 잘 나오게 한다. 건망증과 치매를 낫게 하고 머리를 총명하게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냥 쉽게 읽을 일이 아니다. 바로 이것 아닌가. 현대인의 두뇌와 오관과 심장을 위해 자연이 꽁꽁 숨겨두었던 비약(秘藥)이 바로 석창포였다.

 

과거 신선술을 꾀하는 방사들에게 석창포는 불로장생의 약이었다. ‘도장경’에도 “수초(水草)의 정영(精英)이자 신선의 영약”이라고 기록할 정도고 ‘신농본초경’에도 상약 중에서 으뜸으로 치고 있다. 한나라 때 유향의 ‘열선전’에 나오는 상구자서의 이야기는 그런 불로장생의 고전적 ‘썰(說)’ 중 한 예다. 상구자서는 나이가 300살이 되도록 살면서 조금도 늙지 않았는데, 궁벽한 곳에서 돼지를 기르고 ‘우’라는 악기를 불며 살았다. 주변에서 그에게 불로(不老)의 술법에 대해 물으면 “석창포의 뿌리를 삽주와 함께 먹고 물을 마시면 배고프지도 않고 늙지도 않게 된다”고 했다. 그에 대한 소문을 듣고 황실의 귀인들과 부호들이 찾아와 석창포를 복용했지만 모두들 1년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우리나라의 ‘향약집성방’ 신선방도 이 얘기를 싣고 있다.

 

 

기억력 증진, 심장 강화

 

그런데 사실 현대인이 솔깃해할 석창포의 효능은 ‘불로장생의 영약’이 아니다. 그런 ‘썰’은 믿거나 말거나다. 그보다는 박동인씨의 말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석창포는 두뇌를 총명하게 하고 기억력을 증진시키며 막힌 심장의 구멍을 뚫어주고 이목을 밝게 한다. 매일매일 격심한 경쟁 속에서 스트레스에 치이고 극렬한 두뇌의 소모에 시달리며 뻐근해오는 심장을 걱정하고 살아야 하는 현대인에게 석창포라는 약물은 눈이 번쩍 뜨이는 영약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무슨 약리적 성분이 있어서 석창포가 이런 효능을 내는 걸까. 솔직히 말하면 현대적 약리연구는 그 내용이 턱없이 부족하고 불만족스럽다. 석창포 뿌리에는 아사론이라는 휘발성 정유 성분과 페놀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것들의 효과는 심신을 안정시키고 흥분을 진정시키는 것이다. 장관에서 소화액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근육의 경련을 푸는 진경작용을 하기도 한다. 베타 아살론이라는 성분은 관상동맥의 혈류량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한다.

 

 

 

 

 

요즘 화원에 가면 석창포 분재도 구입할 수 있다.

 

 

 

 

 

 

이런 몇 가지 약리적 이해를 가지고는 ‘신농본초경’과 여타 본초서에 쓰여진 개심공(開心孔) 보오장(補五臟) 통구규(通九竅) 총이명목(聰耳明目) 출음성(出音聲) 불건망(不健忘)을 다 설명할 수가 없다. 고인들이 뻥이나 치며 없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이들은 아니었을 터이니까 믿을 수밖에.

 

최근 국내에서 나온 석창포에 대한 연구논문들을 보면 학습능력과 기억력 향상, 알츠하이머형 치매와 건망증 개선 등에 석창포가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자폐아들에게도 임상적 효과가 있다. 고무적인 것은 암을 치료하는 효능도 있다는 게 새롭게 밝혀졌다는 것이다. 석창포의 메탄올 추출물이 비장의 T림프구를 증가시키고 백혈병 암세포에 대해서 강한 세포독성을 발휘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암을 예방하는 효소를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수험생을 둔 부모치고 ‘총명탕’을 모른다면 좀 이상할 것 같다. 이 총명탕의 주된 재료가 석창포다. 여기에 원지, 복신 등 두 가지 약물이 더 들어가 그 효과를 극대화한 처방이 총명탕이다. 중요한 것은 석창포 한 가지만으로도 두뇌가 맑아지고 기억력이 증진되는 효과가 크다는 것. 여기저기 연구결과가 많다. 고전적인 사례도 많은데, 갈홍의 ‘포박자’에 나오는 한중이라는 이의 얘기가 인구에 회자된다. 그는 석창포를 13년동안 먹고 추위를 모르게 됐고, 하루에 만언(萬言)을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좋아졌다고 한다.

 

석창포는 뿌리만 약효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잎과 꽃을 모두 약으로 쓸 수 있다. 잎을 달인 물로 머리를 감으면 모발이 윤기가 나고 비듬이 없어진다. 차로도 만들 수 있다. 창포잎을 덖거나 데쳐서 비빈 다음 건조시키면 창포잎차가 된다. 꽃 역시 잘 말려두었다가 뜨거운 물로 우려내면 향기로운 차가 된다. 모두 두뇌의 기능을 증진시키고 눈과 귀를 밝게 하므로 수험생이나 정신노동자에게 유용하다. 중풍이나 관상동맥경화 같은 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사실 석창포의 약리적 쓰임새는 상당히 범위가 넓다. 앞서 이야기한 효능 외에도 조울증이나 정신분열과 같은 중증질환에도 효과가 있고, 비위의 기능이 떨어져 오심 구토가 심할 때도 쓰인다. 또 풍습으로 인해 열이 나고 오한이 들거나 관절과 근육이 쑤시고 아플 때도 쓰인다. 창포즙은 구강을 청결하게 하는 효능도 뛰어나다. 또 농이 멈추지 않는 궤양이나 피부염증 등에 분말로 만들어 뿌리면 쉽게 가라앉기도 한다.

 

 

문방오우의 하나로 불리기도

 

옛날부터 석창포는 문인과 학자들의 벗이 되어왔다. 뿌리를 차처럼 달여 마시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지는 약효로도 그렇지만, 화분에 심어 곁에 두면 등불이나 촛불 아래서 글을 읽을 때 그을음과 연기를 흡수해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 창포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 눈을 씻으면 대낮에도 별이 보일 정도로 눈이 밝아진다고 해서 더 사랑을 받았다. 사계절 변함없이 푸름을 간직하며 수석과 어울리는 조촐한 운치를 지녀 중국과 조선의 글줄깨나 쓰는 선비치고 석창포에 대한 시를 남기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문방사우에 더하여 문방오우의 하나로 불리기도 했다.

 

 

 

 

요사이 이 석창포가 분재로 나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서책을 가까이 하며 정좌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옛 선비의 모습들이 아주 잊히진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필자도 이번 주엔 개천사 계곡에서 소담한 창포 한 포기를 얻어 책상머리에 올려서 눈과 귀를 밝게 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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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 01] 산정(山精)으로 불리는 신선의 약초 ‘하수오’

 

신동아 / 2011-06-24 18:04

 하수오의 꽃과 줄기, 백하수오, 적하수오 뿌리(왼쪽부터).

 

 

중국 기환무협의 원조로 불리는 ‘촉산기협전’은 기기묘묘한 법술과 신비한 비검술을 쓰는 아미산 도사들의 활약을 그린 동아시아의 판타지소설이다. 1930년대 무명의 서생 이민수가 쓴 이 소설은 일약 당대의 독서계를 풍미해 낙양의 지가를 천정부지로 올렸다고 한다. 도불(道佛)의 전통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꿈을 꾸듯 몰입시키는 환상의 세계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솔직히 톨킨의 ‘반지의 제왕’같은 서구의 판타지는 내공이 떨어진다 싶을 정도다.

 

이 소설에는 도가의 내단술을 통해, 또는 선초 영약을 먹게 되는 기연으로 정신과 신체가 변화하는 이야기가 숱하게 나온다. 예를 들면 아미파의 주요 검선 중 하나인 영경이라는 여선(女仙)은 망창산에서 강시와 요괴 같은 흉물들에게 쫓기다가 어린아이(童子) 모양을 한 수백 년 묵은 하수오(何首烏)를 먹게 된 후 몸이 제비처럼 가벼워져 평지에서도 별 힘을 안 들이고 수십 장(丈)을 솟아오를 수 있게 된다.

 

하수오라는 약물은 영지나 삼왕(蔘王), 주과(朱果) 등과 함께 촉산기협전에 자주 등장하는데 아미의 도인들이 이를 먹고 곧 탈진한 내력이 회복되거나 심지어 반로동환까지 한다. 명나라 때 의가인 이시진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50년 된 하수오 뿌리는 주먹 크기만한데 이름을 산로(山老)라고 한다. 1년쯤 먹으면 수염과 머리칼이 청흑(靑黑)색이 된다. 150년 된 것은 크기가 물 긷는 항아리만한데 산가(山哥)라 한다. 1년쯤 먹으면 안색이 붉고 부드러워져 젊은이처럼 된다. 200년 된 것은 고리짝만큼 큰데 산옹(山翁)이라 부른다. 먹으면 안색이 어린애와 같고 걸음걸이가 달리는 말과 같아진다. 300년 된 것은 크기가 서 말들이 고리짝만하다. 이름을 산정(山精)이라 하는데 순수한 양기(純陽) 자체여서 구복하면 지선(地仙)이 된다”고 적고 있다.

 

서 말들이 고리짝이면 얼마나 클까. 1말이면 쌀이 8㎏쯤 되니까 힘없는 사람은 들어올리기 어렵다. 이걸 먹으면 지상의 선계에 살면서 불로장생하는 신선인 지선이 된다는 것이다. 이럴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 중 천금을 아끼지 않을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보신용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곳이 대한민국 아닌가.

 

여담이지만 요사이 국내 아마추어 약초꾼들도 고리짝만한 하수오를 캐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이시진이 말하는 명산심곡에서 난 하수오는 아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밭두렁이나 농가 돌담 주변, 촌락과 인접한 산기슭 등지에서 많이 캔다. 필자도 전북 정읍의 농가 밭두렁에서 어린애 머리통만한 것을 캔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1960~70년대 촌부들이 수익약재로 밭이나 공터에 심었다가 내버려둔 것들이 아니냐는 게 중론이었다.

 

뒤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이 하수오는 뿌리가 고구마처럼 생기고 색깔이 붉은 적(赤)하수오이며 우리나라 자생종이 아니다. 민가 부근의 것은 대부분 중국 수입종일 공산이 크다. 이것말고 백(白)하수오가 또 있는데 뿌리 생김새가 길쭉하니 다르고 색깔도 흰색이다. 백하수오는 자생종이어서 우리나라 산야 전역에서 자란다. 그래서 우리 산에서 캐는 것은 대개 백하수오다. 이시진의 적하수오를 캐려고 국내에서 명산심곡을 헤매는 것은 좀 가망 없는 일처럼 보인다.

 

하수오로 약초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까닭이 있다. 요즘 하수오 캐기가 국내 아마추어 심마니들의 ‘로망’처럼 됐기 때문이다. 사실 산삼 같은 약초는 전문적인 심마니들도 캐기 어렵다. 하수오는 그렇지 않다. 초짜도 잘만 하면 대물을 캔다. 오랫동안 전문 약초꾼의 관심밖에 있어선지 산삼보다는 훨씬 흔하다.

 

아마추어 심마니들의 ‘로망’

 

등산도 하면서 약초도 캐는 약초산행 동호회가 많이 생겨나면서 아예 ‘하수오 사랑하는 모임(하사모)’같은 전문 카페도 등장했다. 하사모 식구는 1만여 명에 육박해 지난해 다음의 우수카페로 선정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자신이 캔 하수오의 채취과정을 일일이 디카에 담아 올리는 이른바 ‘꾼’이 수두룩하다.

 

얼마 전부터 건강에 관심이 좀 있다 싶은 이면 어디서 저걸 다 캤는지 싶게 다양한 약초를 술에 담가 거실에 진열하곤 한다. 장뇌삼, 진삼, 노루궁둥이버섯, 영지, 상황버섯, 봉황삼(백선), 천문동, 천마, 오가피, 적백하수오 등이 기본품목인데, 아무래도 눈길을 끄는 것이 백하수오다. 약효도 삼(蔘) 못지않은데다 술을 담그면 병에 담긴 기다란 괴경의 귀족적인 품위가 그럴싸하다. 술맛도 여느 고급술보다 좋다. 간에 해로운 게 술인데 하수오술은 간을 더 좋게 한다는 것이 호사가들의 지론이다.

 

이런 사정 덕분인지 시중에 유통되는 야생하수오는 값이 꽤 나간다. 어지간하면 근(600g)당 15만~20만원이다. 오래된 것들은 감정가가 억대를 호가한다. 가히 천종산삼에 필적하는 몸값이다. 200년쯤 된 초대물 하수오가 나오기도 하는데 거의 본초강목에서 말하는 ‘산가’ 또는 ‘산옹’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아마추어 심마니들의 하수오 사랑이 요원의 불길 같은 것도 조금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속된 금전적인 이유가 아니어도 산행 중에 하수오를 캐는 일은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피톤치트 가득한 숲 속을 헤매니 당장 건강에 좋고, 또 몇 시간의 사투 끝에 하수오 한 뿌리를 캐면 ‘야생의 회복’이라고 할 만한 기쁨이 충만해진다. 바다에서 릴낚시를 하는 낚시꾼의 손맛을 이에 견줄까. 게다가 덤으로 현장에서 생생한 약초 지식을 얻게 된다. 전문 한의사도 상대하기 어려운 ‘재야 본초학’의 고수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어쩌면 ‘하수오 로망’은 의료전문가 집단에 의해 독점된 차디찬 현대의학에 전적으로 몸을 내맡길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서 나온 것 아닐까. 사실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히가 지적했듯 “건강하지 못한 환경에서 병든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의료전문직의 중심사업”이 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수오와 관련된 흥미로운 영화가 하나 있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중국인 영화감독 다이시제의 ‘식물학자의 딸(Les Filles Du Botaniste)’이 그것이다. 밍과 안 두 여인의 동성애를 그린 퀴어 영화인데, 시제 감독은 섬 하나를 통째로 약초원으로 꾸며서 갖가지 기화요초를 보여주며 다채로운 중국약초의 세계로 안내해 관객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이 영화에 식물학자인 안의 아버지가 하수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적하수오는 수컷, 백하수오는 암컷

 

“하수오의 학명은 폴리고눔 몰티플로룸이다. 한의학에서는 신장과 간의 질병을 치료하며 옛 의서에서는 이 약물을 처방해 남자의 성기능장애를 치료했다.”

 

여기서 폴리고눔 몰티플로룸은 하수오의 학명이긴 한데, 적하수오의 학명이다. 중국에서는 하수오 하면 대개 적하수오를 가리킨다. 백하수오의 학명은 시난춤 일포디다. 둘 다 하수오로 불리지만 과(科)가 전혀 다른, 서로 무관한 식물이다. 분류학상 적하수오는 마디풀(여뀌)과에 속하고 백하수오는 박주가리과에 속한다. 백하수오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며 지역에 따라 은조롱, 큰조롱, 새박덩굴 등으로 불린다. 이 둘은 약으로 쓰이는 뿌리의 생김새도 확연히 다르고 뿌리색깔도 다르다.

 

둘의 기미(氣味)도 아주 다르다. 맛을 보면 적하수오는 쓰고 떫고 자극적이어서 날로는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쥐눈이콩(검정콩) 등을 넣고 시루에 쪄서 수취해 쓴다. 반면에 백하수오는 전분이 많고 맛이 고구마나 배추뿌리와 비슷해 그냥 날 것으로 먹을 수 있다. 독이 없어서 구황기에 식량대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데도 희한하게 잎 모양새는 무척 닮았다. 잎만 보면 언뜻 잘 구분이 안 된다. 둘 다 덩굴식물이라는 것도 닮았다. 동명이물인 이 둘의 관계가 이 때문에 좀 복잡하다. 하나는 암컷, 하나는 수컷이라는 것이다.

 

17세기 초 중국 명나라 때 왕기가 편찬한 박물도감 ‘삼재도회(三才圖會)’는 하수오라는 항목 안에 적하수오는 수컷(雄), 백하수오는 암컷(雌)으로 분류하고 있다. 대부분의 중국 본초서가 그런 식인데 우리나라 동의보감도 ‘붉은 것은 수컷, 흰 것은 암컷이다. 일명 교등(交藤), 야합(夜合), 구진등(九眞藤)이라고 한다’고 쓰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처럼 얽히므로 교등, 밤에 은밀히 교합한다고 해서 야합이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와전돼서 우리나라 약초꾼들도 하수오가 암수 다른 식물로 서로 떨어져 있다가 밤이 되면 서로 엉켜 안고 지낸다거나, 하수오 한 뿌리를 발견하면 반드시 그 주위에 한 뿌리가 더 있으며, 밤중에 교합해 음기를 얻은 것이 약효가 더 있다는 등의 얘길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수오를 분류하기 위해 쓴 ‘자웅’이라는 용어를 약초꾼들이 너무 신비화한다는 감이 있다.

 

반로환소하는 약효

 

하수오는 그 이름부터가 반로환소(反老還少) 하는 신비로운 약효에서 유래한다. 옛날 중국에 하공(何公)이라는 노인이 있었다. 그가 야생의 약초뿌리를 캐 먹었는데 백발이 검어지며 젊음을 되찾았다. 그로부터 하공의 하(何), 머리를 뜻하는 수(首), 까마귀처럼 머리칼이 검어져 오(烏)를 써서 약초의 이름이 하수오가 됐다고 한다.

 

당나라 때의 유학자 이고(李·#53701;)의 ‘하수오전’은 한 가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재미있다. 순주 남하현에 하수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수오의 할아버지 이름은 능사(能嗣)고 아버지 이름은 연수(延秀)다. 원래 능사는 사람 구실을 못할 정도로 몸이 약해 환갑이 되도록 노총각으로 살았다. 그러다 우연히 산에서 캔 하수오 뿌리를 1년여 복용하고는 온갖 지병이 없어지고 흰머리가 검어지고 기력이 젊은 사람처럼 되었다. 장가도 들어 연수를 비롯해 자식을 여럿 얻었다. 아들 연수도 이를 먹고 수명이 160세에 이르렀다. 그의 아들 수오 역시 나이가 130세가 되었어도 머리칼이 젊은이처럼 검었다.

 

이고는 아예 사람의 이름을 빌려서 하수오의 효능을 설명한다. ‘능사’는 능히 후사를 잇는다는 뜻이며, ‘연수’는 수명이 늘어난다는 연수(延壽)다. 하수오라는 약초는 수명을 늘리고 모발을 검게 하고 자식을 낳게 한다는 것이다. 지선(地仙)은 모르겠으나 반로환소까지는 한다는 것이다.

 

‘본초강목’엔 이렇게 나와 있다. “혈기를 돋워 수염과 머리칼을 검게 하고 안색을 부드럽게 한다. 오래 복용하면 근골이 튼튼해지고 정수가 늘어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는다. 나력(만성림프선염)을 치료하고 종기를 가라앉힌다. 머리의 풍창(피부병)을 낫게 하며 다섯 가지 치질을 고친다. 뱃속과 장부의 일체 고질을 치료한다.”

 

하수오의 반로환소하는 효능은 현대의학으로도 상당 부분 검증되고 있다. 약리학적으로 보면, 적하수오에는 레시틴, 안트라퀴논 유도체, 녹말 등이 함유돼 있다. 레시틴은 항노화, 항산화물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체의 신경조직을 구성하는 성분으로 특히 뇌척수의 중요성분 중 하나다. 두뇌의 소모가 극심한 현대인에게 꼭 필요하다.

 

레시틴은 혈구와 세포막을 구성하는 중요성분이기도 해 혈구의 신생과 발육을 촉진한다. 또 콜레스테롤이 간에 쌓이는 것을 저지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떨어뜨려 동맥경화를 막는다.

 

임상실험으로도 적하수오는 골수 조혈세포와 적혈구의 수를 증가시키는 조혈작용과 함께 면역능력을 증강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지방간과 바이러스간염, 그 밖의 간기능 장애를 억제하는 작용이 있어서 간을 보호하는 약리적 효과도 인정된다.

 

적하수오에 비해 성분이 자세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백하수오 역시 뿌리에 레시틴이 있고 강심작용을 하는 성분이 있다. 동물실험에서는 혈당을 떨어뜨리는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술에 담그거나 환으로 만들어 복용

 

여러해살이 덩굴풀인 하수오는 늦은 가을이나 이른 봄에 말라죽은 줄기를 보고 캔다. 백하수오는 비탈진 풀숲이나 산비탈의 바위틈, 관목 숲에서 잘 자란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바닷가가 가까운 산의 비탈진 곳이나 섬 지역에서 많이 발견됐다.

 

주의사항 하나. 10여 년 전부터 백하수오와 뿌리가 비슷하게 생긴 이엽우피소라는 중국산 식물이 농가에 재배되면서 그동안 백하수오로 잘못 유통됐는데, 가끔 산에서도 이를 캐는 경우가 있다. 약재로도 위품 논란이 있으므로 구별을 요한다. 백하수오는 산지에 따라 약효가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토종약초가 최진규씨는 경기도 감악산 일대와 경북 소백산 부근에서 난 것이 약효가 가장 높다고 한다.

 

복용법은 술에 그냥 담가 먹기도 하는데 35%쯤 되는 담금주에 넣고 2~3개월 동안 밀봉해두면 된다. 더 효과를 보려면 동의보감의 신선고본주(神仙固本酒)를담가도 좋다.

 

우선 백하수오 240g, 우슬 300g, 구기자 160g, 천문동·맥문동·생지황·숙지황·당귀·인삼 각 80g씩, 육계 40g을 준비해 가루로 내고, 찹쌀 2말과 흰누룩 2되를 쪄서 위의 약가루와 함께 넣고 버무려 술을 빚는다. 이 술을 매일 반주 삼아 한 잔씩 마시면 살결이 고와지고 오래잖아 흰 머리칼이 변해 까맣게 자라나온다.

 

환으로 만들어 매일 복용해도 좋다. 제법은 백하수오 600g과 우슬 300g을 섞어서 쥐눈이콩(검정콩) 3되를 삶은 물에 버무려 세 번 찐 다음 이것을 볕에 말려 가루로 낸다. 대추살(棗肉)에 반죽해 벽오동씨만하게 알약을 만든다. 한번에 30~50알씩 먹는다. 근골이 약해 허리와 다리가 힘이 없고 쑤시거나 정력이 약한 데 좋다.

 

전통적인 처방으로는 백발을 막고 탈모를 줄이는 소옹절의 칠보미염단(七寶美髥丹), 여조(呂祖)가 신선 공부를 할 때에 만들어 복용했다는 연년익수불로단(延年益壽不老丹) 등이 유명하다. 기왕 야생 하수오에 관심 가진 이라면 술에만 집착하지 말고 이런 약도 만들어보면 어떨까. 반로동환과 익수불로의 꿈을 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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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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