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달고 짜고 맵고… 나른한 봄철 입맛 되살리는 名藥

 

조선일보 / 2017-05-03 03:05

 

 

[61] 고추장

밤낮으로 온도 차가 크게 벌어지는 봄에는 입맛을 잃기가 쉽다.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유배지 장기(長鬐·지금의 경북 포항)에서 ‘늦은 봄날(晩春), 상추쌈에 보리밥을 둘둘 싸서 삼키고는 고추장에 파 뿌리를 곁들여 먹으며’(장기농가·長鬐農歌) 입맛 없어 기운 떨어지고 나른한 봄날을 견뎌냈다고 썼다.

달고 짜고 매운맛을 두루 지녀 비위에 맞을 뿐 아니라 여러 음식에 다양하게 쓰이는 고추장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국 고유의 장(醬)이다. 특히 외국에 사는 한국인에게 고추장은 옛부터 ‘제일 사모되는’(1928년 5월 1일 자 별건곤) 음식이었다. 국제 경기에 출전하는 운동선수들도 김치와 고추장을 반드시 가져가 먹었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한국 선수가 1·2·3위를 차지했을 때 ‘勝因(승인)은 김치와 고추장. 손(孫) 감독은 조선 요리의 명 쿡크(Cook·요리사)’(1950년 6월 7일 자 조선일보)라는 기사가 날 정도였다.

조선 최장수 임금 영조(英祖·1694~1776)는 고추장을 사랑해 많은 기록을 남겼다. 고추장을 기운 돋우는 약으로 먹거나 입맛 돌게 하는 최고의 음식으로 여겼다. 영조 44년(1768년) 7월 28일 자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영조는 “송이(松茸), 생복(生鰒·전복), 아치(兒雉·꿩고기), 고초장(苦椒醬) 이 네 가지 맛이 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이로써 보면 입맛이 영구히 늙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고추장은 저자 미상의 조리서 소문사설(搜聞事說·1740년경)에 처음 등장한다. 지금도 고추장의 대명사인 전북 순창이 고추장 명산지로 나온다. 고추장은 ‘가초장’, ‘날초장’, ‘날장’, ‘전초장’, ‘만초장’ 등으로 불리며 18세기 이후부터 한국인의 식탁을 상징하는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728x90
Posted by 호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