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많이 먹으면 탈 난다고? 유통·품질 개선 땐 훌륭한 음식
중앙Sunday / 2017-06-18 02:16
[新동의보감] 밀에 대한 오해와 진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진짜 원조 라면을 먹어 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란조우라미엔(蘭州拉麵)’이라는 간판이 걸린 음식점 앞에는 손님들이 길게 장사진을 치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터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주방장은 날렵한 손놀림으로 밀가루 반죽을 양손으로 길게 잡아당기며 면을 뽑아냈다. 펄펄 끓는 큰 가마솥의 탕수에 익혀서 건져낸 면발 위에 뜨거운 육수를 붓고, 그 위에 소고기 편육, 샹차이(香菜) 고명을 올린 것이 그 유명하다는 란주라면이었다. 입천장이 데도록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먹었던 그날의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다.
중국의 주식은 크게 판(飯)과 미엔(麵)으로 대별된다. 일반적으로 판은 쌀밥이고 미엔은 밀가루 국수를 가리킨다. 라미엔(拉麵)은 양손으로 계속 잡아당겨 면발을 만든 국수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밀가루 음식이 소화가 잘 안 된다느니, 약 먹을 땐 밀가루 음식을 피해야 한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지만, 중국에서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밀은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중동의 건조한 고원 지역이 원산지다. 주로 밭에서 재배하는데, 뿌리가 깊고 수분과 영양분을 잘 빨아들여 척박한 토양이나 가뭄에도 잘 자란다. 실제 전 세계적으로 쌀보다 밀을 먹는 사람들이 더 많아 밀은 옥수수와 더불어 대표적인 세계인의 주식이다.
아프간의 병사들이 황량한 골짜기를 배경으로 납작하고 둥그스름한 밀가루부침개 같은 것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난(Naan)이라 부르는 이 밀가루 빵은 아프간 사람들이 매일 먹는 주식이다. 난은 아프간뿐만 아니라 이란·인도·우즈베키스탄·중국 등지에서도 주식으로 먹는다. 난이 이탈리아나 미국으로 가면 피자로 변신한다. 빵과 난, 파스타, 피자 등 밀가루 음식은 쌀과 함께 세계인의 주식인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밀가루 음식은 해롭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쯤에서 동의보감을 살펴보자. 밀의 약명은 소맥(小麥)이다. 소맥은 통밀인데 성질이 차고 달며, 번열(煩熱)과 조갈을 없애고 소변을 시원하게 나오게 한다. 가을에 파종돼 겨울과 봄에 자라고 여름에 수확하는 밀은 사계절의 기운을 골고루 받아서 오곡 중에서도 특히 귀하다.
밀가루의 약명은 면(麵)인데, 통밀에서 나왔지만 통밀과는 성질이 다르다. 밀가루는 통밀의 씨눈과 속껍질은 제거하고 배젖 부분만 가루를 낸다. 속껍질이 껍데기로서 음적(陰的)이며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면, 배젖은 알맹이로서 양적(陽的)이고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동의보감에서는 밀가루가 성질이 따뜻하고 기운을 도우고 위와 장뿐 아니라 오장을 튼튼하게 하여 오래 먹으면 몸을 실하게 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효능으로 볼 때, 역시 밀은 평생 매일 먹더라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밀은 세계인의 주식이고 동의보감도 훌륭한 음식이자 약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으면 체하거나 탈이 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에 대한 실마리도 역시 동의보감에서 찾을 수 있다. ‘밀가루가 오래 묵으면 열독(熱毒)이 있다’ ‘봄에 뿌려 여름에 수확한 밀은 기가 부족하고 독이 있을 수 있고, 가루로 만들어도 그 성질이 냉하다’고 하는 구절이다.
밀가루 음식이 우리나라에서 명예를 회복하고 사랑받는 건강식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밀가루의 유통과정과 품질이 개선되고, 건강한 조리법이 지켜져야 한다.
첫째, 유통과정의 개선이다. 밀가루가 오래 묵으면 열독이 생긴다는 동의보감 곡부(穀部)의 설명은 오랜 세월 임상경험의 축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근래 수십 년간 우리는 수입 밀가루에 의존하여 밀가루 음식을 만들었고, 일부 수입 밀가루는 유통과정이 복잡하고 생산일자마저 불투명해 소비자들은 묵은 밀가루를 섭취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구호물자로 들어온 밀가루의 품질은 어땠을까? 도움을 준 나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묵은 밀가루에다가 심지어 방부제까지 넣지 않았을까 의심된다. 쌀 부족으로 분식 장려정책 시기를 경험했던 중장년층은 어린 시절에 밀가루 음식을 먹고 탈이 났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발상일지 몰라도, 앞으로 수입 밀은 모두 겉껍질이 붙어 있는 알곡상태로 수입해야 한다. 밀가루는 반드시 한국에서 가공하고, 가공된 밀가루의 유통기한 역시 지금보다 훨씬 짧게 잡아야 한다. 밀가루 음식을 만드는 식당이나 빵집은 통밀을 구매하여, 매일 아침 직접 빻은 밀가루로 장사하게 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는 칼국수집, 중국집, 분식집이 생긴다면 나부터라도 매일 점심은 그 집에서 먹을 것이다.
둘째, 품질이다. 밀은 온난하고 건조한 기후의 겨울밀(가을에 심어 다음해 여름에 수확)이 좋다. 국민 건강을 위해서는 좋은 품질의 밀을 수입해야 하는데, 반드시 원산지에서부터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생산과정뿐 아니라 생산 후의 잔류농약까지 철저히 검사하여 수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밀이 수입 밀에 비해 유리하다. 우리 밀은 가을에 파종하는 겨울밀로서, 품질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고 우리 농민과 환경을 동시에 보호하는 효자작물이다. 생산과 유통과정도 수입 밀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셋째, 조리법이다. 좋은 품질의 밀가루를 쓰더라도 조리과정에서 문제가 있으면 역시 해로울 수밖에 없다. 쌀에 물만 붓는 밥과 달리, 빵이나 자장면, 과자 등의 밀가루 음식은 만들 때 여러 가지 부재료가 들어간다. 이때 몸에 해로운 화학적 첨가물이 들어가면 위장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불량식품을 가려내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같은 원료를 사용한 식빵을 상온에 며칠간 둔 뒤 곰팡이가 빨리 생기는 식빵의 제과점을 이용하면 된다. 과자도 마찬가지고, 밀가루도 회사별로 반죽을 한 후 상온에 둬 보면 알 수 있다.
곡식들은 토덕(土德)이 있어 사람들이 매일 일용(日用)할 수 있는 최고의 양식이다.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쌀을 주식으로 살아왔으므로 우리 몸은 태생적으로 쌀에 적응되어 있다. 하지만 쌀에다가 밀이나 보리를 넣어 혼식(混食)하면 더욱 건강하게 토화(土化)된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질이 떨어지는 밀가루나 불량한 밀가루 음식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밀가루나 밀가루 음식 그 자체가 해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
밀가루의 주성분은 당질과 단백질이다. 정백미(精白米)보다 함유량이 많은 성분으로서는 칼슘, 비타민B₁·B₂등이 있다. 단백질 함유량도 정백미보다 많지만, 필수 아미노산인 트립토판 등이 적어 영양가는 쌀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따라서 밀가루 음식을 주식으로 할 경우에는 육류·계란·생선 등의 단백질 식품을 곁드리면 좋을 것이다.
밀가루로 만든 제품인 빵이나 면류도 기본적인 영양성분은 원료인 밀가루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우동, 소면 등은 조리 과정에서 일단 삶기 때문에 비타민B₁·B₂등은 30~50%, 칼슘은 60%정도 감소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밀가루가 되는 것은 밀의 배젖 부분이다. 제분 과정에서 배아나 외피부분을 벗겨 내게 된다. 이렇게 분리된 부분에는 비타민B군, 비타민E, 미네랄, 식이섬유 등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밀가루의 건강 효과를 기대한다면 밀의 배아나 외피부분을 벗겨 내지 말고 알갱이 전체를 갈아 만든 전립분(全粒粉)을 이용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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