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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덕 셰프의 사계절 건강 밥상> 더워지면 못먹는 쫄깃한 살 맛 ‘바지락죽’


문화일보 / 2018-03-21 11:01




3~4월 살 오르고 영양도 풍부… 늦봄~초여름 산란기엔 毒올라… 국내 조개류 생산량 20%차지… 예로부터 주요 단백질 공급원… 껍질 거칠고 윤기 있는 게 좋아… 쌀알 그대로 ‘옹근죽’ 잘 어울려칼국수·된장찌개 감칠맛 더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꽃망울이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을 일깨우는 계절이다. 춘곤증이 밀려드는 시기이기도 한데, 이럴 땐 맛있고 영양 가득한 음식이 건강과 활력에 도움이 된다.

3∼4월이 제철인 식재료 가운데 이때를 놓치면 아쉬운 해산물 중 하나가 바지락이다. 살이 통통하게 올라 가장 맛이 좋고 영양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바지락에 대한 단상은 남해 바닷가 인근에서 어머니를 따라 개펄을 누비던 유년의 기억에서부터 시작된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어 호미로 바닥을 뒤집어 바지락을 고작 몇 개 캐는 동안, 어머니는 마치 그냥 쓱쓱 주워 담는 것처럼 빠르게 망을 무겁게 채워 나가시곤 했다.

작은 바닷조개인 바지락은 우리나라의 조개류 연간 총생산량의 2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수확량이 매우 풍부하다.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식재료인데,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바지락을 ‘천합(淺蛤)’이라고 하여 ‘살도 풍부하고 맛이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전에는 ‘바지라기’라고도 불렸는데, 호미로 개펄을 긁을 때 부딪히는 소리가 ‘바지락바지락’거린다고 해 ‘바지락’, ‘바지라기’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동해에서는 ‘빤지락’, 경상도 지역에서는 ‘반지래기’, 인천과 전라도 지역에서는 ‘반지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지락은 주로 모래가 있는 얕은 바다에 살면서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는다. 한곳에 머물러 사는 특성이 있어 양식에도 용이한데, 봄이나 가을에 개펄에 어린 바지락을 뿌렸다가 다음 해 4월부터 거둬들인다. 일 년 정도 지나면 길이 1.5배, 무게 3배 정도로 자란다.

그런데 바지락은 주 산란기인 늦봄부터 초여름까지는 독성이 있어 채집하지 않는다. 젓갈을 담그거나 날것을 요리해 먹는 것도 피해야 한다. ‘오뉴월 땡볕의 바지락 풍년’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여름에 수온이 오르면 바닷물 속 칼슘이 빠르게 분리되면서 껍데기가 커져 풍성해 보이지만, 실제 조갯살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상태인 데다가 독성이 있어 먹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가정식에서든 외식에서든 대중적으로 이용되는 식재료인데, 바지락칼국수, 바지락비빔밥, 바지락조개젓갈, 바지락전, 바지락나물무침, 바지락찜, 바지락탕 등 다양하다. 특히 바지락된장찌개는 된장찌개에 바지락을 넣으면 감칠맛이 더해져 맛이 더 깊어진다. 된장이 바지락에 부족한 식물성 단백질을 보충해 줘 영양적으로도 균형을 이룬다.

바지락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방사 무늬를 띠고 있는 것부터 황갈색 물결 모양까지 색깔과 무늬가 다양하다. 바지락과 모시조개를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바지락은 모시조개보다 더 작고 색이 더 밝다.

좋은 바지락은 껍질이 거칠고 윤기가 있는 것이 좋고, 입을 열고 있어도 만지면 닫아버리는 것이 싱싱한 바지락이다. 채취한 지 오래되면 탁한 갈색으로 변하므로 외관을 잘 살피도록 한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제철 바지락을 끓여 육수를 내고 그 육수를 이용해 죽을 만들면 감칠맛 풍부한 제철 별미 한 끼 식사가 된다. 부드러운 쌀죽과 함께 쫄깃한 바지락의 식감이 입맛을 돋운다.

죽은 보통 재료에 따라 바지락죽, 전복죽, 호박죽, 단팥죽 등으로 명명하는데, 요리하는 사람들은 쌀 입자 크기에 따라 옹근죽, 원미죽, 무리죽으로 죽 종류를 구분하기도 한다. 옹근죽은 쌀알을 으깨지 않고 그대로 쑤는 죽을 말하고, 원미죽은 쌀알을 갈아서 싸라기로만 쑨 것이며, 무리죽은 쌀알을 곱게 갈아서 쑨 죽이다. 바지락죽은 쌀알을 그대로 쑤는 옹근죽 형태로 하는 것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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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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