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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 시절 중국철학을 배우는 수업 시간에 중국 교수님께서 그러시더군요. 세계에서 가장 철학적인 국기는 한국의 국기라고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태극기처럼 우주의 ‘오묘한’ 진리를 담고 있는 국기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 국기들은 일차원적인 상징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캐나다 국기를 보십시오. 가운데 있는 나뭇잎은 캐나다에 흔한 단풍나무 잎이고 양쪽의 빨강 줄은 각각 태평양과 대서양을 뜻한다고 합니다. 아주 단순한 상징이지요? 그에 비해 우리 태극기는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상징 중에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는 태극과 팔괘를 사용하고 있어 그 의미가 심오하기 짝이 없습니다.

 

태극기는 1882년 박영효가 미국과 조약을 체결할 때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이듬해 정식 국기로 채택되었다.

 

 

1882년 최초 사용된 후 1883년 정식 국기로 채택

그래서 그런지 우리 한국인들은 자국의 국기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너무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일반인들이 그 깊은 의미를 알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태극기에 대한 기존의 설명들이 어렵다는 것도 한 몫 할 겁니다. 워낙 상징성이 높은 심벌들인지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 그런가 하면 태극기의 유래 역시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은 아닌 듯합니다. 새로운 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어렵고 복잡한 것을 다 알아야 태극기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태극기를 이해하려 할 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만 보려고 합니다. 특히 우리 국기를 외국인들에게 설명할 때 유용한 설명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국기의 제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조선을 공격했던 일본의 군함인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1876년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조선의 관리들이 일본의 국기를 보게 되면서 조선도 국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1882년 박영효가 미국과 조약을 체결할 때 처음으로 국기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태극기를 실제로 만든 것은 박영효가 아니라 역관이었던 이응준이었다는 설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박영효는 이응준이 만든 것을 가지고 4괘의 좌우만 바꾸었다는 것이지요. 어떻든 이 사건을 계기로 다음 해(1883)에 태극기는 조선의 정식 국기로 채택됩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신생 대한민국은 1949년 10월에 태극기를 국기로 지정하게 됩니다.

 

 

우주 만물의 상징, 태극

태극기는 잘 알려진 것처럼 흰색 바탕에 태극과 4개의 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대체로 이렇게 진행됩니다. 즉 흰색 바탕은 우리 민족이 평화를 사랑하는 모습, 즉 밝음과 순수를 상징하고 태극은 우주 만물이 이 음양(태극)으로부터 창조되듯이 우리 민족의 창조성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건곤리감(乾坤離坎)이라는 어려운 용어로 불리는 사괘는 음과 양이 어울리면서 변화해가는 우주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런 설명들은 너무 일반적이라 외국인에게 태극기를 설명할 때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태극기에서는 어떤 요소를 가장 부각시켜 설명해야 할까요? 이름이 태극기이니 태극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요?

 

그런데 이 태극은 생각 외로 그 진가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태극은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상징 가운데 아마 최고일 겁니다. 왜냐하면 그 단순한 도형이 자연과 우주의 가장 깊은 면을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간단한 것을 가지고 전체를 표현하는 게 가장 어려운 법입니다. 태극이라는 도형은 얼마나 단순합니까? 원이 두 부분으로 나눠진 것 그것이 전부이니 말입니다. 이것은 이 우주가 음과 양이라는 두 가지 힘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그다지 대단한 발상은 아닙니다. 세상에 여자와 남자가 있듯이 사물이 음과 양적인 요소로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발상입니다. 그보다 태극이라는 상징의 ‘천재적인 독창성’은 음과 양이 만나는 경계의 곡선에 있습니다. 부드러운 S 자 곡선으로 서로 맞물려 있지요? 이 모습은 일단 음과 양이 아주 조화로운 관계에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태극을 만든 중국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나타냅니다.

 

혹자는 태극이 중국에서 만들어지기 전에 한국에도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국수적인 발언입니다. 문제는 누가 먼저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많이 사용하고 발달시켰느냐에 있습니다. 사실 중국인들은 이 태극을 먼저 만들었으면서 한국에 ‘빼앗긴(?)’ 것을 대단히 애석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젠 누가 뭐래도 태극은 한국 것처럼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동북공정이나 강릉단오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태극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안 합니다. 이것은 아마 우리가 태극기를 오래 전부터 써온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태극의 오묘한 원리와 4괘의 풍부한 상징

태극의 묘미는 이제부터입니다. 태극기의 태극에는 빠진 게 있습니다. 태극은 원래 원의 양쪽에 점이 있어야 합니다. 왼 쪽에 있는 점은 양의 정점을 상징하고 오른 점은 음의 정점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양의 정점에는 순양(純陽)을 상징하는 건(乾) 괘가 있고 음의 정점에는 순음(純陰)을 상징하는 곤(坤)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점들이 상대 영역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점이 되는 순간 상대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순양이 되는 순간 이미 음의 기운이 시작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고대 중국 문명이 제시한 뛰어난 지혜입니다. 모든 일이 이렇게 맞물려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잘 나갈 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절기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여름에 한참 더운데 입추(立秋)라고 하지요? 그것은 더움이 극에 달해 이미 서늘함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극이 바로 이러한 자연의 진행과정을 극명하면서도 단순하게 보여주는 최고의 상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래 태극에는 음과 양의 정점을 상징하는 두 개의 점이 있다.

 

 

 

 

그 다음은 괘입니다. 이 태극에서 두 가지 기운 즉 양(―)과 음(--)이 나오는데 이것은 효(爻)라고 불립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이어진 선’과 ‘끊어진 선’인데 이것을 배합해서 자연과 인생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4괘(혹은 4상)가 되고 발전하여 8괘가 됩니다. 팔괘는 각각 자연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하늘, 땅, 못, 불, 지진, 바람, 물, 산을 상징합니다. 태극기에는 이 가운데 ‘하늘(건)’과 ‘땅(곤)’과 ‘불 혹은 여성(리)’과 ‘물 혹은 남성(감)’과 같은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를 상징하는 괘를 선정해 배치했습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남녀(혹은 물불)가 다 있으니 우주의 중요한 것은 다 있는 셈입니다. 이 네 개의 괘는 돌아가면서 계속 순환발전을 합니다. 이것은 우주의 순행원리와도 일치합니다. 학자에 따라 이 괘에 대한 해석이 조금씩 다른데, 건은 천도(天道)로서 정의를, 곤은 지도(地道)로서 풍요를, 리는 화성(火性)으로 광명을, 감은 수성(水性)으로 지혜를 상징한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데니 태극기의 모습. 고종이 당시 외교고문이었던 미국인 데니에게 하사한 태극기이다.

 

 

우리 태극기는 이렇게 간단하게만 보아도 무궁무진한 상징과 의미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중에 우리가 기억할 것은 태극의 오묘한 원리와 4괘의 풍부한 상징성입니다. 이것을 아주 간단하게 재언하면 태극기에 흐르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두 가지 기운이 상극 관계가 아니라 상생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이런 멋진 태극기를 국기로 삼고 있으면서 사는 모습은 그에 못 미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최준식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였다. 한국문화와 인간의식 발달에 관심이 많으며 대표저서로는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한국의 종교, 문화로 읽는다] 등이 있다.

발행일  201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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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후손의 장수 비결, 활인심방(活人心方) 건강법

 

신동아 / 2007-08-27 10:21

 

 

7월4일 경북 안동시내 한 웨딩홀 연회장에서는 퇴계 이황 선생의 15대 종손인 이동은(李東恩) 옹의 백수연(白壽宴)이 열렸다. 이옹의 자녀 2남4녀를 비롯해 손자와 손녀, 친척과 친지 등 400명이 넘는 축하객이 모여 근 100년을 살아온 이옹의 건강을 기원했다. 이옹의 백수연은 여러 언론매체에 보도됐다. 이옹이 대학자 퇴계 선생의 종손이라는 점도 눈길을 끌뿐더러 99세의 나이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건강 또한 화젯거리였다. 누구나 ‘참살이’를 꿈꾸는 시대에 귀 밝고 기억 또렷한 백수 노인의 정정함은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의 ‘백세 건강 비결’의 중심엔 ‘활인심방(活人心方)’이 있다. 퇴계 선생의 건강법으로 선생이 직접 기술해 남긴 활인심방은 500년 가까이 자손들에게 전해지며 집안의 건강 지침이 돼왔다. 이옹은 몇 해 전에 받은 전립선 수술과 폐렴 치료 등으로 다소 몸이 약해져 무리하게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으나 여전히 활인심방이 전하는 건강체조법과 마음 다스리기(治心)를 실천하고 있고, 그의 동생인 이동한(73·전 충북대 교수)씨는 시민들에게 활인심방 수련법을 알리고 있다.

도산서원의 특별한 강연
매년 봄과 가을, 매달 한 차례씩 안동 도산서원에서는 아주 특별한 강의가 펼쳐진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부설 ‘도산서원 거경대학(居敬大學)’이 그것이다. 거경(居敬)이라는 이름은 주자학에서 말하는 수양의 두 가지 방법, 즉 거경과 궁리(窮理)에서 따온 것. 궁리는 외적 수양법이고 거경은 내적 수양법으로 몸과 마음을 삼가 바르게 가짐을 뜻한다. 둘 다 퇴계 선생이 매우 중요하게 여긴 학문의 기본이자 수양법이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이 강의는 올해도 4~6월, 9~11월에 매달 둘째 주 토요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열리며 남녀노소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10명가량 되는 교육생을 가르치는 일은 이옹의 동생 이동한씨가 맡고 있다. 지금까지 100여 명이 활인심방에 나와 심신을 수련하고 퇴계의 일상적 언행을 체험하면서 인성을 가다듬고 돌아갔다. 지난 7월 1일에는 한국체육대 무용학과 학생 15명이 도산서원 전교당에서 2시간에 걸쳐 활인심방 수련법을 공개적으로 실연하는 행사가 열려 눈길을 모았다. 참가 학생들은 마음을 고요히 해 심신을 안정시키는 ‘정좌거경(靜坐居敬)’, 음식에 대한 예절과 올바른 식사법을 익히는 ‘묵언정식(默言淨食)’, 자연 속에서 경전을 읽으며 기억력을 높이는 ‘소요유(逍遙游)’, 올바른 자세로 걸으며 정신을 수양하는 ‘보리안상(步履安詳)’ 등 활인심방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따라 했는데, 보는 이들도 사뭇 마음이 경건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동한씨는 “어린 시절에 활인심방에 나오는 대로 건강체조를 하시던 조부와 선친을 곧잘 따라 하곤 했다”고 한다. 조부가 아침 일찍 일어나 앉은 자세로 팔과 어깨, 손 등을 움직이면서 몸을 풀곤 했는데 온 가족이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됐다는 것. 그러나 젊은 시절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이씨가 조상이 남긴 건강서적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2000년 충북대에서 정년퇴임한 직후다. 거의 잊고 살았던 ‘활인심방’을 다시 손에 쥐고 하나하나 뜻풀이를 해가며 곱씹었고, 최근에는 직접 해설서를 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활인심방의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진 못하며 계속해서 뜻을 새기고 있다”고 했다. 활인심방은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책이 아니다. 중국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의 열여섯째 아들인 주권(朱權)이 지은 것으로 원래 제목은 ‘활인심(活人心)’. 주권은 ‘현주 도인(玄洲 道人)’이라 불릴 만큼 도가(道家)에 조예가 깊었다고 전해진다. 퇴계 선생은 ‘활인심’을 입수해 번역하고 거기에 자신이 생각한 내용을 덧붙여 건강과 장수의 비법이 담긴 활인심방으로 재탄생시켰다.

7월1일 한국체대 무용학과 학생들이 도산서원을 찾아 활인심방을 실연하고 있다. 오른쪽은 활인심방을 가르치는 이동한씨.

무형의 약재 중화탕(中和湯)
이처럼 퇴계 선생이 직접 옮겨 새로 만든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활인심(活人心)을 소개하는 책이어서 사료적 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은 서문을 시작으로 중화탕(中和湯), 화기환(和氣丸), 양생지법(養生之法), 치심(治心), 도인법(道引法), 거병연수육자결(去病延壽六字訣), 양오장법(養五臟法), 보양정신(保養精神), 보양음식(保養飮食)으로 구성돼 있다. 이 글에 쓰인 활인심방의 내용은 김호언(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문위원)씨가 번역한 ‘현대인의 건강과 활인신방’을 참조했다. 중화탕이라 함은 30가지 마음의 자세를 잘 섞어 만든 무형의 약재를 뜻하며, 화기환은 참을 인(忍) 자로 만든 환약을 뜻한다. 양생지법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을 말하고, 치심은 마음을 다스리는 법, 도인법은 건강 체조를 뜻한다. 또 거병연수육자결은 병을 없애고 장수하는 여섯 자의 비결을 말하고, 양오장법은 오장을 튼튼하게 하는 법을 뜻하며, 보양정신은 정신을 보호하고 키우는 법, 보양음식은 몸을 보하는 건강음식을 뜻한다. 책의 서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성인(聖人)은 병들기 전에 다스리고 의원은 병이 난 후에 고치는 것이니, 전자를 치심(治心) 또는 수양(修養)이라 하고 후자를 약이(藥餌)라 한다. 다스리는 법이 이와 같이 두 가지이나 병의 근원은 하나이니 모두가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노자께서 말씀하시길 “마음은 정신의 주(主)가 되고 고요하거나 바쁜 것이 모두 마음에 따른 것이다” 하였으니 마음은 도(道)의 근본도 되고 화(禍)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하면 모든 일에 태연하고 맥박이 활발하나 고요치 못하면 기혈의 흐름이 고르지 못하고 탁하여 백병(百病)의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성품이 고요하면 정(情)은 평안해지고 마음이 산란하면 정신이 피로하나니 참됨을 지키면 뜻이 만족한다. 여러 가지 복잡하게 추구하면 생각이 복잡하여 정신이 산란하고 정신이 산란하면 기가 흩어져 병이 들고 죽게 되는 것이다. 이는 평범한 말인 듯싶으나 도(道)의 깊은 뜻에 합치되는 일이다. 무릇 사람의 병을 다스려 고쳐주는 자가 병의 원인을 잘 알아 쓴다면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충분할 것이고 수양을 위해서라면 이 책만으로도 선도(仙道)를 이룰 것이며 오래 살 것이다.’ 서문 다음에는 중화탕의 조제법을 밝히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약재’가 필요하다고 한다. ‘사무사(思無邪·마음에 거짓을 없앨 것), 행호사(行好事·좋은 일을 행할 것), 막기심(莫欺心·마음에 속임이 없을 것), 행방편(行方便·필요한 방법을 잘 선택할 것), 수본분(守本分·자신의 직분에 맞게 할 것), 막질투(莫嫉妬·시기하고 샘내지 말 것), 제교사(除狡詐·간사하고 교활하지 말 것), 무성실(務誠實·성실히 행할 것), 순천도(順天道·하늘의 이치에 따를 것), 지명한(知命限·타고난 수명의 한계를 알 것), 청심(淸心·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할 것), 과욕(寡慾·욕심을 줄일 것), 인내(忍耐·잘 참고 견딜 것), 유순(柔順·부드럽고 순할 것), 겸화(謙和·겸손하고 화목할 것), 지족(知足·만족함을 알 것), 염근(廉謹·청렴하고 삼갈 것), 존인(存仁·마음이 항상 어질 것), 절검(節儉·아끼고 검소할 것), 처중(處中·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조화할 것), 계살(戒殺·살생을 경계할 것), 계로(戒怒·성냄을 경계할 것), 계포(戒暴·거칠게 행하지 말 것), 계탐(戒貪·탐욕을 경계할 것), 신독(愼篤·신중히 생각하고 독실하게 행할 것), 지기(知機·사물의 기틀을 알 것), 보애(保愛·사랑을 견지할 것), 염퇴(恬退·물러서야 할 때 담담히 물러날 것), 수정(守靜·고요함을 지킬 것), 음즐(陰櫛·은연중에 덕이나 은혜를 쌓을 것)’.

장수 10계, 양생지법
중화탕은 수십 종의 정신적 약재를 잘 달여서 꾸준히 복용해야 하지만, 화기환(和氣丸)은 필요할 때 한 알씩 복용해 즉효를 보는 것으로 곧 ‘참을 인(忍)’자를 말한다. ‘마음 위에 칼이 놓였으니 군자는 이로써 덕을 이룬다’는 것이다. 소인은 분함을 참지 못해 자신을 망친다는 게 그 중심 이론. 다시 활인심방으로 돌아가자.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기가 모자라거나 넘치는 데서 목이 메고, 가슴이 답답하며, 부대껴 헛배가 부르고, 온몸이 뒤틀려 마비가 오고, 괴로워서 입술을 깨물고, 이를 갈며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쥐고, 얼굴이 붉어져 귀까지 빨개지고, 온 몸이 불같이 달아오른다. 이는 의원들도 고치지 못하는데 그럴 때마다 화기환을 한 알씩 먹이되 말이 필요 없고 입을 꼭 다물고 침으로 녹여 천천히 씹어 삼키게 한다.’ 화기환 다음으로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인 양생지법이 소개돼 있다. 중화탕이나 화기환과 달리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인 양생지법은 10여 가지로 요약된다.


▲ 소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비장(脾臟)은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식사하는 것이 소화에 좋다. 밤이 짧은 여름에는 밤늦게 먹거나 잘 씹어 먹지 않으면 비장에 무리가 생기며 소화가 잘 안 된다.

▲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혈맥이 잘 통하는 좋은 점이 있으나 지나치면 몸에 풍(風)을 일으키고 신장을 상하게 하고 장의 기능을 나쁘게 한다. 특히 배불리 먹은 뒤의 음주는 아주 나쁘다. 또 술을 급하게 많이 먹으면 폐를 상하게 된다. 술에 취해 깨지 않은 상태에서 목이 마르다고 물이나 차를 많이 마시면 술을 신장으로 끌어들이는 결과가 되어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무거워지며 방광을 상하게 해 다리가 붓고 팔다리가 굽는 병이 생긴다.

▲ 차(茶)는 언제든지 많이 마시면 하초(下焦·아랫배)를 허하고 냉하게 한다. 빈속의 차는 아주 좋지 않으며 배부를 때 한두 잔 마시는 것이 좋다.

▲ 앉은 자리나 누운 자리에 바람이 통할 때 그냥 견디고 있으면 안 된다. 특히 노인들은 몸이 약하고 속히 허해서 풍이 들기 쉽고, 처음에는 못 느끼나 결국 몸을 해치게 되니 덥다 하여 몸을 식히거나 취했을 때 부채질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 음식을 만들 때 맵고, 짜고, 시고, 달고, 쓴맛을 적게 쓰면 심신이 상쾌하고 많이 쓰면 해가 된다. 신맛이 지나치면 비장을 상하고, 매운맛은 간을 상하고, 짠맛은 심장을 상하고 쓴맛은 폐를 상하고 단맛은 신장을 상한다.

▲ 어느 한 가지를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심(心)을 상하고 혈(血)을 손(損)하며 오래 앉아 있으면 비(脾)를 상하고 기를 손(損)한다. 오래 걸으면 간을 상하고 오래 서 있으면 신장을 상하고 골(骨)을 손(損)한다. 그러므로 어느 한 가지에 정신을 오래 쏟거나 몸을 고정시키지 말고 변화를 줘야 한다.

▲ 사람이 나태하고 몸이 나른한 것도 오래면 병이 되나니 기력을 쓰지 않아 운동부족이 되고 배불리 먹고 앉거나 누워 있으면 혈액이 침체된다. 항상 힘을 적당히 써서 생기와 피가 잘 통하게 해야 하는 것이니 이는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문지방에는 좀이 슬지 않는 이치와 같다.

▲ 잠을 잘 때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고 불을 켜놓지 않아야 한다. 누워 잘 때의 좋은 자세는 몸을 옆으로 하고 무릎을 굽히는 것인데 그래야만 심기가 평안하기 때문이다. 잠이 깼을 때는 정신이 흩어지지 않도록 몸을 펼쳐야 한다. 몸을 쭉 펴고 자면 악귀를 불러들인다.

퇴계 종손 이동은 옹이 도인법의 ‘두 손 깍지 끼어 올리기’를 하고 있다.(좌) 도인법의 이 부딪치기와 귀 튕겨주기를 하는 이동은 옹.(가운데) ‘휴’ 소리를 내며 단전의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우)


▲ 머리를 자주 빗으면 풍을 예방하고 눈이 밝아진다. 그러므로 도가(道家)에서는 새벽에 일어나 항상 120번씩 빗질을 하는 것이다. 목욕은 자주 하면 심장과 배를 손상해서 권태로움을 느끼게 한다.

▲ 여름에는 사람들의 정신이 산만해 심장의 기능은 왕성하나 신장이 쇠하니 노소 불문하고 더운 음식을 먹어야 가을에 토사곽란의 염려가 없다. 뱃속은 늘 따뜻해야 좋은데 그러면 배에 병이 생기지 않고 혈기가 장성해진다.

▲ 한여름 더운 때라 하여 찬물로 세수하면 오장이 메마르고 진액이 적어진다. 찬 것을 많이 먹으면 시력을 상하며 냉한 채소는 기를 다스리기는 하나 눈이나 귀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 봄과 여름에는 일찍 일어나는 게 좋고, 가을과 겨울에는 늦도록 자되 해뜨기 전에는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닭 울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도는 바람이나 번개, 천둥을 만나거나 날이 어두워지면 집안으로 피해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신을 상하는데 당시는 몰라도 오래되면 병을 얻게 된다.

▲ 혀 밑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어 신(腎)과 통하였으니 혀를 천장에 대고 잠깐 있으면 진액이 절로 나와 입안에 가득할 것이니 이를 천천히 삼키면 오장으로 들어가고 기(氣)로 변해 단전(丹田)으로 들어간다.

▲ 두 손바닥을 마찰해 뜨겁게 한 뒤 눈을 닦으면 눈에 끼는 것이 없어지고 밝아지며 풍을 예방하고 신(腎)을 기른다. 이마를 손으로 문지르고 이마와 머리카락이 닿는 부분을 문지르면 얼굴에 광채가 난다. 가운뎃손가락으로 콧대의 양쪽을 문지르면 폐가 좋아지고 손바닥으로 귓바퀴를 문지르면 귀가 머는 것을 예방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머리는 자주 빗어야 하고, 손으로는 얼굴을 문지르고, 이는 자주 마주쳐야 하며, 침은 항상 삼켜야 하고, 기는 마땅히 정련해야 한다”라고 했다.

퇴계의 건강체조, 도인법
이 중 대부분은 실제 현대의학에서 반(反)노화법으로 증명된 이론. 일부 귀신 이야기나 혀 밑에 두개의 구멍이 있어 신장과 통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현대의학과 배치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 퇴계가 당시의 한의학을 섭렵하고 있었음을 알리는 증거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노화 예방법을 강의한 퇴계 선생은 건강하기 위해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으라고 일갈한다. ‘치심(治心)’, 즉 마음 다스리기 편이 그것이다. ‘그 누가 이르기를 “선을 항상 행하더라도 한번 욕심이 동하면 곧 선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얼른 착함으로 되돌려 분하고 원통한 일이 생기면 그 일을 적으로 알라. 내가 선한 마음으로 분한 마음을 다루면 풀릴 것이나 풀리지 않으면 삶을 해칠 것이다. 무릇 칠정(七情)과 육욕(六慾)이 모두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니 마음을 고요히 하면 신명에 통하여 미리 앞을 내다볼 수 있으며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의 일을 알 수 있고 하늘의 이치를 절로 알게 된다. 대개 마음은 물과 같아서 흔들리지 않으면 자연히 맑아져서 그 밑바닥까지 환히 보이는 것이니 이를 영명(靈明)이라 한다. 마음을 고요히 해서 원기를 키우면 모든 병을 물리쳐 장생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생각이 들면 신(神)은 밖으로 들고 기(氣)는 흩어지고 피도 이를 따르매 생기가 혼란해져서 백병이 생겨나니 이는 모두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무릇 마음을 고요하고 평안케 하는 것이 바로 마음 다스리는 법이다.’ 도인(道人)의 경지를 설파한 퇴계 선생은 다음으로 일반인이 생활 속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건강체조법인 도인법(道引法)을 설파한다. 활인심방의 도인법 편은 퇴계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이 곁들여 있어 눈길을 끈다(아래 그림 참조).

① 이 부딪치기, 귀 뒤쪽 튕겨주기: 눈을 감고 책상다리 자세로 편안히 앉아 있다가 양손으로 머리 뒷부분을 감싸듯 하고 아래윗니를 36회 마주친다. 두 손을 머리 뒤에서 깍지를 끼고 조용히 숨소리가 나지 않게 9회 호흡한다. 손목이 턱에 닿게 한 다음 둘째손가락에 가운뎃손가락을 올려놓고 귀 뒤쪽 튀어나온 뼈 부분을 24회 튕겨준다.

② 천주혈(天柱穴) 자극하기: 머리가 끝나고 목이 시작되는 부분의 좌우측에 있는 천주혈을 자극하기 위한 운동으로 손목 혈을 누른 상태에서 팔과 어깨를 흔들면서 고개는 반대방향으로 돌린다.

③ 혀를 저어 침 만들어 삼키고 팔 올리기: 혀를 입안에서 골고루 36회 움직여 침이 많이 나오게 한 뒤 세 번에 나누어 삼키고 숨을 멈추었다가 조금씩 들이마신 다음 두 손을 비벼서 잡고 머리 위로 들어올린다.

④ 허리 뒤쪽 문지르고 단전에 기 보내기: 허리 뒤쪽의 콩팥 있는 부분을 36회 세게 주무른 뒤 숨을 들이마시고 멈추었다가 마음으로 화기(火氣)를 단전으로 내려보내 기를 순환시킨다. 숨을 천천히 마셔 새로운 기를 받아들여서 한참 멈춘 뒤에 기를 단전에 보낸다.

퇴계 이황 선생은 1501년에 태어나 1570년에 타계했다.

한 손 허리에 대고 어깨 흔들어 단전 기운 올리기 : 자리에 앉아 머리를 앞으로 숙여 한 손을 주먹 쥐어 허리에 대고 어깨를 올렸다 내렸다 36회 하고 팔을 바꾸어 다시 36회 하고 나서 기를 단전에 보낸다.

두 손 허리에 대고 어깨 흔들어 단전 기운 올리기 : 두 손을 모두 주먹 쥐어 허리에 대고 다시 어깨를 36회 아래위로 흔들고 단전으로부터 기가 척추를 거쳐 머리에 오르게 한 다음 두 다리를 쭉 편다.

두 손 깍지 끼어 올리기 : 두 손을 깍지 끼어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여 들어 올리되 하늘을 밀어 올리는 기분으로 한다. 자세가 구부러지면 안 되며 3~9회 한다.

발 잡아당기기 : 자리에 앉아 양발을 뻗치고 두 손으로 발을 잡되 발의 중간 부분을 잡고 당기기를 13번 하고 발을 모아 단정히 앉는데, 이때 침이 가득이 고이지 않으면 앞에서 하듯이 입 속에서 혀를 사방으로 움직여 침이 고이게 한 다음 세 차례에 나눠 삼킨다. 침이 잘 생겨 넘어가 잘 돌면 온몸의 맥이 고르고 안정되어 기혈 순환이 잘 된다.

생명을 살리는 취·허·휴·스·후·히
퇴계 선생은 몸을 움직여 하는 건강체조법을 선보인 후 소리로 건강을 다지는 거병연수육자결(去病延壽六字訣)을 소개한다. 여섯 글자를 소리 내 읽음으로써 병을 치료하고 오래 살 수 있는 건강법이다. 먼저 간과 폐, 심장, 신장, 비장, 삼초(몸통을 위, 가운데, 아래로 나눈 명칭)가 각각 약할 때 나타나는 증세를 설명하고 있는데 간이 허하면 눈이 흐려지고 폐가 약하면 숨쉴 때 두 손을 비비는 것 같은 거친 소리가 나고 심장이 약하면 자주 기지개를 켜게 된다. 신장이 약하면 무릎을 감싸고 웅크려 앉기를 잘하고 비장에 병이 생기면 입이 마르고 삼초에 열이 있으면 누워서 잘 앓게 된다고 씌어 있다. 퇴계 선생은 이를 예방하기 위해 여섯 글자를 소리 내 읽기를 권한다. 발음은 중국어 발음을 차용한 듯하다.

① 신장의 기운을 돕는 ‘吹’: “취~” 소리를 내면 신장의 기운을 키운다. 신장의 병은 물 기운으로 인하니 신장은 생문(生門)의 주(主)가 되며 병이 들면 파리해지고 기색이 검어지며 눈썹이 성기고 귀가 울게 된다. “취~” 소리를 내어 나쁜 기운을 내보내면 장수할 수 있다.

② 심장의 기운을 돕는 ‘呵’: “허~” 소리를 내면 심장의 기운을 돕는다. 마음이 산란하거나 초로하면 빠르게 “허~”할지니 대단히 신통한 효험을 볼 수 있다. 목이나 입에 염증이 생기며 열이 나고 아픈 데에도 좋다.

③ 간의 기운을 돕는 ‘噓’: “휴~” 소리를 내면 간의 기운을 돕는다. 간이 병들면 시거나 쓴맛을 좋아하는데 눈도 붉어지고 눈물도 많이 난다. 그럴 때 “휴~” 소리를 내면 잘 낫는다.

④ 폐의 기운을 돕는 ‘스’: “스~” 소리를 내면 폐의 기운을 돕는다. 폐에 이상이 있어 숨쉴 때 “스스” 소리가 나는 사람은 침이나 가래가 많다. 가슴이 답답하고 번거로운 것도 상초에 가래가 많기 때문이니 날마다 “스~” “스~” 하면 좋아진다.

⑤ 비장의 기운을 돕는 ‘呼’: “후~” 소리를 내면 비장의 기운을 돕는다. 비장은 ‘토(土)’의 기운에 속하는데 병이 들면 그 처방이 쉽지 않다. 설사하고 장이 끓고 물을 토하면 “후~” 소리를 내 속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좋다.

⑥ 삼초의 기를 돕는 ‘히’: “히~” 소리를 내면 삼초의 기를 돕는다. 삼초에 이상이 생기면 빨리 “히~” 소리를 내면 좋다. 옛 성인 말씀에 “이것이 가장 좋은 의원이다. 막힘을 통하게 하려 할 때 이 법을 안 쓰고 어디서 다시 구할까” 하셨다.

⑦ 이 여섯 글자를 바탕으로 사계절에 부르는 건강노래: 봄에 “휴~”소리를 내면 눈이 밝아지고 간이 좋아지며 여름에 “허~”소리를 내면 마음의 불이 절로 가라앉는다. 가을에 “스~” 소리를 내면 기를 거두어들이기 때문에 폐기능이 좋아지고 겨울에 “취~”소리를 내면 신장에 기를 불어넣어 평안하다. 삼초가 약할 때는 “히~”하여 헐떡임을 없애고 사계절에 항상 “후~” 소리를 내면 비장의 기능이 좋아지는데 소리 내지 않고 해야 한다.

오장 튼튼, 양오장법
퇴계 선생은 마치 의사인 양 오장을 건강하게 하는 양오장법(養五臟法)도 설파해 놓았다. 얼른 보면 인도에서 비롯한 요가 동작과 비슷한 것 같지만 많이 다르다.

① 심장: 바르게 앉아 두 주먹을 쥐어 겹치게 하는 동작을 6회 하고 한 손으로 팔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아래를 향해 돌 던지듯이 손을 펼친다. 다음에 두 손을 깍지 끼어 발바닥에 대고 5~6회 눌러준다. 이렇게 하면 가슴속에 쌓인 풍과 나쁜 기운을 제거하며 모든 병을 없애고 막힌 기운을 소통시켜준다. 그 다음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침을 세 번 삼키고 세 번 이를 마주친다.

퇴계 선생이 활인심방에 직접 그려 넣었다는 도인법 8가지 동작. 귀 뒤쪽 튕겨주기에서 발 잡아당기기까지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② 간장: 바르게 앉아서 두 손으로 허벅지에서 무릎, 종아리, 발끝까지 서너 차례 왕복하며 주무른다. 다음은 두 손을 깍지끼어 가슴에 대고 위를 쳐다보면서 3~5회 치켜 올리면 간에 쌓인 풍이나 나쁜 기운을 없애주고 독기를 몰아낸다.

③ 비장: 한쪽 다리는 앞으로 뻗치고 한쪽은 굽혀서 깔고 앉은 다음 양손을 뒤로 하여 잡은 뒤 잡아당기기를 3~5회 한다. 다음은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엎드린 뒤 양팔굽도 대어 동물이 엎드린 자세를 취한 뒤 좌우 교대로 뒤돌아보기를 3~5회 하면 비장에 쌓인 풍이나 나쁜 기운을 없애주며 입맛이 좋아진다.

④ 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머리를 바짝 숙인 다음 고개를 서서히 들면서 허리를 서서히 치켜들면 폐부에 쌓인 풍과 나쁜 기운이 제거되고 튼튼해진다. 다음은 두 주먹을 쥐고 손등으로 반대쪽의 등줄기를 두드려주기를 좌우 각 3~5회 하면 가슴속의 풍과 나쁜 기운을 제거하고 독을 풀어준다. 그런 후에 눈을 감고서 이를 3회 마주친 뒤 침을 삼킨다.

⑤ 신장: 바르게 앉아 두 손을 귀에 대고 쓰다듬어 내릴 때 팔꿈치를 옆구리에 닿게 하기를 3~5회 하고 양손을 들어 좌우로 각각 뻗쳐 몸을 늘리고 일어서서 발을 앞뒤 좌우로 수십번씩 흔들면 신장과 방광에 쌓인 풍과 나쁜 기운을 없애준다.

퇴계의 보양음식 8선
오장을 튼튼하게 하는 건강법에 이어 건전한 정신을 갖게 하는 ‘보양정신(保養精神)’에 대해 설파한 퇴계 선생은 몸을 보하는 건강음식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해놓았다. 보양음식(保養飮食)편이 바로 그것이다.

백탕(栢湯): ‘栢’(잣나무, 측백)은 맛이 쓰고 따스한 성질이 있다. 코에 피가 날 때, 이질, 하혈 등의 증세에 꾸준히 먹으면 효과가 있으며 몸이 가벼워지고 추위나 더위, 허기를 이기게 해준다. 봄철 새로 나온 잎을 따서 실에 꿰어 큰 독 속에 매달고 종이로 밀봉해 한 달 정도 지나서 열어보아 바싹 말라 있으면 가루로 만들어 단지에 잘 보관하면서 늦은 밤에 차 대신 달여 먹는다. 보관할 때 바람이 들어가면 누렇게 변하니 조심해야 한다. 차는 많이 마시면 정기를 소모하고 위를 상하게 하나 백탕은 그렇지 않으며 너무 써서 먹기 거북할 때 마를 섞어 먹으면 부드럽다.

서여주(薯蕷酒): 서여(薯蕷)는 산에서 나는 약으로 일명 산우(山芋), 즉 마다. 맛이 달고 독성이 없으며 피로하고 수척할 때 좋으며 오장의 열을 없애 음을 보해준다. 오래 복용하면 귀와 눈이 밝아지고 몸이 가벼워지고 허기를 몰라 장수하게 된다. 산에서 캐온 것을 10여 일 말려서 껍질을 벗기고 푹 삶은 것 1근과 우유 세 냥을 잘 섞어서 반죽해 달걀만한 덩어리를 만들어 술 반 되에 1덩이꼴로 저장한다. 서여는 산에서 난 것이 좋으며 옛날 의서에는 개고기탕보다 몸에 더 좋다고 하였다.

지황주(地黃酒): 지황은 맛이 달고 서늘하며 쌉쌀하고 독이 없어 오래 먹으면 목이 가볍고 늙지 않는다. 오장을 보해주고 혈액순환을 돕는다. 따라서 기를 돋우고 귀와 눈이 밝아진다. 쌀 한 말에 생지황 3근을 넣어 찐 뒤 누룩에 띄워 술을 담가 먹으면 혈색이 좋아지고 얼굴빛이 밝아진다.

무술주(戊戌酒): 찹쌀 3말을 개 한 마리와 함께 넣어 푹 쪄서 찧은 뒤 반죽을 만들어 누룩에 띄운다. 잘 익은 무술주를 빈속에 한 잔씩 마시면 원기를 키우며 노인에게 더욱 좋다. 본래 술은 혈액순환을 좋게 하지만 석 잔 이상을 마시면 오장을 상하게 하고 성품을 난폭하게 만들어 광증이 나타나게 되니 더욱 조심해야 한다.

유죽(乳粥): 우유는 맛이 달콤하고 독성이 없다. 날것은 조금 차며 허한 것을 채워주고 갈증을 풀어준다. 또 피부를 윤택하게 해주고 심장과 폐를 튼튼하게 해주며 열을 내리고 풍을 없다. 누런 소의 우유를 쓰는 것이 좋으며 물소의 우유는 좋지 않다. 죽을 끓일 때 먼저 물을 붓고 끓이다가 밥물을 떠내고 대신 우유를 넣으면 좋다.

녹각죽(鹿角粥): 녹각은 맛이 달고 독성이 없다. 녹각을 먹으면 마비가 없어지고 기력을 돋우며 뼛골을 보하고 음기를 돋운다. 새로 따온 녹각을 한 치씩 잘라서 흐르는 물에 3일간 두었다가 잘 씻은 다음 물을 넉넉히 넣은 단지에 넣고 뽕나무 잎으로 잘 막아 기가 새지 않게 하여 강한 불로 달이는데 졸아들면 더운 물을 부어가며 하루 종일 달여서 바짝 졸인다. 다음에 녹각을 추려내어 다시 감자를 삶듯 은은한 불에 김이 새지 않게 하여 잘 익힌 다음 꺼내서 말려 가루를 만든다. 나머지 국물은 깨끗한 무명천에 밭여 걸러낸 뒤 식히면 묵같이 되는데 이를 녹각교라 한다. 이렇게 만든 것을 죽 한 대접에 녹각분과 소금을 넣어 따뜻한 채로 마시면 정혈을 돋우고 원기를 키워준다.

산서죽(山薯粥): 산서(마)는 산에서 캔 것이 좋고 집에서 키운 것은 맛이 못하다. 껍질을 벗겨 곱게 찧어서 죽 한 그릇에 두 홉을 넣고 꿀 두 숟갈을 넣어 잘 섞는다. 그 다음 죽 한 사발에 넣어 잘 끓여서 먹는다.

산서면(山薯麵): 마를 캐어 껍질을 벗겨 얇게 썰어 말린 뒤 곱게 빻아 체로 걸러서 국수를 만들어 우유와 꿀을 섞어 먹으면 정력을 충실케 해준다.

마음을 살려야 몸이 산다
지금까지 활인심방의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500년 가까이 전해 내려온 책이지만 현대의학이 참고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이를 토대로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도 많은 편이다. 건강체조 등 책의 일부 내용에서 사람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달라 다소 혼란스러운 면도 있지만 심신의 조화를 꾀하는 건강수련법이 두루 담겨 있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활인심방을 전수하고 있는 이동한씨는 “퇴계 할아버지가 아내와 자식을 먼저 보내고 70세까지 살 수 있었던 데는 활인심방을 꾸준히 실천한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현대인이 활인심방에 나온 내용대로 실천하기가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꾸준히 실행에 옮기다 보면 효과를 볼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99세 생일상을 받은 이동은 옹도 “나도 퇴계 할아버지처럼 아내를 먼저 보냈지만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도록 지금껏 큰 병환 없이 건강을 유지해온 것이 어쩌면 활인심방의 처방대로 살아온 선조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덕택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퇴계 할아버지께선 중국 서적을 바탕으로 여러 건강비법을 정리해놓으셨지만 뭐니뭐니 해도 마음을 잘 다스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할아버지 말씀처럼 세상의 출세와 영욕, 이해득실에 마음을 두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다면 따로 건강을 논할 필요가 뭐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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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이념갈등 넘어설 대안사상 향하여

 

한겨례 / 2009-03-11 17:02

 

 

내달 ‘창도 150돌’ 기념축제

근대 민족 종교 혁명 사상… 일제탄압·정권배척에 쇠락… 경주서 3·1운동 등 퍼포먼스“천도교 사상 재점화 염원”

 


동학 천도교를 창도한 수운 최제우(1824~64)가 1860년 4월5일 득도한 지 150년이 됐다. 반상의 구별이 현저했던 당시, 양반도 천민도 남녀도 차별 없이 모두 한울님을 모시고 있어 모든 사람은 근원적으로 평등하다는 ‘시천주’(侍天主·한울임으로 모심) 의 가르침을 펼친 수운의 사상은 동학 민중항쟁과 3·1 만세운동, 독립운동, 어린이 운동, 여성 운동으로 이어지는 근대사의 첫닭 울음소리였고, 그 뒤에 태어난 증산도, 대종교, 원불교 등 수많은 민족 종교 사상의 시원이었다. 따라서 동학 천도교를 빼고는 한국 근대사를 논할 수 없다.

1926년 <동아일보>가 쓴 ‘조선 종교현황’엔 천도교인 수가 200만명이고, 기독교 35만명, 불교 20여만명으로 기록돼 있다. 천도교 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가 민족대표를 맡아 주도한 3·1 만세운동 때는 2천만 인구 중 천도교인이 300만명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천도교인 수는 불과 수만명을 헤아릴 정도로 쇠락했다.
 
‘사람이 곧 한울이니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하라’는 사상으로 근대 시민의식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봉건적인 왕조와 일제 식민지에 정면으로 저항했던 동학 천도교는 우리나라 수난의 역사 과정에서 그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졌다.
 
당시 봉건적인 반상·적서·남녀 차별을 뒤엎는 혁명적인 사상으로 말미암아 천도교는 처음부터 피를 불러왔다. 수운이 1864년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참형을 당했고, 수운으로부터 대도를 물려받은 뒤 36년간 도를 널리 펼치며 동학혁명을 이끌었던 해월 최시형도 1898년 스승과 마찬가지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동학혁명 때 죽은 동학 교도만 30만명에 이르렀다. 3·1 만세운동 당시 희생된 7천여명 가운데도 천도교인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민족의식이 강했던 천도교에 대한 일제의 탄압은 극심했다. 그런데도 해방 때까지도 200여만명의 신도가 있었다.
 
그러나 분단으로 인해 교세가 강했던 북쪽이 떨어져나감으로써 천도교는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북에서 천도교인들이 설립한 조선청우당은 1948년 3·1절을 기해 남북통일 시위를 모의하다가 실패해 1만7천여명의 간부들이 검거되고, 남한의 이승만 정권도 민족의식이 강한 천도교를 배척했다.
 
천도교는 수운회관 건립비를 지원하는 등 우호적이었던 박정희 정권 때 다시 번창하는 듯했으나 1976년 최덕신 교령, 1997년 오익제 전 교령 등이 잇따라 월북함에 따라 ‘빨갱이’교로 음해되면서 결정타를 맞게 된다.
 
김동환 교령은 “천도교의 쇠퇴로 인해,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한 달 뒤인 4월1일 아우내장터에서 만세를 불렀던 유관순이 마치 선창해 3·1 운동이 일어난 것처럼 보도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러 선열들 앞에서 머리를 들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창도 150돌을 맞아 이념적 갈등을 넘어설 대안적 희망사상으로 동학 천도교의 사상이 다시 떠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천도교는 창도 150돌을 맞아 수운이 대도를 얻은 경북 경주시 일원에서 4월4~5일 ‘천도교 천일(天日)기념 대축제’를 펼친다.
 
4일 경주시 일원에서 창도 150돌 기념 행진을 펼치는 것을 시작으로 동학군 마임놀이와 무극대도와 3·1 독립운동 퍼포먼스, 축하공연, 학생문예행사, 학술세미나, 풍물놀이 등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한울)사상을 되새길 다채로운 행사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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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만 잘 해도 스트레스 해소된다

 

여성신문 / 2009-02-11 05:30

 

 


눈만 뜨면 과중한 업무, 치열한 경쟁, 공해 등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일상의 연속이다. 반복되는 긴장과 자극은 육체적·정신적으로 점점 피폐하게 할 뿐이다. 하지만 진정한 웰빙은 편안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심신의 균형과 안정을 찾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호흡’이 주목받고 있다. 호흡만 잘 해도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해질 수 있다. 명상학교 ‘수선재’의 윤준영 전문강사로부터 웰빙 호흡법을 배워본다.

◆ 호흡 왜 중요한가
호흡은 생명과 연결된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바로 이 호흡을 통해 필요한 에너지를 받는다. 몸을 건강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하는 명상의 기초가 되는 것도 호흡이다. 다만, 제대로 된 방법으로 호흡을 해야만 오장육부의 균형을 이루고 건강해질 수 있다. 호흡법에는 흉곽과 어깨를 들썩이며 가슴으로 숨 쉬는 흉식호흡, 배 전체로 숨 쉬는 복식호흡, 배꼽 아래 단전으로만 숨 쉬는 단전호흡이 있다. 건강해지려면 단전호흡을 해야 한다. 단전호흡은 기를 끌어당겨 받아들이는 기 위주의 호흡법이자, 명상의 근본이 되는 호흡법으로 물 흐르듯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숨을 쉬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운이 폐를 넘어 단전까지 내려가 쌓이게 되는데 그 기운의 힘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이 과정에서 몸 안의 탁한 기운도 배출된다. 단전호흡이 좋은 궁극적인 이유는 태어날 때 원초적으로 하던 자연 호흡법이기 때문. 그래서 그때의 호흡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 단전호흡 어떻게 하나
단전은 기를 안정적으로 담고 저장하는 기운 저수지를 말하며 우리 몸 가운데에 위치한다. 양손의 엄지손가락 끝을 가로로 마주대고 나머지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모아 역삼각형을 만들면, 검지와 중지 사이에 생기는 마름모꼴 지점이다. 단전호흡을 하는 방법은 자연스러움을 기본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날숨과 들숨을 하면 된다. 윗배는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단전이 위치한 배꼽 아래의 아랫배만 부풀렸다 꺼뜨렸다 하며 숨을 쉰다. 옆에서 볼 때, 가장 높이 부풀어 오른 정점이 배꼽 아래 단전 부위에 형성된다. 즐거운 생각을 하면서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한다. 일반적으로 날숨과 들숨을 하는 데 3초 걸리지만 이때는 4초로 늘려 10분간 호흡한다. 이렇게 하면, 마음의 안정과 창조적 아이디어 창출, 병의 치료가 가능한 알파파장에 이를 수 있다. 단전호흡을 할 때는 단전을 자리 잡게 하고 기를 쌓기 좋은 누운 자세가 최적이다. 약간 딱딱한 바닥에 담요 한 장을 깔고 눕는다. 양 엄지발가락을 서로 붙이고 손은 가볍게 단전에 올려놓는다. 숨을 들이쉬면서 단전 부위를 부풀리고, 내쉬면서 꺼뜨린다. 몸에 있는 나쁘고 탁한 기운, 잡생각들을 충분히 다 내보낸다는 생각으로 원 없이 길게 내쉬면 그 반동으로 맑은 기운이 들어온다. 들이쉴 때는 온 우주를 흡수한다는 느낌으로 깊게 한다. 하지만 숨을 멈추는 것은 기운을 정체시키고 몸에 무리를 주므로 삼간다. 누울 수 없는 환경이라면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도 할 수 있다. 양 발바닥을 어깨너비 만큼 벌려 바닥에 대고 척추를 반듯하게 편 상태로 단전호흡을 한다. 힘들면 몸 전체를 의자 등받이에 기대도 된다. 햇빛을 받으며 천천히 걸으면서 호흡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주의할 점은 하루에 1시간 이상 하려면 반드시 명상·호흡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호흡은 깨달음을 얻는 고도의 과정이므로 잘못하게 되면 기가 흩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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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도’가 정신건강 특효약이죠

 

한겨례 / 2008-08-13 15:20

 

 

[산중한담] 도(道)정신치료자 이동식 선생
서양정신분석 배우며 한국 전통문화 우수성 깨달아… 스스로의 마음 응시하고 정화해야 근본적 치료 가능
 
도(道)로 정신치료를 하는 정신과의사가 있다. 소암 이동식(88) 선생이다. 소암은 1976년 한국정신치료학회를 창립했고, 대한신경정신과학회 회장을 지내는 등 한국의 대표적인 정신과의사지만, 불교와 유교, 노자·장자를 섭렵해 동양의 도(道)를 통한 ‘정신 치료’를 주창했기에 정신과의사보다는 오히려 도인으로서 길을 걸었다. 그래서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인 류승국 성균관대명예교수는 “우리나라에선 도(道)라면 현실에서 동떨어진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소암이 서양의 과학철학과 결부시켜 구체적으로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그 평생의 여정을 담아 이번에 소암이 펴낸 책 이름도 <도정신치료입문>(한강수 펴냄)이다. 책은 ‘프로이트와 융을 넘어서’라는 부제를 달았다.

‘무식한’ 한국 사람들도 다 아는 서양 철학
서울 성북구 성북동으로 이 선생을 찾았다. 그가 역시 정신과의사인 부인 김동순 선생과 함께 1965년 개원한 동북의원이 있던 옛 건물에 정신치료연구원이란 간판이 붙은 집이다. 정신치료 상담을 해주던 중년 여인을 배웅하러나온 소암은 단구에 온화한 얼굴이다. 부부는 닮아간다던가. 60년 가까이 살아온 그의 부인 또한 마찬가지다. 소암의 청력이 떨어져 정상적인 소통에 지장은 있지만, 그는 ‘도정신 치료를 창안한 것이냐’는 물음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위대한 발견은 늘 눈앞에 있으며, 눈만 뜨면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삶은 그렇게 ‘눈을 뜨는’ 여정이었다. 일제시대에 대구의전과 서울대 의대를 마친 그는 1954년 미국에 유학해 서양의 정신의학과 정신분석을 공부했다. 당시는 중국에 대한 모화사상과 일제의 식민교육, 서양에 대한 열등감으로 가득해 자존감을 잃어버린 시대였다. 그러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던 1958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세계철학대회에 참여해보니 유명한 서양 철학자들이 떠드는 내용이 무식한 한국 사람들도 다 아는 것들이었다. 그는 “한국의 전통문화가 세계 최고이고 한국인이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확신을 갖고 귀국했다. 그는 귀국 이후 훗날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적으로 선풍을 드날렸던 숭산 스님과 탄허 스님, 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 봉선사 조실 월운 스님, 현중앙승가대 총장 종범 스님 등으로부터 불교를 배우는 등 동양사상을 탐구했다. 이로써 그는 동양의 도로서 서양의 정신과학을 명쾌하게 풀어내는 한 경지를 이루었다.
 
콤플렉스와 집착에서 벗어나야 정신이 건강
그는 정신의학과 불교를 동시에 공부하면서 ‘사람들이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끊임없이 사랑받기만을 갈구하면서 상대에 의존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적개심을 품게 되는 애증이 바로 중생고’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아적인 사랑에 대한 갈구나 인정, 대우를 받으려는 욕구를 줄이고 쉬는 게 정신건강을 이루는 길이며, 이런 욕구가 없는 것이 바로 무아(無我·나라고 할만한 독립된 실체가 원래 없음)이며 진여(眞如·깨달음의 본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정신의학에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과 사사건건을 지배하는 불건강한 감정이 바로 ‘핵심 감정’이다. 바로 콤플렉스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받아야할 사랑을 받지 못해 욕구불만이 쌓이거나 너무 지나친 보호를 받아 독립심이 전혀 길러지지 않았을 때 생겨 평생 동안 삶을 지배하는 이 콤플렉스를 제거하는 것이 정신치료의 목적이다. 그는 불교를 공부하다가 화두선의 창시자인 대혜종고가 쓴 <서장>에 나오는 ‘애응지물(碍膺之物)’, 즉 ‘가슴에 거리끼는 것, 집착되어 있는 것’이 곧 ‘핵심감정’임을 알게 되었다. 정신의학에서 핵심감정에서 해방되는 게 정신 건강으로 가는 길이라면 불교에선 ‘애응지물에서 벗어나는 것이 각(覺·깨달음)’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서양의 정신의학과 동양의 도 합쳐지면 시너지 효과
서양이 바깥과 대상을 보는데 치중한다면 동양의 도는 자신의 내면을 본다. 소암은 “수도는 자기 마음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정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불교적 가르침에 따라 ‘불취외상 자심반조(不取外相 自心返照·바깥모양을 취하지 말고,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켜 비춤)하라’고 한다. 이처럼 비추어보아서 착각에서 깨어나면 핵심감정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서양의 역사를 보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즉 대화를 강조해 도가 있었다고 보겠으나, 그의 제자 플라톤 이후에는 진리에 도달하려면 정심(淨心) 즉 ‘카타르시스’를 해야된다고 말만했지 마음을 정화하는 수도는 없고 이론만 늘어 놓았을 뿐이라고 평했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에서 유태인 정신과의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라는 정신치료가 창시되어 비로소 마음을 정화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시작됐지만 동양에선 적어도 2500년 전부터 구체적인 수도의 전통이 면면이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그는 “서양식의 정신분석적인 치료만으로 궁극적인 경지에 도달할 수 없기에 도를 닦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참선은 서양의 정신분석보다 고차원의 경지를 지향하고 있지만 정신분석치료처럼 한 주일에 세 시간 이상 수년간을 치료자가 친절히 이끌어주는 면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서양식의 정신치료가 성공된 후 또는 어느 정도 된 후에 참선을 병행하는 것이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생각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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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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