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적포도주.

 

요즈음 대형 서점의 베스트 셀러 코너에는 포도주에 관한 책들이 한 두 권은 있다. 지역적 특성 때문에 포도주를 많이 마시는 경우를 제외하면 국민소득이 2만불이 이상이 되면 수요가 증가하는 술이 포도주라는 통계가 있다. 이번에는 포도주, 주로 적포도주와 관련된 화학에 대해 알아보자.

 

포도주의 맛과 성분은?

 

포도주에는 상당히 많은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포도주 역시 물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에탄올(CH3CH2OH)이 많다. 포도에 있는 포도당(글루코스, C6H12O6)은 발효되면 이산화탄소와 에탄올로 변한다. 그런 포도당은 광합성을 통해서 포도나무가 식량으로 저축해 놓은 것이다. 보통 포도주의 에탄올 농도는 약 15%정도이다. 그것은 발효에 사용된 효모(yeast)의 활성이 유지되는 알코올의 한계 농도이기도 하다. 자연산 과일 주들의 에탄올 농도가 약 15%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도 발효에 사용되는 효모의 수명과 관계가 있다. 포도주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달콤함(sweetness)을 들 수 있다. 단맛 혹은 드라이 한 맛의 포도주는 설탕의 농도, pH, 알코올 농도, 탄닌을 비롯한 폴리페놀의 함량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

 

포도주의 색은?

 

적포도주의 붉은 색은 주로 말비딘(malvidin, C17H15O7) 이라는 화합물 때문이다. 말비딘 분자는 안토시아니딘(anthocyanidin)의 한 종류이다. 안토시아니딘과 포도당(혹은 다른 당)이 결합된 것은 안토시아닌(anthocyanin)이라 부른다. 현재까지 알려진 안토시아닌은 500종이 넘고, 종류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항 산화 기능을 갖고 있다. 안토시아닌은 물에 녹는 색소 분자이며, 그것이 녹은 용액의 pH에 따라 청색, 보라, 빨강색을 띤다. 식물이 나타내는 색의 색소는 대부분이 안토시아닌으로, 그것은 잎, 줄기, 뿌리는 물론 꽃, 열매 등 식물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검출된다. 안토시아닌에서 포도당이 분리된 안토시아니딘 분자는 독특한 기본 분자 구조를 갖추고 있다. 기본 분자구조에 결합되는 작용기의 종류나 수에 따라서 이름이 다르다. 말비딘은 약산성이나 중성일 경우에는 빨강색, 염기성일 경우에는 파란색을 띤다. 그러므로 적포도주의 pH는 약 산성 혹은 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안토시아니딘의 분자구조

적포도주의 붉은 색은 주로 안토시아니딘의 일종인 말비딘의 색이다. <출처: Gettyimage>

포도주의 화학성분 및 항산화 작용

 

적포도주에는 폴리페놀이 많이 들어 있다. 폴리페놀은 포도의 껍질처럼 과일에서 색을 나타내는 부분에 많이 포함된 것으로 페놀 혹은 페놀 유도체들이 융합된 분자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므로 안토시아니딘도 폴리페놀의 한 종류이며, 비타민 C 혹은 비타민 E와 마찬가지로 항산화 기능도 있다. 산화력이 매우 큰 화학종인 활성산소(예: 하이드록시라디칼(OH·))는 단백질을 비롯한 몸에 필요한 분자들을 무차별하게 공격해서 망가트린다. 그런데 활성산소는 대사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화학종이다. 그런데 항산화 물질이 활성산소와 반응하면 활성산소의 반응성이 약화되거나 혹은 대폭 감소된다. 항산화는 분자들의 산화를 막는다는 의미이므로, 결국 몸에 필요한 분자들의 산화를 막아준다는 뜻이다.

 

포도주에는 항산화 기능이 있는 폴리페놀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포도주에 포함된 퀘세틴(quercetin, C15H10O7), 레스버라트롤(resveratrol, C14H12O3), 탄닌(tannin)등과 같이 발음하기 조차 매우 힘든 이름을 가진 폴리페놀이 포함되어 있고, 그들 모두 항산화 기능을 갖고 있다. 안토시아니딘의 한 종류인 프로안토시아니딘(proanthocyanidin)도 폴리페놀이다. 프로안토시아니딘은 안토시아니딘과 유사한 분자구조를 갖고 있으며, 주로 색을 띠지 않지만 혈관의 노화 방지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장수 노인이 많은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사르디니아(Sardinia)에서 생산되는 포도에는 폴리페놀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연구결과, 그들 지역민들은 육식을 즐기면서도 심장혈관 질환의 발생 비율이 다른 지역의 주민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즐겨 마시는 포도주에 포함된 폴리페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연구로 알아냈다.

 

포도주의 떫은 맛과 쓴 맛은 탄닌(tannin) 계 화합물에 의한 것이다. 농축된 탄닌은 프로안토시아니딘의 고분자로, 가수분해 될 분자 구조를 갖추고 있다. 주로 포도 껍질과 씨뿐만이 아니라 줄기에서도 발견된다. 포도주를 담글 때 줄기를 걸러내지 않고 담은 포도주의 더 떫은 맛은 탄닌의 농도가 높기 때문이다. 탄닌은 덜 익은 과일의 떫은 맛으로, 탄닌 맛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덜 익은 감을 한 번 먹어보면 그 맛이 어떤지 오래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포도주 병 바닥에 쌓여 있는 침전에도 탄닌이 많이 들어 있다.

 

식물은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자체적으로 방어수단을 동원하여 물리치려고 든다. 식물은 박테리아 혹은 곰팡이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파이토알렉신(phytoalexin)을 사용한다. 파이토는 식물, 알렉신은 살균소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식물의 방어무기가 파이토알렉신인 셈이다. 따라서 식물에는 자연산 살균제로 상당히 많은 종류의 파이토알렉신이 존재한다. 포도주에 포함된 레스버라트롤은 파이토알렉신이며, 폴리페놀의 한 종류로 콜레스테롤의 산화를 방지해 준다. 포도 껍질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백 포도주에는 레스버라트롤이 적포도주보다 훨씬 적은 편이다. 미국 남부와 멕시코에 걸쳐서 생산되는 머스카딘(muscadine) 포도는 껍질과 씨에 레스버라트롤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의 의학 자료에 따르면 레스버라트롤은 치매 질환의 원인 물질로 알려진 아밀로이드(amyloid)의 분해 효과도 있다고 해서 치매 치료제의 후보 물질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포도주의 코르크 마개.

 

포도주를 따면 코르크 마개 부분에 유리 파편처럼 날카로운 결정이 있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다. 그것은 타타르산(tartaric acid, C4H6O6)염이 뭉쳐 있을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의 유명한 과학자 파스퇴르는 순수한 타타르산 염의 결정을 최초로 얻어냈다. 그가 포도주의 앙금에서 분리해 낸 타타르산 염 결정은 광학활성을 지닌 L-형의 타타르산 염이었다. 광학 활성을 지닌 타타르산은 L, D-형이 존재하며, 자연산 타타르산 염은 대부분 L-형이다. 타타르산 역시 또 다른 종류의 항 산화 물질로 숙성과정에서 포도주 원액의 pH를 낮추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박테리아의 번식이 억제되므로 포도주의 품질이 향상된다. 그 밖에도 포도주에는 아황산 염(sulfite salt), 과일 향이 나는 에틸아세테이트(ethylacetate), 포도 재배 혹은 술 제조과정에서 첨가되어 잔류하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화학물질들이 소량 포함되어 있다. 적포도주를 보통 진한 색 병에 담아 보관하는 것은 빛에 민감한, 심지어 분해되는 분자들을 보호하여 포도주의 맛과 향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노력이다.

 

포도주도 과유불급

 

우리는 포도주를 구입할 때 건강에 도움이 되는 화합물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따지지는 않는다. 색깔이 좋고, 맛과 향이 자신과 궁합(?)이 맞는 것을 선택하는 편이다. 아무리 몸에 좋은 포도주라 해도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으면 안 마시는 편이 정신 건강에도 좋고, 잘 맞는다고 너무 많이 마시면 알코올로 인해서 오히려 몸을 망칠 수 있으니 주의를 해야 된다. 즉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글: 여인형 / 동국대 화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화학과 교수이다. <퀴리 부인은 무슨 비누를 썼을까?>를 썼고, <화학의 현재와 미래>를 대표 번역하였다.

 

 

발행 2013.05.13
728x90
Posted by 호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