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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로드 체험] 달려라 거침없이… 내가 가는 곳이 길이다

 

매일경제 / 2010-09-29 16:05

 

 

 

세상에 이런 기회가 있을까. 단풍 절경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아침가리. 그곳을 ‘오프로드의 지존’으로 불리는 크라이슬러 지프 랭글러 루비콘을 타고 마음껏 누비라니. 게다가 색도 빨강이다. 뚜껑 열어젖힌 날렵한 빨간 루비콘이, 유니콘처럼 날렵하게 단풍 절경 속을 질주하는 그 모습. 상상만 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볼 것도 없이 OK. 그리고 지난 26일 아침가리로 겁없이(?) 떠났다. “신 기자님. 핸들 놓으시고, 조수석에 앉으세요.” 빨간 루비콘으로 계곡물을 가르며 질주하는 멋진 상상은 도착과 동시에 무참히 박살났다. 기자를 보며 생글생글 웃는 이 여자. 오늘 아침가리 오프로드 투어를 함께할 랭글러동호회 TSK(팀 서울코리아)의 열혈 막내 ‘밀리 씨(본명 최윤나·40)’다. 자존심이 있지 조수석이라니. 그것도 아리따운 여성이 모는 지프 옆자리를 권하시다니. 잠깐 머뭇거리자 칼날 같은 한마디가 다시 옆구리를 콕 찌른다. “자존심 문제가 아니지요. 안전 우선이에요. 안전.” 조금만 참자. 곧 핸들을 넘겨 주겠지. 일단 취재를 위해 노트북을 들고 옆자리에 얌전하게 착석. 코스는 아침가리골 종단이다. 아침가리는 방태산(1,436m), 구룡덕봉(1,388m), 응복산(1,156m), 가칠봉(1,240m)을 병풍처럼 둘러싼 골짜기다. 해발 1,000m를 훨씬 넘는 산들 사이에 파묻혀 있는 오지 중의 오지. 오프로드 마니아들 사이엔 험준하고 험해서 더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시작점은 홍천군 내면 원둔리 2교 다리 바로 위. 등산객 두 명이 가로로 서도 모자랄 만큼 좁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은 뒤 그 유명한 진동 인근의 내린천 방동약수터 쪽으로 나오는 16㎞ 코스다. 동행할 랭글러는 모두 4대. 루비콘 숏보디(투도어)와 루비콘 언리미디트(롱보디·4도어) 2대, 그리고 랭글러 TJ 모델 2대다. 아침가리 오프로드 땐 팀 구성이 필수다. 오지 중의 오지답게 견인차가 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다. ‘서비스 안 됨’ 문구를 보니 비로소 세상과 차단된 느낌이 든다. ‘별거 있을까. 그냥 자갈길만 다니는 게 오프로드 아닐까’ 하는 발칙한 상상은 코스 시작과 동시에 산산조각. 이거 장난이 아니다. 그나마 자갈길은 얌전한 편. 이걸 길이라 할 수 있을까. 명지가리까지 이어지는 바위더미 난코스를 넘으니, 높이 2m 남짓한 50˚ 경사도의 절벽(틀림없이 절벽이다)이 능청스럽게 길을 떡 막고 있다. 그 아래론 무릎까지 잠길 만한 계곡물이 꽤나 빠르게 흘러간다. ‘설마, 돌아가겠지’ 하는 순간 윤나 씨 손이 거침없이 움직인다. ‘4L’ 기어로 바꿔 넣더니 그 절벽 아래로 루비콘을 밀어 넣는다. ‘아악’ 분명히 비명을 지른 것 같았는데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기기긱. 일반 타이어 2배만 한 광폭 타이어가 질질 절벽 아래로 밀린다. 입이 바싹 탄다. 한데 윤나 씨는 웃고 있다. 절벽 아래로 차가 질질 밀려가는데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모습이다. “오프로드란 게 그래요. 글자 그대로 길을 벗어난다는 뜻이잖아요. 오프 마니아 사이엔 이런 말이 있어요. 길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오프로드)의 길은 시작된다고” 이 판국에 말이 술술 잘도 나온다. 풍덩. 결국 계곡물에 입수. 이럴 줄 알았다. 길이 시작되기는커녕 이제 오도 가도 못할걸. 윤나 씨의 손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웽. 바퀴가 잠깐 헛돌더니 다시 물속 바위를 타고 탄력을 받는다. 파파팍. 뚜껑 열린 천장으로 비 오듯 물이 튀겨 오른다. 다시 4L 기어. 파워를 실은 루비콘은, 놀랍게 늠름한 유니콘처럼 계곡물 위로 걸어나온다. 꽁꽁 얼어붙은 심장. 쩍 벌어진 기자의 놀란 입을 보며 윤나 씨가 한마디 툭 던진다. “차가 아무리 튜닝이 잘 돼 있어도 소용이 없어요. 심장이 튜닝이 돼 있어야 오프로드를 즐길 수 있지요” 이어지는 자갈길. 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숲길을 루비콘은 잘도 빠져나간다. 놀라운 건 길 양쪽으로 들어선 빽빽한 관목 가지들이 차 옆구리를 사정없이 ‘북북’ 긁어대는데도 무표정하다는 것. 기자의 심정을 아는지 씩 웃으며 설명이 이어진다. “오프 하는 동호인들에겐 흠집이 영광의 상처 같은 거예요. 전 오히려 녹슬고 흙 범벅이 된 지프를 보면 심장이 뛰어요. 얼마나 멋진지…” 차 흠집이 끔찍하기는커녕 사랑스럽다니. 하긴 그쯤돼야 ‘매니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다. 사실 윤나 씨는 매니아 중에서도 ‘열혈’이다. 직업은 준보석 관련 제품을 만드는 SH코퍼레이션 브랜드기획팀 실장. 바쁜 와중에도 벌써 아침가리를 5번 넘게 지났다는 억척이다. 더욱 놀라운 건 덜컹덜컹 비포장길만큼이나 험난한 이 여정에 아들 동연이(7)까지 꼭 끌고 다닌다는 것. 윤나 씨 오프로드 경력이 3년이니 동연이는 네 살 때부터 이 기막힌 투어를 즐겼던(?) 셈이다. 오프로드라면 이골이 난 동연이가 뒤집힐 듯 덜컹이는 랭글러에서 이제 코까지 골며 잘 정도라니, ‘북북’ 수없이 파이는 차 흠집이 사랑스러울 만도 하겠다. 아침가리 골짜기로 들어선 지 15분쯤 지났을까. 끊긴 다리가 나타났다. 제아무리 랭글러 루비콘이라도 더 이상은 무리일 터. ‘이젠 돌아가겠지. 살았다’는 기자의 기대를 또 한 번 무참히 박살내며 루비콘은 다리 아래 계곡으로 덜컹덜컹 내려간다. 그러고는 다리 교각 사이로 고개를 쑥 들이밀더니 그 아래로 아슬아슬 스쳐 지난다. 이게 말이 되는 걸까. 다리가 끊기니 차가, 마치 사람처럼 계곡물을 그냥 건너 버린다. 꾸불꾸불 바위더미 길과 자갈길, 흙길을 넘고 또 넘었고, 끊긴 다리도 8개쯤 지났을까. 비로소 여유가 생겼는지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인제군 단풍의 으뜸이라는 아침가리의 그 아득한 절경. 계곡을 따라 쭉 뻗은 길엔 마지막 생의 불꽃을 태우는 녹색 나뭇잎이 파란 하늘을 가리고 서 있다. 바위 틈마다 지천으로 널린 돌단풍. 물속 바위 아래선 꺽지와 열목어들이 차량 지나는 ‘철벅’ 소리에 놀라 재빨리 몸을 숨긴다. 아득한 풍경에 넋을 잃었을 즈음 분위기를 깨는 윤나 씨의 한마디. “이젠 남자답게 핸들 한번 잡으시죠. 어려운 코스는 다 지났네요” 좋다. 밑천 다 드러난 이상 밑질 게 없다. 방동약수터를 3㎞ 남짓 앞두고 넘겨받은 핸들. 4륜 구동 ‘4H’ 기어를 넣자 루비콘이 밟은 악셀의 압에 맞춰 요동친다. 가가각. 웬만한 크기의 바윗돌은 그냥 타고 넘어 버리는 놀라운 엔진의 힘. 역시 오프로드의 괴물 루비콘답다. 4륜 저단인 ‘4L’ 기어의 파워도 믿음직하다. 어느새 나타난 지그재그의 바위더미 길. ‘밀어버리지, 뭐’ 4L 저단 기어로 바꾼 뒤 거침없이 돌진하는가 했는데, 아뿔싸 바위에 걸렸는지 범퍼 아래 보호가드가 ‘부욱’ 하더니 뜯겨 나간다.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교관, 아니 윤나 씨의 톡 쏘는 한마디가 빠질 리 없다. “차를 너무 믿으면 안 돼요. 아시죠? 차가 아무리 튜닝이 잘 돼 있어도 소용이 없다. 심장에 튜닝을 하라. 그래야 오프로드를 진정으로 즐길 수 있다” 순간, 단풍처럼 붉어진 얼굴. 울고 싶다. 심장에 튜닝할 게 아니라 얼굴에 철판부터 깔아야 할 것 같다.

 

◆ 단풍숲 달리는 오프로드 명소

가을 단풍 감상에 ‘오프로드’ 투어만 한 게 없다. 횃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단풍 숲을 뚜껑을 열어젖힌 채 달리면 선홍빛 단풍이 통째 날아든다. 단풍을 바퀴로 지르밟고 지나는 맛도 일품이다. 오프로드 단풍 명소는 이 무렵, 차로 발 디딜, 아니 ‘바퀴’ 디딜 틈이 없다. 서둘러 떠나시길.

 

▶ 포천 지장산

오프로드 놀이터로 불리는 곳이다. 등산이 허용된 최북단 산이다. 높이 877m. 남쪽으론 한탄강이 굽이친다. 숲이 우거져 가을엔 단풍이 절경을 이룬다. 5㎞에 이르는 지장계곡을 타고 오르는 짜릿함도 있다. 산행은 포천시 관인면 중1리에서 시작한다. 지장계곡을 따라 절터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비탈을 오르면 능선이다. 예서 남쪽길로 진입하면 삼형제봉(710m). 북쪽은 철원평야를 한눈에 품는 화인봉(810m)이다. 아기자기한 오프로드 코스가 일품.

 

▶ 기린면 아침가리

오프로드의 성지다. 방태산(1,436m), 구룡덕봉(1,388m), 응복산(1,156m), 가칠봉(1,240m)을 병풍처럼 낀 골짜기. 해발 1,000m를 훨씬 넘는 산들 사이에 파묻혀 험준하기 이를 데 없다. 일반적인 코스는 홍천 월둔2교에서 출발해 반대편 인제군 진동 인근의 내린천 방동약수터 쪽으로 나오는 16㎞다. 웬만한 국산 SUV로는 엄두도 못 낸다. 랭글러 등 튜닝이 제대로 된 차량 준비가 필수. 특히 전화가 터지지 않으니 안전에 더 유의해야 한다.

 

▶ 양평 유명산

두말할 필요 없는 경기권 최고의 단풍 코스. 튜닝을 하지 않은 SUV로 첫 경험을 하기에 좋은 오프로도 명소로도 꽤나 유명하다. 높이 862m. ‘동국여지승람’엔 산 정상에서 말을 길렀다고 해서 마유산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동쪽으로 용문산(1,157m)과 이웃해 있고 약 5㎞에 이르는 계곡을 거느리고 있다. 가을 단풍이 특히 절경. 이맘때 꼭 한번 가볼 만한 코스다.

 

▶ 그 밖의 코스

강원 대관령 목장 코스도 초보자들에겐 적당한 코스다. 꼬불꼬불 산길이 부담스럽다면 강가의 모래밭 코스를 즐길 수 있는 소남이섬 일대 비포장도로를 강추.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며 소백산 정상에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부석사 길도 일품이다. 충남 금산 지역의 양각산에는 난이도별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코스가 있다. 뭐 길이 좀 없으면 어떤가. 걱정도 팔자시다. 오프로드는 지나가는 게 곧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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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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