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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원천이 숨어있는 씨앗 먹어야 원기 얻어


중앙SUNDAY / 2017-10-01 00:04




[新동의보감] 정기 머금은 한약재

“씨앗은 하나의 우주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농학자 고 우장춘 박사는 씨앗 속에 함축된 무한한 생명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티끌 하나 속에 시방세계가 다 들어 있다)이라고 하는 불교적 세계관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식물의 힘을 응축하고 있는 씨앗. 처음에는 아주 작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점점 크게 자라나 속에 감춰 놓은 형상을 펼친다. 씨앗 속에는 생명의 원천이 숨어 있다. 사람은 그 씨앗을 섭취함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게 한의학적 사고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쌀이다. 한국인의 신체는 볍씨가 가진 힘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리나 콩의 씨앗도 오래전부터 우리의 주식(主食)이 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식물의 씨앗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씨앗 속에 파워(Power)가 숨어 있다”고 하는 것을 한의학적으로는 “씨앗 속에 정기(精氣)가 존재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정(精)은 ‘쌀(米)+푸르다(靑)’이다. ‘청’은 동방의 목기(木氣), 즉 맑게 솟아오르는 힘을 뜻한다. ‘정기’는 곧 생명력이며, 그 힘을 근본으로 생명을 영위한다. 씨앗을 먹는 것은 씨앗에 내재한 힘을 몸속에 먹는 것이다. 사람이 활동하는 힘을 씨앗으로부터 얻는다는 것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쌀과 같은 주식으로부터 탄수화물 섭취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사람은 ‘정기’가 함축된 씨앗을 먹지 않으면 원기를 얻을 수 없다. 씨앗은 한약재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름 끝에 ‘자(子)’나 ‘인(仁)’이 붙는 생약은 대부분 씨앗이라고 볼 수 있다.


행인(杏仁)과 행림(杏林)

한약재로 쓰이는 씨앗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행인(杏仁)을 꼽을 수 있다. 한방에서는 살구씨를 행인(杏仁)이라고 부른다. 행인은 신농본초경(神農本草経)에도 중요한 생약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기침을 멈추게 하고 가래를 없애는 진해(鎮咳) 작용을 한다. 대장의 변통(便通)을 완하(緩下)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일반적으로 감기·천식·변비 등을 치료하는 데 살구씨를 많이 사용한다. 행인은 맛이 쓰고, 성질이 미온(微温)한 생약이다. 감기로 인해 가래를 동반하는 기침이나 천식 등에 효과가 있다. 또 몸이 건조하여 장(腸)에 원기가 없어 딱딱한 변이 나올 때나 변비가 심할 때 장관(腸管)을 부드럽게 하는 역할을 한다. 행인은 피로회복 효과와 빈혈 예방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살구씨에는 올레인산, 리놀렌산 등의 불포화 지방이 많아 피부미용에도 도움이 된다. 이 지방 성분들은 희고 윤기 나는 피부를 유지하게 해 주고 기미와 주근깨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드물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부작용도 있다. 또 청산배당체(青酸配糖体)가 포함되어 있어 과잉섭취하면 청산에 의한 중독 증상을 일으켜 호흡곤란, 현기증 등의 증상을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또한 장이 설사를 할 때에는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살구씨는 행인차(杏仁茶)로 만들어 마실 수도 있다. 진해와 거담·이뇨·강장·변비에 효과적인 약차다. 시트르산과 말산이 비교적 많이 함유되어 있고 비타민A도 풍부하여 신진대사를 도와준다. 특히 여름철에 체력이 감퇴할 때 마시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행인차를 만들기 위해 살구 속씨 4g과 쌀 4g, 물 600㎖를 준비한다. 행인은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속껍질을 벗기고 쌀과 함께 갈아 놓는다. 그 다음 차관에 재료를 넣고 물을 부어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약한 불로 은근하게 끓인 후 설탕을 넣어 마신다. 예상치 못한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향에 놀랄 것이다. 약성이 강하므로 하루에 위의 분량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 행인을 사용한 한약 처방으로는 우선 마행감석탕(麻杏甘石湯)을 들 수 있다. 마행감석탕은 염증에 의한 기침과 가래, 호흡곤란, 천식 등을 치료하는 데 효과적이다. 장이 건조해지면 딱딱한 변으로 인한 변비 증상이 생긴다. 이럴 때 행인을 넣은 윤장환(潤腸丸)을 처방할 수 있는데, 특히 노인이나 산후 여성에게 적합하다. 행인은 한약재 중에서 윤조(潤燥)작용이 뛰어난 약재로 꼽힌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살구에는 인술(仁術)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중국 한나라 후관에 살았던 동봉이라는 용한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 치료비를 받지 않았다. 대신 중환자에게는 살구나무 5그루를, 가벼운 환자에게는 살구나무 1그루를 심게 하여 그가 살던 마을은 온통 살구나무 숲을 이루게 됐다. 동봉은 사람들에게 곡식을 가져와 그 값어치만큼 살구를 따 먹게 했고, 그렇게 모은 곡식은 다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래서 오늘날 인술을 베푸는 의사를 ‘행림(杏林)’이라고 부르고 있다.


결명자, 달여서 마시면 풍미 좋아

결명의 씨를 말하는 결명자(決明子)는 이름 속에 ‘눈을 밝게 해주는 씨앗’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옛날부터 결명자를 볶아 만든 결명자차는 소화불량이나 눈에 좋은 차로 유명하다. 결명자는 또 혈압을 내리게 하고 어지름증, 만성변비, 노인성변비에 효과적이다. 간장과 심장을 보호하고, 부종을 없애 주는 역할을 한다. 달여서 마시면 풍미(風味)가 좋다. 눈이 피곤하거나 부쩍 눈물이 많이 흐를 때 결명자차를 한 줌 달여 마시고 나면 그 다음날 훨씬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다. 백내장, 침침한 눈, 노안에도 좋다. 결명자는 윤장통변(潤腸通便, 장을 부드럽게 하고 통변을 좋게 한다)이나 간장(肝臓)의 기능을 활성화하는 작용을 한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가 보리차를 마시듯이 결명자차를 즐겨 마시며 죽으로도 만들어 먹는다. 단 몸이 냉하거나 혈압이 낮은 사람은 결명자차를 피하는 것이 좋다. 복숭아나무의 익은 열매 씨를 말린 도인(桃仁)은 어혈(瘀血)을 없애 주는 대표적인 생약이다. 도핵승기탕(桃核承氣湯) 처방의 중심이 되는 군약(君藥)으로, 어혈에 의한 제반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밖에 대황목단피탕(大黃牡丹皮湯)·계지복령환(桂枝茯笭丸) 등에도 도인이 들어간다. 심한 어혈환자는 혈열(血熱)로 인해 마치 광인(狂人)처럼 발작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도핵승기탕은 피의 열을 내리고 정신을 맑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도인은 사귀(邪鬼)나 동물의 영(靈)이 달라붙은 것을 몰아내고 악귀(惡鬼)를 퇴치하는 대표적인 약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도인은 임신 중엔 복용 금해야

도인은 잘 익은 산복숭아의 속씨를 햇볕에 건조한 약재다. 맛은 쓰고 달며 성질은 평하다. 그 효능은 크게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혈행(血行, 피의 흐름)을 좋아지게 하는 효능이 있다. 혈행 장애로 인해 발생하는 혹(瘤)이나 종창(腫瘍), 여성의 자궁근종이나 난소낭종(卵巣囊腫)을 줄여 준다. 둘째, 여성 호르몬을 안정시키는 효능이 있다. 생리 기간 중 생리혈이 순조롭게 나오지 않고 덩어리가 생기거나 검은색으로 변했을 때, 생리통이 심할 때 이를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조경(調經)작용을 한다. 셋째, 변비를 해소하는 효능이 있다. 도인은 유지방(油脂分)이 많아 대장을 부드럽게 만들어 변비를 개선한다. 변비가 해소되면 신진대사도 좋아져 노폐물을 밖으로 배출함으로써 얼굴의 기미나 주근깨 등도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넷째, 신경통이나 근육통, 관절통 등의 통증을 경감시키는 효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전신의 혈행이 좋아져 검버섯이나 눈 밑 다크서클도 줄어든다. 도인은 여성의 자궁을 수축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임신 중에는 복용을 금해야 한다. 뒷산의 아름드리 잣나무도 한 알의 해송자(海松子)에서 시작된다. 쌀도 도인(稻仁, 혹은 穀仁)이라 부른다. 모든 약재들을 단순히 성분만으로 따지고 판단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식물의 ‘자’와 ‘인’ 속에 내재한 용수철 같은 생명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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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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