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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09) 고구려 술 ‘계명주’
경향신문 / 2005-04-2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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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주는 연한 황색 빛깔로 단맛과 함께 은은한 솔향이 압안에 오래 남아 입맛을 돋운다. 동의보감에도 적당량을 마시면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폐와 위를 보한다고도 기록돼 있다. 쉽게 취하지 않으며 설령 취했다 하더라도 금세 깨는 것이 이 술의 특징이다.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 축령산 자락 자그마한 공장에서는 고구려인의 기개가 물씬 풍기는 계명주를 빚고 있다. 계명주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생산된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1호(계명주) 민속주 기능보유자이며, 한국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된 최옥근씨(62)가 운영하는 곳이다. 계명주는 평안남도 지방에서 그 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최씨는 평안남도 결성(結城) 장씨가(張氏家)의 11대 종손 며느리. 평안남도 출신인 최씨의 시어머니 고 박재형씨는 한국전쟁 때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기일록(忌日錄)을 품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기일록에는 조상의 제삿날과 함께 제주를 담그는 방법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고 한다. 최씨의 남편인 장기항씨(2005년 3월 작고)도 당시에는 기일록에 제조과정이 적힌 가양주(家釀酒)가 고구려 전통술이란 사실을 몰랐다. 1980년대 정부가 민속주 개발을 지원한다는 말을 듣고 이리저리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이 술이 계명주란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한다.
계명주에 대한 문헌은 1,500년 전 중국에서 편찬된 가장 오래된 농업기술 안내서 제민요술(齊民要術)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에서는 하계명주(夏鷄鳴酒)로 밝히고 있는데 ‘여름철 황혼녘에 빚어 다음날 새벽에 먹는다’고 기록돼 있다. 중국 문헌에 기록돼 있어 자칫 중국 술로 오해할 수 있지만 1,000년 전 중국 송나라 때 국신사를 수행한 서긍(徐兢)이 고려에서 보고 들은 것을 쓴 기행문 ‘고려도경’에 고려인은 계명주를 잔치술로 사용했다는 내용이 언급돼 있다.
고려도경에는 ‘고려시대 잔치술은 맛이 달고 빛깔이 짙으며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다. 국내 관련 학자들은 이 책에 기록된 술의 제조법이 허준의 동의보감에 기록된 계명주 제조법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1987년 계명주를 경기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했다. 또 전수자인 최씨는 전통주 명인으로 선정됐다.
계명주는 현재 알코올 도수에 따라 4가지로 생산되고 있다. 알코올 도수가 가장 적은 7%에서부터 11%, 13%, 16% 등이다. 특히 도자기에 담긴 13%와 16%짜리 계명주는 최근 개발된 상품으로 일본과 미국 등지를 중심으로 해외에도 조금씩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주)계명주 제조원 이창수 사업본부장(50)은 “계명주는 국내 민속주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며 “품질을 알아본 미국의 관련 유통회사와 최근 5억원가량의 수출계약을 마쳤다”고 말했다. 최근들어 일본에서도 주문이 조금씩 늘고 있어 최씨는 일부 제조과정을 제외하고는 자동화 장치를 도입, 하루에 1만5천병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 유통망이 미흡해 실제 생산량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마치 잘 익은 와인처럼 오랫동안 감치는 새콤달콤한 맛이 입 안을 개운하게 해줘 계명주의 안주로는 고기류가 잘 어울린다. 특히 일반 돼지고기보다 느끼함이 덜한 멧돼지고기는 예부터 계명주와 궁합이 맞는 안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계명주는 이달말 국내 최대 규모로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에 완공되는 고양국제전시장(KINTEX) 내 주류 상설매장에 국내 유명 전통주와 함께 항시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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