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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26) 조선 3대명주 전북 태인 죽력고

 

경향신문 / 2005-08-31 16:24

 

 

100년 만의 부활. 전북 정읍시 태인면에서 빛을 보게 된 죽력고는 그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술이다. 한 명의 장인에 의해 ‘몇 병씩’만 만들어지는 탓에 술 맛을 음미해 볼 수 있는 기회조차 흔치 않다. 다행히 3년 전부터 순전히 주문에 의해 제조되면서 역사속에 묻혀버릴 뻔한 죽력고가 대중 속으로 들어왔다. 시중 음식점 등에는 시판되지 않는다. 관심과 노력을 수반한 애주가들만이 조선 3대 명주의 묵직한 맛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마셨다는 술
죽력고는 조선시대에 출간된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와 서유구의 ‘임원십육지’ 등에 나온다. ‘조선상식 문답’에서 최남선은 평양 감홍로(甘紅露), 전주 이강고(梨薑膏)와 함께 죽력고(竹瀝膏)를 우리나라 3대 명주로 꼽았다. 특히 매천 황현이 쓴 ‘오하기문(梧下記聞)’에는 ‘전봉준이 전북 순창 쌍치에서 일본군에 잡혀 흠씬 두들겨 맞고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서울로 압송될 때 죽력고를 먹고 기운을 차렸다’는 기록이 있다. 죽력은 대나무 토막을 항아리에 넣고 3일간 불을 지폈을 때 흘러내리는 대나무 즙이다. 한방에서는 중풍·해열·천식 등의 치료에 쓰인다고 알려져 있다. 죽력고는 죽력에 솔잎·생강·창포 등을 넣고 소주를 내리는 방법으로 증류시켜 만든 것이다. 세 번을 내리기 때문에 주조에 3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알코올 도수는 22%와 32% 두 종류가 있다.

3년 전부터 맥 이어져
대표 명주 반열에 올라 있는 죽력고가 생소하기만 했던 것은 죽력이 식품이 아닌 약재로 식약청에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 죽력고의 맥이 이어지게 된 것은 3년 전이다. 전통술 담그기 무형문화재인 송명섭씨(49)의 피땀어린 노력의 결과였다. 송씨는 가업으로 전수돼 오던 죽력고를 살려내기 위해 서울 중앙도서관 등을 뻔질나게 오가며 각종 문헌을 죄다 복사해 번역했다. 결국 죽력을 이용해서도 전통주를 담글 수 있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받아냈다. 그 시간만 10여년이 걸렸다. 죽력고에 대한 기억은 송씨의 외증조부인 은재송씨(1864~1945)로부터 시작된다. 태인에서 한약방을 운영했던 은씨는 전봉준 장군보다 아홉살 아래였다. 은씨는 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술의 비방을 모아 직접 술을 빚어 치료 보조제로 사용했다. 개를 고아 만드는 무술주와 연엽주·호마주·복분자주 등은 당시부터 죽력고와 함께 약술로 활용됐던 셈이다. 죽력고 제조기법을 전수받은 것은 송씨의 어머니 은계정씨(1917~1988)였다. 갖은 약재를 가지고 송씨 가문에 시집 온 은씨는 태인양조장을 경영하던 남편과 함께 전통주에 대해 심혈을 기울일 수 있었다. 남편 송씨가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 치료약으로 죽력고를 내려 마시게 해 완치시켰다. 가업으로 내려온 죽력고 제조기법에 관한 기록은 없다. 현재 태인양조장 주인이 된 송씨 역시 어머니 곁에서 술빚는 것을 도우며 몸으로 체득했다. 죽력고는 제조 방법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약 같은 술로서 효험은 두드러진다. 이 때문에 죽력고 제조가 허용된 2002년 12월 ‘아름다운 술을 찾습니다’라는 전통주 공모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궁합이 맞는 안주로는 삼합이 꼽힌다. 063-534-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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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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