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전통주 기행] (24) 해남 ‘녹향주’
경향신문 / 2005-08-17 19:48
![]() |
남쪽에서 맛보는 ‘북한 전통주’
녹향주는 6·25때 북한에서 내려온 술이다. 함안조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황해도 장연군 신한면 군산리가 원산지. 그런 녹향주가 한 피란민 일가 덕분에 해남에서 54년째 애주가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조씨 집안은 1·4후퇴 때 젖먹이를 포함, 모두 100여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철수하는 미군 군함을 타고 목포로 내려왔다. 정부에서 진도 등에 난민촌을 만들어 집단수용하던 때였지만, ‘술 만들 수 있는 곳을 달라’고 하소연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조씨의 할아버지·아버지·삼촌들이 수백리를 걸어다니면서 고른 터가 바로 이 마을. 재료인 쌀이 ‘황토 농사’로 실하게 지어지고, 물맛도 근방에서 가장 좋은 곳임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녹향주라는 이름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민속주가 양성화하면서 붙었다. 마을 이름에서 ‘녹(鹿)’을, 자나깨나 그리운 고향에서 ‘향(鄕)’을 땄다. 그동안엔 문중 대대로 내려온 가양주지만 어엿한 이름없이 그저 ‘집안술’로 불렸다. 하지만 밀주 단속이 살벌하게 이뤄지던 시절에 녹향주는 ‘바깥술’로 위세를 얻어갔다.
탄압 속에 제맛 복원
남쪽에 내려와 3대째 술을 빚으면서 조씨는 예전의 술맛이 아니라는 게 늘 맘에 걸렸다. 혀끝을 휘감게 하는 알싸한 맛이 우러나긴 했지만 강도가 약했다. 물 다르고 볕 다른 곳이라 당연했다. 더군다나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단속은 원래의 술맛을 찾아가는 장인의 사기를 꺾어놓기 일쑤였다. 술독을 들고 들로 달리고, 뒤란에 지하실을 파놓고 숨기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만들어 놓은 술을 뺏기고 나면 하늘이 무너졌으니까.” 그래서 단속나온 세무서 직원·경찰과 맞짱뜨기로 마음먹었다. 조씨는 젊은 날 대부분을 그들과 드잡이하면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 경찰서 유치장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 몰래 몰래 팔아 모아둔 돈은 세무서에 벌금으로 모두 내놔야 할 정도였다. ‘고향의 술맛’을 찾겠다는 조씨 가문의 집념에 슬쩍 눈을 감아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씨는 발효시간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으로 해남 녹향주의 태생적 한계를 보완, 고향맛을 재현했다. 물론 ‘비방’이어서 털어놓을 수 없다고 했다.
녹향주 ‘3년간 숙성’
녹향주는 45%의 독주다. 향을 얻기 위해 요즘은 당귀를 넣긴 하지만 그래도 옹달샘 물처럼 맑다. 우선 햅쌀로 지은 고두밥에 발효제로 누룩 대신 백곡을 넣어 섞은 뒤 오동나무 궤짝에 하룻밤을 재운다. 노랗게 변한 고두밥을 큰 술통에 넣고 3일간 발효시키면 밑술이 된다. 덧술은 고두밥을 한차례 더 쪄 당귀를 넣고 버무려 만든다. 밑술과 덧술을 섞어 3일간 더 발효시키면 곡주가 된다. 이것을 고리에 넣고 내리면 소주가 된다. 이때 도수는 80%. 그냥 마실 수 없어 숙성해야 하는데 무려 3년이란 긴 세월이 필요하다. 그래야 녹향주의 진짜 깊은 맛을 얻을 수 있다. 처음 입안에 털어넣을 때의 싸한 맛은 잠시, 목을 타고 넘어갈 때는 독주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부드럽다. 당귀의 달짝지근한 맛 이외에는 다른 잡스러운 맛이 끼지 않아 혀로 감지되는 맛은 그저 깨끗할 뿐이다. 숙취도 전혀 없다. 안주로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로 만든 요리나 마른 안주도 좋다. 400㎖짜리 두병을 세트로 묶어 3만2천원에 판다. 061-532-9069
728x90
'HardDrin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통주 기행] (26) 조선 3대명주 전북 태인 죽력고 (0) | 2015.07.14 |
---|---|
[전통주 기행] (25) 충북 보은 구병마을 송로주 (0) | 2015.07.14 |
[전통주 기행] (23) 여산 송씨 가양주… 양주 송엽주 (0) | 2015.07.14 |
[전통주 기행] (22) 전북 완주 ‘송화백일주’ (0) | 2015.07.14 |
[전통주 기행] (21) 공주의 명주 ‘계룡백일주’ (0) | 2015.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