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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모금 삼키자 핀란드 숲향 가득

 

조선일보 / 2016-09-07 03:03

 

 

[新르네상스 맞은 증류주 ‘진’] 지역·제조자마다 맛 다른 ‘진’… 마티니 등 칵테일로 즐기거나 스트레이트로 실온에서 음미

자작나무, 크랜베리, 메도스위트(Meadow Sweet·조팝나무속 식물)…. 술을 한 모금 삼키자 입안에 오묘한 향기가 피어났다. 핀란드 숲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열매·허브 냄새였다. 핀란드의 자연을 마시는 듯했다. 5년 전 다섯 명의 친구가 설립한 소규모 양조장 큐로(Kyro)에서 만든 진(Gin) ‘나푸에(Napue·사진)’다. 2015년 국제주류품평회 IWSC에서 진토닉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헬싱키에서 만난 큐로 공동설립자 미카 라피아이넨(Lapiainen)은 “지역성을 담는 것이 요즘 진의 트렌드”라고 말했다.

 

진이 가장 인기 있는 술로 부상하고 있다. 진 판매액이 매년 증가하고, 세계 곳곳에 진을 만드는 양조장이 생겨나고 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진 브랜드가 너무 많아져 정확히 몇 개나 되는지도 모른다”면서 “과거에는 진을 취하기 위해 마구 마셨지만 요즘은 와인처럼 국가·지역별 맛 차이를 구분해가며 즐기는 애호가가 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세계적 시장조사업체 민텔은 “진네상스(진+르네상스)”라고 표현했다. 국내에도 올 들어 진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바가 생겨났다.

 

진은 역사가 긴 증류주다. 1660년 네덜란드에서 탄생했다. 주니퍼베리(노간주나무 열매), 감귤류, 고수 등 과실과 허브로 향을 낸다. 제조자가 원하는 대로 넣거나 뺄 수 있지만 주니퍼베리는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18세기 중반 ‘진 열풍(Gin Craze)’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절정에 달한 뒤 사그라들었다가 최근 중흥기를 맞았다. 올 초 서울 명동 L7호텔에 문을 연 진 전문 바 ‘플로팅’의 박형진 대표는 “진이 세계적으로 재조명된 건 4~5년 전부터이고 국내는 올해부터 서서히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세계 주류 시장은 오랫동안 보드카가 지배했다. 주도권을 진에 내주고 있는 이유는 뭘까. 박 대표는 “고급 보드카의 역설”이라고 했다. “보드카는 고급일수록 증류를 많이 합니다. 순도가 높을수록 무색무취하지요. 개성이 없어지는 겁니다. 하지만 진은 제조자마다 개성을 드러낼 수 있어요. 와인처럼 생산지 특성도 반영하죠. 또 다양한 향이 나는데, 이게 여성들한테는 향수나 화장품과 비슷해 친근하고도 세련된 음료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진의 부활을 선도한 주자는 영국 ‘헨드릭스’로 꼽힌다. 특유의 장미 향과 오이 향이 여성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헨드릭스가 성공을 거둔 후 ‘부티크 진’, ‘프리미엄 진’이라 불리는 고급 진들이 계속 출시되고 있다. 진은 제임스 본드가 즐겨 마시는 마티니, ‘해리포터’ 작가 조앤 롤링이 사랑하는 진토닉 등 칵테일에 즐겨 사용된다. 박 대표는 “좋은 진은 다른 음료와 섞지 말고 스트레이트로 실온(12~13℃)에서 마시라”며 “브랜드별 맛 차이를 와인처럼 음미해보라”고 했다. 미지근한 물을 약간 섞으면 여러 갈래의 맛과 향이 더 잘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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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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