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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진화론은 생물분류를 주목적으로 하는 분류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현존하는 다양한 생물은 하나의 공통조상이 종분화를 반복하여 생겨났다고 믿었다. 종분화란 한 종이 진화과정에서 둘 이상의 종으로 갈라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 종분화의 경로를 잘 파악하면 어떤 생물종이 더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지, 즉 유연관계가 깊은지 알 수 있게 된다.

 

 

계통수 - 종분화의 경로를 그린 것

종분화 과정은 흔히 나무가 자라면서 가지를 쳐나가는 모습으로 비유되며, 이와 같은 종분화 양상 또는 계통을 간단한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계통수라 한다. 생물을 분류하기 위해서 이들의 유연관계를 나타낸 계통수를 제작하고, 이를 분류에 반영하는 생물분류 방식을 계통분류라고 한다. 계통분류는 최근 분류학의 일반적 추세이며, 따라서 계통수 제작은 분류학자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되었다.

 

 

계통을 알아내는 방법은?

그런데 어떻게 생물의 계통을 알아낼 수 있을까? 지구 최초의 생물이 적어도 35억 년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화석 증거를 감안하면 생물의 종분화 경로를 추적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사람이 윌리 헤닉(Willi Hennig, 1913-1976)이라고 하는 독일의 곤충분류학자이다.


생물의 계통수(Tree of life)

 

그는 계통분류학 또는 분계론(cladistics)이라고 하는 학문분야의 창시자로, 생물이 지니는 형질의 상태를 분석하여 계통을 유추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생물의 종분화는 반드시 형질상태의 변화 또는 파생을 수반하기 때문에 파생된 형질상태를 어떤 종이 공유하는지 살펴봄으로써 생물의 계통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유추한 계통은 분계도(cladogram)라고 하는 일종의 계통수로 나타내는데 아래 그림은 분계도의 한 예이다.

 

그림에서 가는 선은 종 A--E가 종분화를 통해 형성되는 과정, 즉 이들의 유연관계를 나타내며, 굵은 가로선 세 개는 종이 분화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형질상태로서 각 가로선이 표시된 가지에 놓여 있는 종들이 공유하는 형질상태를 상징한다. 이러한 형질상태를 공유파생형질상태(synapomorphy)라고 하며, 이를 밝혀내는 것이 분계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종 A--E의 분계도, 굵은 가로선이 공유 파생 형질 (좌).       단계통군과 측계통군, 파란구역은 단계통군, 점선은 측계통군 (우)

 

 

단계통군과 측계통군

그렇다면 제작한 계통수를 어떻게 분류에 반영할 것인가? 그 방법은 같은 가지에 놓인 종들, 즉 공유파생형질상태로 정의할 수 있는 종들을 빠짐없이 같은 무리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종 A--E를 두 무리로 분류할 경우 종 A, B를 한 무리로, 나머지 종 C--E를 다른 무리로 묶으면 된다(위 그림 참조). 이와 같이 한 공통조상에서 종분화를 통해 생겨난 모든 자손 종을 포함한 무리를 단계통군(monophyletic group)이라 한다. 계통분류에서는 원칙적으로 단계통군만을 자연분류군(natural group)으로 인정하여 이들 생물 무리에만 공식적인 명칭을 부여한다. 한편 그림에서 종 D와 E를 포함하면서 점선으로 묶인 무리는 공통조상에서 유래한 자손종 가운데 종 C가 빠져 있어 단계통군이 될 수 없다.

 

이러한 무리는 측계통군(paraphyletic group)이라 하는데, 분류 대상 생물종의 계통 유연관계를 온전히 반영하고 있지 않기에 자연분류군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계통분석 결과 우리가 알고 있는 상당히 많은 생물 무리가 자연분류군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동물의 ‘파충류’나 식물의 ‘쌍떡잎식물’이 있다. 매우 오랫동안 ‘파충류’라고 불리었던 무리는 그들의 공통조상에서 유래한 자손 가운데 조류(鳥類)가 빠져있어 측계통군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우리에게 친숙한 ‘쌍떡잎식물’ 역시 공통조상으로부터 나온 자손에서 외떡잎식물을 제외하고 있기에 자연분류군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이들이 포함된 생물 무리에 대한 재분류가 이루어졌지만, 그 결과가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계통을 분석해보면 조류(Aves)는 파충류에 포함된다.
따라서 조류를 제외한 파충류(Reptilia)는 측계통군이다. <출처: (cc) Jacek FH>

 

 

분자형질을 계통수 제작에 활용

최근에는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따라 유전자의 DNA 염기서열 등 분자 형질을 계통수 제작에 널리 활용하고 있다. 생물종의 분화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DNA 염기서열은 형질상태(A, C, G, T)가 명확할 뿐만 아니라 형태가 매우 다른 생물 간에도 비교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생물의 계통을 추적하기에 매우 유용한 형질로 평가되고 있다. DNA 염기서열을 중심으로 한 분자 형질을 이용하여 생물의 계통을 연구하는 분야를 분자계통학(molecular systematics)라고 하며 이는 전체 생물의 분류체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생물 분류체계의 변화

생물학의 발전에 따라 생물분류 체계에도 변화가 뒤따랐다. 고대부터 생물은 식물과 동물로 분류되어 왔는데, 17세기 후반 현미경이 발명됨에 따라 동물과 식물 어디에도 포함시킬 수 없는 단세포 생물이 있다는 것이 알려졌으며, 이후 이들은 원생생물계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현미경의 발달, 특히 전자현미경의 등장으로 세포를 보다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대부분의 생물은 막으로 둘러싸인 세포핵을 가지고 있으나 일부 단세포 생물에는 세포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써 막으로 둘러싸인 세포핵이 없는 생물로 이루어진 네 번째 계(界), 원핵생물계가 탄생하게 되었다.

 

1969년 미국 코넬대학의 휘태커(Robert Harding Whittaker, 1920–1980)는 그동안 식물계에 포함되어 있던 곰팡이 무리를 분리하여 균계로 독립시키면서 새로운 분류체계를 주창하였다. 생태학자로서 생물의 분류에서 영양방식을 강조한 그는 몸 밖으로 효소를 분비하여 사체 등을 분해한 후 이를 흡수하여 살아가는 곰팡이 무리가 광합성을 통해 유기양분을 스스로 생산하는 식물과 동일한 계에 포함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체 생물을 원핵생물계, 원생생물계, 동물계, 균계, 그리고 식물계로 분류한 그의 5계 분류체계는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현재는 3역 6계로 분류

한편 1977년 미국 일리노이대학의 우즈(Carl Woese, 1928~) 등은 16S 리보솜 RNA 염기서열을 분석하여 원핵생물계가 사실상 매우 이질적인 두 개의 무리로 이루어졌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또한 계속된 분자계통 연구를 통해 1990년에는 생물 분류계급의 최상위 계급으로 역(域, Domain)을 제안하면서 생물을 세균역(세균계 포함), 고세균역(고세균계 포함), 그리고 진핵생물역(원생생물계, 동물계, 균계, 식물계 포함)으로 분류하였다. 이 3역 분류체계는 이른바 ‘원핵생물’이 서로 매우 다른 두 무리인 세균역과 고세균역으로 분류될 뿐만 아니라 이중 고세균역은 같은 원핵생물인 세균역보다 진핵생물역과 더 깊은 계통 유연관계를 보인다는 것, 즉 계통수에서 같은 가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세균역, 고세균역, 진핵생물역의  계통수

 

 

생물 분류 체계는 앞으로 변경될 여지 많아

최근 발간된 일반생물학 서적 대부분은 지금까지 보고된 생물 약 170만 종을 3역 6계로 분류하는 분류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계통수를 직접 반영하여 생물을 분류하는 원칙 또는 전통적인 분류계급을 사용한 생물분류 방식에 대한 학자들 간의 이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구상의 모든 생물의 계통수를 그려내려는 시도는 지금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생명계통수(Tree of life) 프로젝트 참조), 생물분류 체계는 그 연구결과를 반영하면서 계속 변해갈 것이다.

 

 

생물분류 체계의 변화. 동물계-식물계의 단순한 구분에서 3역 6계로의 변화까지를 보여준다.
또한 원생생물계는 단계통군이 아니므로 앞으로 세분될 수 있다.

 

특히 진핵생물역의 원생생물계는 매우 다양하고 이질적인 생물들의 집합체로 생각되기 때문에 연구 결과가 축적됨에 따라 여러 개의 계로 세분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들어 끊임없이 빠르게 쏟아지는 연구결과, 특히 다양한 생물로부터 얻은 방대한 DNA 염기서열 정보가 보편성과 안정성이라는 속성을 지닌 생물분류 체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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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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