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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욱의 술 인문학] 숙성酒가 맛있는 까닭은?

 

세계일보 / 2019-08-10 19:02

 

 

지난해 12월 영국의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세계 최고가 위스키가 나왔다. 싱글몰트 위스키인 매캘런의 한정판 제품으로 낙찰된 가격은 1,529,000달러. 우리 돈으로 17억원쯤 된다. 60년간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했고, 유명 화가들과 협업해 단 40병만을 만든 희소성 있는 제품이다. 위스키는 숙성을 오래하면 할수록 가맛도 부드러워지고, 다양한 풍미가 증대한다. 그렇다면 숙성은 어떻게 맛을 좋게 할까?

기본적으로 위스키는 오크통에서 숙성을 한다. 일반적으로 증류한 원액을 넣는데 70도 전후의 알코올 도수다. 흥미로운 것은 매년 2% 전후로 원액이 증발한다는 것. 나무통에 있는 만큼 완벽하게 공기와 차단이 안 되는 것이 그 이유다. 이를 ‘에인절스 셰어(Angels’s Share)’라고 한다. 쉽게 말해 보이지 않는 천사들이 마시는 분량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천사의 몫’이 수분보다는 알코올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오크통에서 숙성을 하다 보면 알코올 도수는 지속적으로 낮아진다. 초기에는 70도였던 원액이 20~30년이 지나면 50도 전후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위스키의 맛은 확 변한다. 알코올은 증발되고 본래 가졌던 향미는 더욱 진해진다. 여기에 오크통에서 나오는 다양한 맛이 위스키의 맛과 색을 더한다. 한마디로 맛이 압축된다. 여기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물분자와 알코올 분자가 결합하면서 맛이 부드러워지고 향이 그윽해진다. 수분과 알코올이 서로 친해지는 것이다.

 

숙성을 하지 않은 위스키는 알코올 도수 70도 원액에 많은 양의 물을 넣어 만들 수 있다. 그만큼 낮은 원가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오랜 숙성을 통해 50도 전후가 된 위스키는 40도로 만들기 위해서는 물을 적게 넣어야 한다. 그만큼 원액의 비중이 높아져서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다.

최근에 우리 우리 전통주 및 증류식 소주에도 숙성의 개념이 계속해서 도입되고 있다. 명인 안동소주 18년 숙성부터, 최근에 출시된 일품진로 19년, 여기에 막걸리 및 맑은술(약주)도 냉장으로 100일~1년 이상 숙성시키며 고급술 라인으로 가져가고 있다. 주정에 물을 타서 바로 유통시키는 기존의 일반 소주(희석식 소주)보다 원료의 풍미와 숙성이 주는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여전히 소비자들은 이러한 술의 존재조차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숙성의 개념은 외국의 위스키, 코냑, 그리고 와인 정도에나 적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한국의 술은 저렴하고, 외국의 술만 고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술 시장은 대량으로 소비하는 시장은 저물어가고 있다. 적게 마시더라도 맛을 즐기는 문화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다양한 한국의 숙성 전통주를 찾아본다면 어떨까? 위스키, 와인과 달리 이 땅의 기후와 토양을 품은 술이 어쩌면 우리 입맛에 딱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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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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