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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욱의 술 인문학] 맥주의 홉과 전통주 솔잎의 평행이론은…

 

세계일보 / 2020-01-12 10:19

 

2020년 한국의 맥주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맥주 주세는 종가세. 가격에 세금이 붙는 구조로 원가가 높으면 높을수록 주세도 많이 붙는 구조였다. 하지만 올해부터 적용되는 종량세의 경우 원가가 높아도 용량만 같으면 같은 주세를 낸다. 결과적으로 패키징 등 원가 비용이 높았던 국산 캔맥주, 수제 맥주 등은 가격이 낮아질 예정이고,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생맥주, 병맥주 등은 가격이 오르게 된다. 가격이 높았던 것은 낮아지고, 낮았던 것은 올라가는 구조다.

그렇다면 이렇게 들썩이는 맥주는 기존의 술과 어떤 점이 가장 다를까? 흥미롭게도 조선왕조실록에는 맥주라는 단어가 있다. 영조 시대 금주령의 항목으로 맥주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맥주는 지금의 맥주는 완전히 다른 술이다. 보리로 만들었지만 홉(Hop)이 들어가 있지 않다. 즉, 조선시대의 맥주가 막걸리 또는 보리로 만든 청주라면 지금의 맥주는 물, 보리는 물론 무조건 홉을 넣어서 만드는 서양의 전유물이라고 볼 수 있다.

맥주에는 홉을 왜 넣을까? 맥주에 홉은 넣은 인물은 12세기에 활약한 독일인 수녀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이다. 수녀였던 그녀는 예술가·작가·카운슬러·언어학자·자연학자·과학자·철학자·의사·약초학자·시인·운동가·예언가·작곡가 등으로, 모든 분야에서 뛰어났다. 작곡가로서는 최초의 오페라를, 수녀로는 최초로 독립된 수녀원을 세운 인물이다. 덕분에 후세에 여성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이러한 그녀가 수녀원 시절 맥주에 홉을 넣게 된다. 그리고 홉이 가진 매력을 알게 된다. 단순한 향뿐만이 아닌 천연방부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맥주에는 다양한 허브를 조합한 ‘구르트’란 것을 넣었지만, 이것은 독점 판매로 되어 있어서 늘 높은 가격에 구입을 해야 했다. 그리고 어떤 재료가 들었는지 확실히 모르는 만큼 가끔은 환각 및 독성이 있는 재료도 들어가기도 했다. 그녀가 홉의 역할을 제대로 발견하면서 구르트에서 홉으로 맥주의 역사가 바뀌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홉으로 인해 저장성이 좋아진 맥주는 더욱 영역을 넓히게 된다.

 

한국의 전통주에도 홉과 같은 기능을 하는 부재료가 있다. 바로 솔잎이다. 송편을 만들 때 보면 늘 바닥에 솔잎을 깐다. 솔잎이 향긋한 향도 내지만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전통주에는 솔잎을 비롯한 소나무 재료가 들어간 술이 많다. 솔송주, 송순주, 송절주, 송로주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 의미로 앞서 설명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맥주는 혹시 맥주의 홉과 같은 역할로 솔잎을 넣어 만들지 않았을까? 독일과 한국의 술 역사를 보며 단순히 문화를 동서양으로 우월을 나눈다는 것은 이제는 지양해야 할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있으면 우리에게도 있고, 우리에게도 있다면 그들에게도 있던 것이다. 결국 인류는 하나라는 것. 술의 역사가 나에게 알려준 가장 큰 깨달음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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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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