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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빚는 모습. 술 빚는 전문 장인을 주인(酒人) 혹은 대모(大母)라 불렀다.

 

 

술을 빚는 전문 장인, 주인과 대모

세계인의 관심사로 떠오른 ‘김치’가 채소발효식품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발효식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발효주인 막걸리가 이 시대의 트랜드가 되었다. 때를 같이 하여 이제부터라도 전통주의 ‘술맛 감정(鑑定)’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져야 할 듯 하다. 막걸리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현재시점에서 ‘막걸리 소믈리에 양성’에 대한 주장이 나오고, 교육기관도 생겨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입국식 막걸리와 개량식 주류가 대부분인 지금의 현실에서 전통주 감정의 기준을 세우기 보다는 우리 고유의 술향기와 맛을 찾아낸 다음 그 평가와 술맛 감정이 따르는 것이 온당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술맛 감정은 단순히 술에 대한 평가만이 아니라, 술을 통해서 그 술을 빚은 장인의 선험적 지혜와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할 수 있고, 보다 차별화된 한국 전통 식문화의 정수를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서구의 와인감정과는 다른 접근방식과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과거 가양주문화가 발달했던 조선시대의 술을 빚는 전문 장인으로 그 옛날의 ‘주인(酒人)’과 ‘대모(大母)’가 있었다. ‘주인(酒人)’은 고려시대부터 한말까지 궁궐의 양온서(良溫署)나 사옹원(司饔院)에 예속되어 있던 전문직 관료이면서 전문적으로 술 빚는 일을 관장하는 남성을 지칭하는 호칭이고, ‘대모(大母)’는 반가(班家)와 부유층, 객주(客主)에서 유모(乳母)나 침모(針母), 찬모(饌母)와 같이 전문적인 직능을 담당하는 기능인으로, 주인집의 가양주(家釀酒)와 접대주를 빚는 일이 그 소임인 전문직 여성을 가리킨다. 이들은 다 같이 아래에 사람을 여럿 두고 직접적으로 술방문을 비롯하여 술을 빚는 일을 수행하면서 재료나 그릇, 도구 등을 관리 감독하는 일이 주업무였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직능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보다 술맛을 감정하는 일로, 술방문에 따른 술의 향기나 맛, 술 빛깔, 알코올도수의 정도를 평가하였다. 이들은 지금의 IWSC위원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그들처럼 부와 명예는커녕 사회적 인정(認定)도 신분보장도 받지 못했던 초라한 직분이었지만, 우리 전통주가 갖춰야 할 향기와 맛의 감정에 관해서는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테면 방문에 따른 술의 빛깔이나 향기, 맛과 알코올도수 등에 대한 감정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 빚어 둔 술맛을 보고, 주재료의 가공이나 열처리 방법이 정상적이고 순서대로 이뤄졌는지, 심지어 술을 빚던 당시 그 사람의 감정이나 몸 상태가 어떠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술을 빚었는지도 가늠했다고 하니 소위 ‘귀신’ 소리를 들을 법한 경지가 아닐 수 없다.


술을 감정할 때 빚은 사람의 마음가짐을 가늠한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이는 술은 빚는 사람의 성격이나 감정과 심리상태에 따라 술의 맛과 향기가 달라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한다면 술을 빚는 사람은 좋은 재료를 선택할 수 있는 높은 안목 외에도 오랜 경험과 엄정한 공정, 지속적인 관리뿐 아니라 빚을 때의 태도와 자세, 마음가짐까지 바르게 해야한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주인(酒人). 술 빚는 일을 관장하는 남성을 지칭하는 호칭이다.

술독을 살균하는 모습.

 

 

향과 맛, 그리고 색으로 보는 좋은 술

예부터 “명주삼절(銘酒三絶)”이라고 하여 술의 ‘향’과 ‘맛’과 ‘색’을 두고 술을 평가했다. 이는 술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발효에 의해 생성된 순수한 물질 그 자체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어떤 분야이든 문화와 예술의 본질이 그러하듯이 술도 오랜 시일에 걸쳐 자연적인 발효와 숙성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향기와 맛, 아름다운 색깔을 간직하게 되고, 그 조화로움 역시도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할 것이다. 술이 천성적으로 지녀야 할 우아한 향기와 깊고 그윽한 맛, 맑고 깨끗하며 순수한 색깔도 우연히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재료의 선택과 전처리, 위생적이고 철저한 가공공정을 거치되, 무엇보다 장인의 온갖 정성이 녹아든 결정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술맛을 감정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판별하는 것은 향기이다. 전통주의 향기는 ‘방향(芳香)’이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통주에는 곡자향(麯子香)이 난다고 했다. 누룩으로 빚기 때문에 누룩냄새가 난다는 것인데, 사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주와 일본주를 구분하면서, 조선주의 폄하정책의 일환에서 만들어낸 말이다. 쌀누룩으로 빚은 일본주의 맑은 향기가 더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에서 ‘청주(淸酒)라고 표시했고, 조선주는 약으로 마시는 까닭에 약주라고 하였고, 밀누룩으로 빚기 때문에 누룩곰팡이 냄새가 난다는 뜻에서 지어낸 ‘곡자향’ 또는 ‘누룩향’을 근래까지 멋모르고 사용해왔던 것이다.

 

전통주의 향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사과, 포도, 자두, 딸기, 수박, 자두, 홍시, 멜론, 문배와 같은 과실향기와 장미, 복숭아꽃, 매화, 국화와 같은 꽃향기가 있다. 이들 방향은 밀기울 중의 단백질 성분이 발효되면서 생성되는 향기로, 대개 장기발효와 저온 숙성시킨 술에서 느낄 수 있다. 둘째는 밀누룩의 독특한 향으로 구수한 냄새와 솔잎, 계피, 솜사탕과 같은 숙성향이 있는데, 특히 현대의 젊은이들은 이 누룩향을 좋아하지 않으나, 적당한 누룩향은 품격 높은 전통주에서 빼 높을 수 없는 향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 누룩향이 방향보다 강하게 드러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판별하는 것은 서구인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향기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맛이다. 전통주에는 6가지 맛이 있다. 단맛을 중심으로 신맛과 떫은맛, 구수한맛, 쓴맛과 매운맛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좋은 약주는 이 6가지 맛 가운데 어느 한 가지 맛도 두드러지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먼저, 전통주의 단맛은 누룩효소에 의해 쌀에서 생성된 전분당으로, 이 당을 효모가 이용하여 알코올로 만드는데, 이 발효정도에 따라 단맛이 줄어들게 된다. 이때 알코올 생성 속도보다 전분당 생성 속도가 앞서 농당(濃糖) 상태가 되면 자연적으로 발효가 점차 멈추고 잔당에 의한 단맛이 난다. 이 단맛은 인공 감미료와는 전혀 다른 단맛으로 매우 부드러운 맛을 자아내, 여러 가지 맛과의 균형을 잡아준다.

 

전통주의 신맛은 누룩 속의 미생물 구성과 발효경과에 따라 젖산 또는 구연산 등 다양한 유기산에 의해 생기는 자연 산미(酸味)로써, 이 유기산에 의해 발효과정 중 잡균의 억제되어 안전발효를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유기산에 의한 자연스런 신맛은 단맛과 함께 중요한 맛의 구성요소이며, 단맛보다 강해서는 안된다. 전통주의 맛의 가장 큰 특징인 산미는 구연산, 젖산, 호박산 등의 자연 산미와 잔당의 비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이 두 가지 맛은 특히 숙성과정과 기간에 따라 단맛이 강해지기도 하고 신맛이 감소되기도 하므로 무조건 오랜 숙성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주의 떫은맛은 도토리, 감, 녹차잎에서 많이 느낄 수 있는 맛으로, 전분이 덜 호화되었을 때, 누룩가루가 남아 있었을 때 더 많이 느껴지게 되고, 미숙주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불쾌감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가능한 삽미는 줄여야 하며, 단맛으로 부드럽게 하고 산미로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 이 쓴맛도 숙성여부에 따라 그 강도가 달라지므로 적절한 조절이 요구된다. 쓴맛과 매운맛은 기본적으로 알코올 성분에 의한 것과 누룩에 의한 맛이 있다. 


전통주에는 6가지 맛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좋은 약주는 이 6가지 맛 가운데 어느 한 가지 맛도 두드러지지 않고 함께 어우러진 약주이다.

 

별도로 약재를 사용한 약용약주의 경우에는 사용된 약재류 고유의 쓴맛이 영향을 주기도 하나, 효모 자체가 내는 쓴맛은 미미하다. 누룩에 의한 쓴맛은 지나치게 그 양이 많았거나 고운 가루누룩을 사용할 때 드러나므로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아무튼 알코올성분에 의한 쓴맛은 단맛으로 누를 수 있으며, 특히 오랜 숙성과정을 통해 다소 부드러워지긴 하나, 없어서는 안되는 맛이다. 이 밖에 구수한 맛은 전통주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긴 하나, 와인이나 맥주에 길들여진 외국인들의 기호측면에서는 장애요소이기도 하다. 구수한 맛은 곡물 발효주의 특징적인 맛으로써, 특히 곡물의 피질(皮質)에 많은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면서 생성되는 자연스러운 맛이다. 그러나 주재료의 전처리 과정의 부주의에서 오는 구수한 맛은 숙성과정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숙성 전에 구수한 맛이 드러나서는 안된다.

 

이상 여섯 가지 맛의 요인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좋은 술맛이란 이 여섯 가지 맛이 다 느껴지되 가능한 어느 한 가지 맛이 심하게 드러나서는 결코 좋은 맛이라 할 수 없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술맛은 적절히 균형잡힌 조화미를 중요시하고, 그러기에 숙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식품조리서의 하나인 [부인필지]에 “밥(飯) 먹기는 봄같이 하고, 국(羹) 먹기는 여름같이 하며, 장(長) 먹기는 가을같이 하고 술(酒) 먹기는 겨울같이 하라” 고 하는 말이 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습관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데, 현대사회에 와서 빼놓을 수 없는 맛의 요소가 이 청량미이다. 특히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청량음료와 탄산음료, 냉장식품에 길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청량미는 온도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어, 저온에서 단맛은 감소하고 신맛은 증가하며, 알코올의 자극성과 구수한 맛은 감소하나 청량감은 증가한다. 따라서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보다 차가운 온도인 6~8°C에서, 다소 무거운 맛과 향을 좋아하면 덜 차가운 12~15°C 정도 되게 해서 마시는 것이 전통의 음주예법이다. 그리고 추위를 잊고자 하거나 질병치료를 목적으로 마시는 술이라면, 오히려 따뜻하게 데워 마시면 알코올의 순기능과 그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마지막 판별 대상은 색이다. 전통주 고유의 색깔은 대체로 황금색을 띤다. 농도는 다르지만 엷은 색에서 짙은 담갈색까지 황금색 계열이다. 색이 옅을수록 담백한 맛을 나타내고 짙을수록 진하고 단맛이 나며 숙성된 술이다. 물론 물의 양이 쌀 양보다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되는 술은 처음에는 황금색이나 푸른 빛깔을 띠다가도 숙성과정에서는 포도주와 같은 술 색깔을 나타내기도 하고, 기타 약재나 꽃 등 부재료가 들어간 경우, 원료의 색깔에 따라 약간 달라지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좋은 전통주는 맑고 황금색을 띤다. 이 색깔이 물빛깔에 가까운 미색(微色)의 일본식 청주나 사케와는 다른 점이다.

 

발효를 위해 보쌈하는 대모의 모습.

 

 

“천하명주라도 속된 자와 마시면 속주, 소박한 술이라도 신선과 마시면 유화주”

전통주에 매달린 지 올해로 27년이다. 길다면 긴 세월이지만 아직도 옛 사람들의 술맛 감정 수준에 이르기에는 자신이 없다. 그러기에 술 빚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과거 가양주문화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조선시대의 술을 빚는 전문 장인으로, 그 옛날의 주인(酒人)이나 대모(大母)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내가 목표로 삼고 있는 술 공부의 끝이다. 우리 사회에 주인이나 대모와 같은 술맛을 감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우리가 지금에 와서 옛 사람들의 습속을 그대로 따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나 대모의 역할을 수행해내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들이 제대로 감정해 낸 맛있는 술과 좋은 향기의 전통주가 많을수록, 최소한 나쁜 술을 마셔서 심성이 파괴되고 그것이 지나쳐서 주정을 하는 사람과 건강을 망치는 사람들이 줄어들겠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기에 “천하명주라도 속된 자와 마시면 속주, 소박한 술이라도 신선과 마시면 유화주”라고 하지 않았던가.

 

명주가 특히 예술가와 선비(지식인)의 절친한 벗이 되었단 이면에는 명주의 진가를 군자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야 헤아릴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달고 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배가되기도 하고 반감하기도 하는 까닭에 명주 감상은 이처럼 잘 절제된 향과 맛과 색의 술을 다소곳이 음미하는 것을 멋으로 삼아야 할 것이고, 이에 더불어 뜻과 정이 통하는 사람과 더불어 취함으로써 흥의 경지에 오른다고 할 수 있겠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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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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