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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에 마시는 세시주인 창포주. 찹쌀고두밥에 누룩과 창포뿌리를 짓찧어 낸 즙으로 빚은 술이다. 사진은 창포주와 창포뿌리.

 

 

 

옛 문헌으로 살펴보는 창포주

단오날(端午日) 하면 ‘그네와 씨름’, ‘창포’가 연상되는 것은, 이 두 가지가 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남녀노소가 다 같이 즐겼던 철갈이 풍속이자 하나의 놀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조선시대 후기까지만 하더라도 단오는 설, 추석과 함께 4대명절의 하나였다. 5월에는 두레놀이가 성행했거니와 문밖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처녀들에게 있어 어쩌면 1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단오날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오날만큼은 산이며 들로 나들이도 가고, 또래들과 어울려 널이며 그네를 뛰는 등 ‘자유로운 하루’가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오날의 대표적인 시절식이 수리취떡이라면 이날의 세시주는 단연 창포주(菖蒲酒)라고 할 것이다. 창포주는 찹쌀고두밥에 누룩과 창포뿌리를 짓찧어 낸 즙으로 빚은 술인데, 단오날에 창포주를 마시는 풍습은 그 역사가 매우 깊다.

 

창포주에 대한 기록으로는 [포은집]과 [목은집]이 가장 오래된 문헌인데, 이들 기록이 여말, 조선 초기의 문헌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고려시대에 창포주를 마시는 풍속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포은선생문집(圃隱先生文集)에 ‘우차둔촌운(又次遁村韻)’이라는 시가 있는데, “둔촌은 색을 피할 수 있으니/반드시 산림 속에 있을 것은 없네 / 도가 곧아서 시속에 거슬리지만 / 시를 지으면 정음에 가깝네 / 서울에서 구차하게 노년을 보냄에 / 절기는 또 5월로 돌아왔네 / 창포주를 가지고 가서 / 그대와 함께 한번 취해서 읊조리고 싶네”라고 하여 창포주 마시는 풍속이 선비들 사이에 음주문화로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또 이황(李滉, 1501~1570)의 [퇴계선생문집별집] 중 ‘단오(端午)’라는 제하의 시에 “창포주를 권하며 머물라 하나 나는 머물지 않고 / 길 나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구름 낀 산이 근심스럽네 / 들새들은 서로 짝을 불러들이고 시냇물은 급히 흐르는데 / 해질녘에 말 위에서 머리를 자주 돌려 뒤돌아보네"라고 하여 선비들 사이에 완상의 대상이었음도 알 수 있다. 고려말기 학자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익제집(益齋集)]의 ‘단오(端午)’라는 시에서는 “주점(旗亭)에서 또 창포주 한 잔을 마시니 / 술에 깨서 읊은 초나라 신하(굴원)의 글을 배울 필요가 없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창포주가 주점에서도 취급되었던 사실과 일반에까지 뿌리 깊은 문화로 자리매김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대표적 시인이자 풍류객으로 알려진 최경창(崔慶昌, 1587~1671)의 [고죽유고(孤竹遺稿)]에 수록된 ‘단오첩자(端午帖字)’를 보면, 창포주는 명절에 임금이 신하들에게 하사하고,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술이었음도 알 수 있다. 시에 “천문을 열어보니 연로가 통하고 / 햇빛이 처음 비추니 파도가 붉네 / 이슬이 명협에 구르니 훈풍이 돌고 / 연기가 이두에서 일어나니 / 자색기운이 얽혀 있네 / 낮 누수는 선정전 밖에 들리고 / 이른 조회는 막 건양궁 동쪽에서 흩어지네 / 임금 앞에서 창포주를 올리지 않으니 / 시절의 순서가 지금은 무더운 때에 해당하네"라고 읊고 있다.

 

창포주는 임금뿐 아니라 선비와 일반 백성들까지 다양한 계층이 즐기던 술이었다.

창포 다듬는 모습.

 

담습을 없애고 입맛을 돋우며 독을 풀어주는 약리작용

조선시대 중기에 접어들면 [동의보감]을 비롯 [임원경제지], [고사십이집], [농정회요], [산림경제집요], [양주방] 등에도 창포주에 관한 기록이 전해진다. [임원경제지]나 [양주방]의 창포주 제조법을 보면, “5~6월 경에 창포뿌리를 캐어 즙을 낸 다음, 찹쌀로 지에밥을 쪄서 누룩과 합하여 빚는다.”고 하고 있다. 또 ‘별법(別法)’으로 잘 익은 청주에 단오일 며칠 전에 창포뿌리를 침지하여 빚는 창포주도 소개하고 있는데, 이렇듯 단오날 창포주를 빚어 마시는 풍습은 창포의 방향성과 약성을 함께 취함으로써, 더워지는 여름을 대비하여 건강을 도모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창포는 석창포라고 하는 천남성과의 다년초로 전국의 연못이나 호수, 물가에 자생하는데, 창포의 향기가 뛰어나 악병을 쫓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석창포의 약리작용을 보면, 주성분으로 정유성분(아세톤)과 배당체를 함유, 그 성질이 따뜻하고 매운 맛이 있으며, 정신을 맑게 하고 혈액순환을 개선시킨다. 또한 잘 익힌 창포주를 하루에 5홉들이 잔으로 한 잔씩 세 번 마시면 기운이 화(和)하고 무병하여진다고 믿었으며, 담습을 없애고 입맛을 돋우며 독을 풀어준다고도 한다. 이 밖에도 귀먹은데, 목쉰데, 배 아픈데, 이질, 풍한 습비에도 효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한편, 창포주는 이미 빚어 둔 부의주(浮蟻酒)나 동동주, 기타 청주에 때 맞추어 창포뿌리를 넣어 재차 숙성시키거나, 그 향기와 약성을 침출하여 술과 함께 마시는 방법이 있다.

 

창포주를 빚기 위한 고두밥, 밑술, 누륵, 창포 달인 물.

 

야외에서 축제처럼 즐기는 즉흥적인 술

조선 전기 소세양(蘇世讓, 1486~1562)의 문집인 [양곡선생집(陽谷先生集)]에 수록된 ‘단오(端午)’라는 시를 보면 “오늘이 바로 단오이니 / 소년들이 무리지어 즐겁게 노네 / 거리마다 다투어 씨름을 하고 / 나무마다 그네를 뛰네 / 술잔에 창포를 띄어 따뜻하고 / 문에는 애호를 엮어 달았네 / 노인들이 하는 것이 무엇인가? / 밤새도록 책을 덮고 잠자는 것이네”라고 적혀있다. 또한 오도일(吳道一, 1645~1703)의 [서파집(西坡集)] 중 ‘대전 단오첩(大殿端午帖)’이란 시에는 “창포를 오래 묵은 술에 띄울 제 / 석류는 5월에 꽃을 피우네 / 금화전에서는 부지런히 한낮에 강의하니 / 시대의 운수가 형통하게 되었네”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창포주는 단순히 고즈넉하니 사랑방에서 마시기 보다는, 단오 무렵 물가에 나아가 야음을 하면서 물가의 창포를 뜯어 술에 띄우기도 하고 창포향기는 물론 단양(端陽)의 좋은 절기를 시(詩)와 함께 감상하는 시주풍류(詩酒風流)와 어울리는 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창포를 캐다 머리를 감기도 하고 뿌리를 캐어 비녀꽂이를 하는 풍속이 여인네들의 습속이었다면, 잘 익은 술에 창포잎이나 넣고 술과 더불어 하루를 즐기는 풍속은, 아름다운 창포향에 젖어 하루나마 세상사를 잊고자 했던 남성네들의 풍류였다 할 수 있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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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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