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백화(百花)주는 그대로 풀이하면 100가지 꽃이 들어간 술을 뜻하는데, ‘백화’는 ‘많다’, ‘완성’ 이라는 뜻의 온갖 꽃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백화주가 새로 익어 그 기쁨에 긴 구절을 얻었다’

“처(妻)가 해마다 양잠하고 길쌈하며, 백화(百花)를 따서 술을 빚어 나에게 준다.” 조선시대 반가의 음식조리서 중 백미로 꼽히는 [규합총서(閨閤叢書)]의 저자 빙허각 이씨의 남편 서유본이 쓴 [좌소산인문집(左蘇山人文集)]에 소개된 글의 일부분이다. 이 글에는 “백화주신숙희이부장구(百花酒新熟喜而賦長句)”란 구절이 있는데, ‘백화주가 새로 익어 그 기쁨에 긴 구절을 얻었다’는 뜻 정도로 풀이된다. 서유본이 아내가 쓴 [규합총서]의 서두에 “산거일용(山居日用: 농촌생활에 두루 필요한 것)에 긴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 내가 이 책을 규합총서(閨閤叢書)로 명명한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혹시 책 이름도 손수 백화주를 빚어준 데에 대한 보답의 차원에서 지어 주어 준 것은 아니었을까. 남편 서유본은 해마다 양잠하고 길쌈하는 바쁜 가운데 때때로 꽃을 따 모으고, 그 꽃을 넣어 술을 빚는 아내의 정성과 오랜 시간을 거쳐서 곰삭아 나는 술맛과 향취를 자랑하고 싶었으리라. 아내 빙허각 이씨가 손수 빚어 상에 차려낸 백화주를 감상하는 서유본의 흥분된 표정과 거드렁거리는 걸음새가 느껴질 정도로, 그의 시에서는 음주 후의 진한 향취와 흥취, 정취가 묻어난다.

 

계절변화와 주제에 따른 시주풍류에 어울리는 으뜸의 술

예나 지금이나 애주가들의 자랑이자 멋진 풍류 가운데 하나가, 때를 맞춰 술 빚어 주는 아내와 그 술이 익기를 기다려 친구를 부르고 함께 흥취가 물씬 풍기는 술자리를 펴는 일, 곧 풍류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계절변화와 주제에 따른 시주풍류에 어울리는 으뜸의 술로, 그리고 무엇보다 술에 꽃향기를 불어 넣은 가향주 중 으뜸은 백화주(百花酒)가 아닐까 싶다. 백화주라고 하는 술 이름이 암시하듯 100가지 꽃이 들어간 술을 뜻하는데, 여기서 백화(百花)란 100 가지 꽃을 지칭하는 한정된 개념이 아니라 ‘많다’, ‘완성’이라는 뜻의 온갖 꽃을 가리킨다. 온갖 꽃향기가 어우러진 술 백화주의 향기는 어떠한 감흥을 주는 걸까?

 

우선 백화주를 빚는 법에 있어 옛 문헌을 상고하면 [음식보]를 비롯하여 [민천집설], [증보산림경제], [규곤요람], [김승지댁주방문], [임원십육지] 등이 있다. 이 중 [규합총서]의 백화주는 엄동설한에 반쯤 핀 설중매의 꽃잎을 비롯하여 1년동안 동백꽃,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복숭아꽃, 자두꽃, 연꽃, 구기자꽃, 앵두꽃, 국화, 창포꽃, 목련, 백일홍, 장미, 맨드라미, 벚꽃, 취꽃, 목단 등 온갖 꽃을 꽃이 피는 때에 송이째 따서 물에 깨끗이 씻어 그늘에 말린 다음, 종이봉투에 담아 보관해 두었다가 국화가 피어나는 중양절에 맞추어 이 꽃들을 이용하여 술을 빚는다고 하였다. 또 “꽃 가운데는 채취했을 당시 생물(生物)일 때에는 비록 향기가 좋더라도 마른 후에는 향기가 가시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국화나 라일락과 같이 꽃은 마른 후에도 향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꽃을 주장을 삼고 복숭아, 살구꽃, 매화, 연꽃, 구지자꽃, 냉이꽃 등은 약효가 인정되는 꽃이므로 그 양을 넉넉히 넣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한편, [규곤요람]에는 “금은화, 국화, 송화, 매화 등 온갖 꽃 백가지를 모아서 말렸다가, 모시자루에 담아 항아리 밑바닥에 넣고 술을 빚는다.’” 수록되어 있어, 두 가지 양조방법이 존재했음을 볼 수 있다.

 

백화주를 빚는 법에 있어 유의할 일은 술 빚는 시기와 물의 선택이다. [규합총서]에 이르기를, “꽃을 모으되 송이째 그늘에 말렸다가 중양절에 술을 빚는다.”하였고, “술을 빚는 물은 특별히 강 한가운데서 떠온 물이나 돌 틈에 괴는 물을 써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술맛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중양절에 술을 빚는 까닭은 양의 수인 9가 겹쳤다고 해서 이 날은 일년 중 양(陽)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날로 여긴데서 기인한다. 또 양조용수를 강 한가운데에서 길어 온 물과 돌 틈에 괸 물을 사용한다는 것은 집안이나 마을의 우물물과는 다른, 다시 말해서 센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술은 양(陽)인데 양의 기운이 충만한 날에 술을 빚으면 술에 양의 기운이 왕성해져 지게 되므로, 술을 마심으로써 모든 사악한 음의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한편 센물을 사용한다는 것은 물의 성질로 인해서 마른 꽃이 지니고 있는 은은한 향기를 강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 되기도 하였다.

 

‘선비정신’에 입각한 전라북도 김제 ‘학성강당’의 백화주

우리나라 토속주 가운데 가전(家傳)되는 유일의 백화주를 전라북도 김제지방의 ‘학성강당’에서 맛볼 수 있다. ‘학성강당’은 조선 성리학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는 개인 서당으로, 안동의 도산서원이나, 영주의 소수서원, 서울의 도봉서원 등과 같이 조선시대 선비들이 학문을 닦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주인인 훈장은 경주김씨 종회(52세) 씨로, 선친 화석(和石) 김수연(金洙連) 선생의 뒤를 이어 기호학파의 맥을 잇고 있어, 조선 성리학의 뿌리를 온몸으로 지켜내면서 유학을 전파하고 있는데, 그가 예의 백화주를 빚는 사람이다. 백화주는 학성강당에서 250년 전부터 전수된 가양주(家釀酒)의 하나로, 백 가지 약초를 재료로 한 백초주(百草酒), 백화주와 백초주를 섞은 백초화주(百草花酒) 등 세 가지 비법이 전해온다. 그 중에 백화주가 백미인데, [규합총서(閨閤叢書)]의 백화주 빚는 법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학성강당의 백화주에 대한 유래는 훈장 김종회의 13대 조부 김호의(金好衣)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는 기묘사화와 함께 중앙정계를 떠난 조광조(趙光祖)의 제자였다. 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학문을 끊지 말 것이며, 높은 벼슬에 오르지 말 것이며, 큰 부자가 되지 말 것이며, 문집을 만들지 말 것이며, 매년 섣달에 백화주·백초주 중 한 가지를 빚어 제사와 손님 받들기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유훈(遺訓)을 [가승보]와 [경주김씨세보]에 남겨, 그의 후손들은 지금까지 이를 지키면서 몸소 실천하고 있다. 청빈한 삶 속에서 끊임없이 학문을 닦고 수행하는 선비의 단아한 기품을 지키라는 뜻의 그 유훈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 학성강당은 누구든 찾아와 제 힘으로 먹을거리와 입을거리를 마련하면서 무료로 한학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과 함께, 백화주는 판매도 되지 않을 뿐더러 자주 빚지도 않고, 순전히 제사용과 접빈용으로 1년에 쌀 한 가마 분량만 빚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 양이 60병 정도에 그친다는 사실만으로도 백화주를 조상들의 ‘선비정신’에 입각해 주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성강당의 백화주(百花酒)는 밑술에 두 차례의 겹술(덧술)을 한 뒤, 세 번째 겹술로 이른 봄 매화에서부터 늦가을 감국까지 김제 들판에서 자라는 풀꽃과 꽃나무에서 채취한 백 가지 꽃을 담아 최소한 40일에 걸쳐 익혀진다. 학성강당의 백화주는 도수(14%)에 비해 진하고 쓰다는 것이 일반적인 세평(世評)이다. 알코올기가 느껴지는 탕약 같기도 한 이 술을 마시고 나면 입에서 은은한 향기가 도는 술인 것이다. 이러한 백화주는 원기(元氣)를 보(補)하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규합총서]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실제적인 효능으로 첫째는 기력을 회복시켜주고 둘째는 기혈작용이 있으며, 셋째는 원기회복에 좋고, 다섯째는 당뇨치료에 효과가 높으며, 여섯째는 혈압을 낮춰주며, 일곱째는 피를 깨끗하게 하고 근육을 강화시켜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20여 년 전부터 백화주를 최상의 가향주로 그 가치를 홍보해 왔는데, [규합총서]의 방문을 따르되, 특히 국화 외에도 자두꽃을 주장으로 삼아 백화주를 재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 방법의 첫째는 구멍떡을 삶아 익힌 후에 떡 삶은 물과 누룩을 섞고 발효시킨 후에 이를 밑술로 삼아 물 없이 고두밥과 백화만을 사용하여 덧술을 하는 2양주법이다. 둘째 방법은, 쌀가루를 끓는 물로 반죽하여 익힌 떡에 누룩가루를 섞어 발효시킨 밑술에 고두밥과 백화를 합하고 고루 버무려 덧술을 빚는 방법이다. 이와 같은 방법의 백화주는 빚은 지 40일만에 발효가 끝나기 때문에 술에 용수를 박고 시간을 두고 채주를 하는데, 앞서의 방법은 부드럽고 향기가 은근하여 여성적인 술인데 비하여, 후자의 방법은 ‘콕 쏜다’ 할 만큼 강한 향취와 자극적인 맛이 남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다른 방법의 백화주가 갖는 공통점은 무엇보다 그 향기가 뛰어나다는 점이다. 마치 온갖 향수를 뿌려 놓은 것처럼 기이한 방향으로 정신이 혼미해 질 정도였으며, 그 맛이 특별히 뛰어나다는 사실에 이의가 없다.

 

백화주 빚어보기

고전문헌 [고려대규합총서]에 입각한 백화주 재현 방법을 알아보자.

 

백화주 밑술 만들기 – (1) 떡 빚기

백화주 밑술 만들기 – (2) 떡 삶기

 

백화주 밑술 만들기 – (3) 떡 으깨기

백화주 밑술 만들기 – (4) 빚기 (이후 빚은 밑술을 독에서 숙성시킴)

 

백화주 덧술 만들기 – (1) 범벅 만들기

백화주 덧술 만들기 – (2) 범벅에 밑술 혼합

 

백화주 덧술 만들기 – (3) 범벅에 누륵 혼합하기

백화주 덧술 만들기 – (4) 덧술 안치기

 

2차 덧술 – (1) 재료가 될 여러 꽃들

2차 덧술 – (2) 덧술 빚기

 

2차 덧술 – (3) 백화 혼합하기

2차 덧술 – (4) 술 안치기

 

2차 덧술 – (5) 백화 덮기

2차 덧술 – (6) 발효 중인 백화주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2.23

728x90
Posted by 호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