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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12) 안동 송화주

 

경향신문 / 2005-05-25 16:24

 

 


안동 송화주(松花酒)는 기품있는 양반의 술이다. 아직 상품화되지 않은 채 유학자의 종가에서만 대대로 전승된 가양주(家釀酒)로 집안제사와 손님 접대를 위해 종가 맏며느리들이 온갖 정성과 손맛을 곁들여 빚은 고급 술이다. 많은 재료와 오랜 숙성기간에 비해 극히 적은 양의 술이 손님상과 제사상에 오른다. 이름에 ‘송화(松花)’란 말이 있지만 송화는 사용되지 않고 찹쌀·멥쌀 등과 함께 솔잎·국화(황국)·금은화·인동초 등을 재료로 쓴다. 송화주는 1993년 2월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됐다.

홀연히 취했다 말끔히 깨는 술
송화주는 맑은 진보라빛으로 도자기 주전자에서 술잔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그 빛만 봐도 군침이 돈다. 코를 편안하게 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삭막해진 인정을 부드럽게 이끈다. 알코올농도는 15~18%. 술일까, 식혜일까. 입술에 살짝 갖다대면 약간 달라붙는 듯하다. 떫은 맛이 도는가 싶다가 금방 달짝지근한 맛이 입안에서 뱅뱅 돈다.

정재(定齋)가문의 독특한 가양주
송화주는 퇴계학파의 거봉인 전주 류씨 무실파 정재 류치명(柳致明·1777~1861)때부터 제사용으로 사용됐다고 구전돼온 점으로 미뤄 최소한 200년 이상된 전통주다. 지금까지 송화주를 빚어온 주인공은 모두 정재 가문의 맏며느리들로 안동 천전(川前) 출신의 김씨에서 출발, 봉화 해저(海底) 출신의 김씨-봉화 법전(法田) 출신의 강씨-안동 계남(溪南) 출신의 이씨-성주 한계 출신의 이씨-안동 오천(烏川) 출신의 김영한씨로 이어졌다. 김영한씨(53)의 시어머니 이숙경씨(1998년 작고)는 17살에 정재 가문으로 시집와 53년 동안 송화주를 빚었고, 한때 700명의 손님에게 가문의 술을 대접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안동지역에 널리 알려져 있다. 송화주가 정재 가문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다. 정부인(貞夫人) 안동 장씨(1598~1680)가 쓴 ‘규곤시의방(閨壺是議方)’의 송화주 제조법에는 송화를 쪄서 만든다고 기록돼 있고, 광산 김씨 예안파 문중에 전해오는 ‘수운잡방(需雲雜方)’에도 내용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정재 가문의 송화주는 송화 대신 국화나 인동초를 써 기존의 송화주와 다른 특유의 술을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침전주와 증류주의 만남
송화주는 침전주의 일종인 청주(淸酒)이다. 재료로 쓰이는 찹쌀 1말(18ℓ)에 고작 7되(1되=1.8ℓ)의 술만 생산된다. 숙성기간도 최소 30일에서 최대 100일이 걸리니 상에 오르기까지의 정성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아쉽게도 송화주는 기온이 높아지는 늦봄부터 청주의 형태로 오랜 기간 보관할 수 없다. 식초로 변질될 우려가 커 송화주는 곧바로 증류주인 송화소주(松花燒酒)로 재생산된다. 장작불로 서서히 구워 뽑아내는 송화소주의 알코올농도는 무려 50% 이상. 혓바닥으로 핥듯 조금씩 마시면 입안은 화끈하지만 속은 편안하다.

송화다식이 안줏감으로 찰떡궁합
안동 송화주는 송화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송화가루를 쪄서 만든 다식이 가장 좋은 안주다. 쫄깃쫄깃하면서도 입안에서 잘 녹는 송화다식은 송화주 맛의 여운이 길게 남도록 해준다. 다만 송화주가 찹쌀과 멥쌀을 워낙 많이 사용해 빚어낸 진한 술인 만큼 안주를 과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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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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