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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18) 해남 덕정마을 진양주
경향신문 / 2005-07-0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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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헌종 때 이조좌랑과 사간원의 사간(司諫) 벼슬을 지낸 김권이 사직하고 고향인 영암군 덕진면으로 낙향할 때 어주를 담그다 폐출된 상궁을 후실로 거둬 함께 왔다.
최씨 성을 가진 궁인은 궁중에서 빚던 진양주를 광산 김씨 문중의 제사나 애경사 때마다 제조해 상에 올렸는데 이를 맛본 문중의 애주가에 의해 입소문을 타고 그 진가가 원근에 퍼져 나갔다.
궁인 최씨는 김권의 손녀에게 진양주를 빚는 비법을 전수했는데 이 소녀가 해남군 계곡면 덕정마을 장흥 임씨 집안으로 출가해 진양주를 담그면서 제조비법이 임씨 집안의 며느리에 의해 대를 잇게 됐다. 김권의 손녀는 친정에 갈 때마다 자신이 빚은 진양주를 가지고 갔는데 할아버지는 “네가 만든 술맛이 훨씬 좋다”고 평가했다.
임씨 집안의 술맛이 친정집의 술맛보다 더 좋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흑석산의 맑고 깨끗한 암반수가 지하로 흐르다 솟는 우물 물로 술을 빚었기 때문이다. 덕정마을의 우물은 물맛이 좋기로 소문나 최근까지도 수십리 떨어진 마을에서 물을 길어갔다.
흑석산 자락에 위치한 덕정마을은 우뚝 솟은 흑석산을 야트막한 야산이 솥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처럼 보인다 하여 덕정(德鼎)이란 이름이 붙여졌으며 솥에 구멍을 뚫으면 마을이 망한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우물을 파지 않는 불문율이 지켜져왔다. 마을 사람들은 흑석산 암반수가 솟구치는 공동우물 하나에 의지해 살아왔으나 주변 환경이 변하면서 우물의 수질도 크게 나빠져 1990년대 들어 사용하지 않고 있다.
지금의 진양주는 흑석산 자락의 계곡 150m 지하에서 뽑아내는 암반수를 사용해 빚고 있다.
94년 전남도 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된 진양주 기능보유자 최옥림씨(65)가 23세에 임씨 집안으로 시집와 시어머니 어깨너머로 진양주 제조비법을 배운 것은 궁인 최씨가 영암에 내려와 진양주를 담근 지 160여년이 지난 뒤이다.
진양주는 찹쌀과 누룩만으로 제조해 찹쌀(眞米)로 빚은 술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데 재료로 쌀보다 훨씬 비싼 찹쌀만을 사용하다보니 함부로 연습할 수도 없어 어려움이 많았다. 최씨의 시어머니는 특별히 진양주 제조비법을 전수해주지 않아 명절을 앞두고 만든 술이 제맛이 나지 않아 실패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같은 시행착오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비법을 터득했다.
진양주 제조법은 먼저 찹쌀로 죽을 쑤어 식힌 뒤 누룩을 넣어 3~4일 발효시켜 종자술을 만든 다음 찹쌀로 고두밥을 쪄서 종자술에 넣고 비벼 2차발효를 시킨다. 발효기간은 10여일이 걸리는데 중간에 꼭 술을 한번 뒤집어주어야 한다.
술을 담글 때 누룩과 찹쌀, 물의 비율을 잘 맞춰야 하며 발효기간중 온도를 맞추는 일 등이 술맛을 좌우한다. 2차발효가 끝나면 용수를 박아 여과된 맑은 술을 떠내는데 이 기간이 일주일 이상 걸린다. 제대로 빚어진 진양주는 쌀 1되를 담그면 술 1되가 나오는데 향이 진하나 맛은 부드러워 한없이 마시다 일어나지 못해 ‘앉은뱅이 술’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진양주는 마시고 나면 찐득거리는 뒷맛을 느낄 정도로 진하며 단맛도 남아 있는 데다 알코올 도수도 낮아 노인과 젊은이, 여자들도 좋아한다. 그러나 원료가 찹쌀인 데다 보관도 어려워 지체높은 양반들이나 맛보는 귀한 술이지 서민은 접하기 어려운 ‘먼 발치의 술’이었다. 진양주는 2004년 농림부와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주최한 한국전통식품 선발대회에서 ‘베스트 5’에 뽑혀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술은 19% 이상 되어야 변하지 않는데 진양주는 알코올 도수가 낮아 주변온도가 30℃ 이상으로 올라가면 식초로 변하고 만다.
최옥림씨는 16%의 진양주를 생산하고 있으나 19% 이상의 제조허가가 나지 않아 독한 맛의 진양주는 제조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된 진양주는 집에 마련한 저온창고에 저장했다가 찾아오는 사람이나 전화주문을 받아 택배로 보내는 게 고작이다. 이 때문에 해남읍이나 땅끝 등 관광지에서도 진양주를 판매하는 곳은 없다.
임씨 가문에선 바다에서 나는 생선을 회로 떠 진양주 안주로 내놓았다.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도 삭혀 안주로 곁들이면 술맛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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