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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20) 담양 추성주

 

경향신문 / 2005-07-20 16:15

 

 


산세 깊고 물 좋은 전남 담양 추월산 계곡에 ‘술익는 마을’ 하나가 있다. ‘남도의 젖줄’ 영산강의 시원(始原)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널따란 벼논, 산비탈 군데군데 밀밭이 보이는 용면 두장마을. 천년의 역사를 가진 추성주(秋成酒)를 빚는 양조장 ‘추성고을’(대표 양대수·50)이 자리한 곳이다.

1,000년의 역사 ‘추성주’
추성주는 통일신라 경덕왕 때부터 고려 성종 때까지 250여년간 추성군으로 불린 담양의 지명에서 따온 술 이름이다. 이 술의 역사는 추월산 자락의 천년고찰 연동사에서 시작됐다. 고려초 창건된 연동사는 지금도 건재한데 이곳 스님들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빚어 마시던 곡차가 사하촌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어찌나 맛이 좋던지 마시면 신선이 된다 해서 ‘제세팔선주(濟世八仙酒)’로 불리기도 했다. 1756년 담양부사 이석희가 이곳 풍물에 대해 쓴 ‘추성지’에는 ‘스님들이 절 주변에서 자라는 갈근·두충·오미자 등 갖가지 약초와 보리·쌀을 원료로 술을 빚어 곡차로 마시더라’라는 고려 문종 때 참지정사를 지낸 이영간(담양이씨 시조)의 증언을 담아놓고 있다. 또 이곳 출신으로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로 꼽히던 면앙정 송순이 과거급제 60주년을 기념하는 연회에서 참석한 손님에게 추성주를 대접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등 조선 말까지 그 명성이 서울 장안에 남아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당연히 진상품이 됐고 고관대작에게 보내는 상납주로도 각광을 받았다.

4대째 대물림
모든 전통주가 그렇듯이 추성주도 일제시대에 명맥이 끊길 위기를 맞지만 담양의 남원 양씨 가문에서 비법을 고이 간직해온 덕분에 ‘전통 명주’의 반열에 올라 있다. 추성고을 대표 양씨는 20대 초반부터 공무원이던 아버지로부터 추성주 빚는 법을 배웠다. 농협에 다닌 양씨는 업무로 늘 바빴지만 증조부(1870~1957) 때부터 내려온 양조술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동갑내기 부인 전경희씨와 함께 부친이 들려주는 ‘가문의 비법’을 하나하나 익혀나갔다. 1988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대(代)를 이어야 하고 확실하게 대물림을 하라”는 유언까지 남기자 본격적으로 인근 대학과 연구기관을 찾아다니며 이론화 작업에 매달렸다. 90년부터 소량생산을 하면서 비방을 다듬은 끝에 2000년말 국내 22번째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받았다. 두 세기에 걸친 양씨 가문의 ‘술실력’이 드디어 햇빛을 보기에 이른 것이다.

‘양주보다 뒤끝 좋은 토속주’
추성주의 강점은 무엇보다 뒤끝이 좋다는 것이다. 깔끔한 맛과 향이 양주와 비슷하다. 발효·숙성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전통주 가운데 가장 많은 13가지 약초가 들어가는 약술이기도 하다. 알코올 도수는 25%. 한약재 성분 때문에 실제 체감도수는 30~40%로 느껴진다. 제조과정은 다른 술보다 세심한 손길이 더해진다. 순곡과 약초를 숙성시켜 1차로 약주(발효주)를 만든 후 2번 더 증류를 거친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재료도 모두 담양에서 난 것만을 쓴다. 우선 깨끗한 찹쌀과 멥쌀을 씻고 졸졸 흐르는 물에 12시간 담가뒀다가 물을 빼고 수증기로 고두밥을 짓는다. 차게 식힌 고두밥에다 엿기름 가루와 술빚는 용수를 넣고 55~65℃가 되도록 불을 넣어 당화액(糖化液)을 만들어 놓는다. 이것을 25℃로 식힌 다음 누룩과 두충·계수나무 껍질·우슬(쇠무릎)·연꽃열매·산약·강활·율무·멧두릅 뿌리 등을 넣고 보름 정도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치면 알코올 성분 15%의 약주가 된다. 다시 이를 소주고리에 넣고 데우면 알코올 40%짜리 증류주가 나온다. 이 증류주에 홍화·구기자·음양곽·갈근·오미자·상심자 등을 함께 달인 약물을 넣고 30일 숙성시킨 후 걸러내기를 한 후에 20℃에서 한달 더 숙성시킨 다음 대나무숯으로 여과시키면 25%짜리 미황색의 추성주가 탄생한다. 추성주는 순곡으로 빚고 2번이나 증류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발효주와는 달리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 차게 보관하면 맛이 더욱 좋아진다. 각종 한약재를 넣은 까닭에 혈액순환과 강장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열·진정·구충·소염·당뇨·신경통에도 좋고 정기적으로 마시면 노화를 막고 피부에도 좋다는 고문헌 기록도 남아 있다. 안주로는 생선회나 생고기가 제일이고 과일이나 죽순회도 좋다. 담양의 대표음식인 떡갈비에 곁들이면 술맛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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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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