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비가 억수로 내렸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새 아침에 날이 개고 화창하기 그지없다. 언뜻 창밖을 내다보니, 학교에 간다고 나서던 꼬마가 땅바닥에 엎드려 뭔가를 뚫어지게 내려다보더니만 만지작거리기 시작한다. 뭘 하나 궁금하여 고개 숙여 본 어머니는 순간 질겁한다.
비 갠 날 땅바닥에서 볼 수 있는 지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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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아들 녀석이 집게 손으로 자랑스럽게 끄집어 올리고 있지 않은가. 엄마는 느닷없이 아이의 등짝을 냅다 세차게 땅! 내려치곤, “이놈아, 더럽다” 하고 고함을 내지르며 서둘러 아이의 목 줄기를 낚아채 끌고 간다. 자못 머쓱해진 녀석은 지렁이에 미련이 남아 버텨보지만, 어머니 꾸중에 마지못해 끌려간다. 저럴 수 있나? 연약한 ‘과학의 싹’을 가꾸어 주는 현명한 어머니가 많아지길 바란다.
지렁이를 사투리로 거생이, 거시, 것깽이라고 하고, 한자로는 구인(蚯蚓)/지룡(地龍), 영어로는 Earthworm(땅벌레)/Night Crawler(밤에 기어 다니는 녀석)라 부른다. 비 오면 마당에 기어 나오는 ‘붉은지렁이’(Lumbricus terrestris, 학명의 속명 Lumbricus는 ‘둥글고 길쭉한’, 종명인 terrestris는 ‘땅’이란 뜻임), 두엄더미 등에 떼지어 사는 꼬마 ‘줄지렁이’, 나무뿌리 근방에 사는 ‘회색지렁이’ 등이 있다. ‘지렁이’란 말은 어쩐지 뜨악한 느낌이 드는 수가 있으니 ‘지’는 땅이라는 뜻의 ’地’이고, ‘~렁이’는 구렁이, 능구렁이, 우렁이 등에 붙는 ‘~렁이’일 터다.
고리 모양의 마디를 가진 환형동물 지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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