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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고집’ 버리면 고기가 맛있다

 

세계일보 / 2015-10-22 19:11

 

 

 

얇은 생고기 재빨리 익혀 육즙 음미… 숙성육, 바짝 익힌 후 향 즐기도록…
고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저마다 가지고 있다는 ‘육고집’. 자신만의 확실한 고기철학을 주장하는 식신들의 언어다. 육고집이 없는 사람과 고깃집에 가면 편하지만 고집 있는 사람끼리 에둘러 앉으면 묘한 신경전이 시작된다. 고기를 뒤집는 타이밍이 지금이냐, 아니냐 등을 두고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육고집이 가장 강하게 발휘되는 육류가 소고기인 듯싶다. 돼지고기야 저렴하니 이리 먹으나 저리 먹으나 그만이지만 한 점 한 점이 소중한 값비싼 소고기에는 이상하게 신경이 곤두선다. 지금이야 육즙이 흥건한 소고기를 즐기지만 칼질한 단면이 시뻘건 레어 스테이크를 처음 봤을 때 기겁했던 기억이 난다. 퍽퍽한 웰던을 먹는 건 소고기를 진정 즐길 줄 모르는 거라며 자신만의 육고집을 강요했던 친구 때문에 억지로 시킨 고기였지만 맛은 일품이었다. 웰던은 소고기 입문자고 레어나 블루는 소고기를 진정으로 먹는 사람들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진정한 소고기 마니아라면 모든 굽기에 제 각각의 맛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기름 맛으로 먹는 고기, 풍미로 먹는 고기
고기의 등급과 상태에 따라 어울리는 맛이 다르다. 비싼 돈 들여 먹는 ‘1+등급’ 이상의 한우들은 기름기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육질을 부드럽게 만든 거세한 소의 고기는 기름기와 부드러운 고기 맛을 즐기기 위해 덜 굽는 것이 맛있다. 뜨거운 불에 재빨리 한 번만 뒤집어 육즙을 싹 가두면 금상첨화다. 등심같이 두툼한 고기는 앞뒷면이 익으면 옆면까지 익혀줘야 육즙이 나가지 않는다. 얇은 고기는 재빨리 뒤집어 식기 전에 먹기만 하면 된다. 부드러운 고기를 한 번 씹으면 가둬졌던 육즙이 한 번에 퍼져나오면서 꽉 찬 기름기 덕분에 입 안에서 녹는 것처럼 사라지는데 고기 자체의 육향이 적은 생고기는 이렇게 먹어야 제 맛이다. 반면 숙성육은 웰던으로 먹었을 때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소고기는 많이 익힐수록 기름기가 사라지고 고기의 풍미가 살아난다. 건식 혹은 습식으로 충분히 숙성한 고기는 고기 자체의 풍미가 상당히 진해진다. 이런 고기는 기름기를 없애 바싹 익힌 후 고기 자체의 향을 즐기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고기가 여러 종류가 있다면, 육향과 육즙이 적은 순서부터 차례대로 구워 먹는 것이 끝까지 고기를 즐기는 방법이다. 소고기의 경우 워낙 익는 시간이 짧아 한꺼번에 소고기를 구워버리기 쉽다. 느긋이 여유를 가지고 한 부위씩 맛을 보는 것이 좋다. 안심과 등심이 있다면 지방이 적고 부드러운 안심을 먼저 먹고 기름기가 많은 등심을 맛보면 된다. 특수부위는 안창살, 양지허릿살, 치마살, 살치살 순으로 먹는다. 등심은 항상 맨 마지막에 구워먹으면 된다. 

◆ 한우의 불편한 진실, 맛의 다양화 필요
얇게 썰어 재빠르게 익혀 육즙과 기름기를 즐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지방 함량이 많을수록 소고기의 등급은 높게 책정된다. 그러나 사실, 건강한 소의 고기는 아니다. 지방 함량을 높이기 위해 옥수수를 잔뜩 먹이고 움직이지 못하게 좁은 공간에 가둬 키우는 데다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수소는 거세를 시킨다.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와 동맥경화의 위험이 있는 비실비실한 비만 소를 먹는 것인데 이는 아직 육향을 즐기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아 그렇다. 적은 지방의 건강한 소고기를 정성스레 숙성해 풍미를 즐기는 것도 소고기의 색다른 맛을 경험하는 방법이다. 소고기를 먹는 방법에 정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육고집의 범위를 넓히면 조금 더 건강하게 소고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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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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