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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30) 충주 청명주

 

경향신문 / 2005-09-28 16:15

 

 

“나는 평생 청명주(淸明酒)를 가장 좋아한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익(李瀷·1681~1763)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청명주는 1993년 6월4일자로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전통주.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 243에서 기능보유자 김영기옹(85)에 의해 전승돼 왔다. 지금은 노환으로 병상에 누워 있지만 전수보조자인 그의 아들 영섭씨(31)에 의해 ‘중원 청명주’란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전승계보는 김옹의 조모 권정순에서 숙모 박영아에게, 그리고 김옹에 이어 영섭씨로 이어진다. 4대에 걸쳐 전승되고 있는 셈이다.

청명주는 1년 24절기의 하나인 청명일에 사용하기 위해 담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오고 있다. 최초로 빚은 시기, 인물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확실치 않다. 옛 중원군(지금은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에서 누대로 살아온 김해김씨 집안에서 조선조 이전 선조 대부터 비방으로 만들어 마시기도 하고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접대하던 가용주(家用酒)로 전승된 토속주다.

조선조 궁중의 진상주였으며 소위 옛 사대부들이 귀한 손님의 접대용으로 애용하던 명주(銘酒)로 평가받았다. 이는 이 집안에서 전해내려오는 각종 질병에 대한 민간요법을 기록한 향전록(鄕傳錄)에 제조법이 기록돼 있어 뒷받침해 주고 있다.

청명주에 얽힌 일화는 이렇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이 다가오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선비들이 충주에 모여들었다고 한다. 청명주를 마시면 과거에 붙는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온 것이다. 아마도 청명에 술이 나오니 이를 마시면 맑고 밝은 기운을 받아 시험을 잘 치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또 충주에서 청명주를 마시면 문경새재 마루턱에 가서 비로소 취기가 깼다고 한다. 과거에 급제한 선비는 기쁜 마음에서, 낙방한 선비는 울적한 마음에 또 한번 청명주를 마시고 문경새재를 넘었던 듯싶다.


청명주는 원래 남한강의 지류인 달래강과 창골에서 흘러나오는 산수(山水), 그리고 한강 본류의 3지류가 합수되는 탄금대와 청금내 중간의 수살매기(수구막이)에서 채수해 사용돼 왔다. 그러나 지금은 조정지댐으로 인해 침전물이 생기는 등 오염돼 샘을 파서 사용하고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규경(李圭景·1788~?)은 ‘청명주변증설’에서 청명주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술은 우리나라 금환(金還·속명 금탄〈金灘〉)사람만이 만들 수 있으니 금탄의 물이 아니면 이룰 수 없으니 다른 지방에서는 모방해도 이와 같지 않다.”

술의 맛은 물에 달렸으므로 금탄의 물을 사용할 수 없는 다른 지역에서는 ‘모방하려해도 불가능하다’고 한 것이다.

이규경보다 앞서 살았던 이익은 술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오제삼주(五齊三酒·술의 종류)를 말하면서 “나는 평생 청명주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고, 청명주의 양조방법을 양계처사(良溪處士)에게서 배우고 나서 “혹시나 잊어버릴까 두려워 기록해 둔다”고 했다. 당시에 청명주가 얼마나 소문이 났으며 애주가들에 의해 사랑받았는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청명주는 순찹쌀과 재래종 통밀로 제조한 누룩만을 사용, 인삼, 갈근, 더덕, 탱자 등을 가미해 저온에서 약 100일동안 발효, 숙성시킨다. 알코올 도수는 17%로 약주로선 약간 독하다. 색깔은 진한 감색이며 감칠 맛이 뛰어나다.

청명주는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아 장기간 보존이 어렵다. 따라서 여름철을 지내기 위해 예부터 증류주를 만든 점을 고려하면 증류주도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청명주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분명한 기록에 의해 고대로부터 널리 알려진 명주임이 확실하다. 1983~1985년 노완섭(당시 서울보건전문대)·소명환(당시 부천공업전문대) 두 교수가 보고한 종합평정에서도 기능보유자와 기능전수자를 주요 무형문화재로 국가가 지정해 그 기능과 전통성을 유지·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국가지정이 아닌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정확한 근거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명주는 중원문화권의 중심지에서 조선조 이전부터 시작돼 오랫동안 독특한 제조비법이 전수고 있고, 술을 빚는 방법이 고전적인 방법을 고수, 가장 우리 것다운 양조방식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갈 가치가 있음은 각종 조사보고서가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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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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