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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40) 연꽃 향기 머금은 ‘선비의 술’ 연엽주

 

경향신문 / 2005-12-06 15:33

 

 

충남 아산시 송악면에 위치한 외암마을은 ‘고풍스럽다’는 말이 그 어느곳보다 잘 어울린다. 마을 뒷산인 설화산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고택과 초가들은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집과 집을 잇는 돌담은 실핏줄처럼 마을 전체를 휘감으며 따스한 정을 나눈다. 그러고 보면 외암마을은 이제 해외에서도 유명하다. 그동안 이곳에서 촬영된 드라마 ‘덕이’, ‘야인시대’, 영화 ‘취화선’, ‘태극기 휘날리며’ 등이 인기를 끌면서 일본, 대만 등 관광객들에게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모두 500여년의 역사를 지켜온 이 마을 주민들의 자랑거리다. 이 중 군계일학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단연 ‘연엽주’. 조선 고종 때부터 빚어졌다고 알려진 이 술은 ‘선비의 향기’로 불리며 지금도 외암마을에서 세월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봄마다 임금께 진상… 무형문화재 지정
아산연엽주는 충남 외암마을에 살고 있는 예안 이씨 가문에서 대대로 빚어온 가양주다. 지금은 ‘참판댁’이라 불리는 고택에서 이득선씨(62) 내외가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195호로 지정된 이 집은 조선 고종때 하사받은 집으로 창덕궁의 낙선재를 본떠 지었다. 영왕이 9세때 직접 쓴 현판이 아직까지 남아있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연엽주는 이씨의 고조부인 이원집(1829~1879)이 처음 빚었다. 이원집은 고종때 왕실 비서감승을 지낸 사람으로 당시 궁중음식의 제조법을 기록한 ‘치농’이라는 요리책을 저술할 정도로 다방면에 능력을 보였다. 연잎을 재료로 사용하는 연엽주에는 180여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구한말 당시 3년째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자 전국 각지에서 굶주림을 호소하는 백성들의 상소가 잇따랐다. 이에 고종은 “대궐은 물론 사대부 집안에서도 잡곡밥을 섞어 먹고 5첩 반상 이상은 절대 들이지 말라”는 어명을 내려 백성들과 어려움을 함께 했다. 하지만 고종 본인은 점차 기력을 잃어갔고 이를 걱정한 신하들은 “몸에 좋은 술을 만들어 임금께 진상하자”는 의견을 모으게 됐다. 이때 채택된 약주가 바로 비서감승 이원집이 직접 빚은 연엽주이다. 그는 1850년 연엽주의 제조비법 등을 ‘치농’에 상세히 기록해 부인에게 전했고 이때부터 연엽주 제조 비법은 예안 이씨 가문의 종부들을 통해 대대로 전해졌다. 현재 연엽주를 빚고 있는 최황규씨(63·여)는 이원집의 5대손인 이득선의 부인이다.

피 맑게하고 혈관 넓혀주는 약주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된 연엽주는 해마다 봄이 되면 고종에게 진상됐다. 찹쌀로 빚은 누룩에 연근과 솔잎을 넣고 발효시켜 만든 술로 단맛이 없어 단술을 싫어하는 애주가들에게는 제격이다. 알코올 도수가 10~15%로 순하고 쌉쌀하면서도 감칠 맛이 난다. 장기간 복용할 경우 탁한 피를 맑게 해주며 혈관을 넓게 해주는 효능을 갖고 있다. 남성에게는 양기를 북돋워 주고, 여성에게는 산후 하혈을 방지해 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엽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누룩을 잘 빚어야 한다. 누룩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재료 중 옥수수는 발효제 역할을 하고, 감초는 간의 대사작용을 증진시키며, 밀과 녹두는 초독을 없애고 독을 중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누룩에 쌀, 찹쌀, 연잎, 솔잎 등을 함께 재료로 사용한다. 연잎은 시기를 잘 택해야 한다. 가을철 서리 내리기 전 그리고 잎이 마르기 전의 것을 골라야 나중에도 독특한 향기와 맛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술 항아리에는 연잎이 4~5장 들어가는데 연잎을 구할 수 없는 겨울에는 연뿌리(연근)를 대신 넣는다. 술은 겨울철의 경우 20일 정도, 봄·가을에는 15일 정도, 여름에는 7일 정도 숙성시킨다. 연엽주의 맛과 효능에도 불구하고 이를 맛보기는 쉽지 않다. 임금을 위해 만든 술이다보니 그동안 진상용이나 이씨 집안의 제수용으로 밖에는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참판댁에서 술을 빚고 있지만 그 양이 많지 않아 대량 구매는 어렵다. 또 내놓고 술장사를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술 맛을 보러왔다”고 정중히 청해야 대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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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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