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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63) 경북 영주의 ‘오정주’

 

경향신문 / 2006-06-06 15:15

 

 

경북 영주는 선비의 고장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은 수많은 명현거유를 배출했다.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금성대군을 비롯,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역사를 간직한 금성단과 피끝마을은 선비의 올곧은 정신을 느끼게 한다. 이런 선비마을에선 술도 가렸다. 이 고장 사대부들이 즐겨 마시던 술이 바로 소백산 오정주(五精酒)다. 오정주는 소백산 청정 약수와 다섯가지 약초로 빚는다. 소백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 영주의 물은 맑고 좋다. 국망봉에서 발원, 소수서원 앞을 흐르는 죽계천은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솔숲 등과 어우러져 ‘죽계구곡’을 이룬다. 맑은 물과 좋은 약초를 섞어 만든 오정주는 봉제사 접빈객은 물론 옛 선비들이 소백산 어느 선경(仙境)에서 풍류를 즐기며 벗하거나 금성단 제주(祭酒)로도 올렸을 법 한 술이다.

오장육부의 정기를 북돋워준다 해서 오정주(五精酒)
오정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670년경의 문헌인 ‘요록(要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간략한 제조방법과 함께 기가 허한 것을 보해주고 강장·강정작용을 한다고 전하고 있다. 이로 미뤄 오정주의 역사가 삼백 수십년을 훨씬 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빚어졌는 지는 모른다. 조선시대에는 영주 등 특정지역의 사대부 집안에서 보편적으로 빚어오던 술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반남 박씨 집성촌인 영주시 고현동 귀내마을 박찬정씨(52) 집안에서만 전해내려오고 있다. 박씨의 어머니 이교희씨(78)는 1940년대에 시조모로부터 배운 오정주 담그는 법을 당시에 공책에 깨알같이 정리해놓았으며 박씨는 1996년 집 옆 텃밭에 제조장을 만들어 어머니와 함께 맥을 잇고 있다. 박씨는 “각종 문헌 등을 보면 오정주는 과거 사대부 집안의 보편적인 술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러나 일제시대와 이후의 양곡정책 등으로 모두 사라지고 우리 집안에만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소백산 약초로 빚어 강장·강정 효능이 있는데다 오장육부의 정기를 북돋워준다 해서 ‘오정주(五精酒)’이지만 우리 집안에서는 대대로 오선주(五仙酒)로 불렸다”고 전했다.

소백산 다섯가지 약초로 빚은 선비의 벗
오정주는 증류식 소주에 약재 등을 첨가한 리큐어에 속한다. 먼저 쌀 한 되에 누룩 일곱홉, 물 한되 비율로 밑술을 만든다. 쌀을 쪄서 고두밥을 만들어 식힌 뒤 누룩가루와 버무려 물을 넣고 밑술을 만들어 따뜻한 아랫목에 3일간 숙성시킨다. 같은 방법으로 쌀 한말에 누룩 다섯되, 황정·창출·솔잎 등 약초 다섯가지를 넣어 달인 물 한말 두되 비율로 중밑술을 만들어 밑술과 섞어 서늘한 곳에서 열흘가량 발효시킨다. 여기에 쌀 두말에 누룩 한말, 약초 달인 물 두말 석되 비율로 덧술을 만들어 섞는다. 열흘가량 발효시킨 뒤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떠낸다. 이를 소주고리에 넣고 증류, 알코올 도수 40~45% 상태에서 청정 약수를 부어 30~35%로 맞춘다. 서늘한 곳에서 100일 이상 두면 맛이 부드러워지게 된다. 청주 맛이 나는, 알코올 도수에 비해서는 순한 술이다. 뒤끝이 없고 개운해 옛날 사대부의 기품이 느껴진다. 풍기인삼으로 만든 인삼정과와 소백산 목초를 먹고 자란 영주 한우구이, 조갯살 말린 것이나 김 등의 건어물이 안주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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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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