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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43) 경북 영양 초화주

 

경향신문 / 2006-01-03 15:27

 

 

경북 내륙에서 해와 달이 떠오르는 것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 맑은 날에는 동해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경북에서 가장 높은 산. 영양의 일월산이다. 일자봉(日字峰·1,219m)과 월자봉(月字峰·1,205m)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온갖 산나물과 약초를 키우며 품 속을 찾아드는 뭇 생명들의 기와 혼을 다스려왔다. 무속인들이 굿을 할 때면 가장 먼저 부르는 산신, 일월산신이 민초들의 삶을 보듬어 온 곳이다. 이런 산자락에서 빚어지기 때문인지 ‘영양 초화주(椒花酎)’는 온갖 한약재에다 후추와 꿀이 들어가는 독특한 술이다. 마치 우리네 인생처럼 단맛과 매운맛, 쓴맛, 떫은 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과 향이 난다. 자고 일어나면 전날 술을 마셨다는 느낌도 별로 받지 못할 정도로 뒤끝이 깨끗해 예부터 몸 가짐에 조심한 문인·선비들의 술로 사랑을 받아왔다. 조지훈·오일도·이문열 등 수많은 문인·선비를 배출한 ‘문향(文鄕)의 술’이다.

고려시대 문헌에도 등장하는 명주
술 없이는 시를 짓지 못했다는 이규보(1168~1241)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에 이화주 등과 함께 초화주가 소개돼 있다. 적어도 고려 중기부터 명주로 꼽혀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맥을 잇고 있는 곳은 경북 영양군 청기면의 임증호씨(53) 집안이 유일하다. 임씨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많은 문중에서 빚어왔으나 경술국치 이후 일제의 주세정책으로 다른 문중에서는 맥이 끊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독 술과 시를 좋아한 선조들이 많았던 덕분에 예천 임씨인 자신의 집안에서는 초화주의 맥이 이어져왔다는 설명이다. 이규보보다 20여년 연상으로, 술을 의인화해 쓴 소설 ‘국순전’의 작가인 서하(西河) 임춘이 시조다. 그의 5대조 국은(菊隱) 임응성은 ‘원조(元朝)’란 시에서 좋은 봄날을 헛되이 보내야만 하는 자탄을 초화주 한잔에 실었다. ‘올해의 사람도 작년의 사람인데/사람은 해와 더불지 못하여 해만 홀로 새롭다/맑은 날 초화주 가득히 붓고서/흰 머리 그대로 부질없이 봄을 저버린다(今年人是去年人/人不與歲歲獨新/淸辰滿酌椒花酎/白髮居然空負春)’

반주로 2~3잔 마시면 기 북돋워
후추(椒)와 꽃(花) 속의 꿀이 들어간다 해서 초화주다. 먼저 우리 밀을 빻아 반죽을 한 뒤 연잎에 사서 누룩을 띄운다. 찹쌀(멥쌀을 쓰기도 한다)을 불려 고두밥을 찐다. 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혼합해 선선한 곳에 1주일가량 둬 밑술을 만든다. 천궁·당귀·황기·오가피·갈근 등 12가지 한약재와 후추(또는 산초)를 함께 다린 뒤 밑술에 고두밥과 함께 넣어 섭씨 20도 정도 되는 곳에서 한 달가량 발효시킨다. 이를 증류하면서 항아리에 꿀을 발라놓고 증류주를 받으면, 다양한 맛이 어우러져 톡 쏘듯 입안에 번지는 45% 안팎의 초화주가 된다. 증류하기 전에 용수를 박아 위쪽의 맑은 층을 떠내면 15%짜리 약주가 된다. 반주로 2~3잔 정도 마시면 기(氣)가 돋고 피가 맑아진다고 영양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임씨는 “알코올 기운은 꿀이 풀어주고 열은 갈근이 내려주니 숙취가 전혀 없는데다 보기보혈(補氣補血) 효과가 있어 예로부터 선비들이 약용으로 즐겼다”고 말했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만큼 이 고장 버섯전골이나 한우불고기, 인근 동해안에서 나는 과메기와 영덕대게, 생선회 등이 안주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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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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