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의 과학, ‘3.2˚의 마법’ 그릇을 3.2˚ 돌렸더니 시누이가 외쳤다, “언니, 밥 더 없어요?”
조선일보 / 2015-09-26 03:01
추석엔 과학적으로 요리합시다… 요리 선생도 모르는 ‘요리의 과학 7가지’
1. 게맛살에는 게가 없다
음식에서 느끼는 풍미(風味)의 80%는 후각이 좌우한다고 한다. 음식을 씹으면 향기를 내는 분자가 나와 목젖 뒷부분을 통해 코로 들어간다. 딸기를 먹을 때 코를 막아도 단맛과 신맛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딸기다운 풍미는 사라진다. 사람의 혀는 5종류의 맛만 구분할 수 있다. 반면 코의 후각(嗅覺) 수용체는 수백 가지나 된다. 둘을 결합하면 무궁무진한 종류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심지어 미각(味覺)으로는 불가능한 풍미도 후각이 만들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게맛살이다. 무늬만 게살이지 사실은 주로 냉동 명태로 만든다. 명태를 묵 상태의 연육으로 만든 뒤, 실처럼 뽑아 여러 결을 뭉쳐 압축하면 게살 모양이 나온다. 여기에 게살 색소를 넣고 생껍데기에서 추출한 게 향 풍미료를 넣어 게살 맛을 느끼도록 만든 것이다. 코를 막고 게맛살을 먹으면 전혀 다른 맛이 난다. 바나나맛 우유에도 대부분 바나나는 없고 바나나 향만 있다. 요즘에는 바나나 가격이 내려 우유에 실제 바나나를 넣는 경우도 있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 바나나를 직접 갈아 넣어도 과일 맛이 잘 안 나고 색만 검어지기 쉽다. 이 때문에 주로 이소아밀아세테이트라는 합성 풍미료를 사용해 바나나 맛을 낸다. 또한 미국의 몰레큘러-R 플레이버사(社)가 개발한 ‘아로마포크(Aromafork)’는 손잡이에서 향기가 나와 먹고 있는 음식에 없는 맛까지 느끼게 한다. 맛을 느끼는 데에는 시각(視覺)도 중요하다.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을 보면 위가 요동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넬감각연구소의 심리학자인 캐트린 오흐라 박사는 고칼로리 음식과 저칼로리 음식을 보면 뇌에서 각기 다른 부분이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고칼로리 음식을 보면 뇌가 자동으로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물리적인 느낌인 촉각(觸覺)도 맛에 영향을 미친다. 온도가 그렇다. 꽁꽁 언 아이스크림은 맛이 없다. 온도가 오르면 점점 단맛이 강해진다. 혀의 미각 세포가 너무 낮은 온도에서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의 절반은 혀의 온도를 높이면 단맛이, 낮추면 시거나 짠맛이 난다고 답한다. 청각(聽覺)도 한몫한다. 2010년 이탈리아와 영국 공동 연구진은 감자튀김을 먹을 때 바삭거리는 소리를 들려주면 더 맛있다고 답하는 것을 확인했다.
2. 분자미식학의 비밀
과학을 요리에 적용한 분자미식학(分子美食學)의 대표적인 기법은 ‘속이기’다. 세계 최고의 분자 요리 레스토랑이었던 스페인의 ‘엘불리(ElBulli)’가 선보인 초록색 올리브가 그렇다. 겉으론 평범한 올리브이지만 맛을 보면 얇은 젤 안에 올리브 주스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조류에 포함된 알긴산은 염화칼슘 용액과 만나면 고분자 사슬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젤리처럼 바뀐다. 이를 이용해 올리브 주스가 담긴 구슬을 만들 수 있다. 같은 방법으로 사과즙도 검은색 젤리 구슬에 담는다. 값비싼 캐비어인 줄 알았는데 씹으면 과즙이 터지는 식이다. 진공 저온 조리법, 즉 수비드(Sous Vide)도 유명하다. 진공 팩에 고기를 넣고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익혀 단백질의 산화를 막고 수분을 유지해 고기 고유의 맛을 살리는 방법이다. 40~80℃의 물에서 요리하는데, 원하는 요리에 따라 온도를 1℃ 단위로 조절한다. 스테이크는 60℃에서 30분 조리한다. 나중에 팩에서 꺼내 겉면만 불로 그을리면 된다. 반대로 -196℃의 액체질소를 재료에 부어 급속 냉동하는 기법도 쓰인다. 이러면 재료 특유의 조직을 유지하면서 과자처럼 바삭하고 눈처럼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우유 거품으로 만든 인절미가 그렇다. 우유 거품을 만들고 액체질소로 급속 냉동하면 젓가락으로 집을 수 있을 만큼 딱딱해진다. 콩고물을 묻혀 두면 영락없는 인절미. 하지만 혀에 닿는 순간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다. 우유 거품 인절미에서 보듯 한식(韓食)도 분자미식학의 대상이 된다. 한국식품연구원 홍상필 박사는 “양식이든 일식·한식이든 예술의 영역에 있던 요리를 과학화한 것이 분자미식학”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불고기를 잴 때 과거엔 배를 썼는데, 지금은 키위나 파인애플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재료가 달라지면 분명 그 안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이 달라질 것이다. 홍 박사는 “온도와 산성도 등 조건을 달리하면서 각각의 재료가 내는 최적의 맛을 찾으면 그 자체가 분자미식학의 결과가 된다”고 말했다. 물론 식품 산업에서도 요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자동화했다. 하지만 분자미식학은 공장 단위가 아니라 개별 식당에서 과학 기법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3. 그릇 3.2˚로 돌려라
맛에 오감(五感)이 작용하다 보니 음식을 먹는 환경도 중요해졌다. 음식을 어떤 그릇에 어떤 모양으로 내놓아야 더 만족감을 느끼는지, 주변 소음이나 색은 맛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는 새로운 분야가 등장했다. 바로 환경 요인이 맛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미식물리학(Gastrophysics)’이다. 음식을 먹는 사람의 심리를 다루는 ‘신경미식학(Neurogastronomy)’도 등장했다. 지난 5월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런던과학박물관과 함께 음식의 심리학에 대한 대형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12,000명 이상에게 V자 모양의 양파 절임이 담긴 접시를 보여주고 뾰족한 쪽이 어디를 향할 때 음식값을 더 낼지 물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뾰족한 쪽이 자신을 향하면 접시를 돌렸다. 실험 결과 시계 방향으로 3.2˚ 위치로 뾰족한 쪽이 향할 때가 가장 만족도가 높았다. 사람들은 뾰족한 음식이 자신을 향하면 공격적인 것으로 인식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진도 2007년 각진 치즈는 둥근 치즈보다 날카로운 맛을 느끼게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색도 중요하다. 보통 붉은색이 선호된다. 인간은 오랜 진화 과정에서 몸에 좋은 잘 익은 과일이라면 보통 붉은색임을 익혔기 때문이다. 2009년 독일 연구진은 같은 포도주라도 붉은 조명 아래서 마시면 다른 색 조명보다 50% 더 달게 느낀다고 발표했다.
4. 고기는 센 불에 굽자
분자미식학이 새로운 요리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가장 좋아하고 오랫동안 먹어온 음식, 즉 구운 고기도 분석 대상이다. 고기를 씹을 때 나는 맛은 단백질의 맛이 아니다. 단백질은 인간이 맛을 느낄 수 있는 분자의 크기보다 크기 때문이다. 구운 고기에서 나는 맛은 이른바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 덕분이다. 1912년 프랑스의 생화학자 마이야르가 처음 발견했다. 고기의 아미노산과 당분이 130~200℃에서 반응해 맛을 내는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고기를 물에 끓이면 구운 맛이 안 나는 것은 물은 끓어도 100℃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이야르 반응으로 나오는 물질은 지금까지 1,000가지 이상 발견됐다. 아미노산이나 당의 종류에 따라 다른 맛을 낸다. 예를 들어 아미노산 시스테인산은 고기 맛을 내고, 메티오닌은 감자의 풍미를 더해 준다. 같은 아미노산, 당분이라도 온도나 산성도, 주변의 화학물질에 따라 달라진다. 고기 외에 빵을 굽는 향기, 커피 볶는 향기도 다 마이야르 반응의 결과이다. 고온이 아닌 상온에서도 가능하다. 간장이나 된장은 상온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마이야르 반응이다. 그래서 장맛은 묵힐수록 깊어진다.
5. 위에도 혀가 있다
혀의 미뢰(味?)는 각기 다른 맛을 감지하는 미각세포를 갖고 있다. 이 미각세포들이 구스트듀신 등 다양한 단백질과 반응, 맛을 구분해 낸다. 20세기 과학은 이렇게 가르쳤다. 하지만 21세기의 과학은 단순히 혀에 있는 미뢰로만 맛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내고 있다. 미국 하워드휴즈 의학연구소, 마운트시나이 의대 등에서는 엉뚱한 곳에서 미각세포와 단백질을 찾아내고 있다. 소장에서는 단맛을 느끼는 미각세포와 단맛을 감지할 수 있는 단백질인 T1R3, 구스트듀신 등이 발견됐다. 위장과 담관, 기도, 코의 점막에서도 미각세포가 발견됐다.
예를 들어 소장의 미각세포는 포도당의 흡수를 조절한다. 음식을 통해 섭취한 탄수화물이 포도당으로 분해되면, 단맛을 감지하는 소장의 미각세포가 활성화된다. 이어 인슐린 분비와 식욕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의 분비가 촉진된다. 소장에서 포도당이 지나치게 흡수되면 비만과 당뇨병을 일으키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역할을 소장의 미각세포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소장에 있는 혀가 단맛을 감지, 건강을 지켜주고 있는 셈이다.
6. 살 빼려면 큰 숟가락
식기(食器)는 단순히 먹는 도구가 아니다. 맛과 포만감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 옥스퍼드대 감각교차연구소의 요리사인 샤를 미셸은 지난 7월 식기 무게가 맛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에든버러의 호텔에서 130명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맛을 평가하도록 했다. 음식은 같았지만 포크나 나이프 같은 식기는 달랐다. 사람들은 고급 식당에서나 쓸 법한 무거운 식기로 먹으면 캠핑용 식기로 먹은 사람보다 음식값을 평균 15% 더 낼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연구진은 “무거운 식기는 음식에 관심을 더 갖게 해 음식의 맛이나 즐거움을 더 잘 느끼게 한다”고 분석했다. 음식을 집는 도구가 크면 음식을 덜 먹게 하는 효과가 있다. 2011년 미국 유타대 연구진은 큰 포크를 쓴 사람이 작은 포크를 쓴 사람보다 음식을 덜 먹는다고 발표했다. 큰 포크로는 한 번에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 실제로 덜 쓴다는 것. 반대로 그릇은 작은 게 다이어트에 좋다. 지난해 미 코넬대 연구진은 큰 그릇에 음식을 담으면 작은 그릇에 담을 때보다 평균 16% 많이 먹는다고 밝혔다. 큰 그릇에 담긴 음식이 더 작게 보이기 때문이란 것. 무거운 그릇은 포만감을 높여 음식을 덜 먹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슬프지만 다이어트를 할 때는 식당에 홀로 가는 게 낫다. 미국 코넬대 식품과 브랜드 연구소의 브라이언 완싱크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두 명이 식사하면 홀로 식사할 때보다 35% 더 먹고, 네 명이 같이 먹으면 75%나 더 늘어난다. 홀로 먹어도 가능하면 슬픈 영화는 피해야 한다. 완싱크 교수의 실험에서 슬픈 영화를 본 사람은 코미디 영화를 본 사람보다 팝콘을 55%나 더 먹었다.
7. 햄버거 높이는 7㎝로 만들어라
지난달 27일 영국에서는 ‘햄버거의 날’ 행사가 열렸다. 이날 옥스퍼드대 감각통합연구소의 요리사 샤를 미셸은 수퍼마켓 체인인 아스다(Asda)와 함께 ‘완벽한 햄버거’를 만드는 방법을 발표했다. 감각통합연구소는 ‘미식물리학(Gastrophysics)’ 전문 연구소로, 음식 맛을 좌우하는 환경적 요인을 연구한다. 완벽한 햄버거의 비결은 미각뿐 아니라 시각·청각·촉각·후각 등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 것. 미첼은 “햄버거의 맛은 30%가 냄새, 25%가 촉감에 좌우되며, 시각과 청각, 미각이 각각 15%씩 관여한다”고 밝혔다. 입으로 느끼는 맛 중에는 고기나 다시마 국물 등에서 느끼는 감칠맛이 35%로 가장 컸으며, 짠맛(25%)·단맛(20%)·신맛(15%)·쓴맛(5%) 순이었다. 오감(五感)을 자극하려면 햄버거 먹는 법도 중요하다. 냄새와 손맛을 느끼려면 햄버거는 손으로 들고 먹어야 제격이다. 크기는 한 입에 전체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폭 5㎝로 손에 쥐었을 때 높이 7㎝가 가장 좋다. 포장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청각 자극에 필수적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먹는 것도 청각 자극에 좋다.
우리가 믿었던 요리의 속설, 과학적으로 검증해봅시다 - 온가족이 스테이크, 소금 미리 쳐야 할까요?
프랑스 국립농업연구소의 화학자 에르베 티스 박사는 1980년대 요리를 과학으로 분석하기 시작한 과학자이다. 그는 저서 ‘분자 미식학’에서 정확한 과학 실험을 통해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요리 비법의 사실 여부를 검증했다.
▲ 스테이크 구울 때 소금 미리 쳐야 할까 - 어떤 요리사는 스테이크를 굽기 몇 시간 전에 소금을 쳐야 충분히 고기 속으로 스며든다고 하지만, 미리 소금을 치면 고기가 마르고 질겨진다는 요리사도 있다.
→실험 결과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소금은 언제 치든 고기의 표면에만 붙어 있었다.
▲ 파스타 삶을 때 올리브유 넣어야 할까 - 파스타를 삶을 때 서로 들러붙지 않게 하려면 끓는 물에 기름 몇 방울을 뿌리라고 한다.
→기름은 도움이 안 된다. 기름은 물보다 밀도가 낮아 늘 물 위에 떠올라 파스타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대신 끓는 물에 식초나 레몬 주스처럼 산성 용액을 몇 숟가락 넣으면 도움이 된다. 산성 용액은 파스타의 전분이 풀어지는 것을 막아 덜 뭉치게 한다.
▲ 허당 셰프의 소금 흩뿌리기 필요할까 - 많은 요리사가 소금을 흩뿌리면 음식에 짠맛을 더하기보다는 맛을 더 풍부하게 한다고 말한다.
→국물 요리에 소금을 첨가하면 전기를 띤 입자를 증가시킨다. 이처럼 이온 상태로 된 입자는 쉽게 공기 중으로 떠올라 맛있는 냄새를 낸다. 소금을 잘 친 요리는 냄새가 좋아지고 결국 맛도 좋아진다.
▲ 고기의 겉 태우면 육즙 유지할 수 있을까 - 흔히 고기의 겉면을 잘 그슬리면 탄 껍질이 내부의 육즙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완전히 그른 얘기다. 고기 겉면을 그슬릴 때 지글지글하는 소리는 고기의 육즙이 기화되면서 나오는 소리다. 그럼에도 겉을 그슬린 스테이크를 먹으면 육즙을 느낄 수 있다. 이는 갈색으로 잘 그슬린 스테이크를 보면 기대감에 입속에 침이 가득 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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