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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기상이변. 그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엘니뇨(El Niño)와 라니냐(La Niña)를 기상이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원래부터 지구에서 일어났던 현상이지만 그 빈도와 정도가 차츰 강해지면서 20세기의 주요 환경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온도가 높아지면 ‘엘니뇨’, 낮아지면 ‘라니냐’


동태평양과 중앙 태평양에는 바닷물의 온도가 높아진 상태로 수개월 이상 지속되는 기간이 있다. 바닷물이 따뜻하면 물고기가 덜 잡혀 페루 사람들은 이 기간에 작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이런 풍습의 영향으로 이 현상에는 스페인어로 ‘남자 아이’와 ‘아기 예수’를 뜻하는 ‘엘니뇨’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렇듯 엘니뇨는 태평양의 해수 온도가 높아져 일정 기간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보통 2~7년을 주기로 반복돼 나타나는 엘니뇨는 1만 년 전부터 등장했지만, 20세기 후반인 1960년대에 바닷물의 온도가 크게 높아져 전 지구적으로 이상 기후가 나타나자 뒤늦게 과학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엘니뇨는 무역풍의 영향으로 차가운 해수가 흐리지 못해 해수온도가 높은 상태로 유지되는 현상이다.

그림처럼 이 기간에는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페루 지방 어민들은 작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겼다고 한다.

 

 

엘니뇨와 반대로 수온이 차가워지는 현상은 ‘라니냐’라 불리는데, 이는 스페인어로 남자 아이의 반대인 ‘여자 아이’라는 뜻이다. 두 현상은 진동하는 추처럼 번갈아 나타나며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단순히 바닷물의 온도 변화에 머물지 않는다. 바닷물의 온도 변화에 따라 해양과 대기의 흐름이 달라져 기후 현상 전반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상 기상현상이 일어나거나 갑작스레 질병이 증가하는 원인으로 엘니뇨와 라니냐를 꼽는 이유다. 실제로 1997년과 1998년의 해수 온도는 평년보다 5도 이상 높아져 이와 함께 엘니뇨로 인한 기상 이변도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6일 공개한 1997년 11월(왼쪽)과 1998년 11월(오른쪽)의 지구 바다의 온도 분포도. 1997년에는 동태평양 페루 주변에 난류가 침입하는 엘니뇨 현상이 일어난 반면 1998년에는 반대로 바닷물이 차가워지는 라니냐 현상이 일어나 바다 생태계에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엘니뇨 현상과 ENSO


엘니뇨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해수의 온도가 일정 기간 높아지는 현상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어느 지점의 온도가 얼마나 올라가야 엘니뇨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또 높아진 온도가 지속되는 기간은 어느 정도일까? 엘니뇨의 발생을 살피기 위한 기준 해역은 적도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를 대표하는 지점이다. 이곳의 온도가 평소보다 0.5도 이상 올라간 상태로 5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엘니뇨라고 정의한다. 엘니뇨는 흔히 ‘ENSO(El Niño-Southern Oscillation)’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엘니뇨가 ‘남방진동(Southern Oscillation)’과 연관돼 있다는 이론 때문이다. 남방진동은 인도양과 남반구의 적도 태평양 사이의 기압 진동이다.

 

이것이 엘니뇨와 관련 있다는 것을 알아낸 사람은 20세기의 두 유명한 기상학자 길버트 워커(Gilbert Walker)와 야곱 비야크네스(Jacob Bjerknes)다. 1923년 길버트 워커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지역, 태평양의 타히티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다윈 지역의 기압 사이에 강한 ‘음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타히티 지역의 기압이 높아지면, 다윈 지역의 기압은 낮아졌던 것. 그는 이 현상을 남방진동이라고 불렀다.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이 내려가는 것이 마치 시소를 연상시키므로 ‘기압 시소현상’이라고도 부른다.)

 

1960년대에 야곱 비야크네스는 적도 태평양에서 일어나는 기압 시소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고민했다. 그러다 대기의 기압 차로 해수면 대기가 동서로 순환한다는 것을 알아냈고, 여기에 ‘워커 순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엘니뇨와 남방진동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1969년 비야크네스는 마침내 ENSO의 특성을 상세하게 설명하기에 이른다. 보통 저기압은 따뜻한 해수면에서 형성되므로 엘니뇨 시기의 동태평양에는 저기압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공기는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흐르므로 저기압이 발생한 동태평양 지역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은 약해진다. 그는 이처럼 해수면의 온도가 기압의 배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엘니뇨와 남방진동의 연관성을 찾았다. 또한, 이런 기압 차이가 적도의 바람 방향을 평소와 반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비야크네스가 밝혀낸 사실이다.

 

정리하자면 엘니뇨는 대기와 해양의 상호작용으로 생기고, 남방진동은 해수면의 온도가 변함에 따라 대기가 변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방진동과 엘니뇨는 독립된 현상이 아니라 서로 결합된 동일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두 현상을 통틀어 ENSO라고 부르게 됐다.
 


엘니뇨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엘니뇨는 동태평양 지역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엘니뇨 시기의 따뜻한 해수는 동태평양을 넘어 날짜 변경선(중앙 태평양)까지 확장된다. 평상시 적도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편동풍이 강하다. 따라서 상층부의 따뜻한 해수가 서태평양으로 이동해 서쪽에 따뜻한 해역이 만들어진다. 해수표층이 서쪽으로 밀려간 동태평양에는 차가운 심층해수가 올라온다. 따라서 동태평양 지역은 차가운 해역이 된다. 그러나 엘니뇨 시기가 되면 동태평양 지역에 저기압이 형성돼 바람이 약해진다. 따라서 따뜻한 해수가 서쪽으로 밀려가지 못해 동태평양의 바다가 따뜻한 해역이 된다.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증가하면 대류 활동은 중앙 태평양으로 이동하게 돼 아래 그림과 같은 대류 활동이 일어나게 된다.

 

평상시와 엘리뇨 시기의 대기의 대류현상과 해수의 대류현상.

 

이제 대기와 해양의 상호작용이라는 점에서 엘니뇨의 특성을 살펴보자.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엘니뇨 시기에는 편동풍이 상대적으로 약화된다. 이 때문에 서태평양의 따뜻한 물이 부분적으로 동쪽으로 옮겨지고, 동태평양의 수온약층은 깊어진다. 수온약층은 아래층 온도가 낮고, 위층 온도가 높은 안정된 층이므로 해수의 흐름이 적다. 이는 결국 편동풍을 더 약화시켜, 정상적인 대기와 해양의 흐름을 방해하게 된다.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강수량과 바람의 방향도 바뀐다. 또 동태평양의 수온약층도 더욱 깊어진다. 엘니뇨 절정기가 될 때까지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해수면 온도는 계속 높아진다. 이와 같은 대기와 해양의 상호 작용을 흔히 ‘대기-해양 피드백’이라고 한다. 이 피드백은 무척 강해서 해수면 온도가 조금만 변해도, 또 무역풍이 감소해도 엘니뇨를 불러올 수 있다. 라니냐도 이런 과정을 거치며 해수면의 온도를 변화시킨다. 
 


엘니뇨의 변종도 나타난다


최근 엘니뇨의 변종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이 지구온난화와 상관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들에 따르면 일반 엘니뇨는 동태평양에 중심이 있어 ‘EP엘니뇨’로 부르는 반면 중앙 태평양에서 강한 진폭을 나타내는 엘니뇨는 ‘CP엘니뇨’라고 불러야 한다. 또한 CP엘니뇨가 날짜변경선 부근에서 강하게 나타나므로 ‘데이트라인(dateline) 엘니뇨’라고도 부른다. 일반 엘니뇨와 약간 다르다는 의미로 ‘엘니뇨 모도끼’라고도 부른다. ‘유사하면서 다른’이라는 의미의 일본어 ‘모도끼’를 뒤에 붙인 것이다. CP엘니뇨는 태평양보다 대서양 주변에 더 강하게 나타나고 허리케인을 자주 발생시킨다는 보고도 있다. 그래서 북서태평양 지역과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CP엘니뇨 영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엘니뇨 시기의 특성 요약


   · 평상시에 적도 해상에서 부는 동풍인 무역풍(적도 편동풍)이 약화된다.
   ·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해류가 줄고, 동태평양에 차가운 심층수가 올라오지 않는다. 결국 동태평양의 수온이 올라가므로 대

     류 활동이 중태평양으로 옮겨진다.
   · 동태평양의 해수 온도가 높아지면 강수량과 바람장이 변하고, 동태평양의 수온약층도 깊어진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해수면의 온도

     가 계속 높아진다.

 

 

엘니뇨 때문에 일어난 몇 가지 일들


엘니뇨는 적도 지역의 대기 대류를 변화시키므로 적도 지역의 강수 분포를 크게 바꾼다. 더욱이 적도 지역에서 나타나는 강한 대류현상은 대기 중에 파동 운동을 유도한다. 이 파동 운동은 엘니뇨가 발생했을 때 고위도 대기 순환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엘니뇨가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주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엘니뇨 시기에는 중태평양의 대류가 활발해져 강수량이 증가한다. 또한, 대류의 영향이 북쪽으로 전파되면서 고기압과 저기압의 파동을 만든다. 이런 기압 배치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PNA패턴(태평양 북미패턴, Pacific North America Pattern)’이다.

 

엘니뇨 시기의 PNA패턴은 북태평양 고기압과 알류샨 저기압을 강화시키고, 알류샨 저기압을 동쪽으로 이동시킨다. 이때 태평양 대기 상층의 제트 기류도 동쪽으로 확장, 강화된다. 이런 기압 배치는 결국 중위도 대기 순환에도 영향을 준다. 이렇게 파동이 먼 지역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대기의 원격 상관’이라고 한다. 엘니뇨와 관련한 대표적인 피해 사례는 1997년 인도네시아의 산불이다. 엘니뇨 시기에는 적도 지역 중태평양의 강수량이 늘지만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북부 오스트레일리아의 강수량은 줄어든다. 이는 산불 피해로 연결되기도 해 1997년 인도네시아에서 최악의 산불이 발생한 바 있다. 

 

엘니뇨의 영향으로 여름철에는 인도 몬순 지역과 카리브해, 호주의 강수량이 감소한다. 반대로 미국 서부에서는 강수량이 증가하기도 한다. 또한, 엘니뇨에 의해 변화된 해수면 온도와 대기의 대규모 순환은 태풍과 같은 열대성 저기압의 생성과 경로를 바꾸어 해일, 홍수와 같은 피해를 입게 한다.

 

변화된 수온은 생물권에도 영향을 준다. 페루 앞바다의 멸치어장이 파괴거나 북동태평양의 연어가 다니는 길이 북쪽으로 변경되기도 한다. 엘니뇨의 절정기가 나타나는 북반구 겨울철에 나타나는 필리핀 해역의 강한 고기압성 흐름은 열대의 따뜻하고 습윤한 공기를 동아시아 지역으로 공급해 동아시아의 겨울을 따뜻하게 만드는 경향도 있다.

 

엘니뇨 시기에 나타나는 전 지구적인 영향도(왼쪽). 라니냐 시기에 나타나는 전 지구적인 영향도(오른쪽).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엘니뇨와 라니냐는 바닷물의 온도 변화에 그치는 현상이 아니다. 바닷물의 온도가 변하는 과정에서 기압에 영향을 주고 대기의 흐름도 변화시킨다. 해수의 온도변화가 가져왔던 어장의 파괴라는 문제를 넘어서 다양한 산불이나 질병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엘니뇨와 기압배치, 지구온난화가 함께 작용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른다. 앞으로도 엘니뇨와 라니냐 등을 지속적으로 살펴서 우리에게 닥칠 문제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1. 음의 상관관계

    A와 B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때, A가 증가함에 따라 B가 감소하는 현상을 ‘음의 상관관계’라 한다. 반대로 A가 증가함에 따라 B도 증가하는 현상을 ‘양의 상관관계’라 한다.

  2. 수온약층

    해수를 온도에 따라 구분하면 위에서부터 혼합층, 수온약층, 심해층 3개로 나눠진다. 혼합층은 바람의 영향으로 수온의 변화가 거의 없는 층이고, 수온약층은 밀도가 큰 찬물이 아래에 있고, 밀도가 작은 따뜻한 물이 위에 있어 안정된 층이다. 혼합층과 심해층의 물질과 에너지 교환을 억제한다. 수온약층의 깊이는 계절이나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하경자 / 부산대 지구환경시스템학부 교수

발행일 201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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