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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가 끝나 완성된 전통 누룩의 빛깔.

 

 

나라마다 독특한 문화적 양상을 띠는 누룩술


전통주의 양조에 사용되는 발효제는 누룩이다. 한자로는 ‘곡자(麯子)’, ‘국(麴)’, ‘국자(麴子)’로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 등 동양 3국은 공히 이 ‘누룩’으로 양조를 해왔다. 누룩은 춘추전국시대에 처음 등장하였다고 하는데, 한자의 구성으로 미루어 당시에도 밀(小麥)과 보리(大麥)를 이용하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누룩을 ‘곡자’라고 하여 떡 형태로 압착, 성형한 누룩을 주로 채택하여 왔다. 그 방법은 주로 밀이나 보리를 껍질째로 타개어 죽이나 물로 반죽하여 누룩틀을 이용해 디딘 후, 초재(草材)에 묻어 띄운다. 초재에 자연균 상태의 아스퍼질러스와 라이조프스 등 누룩곰팡이를 비롯하여 유산균, 효모균 등 다양한 발효균이 활착하여 발효에 관여하기 때문에 보다 복잡미묘한 맛과 향을 나타낸다.


누룩을 개발하여 동양권에서 처음으로 양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은, 지금까지도 우리와 유사한 막누룩이 주류(主流)를 이루지만, 기름진 음식과 추운 기후의 영향으로 도수 높은 술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증류주(백주/고량주)의 제조를 위한 누룩(大麯)과 황주 등의 발효주용 누룩(小麯)을 분리하여 발달시켰는데, 특히 정부 주도의 세계화를 위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나라나 일본과는 다른, 누룩의 차별화를 도모하고 있다.


중국은 누룩을 국자(麴子, 麯子)라고 한다. 간체자(簡體字)로는 곡자(曲子)라고 쓴다. 중국 본토에서 만든 술병을 보면 술 이름에 국(麴)은 없고 곡(曲)이 들어가 있다. 누룩은 술을 빚는데 있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에서 ‘술의 뼈(酒之骨)’ 또는 ‘술의 혼(酒之魂)’이라고도 한다. 중국 누룩에는 대국(大麴), 소국(小麴), 부국(麩麴) 세 가지가 있는데, 대국은 모양이 벽돌만큼 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원료로는 소맥, 대맥, 완두콩, 노란 콩 등의 곡물을 사용하며, 이것을 갈아 물을 부어 반죽하여 벽돌크기로 만든 다음, 석 달 가량 저장해 두면 미생물의 작용으로 발효가 되면서 누룩이 되는 것이다. 분주(汾酒) 등의 백주(白酒)는 이 대국을 사용한다.


소국은 크기가 대국보다 작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원료는 주로 쌀, 쌀겨 또는 소맥을 사용하며, 반죽할 때 약초를 넣으므로 약국(藥麴)이라고도 한다. 소흥주(紹興酒) 등의 황주(黃酒)는 소국으로 빚는다. 그러나 백주 중에도 소국으로 만드는 것도 있다. 부국은 밀기울로 만든 누룩이므로, 원가도 덜 먹히고 양식을 절약하는 장점이 있다. 금주국주(金州麴酒) 등이 이 부국으로 빚는 술이다.


반면, 삼국시대 때 백제로부터 막누룩으로 빚는 양조기술을 전해 받은 것이 일본 양조의 시작으로 알려져 왔다. 병곡에서 출발한 일본 누룩은 기후와 농작물의 영향으로 재료와 방법의 변화를 거쳐 코지로 발달하게 되었고, 이를 발효제로 하여 빚은 사케는 세계화에 접근하고 있다. 일본의 누룩은 ‘국(麴, koji)이라고 하는데, ‘흩임누룩’, ‘산국(散麴)’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에선 일본의 국(코지)을 ‘입국(粒麴)’이라고 한다. 일본의 국은 쪄서 멸균한 찐쌀(고두밥)에 종균(종국, 씨곰팡이)를 파종하여 단일균을 증식시킨 것으로, 양조장과 상품에 따라 각기 다른 균주를 배양한 누룩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본주는 표준화 과학화되어 있으며, 비교적 주질이 일정하고 맛이 깨끗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막걸리를 비롯한 다수의 술빚기에 사용하는 일본식 누룩인 입국(粒麴). 코지라고도 부른다.

완성된 애누룩. 형태가 쪄낸 떡과 같다는 뜻에서 병곡이라고 부른다.

 

 

각국의 양조방식은 누룩제조에 따른 균주의 선택과 배양방식, 형태에 따라 천차만별의 균주(菌株)와 발효 방식을 유지, 발전시켜왔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이에 따른 술의 맛과 향기, 색깔까지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양조방식에 따른 주질과 음주형태, 습관은 나라마다의 독특한 문화적 양상을 띨 수 밖에 없으므로 ‘누룩술’의 의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룩의 중요성


전통주를 빚어 본 사람이면 누구나가 경험하는 바와 같이 술을 알면 알수록 누룩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만큼 보다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술 빚는 일을 두렵게 여긴다. 특히 가양주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그 어느 때 보다 다양한 전통주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를 전통주의 전성기라고 하는데, 술빚기 또는 누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과 관련하여 “애는 버려도 누룩은 버리지 못한다.”는 속설이 생겨났다. 누룩의 장만과 관리가 얼마나 중요하였던지 오죽하면 아이를 버릴지언정 누룩은 버리지 못한다고 하였을까.


또한 고려말의 문신으로 그가 강릉대도호부사로 봉직했던 조운흘(趙云仡)이라는 사람과 관련된 축객고사(逐客故事)가 [고려사]에 전해오는데, 이는 누룩술의 의미를 일깨우는 중요한 예다.

 

강릉태수 조운흘의 집안 가양주는 맛이 좋아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접대에 지친 조태수가 어느 날 누룩을 밟는 하인들에게 ‘슬슬 밟으라’고 지시, 하인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편하게 누룩을 빚을 수 있어 좋아했다고 한다. 그렇게 ‘슬슬’ 밟은 누룩으로 빚은 술로 찾아 드는 손님들에게 접대하기 시작했는데, 접대 받은 손님들은 뜻밖의 술맛에 실망감과 함께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를 놓칠세라, 조태수는 너스레를 떨면서 ‘무슨 술맛이 이렇게 시큼털털하느냐. 더 이상 마실 수 없으니 술상을 물리라’고 지시하자, 하인들이 술상을 물렸다. 이후 조태수의 집안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져 한가한 나날을 보낼 수 있어 좋아했는데, 하루는 이러한 사실을 이상히 여긴 선비가 ‘일부러 누룩을 슬슬 밟게 하여 술맛이 나빠지면 손님이 찾아 들지 않을 것’이라는 조태수의 ‘손님을 쫓기 위한 궁리’를 알아차리게 되면서 ‘술 접대에 따른 축객’의 의미가 되었다.

 

누룩을 슬금슬금 밟게 되면, 발효 시 발생되는 열에 의해 수분증발이 빨라져 누룩곰팡이와 효모균의 증식시간이 짧아지게 되어 소위 누룩의 힘(당화, 발효력)이 떨어지게 된다. 누룩곰팡이와 효모균의 증식이 잘 안되면 결국 술의 당화와 발효가 잘 이뤄지지 않게 되고, 오염균의 증식 기회를 주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발효가 나빠져서 도수가 낮은 술이 되고, 이는 곧 초산발효나 산패로 이어지게 되어 시큼한 맛의 술이 되는 것이다.

 

누룩을 디디는 버선발의 모습.

누룩을 띄우는 과정 중 하나인 누룩 뒤집는 모습.

 

 

한편 누룩은 우선 좋은 재료의 선택은 물론 물의 비율과 혼합 정도에 따라 누룩의 품질이 달라지고, 그에 못지않게 집안환경과 누룩을 디디는 정도, 그리고 누룩을 띄우는 시기에 따라 발효의 정도와 술맛, 향기가 달라지는 특성이 있다. 한 집안의 술은 청결하고 좋은 환경 못지않게 술 빚는데 따른 누룩의 균에 따라 발효특성이 달라지게 되는데, 누룩 속의 효모를 비롯한 미생물은 그 집안의 주변 환경에 따라 균주의 분포와 특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애는 버려도 누룩은 못 버린다는’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 집안의 술맛과 향기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누룩 속의 어떤 누룩곰팡이와 효모균이 존재하느냐이므로 환경을 인위적으로 바꿔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누룩 제조기술과 관리방법은 같은 재료로 술을 빚는 동양문화권 내의 다른 술들과 우리의 전통주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게 해주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팔도강산에 명주가 넘쳐났다”는 말에서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누룩을 얼마나 지키고 가꾸어 왔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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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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