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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주 제조 모습.

 

 

가향주와 약주가 주류를 이루는 우리의 전통주


우리나라 발효주류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가향주(佳香酒)와 약용약주(藥用藥酒)가 주류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의 전통주와 음주문화는 계절감각과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는 효도사상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가향주(加香酒 또는 佳香酒)’는 술에 꽃이나 과일껍질 등 자연재료가 갖는 여러 가지 향기를 첨가한 술로써, 가향재의 대부분은 꽃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나, 더러 과일이나 그 껍질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가향주를 즐기게 된 데에는 술을 단순히 기호음료로만 인식하지 않고, 일월순천(日月順天)의 계절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얻어지는 자연물을 섭생해 온 고유한 식습관에 기인한다. 즉, 봄이면 진달래며 개나리꽃을 술에 넣어 그 향기와 봄의 정취를 즐기고, 여름이면 장미나 박하, 창포와 같은 꽃으로 술을 빚어 더운 여름의 계절감각을 술에 곁들이기도 하고, 가을이면 유자며 귤과 같이 향기가 좋은 과일껍질로 술에 향기를 불어넣어 가을이 깊었음을 알리기도 하였다. 또,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엄동설한의 설중매는 그 향기가 뛰어나 반쯤 핀 매화를 술잔에 띄워 마시는 풍류로써 우리네 조상들은 저마다의 심성을 맑게 정화시키는 등 고유한 음주문화를 낳기도 하였다. 가향주로는 진달래술을 비롯하여 도화주, 행화주, 창포주, 국화주, 연화주, 연엽주, 백화주 등 셀 수 없이 많다.


창포주 제조 과정. 단오에 찹쌀고두밥과 누륵, 창포즙으로 빚은 창포주를 마시는 풍속이 전해지고 있다.

 

‘약용약주(藥用藥酒)’는 열매를 비롯한 초근목피 등 자연재료가 갖는 각각의 향기와 색깔, 맛 성분, 약성을 첨가한 술을 말하는데, 흔히 ‘약주(藥酒)’라고 한다. 예부터 술을 일컬어 “백약의 으뜸”이라고 여긴 것도 그러하고, 연년수명(延年壽命)이나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신비한 약초를 찾게 된 배경이나, 신선주라는 이름의 술이 전국 각지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러한 약용약주의 특징은, 건강 증진의 목적과 함께 전염병에 대한 예방과 치료, 성인병으로 상징되는 혈관계 질환과 신경관계 질환에 대한 예방과 치료, 강장 강정효과, 머리와 피부를 늙지 않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약재들이 선호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약주들을 장기간 복용하게 되면 늙지도 않고 머리가 검어지며, 동안이 되어 결국에는 장수하게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약재의 처리방법도 주로 민간에서 사용하는 탕약법(湯藥法)을 근간으로 술을 빚는 것이 일반적이나, 더러 찌거나 볶는 등 독특한 방법의 가전비법이 동원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술을 즐기는 한편으로 때에 따라서는 치료를 목적으로 약용약주를 빚어왔다. 한약재를 사용하여, 향과 색깔, 각종 약성을 술에 불어넣는다는 사실에서도 다양성과 특징을 꼽을 수 있다. 약용약주의 다양성은 곧 주질의 다양화, 맛과 향기의 다양화, 그리고 그 다양성만큼의 가능성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주 가운데 약용약주류로는 한산 소곡주를 비롯하여 계룡 백일주, 가야곡 왕주, 달성 하향주, 안동 송화주, 청양 구기주, 남해 유자주, 낙안 사삼주, 함양 국화주, 완주 송죽오곡주, 청원 신선주, 서울 송절주 등 발효주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한편 가향주를 즐기는 민족과 나라는 드물다. 또한 수많은 민족과 나라가 양조문화를 일궈왔지만,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의 변화에 맞춰 그때그때 얻어지는 향기 좋은 꽃이나 잎, 과실껍질, 생약재를 이용한 다양한 양조문화와 풍류가 깃든 음주문화를 가꾸어 온 민족은 거의 없다. 따라서 가향주와 약주문화는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고유하면서도 차별화된 음주문화로써, 세계 어느 민족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우리 민족만의 정서와 아름다운 풍류(風流)가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계절변화에 따라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잎이 무성해지며, 가을이면 열매와 뿌리가 성해지는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술에 끌어들이는 지혜를 발휘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은 가장 두드러진 전통주의 가치이자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증류주류, 혼성주류, 혼양주류


증류주류(蒸溜酒類)는 자연상태에서의 발효나 양조과정을 통하여 발효된 술, 또는 술덧을 증류과정을 통하여 얻은 술을 증류주 또는 소주(燒酒)라고 한다. 따라서 앞서 예로 들었던 여러 종류의 발효주는 어떠한 방식으로 빚었든지 증류주와 혼성주의 원주(原酒)가 된다. 증류주는 발효주에 비하여 알코올농도가 비교적 높으며, 증류방법에 따라 일부 불순물과 원료주의 원료가 갖고 있던 특유의 성분들은 거의 제거되기 때문에 순수한 증류수와 알코올, 향기성분으로 그 구성성분을 나타낸다. 증류주의 범위에는 전통방식의 단식 증류에 의한 증류식 소주와 현대화된 공정의 연속식 공정에 의한 희석식 소주가 있고, 위스키와 브랜디, 일반증류주가 있다.


전통방식의 증류주류로는 문배주를 비롯하여 광주 산성소주, 한산 불소곡주, 안동소주 등 그 종류가 많지 않으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중주격으로 마시는 희석식 소주는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한 주정(순수 알코올)을 원료로 하여, 증류수를 희석하여 알코올 함량을 낮춘 것술이다. 자전적 해석을 빌면 희석식 소주가 순수한 소주로 인식되고 있으나, 인공감미료를 비롯하여 각종 식품첨가물이 들어가 있어, ‘조미주’라고 할 수 있다.

 

소주를 증류하는 모습.


혼성주류(混成酒類)는 양조주나 증류주에 과실이나 향료, 벌꿀 등의 감미료, 초근목피 등의 약성 한약재 등을 첨가하여 침출하거나 증류하여 만든 술을 가리킨다. 혼성주는 세계적으로 제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소위 ‘리큐르’라고 부르는 술이 혼성주에 속한다. 우리나라 일반 가정에서 소주에 인삼이나 오가피, 구기자 등을 넣어 우려마시는 술인 약용주가 그것으로, 가장 보편적으로 제조되고 있는 술이다.


일반적으로 발효주는 순하고 부드러우며 맛과 향이 좋긴 하지만, 알코올 도수가 낮아 상온에서 변질이 쉽게 일어난다. 이에 비해 소주는 도수가 높아 오래 두어도 변질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맛과 향이 좋아지며, 소량을 마셔도 빨리 취하고 깨끗하게 깨는 것이 장점이지만, 음주에 따른 건강의 피해가 자못 크다는 것이 단점이다. 따라서 발효주와 소주의 단점을 보완한 세계 최고(最古)이자 최초(最初)의 술이 우리의 혼양주(混釀酒)이다. 혼양주의 대표적인 술은 과하주(過夏酒)인데, 누룩과 곡식을 주원료로 술빚기가 이뤄지는 동양권을 비롯 세계에서도 우리나라만의 유일한 방법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하주의 제조과정을 살펴보면, 쌀 등의 곡식과 누룩, 물을 재료로 빚어 발효 중인 술에 증류식 소주를 넣어 재차 발효, 숙성시켜 완성한다.

 

일반인들이 ‘이론적으로 포트와인(Port Wine)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포르투갈에서 개발된 소위 알코올강화와인이라 불리는 ‘포트와인(Port Wine)’의 등장 이후부터이다. 우리의 과하주와 유사한 방법의 포트와인이 개발된 시기가 17세기 중엽인데, 우리나라의 과하주는 포트와인보다 50~100년 앞서 개발되었고, 일본의 합성주보다는 300년이나 앞선다는 사실이다. 전통주의 세계화 가능성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각각의 양조방법에 따른 주질의 다양성과 맛과 향기의 차별화는, 오히려 개성화 다양화로 대변되는 세계인들의 각기 음주기호와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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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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