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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누룩 ‘만전향주곡’을 복원하면서 사용된 재료. 한약재와 연꽃 등 다양하다.

 

 

누룩의 역할과 효소제와의 차이


전통주 양조에 있어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하고, 술의 성패(成敗)가 바로 이것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좋은 누룩을 장만하는 일은 술 빚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좋은 누룩을 얻기 위해서 최고의 재료를 장만하고, 하나하나의 처리 과정과 디디기, 특히 온도와 습도조절 등 띄우기에 남다른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또한 술 빚는 사람의 자세라고 할 것이다.


전통 누룩은 전분질 또는 왕겨 등을 단독 또는 혼합한 생원료에 곰팡이류와 효모균, 젖산균 등을 자연상태에서 번식시켜, 술의 발효 곧 당화와 발효를 일으키는 발효 효소제이다. 전통적으로 누룩은 ‘곡자(麯子)’ 또는 ‘국자(麴子)’라고 불러왔으며, 전분질 또는 왕겨 등을 단독 또는 혼합한 후 찌거나 가열하여 멸균시킨 뒤 종균(누룩곰팡이)을 파종하여 인위적인 상태에서 번식시켜 전분질의 당화작용을 하는 효소제 역할만을 하는 누룩을, ‘국(麴,)’ 또는 ‘효소제’라고 한다. 결국, 전통 누룩(麯子)이 국 또는 효소제와 다른 것은 효모의 유무라고 할 수 있다.


전통 누룩은 국이나 효소제와는 달리, 50종류 이상의 효소가 있는데, 그 주요기능은 원료미 중의 쌀 등 전분을 당화하여 당분으로 만들고, 단백질을 분해하여 아미노산을 만드는 효소작용과 당분을 분해하여 알코올과 CO2를 생성하는 한편, 아미노산으로부터는 정미성분이나 효모의 영양을 얻고, 고급 알코올 등의 향기성분을 만드는 효모의 발효작용이 누룩의 역할이다.

 

 

지방마다 다른 전통 누룩 빚기

누룩은 형태에 의해서도 술의 맛과 품질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를 테면 누룩의 지름이 너무 짧으면 수분이 너무 빨리 발산되어 누룩곰팡이균이 잘 증식되지 못해 숙성이 잘 이뤄지지 않고, 너무 얇으면 빠른 시일 내에 숙성이 이뤄지는 대신 향미가 좋지 못하고, 주박이 많아지며 주량이 적어진다. 또한 누룩이 너무 두꺼우면 내부의 수분이 발산되지 않아서 내부온도가 너무 높아질 가능성이 있으며, 그 결과 부패하기 쉽고 제조 후 건조시키기가 어려워진다. 누룩은 또 성형 시 발로 밟는 정도에 따라서도 품질에 차이가 있으며, 주질과 맛에 영향을 준다.


누룩은 지방마다의 독특한 기후와 재료의 영향으로, 모양과 제조법, 발효기간이 차이가 있다. 서울을 비롯 경기, 영남지방에서는 원료를 반죽하여 헝겊에 싸서 누룩고리에 넣고 발로 단단히 밟아서 성형한 뒤, 짚으로 싼 후에 온돌방에 쌓아서 띄운다. 반면, 호남, 충청도지방에서는 실내의 시렁이나 천정에 매달아서 10일~30일간에 걸쳐 띄우며, 서울, 경기, 영남지방은 편원형(片圓形)이 많고, 호남, 충청도 지방의 누룩은 원추형이나 모자형(정방형, 방형)으로 형태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누룩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때로 알려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도경]에 처음 누룩에 관한 기록이 보이고,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문헌에 ‘미온(美醞)’ ‘지주(旨酒)’ ‘요례(醪醴)’ 등 술에 관한 기록이 보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누룩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은 삼국시대 이전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누룩 디디는 모습.

 

이후 1450년대 [산가요록]을 시작으로 [사시찬요초], [음식디미방] 등 여러 조선시대의 문헌에 누룩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들 문헌에 보이는 누룩의 재료로는 밀을 중심으로 쌀, 보리, 녹두 등이 주로 쓰였음을 알 수 있으며, 한말에 와서는 분국(粉麴)이라 하여 밀가루로 만든 누룩과, 조국(粗麴)이라고 하여 밀가루와 밀기울을 섞어서 만든 누룩으로 나누어 그 용도를 달리 하였다.

 

 

가을철에 만든 추곡은 술의 향기와 맛이 좋아 절곡(節麯)으로 불려


전통 누룩은 재료에 따라, 만드는 시기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는데, 누룩의 재료에 따라 밀로 만든 밀누룩(小麥麯), 녹두로 만든 녹두국(綠豆麯), 보리로 만든 보리누룩(大麥麯), 쌀로 만든 쌀누룩(米麯)으로 분류된다. 보리나 밀을 원료로 하되, 기울의 유무에 따라 조곡(粗麯)과 분곡(粉麯, 또는 白麯)으로 나뉘는데, 일반에서는 조곡이 선호되었고, 부유층과 반가에서는 밀가루로 만든 분곡 또는 백곡이 널리 쓰였다. 또 만드는 계절에 따라서는 춘곡, 하곡, 추곡, 동곡 등이 있고, 형태에 따라 밀 등의 곡물을 가루로 만든 다음 뭉쳐서 일정한 형태로 성형한 떡누룩(餅麯)과 곡물의 낱알이나 곡분으로 만드는 산국(散麴, 흩임누룩)이 있으며, 빛깔에 따라서 황곡, 백곡, 흑곡, 홍곡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러한 누룩은 주로 8월~10월 사이에 만드는 추곡은 명문가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궁중법의 향온곡(香醞麯)은 향기가 좋은데다 여름철 양조용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특히 가을철에 만든 추곡은 술의 향기와 맛이 좋아 특별히 절곡(節麯)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과거 주막에서 손님이 오면 주모가 손님 앞에 술상을 차려 내오는데, “손님 이 방문주는 가을누룩으로 빚은 술로 한 병에 세 냥입니다.”하고 한마디를 건네면, 손님은 그 술을 다 마시고 가면서 술값 세 냥에 한두 푼을 더 얹어놓고 갔다고 한다. 과거 ‘가을철에 누룩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또한 가을누룩으로 빚은 술은 누룩냄새가 덜하고 맛이 좋으며, 특히 향기가 좋다’는 사실이 상식화 되었으므로, 누룩 만드는데 따른 수고비를 셈하여 주었다는 얘기다.

 

맥이 끊긴 누룩을 복원해 놓은 전통 누룩 중 신곡(좌)과 떡 형태의 병곡과는 다른, 낱알 누룩으로 빚은 신곡(우).

 

 

맥 끊긴 전통 누룩, 복원작업이 시급


하지만 주세법의 제정 발표 이후, 밀가루만으로 만든 분곡은 약주, 청주, 과하주 등의 고급술에, 조곡은 탁주, 소주용 누룩으로 쓰이는 경향을 띠었으며, 가양주금지와 밀주단속이 표면화 되었던 1927년부터는 국자제조회사에 의한 생산공업 형태로 바뀌게 됨에 따라 전통적인 방법의 누룩은 생산량이 감소하였으며, 이후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량식 제국법으로 통일됨에 따라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필자는 일제 강점기 이후, 사라져버린 조선시대 특수누룩 50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재현하여 양조실험을 하게 되었는데, 저마다 독특한 맛과 빛깔, 특히 형용할 수 없는 술향기에 매료된 바 있다. 그간 맥이 끊긴 누룩으로는 밀이나 보리를 주재료로 한 면곡과 추모곡을 비롯, 밀과 쌀 또는 쌀로 빚은 여곡, 설향곡, 연화곡, 홍곡, 백곡, 이화곡이 있고, 밀과 녹두를 이용한 향온곡, 백수환동주곡, 금경로곡, 내부비전곡, 녹미주곡은 특별누룩으로 취급되어 궁중을 중심으로 비전되었었다. 그 밖에 초재(草材)와 약재가 들어간 누룩으로, 연화곡, 요곡, 양능곡, 백주곡, 만전향주곡, 신곡, 정화곡, 동양주곡 등은 누룩이름에 따른 주품명을 갖는 등 특별한 향기와 맛의 주질을 위한 양조에 이용되었다. 이외에도 20여종의 전통누룩이 아직까지 활자에 갇힌 채 빛을 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넘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국가자원의 망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그 동안 옛 것이라고 해서 간과해버렸고, 무조건적으로 현대적인 사고에 바탕한 합리적인 개선점을 찾고자 개량을 거듭한 결과, 획일적이고 규격화되면서 단편적으로 치우쳐 전통성을 상실한 채,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한 예를 수 없이 경험했다. 그러기에 전통 누룩에 대한 무관심과 홀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더욱 금할 수 없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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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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