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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전통주 가운데 그 역사가 매우 깊은 술로 전해져 오는 소곡주.

 

 

가장 대중적인 명성을 누렸던 토속주

우리나라의 전통성을 간직한 술로써 가장 대중적인 명성을 누렸던 토속주의 하나가 소곡주(小麯酒)이다. 소곡주는 현존하는 전통주 가운데 그 역사가 매우 깊은 술로 전해오고 있다. 사실 그 어떤 사실적 기록이나 뚜렷한 근거는 없으나, [박씨전]에 “백제의 마의태자가 개골산에 들어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술로 풀었는데, 그 맛이 소곡주와 같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 이미 삼국시대 때부터 명성을 얻었던 술로 추측된다. 구전 되는 이야기 중에는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 함락된 후 백제 유민들이 지금의 한산의 주류성에서 마지막 항거를 하며, 나라 잃은 슬픔과 한을 달래기 위해 빚어 마셨다.’는 일화와 함께 ‘한양에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가 한산을 지나다 타는 목을 축이려고 주막에 들렸는데 기막힌 술맛에 반해 취하여 시를 읊고 즐기면서 시간을 허비하다가, 결국 한양을 가지 못하고 과거 또한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다안왕 11년에 추곡이 흉작이 되자 식량이 부족하므로 민가의 사양주(私釀酒)의 하나인 소곡주를 전면 금지시켰다.” 하였고, “무왕 37년(서기 635년) 3월에 왕이 신하들과 더불어 사비하북포(백마강변)의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강상(江上)에서 이 술을 마시고 그 흥이 극치에 달했다.”고 하는 얘기가 전해오는 것으로 미루어, 이 술 역시 백제의 영토였던 한산지방의 사양주인 소곡주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후 소곡주는 특히 한산 지역 주민들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오다가 한때 정부의 밀주단속으로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는데, 1980년대 초 정부의 민속주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다시금 옛 명성을 구가하기 시작했다.

 

 

일명 ‘앉은뱅이 술’, 한산 소곡주

한산 소곡주는 한산면 호암리에 사는 우희열(禹喜烈, 74세) 씨가 그 기능보유자로, 유일하게 전통의 맥을 이어와 지난 1979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상품화되어 옛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첫손가락을 꼽는 유명주가 되었다. 한산소곡주의 전승내력을 살펴보면, 우희열 씨의 시어머니(고 김영신, 1916~1997)의 “8대조 김정현(金正鉉, 1740~1806년) 때부터 가양주로 빚어 온 것으로 전”하며, “기록으로는 5대조 김현황(1812~1888)의 부인 담양 전씨(숙부인)로부터 김씨 집안의 여인들에 의해 전수되었으며, 시어머니께서 한산의 나씨(나인원) 집안에 시집오면서 나씨 집안의 가양주로 뿌리내리게 되었고, 시어머니께 배워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한다.

 

한산 소곡주는 엷은 담황색을 띠며 은은한 향과 혀끝을 감아도는 감칠맛이 일품이다. 또 아스파탐이나 올리고당 등 식품첨가물이 전혀 함유되지 않은 순수한 곡주의 맛과 향을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찹쌀로 빚어 맛이 순하고 부드러우며 뒤끝이 깨끗하다. 사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비롯한 여러 기록에도 ‘한산지방의 소곡주는 그 맛이 좋다’ 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옛날부터 유명세를 얻었으며, “한번 앉아서 마시다 보면 그 맛에 취해 일어날 줄 모른다.” 하여 ‘앉은뱅이 술’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려지고 있다. 이 밖에도 한산 소곡주는 감국과 콩, 홍고추 등으로 인한 청혈해독의 약리작용과, 말초혈관을 확장하고 혈관운동 중추를 억제하는 혈압강화작용이 있어, 고혈압 방지에 좋은 술로 알려져 있다. 무형문화재 한산 소곡주는 음력 9,10월에 생산된 햅쌀과 햇찹쌀로 술을 빚기 시작하여 이듬해 2,3월까지가 술빚는 적기라고 하며,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는 양력 3~4월 경에 거른 술이 가장 맛이 좋은데, 무엇보다 한산면 지현리 건지산기슭의 샘물로 빚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술 이름도 원래는 누룩을 적게 쓴다는 뜻의 ‘소곡주(小麴酒, 小麯酒)’였으나, 이 지방에서만이 소곡주(素麯酒)로 불려지고 있다.

 

‘소곡주’가 이 지방에서만 소곡주(素麯酒)로 불려지게 된 배경은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일본 최고(最古)의 정사(正史)인 [고사기(古事記)]를 보면 ‘백제사람 인번(仁番)이 술 빚는 법을 처음 알려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인번이 일본에 표류했을 당시 백제의 대표적인 술이 소곡주였으므로, 인번이 일본에 전한 술도 소곡주였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국주(國酒)’라 불리는 사케(청주)의 원조가 바로 소곡주이다.”고 하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 그것이다. 그 배경은 ‘일본의 사케는 우리나라 전통주보다 밝은 술 빛깔을 자랑하는데, 소곡주에서 유래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견해는 좀 다르다. 한산소곡주가 문화재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가양주로 소곡주를 빚고 있었던 고 김영신씨의 소곡주 제조과정을 수 차례 취재하게 되었는데, 필자를 만날 때마다 김영신 씨가 주로 매달리는 작업은 누룩을 분쇄해서 햇볕에 말리는 소위 ‘법제(法製)’ 과정이었다. 법제된 누룩은 예사 누룩보다 곱고 뽀얗다고 할 정도로 하얗게 바랜 상태였다. 김영신 씨에 따르면, “이렇게 햇볕에 바래야 술이 깨끗하고 맑아진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필자는 ‘햇볕에 하얗게 바랜 흰누룩으로 빚은 술’이라는 의미에서 소곡주(素麯酒)로 불려지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소곡주라는 술이름과 같이 누룩의 양에 따른 술이름을 갖는 주품이 없거니와, 국내 최고의 기록인 [산가요록]을 비롯하여 1915년에 쓰여진 [부인필지]와 1936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문헌에서도 소곡주(素麯酒)라는 명칭의 표기를 발견할 수 없을뿐더러 문헌상의 어떤 소곡주보다 한산 소곡주가 누룩의 양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더욱이 지방마다의 세시풍속을 수록하고 있는 [동국세시기]에도 한산지방의 소곡주를 ‘소곡주(少麴酒, 小麴酒)’로 기록하고 있어, 소곡주(素麯酒)로 불려지는 이유를 밝힐 수 없었다.

 

 

한산소곡주와 다른 문헌들 속의 소곡주

어떻든 이러한 소곡주는 [산가요록]을 시작으로 [산림경제], [규합총서], [요록], [규곤시의방], [임원경제지], [역주방문], [시의전서], [양주방] 등 조선시대 양조 관련 수 많은 문헌에 다양한 방법의 소곡주 제조법이 등장하고 있고, 문헌마다 다르지만 대략 7가지 방법이 알려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소곡주가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술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 문헌에 소개되고 있는 소곡주는 대개가 두 번 빚는 이양주법(二釀酒)의 순곡주이고, 더러 삼양주(三釀酒) 소곡주를 볼 수 있으나, 한산 소곡주는 유일하게 부재료가 들어가는 약주(藥酒)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한산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소곡주와, 옛 문헌에 수록된 채 맥이 끊겨버렸던 여러 종류의 소곡주를 재현하여 서너 차례의 시음회를 가져 본 결과, 한산 소곡주는 부드러운 감미와 감칠맛이 뛰어났고, [산림경제]와 [임원십육지], [규합총서]의 소곡주는 쌉쌀한 듯 하면서도 달콤한 맛과 독특한 방향(芳香)이 뛰어났다. 특히 한산 소곡주는 술을 빚는 과정에서 쌀을 가루로 빻아 쪄서 만든 백설기(흰무리) 상태로 하여 밑술을 빚고 찹쌀고두밥과 국화, 엿기름, 콩, 홍고추 등 부재료를 넣어 덧술을 하는 반면, 기록에 나와 있는 소곡주들은 멥쌀과 누룩, 물이 주재료의 전부이고, 밑술을 빚는 과정에서 멥쌀을 가루로 빻아 죽이나 범벅을 만들어 밑술을 빚고 이어 멥쌀로 고두밥을 지어 덧술을 빚는다는 점에서 일반 소곡주와는 다른, 약주류(藥酒類)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편 200여년 전의 기록으로 1815년에 쓰여진 [규합총서]에는 “정월 첫 해일에 냉수 8되를 술독에 붓고, 섭누룩 7홉을 넣어 3일간 불렸다가 제물에 체로 걸러 밭친 다음, 멥쌀 5되를 백세작말하여 흰무리를 짓되, 열어 보지 말고 쪄서 슬슬 헤쳐서 더운 김에 수곡에 풀어 넣는다. 이어 술을 3일간 발효시킨 후, 3일만에 동도지(東桃枝)로 흰무리가 풀어지도록 저어 차게 덮어 둔다. 2월쯤 밑술의 맛을 보아 달콤 씁쓸하면 멥쌀 1말을 백세하여 하룻밤 담가 불렸다가 다음날 건져서 고두밥을 짓는데, 이때 찬물을 7~8되 가량 뿌려 주면서 무르게 푹 익힌다. 고두밥이 익었으면 슬슬 헤쳐서 더운 김에 밑술에 퍼 넣고 동도지로 풀어지게 고루 저어 준 뒤, 비교적 서늘한 곳에 두고 21일만에 뜨면 좋다.”고 하였다.

 

반면 앞서의 기록보다 365년 앞선 1450년경에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가요록]의 소곡주는, 먼저 “멥쌀 7말 5되를 씻어 물에 담갔다가, 가루로 내어 끓는 물로 죽을 쑤어 식힌다. 누룩가루 7되와 밀가루 5되를 합하여 술을 빚어 익힌다. 다시 멥쌀 7말 7되를 씻어 담갔다가, 온 채로 쪄서 식혔다가, 누룩가루 3되와 함께 섞고, 밑술에 합하여 빚는다.”고 하여 한산소곡주와 상이한 방문임을 알 수 있다. 위의 방문들은 법주나 방문주와 같이 죽이나 범벅 형태로 빚는 술에 이어 개발된 백설기 형태의 양조방법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전통주의 원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후 가양주문화가 발달하면서 개인의 취향에 따라 방법이 바뀌기도 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개발, 발전되면서 국화와 콩, 엿기를 등의 부재료가 추가되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게 한다.

 

어떻든 소곡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청주류의 한 가지로 자리매김 되어 왔는데, 소곡주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누룩을 적게 사용한다는 점이다. 누룩을 적게 사용함으로써 술 빛깔이 맑고 깨끗하며, 또한 아름다운 향기를 간직하게 된다. 둘째는 덧술을 할 때 고두밥에 온기를 남겨 밑술과 합하고 1차 발효시킨 뒤, 저온에서 오랜 기간 2차 발효 숙성시킨다는 점이다. 끝으로 술 빚는 시기에 대하여 ‘음력 정월 첫 해일에 밑술을 담기 시작’한다는 것으로 소곡주를 빚는 시기가 삼해주와 같이 겨울철이라는 점에서 장기발효주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소곡주와 같이 백설기로 밑술을, 고두밥으로 덧술을 해 넣는 술의 맛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향에 알맞고, 누구나 선호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곡주는 달고 부드러운 맛에서 떡으로 빚는 고급 방향주(芳香酒)를 빚는 요령과 비슷하고, 맑고 깨끗한 향과 깊은 맛을 얻기 위해 겨울철(저온발효)에 빚는 삼해주와 같이 장기저온발효 방법을 혼용함으로써, 명주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 몇 안되는 전통주라는 사실에서 소곡주의 중요성과 우리나라 전통주의 위상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소곡주 빚는 과정

1) 술을 빚어 발효시킬 술독은 연기를 피워 살균소독을 하고 안쪽을 깨끗하게 씻어내야 한다.

2) 밑술에 사용할 범벅은 쌀가루가 최대한 골고루 익도록 끓는 물을 나눠 붓고 주걱으로 고루 갠다.

 

3) 고두밥은 무르게, 고르게 익혀야 한다.

4) 고두밥을 고루 펼쳐서 차디차게 식힌 후 사용한다.

 

5) 고두밥에 밑술을 섞는 과정.

6) 밑술과 고두밥을 골고루 치대어 덧술을 빚는다.

 

7) 밑술과 고두밥이 잘 섞이도록 치대주는 작업은 전통주 제조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8) 잘 치대서 빚은 덧술은 술독에 담아 안친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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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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