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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고는 전라도 전주가 명산지라고도 하고, 황해도 봉산이 그 본거지로 유명하였다고도 한다.

 

 

조선 3대 명주, 이강고

좋은 술이란 무엇보다 ‘자꾸 마시고 싶다’거나 ‘자신도 모르게 입에 가져가게 되는’ 술이 아닐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눈으로 보았을 때 ‘아름답다’거나 ‘환상적이다’는 생각을 주어야 한다. 특히 술 빛깔이 화려한 황금색이라면 더욱 매료될 것이다. 둘째는 진한 향기로 후각을 자극하여 뇌로 하여금 입안에 침을 돌게 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술 향기는 특히 과일향기나 꽃향기를 우선으로 하는데, 이 두 가지 향기가 동시에 느껴지면 더욱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셋째는 시각과 후각을 통한 기대감에 부응하여, 술이 입술에 닿았을 때의 감각으로, 농밀한 질감과 함께 달고 부드러운 ‘꿀맛’을 연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입에 머금었을 때 달고 시고 맵고 쓰고 떫은 다섯 가지 맛에, 시원한 맛 또는 상쾌한 맛을 다 느낄 수 있어 ‘마시고 싶다’거나 ‘맛있다’는 감동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이와 더불어 마실 때나 마시고 났을 때 ‘즐겁다’거나 ‘기분이 좋다’는 느낌이 가능한 오래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 명주의 조건이다. 소위 좋은 술만이 줄 수 있는 ‘향취’요 ‘흥취’이며, 또한 ‘아취’이다. 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춘 명주를 대하면 누구든 기꺼이 비싼 대가를 지불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조선 3대 명주’ 가운데 하나가 ‘이강고’라는 술이다.

 

 

유래에 대한 설과 옛 문헌 속 이강고

이강고는 전라도 전주가 명산지라고도 하고, 황해도 봉산이 그 본거지로 유명하였다고도 하는데, 울금의 재배지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과 울금 재배지와는 무관하게 이강고의 제조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동시에 존재한다. 전라도 전주 유래설과 관련하여 제조법의 한 예를 보면, “전주는 조선왕조의 본향으로, 당시 궁중의 전매품이었던 울금의 재배지였고, 인근에 봉동의 생강과 이서의 배가 유명하여 이들을 재료로 하는 이강고의 명산지가 되었다.” 한다. 황해도 유래설로는 “황해도 봉산의 배가 유명하였으며, 전주와 함께 울금의 재배지였다.”는 사실과 함께, “이들 특산품이 공히 진상품이었다.”는 점에서 황해도 명산지 설이 등장하게 된 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정확한 기록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 중엽의 문헌인 [증보산림경제(1766년 간)]의 이강고 주방문을 보면, “배를 껍질 벗기고 기와돌 위에 갈아 즙을 내어 고운 헝겊으로 밭쳐 찌꺼기를 버리고, 생강도 즙을 내어 밭쳐 찌꺼기를 버린다. 이 두 가지와 흰 벌꿀을 섞어 소주병에 넣은 후 중탕한다.”고 하였고, 1827년의 [임원십육지]에는 “아리(鵝梨, 거위의 깃털처럼 희고 향과 맛이 진하며, 껍질이 얇고 즙이 풍부한 배)의 껍질을 벗기고 돌 위에서 갈아 즙을 고운 베주머니에 걸러서 찌꺼기는 버리고, 생강도 즙을 내어 밭친다. 배즙, 좋은 꿀 적당량, 생강즙 약간을 잘 섞어 소주병에 넣은 후 중탕하는 방법은 죽력과 같다.”고 하여 울금의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임원십육지]의 기록보다 100년 후인 1925년에 간행된 것으로 알려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수록된 ‘리강고(梨薑膏)’ 주방문을 살펴보면, “배(梨鵝)를 껍질 벗기고 갈아 즙을 내어 전대(錢帶)에 짜 찌끼는 버리고, 생강도 집을 내고 꿀에 타서 소주병에 들어붓고, 그 병을 끓는 물에 넣고 중탕하였다가 꺼내어 쓰느니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최근의 조사자료라고 할 수 있는 고려대학교 [한국민속대관(1982년간)]에는 “약주의 하나이며, 배 껍질을 벗겨 기와돌 위에 갈아 즙을 내고 찌꺼기는 버린다. 여기에 생강즙과 흰 벌꿀을 잘 섞어 소줏병에 넣은 후 중탕한다.”고 하여, 역시 생산지와 관련한 제조법에서처럼 울금이 사용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말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에 의해 1935년 간행된 [조선주조사]의 이강주에는 “담황색의 감미료 주정음료의 일종으로, 상류사회에서 칭찬받고 있다.”고 전제하고, 그 제법은 “외피를 제거한 배 5개와 생강 50급을 진유제어판(眞鍮製御板)으로 갈아 뭉개어 이것을 울금 및 계피의 조분 각 18.7g을 소주와 함께 끓여서 침출한 용액 1~2홉을 포대에 넣어서 소주 1말에 750g의 설탕을 가한 액중에 투입하여 2~3시간 방치하면 울금에서 오는 황색과 계피, 배, 생강에서 울어 나오는 특이한 향기의 술 약 9되 5홉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울금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전주지방에 5대째 누대로 전승되어오고 있는 가양주이자, 이 지방의 대표적인 특산주로 알려진 ‘이강주(전라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 6호)’가 있는데, 전주 이강주 기능보유자인 조정형(73세)씨에 따르면, “멥쌀을 깨끗이 씻어 하룻밤 불렸다가 건져서 고두밥을 짓고 차게 식힌 후, 누룩과 물을 섞어 술밑을 빚어 발효시켜 밑술을 얻는다. 이 밑술에 보리쌀을 깨끗이 씻어 하루 동안 불린 뒤, 건져서 물기가 빠지면 고두밥을 찌고 차게 식힌 다음, 누룩과 물을 섞고 고루 버무려 다시 4~5일간 발효시킨다. 이렇게 빚은 보리술을 체에 걸러 가마솥에 안치고 가열한 뒤, 소줏고리를 얹어 중간불로 가열하여 증류식소주를 얻는데, 이 소주는 이취가 심하여 재차 증류하여 이취를 없앤 뒤 증류수를 첨가하여 알코올도수 30%의 소주를 만든다. 이 소주 1말에 대하여 배 5개 생강 20g을 강판에 갈아 걸러낸 즙과 미세하게 간 계피가루와 울금, 벌꿀을 고루 섞어 숙성시키면, 알코올함량 25%의 이강주를 얻는다.”고 하였다.

 

이강고의 주재료(증류식소주)와 부재료(배즙, 울금가루,계피가루) 모습.

강판에 갈아낸 배즙을 여과해 소주에 넣는 모습.

 

 

정리하면, 조선 전기까지 울금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울금이 전주지역의 전매품이자 특산품으로 자리잡으면서 이 울금을 술에 넣게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증류식 소주에다 배와 생강, 벌꿀, 울금 외에 ‘계피’가 추가되는 경향도 그러하거니와, 도수 높은 술의 목넘김을 부드럽게 하고 알코올 도수를 다소 낮추는 목적으로 제조법을 자연스럽게 변형하는 것이 가양주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때 더욱 그렇다.

 

어떻든 이강고는 배와 생강, 울금, 계피, 벌꿀 등의 약재를 넣고 우려내거나 중탕한 술이라는 사실에서, 술을 여러 차례 증류하여 약재를 넣은 형태인 감홍로주와 차별화되는 전통주라고 할 수 있다.

 

 

전주 이강주로 맛보는 청량감

이강고는 알코올도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벌꿀이 사용되어 목넘김이 부드럽고 좋아 자꾸 마시고 싶어지며, 마시고 나면 입안이 화해지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받게 된다. 알코올도수 30% 이상의 술에서는 어지간해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런 맛이다. 더욱이 “과음을 하고 난 후에도 숙취가 없으니 두고두고 취흥을 얘기하게 된다.”는 것이 이강고를 마셔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이고 보면, 육당 최남선 선생이 이강고를 ‘조선 3대명주’로 소개한 내력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

 

전해오는 바, 이러한 이강고는 조선 후기 “고종(高宗) 때 한미통상회담의 대표들이 마셨다.”는 기록과 함께 “예로부터 주향과 맛이 뛰어나 신선들과 잘 어울린다.”는 평을 얻어 상류층을 대표하는 전통주로 자리매김되어 왔다. 특히 시원한 단맛의 배와 매운맛의 생강이 어울려 자아내는 청량감이 일품인데, 생강은 술맛을 좋게 하면서도 위에 자극을 주지 않게 해주는 건위작용과 함께 고유의 향과 매운 맛은 향취를 돋궈준다고 하겠다. 또한 피로회복은 물론 중화작용으로 신체의 기능조절에 도움을 주는 울금과 수족냉증치료는 물론 관절염 치료와 위궤양억제효과 및 소화촉진 등의 효능이 알려진 계피는 벌꿀과 조화를 이뤄 심장병 예방효과로 이어진다고 한다.

 

풍부한 계피향기로 말미암아 이강고의 향취는 더욱 배가되는데, 조선 3대 명주 가운데 이강고가 유일하게 현대화 과정을 거쳐 ‘전주이강주’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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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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