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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51) 충남 아산 ‘짚가리술’

 

경향신문 / 2006-03-07 15:15

 

 


충남 아산시 선장면에 가면 촌스러운 이름의 술이 있다. 명칭은 ‘시골스럽고’ 투박하지만 맛 하나는 일품인 바로 ‘짚가리(짚동가리)술’이다. 다른 전통주들이 그 나름의 맛과 고풍스러움을 자랑하고 있지만 짚가리술이야말로 우리민족의 애환과 이를 극복한 고난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국내 유일의 명주라 할 수 있다. 맑은 물과 좋은 약재들로 빚어지고 있는 짚가리술은 아산지역 특산술로서 뿐만 아니라 깔끔하고 부드러운 술맛으로 애주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일제 밀주단속 속에서도 명맥
‘짚가리술’이 탄생하게 된 것은 일제가 본격적으로 술을 통제하면서부터다. 1909년 일제에 의해 주세법이 도입되고 1916년 강화된 주세령이 도입되면서 우리 민족은 일제의 밀주단속에 극심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이 때문에 각 가정에서 제조된 술은 단속반원들의 손길을 피해 음지로 숨게 됐다. 어떤 이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중에 술독을 묻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청마루 밑이나 헛간에 숨기기도 했다. 때론 짚단이 쌓인 짚가리에 묻기도 했는데 이것이 바로 짚가리술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지푸라기의 묶음인 짚뭇 그리고 짚뭇의 더미인 짚가리를 술의 은신처로 이용한 것이다. 술을 빚어 술항아리를 땅에 묻거나 땅위에 놓고, 그 위에 짚가리를 쌓는 식이었다. 단속이 심할 때는 단속반원이 와서 쇠꼬챙이로 짚단 속을 쑤셔보아도 찾을 수 없게 깊숙이 넣기도 했다. 이렇게 짚가리를 이용해 술을 숨기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이 술을 ‘짚가리술’이라 부르게 됐다.

보온·숙성 효과 술맛 ‘탁월’
짚가리는 술을 은닉하기 좋은 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그 맛을 내는데도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짚가리 속은 보온효과가 뛰어나 그 속에 있는 술의 안정적인 발효를 가능하게 했다. 땅에다 묻고 짚을 수북이 덮을 때는 훨씬 술 맛이 좋았다. 추수가 끝나고 빚은 술을 늦봄에야 꺼내 먹기 때문에 술이 저절로 6개월 넘게 장기 숙성될 수 있었다. 우리네 민속주중에는 한산소곡주 등 백일동안 숙성시키는 백일주가 있지만 땅속 짚가리술은 그 백일주보다 최소 2배 이상 더 오래 숙성되기 때문에 독특한 맛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짚가리술의 특징은 코끝에서 뿐만 아니라 입안에서도 향이 오랫동안 머문다는 점. 입에 대고 한 모금 마시면 달착지근하고 쌉사래한 느낌이 진한 뒷맛을 남긴다. 짚가리술이 아산지역에서 탄생하게 된 데에는 주변환경 여건도 작용했다. 인접한 당진군 등에서도 짚가리술이 만들어졌지만 이는 대부분 아산지역에서 전파돼 제조되기 시작한 것. 인근 지역중 특히 아산지역 선장면이 농토가 넓어 짚가리가 많았고 그래서 주민들이 숙성과정에 이를 쉽게 이용하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짚가리술은 짚동가리술로도 불리는데 짚동은 짚단이나 짚뭇과 같은 뜻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짚가리술을 짚동가리술이라 부르기도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회갑연때 사용
아산지역 명주로 그칠 뻔한 짚가리술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회갑잔치에 쓰이게 되면서부터였다고 알려져 있다. TV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70년대 당시, 지방순시차 아산지역을 방문한 박전대통령이 한 할머니에게 짚가리술을 얻어 마시고 “참 맛있다”고 하자 할머니가 “누구신지는 모르지만 우리 박대통령과 똑같이 생겼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고 한다. 술맛에 반한 박전대통령이 그때부터 자주 짚가리술을 찾자 고위관리들 사이에서는 짚가리술이 ‘대통령주’로 불리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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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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