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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맥주는 유럽에서 제일가는 것이다…… 싸움에서 담판을 지을 때면 꼭 두세 사발의 맥주를 들이켜야 했다. 영국에서 맥주 없이 성사되는 거래란 없기 때문이다.”
                                                                                         - 제어빈 로시포트(Jarevin de Rochefort), 1672

 

맥주는 영국의 음료수였다. 식수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영국에서 오랜 시간 식수를 대체하는 음료로, 노동과 행군의 피로를 씻어주는 활력의 근원으로 사랑받던 것이 맥주였다. 맥주가 처음 등장한 16세기 이후부터, 각종 제조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19세기 이전까지 맥주 주조 산업은 영국 산업의 근간을 차지하는 주요 생산업 중 하나였다. 이 기간 동안 맥주는 생산과 판매, 소비 전역에 걸쳐 영국의 경제와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주요한 상징이자 핵심 물품으로 그 기능을 담당했다. 특히 18세기에 이르러서 거주양식과 생활양식이 도시 중심, 상업 중심으로 급격하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맥주는 누구나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품목이 되어 18세기 영국 문화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커피, 초콜릿, 담배, 브랜디처럼 상류계급이 즐겨 소비하던 수입 사치품이나 진과 같은 저렴한 대체재와는 또 다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정 계급과 지역, 문화권에서 소비되던 사치품과 달리, 맥주는 그런 것에 구속받지 않고 폭넓게 소비되었으며, 이러한 까닭에 맥주는 광범위한 소비대중을 이어주고 이들의 결속을 다지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생산에 활력을 불어넣는 맥주의 힘

 

 

18세기 커피하우스(coffehouse)가 ‘공론의 장’이라는 공적 영역을 형성한 것과 유사하게, 맥주를 판매하던 에일하우스(Alehouse), 혹은 펍(pub: 퍼블릭하우스(Public house)의 줄임말)이라 불리던 술집은 소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집단적 쾌락을 공유하는 ‘여흥(entertainment)의 공간’을 형성했다. 커피하우스에 모여든 사람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을 즐기면서 자신들의 사회적ㆍ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확인했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에일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면서, 즉 소비의 쾌락을 공유하면서 공동체적 정체성을 만들고, 또 확인했던 것이다.비슷한 기능을 하던 태번(Tavern: 숙소와 식당, 술집이 함께 있는 여흥 공간)과 인(Inn: 고급 숙소와 술집이 결합된 형태)이 점차 고급화되고 진 숍(Gin shop, Dram shop)이 기층민을 빠르게 흡수해가는 와중에도 맥주를 주로 판매하던 에일하우스와 펍은 그 수와 영향력을 꾸준히 확대해나갔다.

 

그런데, 맥주는 앞서 언급된 소비재들과는 다른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치재가 영국의 교역 확대에 힘입어 국내 유입이 증가된 수입품이었던 데 반해, 맥주는 원료와 생산 시설 모두 영국의 내수 경제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18세기 들어 농업은 급속도로 발전했으며, 맥주 주조 업체는 대규모 생산 시설을 갖추기 시작했다. 국가 경제에서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도 자연스레 커져갔다. 맥주는 단순히 영국의 오래된 전통 음료일 뿐 아니라, 성장하는 영국의 미래를 보장하는 기간 품목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다음 광고는 이러한 당대의 인식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작자 미상, 〈위트브레드 주조장의 맥주 광고(Whitbread’s Porter)〉, 8×12㎝, 18세기

18세기 들어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포터 맥주(porter: 에일이라 불렸던 기존의 맥주보다 더 진하고 도수가 높아서 18세기에 크게 유행한 맥주의 종류) ‘위트브레드(Whitbread)’의 광고다. 이 광고 도안은 남성으로 의인화된 맥아(왼쪽)와 여성으로 의인화된 호프(가운데)의 결합으로 포터 맥주(오른쪽)가 생겨난다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세 인물 뒤에 보이는 배경의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광고는 맥주의 탄생을 건강한 가정의 축복받은 생산으로 의인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 생산의 배경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왼쪽의 농장과 오른쪽의 주조 공장은 맥주가 상징하는 행복감과 번영, 축제의 정서가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상품의 소비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을 만들어내는 경제 기반의 확장과 연결된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맥주는 사적이고 소모적인 쾌락을 주는 단순한 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번영의 포석이 되는 상품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이 한 장의 광고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번영의 이미지가 가득한 맥주 거리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맥주 거리(Beer Street)〉, 38×32㎝, 1751, 영국 박물관 소장

 

 

1751년 처음 발표된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판화 〈맥주 거리(Beer Street)〉 역시, 앞서 제시한 광고 도안과 마찬가지로 맥주를 국가 경제적 번영과 연관 지어서 그려내고 있다. 1751년 초판본과 1759년 재판본은 둘 다 당시 큰 문제가 되고 있던 진의 폐해를 강조하기 위해 모두 〈진 거리(Gin Lane)〉와 함께 연작으로 출간되었다. (참조: 문희경, <네이버캐스트 - 영국 빈민을 사로잡은 진 광풍>) 활력을 상징하는 맥주와, 각종 사회적 폐해를 낳는 진을 극명히 대비해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축제의 장인 맥주 거리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건강과 번영이다. 호가스는 국왕의 생일(왕의 건강을 기원하고 경축하는 국가적 행사)에 벌어진 한바탕 축제의 순간을 묘사하면서 이를 〈맥주 거리〉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고 있다.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맥주 거리(Beer Street)〉, 38×32㎝, 1759, 영국 박물관 소장

 

 

1759년 작 〈맥주 거리〉를 보면, 그림의 정중앙에는 맥주 통이 매달려 있고(〈진 거리〉에서 동일한 장소에 매달려 있는 것은 관이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한바탕 축제의 기분에 빠져들어 있다. 화가는 붓을 들고, 생선장수는 생선 꾸러미를 이고, 마부는 열쇠를 쥐고, 푸줏간 주인은 돼지 넓적다리를 들고 휴식을 취하면서 맥주를 즐기고 있다. 그림의 중앙 하단에 있는 남녀의 다정한 모습(〈진 거리〉에서는 이 위치에 병색이 완연한 매춘부가 아이가 무릎에서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술에 취해 있다)이나 다른 인물들의 육중한 신체 묘사는 다양한 종류의 육체적 건강을 맥주와 연결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건강은 단순히 개개인의 신체적 건강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것이기도 하다. 축제에 모여든 군중은 단순히 쾌락을 향유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자신의 직업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경제적 생산 주체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번영하는 거리에서 단 한 군데 폐업 상태인 곳이 전당포라는 점 역시 이를 반증한다. 경제가 건강하지 못할 때, 즉 생산이 더 이상 담보되지 못할 때 번성하는 곳이 전당포인데, 전당포가 문을 닫았다는 것은 경제가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맥주 거리>의 부분(왼쪽)과 <진 거리>의 부분(오른쪽).<맥주 거리>에서 유일하게 폐업한 곳이 전당포(pawnbroker)인 반면, 〈진 거리〉에서는 진을 사기 위해 목수는 공구를, 여인은 가사 도구를 전당잡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전당포가 성업중이다.

 

 

〈맥주 거리〉의 부분(왼쪽)과 〈진 거리〉의 부분(오른쪽). 〈맥주 거리〉 한가운데에는 혈색 좋은 남녀의 다정한 모습이 묘사돼 있다. 여자가 들고 있는 열쇠에 대한 해석은 분분한데, 마부가 자신의 마차를 과시하기 위해 여자에게 건네준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성적인 유혹, 암시 정도로 해석한다. 반면 〈진 거리〉에서는, 성병에 걸린 듯한 여인이 아이가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진에 취해 있다.

 

 

호가스의 판화에서 맥주를 통해 이뤄지는 건강과 번영은 단순히 생산을 담당한 노동 계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맥주 자체가 영국의 재료와 기술로 생산되는 상품인 만큼, 이는 당시 영국의 국가 정체성과 긴밀한 연관을 지닌다. 일례로, 1751년판 〈맥주 거리〉를 보면, 검은 옷을 입은 대장장이가 프랑스인을 집어 들어 패대기치려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 이 장면은 맥주에 내포된 국가중심적, 혹은 민족주의적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장장이는 단순히 하나의 직업이라기보다, 국가의 위용을 과시하는 군수물자와 각종 생산의 수단이 되는 도구들을 만든다는 점에서 영국의 힘을 상징하며, 이러한 상징성을 부여받은 대장장이가 세련된 차림을 한 프랑스인을 거리 한가운데에서 힘으로 제압하는 설정은 맥주 축제가 찬양하는 번영과 건강이 다분히 영국이라는 국가 전체의 번영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실제로 맥주는 프랑스에서 수입되는 와인의 주요 경쟁자였으며, 끊이지 않던 프랑스와의 무역 마찰과 정치적 충돌 속에서 맥주의 국가적 위상과 문화 정체성은 한층 강화되었다. 호가스의 판화 하단에 인용된 타운리 목사(Rev. J. Townley)의 시는 이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맥주! 우리 섬의 축복받은 특산물,                         Beer! Happy produce of our isle, 

늠름한 힘을 줄 수도 있고,                                   Can sinewy strength impart,

또 노고에 지쳤을 때,                                          And, wearied with fatigue and toil,

사나이 마음을 북돋아줄 수도 있네.                       Can cheer each manly heart.

 

노동과 예술은 당신 덕에                                     Labour and Art upheld by Thee

성공적으로 발전하고,                                         Successfully advance,

우리는 당신의 감미로운 즙을 기쁘게 들이켜고,       We quaff Thy balmy Juice with Glee

맹탕은 프랑스로 떠나네.                                     And Water leave to France

 

건장의 재사, 당신의 기분 좋은 맛은                      Genius of Health, thy grateful Taste

신의 음료와 견줄 만하고,                                    Rivals the Cup of Jove,

넓은 영국인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네                     And warms each English generous Breast

자유와 사랑으로!                                               With Liberty and Love!  

 

이 축시가 묘사하는 맥주의 맛은 개인적, 국가적 ‘건강’을 이루는 신성한 맛이며 자유와 사랑이라는 이념과 정서로 공동체를 아우르는 맛이다. 건강, 활기, 축제와 같이 맥주가 수반하는 긍정적인 개념들은 맥주 산업이 국가에 가져다주는 경제적 번영과 무관하지 않으며 맥주의 맛은 이러한 국가 경제의 번영에 대한 직관적 묘사라 할 수 있다.

 

거래는 펍(pub)에서

 

 

맥주는 그 자체로 영국의 국가 경제 번영을 상징하는 문화적 소비재였을 뿐 아니라, 실제로 급속하게 성장하는 국가 경제의 한 축으로 기능했다. 맥주가 영국의 국가 경제에 끼친 영향을 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 크게 유행했던 또 다른 주류인 진과 비교해볼 수 있다. 맥주와 진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긴장관계를 형성했다. 주로 국가의 통제 범위 밖에서 유통, 소비되었던 ‘위험한 술’ 진과는 달리 맥주는 다양한 규제하에 생산되고 유통된 ‘관리 가능한 쾌락’의 대표적 상품이었다. 음성적으로 뻗어나간 진의 유통 경로와는 달리, 맥주를 판매하는 대부분의 장소는 합법적인 인허가를 받은 곳으로, 판매량에 대한 세금을 꾸준히 지불했으며 맥주 제조업체들도 점차 대형화 되어가면서 경영이나 운영 기술에 있어 그 방식이 더욱 투명해졌다. 맥주 제조는 단순한 가내수공업 형태의 방식을 벗어나 합법적 기업의 형태로 진화했다. 실제 1747년 발간된 잡지 <런던 상인(The London Tradesmen)>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포터 맥주 주조장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자본 규모가 은행을 제외한 모든 사업 중 가장 크다고 설명했을 정도다.

 

이렇게 양성화된 맥주산업은 오히려 불법적인 진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를 제어하는 역할까지 담당했다. 18세기 내내 폭증했던 진의 수요는 정부의 골칫거리였다. 진의 생산과 유통을 양성화하여 이를 제어하고자 수차례에 걸쳐 다양한 세법과 인허가법을 입법했으나, 결과적으로 진 유통의 지하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영국 의회가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합법적인 맥주 유통을 활성화하는 법안이었다. 1830년 마침내 공표된 비어하우스 법(Beerhouse Act)는 이러한 노력을 집대성한 법안이다. 이 법안은 가정이나 펍에서 맥주를 팔기 위해 내야 하는 인허가세를 2파운드로 크게 하향 조정했고, 이전에 요구되었던 요식 행위들이 모두 철폐되었다. 맥주의 유통을 확산시켜 음성적인 진의 유통을 위축시키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18세기 내내 음성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어 각종 사회, 경제적 문제를 일으키던 진은 그 영향력이 크게 감소하였다.

 

맥주는 다양한 경제 행위에 개입하여, 거래의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했다. 흔히 18세기 커피하우스의 역할을 논할 때 이곳에서 이루어졌던 상거래와 정치적 토론이 함께 다루어지곤 하는데, 각종 보험 업무를 제외한 상거래 행위 대부분은 태번이나 인, 에일하우스와 같이 맥주를 주로 파는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주식거래소나 영국은행 근방에 있는 태번은 거래자들로 항상 성황을 이뤘고, 각종 이익 단체나 클럽 들은 단골 에일하우스나 펍을 지정해서 그곳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사업을 논하고 각종 계약을 체결했다. 맥주는 이들에게 일정 정도의 흥분을 허락하면서, 그 흥분의 경험을 공유하는 동료들과의 상호 교류를 통해 더 큰 이익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담당했다. 맥주는 흥정을 부추기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매개였던 셈이다.

 

이처럼 맥주는 단순히 전통적 의미에서 영국 문화를 상징하는 소비재일 뿐 아니라, 18세기 들어 나타난 성장의 징후들―도시화, 상업화, 산업화―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중요한 상품이었다. 호가스의 〈맥주 거리〉가 찬양하는 맥주의 맛, 번영과 만족, 행복의 맛은 18세기 전반에 걸쳐 나타난 시장경제에 대한 기대와 낙관을 축약해서 드러내고 있다.

 


‘18세기의 맛’은 한국18세기학회의 기획으로서, 문학동네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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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영 /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BK21 박사후과정 연구원
 
듀크대학교에서 18세기 영국소설로 2011년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귀국하여 현재 이화여대 영어영문학 BK21 프로젝트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에서 초기영국소설을 강의중이다. 박사논문의 제목은 [Novel Addiction: Consuming Popular Novels in Eighteenth-century Britain]이며 문화연구와 장르론, 18세기 근대성 이론 등이 주요 관심사이다.
 
발행 201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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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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