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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34) 동의보감이 효능 보장 ‘무술주’

 

경향신문 / 2005-10-25 15:54

 

 

시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이어지고 다시 며느리의 며느리로 이어지는 집안만의 술이 있다. ‘가내주(家內酒)’다. 대표적인 것은 막걸리와 과실주다. 손쉽게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맛에서 큰 차이는 나지 않더라도 술 담그는 이의 정성과 솜씨에 따라 집집마다 술 맛은 제각각이다.

3대째 내려온 집안 술. 노인에게 좋은 보양주
가내주로 개고기 술을 빚는 집이 있다. 초등학교 교사인 이종록씨(61·부산 북구 화명동)의 집안은 3대째 이 술을 빚고 있다. 술 이름은 무술주(戊戌酒). 8월 복날이 제격인 술이다. 개고기에 찹쌀과 누룩을 섞어 빚은 술로 더위를 ‘한 방’에 날리는 보양술이다. 어원을 따져보면 무(戊)는 음양오행의 토(土)에 해당하고, 찹쌀도 토(土)에 속한다. 술(戌)은 12간지의 개를 의미한다. 개고기로 만들다보니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방이 많은 술은 쉬 시큼해지고 맛도 떨어진다. 그래서 지방과 단백질을 최대한 빼낸 술이 이씨가 빚는 무술주다. 개고기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술 맛은 깔끔하다. 이씨의 집안에서 무술주를 빚은 것은 이씨의 조부 때부터. 유학자인 조부가 젊은 시절 도산서원에서 배운 술이다. 도산서원에서는 오래 전부터 여름철이면 무술주를 빚었다고 한다. 이씨는 “증조부가 기력이 좋지 않았는데 조부께서 ‘노인에게 무술주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산서원에서 술을 가지고 와서 증조부에게 식전 식후에 한잔씩 드렸는데 93세까지 사셨다”고 말했다. 조부는 도산서원에서 무술주를 조금씩 얻어 마시다가 내친김에 제조법을 배워 집 안에 술항아리를 묻어 두고 끼니마다 반주로 마셨다고 한다. 조부 역시 87세까지 장수했다.

조선 중기 때부터 만든 술
무술주의 역사는 조선 중기까지 올라간다. 15세기 때의 명나라 의술서적 ‘활인심방(活人心方)’에 무술주 이야기가 나온다. ‘활인심방’은 퇴계 이황이 필사해 가까이 두고 본 책으로도 알려져 있다. ‘활인심방’은 무술주를 ‘원기를 보하고 양기를 돋우는 보신주’라고 적고 있다. 찹쌀 세 말을 찌고 복날에 개를 고아 묵처럼 만든 뒤 이를 섞어 만든다고 제조법까지 기록하고 있다. 이씨가 만드는 무술주 크게 다르지 않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무술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술이 되면 빈 속에 한 잔씩 먹는데 원기를 보한다’, ‘노인이 마시면 좋다’고 기록, ‘활인심방’과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임원십륙지’, ‘양주방’ 등도 무술주를 소개하고 있다. 퇴계 이황이 무술주를 마셨다는 기록은 없다. 이씨는 “퇴계의 후학들은 퇴계가 탐독한 ‘활인심방’을 수양서로 삼아 실천했기에 퇴계 또는 후학들이 무술주를 마셨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씨는 “무술주는 끼니마다 반주로 한 종지씩 마시는 것”이라며 “이는 무술주를 술로 생각하지 않고 몸을 보하는 음식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술주 제조과정

 요즘 보신탕에 사용하는 개고기는 도사견의 혼혈이 많다. 근수가 많이 나가고 새끼를 많이 낳기 때문이다. 이런 개들은 약이 되기 어렵기 때문에 무술주를 빚는데 사용하지 않는다. 무술주를 빚을 때는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누렁이를 쓴다. 이씨는 “시골의 똥개는 풀어놓고 키워서 스트레스를 안 받고 성격도 좋아 고기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씨는 개를 고를 때 견(犬)과 구(狗)를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견(犬)은 애완견이나 들개, 늑대 등이고 보신용 구(狗)는 백구와 흑구, 황구 등으로 이 중 황구를 제일로 꼽는다. 개고기 가운데에서도 다리만 사용하는데 솥에 넣고 24시간 달인다. 높은 온도로 끓인 다음 약한 불로 끓이기를 24시간 지속해야 하기 때문에 개고기를 달일 때는 밤샘 작업을 해야 한다. 가스불은 믿을 수 없어 마당에 화덕을 만들어 놓고 쑥대와 나무로 불을 지피는 것이 원칙이다. 자주 빚는 술은 아니지만 이씨는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개고기에 찹쌀을 한 컵가량 넣고 함께 달이면 어느덧 개고기의 살이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풀어진다. 개고기가 진흙 또는 묵처럼 될 때까지 끓인다. 무술주를 만드는데 또 필요한 것은 고두밥과 누룩. 찹쌀 고두밥이다. 찹쌀은 길쭉하지 않고 흰색인 것이, 서늘한 지방에서 난 것이 좋다고 이씨는 말한다. 좀 덜 깎은 9분도를 사용하고 있다. 누룩은 이씨의 고향인 경남 의령에서 빚은 것으로 사용하는데 넓적하고 얄팍한 것이 피자를 떠올리게 한다. 고두밥 3되와 누룩 2되의 비율로 잘 섞은 뒤 개고기 국물을 섞는다. 솥 위로 떠오른 기름기를 말끔하게 걷어낸 것이어야 된다. 개 곤 국물은 단백질과 지방 성분이 많아 국물을 부을 때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술을 망치기 십상이다. 이렇게 만든 재료는 여름에는 사흘 만에 끓어 오르고 닷새면 용수를 질러 술을 떠낼 수 있다. 겨울에는 보름가량 걸린다. 술항아리는 공기가 통하도록 삼베보자기를 덮는다. 항아리를 땅에 묻어 두면 술 맛이 더 좋다고 한다. 이씨는 “무술주는 원기를 보하고 양기를 돋우는 보신주”라며 “약을 달이는 심정으로 술을 빚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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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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