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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35) 화랑의 기품을 닮은 경주법주의 ‘화랑’

 

경향신문 / 2005-11-01 16:06

 

 

일반적으로는 선조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담가서 즐긴 술을 전통주로 꼽는다. 하지만 술 전문가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전통주의 개념을 정립한다.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재료가 우리 것인가와 제조과정이 전통적으로 면면히 이어져왔고 검증이 된 방법을 따르느냐의 여부다. 제조 역사는 일천하다 해도 전통 기법을 따라 대량 생산되는 ‘현대식’ 전통주도 있다는 것이다. 경주법주(주)가 10년전 찹쌀 100%를 소재로 선보인 ‘화랑’이 그것이다. 가장 전통적인 제조법을 따르지만 대량 생산되고 있고, 무엇보다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측면에서 현대식 전통주를 주도하는 술이다.

‘생발효’가 생명력
술을 발효시키는 과정에 사용되는 소재는 누룩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네 발효재를 사용했는가는 전통주의 중요한 잣대가 된다. 숙성 기간이 짧은 술 중에는 간혹 일본 또는 중국 발효재가 흔히 사용된다. 순수 국내 전통식 누룩은 자연 발효돼야 하는 것이어서 결코 짧은 기간내 발효 소재가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전통 누룩은 술의 깊이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화랑은 밀을 아주 부드러운 가루로 만든 다음 메주처럼 성형해 저온에서 그대로 발효시킨다. 재료를 구입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발효와 숙성기간을 모두 합하면 150일이 걸린다. 대량 생산되는 국내산 청주 가운데 화랑만큼 숙성기간이 긴 것도 드물다.

‘3대 금기사항’이 엄격한 술
술의 생명은 온도·햇볕·공기에 달려 있다. 곡류를 재료로 깊은 맛을 내는 술은 주로 저온에서 만들어진다. 화랑은 제조 전 과정이 15℃ 미만의 저온에서 이뤄진다. 색깔과 맛이 변하지 않는 조건이 바로 온도에 달려 있는 것이다. 집에서 담그는 가양주의 온도가 대략 25~30℃에 육박하는 점에 비해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햇볕은 저온술의 천적이다. ‘냉암소(冷暗所·차고 어두운 장소)’야말로 더 없이 중요한 제조 공간이다. 햇볕이 들면 저온술은 변하게 마련이다. 공기는 술의 산화를 촉진시킨다. 저온술은 공기와 접촉했을 때 쉽게 변질되거나 부패할 수 있다. 차고 어둡고 공기와의 접촉을 최대한 막는 제조법이 화랑에 동원되고 있다.

비싸지만 기품이 있는 술
화랑은 비싸다. 출시중인 종류는 375㎖, 700㎖, 900㎖ 등 세 종류와 375㎖짜리 세 병이 들어있는 선물세트가 있는데 가격이 5,000~22,000원이다. 고급술인 만큼 일식당이나 전문 한식집에서 화랑의 판매가는 가장 싼 375㎖ 기준으로 1만~1만5천원에 팔린다. 경주법주(주)측이 술을 많이 마시지 않으면서도 청주의 깊은 맛을 선호하는 중산층 이상을 주 소비층으로 겨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극적인 안주는 금물
화랑은 13%짜리의 청주다. 과거 청주와 약주는 술의 도수로 결정됐다. 흔히 14% 이상은 청주, 13% 미만은 약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 기준이 허물어지면서 ‘청주=약주’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그윽한 향과 깊은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낙지볶음이나 아귀찜 같은 자극성 안주는 피해야 한다. 가장 좋은 안주감은 생선회. 소금이나 간장을 약하게 사용해 찜으로 만든 해산물도 좋다. 깔끔하고 담백한 맛을 내는 안주감이라면 화랑도 찰떡궁합이다. 도자기 잔에 감도는 옅은 황금빛이 눈을 즐겁게, 옛 선비들의 풍류가 회상되는 그윽한 향이 코를 즐겁게, 혀 끝에 천천히 감겨오는 짜릿함이 입을 즐겁게 하는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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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호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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