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받아 달아오른 얼굴 오미자차로 다스리세요
중앙Sunday / 2017-07-09 02:18





[新동의보감] 한방차
동양 사람들은 자연을 받아들이고 그 소산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익숙하다. 주변에 널린 초근목피(草根木皮)를 맛보고 달여 먹으며 생활 속으로 그것들을 불러들였다. 아마 이것이 건강을 희구하고 질병을 치료하려는 초기 약(藥)의 형태일 것이다. 한방차(茶)의 역사는 본초학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한약재나 약초를 우리거나 달여서 음용하는 한방차는 일상 속에서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귀한 음료다. 잠시라도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들어가면 청량한 자연의 향기가 우리를 반긴다. 들판에 핀 이름 모를 꽃도 나름의 소박한 아름다움과 향기가 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녹음이 우거진 숲속의 방향(芳香)은 코끝을 상쾌하게 자극하며 온몸에 싱그러움을 전한다. 우리가 자연에서 만나는 풀뿌리, 나무껍질이 바로 한약재 아니었던가? 풀잎·열매·꽃·뿌리·나무껍질 등 한약재가 되는 소재를 차(茶)로 우려 마시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각 약재마다 물성을 알아내 향미가 잘 침출(浸出)되도록 가공하는 일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소재를 섞어 분량을 조절하고 적절한 맛과 향 등 변주곡을 연출하는 일, 그리고 각각의 효능을 파악하는 것까지 한방차를 만들고 배우는 과정은 단순히 다도(茶道)를 익히고 커피를 배우는 것과는 또 다른 멋과 맛이 있다. 이 모든 과정은 한의학의 비조인 신농(神農)씨가 백초의 맛을 보아 본초를 정리해 나가던 것과 매우 닮았다고 할 수 있다.
한방차는 단순한 기호 식품 차원을 넘어 가벼운 질병을 개선하는 효능도 있다. 예컨대 감모(感冒·감기)에 효과가 있는 차제(茶劑)로는 자소엽·박하·귤피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산뜻한 맛이 있어 차로 마시기에 부담이 없다. 향미도 괜찮을 뿐더러 가벼운 감기 기운이나 찌뿌둥한 신체 리듬을 개선하기에 적합하다.
특히 귤피는 일상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우리가 흔히 먹는 귤은 개량된 온주밀감인데, 제주도에서는 온주밀감보다는 제주도 토종 귤의 껍질을 약으로 쓴다. 이를 진귤피라고도 하는데, 제주도 사람에게는 가정 상비약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가벼운 감기나 체한 데 진귤피 한 움큼이면 모두 해결되기 때문이다. 진귤피의 껍질은 얇아 용출이 쉽고, 단맛보단 쓴맛이 약간 강하며 향이 뛰어나다. 차로 마시면 안개 낀 듯 응체된 기혈을 순환시켜 호흡기와 위장관의 불편함을 시원하게 날려 준다.
귤피는 특히 얼굴이 노르스름한 사람에게 좋다. 귤은 알맹이보다 껍질에 중요한 성분이 많이 들어있는데, 비위를 도와 사지(四肢) 말단의 혈액순환을 활성화시키고 몸을 가볍게 만든다. 행기(行氣) 작용을 하는 귤피는 운동부족으로 인한 위장장애가 있거나 평소 속이 더부룩할 때 마셔도 효과가 있다.
얼굴이 붉은 사람은 오미자차를 권한다. 오미자차는 스트레스를 자주 받아 생긴 화로 인해 달아오른 얼굴의 열기를 가라앉혀 준다. 선약(仙藥)이라고도 불리는 오미자차는 이 외에도 간기능 개선, 고지혈증 예방, 심혈관 기능 강화 등의 작용을 하는 대표적인 장수식품이다. 항균작용이 있어 붉게 올라오는 여드름에도 효과가 있다. 얼굴이 보랏빛인 사람(기미가 낀 듯이 혈색이 어두워 보이는 사람)은 자소엽을 마시면 좋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섞인 것 같은 보랏빛 안색은 몸에 어혈이 있는 경우인데, 자소엽은 어혈을 제거하고 피를 맑게 해준다. 발진이나 소양과 같은 피부 트러블이 있는 경우에도 혈액을 맑게 만들어 피부를 깨끗하게 정화하는 작용을 한다. 또 육류나 생선류를 먹고 난 후의 위장 장애에도 좋고, 장내 유해균의 증식을 억제하여 여름철의 식중독이나 장염 등을 예방한다. 우울할 때 마시면 기분도 가볍게 할 수 있다.
자소엽은 색깔의 변화가 카멜레온과 같다. 뜨거운 물 추출에선 바로 군청색이 튀어 나오지만, 찬물에 넣어 흔들면서 우려내면 우아한 보라색이 퍼진다. 흰 식탁보를 깔고 와인 잔에 냉수를 담고 자소엽을 우려낸다면 보라색의 환상적인 식탁을 연출할 수 있다. 이때 레몬 몇 방울을 첨가하면 다시 분홍에서 빨강으로 색을 갈아입는다. 자소엽의 풀내음이 거슬리는 사람은 약간의 로스팅으로 풀내음을 없앨 수도 있다.
콩나물·된장·무·파 넣은 국 먹으면 코 뚫려…
알레르기 비염환자는 생강차를 달여 마시거나 콩나물·된장·무·파뿌리·표고버섯 등으로 뜨겁게 국을 끓여 먹으면 막혔던 코가 시원하게 뚫린다.
한방 차의 일상적인 음용은 사회생활에 약점으로 작용하는 구취증에도 도움이 된다. 방향성 꿀풀과 식물인 곽향(배초향)·향유(노야기)·박하 등이 그 주인공이다. 코 고는 사람과는 살아도 입냄새 심한 사람과는 살기 힘들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아무리 사이좋은 부부라 해도 심한 구취는 참기 어렵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입냄새가 자신의 영업 실적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박하는 꿀풀과 여러해살이풀로, 잎을 손으로 비벼 코에 대면 시원한 향이 퍼진다. 박하의 신선한 잎에 포함된 멘톨(Menthol)이라는 정유성분 때문이다. 박하를 의미하는 민트(Mint)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님프 멘타(Mentha)에서 유래한다. 멘타는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의 사랑을 받았는데, 하데스의 처 페르세포네의 질투로 박하풀로 변했다고 한다.
방아는 추어탕 만들 때 들어가는 토종 박하…
곽향은 민간에서 방아(배초향)라고 부른다. 방아는 방하(芳荷)에서, 방하는 박하(薄荷)에서 나온 말이다. 경상도에서는 미꾸라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물고기로 추어탕을 만들 때 들어가는 독특한 향의 향신료가 바로 방아다. 방아는 작고 길쭉한 깻잎처럼 생겼는데, 잘게 썰어 탕에 넣는다. 방아도 꿀풀과 식물에 속하는데, 어원으로만 본다면 방아는 우리나라 토종 박하라 할 수 있다. 서울 근교의 산기슭에서 흔히 자라고 쉽게 채취할 수 있는 향유도 역시 방향성 꿀풀과 식물이다.
곽향·향유·박하 등의 전초(全草)를 여름철에 채취했다가 응달에서 건조한다. 잘게 잘라 지퍼백과 플라스틱 박스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하여 조금씩 꺼내 차로 우려 마시면 된다. 구취의 특효약으로 상쾌한 향과 더불어 입속이 시원하고 깔끔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방 차라고 할까, 약차라고 할까. 자연이 준 선물, 초근목피를 우려마시는 일은 예측하지 못한 생경하고 다양한 맛을 길들이고 조절하는 작업이다. 마치 자연 속을 뛰어다니는 거친 야생마를 길들이는 것과 같다. 자연의 초근목피들은 처음부터 쉽게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기호로 마셔온 차와 커피 그리고 단맛에 길들여진 입맛에 거칠게 다가오는 생경한 맛이 당장 맞을 리가 없다.
덖기 전의 찻잎도 풀냄새와 떫은맛이 진동하고, 로스팅하기 전 커피 원두 역시 아무 맛이 없다. 수많은 초근목피를 볶아 보고 덖어 보고 우러나오는 맛을 찾아내 정리하고 다듬어 나가다 보면 한방 차의 독특한 영역이 나타난다. 이것이 한방 차를 만드는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