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Drink'에 해당되는 글 155건

  1. 2015.07.14 [전통주 기행] (32) 덕유산 준령 ‘샤또 무주 머루와인’
  2. 2015.07.14 [전통주 기행] (31) 대구 불로막걸리
  3. 2015.07.14 [전통주 기행] (30) 충주 청명주
  4. 2015.07.14 [전통주 기행] (29) 김제 백화주
  5. 2015.07.14 [전통주 기행] (28) 감자로 빚은 평창 서주
  6. 2015.07.14 [전통주 기행] (27) 경남 함양 지리산 국화주
  7. 2015.07.14 [전통주 기행] (26) 조선 3대명주 전북 태인 죽력고
  8. 2015.07.14 [전통주 기행] (25) 충북 보은 구병마을 송로주
  9. 2015.07.14 [전통주 기행] (24) 해남 ‘녹향주’
  10. 2015.07.14 [전통주 기행] (23) 여산 송씨 가양주… 양주 송엽주
  11. 2015.07.14 [전통주 기행] (22) 전북 완주 ‘송화백일주’
  12. 2015.07.14 [전통주 기행] (21) 공주의 명주 ‘계룡백일주’
  13. 2015.07.14 [전통주 기행] (20) 담양 추성주
  14. 2015.07.14 [전통주 기행] (19) 안주가 필요없는 술, 청양 둔송 구기주
  15. 2015.07.14 [전통주 기행] (18) 해남 덕정마을 진양주
  16. 2015.07.14 [전통주 기행] (17) 황희정승 후손들이 500년 빚어온 문경 호산춘
  17. 2015.07.14 [전통주 기행] (16) 백제시대부터 내려온 충남 가야곡 왕주
  18. 2015.07.14 [전통주 기행] (15) 맑은 산성물로 빚은 남한산성 소주
  19. 2015.07.14 [전통주 기행] (14) 우리나라 민속주 1호 부산 산성막걸리
  20. 2015.07.14 [전통주 기행] (13) ‘불로장생’으로 빚은 금산 인삼주
  21. 2015.07.14 [전통주 기행] (12) 안동 송화주
  22. 2015.07.14 [전통주 기행] (11) 조선3대 명주 - 전주 이강주
  23. 2015.07.14 [전통주 기행] (10) 김천 과하주(過夏酒)
  24. 2015.07.14 [전통주 기행] (09) 고구려 술 ‘계명주’
  25. 2015.07.14 [전통주 기행] (08) ‘대한민국 대표소주’ 안동소주
  26. 2015.07.14 [전통주 기행] (07) 순천 사삼주
  27. 2015.07.14 [전통주 기행] (06) 3大소주 ‘제주 고소리술’
  28. 2015.07.14 [전통주 기행] (05) ‘경주 교동법주’
  29. 2015.07.14 [전통주 기행] (04) ‘앉은뱅이 술’ 한산소곡주
  30. 2015.07.14 [전통주 기행] (03) 지리산 솔송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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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32) 덕유산 준령 ‘샤또 무주 머루와인’

 

경향신문 / 2005-10-12 16:48

 

 


그것은 운해(雲海)였다. 백두대간 덕유산 준령 삼봉산은 해발 1,254m. 무주 구천동에서도 한참을 꼬불꼬불 달려 올라 해발 900m에 이르렀다. 눈앞에 펼쳐진 1만5천평의 머루 밭. 이슬을 먹고 자란 8,000그루의 머루나무들은 태산 준령속 뽀얀 구름 속에서 싱싱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곳이 한국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샤또 무주 머루와인’이 생성되는 현장이다.

한국와인도 최고가 될 수 있다
와인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훌륭한 선물이라고 한다. 와인 중에서도 레드와인의 효능은 발효단계부터 빛을 낸다. 머루는 포도에 비해 껍질이 두껍고 과육이 적어 농축된 과즙을 얻어낸다. 그 효능은 껍질에 함유된 안토시아닌 색소가 알코올에 의해 추출돼 나타난다. 강력한 항산화물질로 변화돼 콜레스테롤 산화를 억제하고 혈소판 응집억제작용을 도와 맑은 혈액과 탄력있는 혈관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와인은 조선시대부터 빚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동의보감’과 ‘양주방’에는 포도주 제조방식이 자세히 설명돼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지금 포도나무와 당시 포도나무가 다르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포도를 잘 그렸던 황집중의 ‘묵포도도’에 나오는 포도는 잎이 다섯 갈래인 까마귀 머루다. 신사임당 역시 한개의 포도송이 안에 검붉은 포도송이와 익지 않은 포도를 같이 그렸다. 포도는 알맹이가 한꺼번에 익어가고 머루는 드문드문 익는 것으로 봐서 머루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선시대 포도주의 원료는 머루였다.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머루를 포도주 원료로 쓰기가 워낙 고역이어서 현대 포도주 원료가 포도가 됐지만 머루주는 포도주의 원조격이다.

머루와인의 메카 전북
산악지대가 많은 전북지역에 머루와인공장이 많이 자리잡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원료가 와인 맛의 90% 이상을 좌지우지하는 머루주 특성 때문이다. 큰 폭의 일교차와 채광량, 고산지대 등 가장 이상적인 기후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 전북이다. 그 중에서도 무주는 덕유산이 휘감고 있는 데다 반딧불이 축제가 열리는 청정지대다. 이곳에는 머루와인 공장이 4개나 된다. 심지어 무주 군청이 지난해 41억원을 투입해 산성와인이라는 머루주 공장도 설립했다. 지자체에서 특산품 가공처리공장을 만들기 위해 이런 예산을 쏟아부은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만큼 무주 머루의 경쟁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러개의 와인 중에 샤또 머루와인을 마셔본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단골고객이 된다. “정말 맛보기 어려운 와인”이라는 게 품평가들이 내놓은 탄성이다. 그 이유는 머루원액 그대로의 와인이 빚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백두대간 준령에서 직접 재배된 머루는 25일간의 발효과정을 거쳐 1년간 탱크에서 숙성된다. 숙성이 끝나면 원액 그대로 병에 담긴다. 이곳에서 희석식 와인은 제조되지 않는다. 고산에서 크는 머루지만 철저히 자연친화적인 방법에 의해 재배되는 것도 특징. 초생재배법을 도입해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녹비를 연중공급한다. 해발 900m의 자연상태 저온숙성과 최신 양조설비도 맛을 내는 비결이다. 우리나라에서 원료재배부터 수확, 양조 숙성과정을 거쳐 병주입까지 이뤄지는 도메인 와인은 샤또 무주머루가 처음이다. 와인생산연도를 라벨에 표기해 주는 빈티지를 당당하게 붙인 것도 샤또 와인이 유일하다. 샤또 와인의 시발점은 이렇게 축약된다. ‘한국 전통와인이 세계 와인을 주눅들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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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31) 대구 불로막걸리

 

경향신문 / 2005-10-05 15:57

 

 

대구 팔공산자락의 천연수로 빚은 불로막걸리는 신선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특히 불로막걸리는 풍부한 영양소가 함유된 건강주로 인식되면서 애주가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에까지 수출하면서 그 명성을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종래의 흔한 술, 농주라는 이미지에서 차츰 벗어나고 있다.

자체배양 최상의 효모만 고집
불로막걸리는 술을 생성하는 필수요소인 효모에서부터 차별화를 꾀한다. ‘술맛은 효모에서 나온다’고 할 정도로 효모 선택은 중요하다. 대부분의 막걸리 업체들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건성 분말효모를 구입, 사용하기 때문에 맛이 엇비슷하다. 그러나 불로막걸리는 자체 실험실에서 배양한 최상의 효모만 고집한다. 효모균이 살아있기 때문에 특유의 감칠맛을 자랑한다. 최상의 효모와 함께 양질의 밀가루, 누룩 등이 첨가되면서 맛은 더해진다. 특히 물 좋기로 유명한 팔공산자락 지하 170m에서 뿜어내는 천연수도 한몫을 한다. 술을 제조하는 기간은 1주일가량 걸린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찧는 증자 과정을 통해-누룩을 제조하는 입국(粒麴)-곡자와 발효제를 함께 넣는 삽입-술을 거르는 제성-주입 단계를 거친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공정 같지만 단계마다 까다로운 절차와 적절한 온도,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가위넣기(일명 도봉질)는 제조공정의 핵으로 술맛을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밀가루와 물로 뒤섞인 통에 산소를 공급하고 원활한 효모작용을 돕기 위해 막대기로 휘젓는 작업이다. 이 과정은 상당한 경험과 노하우를 요한다. 너무 빨리, 자주 휘저어서도 안되고 완급을 조절하면서 적절하게 저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 즐겨찾아 유명
불로(不老)는 공장이 소재한 대구 동구 불로동에서 땄지만 이름에 걸맞게 무병장수의 술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정계나 관계, 재계의 유명 인사들도 불로막걸리를 즐겨 찾는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겨 찾은 술로 유명하다. 박전대통령은 대구에 내려오면 비서를 통해 으레 불로막걸리를 말통으로 사갔다. 당시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로 불로막걸리는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막걸리는 서서히 외면당했다. 고소득층은 양주, 젊은층은 맥주, 서민층은 소주를 찾으면서 막걸리 입지가 좁아졌다. 그렇지만 불로막걸리는 엄선한 재료에다 차별화된 공정 등을 도입하면서 IMF 이후 되레 성장기반을 굳혔다. 지금은 웰빙 붐에 편승, 건강주로 인식되면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에 따라 서민층은 물론 고소득 계층까지 수요층을 넓히고 있다.

일본에도 수출 외화벌이 한몫
불로막걸리는 2003년에 15,912,000병(병당 750㎖) 팔리던 것이 2004년에는 19,352,000병으로 늘어났다. 불로막걸리를 생산·판매하는 대구탁주측은 올해도 6% 이상 성장세를 이어 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술은 1994년부터 일본에 수출하면서 진가를 인정받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월 6,000병가량 수출하면서 외화획득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알코올 도수가 6%인 불로막걸리는 전통곡주인 만큼 어떤 안주와도 잘 어울린다. 김치전 등은 물론 육류, 생선 등과도 궁합이 맞는다. 이 때문에 불로막걸리가 우리 입맛과 우리 음식에 맞는 국민주(酒)로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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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30) 충주 청명주

 

경향신문 / 2005-09-28 16:15

 

 

“나는 평생 청명주(淸明酒)를 가장 좋아한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익(李瀷·1681~1763)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청명주는 1993년 6월4일자로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전통주.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 243에서 기능보유자 김영기옹(85)에 의해 전승돼 왔다. 지금은 노환으로 병상에 누워 있지만 전수보조자인 그의 아들 영섭씨(31)에 의해 ‘중원 청명주’란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전승계보는 김옹의 조모 권정순에서 숙모 박영아에게, 그리고 김옹에 이어 영섭씨로 이어진다. 4대에 걸쳐 전승되고 있는 셈이다.

청명주는 1년 24절기의 하나인 청명일에 사용하기 위해 담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오고 있다. 최초로 빚은 시기, 인물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확실치 않다. 옛 중원군(지금은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에서 누대로 살아온 김해김씨 집안에서 조선조 이전 선조 대부터 비방으로 만들어 마시기도 하고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접대하던 가용주(家用酒)로 전승된 토속주다.

조선조 궁중의 진상주였으며 소위 옛 사대부들이 귀한 손님의 접대용으로 애용하던 명주(銘酒)로 평가받았다. 이는 이 집안에서 전해내려오는 각종 질병에 대한 민간요법을 기록한 향전록(鄕傳錄)에 제조법이 기록돼 있어 뒷받침해 주고 있다.

청명주에 얽힌 일화는 이렇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이 다가오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선비들이 충주에 모여들었다고 한다. 청명주를 마시면 과거에 붙는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온 것이다. 아마도 청명에 술이 나오니 이를 마시면 맑고 밝은 기운을 받아 시험을 잘 치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또 충주에서 청명주를 마시면 문경새재 마루턱에 가서 비로소 취기가 깼다고 한다. 과거에 급제한 선비는 기쁜 마음에서, 낙방한 선비는 울적한 마음에 또 한번 청명주를 마시고 문경새재를 넘었던 듯싶다.


청명주는 원래 남한강의 지류인 달래강과 창골에서 흘러나오는 산수(山水), 그리고 한강 본류의 3지류가 합수되는 탄금대와 청금내 중간의 수살매기(수구막이)에서 채수해 사용돼 왔다. 그러나 지금은 조정지댐으로 인해 침전물이 생기는 등 오염돼 샘을 파서 사용하고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규경(李圭景·1788~?)은 ‘청명주변증설’에서 청명주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술은 우리나라 금환(金還·속명 금탄〈金灘〉)사람만이 만들 수 있으니 금탄의 물이 아니면 이룰 수 없으니 다른 지방에서는 모방해도 이와 같지 않다.”

술의 맛은 물에 달렸으므로 금탄의 물을 사용할 수 없는 다른 지역에서는 ‘모방하려해도 불가능하다’고 한 것이다.

이규경보다 앞서 살았던 이익은 술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오제삼주(五齊三酒·술의 종류)를 말하면서 “나는 평생 청명주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고, 청명주의 양조방법을 양계처사(良溪處士)에게서 배우고 나서 “혹시나 잊어버릴까 두려워 기록해 둔다”고 했다. 당시에 청명주가 얼마나 소문이 났으며 애주가들에 의해 사랑받았는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청명주는 순찹쌀과 재래종 통밀로 제조한 누룩만을 사용, 인삼, 갈근, 더덕, 탱자 등을 가미해 저온에서 약 100일동안 발효, 숙성시킨다. 알코올 도수는 17%로 약주로선 약간 독하다. 색깔은 진한 감색이며 감칠 맛이 뛰어나다.

청명주는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아 장기간 보존이 어렵다. 따라서 여름철을 지내기 위해 예부터 증류주를 만든 점을 고려하면 증류주도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청명주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분명한 기록에 의해 고대로부터 널리 알려진 명주임이 확실하다. 1983~1985년 노완섭(당시 서울보건전문대)·소명환(당시 부천공업전문대) 두 교수가 보고한 종합평정에서도 기능보유자와 기능전수자를 주요 무형문화재로 국가가 지정해 그 기능과 전통성을 유지·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국가지정이 아닌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정확한 근거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명주는 중원문화권의 중심지에서 조선조 이전부터 시작돼 오랫동안 독특한 제조비법이 전수고 있고, 술을 빚는 방법이 고전적인 방법을 고수, 가장 우리 것다운 양조방식으로 계승발전시켜 나갈 가치가 있음은 각종 조사보고서가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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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29) 김제 백화주

 

경향신문 / 2005-09-21 16:33

 

 

꽃을 센다. 산하 지천에 널려 있는 꽃이다. 모란 등꽃 절굿대꽃 때죽나무꽃 고들빼기 쥐똥나무꽃 삐삐 싸랑부리꽃 구절초 감국 코스모스…. 오십을 헤아리기도 전에 힘이 팽긴다. 그런데도 100가지의 꽃을 고집한다. 초봄 산수유와 매화로부터 시작된 꽃걷이는 늦가을 국화류인 감국에 이르기까지 연중 셈하듯 치러진다. 오직 백화주라는 술 한동이를 담가내기 위한 고행이다.


상투 튼 훈장 사서삼경 읊는 아이들
백화주를 만나러 가는 날 ‘혼치레’를 했다. 분명 전북 김제시에서 10여분 거리라고 알던 터여서 찾는 길을 만만하게 생각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두어차례 헤맨 끝에 “저 길로 가다보면 큼지막한 기와집이 보일껴”라는 촌로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윽고 나타난 학성강당. 조선 성리학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는 개인서당이다. 지척에 문명이 법석을 떨고 있지만 이 곳은 여지껏 조선시대 선비들이 학문을 닦던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주심포 팔작지붕의 한옥이 미려하게 펼쳐진다. 훈장은 상투 틀고 치포관을 쓴 채 모시한복을 입고 아이들을 가르친다. 하얀옷을 챙겨입은 아이들의 입에서는 옥구슬 같은 논어 구절이 재잘재잘 기와담장을 넘어 황금벌판으로 퍼져나갔다. 방학 때면 100여명의 아이들이 찾고 요즘은 20명 정도 상주하며 사서를 배운다. 학비는 없다. 훈장은 화석 김수연옹(80). 기호학파의 맥을 잇고 있는 그는 조선 성리학의 뿌리를 고독하게 지켜내고 있다. 유학을 전파하는 일은 화석옹이 하고 서당살림은 막내아들 김종회씨(42)가 맡는다. 40대 도인 종회씨는 백화주를 담글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술
종회씨는 백화주를 술 중의 술이요, 그중의 극치라고 평했다. 술은 술이로되 들이는 공력과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때문인가. 백화주는 이 지구상에 오직 학성강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술이다. 판매되지도 않을 뿐더러 자주 빚지도 않는다. 순전히 제사용과 접빈용으로 쓰일 뿐이다. 학성강당을 찾은 날 역시 백화주는 한모금도 구경할 수 없었다. 1년에 쌀 한가마 분량만 술을 빚기 때문이다. 그 양은 60병 정도에 그친다. 학성강당에서 250년 전부터 가양주로 전수된 술은 크게 3가지다. 100가지 꽃을 넣는 백화주와 100가지 약초를 재료로 한 백초주, 백화주와 백초주를 섞은 백초화주다. 그 중에 백화주는 백미라 할 수 있다. 백화주를 완성하려면 최소한 80일이 필요하다. 술을 빚을 때 쓰는 물은 백가지 약초를 바짝 말린 뒤 이를 가마솥에 넣고 청정수를 부어 10시간 달인 것이다. 한방에서 극독약으로 취급되는 초오, 부자, 상륙, 대황 같은 약재들도 한움큼씩 들어간다. 백화주가 극독약을 피하지 않는 것은 상생상극의 조화를 이루도록 음양오행과 사유(보양 보음 보혈 보기)를 조화시키면 약효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하 3대명주 중 으뜸
백화주 탄생은 비닐봉지에 일일이 담긴 백가지 마른 꽃잎들이 백초와 함께 세번 발효를 마친 술에 한줌씩 들어가면서부터다. 백초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만 백화를 구하는 것은 더 힘들다. 약초는 살 수 있지만 꽃은 계절따라 활짝 핀 적기에 품을 팔아 따야 한다. 꽃은 건조시키는데 말리면 아주 작아지므로 많이 채취해야 한다. 백가지 꽃은 열거하기도 어렵다. 자생지를 찾아 산과 들을 쏘다녀야 하고 한두송이 꺾어서는 안되며 가장 보기 좋을 때 따야하니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다. 1년내내 약초와 꽃을 모으고 공정까지 합쳐 4차 겹술을 하는 술은 백화주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종회씨는 “백화주는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송화대력주와 불로주와 함께 천하 3대 명주 중 첫번째로 꼽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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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28) 감자로 빚은 평창 서주

 

경향신문 / 2005-09-14 16:30

 

 

‘러시아에 보드카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평창 서주(薯酒)가 있다!’


감자를 주 원료로 만든 세계 명주는 의외로 많다. 보드카뿐 아니라 스웨덴의 스납스, 핀란드의 코스텐코르바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감자술이 체계적으로 생산되는 곳은 평창지역밖에 없다.


‘감자바우’로 불릴 정도로 감자가 많이 나는 동네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180여년 전인 조선 순조 때 국내에 처음 들어온 감자는 짧은 시간내 서민들의 식탁을 점령해 나갔다. 생육기간이 짧고 수확량이 많을 뿐 아니라 영양분 또한 풍부했기 때문이다.

척박한 산중에서 밭을 일궈 생계를 이어가던 화전민에게 감자는 없어서는 안 될 구황작물이었다. 특히 강원 산간지역의 경우 타 지역처럼 다른 곡물이 많이 생산되지 않는 터라 술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감자를 원료로 빚어왔다.

문헌상 기록이 없어 서주(감자술)의 전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감자가 국내에 들어온 초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양주 형태로 전해져오던 서주는 지금의 막걸리와 같은 탁주였다.

그나마 일제 때 밀주단속으로 명맥이 끊겨 한때 평창지역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이후 주민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가던 서주는 민속주 제조에 뛰어든 오대서주양조 홍성일씨(65·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의 노력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지역 노인을 찾아다니며 제조법을 복원해낸 홍씨는 6년여간의 연구 끝에 1990년 비로소 서주를 맑은 청주 형태의 약주로 재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서주는 감자와 쌀을 7:3의 비율로 혼합해 빚는다. 누룩은 이 둘을 합한 것의 20%가량을 넣게 된다.

찐감자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다음 멥쌀로 고두밥을 지어 담근 밑술을 부어 약 보름간 숙성시키면 감자술이 만들어진다.


다시 여과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쌀로 만든 청주보다 약간 짙은 녹황색의 서주가 완성된다.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온도를 얼마나 잘 조절하느냐에 따라 술맛이 달라진다.

감자술은 약간 쌉쓰름하면서도 뒷맛이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은은하게 취하고 마신 후 뒤끝도 깨끗해 와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알코올 도수는 13%로 40%를 넘나드는 다른 민속주에 비해 낮은 편이다. 서주 제조자인 홍씨는 “서주는 비타민C뿐 아니라 칼륨·인산 등이 풍부한 ‘땅속의 사과’로 만든 와인으로 보면 된다”고 말한다.

술맛을 배가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청정한 물이다. 평창군 진부면은 예로부터 삼신산(금강산, 지리산, 한라산)과 더불어 국내 제일의 명산으로 꼽히는 오대산 자락에 인접해 있다.

조선 성종 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한강의 발원지로 제일 좋은 물로 손꼽은, 오대산 우통수에서 흘러내린 물(오대천)이 산간계곡을 따라 굽이치는 곳이다.

또 이 지역엔 북한의 삼방약수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제일 간다는 방아다리약수가 있어 최고의 물맛을 자랑한다. 결국 고랭지에서 재배돼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고 있는 감자와 맑은 물이 만나 오묘한 술맛을 내는 것이다.

평창지역 주민들은 “감자술은 알칼리성 발효주여서 산성체질화 되어 있는 현대인에게 가장 적합한 술”이라고 귀띔한다.

메밀부침이나 감자전, 산채 등을 안주 삼아 즐기기에 적당한 술이다. 375㎖ 한병의 공장도가격은 1,600원 선이나 음식점 등에서는 4,000~5,000원에 팔고 있다. 033-335-7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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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27) 경남 함양 지리산 국화주

 

경향신문 / 2005-09-07 16:30

 

 

‘술에 취하고 향기에 취한다’


야생 들국화와 한약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경남 함양의 지리산 국화주. 전통 명주답게 술잔을 들자마자 국화향기와 함께 달짝지근한 맛이 혀끝을 감아온다. 지리산을 끼고 있는 함양은 예로부터 산 좋고 물 맑은 청정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가을이면 지리산 자락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야생국화는 이곳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 자란 이 국화가 전통주 원료로도 한몫을 하고 있다.

지리산 국화주는 늦가을 서리를 듬뿍 맞은 야생 들국화만을 고집한다. 들국화는 다년초로서 그 종류는 많지만 그 중 식용과 약용으로 쓰는 감국(甘菊)을 으뜸으로 친다. 감국은 줄기가 붉은색을 띠며 맛이 달고 향기가 높기 때문이다.

국화주는 매년 11월 꽃송이가 손톱만한 산국이나 감국을 채취, 생지황과 구기자, 찹쌀 등을 섞어 빚는다. 국화주는 자양강장제, 두통치료제 등으로 옛날에는 가정에서 상비약처럼 즐겨 담던 술이다.

경남 함양은 전통적인 약주를 빚는 방법에 가양주(家釀酒)로 국화주를 제조해 왔다. 그러나 일제시대 우리 문화 말살정책으로 명맥이 거의 끊길 뻔하다가 최근에 복원되어 양산체계를 갖추게 됐다.

국화주는 지리산 자락의 맑고 깨끗한 물, 서리맞은 야생국화, 구기자, 생지황, 찹쌀, 누룩 등이 주원료로 4단계의 양조공정을 거쳐 제조된다.

우선 찹쌀을 깨끗이 씻어 시루에 찐 다음 식힌다. ▲누룩을 섞어 1차발효를 시켜 밑술을 만들고 3~5일쯤 지나 다시 찹쌀과 누룩을 섞는다. ▲국화와 구기자, 생지황 등 한약재를 달인 물을 넣어 2차 발효시킨다. ▲7~8일 뒤에 술을 여과해 세차례에 걸쳐 살균처리한다. 순수 우리농산물을 원료로 쓰고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술을 빚는 데 걸리는 기간은 날씨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10~15일 정도. 장인의 손을 거쳐 나온 국화주는 담황색을 띠고 그윽한 향이 코 끝에 스며든다. 알코올농도는 16%로 부드러우면서 달짝지근한 맛을 내 여성들이 즐겨 찾는다.

국화는 예로부터 상서로운 영초로 인식되어 왔다. 이로 인해 국화주는 세시음식으로 인기가 높았고 중국에서도 일찍이 명주로 꼽아왔다. 중국에서는 음력 9월9일 중양절(重陽節)에 국화주를 즐겨 마셨다. 이날 술을 마시면 재앙을 쫓고 무병장수한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국화주는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이 신하들에게 즐겨 하사한 술로 알려져 있으며 TV 드라마 ‘용의 눈물’ 등에서 수차례 방영되기도 했다. 옛 문헌에서도 1,500년간 전수되어 온 국화주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동의보감과 본초강목 등에는 국화가 청혈해독 약리작용이 있으며 고혈압 방지뿐만 아니라 근육과 뼈를 강화해주고 눈을 밝게 해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국화주를 연명주 또는 불로장생주라고 부르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소주, 맥주와 달리 안주도 기름진 육류보다는 담백한 안주가 어울린다. 광어, 우럭 등 횟감과 참치구이 등 생선구이와 궁합이 잘 맞는다. 명절선물로 인기를 끌면서 요즘은 추석을 앞두고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완성된 국화주는 고유상표가 새겨진 도자기와 병 등에 담겨져 다양한 형태와 규격으로 판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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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26) 조선 3대명주 전북 태인 죽력고

 

경향신문 / 2005-08-31 16:24

 

 

100년 만의 부활. 전북 정읍시 태인면에서 빛을 보게 된 죽력고는 그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술이다. 한 명의 장인에 의해 ‘몇 병씩’만 만들어지는 탓에 술 맛을 음미해 볼 수 있는 기회조차 흔치 않다. 다행히 3년 전부터 순전히 주문에 의해 제조되면서 역사속에 묻혀버릴 뻔한 죽력고가 대중 속으로 들어왔다. 시중 음식점 등에는 시판되지 않는다. 관심과 노력을 수반한 애주가들만이 조선 3대 명주의 묵직한 맛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마셨다는 술
죽력고는 조선시대에 출간된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와 서유구의 ‘임원십육지’ 등에 나온다. ‘조선상식 문답’에서 최남선은 평양 감홍로(甘紅露), 전주 이강고(梨薑膏)와 함께 죽력고(竹瀝膏)를 우리나라 3대 명주로 꼽았다. 특히 매천 황현이 쓴 ‘오하기문(梧下記聞)’에는 ‘전봉준이 전북 순창 쌍치에서 일본군에 잡혀 흠씬 두들겨 맞고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서울로 압송될 때 죽력고를 먹고 기운을 차렸다’는 기록이 있다. 죽력은 대나무 토막을 항아리에 넣고 3일간 불을 지폈을 때 흘러내리는 대나무 즙이다. 한방에서는 중풍·해열·천식 등의 치료에 쓰인다고 알려져 있다. 죽력고는 죽력에 솔잎·생강·창포 등을 넣고 소주를 내리는 방법으로 증류시켜 만든 것이다. 세 번을 내리기 때문에 주조에 3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알코올 도수는 22%와 32% 두 종류가 있다.

3년 전부터 맥 이어져
대표 명주 반열에 올라 있는 죽력고가 생소하기만 했던 것은 죽력이 식품이 아닌 약재로 식약청에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 죽력고의 맥이 이어지게 된 것은 3년 전이다. 전통술 담그기 무형문화재인 송명섭씨(49)의 피땀어린 노력의 결과였다. 송씨는 가업으로 전수돼 오던 죽력고를 살려내기 위해 서울 중앙도서관 등을 뻔질나게 오가며 각종 문헌을 죄다 복사해 번역했다. 결국 죽력을 이용해서도 전통주를 담글 수 있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받아냈다. 그 시간만 10여년이 걸렸다. 죽력고에 대한 기억은 송씨의 외증조부인 은재송씨(1864~1945)로부터 시작된다. 태인에서 한약방을 운영했던 은씨는 전봉준 장군보다 아홉살 아래였다. 은씨는 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술의 비방을 모아 직접 술을 빚어 치료 보조제로 사용했다. 개를 고아 만드는 무술주와 연엽주·호마주·복분자주 등은 당시부터 죽력고와 함께 약술로 활용됐던 셈이다. 죽력고 제조기법을 전수받은 것은 송씨의 어머니 은계정씨(1917~1988)였다. 갖은 약재를 가지고 송씨 가문에 시집 온 은씨는 태인양조장을 경영하던 남편과 함께 전통주에 대해 심혈을 기울일 수 있었다. 남편 송씨가 중풍으로 쓰러졌을 때 치료약으로 죽력고를 내려 마시게 해 완치시켰다. 가업으로 내려온 죽력고 제조기법에 관한 기록은 없다. 현재 태인양조장 주인이 된 송씨 역시 어머니 곁에서 술빚는 것을 도우며 몸으로 체득했다. 죽력고는 제조 방법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약 같은 술로서 효험은 두드러진다. 이 때문에 죽력고 제조가 허용된 2002년 12월 ‘아름다운 술을 찾습니다’라는 전통주 공모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궁합이 맞는 안주로는 삼합이 꼽힌다. 063-534-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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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25) 충북 보은 구병마을 송로주

 

경향신문 / 2005-08-24 16:18

 

 

속리산 천황봉의 정남쪽에 위치한 구병리는 산세가 수려하고 물과 공기가 깨끗해 장수마을로도 유명하다. 송로주에 취해 한때 농사일도 접고 송로주 전수에 젊음을 다 바친 임경순씨(50). 그의 직책은 ‘보은 송로’ 사장에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3호 송로주 전수자’다.


솔 향 진하게 밴 전통주
송로주는 말 그대로 소나무를 원료로 만든 술이다. 소나무는 원래 불로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렇다보니 양조에 있어서도 다른 식물보다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송로주는 알코올 도수 48%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술 가운데 가장 독하다. 소나무 관솔의 특유의 향이 혀를 감싸는 맛이 알싸하다. 이런 알싸한 맛은 목구멍을 타고 가슴까지 전해진다. 예부터 송로주를 마시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고 음식법에 이르길 관절, 신경통에 좋고 허약한 다리가 낫는다는 기록이 있다. 독주라 금방 취하지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언제 깼는지 모를 정도로 뒤끝이 상쾌하다. 임씨는 1999년 연간 30㎘ 규모의 제조시설을 갖추고 본격 생산에 나섰지만 여느 전통주와 마찬가지로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데 한계를 절감한다. 하지만 임씨는 “우리의 전통주는 저급한 술이 아니다. 적게 팔더라도 제대로 된 맛과 향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뒤늦게 빛 발한 송로주
송로주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신형철 할머니(98년 작고)에 의해 발굴된 민속주다. 신씨는 충남 서천군 출신이다. 송로주 빚는 방법은 신씨 외조모인 정금이씨가 지었다는 고조리서(古調理書)인 ‘음식법’에 기록되어 있다. 한글 필사본으로 제작연대는 1880년대라고 한다. 술 15가지, 병과 2가지, 음료 1가지, 반찬 15가지의 음식조리법이 소개돼 있다. 이 책은 “쌀 한말 하려면 솔옹이를 생률처럼 쳐 고이 다듬어 놓고 섬누룩 넉되 넣고 물 서말 부어 빚었다가 멀거커든 소주를 여러물 갈지말고 장작때어 고으면 맛이 좋고 백소주를 받아 먹어야지 절통도 즉시 낫느니라”고 송로주에 대해 적고 있다. 이처럼 묻혀 있던 송로주는 신씨가 1993년 송로주 빚을 곳으로 구병리를 찾으면서 맥을 잇게 된다. 임씨는 이때 신씨를 만나 제조법을 전수받는다. 그러나 신씨가 갑자기 타계하면서 하루아침에 스승도, 동업자도 잃어버린 그는 낙심에 빠진다. 하지만 임씨에겐 행운이 따랐다. 신씨가 타계하기 2개월전 기능전수자로 지정돼 전통을 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송로주는 고서 속의 술이 아닌 실물로 존재하게 됐다.

송로주 글자 하나에 2백만원?
송로주를 제조하려면 우선 누룩과 멥쌀가루를 1:1로 섞고 30℃에서 사흘동안 발효시켜 밑술을 만든다. 그런 다음 구병산에서 나오는 솔옹이를 얇게 썰고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복령(茯令)을 알밤만하게 깎아 엿기름과 함께 섞는다. 쌀 한가마에 솔옹이는 2㎏ 정도 들어간다. 2주 정도 발효된 술을 송절주라 하며 이것을 배주머니에 넣고 짜서 은근한 장작불로 내리면 송로주가 된다. 송로주란 이름은 1994년 두산백화에서 이미 상표등록해 놓는 바람에 탄생 자체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보은군의 지원과 협조, 두산백화측의 양보로 생각보다 쉽게 전통술의 이름을 되찾았다. 하지만 소송제기에 6백여만원이 들어가 송로주 글자 하나가 2백만원짜리가 된 셈이다. 술 값은 다소 비싼 편. 400㎖짜리가 2만3천원, 700㎖ 3만5천원, 400㎖+400㎖는 4만5천원, 400㎖+700㎖는 5만6천원이다. 043-542-0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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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24) 해남 ‘녹향주’

 

경향신문 / 2005-08-17 19:48

 

 

나락이 여물어 가는 푸른 들판과 그 가운데를 가르는 황톳길이 어울려 한폭의 그림같다. 녹향주가 탄생하는 전남 해남군 삼산면 녹산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 곳이 술도가구나’하는 예감이 드는 집이 있었다. 코 끝을 스쳐가는 술 내음을 따라 자동차도 ‘술익는 그 집’ 마당으로 그대로 드라이브인. 한평생 녹향주를 빚어온 조현화씨(72)가 차문을 열어주면서 “저 들판 곡식들도 우리 집 술냄새를 맡고 크니까 훨씬 더 잘 자란다”고 술자랑부터 한다.

남쪽에서 맛보는 ‘북한 전통주’
녹향주는 6·25때 북한에서 내려온 술이다. 함안조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황해도 장연군 신한면 군산리가 원산지. 그런 녹향주가 한 피란민 일가 덕분에 해남에서 54년째 애주가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조씨 집안은 1·4후퇴 때 젖먹이를 포함, 모두 100여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철수하는 미군 군함을 타고 목포로 내려왔다. 정부에서 진도 등에 난민촌을 만들어 집단수용하던 때였지만, ‘술 만들 수 있는 곳을 달라’고 하소연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조씨의 할아버지·아버지·삼촌들이 수백리를 걸어다니면서 고른 터가 바로 이 마을. 재료인 쌀이 ‘황토 농사’로 실하게 지어지고, 물맛도 근방에서 가장 좋은 곳임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녹향주라는 이름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민속주가 양성화하면서 붙었다. 마을 이름에서 ‘녹(鹿)’을, 자나깨나 그리운 고향에서 ‘향(鄕)’을 땄다. 그동안엔 문중 대대로 내려온 가양주지만 어엿한 이름없이 그저 ‘집안술’로 불렸다. 하지만 밀주 단속이 살벌하게 이뤄지던 시절에 녹향주는 ‘바깥술’로 위세를 얻어갔다.

탄압 속에 제맛 복원
남쪽에 내려와 3대째 술을 빚으면서 조씨는 예전의 술맛이 아니라는 게 늘 맘에 걸렸다. 혀끝을 휘감게 하는 알싸한 맛이 우러나긴 했지만 강도가 약했다. 물 다르고 볕 다른 곳이라 당연했다. 더군다나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단속은 원래의 술맛을 찾아가는 장인의 사기를 꺾어놓기 일쑤였다. 술독을 들고 들로 달리고, 뒤란에 지하실을 파놓고 숨기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만들어 놓은 술을 뺏기고 나면 하늘이 무너졌으니까.” 그래서 단속나온 세무서 직원·경찰과 맞짱뜨기로 마음먹었다. 조씨는 젊은 날 대부분을 그들과 드잡이하면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 경찰서 유치장을 제집 드나들 듯했다. 몰래 몰래 팔아 모아둔 돈은 세무서에 벌금으로 모두 내놔야 할 정도였다. ‘고향의 술맛’을 찾겠다는 조씨 가문의 집념에 슬쩍 눈을 감아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씨는 발효시간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으로 해남 녹향주의 태생적 한계를 보완, 고향맛을 재현했다. 물론 ‘비방’이어서 털어놓을 수 없다고 했다.

녹향주 ‘3년간 숙성’
녹향주는 45%의 독주다. 향을 얻기 위해 요즘은 당귀를 넣긴 하지만 그래도 옹달샘 물처럼 맑다. 우선 햅쌀로 지은 고두밥에 발효제로 누룩 대신 백곡을 넣어 섞은 뒤 오동나무 궤짝에 하룻밤을 재운다. 노랗게 변한 고두밥을 큰 술통에 넣고 3일간 발효시키면 밑술이 된다. 덧술은 고두밥을 한차례 더 쪄 당귀를 넣고 버무려 만든다. 밑술과 덧술을 섞어 3일간 더 발효시키면 곡주가 된다. 이것을 고리에 넣고 내리면 소주가 된다. 이때 도수는 80%. 그냥 마실 수 없어 숙성해야 하는데 무려 3년이란 긴 세월이 필요하다. 그래야 녹향주의 진짜 깊은 맛을 얻을 수 있다. 처음 입안에 털어넣을 때의 싸한 맛은 잠시, 목을 타고 넘어갈 때는 독주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부드럽다. 당귀의 달짝지근한 맛 이외에는 다른 잡스러운 맛이 끼지 않아 혀로 감지되는 맛은 그저 깨끗할 뿐이다. 숙취도 전혀 없다. 안주로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로 만든 요리나 마른 안주도 좋다. 400㎖짜리 두병을 세트로 묶어 3만2천원에 판다. 061-532-9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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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23) 여산 송씨 가양주… 양주 송엽주

 

경향신문 / 2005-08-10 18:03

 

 

예부터 솔잎은 장기간 생식하면 늙지 않고 몸이 가벼워지며 기가 통하고 흰머리가 검어진다고 해 신선식품으로 불렸다.

동의보감은 솔잎에 대해 고혈압, 말초혈액순환 장애로 인한 팔다리 저림, 불면증, 중풍, 신경쇠약 등에 효험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의학계에서도 솔잎의 주요 성분인 엽록소와 비타민A·C가 혈액을 정화하고 괴혈병을 예방한다고 보고 있다.

경기 양주시 은현면에 400년 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있는 ‘여산 송씨가’에서 전해져오는 양주 송엽주(松葉酒). 양주 송엽주는 바로 그같은 효능이 인정된 소나무의 새순을 이용해 술을 만든다.

시중에 판매되는 술이 아니라 명절이나 제사 때만 이 집안에서 소량으로 빚는 일종의 가양주(家釀酒)이지만 옛 문헌에는 자주 등장하는 민족 고유의 전통주다.

송엽주는 조선시대 ‘요록’, ‘양주방’, ‘역주방’, ‘오주연문장전산고’, ‘음식법’, ‘조선고유색 사전’ 등 여러 문헌에 술빚는 방법과 그 효능에 대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맑고 투명한 노란 빛깔의 송엽주는 음식처럼 적당량을 마시면 동맥경화와 고혈압, 뇌졸중 등 순환기계통의 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적고 있다. 입안에서 오랫동안 감도는 솔향과 새콤한 맛은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부담없이 마실 수 있다.

송엽주의 맥은 여산 송씨 종가댁의 둘째며느리인 이영순씨(52)가 지켜오고 있다. 이씨는 1989년 작고한 시아버지 송수근씨로부터 제조법을 전수했다.

송엽주의 주요 재료는 멥쌀과 찹쌀, 솔잎, 누룩, 종국 등이다. 쌀을 하루 정도 물에 불린 뒤 시루에 불린 쌀과 씻은 솔잎을 켜켜로 깔고 찐다.

김이 한번 오르면 20~30분간 뜸을 들이고, 찐밥을 25~30℃로 식혀 종국을 잘 버무린 뒤 12시간 후에 다시 한번 뒤섞어준다. 이때쯤이면 고두밥에서 열이 나는데 섭씨 35℃ 이하가 되도록 뒤적여준 다음 2일 정도 띄운다.

이어 잘 띄워진 고두밥과 누룩, 솔잎을 잘게 썰어 망자루에 넣고 항아리에서 쌀과 동량의 물을 부어 발효시킨다.

항아리에 담요를 잘 싸고 두껑을 베보자기로 덮어 1주일 정도 발효시킨 뒤 자루망을 꼭 짜서 건져내고 항아리를 싼 담요를 풀어 실외 서늘한 곳에서 7~8일 정도 숙성시키면 투명한 송엽주가 가득 차게 된다. 송엽주의 알코올 도수는 막걸리보다는 약간 높은 12% 정도다.

송엽주의 제맛을 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온도다. 온도가 잘못되면 맛과 향이 제대로 나지 않는 것은 물론 새콤달콤한 맛이 쉽게 변하기도 한다.

또 솔잎은 사시사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지만 새순이 돋아나는 4~5월쯤에 마련하는 것이 좋다. 송엽주는 입맛을 돋게 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어 여산 송씨 집안에서는 반주로도 애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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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22) 전북 완주 ‘송화백일주’

 

경향신문 / 2005-08-03 16:12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 1호 벽암스님. 그가 빚어내는 ‘천년신비의 사찰법주’. 송화백일주에 대한 설명은 이 한마디로 집약될 수 있다. 벽암스님은 전북 완주군 모악산 수왕사 주지스님이다. 스님이 술을 빚는다는 경외로움을 음미하기 위해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산병 없애려 마신 스님들 곡차
이 술은 애초 스님들이 마시던 곡차였다. 수왕사는 산중턱에 위치해 스님들을 고산병에 시달리게 했다.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했다. 모악산 해발 800m 수왕사에서 참선을 하던 수도승들은 지천에 널린 소나무 꽃을 이용해 차를 마시며 기압차이에 의한 고산병에 대처했다고 한다. 이는 불교사화집에 신라 진덕여왕이 부설거사 도반승인 영희, 정조와 함께 수도 정진하다 헤어지면서 그리운 회포를 달래기 위해 송화곡차를 마셨다는 기록에서 입증된다. 그때부터 수왕사에서 전승되기 시작한 송화곡차는 12대 전승기능보유자인 벽암스님에 이르러 전통사찰법주로 태어난다. 수왕사 인근에 송화양조를 설립한 벽암은 천년신비의 전통사찰법주를 재현해 냈다. 고산병을 막기 위해 즐겨 마셨던 사찰법주를 사지(寺誌)나 문헌을 찾아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되살려 낸 것이다.

솔향 담은 오곡주와 백일주
이곳에서 빚어지는 술은 두가지다. 우선 송죽오곡주는 이름이 말해주듯 솔잎과 댓잎, 산수유·구기자·오미자·국화 등 각종 한약재, 찹쌀·곡자·오곡 등이 원료다. 여기에 모악산 약수가 혼합된다. 모악산의 약수는 수왕사라는 암자의 이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모악산 7부 능선에 커다란 암벽을 등지고 자리한 수왕사(水王寺)는 말 그대로 물의 왕. 암벽의 아랫도리에서 사시사철 흘러나오는 물로 빚은 술이니 더할나위 없다. 밀봉한 뒤 20℃의 온돌방에서 1주일간 재웠다가 8일째되는 날, 땅에 묻어 발효 숙성시킨다. 일반 술과 달리 각종 재료가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향을 내는 이 술은 부드러우면서도 뒤끝이 깨끗하다. 송죽오곡주는 특히 1998년 민속주 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며 당당히 명주 반열에 올라 주가를 한껏 높이고 있다. 송홧가루와 솔잎·산수유·구기자·오미자·찹쌀·백미·곡자·꿀을 원료로 제조된 송화백일주는 100일동안 저온에서 장기 재숙성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소나무 순액을 침출하여 고산병을 예방할 수 있고 장기보관할수록 더욱 깊은 맛이 우러난다.

모악산 7부능선서 채취되는 송홧가루
송화백일주에 반드시 들어가는 송홧가루는 국내산 소나무에서만 추출된다. 완주군청으로부터 송화 채취허가를 받아 모악산 7부 능선에서 모아진다. 보관 중에 물이 섞이면 뿌옇게 변할 정도로 신중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 술이 부드러우면서 독특한 향을 내는 것은 엄선된 송홧가루에 그 비법이 있다. 진열만 해 놓아도 예술적 가치가 충분한 백일주는 10여 종류의 다양한 모델로 출시 중이나 친척끼리 가내수공업에 의존하고 있다. 좋은 술이라도 기업화되면 명주 전통이 끊어진다는 벽암스님의 철학 때문이다. 백일주에 어울리는 안줏감으로는 과일이나 횟감이 적격이다. 육지의 꽃과 바다의 횟감이 만나 절묘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식사때 한두잔씩 정기적으로 마시면 위암과 직장암 등 각종 암에 치료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063-221-7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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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21) 공주의 명주 ‘계룡백일주’

 

경향신문 / 2005-07-27 16:12

 

 


명산 ‘계룡산’이 있는 공주에 명주 ‘계룡백일주’가 있다. 백일주는 ‘백일 동안 익힌 술’이다. 우리의 전통 민속주 중에는 해가 저물 녘에 빚기 시작해 새벽 닭이 울 때쯤 완성하는 술이 있는가 하면, 3년에 걸쳐 완성되는 술도 있다. 백일주는 술을 빚는데 석달 열흘 걸리는 술이다.


400년을 이어온 궁중술의 전통
백일주의 원조는 ‘궁중술’이다. 1623년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일등공신 중 한 명인 이귀(李貴·연안 이씨)에게 선물을 하사했다. 그 선물은 왕실 대대로 전해온 궁중술의 양조비법이었다. 이귀는 이 술의 비법을 부인인 인동 장씨를 통해 이어가도록 했다. 이때부터 이 술은 연안 이씨 가문의 며느리를 통해 오늘까지 이어졌다. 때문에 술을 빚는 방법은 문헌 등에 나와있지 않다. 며느리에서 며느리를 통해 ‘가문의 술’로 전수됐기 때문이다. 지금 역시 연안 이씨 며느리인 지복남씨(80)에 의해 술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이 술이 바로 ‘계룡백일주’다. 계룡백일주는 빚기가 워낙 까다롭다 보니 늘 귀했다. 연안 이씨 가문은 술을 대량 생산하지 않았다. 조금씩 만들어 제사상에나 올렸다. 연안 이씨 종가가 있는 공주에서도 이 술의 맛을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귀했다. 그러나 그 맛은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다. 몇 잔 마셔본 사람들의 입에서 늘 ‘최고의 술’이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16% 약주는 ‘신선주’, 40% 소주는 ‘백일소주’
백일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16%짜리 ‘약주’다. 찹쌀·누룩·재래종 국화꽃· 오미자·홍화·진달래·솔잎 등을 재료로 저온에서 장기간 발효숙성시켜 만든 것이 바로 약주로서의 계룡백일주다. 향긋한 향취와 마실 때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뒤끝이 깨끗한 것도 이 술의 자랑중 하나다. 냉장보관해서 차게 마시면 더욱 맛이 좋다. 이 약주에는 그래서 ‘신선이 마시는 술’ 또는 ‘마시면 신선 같은 기분이 드는 술’을 뜻하는 ‘신선주’라는 별명이 붙었다. 다른 하나는 40%짜리 소주다. 약주를 증류시킨 뒤 벌꿀을 넣어 만든다. 이 소주를 옛날에는 ‘백일소주’라고 불렀다. 독한 편이지만 솔잎과 국화꽃 등의 은은한 향이 있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담백한 맛이 일품이고 많이 마셔도 숙취가 적은 것이 장점이다. 40%짜리 백일주는 오래 될수록 맛과 향이 더욱 좋아지는 매력이 있다. 요즘에는 도수를 조금 낮춘 30%짜리 소주도 나온다.

공주의 자연, 계룡산의 자연을 그대로 담아
계룡백일주는 주변의 자연을 그대로 머금고 있다. 계룡산 주변 등 공주 일원의 솔잎·진달래꽃·국화꽃 등이 술에 녹아있다. 이 술을 빚기 위해서는 봄이 되면 진달래꽃을 따다 말리고, 가을이 되면 국화꽃을 따다 말려야 한다. 1년 내내 쓸 수 있는 분량을 미리미리 준비해 둬야 하는 것이다. 솔잎이나 국화꽃 등은 백일주의 맛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재료다. 은은하고 담백한 맛은 모두 이런 재료를 통해 나온다. 다른 술에 비해 숙취가 적은 것도 이런 자연재료의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백일주에 쓰는 누룩은 찹쌀가루를 사용해 만든다. 통밀과 찹쌀을 똑같은 분량으로 섞어 거칠게 빻아낸 뒤 물과 섞어 반죽을 한다. 누룩 틀에 담아 띄우는 기간은 여름철 2개월, 겨울철 3개월. 2~3일에 한번씩 뒤집어 주어야 누룩이 제대로 뜬다. 계룡백일주는 밑술이 발효되는 데 30일, 본술을 빚은 날부터 술이 다 익을 때까지 또 70일 걸린다. 본술을 빚을 때 백일주의 맛과 향을 좌우하게 되는 국화꽃·진달래꽃·솔잎·오미자 등의 온갖 재료가 들어간다. 백일주의 최종 완성은 창호지를 이용한 걸러내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100일 동안의 세월이 녹아 있는 술은 언뜻 보면 맑고 깨끗한 것 같지만 조금 놔두면 앙금이나 찌꺼기가 가라앉는 경우가 많다. 이를 막기 위해 창호지를 받쳐 걸러준다.

백일주 마실땐 참죽나무 순과 곶감말이가 최고
연안 이씨 문중 사람은 물론 공주 사람이 백일주를 마실 때 먹는 특별한 안주가 몇가지 있다. 봄에 딴 참죽나무 순에 찹쌀 고추장과 참깨 양념을 버무려 말린 뒤 다시 찹쌀 풀을 입혀 말리면 최고의 백일주 안주가 된다. 매콤하면서도 바삭바삭한 맛이 백일주에 딱 맞는다는 것이 애주가들의 설명이다. 호두를 곶감에 싼 뒤 자른 ‘곶감말이’를 계룡백일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로 꼽는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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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20) 담양 추성주

 

경향신문 / 2005-07-20 16:15

 

 


산세 깊고 물 좋은 전남 담양 추월산 계곡에 ‘술익는 마을’ 하나가 있다. ‘남도의 젖줄’ 영산강의 시원(始原)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널따란 벼논, 산비탈 군데군데 밀밭이 보이는 용면 두장마을. 천년의 역사를 가진 추성주(秋成酒)를 빚는 양조장 ‘추성고을’(대표 양대수·50)이 자리한 곳이다.

1,000년의 역사 ‘추성주’
추성주는 통일신라 경덕왕 때부터 고려 성종 때까지 250여년간 추성군으로 불린 담양의 지명에서 따온 술 이름이다. 이 술의 역사는 추월산 자락의 천년고찰 연동사에서 시작됐다. 고려초 창건된 연동사는 지금도 건재한데 이곳 스님들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빚어 마시던 곡차가 사하촌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어찌나 맛이 좋던지 마시면 신선이 된다 해서 ‘제세팔선주(濟世八仙酒)’로 불리기도 했다. 1756년 담양부사 이석희가 이곳 풍물에 대해 쓴 ‘추성지’에는 ‘스님들이 절 주변에서 자라는 갈근·두충·오미자 등 갖가지 약초와 보리·쌀을 원료로 술을 빚어 곡차로 마시더라’라는 고려 문종 때 참지정사를 지낸 이영간(담양이씨 시조)의 증언을 담아놓고 있다. 또 이곳 출신으로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로 꼽히던 면앙정 송순이 과거급제 60주년을 기념하는 연회에서 참석한 손님에게 추성주를 대접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 등 조선 말까지 그 명성이 서울 장안에 남아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당연히 진상품이 됐고 고관대작에게 보내는 상납주로도 각광을 받았다.

4대째 대물림
모든 전통주가 그렇듯이 추성주도 일제시대에 명맥이 끊길 위기를 맞지만 담양의 남원 양씨 가문에서 비법을 고이 간직해온 덕분에 ‘전통 명주’의 반열에 올라 있다. 추성고을 대표 양씨는 20대 초반부터 공무원이던 아버지로부터 추성주 빚는 법을 배웠다. 농협에 다닌 양씨는 업무로 늘 바빴지만 증조부(1870~1957) 때부터 내려온 양조술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동갑내기 부인 전경희씨와 함께 부친이 들려주는 ‘가문의 비법’을 하나하나 익혀나갔다. 1988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대(代)를 이어야 하고 확실하게 대물림을 하라”는 유언까지 남기자 본격적으로 인근 대학과 연구기관을 찾아다니며 이론화 작업에 매달렸다. 90년부터 소량생산을 하면서 비방을 다듬은 끝에 2000년말 국내 22번째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받았다. 두 세기에 걸친 양씨 가문의 ‘술실력’이 드디어 햇빛을 보기에 이른 것이다.

‘양주보다 뒤끝 좋은 토속주’
추성주의 강점은 무엇보다 뒤끝이 좋다는 것이다. 깔끔한 맛과 향이 양주와 비슷하다. 발효·숙성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전통주 가운데 가장 많은 13가지 약초가 들어가는 약술이기도 하다. 알코올 도수는 25%. 한약재 성분 때문에 실제 체감도수는 30~40%로 느껴진다. 제조과정은 다른 술보다 세심한 손길이 더해진다. 순곡과 약초를 숙성시켜 1차로 약주(발효주)를 만든 후 2번 더 증류를 거친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재료도 모두 담양에서 난 것만을 쓴다. 우선 깨끗한 찹쌀과 멥쌀을 씻고 졸졸 흐르는 물에 12시간 담가뒀다가 물을 빼고 수증기로 고두밥을 짓는다. 차게 식힌 고두밥에다 엿기름 가루와 술빚는 용수를 넣고 55~65℃가 되도록 불을 넣어 당화액(糖化液)을 만들어 놓는다. 이것을 25℃로 식힌 다음 누룩과 두충·계수나무 껍질·우슬(쇠무릎)·연꽃열매·산약·강활·율무·멧두릅 뿌리 등을 넣고 보름 정도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치면 알코올 성분 15%의 약주가 된다. 다시 이를 소주고리에 넣고 데우면 알코올 40%짜리 증류주가 나온다. 이 증류주에 홍화·구기자·음양곽·갈근·오미자·상심자 등을 함께 달인 약물을 넣고 30일 숙성시킨 후 걸러내기를 한 후에 20℃에서 한달 더 숙성시킨 다음 대나무숯으로 여과시키면 25%짜리 미황색의 추성주가 탄생한다. 추성주는 순곡으로 빚고 2번이나 증류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발효주와는 달리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 차게 보관하면 맛이 더욱 좋아진다. 각종 한약재를 넣은 까닭에 혈액순환과 강장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열·진정·구충·소염·당뇨·신경통에도 좋고 정기적으로 마시면 노화를 막고 피부에도 좋다는 고문헌 기록도 남아 있다. 안주로는 생선회나 생고기가 제일이고 과일이나 죽순회도 좋다. 담양의 대표음식인 떡갈비에 곁들이면 술맛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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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19) 안주가 필요없는 술, 청양 둔송 구기주

 

경향신문 / 2005-07-13 16:18

 

 

예부터 땅의 신선(神仙)으로 불리는 구기자(枸杞子). 이 구기자의 오묘한 맛과 선인의 정성이 함께 빚어내는 전통술이 바로 구기주(枸杞酒)다. 구기자술이라 불러야 할 것 같은데 이를 구기주라 줄여 말하는 것은 실학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나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서 구기주로 표현한 데서 유래하고 있다. 애주가들은 구기주를 ‘불로장생주(不老長生酒)’라 칭한다. 특유의 향과 감칠맛, 그리고 뛰어난 강장효과 때문이다. 집안 제사와 손님 접대를 위해 종가 맏며느리들이 온갖 정성과 손맛을 곁들여 빚은 이 술은 지금 충남 청양지역 하동 정씨(鄭氏) 가문에서 6대째 이어지고 있다. 시어머니로부터 비법을 전수한 임영순씨(69)가 1996년 ‘명인(名人)’에 지정됐고 그가 만드는 ‘둔송 구기주’는 2000년 9월 충남 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됐다.

구기자와 하동 정씨
청양 구기주를 빚는 비법은 하동 정씨 종부의 손에 의해 대대로 전해져 오고 있다. 구기주 명인인 임영순씨도 청양지방 하동 정씨 종가의 종부. 임씨는 시집오면서부터 구기주 빚는 법을 배우기 시작해 47년째 구기주를 담고 있다. 임씨에게 구기주 담그는 비법을 전수한 사람은 시어머니인 경주 최씨. 최씨 또한 시어머니인 동래 정씨로부터 명주의 비법을 물려 받았다. 이렇듯 150년 넘게 종가 맏며느리에 의해 전해진 구기주 비법은 현재 임씨의 맏며느리인 최미옥씨(45)에 의해 계승·발전되고 있다. 구기주를 얼마나 아끼는지 하동 정씨 가문에는 “(구기주를) 지고는 못다녀도 넣고는 다녀야 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종부들에 의해 빚어진 구기주의 그 맛이 얼마나 좋았으면 이런 말이 생겨났을까 가히 짐작이 간다.

피로회복, 탁월한 강장효과
구기주는 양질의 쌀, 청양의 명물 구기자, 그리고 칠갑산 맑은 물을 주원료로 해 전래의 비법으로 빚은 순곡주다. 구기자는 주요 강정제로 쓰이며 중국에서는 2,000년 전부터 각종 약방서에 그 효과가 전해져 올 만큼 효능이 탁월하다. 옛말에 “집 떠나 천리(千里)에 구기는 먹지 말라. 이것은 정기를 보익(補益)하고 음도(陰道)를 강성하게 한다”고 했는데 이는 여행 중에 정기가 넘쳐서 혹시 실수할까봐 이를 경계한 뜻이 담겨 있다. 구기주는 특히 강정제와 간세포 생산촉진에 효과가 크다. 구기 열매에 베타인·비타민·아미노산 등의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피로회복·강장효과뿐만 아니라 해열·기침방지·원기회복·동맥경화·고혈압의 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 특히 말린 생약재로 빚은 술은 농도가 짙기 때문에 매일 저녁식사 전이나 취침 전에 작은 잔으로 2~3잔 정도 마시는 것이 좋다.

새콤 달착지근한 맛 일품
구기주는 구기자 특유의 독특한 향이 있는 데다 새콤하면서도 감칠 맛 나는 것이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는 16% 가량이며 뒤끝이 깨끗해 아무리 폭음을 해도 다음날 ‘술국’을 찾는 일이 거의 없다. 전통 명주 구기주를 빚기 위해서는 장인의 정성과 엄선된 청정재료가 사용된다. 우선 통밀을 깨끗이 씻어 방아에 빻은 뒤 적당한 양의 물에 섞어 누룩을 만들고 약 45∼50일 정도 띄운다. 다음에는 양질의 쌀을 2시간 정도 물에 담갔다 건져 시루에 담고 불을 지펴 만든 고두밥을 누룩과 함께 고루 섞은 후 완전히 식혀 술독에 넣는다. 구기자 잎과 열매·두충 등을 2시간 정도 삶아 술독에 넣고 적당히 물을 부은 후 27∼29℃의 온도로 10∼15일 정도 발효시켜 용수로 걸러내면 불로장생주인 구기주가 완성된다.

안주거리가 필요없는 술
구기주에는 어떤 안주거리가 잘 어울릴까. 구기주 명인 임씨는 “술에는 2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안주가 있어야 하는 술이고, 둘째는 안주거리가 필요 없는 술”이라며 “구기주는 안주가 필요 없는 술이다”라고 말한다. 구기자의 약효 성분을 함유한 약주인 데다 독특한 향과 빛깔, 맛이 일품이어서 따로 안주가 필요 없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즐겨 먹는 안주가 있을 것 아니냐”고 했더니 “모든 음식에 잘 어울리지만 구기자로 만든 한과와 파전은 금상첨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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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18) 해남 덕정마을 진양주

 

경향신문 / 2005-07-06 16:33

 

 

진양주(眞釀酒)는 구중궁궐에서 임금이 마시던 어주다. 대부분의 특산품이나 전통주가 궁중에 진상한 것만으로 ‘명품’이라고 내세우고 있으나 진양주는 궁중의 어주가 반가의 가양주로 전승돼온 내력을 담고 있어 차별화된다. 전남 해남과 영암지역에는 진양주의 내력이 애주가들에 의해 전설처럼 구전되고 있다.

조선조 헌종 때 이조좌랑과 사간원의 사간(司諫) 벼슬을 지낸 김권이 사직하고 고향인 영암군 덕진면으로 낙향할 때 어주를 담그다 폐출된 상궁을 후실로 거둬 함께 왔다.

최씨 성을 가진 궁인은 궁중에서 빚던 진양주를 광산 김씨 문중의 제사나 애경사 때마다 제조해 상에 올렸는데 이를 맛본 문중의 애주가에 의해 입소문을 타고 그 진가가 원근에 퍼져 나갔다.

궁인 최씨는 김권의 손녀에게 진양주를 빚는 비법을 전수했는데 이 소녀가 해남군 계곡면 덕정마을 장흥 임씨 집안으로 출가해 진양주를 담그면서 제조비법이 임씨 집안의 며느리에 의해 대를 잇게 됐다. 김권의 손녀는 친정에 갈 때마다 자신이 빚은 진양주를 가지고 갔는데 할아버지는 “네가 만든 술맛이 훨씬 좋다”고 평가했다.

임씨 집안의 술맛이 친정집의 술맛보다 더 좋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흑석산의 맑고 깨끗한 암반수가 지하로 흐르다 솟는 우물 물로 술을 빚었기 때문이다. 덕정마을의 우물은 물맛이 좋기로 소문나 최근까지도 수십리 떨어진 마을에서 물을 길어갔다.

흑석산 자락에 위치한 덕정마을은 우뚝 솟은 흑석산을 야트막한 야산이 솥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처럼 보인다 하여 덕정(德鼎)이란 이름이 붙여졌으며 솥에 구멍을 뚫으면 마을이 망한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해 우물을 파지 않는 불문율이 지켜져왔다. 마을 사람들은 흑석산 암반수가 솟구치는 공동우물 하나에 의지해 살아왔으나 주변 환경이 변하면서 우물의 수질도 크게 나빠져 1990년대 들어 사용하지 않고 있다.

지금의 진양주는 흑석산 자락의 계곡 150m 지하에서 뽑아내는 암반수를 사용해 빚고 있다.

94년 전남도 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된 진양주 기능보유자 최옥림씨(65)가 23세에 임씨 집안으로 시집와 시어머니 어깨너머로 진양주 제조비법을 배운 것은 궁인 최씨가 영암에 내려와 진양주를 담근 지 160여년이 지난 뒤이다.

진양주는 찹쌀과 누룩만으로 제조해 찹쌀(眞米)로 빚은 술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데 재료로 쌀보다 훨씬 비싼 찹쌀만을 사용하다보니 함부로 연습할 수도 없어 어려움이 많았다. 최씨의 시어머니는 특별히 진양주 제조비법을 전수해주지 않아 명절을 앞두고 만든 술이 제맛이 나지 않아 실패한 경우도 있었는데 이같은 시행착오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비법을 터득했다.

진양주 제조법은 먼저 찹쌀로 죽을 쑤어 식힌 뒤 누룩을 넣어 3~4일 발효시켜 종자술을 만든 다음 찹쌀로 고두밥을 쪄서 종자술에 넣고 비벼 2차발효를 시킨다. 발효기간은 10여일이 걸리는데 중간에 꼭 술을 한번 뒤집어주어야 한다.

술을 담글 때 누룩과 찹쌀, 물의 비율을 잘 맞춰야 하며 발효기간중 온도를 맞추는 일 등이 술맛을 좌우한다. 2차발효가 끝나면 용수를 박아 여과된 맑은 술을 떠내는데 이 기간이 일주일 이상 걸린다. 제대로 빚어진 진양주는 쌀 1되를 담그면 술 1되가 나오는데 향이 진하나 맛은 부드러워 한없이 마시다 일어나지 못해 ‘앉은뱅이 술’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진양주는 마시고 나면 찐득거리는 뒷맛을 느낄 정도로 진하며 단맛도 남아 있는 데다 알코올 도수도 낮아 노인과 젊은이, 여자들도 좋아한다. 그러나 원료가 찹쌀인 데다 보관도 어려워 지체높은 양반들이나 맛보는 귀한 술이지 서민은 접하기 어려운 ‘먼 발치의 술’이었다. 진양주는 2004년 농림부와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주최한 한국전통식품 선발대회에서 ‘베스트 5’에 뽑혀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술은 19% 이상 되어야 변하지 않는데 진양주는 알코올 도수가 낮아 주변온도가 30℃ 이상으로 올라가면 식초로 변하고 만다.

최옥림씨는 16%의 진양주를 생산하고 있으나 19% 이상의 제조허가가 나지 않아 독한 맛의 진양주는 제조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된 진양주는 집에 마련한 저온창고에 저장했다가 찾아오는 사람이나 전화주문을 받아 택배로 보내는 게 고작이다. 이 때문에 해남읍이나 땅끝 등 관광지에서도 진양주를 판매하는 곳은 없다.

임씨 가문에선 바다에서 나는 생선을 회로 떠 진양주 안주로 내놓았다.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도 삭혀 안주로 곁들이면 술맛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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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17) 황희정승 후손들이 500년 빚어온 문경 호산춘

 

경향신문 / 2005-06-29 15:57

 

 

솔향이 그윽하고 부드러워 입안에 머금고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술. 약주치고는 센 편인 18도지만 달고 연한 향에 주량도 잊게 만드는 술. 이름에 품격 있는 고급 술에만 붙여졌다는 ‘춘(春)’자가 들어가는 조선 명주. 바로 문경 호산춘(湖山春)이다. ‘춘’자가 들어가는 술 가운데 유일하게 지금도 빚어지고 있는 전통주다. 산 깊고 물 맑은 경북 문경고을에서 황희 정승의 후손들이 500년을 빚어온 가양주(家釀酒)다. 다른 ‘춘’자 계보 술들의 맥이 거의 끊기다시피한 것과 비교하면 ‘황씨 고집’이 지켜온 술이라 이를 만하다. 예부터 신선이 좋아한다 하여 ‘호선주(好仙酒)’, 관리들이 이 술맛에 취해 임무도 잊고 돌아갔다 하여 ‘망주(忘酒)’ 등으로도 불렸다고 전한다.

뼈대있는 가문의 기품있는 술
호산춘은 조선초 명재상 황희 정승의 증손인 황정이 경북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에 집성촌을 이뤄 살면서부터 황정을 입향조로 하는 장수 황씨 사정공파 종택에서 전승돼온 가양주다. 이 문중은 가세가 넉넉하여 호산춘을 빚어서 제사나 손님맞이에 사용했다. 지금도 각종 제사 때는 물론 해마다 음력 2월 황희 정승의 생신일이면 전국 각지에서 자손들이 모여 이 술로 제사를 지낸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새재의 고장에서 오랜 세월 사대부들이 청풍명월을 벗삼아 이 술을 즐겨왔다. 그래서 호산춘에는 선조의 멋과 풍류, 세월의 깊이가 담겨 있다. 황씨 문중의 가양주가 오늘날 전통 민속 명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정부의 민속주 발굴정책에 따라 제조면허가 나면서부터다. 1987년 교통부장관의 추천으로 89년 시험 제조와 주질 검사를 거쳐 90년 제조면허가 나 전통주로 조명받게 됐다. 이듬해인 91년에는 경북도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됐으며 21대 종부 권숙자씨(74)가 기능보유자다.

황씨 고집이 지켜온 술
권씨는 19세에 황씨 문중으로 시집와 50년 넘게 호산춘을 빚어왔다. 천석지기였던 집 안이 기울고 30세 때 남편과 사별,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삯바느질 등 안해 본 일 없이 고생하면서도 매년 10여차례나 되는 제사를 모시기 위해 호산춘만은 꼬박꼬박 빚으며 맥을 이어왔다. 옛 문헌에 ‘춘’자가 들어가는 이름의 술로는 ‘약산춘’, ‘한산춘’, ‘백화춘’ 등이 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고 있으며 ‘호산춘’도 기록에는 ‘호수 호(湖)’자가 아닌 ‘병 호(壺)’자로 되어 있다. 전북 여산 지방의 별칭이 ‘호산(壺山)’인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며 이같은 이름의 술이 여러 곳에서 있었을 것으로도 추정되지만 전승돼 지금도 빚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상 황씨 문중의 호산춘밖에 없다. 호산춘을 문중 가양주에서 전통주로 세상 밖으로 내놓은 22대 종손이자 권씨의 아들인 황규욱씨(55)는 “문화재로 등록할 때 여산의 호산춘과 구분하기 위해 물 맑고 산 좋은 문경에서 대대로 빚어온 술이란 뜻에서 ‘호수 호(湖)’자를 썼다”고 했다.

솔잎, 전통 도자기 등이 빚어내는 풍류
호산춘은 제조 과정이 조금 복잡하고 까다롭다. 우선 멥쌀을 하룻밤 불려 갈아서 백설기를 만든다. 이를 누룩과 반죽해 독에 넣고 1주일에서 10일가량 서늘한 곳에서 발효시키면 밑술이 된다. 밑술이 잘 익을 즈음 찹쌀을 하룻밤 불려 보드라운 생솔잎을 깔아놓고 고두밥을 찐다. 고두밥에 끓인 물을 부어 고루 섞어 식힌 뒤 앞서 만든 밑술을 부어 혼합해 다시 단지에 넣고 20일가량 숙성시킨다. 잘 익으면 광목자루에 담고 돌을 올려 기름짜듯 서서히 눌러 짜낸다. 이를 받아서 두달정도의 후숙 기간을 거친 뒤 여과지로 걸러내면 황국을 우려놓은 듯 맑고 투명한 담황색의 호산춘이 된다. 수율이 1:1로, 사용한 곡류의 양만큼 술이 나온다. 솔잎이 들어가기 때문에 솔잎 특유의 향과 오장을 편안하게 하는 ‘건강주’로 인기가 높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집에서만 팔고 있으며 유리 병으로 된 700㎖짜리(9천원)와 민요(民窯)로 유명한 이 고장의 전통 도요지에서 만든 도자기에 담은 900㎖짜리(1만4천원)가 있다. 향이 그윽하고 맛이 부드러워 맵거나 짠 음식보다는 담백한 안주가 어울린다. 육포나 회, 쇠고기 산적 등이 좋다. 전통 ‘망댕이 가마’에서 구워낸 술잔으로 물 맑은 이 고장의 송어회를 안주삼아 호산춘을 한잔 하노라면 신선이 따로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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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16) 백제시대부터 내려온 충남 가야곡 왕주

 

경향신문 / 2005-06-22 16:30

 

 


예부터 술맛은 ‘물맛’이고 ‘쌀맛’이라고 했다. 이는 물과 쌀에 따라 술의 맛이 정해진다는 뜻이다. 가야곡 왕주를 얘기할 때 물맛과 쌀맛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충남 논산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곡창지대다. 가도 가도 논이다. 당연히 쌀이 많다. 그리고 물이 깨끗하다. 옆으로 금강이 지난다. 쌀이나 물을 오염시킬 만한 것도 없다. 청정하다. 여기서 나온 쌀과 물이 ‘왕주’가 되었다. 왕주는 백제시대부터 내려온 우리의 술로 거기에는 백제인의 얼과 한이 서려 있다.

옛날엔 어주, 요즘은 왕주
쌀이 많이 나는 가야곡 등 충남 논산 일대에는 예나 지금이나 술이 많았다. 백제시대부터 이집 저집 곡주를 빚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중엽 금주령이 내려지면서 쌀로 술을 만드는 것이 어려워졌다. 사람들은 산과 들에서 채취한 약초를 넣어 술을 담그기 시작했다. 이른바 약주다. 조선시대 말 다시 곡주로 술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지자 사람들은 곡주와 약주를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가야곡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 술은 그 맛과 약효 면에서 탁월했다. 한양까지 소문이 났다. 왕실에 진상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주(御酒)’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것이 바로 후에 ‘왕주(王酒)’라는 이름으로 바뀐 바로 그 술이다. ‘궁중술’을 대표하는 왕주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는 종묘대제(중요무형문화재 56호)에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왕주의 전통은 명인 남상란씨(59)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남씨의 친정은 대대로 왕주를 빚어왔다.

왕실에 진상하던 그 술 그대로
‘왕주는 향으로 마신다’는 얘기가 있다. 그 절묘한 향. 술잔을 입에 대는 순간 향은 코를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무슨 향일까. 누구도 딱 부러지게 얘기하지 못한다. 야생국화·구기자·솔잎·홍삼·매실 등 갖가지 재료가 은은한 향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술 얘기에 빠뜨릴 수 없는 게 또 하나 있다. 누룩이다. 누룩은 술의 원천이다. 왕주에 쓰이는 누룩은 특별하게 만들어 진다. 매실이 들어간다. 매실은 누룩 특유의 쾌쾌한 냄새를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다. 누룩을 누룩답게 하는 구수한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이 누룩의 향기는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특별하게 만들어진 이 누룩은 술의 맛에, 그리고 술의 향기에 마지막 ‘점’을 찍는다. 야생국화는 두통을 낫게 하고 눈과 귀를 밝게 한다. 식욕증진·정장·원기회복 등에 좋고 고혈압에도 효험이 있다. 구기자는 어떤가.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하고 정력을 증진시킨다.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성인병 예방에 효능이 있다. 솔잎은 매일 먹으면 중풍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홍삼이 몸에 좋은 것은 누구나 아는 일. 항당뇨 작용을 하고 알코올 해독을 촉진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왕주를 ‘보신(補身)하는 술’이라고 한다. 이런 약재를 넣어 만든 왕주는 늘 밝고 투명한 황금색을 띤다. 왕주는 아무리 마셔도 숙취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 출시되는 왕주는 -5℃로 얼렸다가 48시간 뒤 여과하는 ‘냉동여과’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숙취의 원인물질(아세트알데히드)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명주보자기로 짜냈는데 이 방법으로는 숙취의 원인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냉동여과를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됐다. 가야곡 청정지역의 150m 지하 암반에서 뽑아 올린 물만 쓰는 것도 왕주가 뒤끝 깨끗한 술로 자리를 잡게 한 또 하나의 이유다.

안주로는 굴전·육전·붕어찜 등이 최고
왕주를 마실 때는 안주도 가릴 일이다. 왕이 마시던 술인 만큼 어울리는 안주가 따로 있다. 싱싱한 굴로 만든 굴전이 우선 좋은 안주로 꼽힌다. 신선한 고기로 지져낸 육전 역시 어울리는 안주다. 논산을 대표하는 탑정저수지의 민물고기 요리도 왕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안주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붕어찜을 권하는 사람이 많다. 논산지역에서는 최고의 술에는 최고의 안주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궁중요리 전문가들과 함께 왕주에 어울리는 안주를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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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15) 맑은 산성물로 빚은 남한산성 소주

 

경향신문 / 2005-06-15 16:03

 

 

남한산성 소주는 산성이 축성된 조선조 선조(1568~1608년)때 만들어져 임금께 진상됐던 술로 전해지고 있다. 산성에서 흘러 내려오는 좋은 물로 만든 이 술은 여유있는 사대부 집안에서 만들어 먹던 것으로 귀한 손님 대접이나 선물로 쓰이면서 그 맛과 향취가 각지로 소문나 전국에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독특한 향과 맛
‘누룩이 좋으면 맛있는 술은 저절로 따라붙게 된다’ 남한산성 소주는 누룩과 술을 빚을 때에 재래식 엿을 사용한다. 전통 술을 빚을 때 당화력(糖化力)을 강화하기 위해 엿기름을 넣는 경우는 있지만 누룩을 빚을 때부터 곧바로 엿을 넣는 경우는 드물다. 남한산성 소주의 맛과 향이 독특한 것도 이 누룩 때문이다. 한모금 마시면 엷은 전류가 흐르는 듯하고, 혀끝이 알싸해지면서 입안 가득히 환하게 퍼진다. 그러면서 여인의 향기와도 같은 알듯 모를 듯한 그윽한 향기가 배어나오는데 그 향과 맛을 음미할 만하다. 처음 거른 술은 알코올 도수가 85% 이상이다. 나중에 점차 주정도가 낮아지므로 이를 섞어 40%가 되도록 한다. 용기에 담은 후 밀봉만 잘해두면 오래 저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술맛이 무르익어 소주의 맛은 더욱 좋아진다. 죽엽색의 아름다운 빛깔을 간직한 산성소주는 다른 약재가 들어가지 않는 ‘맑은 술’이다. 높은 알코올 함량에도 불구하고 맛은 아주 부드럽다. 특히 아무리 많이 마셔도 숙취가 없어 애주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여러가지 유기질과 각종 향미 성분이 다양하게 함유돼 있어 적당히 마시면 식욕 증진, 혈액순환 촉진, 피로회복에 효과가 있다.

유래
흔히 산성에서 만든 술하면 성벽을 쌓던 노역자나 성벽을 지키던 무인들이 힘겨운 노동을 위로하기 위해 마시던 ‘막술’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남한산성 소주는 이러한 산성 술과 차원이 다르다. 남한산성은 작은 서울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숙종때 이미 1,000호가 모여 살던 번성했던 곳이다. 서울에 근접해 부자가 많았던 이곳은 수준높은 문화생활을 누렸다고 한다. 남한산성 소주의 족보는 희미하지만 그 안에서 배태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유있는 생활을 하던 이들이 궁중식을 본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건강주로 산성소주를 만들어 마시면서 유래돼 조선말기까지 널리 애용됐다고 한다. 그러나 남한산성에 대대로 살면서 술을 빚었던 이종숙씨(1960년대 작고)가 서울 송파구로 이사를 해 양조장을 경영하면서 한때 술 이름도 ‘백제소주’로 바뀌기도 했다. 지금도 송파에 살고 있는 나이든 사람들은 이 백제소주를 기억한다. 이종숙씨가 술도가를 그만둔 뒤로 그 술도가에서 술을 빚었던 강신만씨(1971년 작고)가 둘째 아들인 강석필씨(70)에게 술 빚는 법을 전수했다. 강석필씨는 아버지에게 배운 술을 재현하여 1994년에 경기도 무형문화재 13호, 남한산성 소주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지금은 아들 용구씨가 그 뒤를 이어가고 있어 3대가 남한산성 소주 기능 보유자가 됐다.

붕어찜과 생선회 등 안주가 별미
산성소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만큼 안주로는 육류가 무난하다. 하지만 남한산성 소주의 진수를 맛보려면 쏘가리회 등 생선회가 좋다고 애주가들은 평한다. 입안을 개운하게 하면서 소주의 독특한 향취를 더 음미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물좋은 팔당호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참붕어로 만든 매콤하고 담백한 ‘붕어찜’ 요리는 최고의 안주로 꼽히고 있다. 남한산성 소주는 200·400·700㎖ 짜리 세종류가 있는데 수작업으로 만드는 관계로 생산량이 그리 많지 않아 면세점 또는 우체국 쇼핑 등을 통하면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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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14) 우리나라 민속주 1호 부산 산성막걸리

 

경향신문 / 2005-06-08 22:18

 

 

지방마다, 가문마다 전해 내려오는 전통 민속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이 가운데 많은 종류의 술이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최근 사라졌던 전통 민속주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생소한 이름의 전통주도 속속 눈에 띈다. 쏟아지는 민속주 가운데 우리나라 민속주 1호는 무엇일까. 답은 ‘금정산성 토산주’(산성막걸리)로 백두대간의 끝자락인 부산 금정산의 산성마을에서 빚는 막걸리다.

대한민국 민속주 1호
막걸리가 민속주 1호가 된 것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대중적인 술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민속주 지정에는 사연이 있다. 1960년 주세법으로 누룩 제조를 금지한 이후 산성막걸리는 마을 사람끼리만 만들어 마시는 것으로 명맥을 이었다. 5·16 군사쿠데타 전 부산 군수사령관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성막걸리 맛에 흠뻑 취하곤 했다. 그 맛을 잊지 못한 박 전대통령은 79년 부산에 순시차 내려와 산성막걸리를 찾았다. 그리고 ‘사라질 위기’라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양성화할 것을 지시(대통령령 제9444호)했다. 이어 81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국풍 81’ 행사에서 가장 많이 팔리면서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노역의 허기와 피로를 달래준 술
산성막걸리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임진왜란 이전까지 올라간다. 화전민들이 생계수단으로 술을 빚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숙종 32년(1706년)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금정산성을 축조하면서 외지인에게 산성막걸리의 맛이 알려졌다. 거대한 성을 쌓는 데 동원된 인부와 군졸에게 갈증과 허기, 피로를 덜어주는 새참거리였다. 인부들은 공사가 끝나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새큼하면서도 구수한 그 맛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맛 소문이 퍼지면서 산성마을에서 누룩을 빚는 양에 따라 동래를 비롯해 경남 일대 쌀값이 오르고 내릴 정도였다고 한다. 부산시 시사편찬실 표용수 위원은 “일제 강점기에 산성에 살던 학생들은 책가방에 누룩을 넣어 다니며 동래에 내다팔아 학비를 조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항우장사도 세 주전자는 못 비운다
산성막걸리는 인공재료를 사용치 않고 누룩과 쌀, 물 세가지만으로 전통제조 방식대로 만드는 자연 발효주다. 산성마을은 금정산 봉우리에 둘러싸인 분지로 해발 400m가 넘어 평지보다 기온이 평균 4℃ 이상 낮다. 또 예부터 맛 좋기로 소문난 금정산의 맑은 물이 산성막걸리만의 독특한 맛의 비결이다. 특히 보통 막걸리의 주도(酒度)가 5%인 것에 비해 산성막걸리는 8%이고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걸쭉해 ‘항우 장사도 세 주전자는 비우지 못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마을의 또 하나 자랑은 흑염소불고기와 도토리묵이다. 여기에 곁들여 마시는 산성막걸리는 등산객에겐 꿀보다 달콤하다. 현재 산성막걸리의 하루 생산량은 100말 정도. 750㎖짜리로 3,000통 가량이다. 소량 생산이어서 금정산성 일원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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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13) ‘불로장생’으로 빚은 금산 인삼주

 

경향신문 / 2005-06-01 16:21

 

 


불로장생의 명약 ‘인삼’으로 빚어내는 ‘금산 인삼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전통주다. 신비한 약효 때문인지 술을 먹은 뒤에도 숙취로 인한 어려움을 겪지 않고 한잔 술에 배어나는 알싸한 인삼향과 혀끝에 감치는 맛은 여느 명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인삼주는 백제시대부터 제조된 것으로 전해지나 본초강목(本草綱目) 등에는 1399년 도승지와 이조판서를 지낸 김문기(金文起) 가문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2000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당시 각국 지도자의 공식 건배주로 지정되면서 전세계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인삼의 본고장서 빚는 명주
금산 인삼은 예부터 ‘선약’, ‘불로장생의 영약’, ‘생명의 뿌리’라고 일컬어졌다. 개성 인삼이 고구려 인삼을, 풍기 인삼이 신라 인삼의 맥을 잇고 있다면 금산 인삼은 백제 인삼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백제 인삼을 원료로 빚어내는 금산 인삼주는 삼남지방에 널리 알려진 명주로 그 맛과 품질에 있어 전통과 품격을 자랑하고 있다. 금산 인삼주는 조선시대 사육신 중 한 분인 김문기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던 것을 18대 후손인 김창수씨가 모친과 조모로부터 전승받아 현재 계승하고 있다. 금산 인삼주의 제조비법과 그 맛은 조선시대 ‘임원십육지’와 중국의 ‘천금방’, ‘본초강목’에도 나와 있고 김창수씨 집안의 가전문헌인 ‘주향녹단’, ‘잡록’에는 인삼을 넣어 술을 빚고 그 술을 제사때 사용하는 제주와 가양주로 썼다고 전해져 온다.

5년근 이상의 인삼으로 100일간 숙성
금산 인삼주를 기존의 인삼주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제조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삼주가 인삼자체에 소주를 부어 우려낸 침출주라면 금산 인삼주는 전통 발효주로 분류된다. 쌀과 누룩에 인삼을 분쇄해 넣고 저온(18~22℃) 발효시켜 100일간 숙성시킨다. 그래서 금산 인삼주에는 인삼이 없다. 술 속에 인삼을 그대로 녹여 놓았기 때문이다. 금산 인삼주의 주원료는 인삼·쌀·통밀이며 솔잎을 약간 넣는다. 여기에 사용되는 인삼은 5년근 이상의 인삼이 쓰이며 용수는 물맛이 좋고 예부터 피부병을 낫게 하는 효능이 있다는 금성산 기슭의 약수를 사용한다. 제조기간은 밑술제조에 10일, 술덧을 담근 후 주발효와 후발효에 60일, 채주하고 숙성하는 기간 30일 등 모두 100일 가량이 소요된다. 오래 숙성할수록 향과 맛이 더해져 주질이 더욱 좋아진다.

유기산, 비타민 등 영양 ‘듬뿍’
100일간의 제조기간을 거친 금산 인삼주에는 유기산·무기질·비타민 등이 다량 함유돼 있고 유기산의 일종인 젖산이 많아 인체에 좋은 효과를 준다. 이 때문에 술을 먹어도 숙취로 인한 어려움이 없으며 한잔 술에 담긴 맛과 향은 그 어느 명주보다도 뛰어나다. 식욕이 떨어지고 위장기능이 쇠약한 여성에게 이 술을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삼성분이 소화기 계통의 힘을 증강해 누렇게 뜬 얼굴에 생기가 돌게 하고 군살이 붙지 않으면서도 탐스러운 몸매를 가꿔주는 미용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금산 인삼주에는 현재 인삼약주와 인삼증류주 2가지가 있다. 술독에 100일간 발효시켜 채주한 다음 이것을 짜내면 알코올농도 12.5%짜리 인삼약주가 되고 그것을 다시 수증기로 끓이는 소주내림을 거치면 43%짜리 인삼증류주가 된다. 지금은 거대한 탱크에서 인삼주를 끓여내고 있지만 대량생산 이전에는 큰 항아리에 불을 지펴 증류했다. 최근에는 여성 애주가들을 겨냥해 홍삼을 주원료로 한 알코올농도 15%짜리 홍삼주도 개발됐다.

삼계탕, 한우 생고기구이 등 안주 별미
인삼주에 잘 어울리는 안주로는 인삼삼계탕과 한우 생고기구이 등이 제일로 꼽힌다. 애주가들은 재래식 추어탕과 인삼어죽·매운탕·송어회 등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한다. 금산군 부리면에서 영월가든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길영환씨는 “토종닭을 푹 삶아 마련한 인삼삼계탕과 금산 인삼주를 반주로 곁들이면 임금님 수라상도 부럽지 않을 거예요”라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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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12) 안동 송화주

 

경향신문 / 2005-05-25 16:24

 

 


안동 송화주(松花酒)는 기품있는 양반의 술이다. 아직 상품화되지 않은 채 유학자의 종가에서만 대대로 전승된 가양주(家釀酒)로 집안제사와 손님 접대를 위해 종가 맏며느리들이 온갖 정성과 손맛을 곁들여 빚은 고급 술이다. 많은 재료와 오랜 숙성기간에 비해 극히 적은 양의 술이 손님상과 제사상에 오른다. 이름에 ‘송화(松花)’란 말이 있지만 송화는 사용되지 않고 찹쌀·멥쌀 등과 함께 솔잎·국화(황국)·금은화·인동초 등을 재료로 쓴다. 송화주는 1993년 2월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됐다.

홀연히 취했다 말끔히 깨는 술
송화주는 맑은 진보라빛으로 도자기 주전자에서 술잔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그 빛만 봐도 군침이 돈다. 코를 편안하게 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삭막해진 인정을 부드럽게 이끈다. 알코올농도는 15~18%. 술일까, 식혜일까. 입술에 살짝 갖다대면 약간 달라붙는 듯하다. 떫은 맛이 도는가 싶다가 금방 달짝지근한 맛이 입안에서 뱅뱅 돈다.

정재(定齋)가문의 독특한 가양주
송화주는 퇴계학파의 거봉인 전주 류씨 무실파 정재 류치명(柳致明·1777~1861)때부터 제사용으로 사용됐다고 구전돼온 점으로 미뤄 최소한 200년 이상된 전통주다. 지금까지 송화주를 빚어온 주인공은 모두 정재 가문의 맏며느리들로 안동 천전(川前) 출신의 김씨에서 출발, 봉화 해저(海底) 출신의 김씨-봉화 법전(法田) 출신의 강씨-안동 계남(溪南) 출신의 이씨-성주 한계 출신의 이씨-안동 오천(烏川) 출신의 김영한씨로 이어졌다. 김영한씨(53)의 시어머니 이숙경씨(1998년 작고)는 17살에 정재 가문으로 시집와 53년 동안 송화주를 빚었고, 한때 700명의 손님에게 가문의 술을 대접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안동지역에 널리 알려져 있다. 송화주가 정재 가문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다. 정부인(貞夫人) 안동 장씨(1598~1680)가 쓴 ‘규곤시의방(閨壺是議方)’의 송화주 제조법에는 송화를 쪄서 만든다고 기록돼 있고, 광산 김씨 예안파 문중에 전해오는 ‘수운잡방(需雲雜方)’에도 내용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정재 가문의 송화주는 송화 대신 국화나 인동초를 써 기존의 송화주와 다른 특유의 술을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침전주와 증류주의 만남
송화주는 침전주의 일종인 청주(淸酒)이다. 재료로 쓰이는 찹쌀 1말(18ℓ)에 고작 7되(1되=1.8ℓ)의 술만 생산된다. 숙성기간도 최소 30일에서 최대 100일이 걸리니 상에 오르기까지의 정성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다. 아쉽게도 송화주는 기온이 높아지는 늦봄부터 청주의 형태로 오랜 기간 보관할 수 없다. 식초로 변질될 우려가 커 송화주는 곧바로 증류주인 송화소주(松花燒酒)로 재생산된다. 장작불로 서서히 구워 뽑아내는 송화소주의 알코올농도는 무려 50% 이상. 혓바닥으로 핥듯 조금씩 마시면 입안은 화끈하지만 속은 편안하다.

송화다식이 안줏감으로 찰떡궁합
안동 송화주는 송화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송화가루를 쪄서 만든 다식이 가장 좋은 안주다. 쫄깃쫄깃하면서도 입안에서 잘 녹는 송화다식은 송화주 맛의 여운이 길게 남도록 해준다. 다만 송화주가 찹쌀과 멥쌀을 워낙 많이 사용해 빚어낸 진한 술인 만큼 안주를 과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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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11) 조선3대 명주 - 전주 이강주

 

경향신문 / 2005-05-18 16:21

 

 

전주 이강주(梨薑酒)는 문화재급 술이다. 술을 빚는 사람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6호로 지정돼 있고 농림부 전통식품 제조 명인 9호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이강주는 조선시대 세시풍속집 ‘경도잡지’와 ‘동국세시기’에 제조기술이 상세하게 기술돼 있다. 때문에 호산춘, 죽력고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명주로 꼽히는 전통주 중 백미다. 최근에는 남북적십자 회담 등 국가 주요행사에 대표주로 지정된 데다 노무현 대통령의 설 선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뒤끝 좋은 맑은 술
호남의 넓은 들판에서 나오는 백미와 전주 배, 봉동 생강 등 지역 특산품을 넣어 2차 증류까지 거쳐 만드는 이강주는 부드러움과 알싸함이 배어있는 술이다. 배의 청정미와 생강의 톡 쏘는 향, 울금·계피가 연출해 내는 연노랑 빛깔은 결코 흔하지 않으면서 독보적인 느낌으로 애주가에게 다가선다. 이강주를 대표하는 말은 “뒤가 맑다”는 것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 꽤 마셔도 깨끗하게 깬다는 게 애주가의 품평이다. 그 노하우는 어디에 있을까. 이강주 제조명인인 조정형씨는 그 비결을 ‘울금’에서 찾는다. 이강주란 이름이 배(梨)와 생강(薑)에서 비롯된 것처럼 가장 중요한 재료는 이 두가지이지만 뒤를 맑게 하는 ‘울금’이 있기에 대표명주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술에 울금을 쓰는 것은 드문데 중국 황실서 썼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며 조선시대에 수라간에서 음식재료로 썼다고 전해진다. 울금은 남도 것을 최고로 치는데 전주서 임금님에게 진상했다. 이 약재는 몸의 정신안정제 역할을 한다. 습관성 없는 안정제는 울금뿐이었으나 냄새가 독해 상용되지 못했다. 결국 이강주의 진가는 ‘울금 노하우’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대조부터 빚어져
명인 조씨의 6대조는 조선시대 완주부사를 지냈다. 당시 행정은 집에서 이뤄지기 일쑤였는데 늘 민원인 등 손님이 많다보니 술과 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술은 6가지 정도를 빚어 항상 대기시켜 놓았다. 이 가운데 가장 인기있던 술이 이강주였다. 맛이 좋은 데다 저장성 또한 탁월해 귀빈접대용으로 사용됐다. 이렇게 가양주로 전승돼 오던 이강주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밀주로 전락했다. 70년동안 사장돼 왔던 이 술은 후손인 조 명인에 의해 복원돼 대표 전통주로 부활했다. 지금은 양산체제를 갖추고 백화점에만 납품되고 있다. 대량생산도 가능하지만 백화점에 공급할 만큼만 생산한다. 문화재 명주답게 욕심내지 말자는 명인의 뜻이 담겨있다. 이강주의 안주로는 무엇보다 육류가 그만이다. 그 가운데서도 육회와는 환상적인 궁합을 이룬다.

이강주 담그는 법

1. 원료준비

우선 햇밀을 거칠다 싶게 빻아 물로 고루 버무려 포로 덮은 후 곡자틀에 넣어 단단하게 형을 뜬다. 곡자는 보습이 잘되는 곳에 놓아 실온 25도 정도에서 최고 온도가 45도를 넘지 않도록 보관한다. 10일 정도 지나면 온도가 내려간다. 이때 30도 실온에서 7일 정도 보관하고 건조한 곳에서 14일을 더 보관한다. 이 과정이 끝난 후 약 2개월 정도 저장하면 이강주에 쓸 수 있는 좋은 누룩이 나온다. 여기에 배와 생강, 한약재를 물에 잘 씻은 후 다듬는다. 꿀도 준비한다.

2. 1차담금

백미로 고슬고슬하게 밥을 지은 후 식힌다. 밥이 완전히 식으면 이 고두밥과 누륵을 섞어 술을 담근다.

3. 소주내리기

담근 술을 1주일 후 소주고리에 넣고 전통방식으로 소주를 내린다. 술을 다시 솥에 넣고 불을 지피면서 냉각수를 교환해 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콜도수가 떨어진다.

4. 주원료의 침출 및 숙성

약 35%로 내린 전통소주에 이강주의 주원료인 배와 생강, 울금, 계피를 넣고 3개월 이상 침출시킨다. 마지막으로 꿀을 가미한 후 숙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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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10) 김천 과하주(過夏酒)

 

경향신문 / 2005-05-11 16:42

 

 

투명한 황갈색에 부드러운 맛과 향. 한여름의 더위를 넘겨도 변하지 않는 약주. 경북 김천의 ‘과하주(過夏酒)’는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된 명주 중에서도 상품으로 꼽혔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힘차게 뻗어 내려가던 백두대간이 추풍령을 지나며 숨을 고르는 곳에 위치한 김천(金泉). 지명부터 ‘금(金)이 나는 샘(泉)’이니 이 고장 물로 빚은 술맛이 어떻겠는가. 과하주는 16도짜리 순곡주와 여기에 소주를 섞어 거른 30도 안팎의 재성주(再成酒) 등 두가지가 있다. 과하주에는 충북과 전북·경남의 접경지역으로, 물 좋고 산 좋은 김천의 풍광과 숨결이 그대로 배어 있다.

다른 곳에서는 나지 않는 맛
“김천 과하주는 온 나라에서 그 이름이 높으며 외지 사람이 그 술을 빚는 방법을 배웠으나 맛이 본토주(김천 과하주)와 같지 아니하였음은 그 샘물이 타지와는 달리 특이한 신비가 있는 연고다.” 오래된 향지 금릉승람(1702년)은 이렇게 과하주 맛의 비결이 이 고장 물에 있다고 적고 있다. 김천의 향토사에 따르면 옛날 이 지방에 샘이 있어 그 샘물로 술을 빚으면 맛과 향기가 좋았다. 이 샘을 금지천(金之泉) 또는 주천(酒泉)이라고 불렀으며 김천이라는 지명도 그 샘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400여년 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곳을 지나다가 물 맛을 보고 중국의 금릉(金陵)에 있는 과하천(過夏泉) 물맛과 같다 하여 김천의 옛 이름인 금릉이란 지명과 과하천이 유래됐다고 한다. 또 이 샘물로 빚은 술을 과하주라 부르게 됐다고 전해오고 있다. 옛날에 금이 났다는 샘인 금지천은 묻혔다고도 전해져 과하천과 같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오랫동안 과하주샘으로 불려온 과하천은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228호로 남산동에 있다. 이 샘에는 1882년 새겨진 ‘금릉주천(金陵酒泉)’이란 글귀가 있다.

치과의사가 되살린 전통주
김천 과하주는 조선 초기부터 만들어져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의 기록에 남겨질 정도의 명주다. 1930년 한·일 합작으로 김천주조가 설립되면서 대량 생산됐으나 해방과 함께 문을 닫으면서 명맥이 끊겼다. 이를 치과의사이자 김천문화원장이던 고 송재성씨(1912~98)가 복원, 87년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됐다. 김천주조 건너편에서 병원을 하면서 제조 과정을 익히 봐왔던 송씨는 김천주조에서 근무했던 조무성씨와 함께 숱한 시행착오 끝에 과하주를 복원했다. 91년 제조면허를 받아 생산에 나섰으며 기능보유자이던 송씨 작고 이후에는 둘째 아들인 송강호씨(66·전수조교)가 대를 잇고 있다.

주량에 맞게 골라 먹을 수 있는 술
과하주는 예부터 음력 정월에 빚어서 4월에 즐겨 먹었다고 전한다. 밀을 갈아 샘물로 반죽해 누룩을 만든다. 찹쌀을 샘물에 담갔다가 하루 뒤 건져내 고두밥을 찐다. 이를 떡판에 올려놓은 다음 누룩가루가 24시간 우러난 것과 함께 버무려 떡편을 만든다. 식힌 떡편을 독에 넣고 한지로 밀봉해 서늘한 곳에서 30일 이상 장기 저온 발효시킨 뒤 떠낸 16% 약주가 경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과하주다. 정주(精酒)를 뜨고 남은 술지게미에 증류소주를 부어 숙성시켜 거르거나 16% 약주를 증류시켜 소주를 만든 뒤 이를 16% 약주와 섞어 숙성시키면 한여름 복더위에도 변질될 우려가 없는 30% 안팎짜리 과하주가 된다. 여름에 강해 이름 그대로 한여름을 나는(과하·過夏) 술이다. 소주처럼 톡 쏘는데 맛은 약주로 술이 약한 사람도 즐겨찾는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약간 신맛이 느껴지는 과하주는 손에 묻으면 끈적거릴 만큼 진하다. 숙취가 없고 갈증을 없애주며 적당량을 마시면 혈액순환을 도와 고혈압과 신경통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산이수(三山二水)의 맛과 멋
과하주는 삼산이수(三山二水, 황악산·고성산·금오산·직지천·감천)의 고장이 빚어낸 술이다. 그런 만큼 이 고장의 향토음식이 안주로 제격이다. 껍질과 비계를 그대로 구워도 기름이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로 담백하고 차지면서도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지례 흑돼지는 과하주의 맛을 돋운다. 직지사를 보듬고 있는 황악산의 버섯·참나물·곰취같은 산채와 두부·묵 등도 부드럽고 뒤끝이 없는 순한 과하주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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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09) 고구려 술 ‘계명주’

 

경향신문 / 2005-04-27 16:24

 

 

백제의 술이 ‘소곡주’이고, 신라의 술이 ‘경주법주’라면, 고구려의 술은 단연 ‘계명주(鷄鳴酒)’이다. 계명주는 여름철 황혼녘에 술을 빚어 밤을 재운 뒤 새벽에 닭이 울면 익어 마실 수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계명주를 ‘속성주’, ‘삼일주’라고도 부르지만 실상은 보름 이상의 정성스러운 제조과정을 거쳐야만 참맛이 난다.

계명주는 연한 황색 빛깔로 단맛과 함께 은은한 솔향이 압안에 오래 남아 입맛을 돋운다. 동의보감에도 적당량을 마시면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폐와 위를 보한다고도 기록돼 있다. 쉽게 취하지 않으며 설령 취했다 하더라도 금세 깨는 것이 이 술의 특징이다.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 축령산 자락 자그마한 공장에서는 고구려인의 기개가 물씬 풍기는 계명주를 빚고 있다. 계명주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생산된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1호(계명주) 민속주 기능보유자이며, 한국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된 최옥근씨(62)가 운영하는 곳이다. 계명주는 평안남도 지방에서 그 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최씨는 평안남도 결성(結城) 장씨가(張氏家)의 11대 종손 며느리. 평안남도 출신인 최씨의 시어머니 고 박재형씨는 한국전쟁 때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기일록(忌日錄)을 품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기일록에는 조상의 제삿날과 함께 제주를 담그는 방법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고 한다. 최씨의 남편인 장기항씨(2005년 3월 작고)도 당시에는 기일록에 제조과정이 적힌 가양주(家釀酒)가 고구려 전통술이란 사실을 몰랐다. 1980년대 정부가 민속주 개발을 지원한다는 말을 듣고 이리저리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이 술이 계명주란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한다.

계명주에 대한 문헌은 1,500년 전 중국에서 편찬된 가장 오래된 농업기술 안내서 제민요술(齊民要術)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에서는 하계명주(夏鷄鳴酒)로 밝히고 있는데 ‘여름철 황혼녘에 빚어 다음날 새벽에 먹는다’고 기록돼 있다. 중국 문헌에 기록돼 있어 자칫 중국 술로 오해할 수 있지만 1,000년 전 중국 송나라 때 국신사를 수행한 서긍(徐兢)이 고려에서 보고 들은 것을 쓴 기행문 ‘고려도경’에 고려인은 계명주를 잔치술로 사용했다는 내용이 언급돼 있다.

고려도경에는 ‘고려시대 잔치술은 맛이 달고 빛깔이 짙으며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다. 국내 관련 학자들은 이 책에 기록된 술의 제조법이 허준의 동의보감에 기록된 계명주 제조법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1987년 계명주를 경기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했다. 또 전수자인 최씨는 전통주 명인으로 선정됐다.

계명주는 현재 알코올 도수에 따라 4가지로 생산되고 있다. 알코올 도수가 가장 적은 7%에서부터 11%, 13%, 16% 등이다. 특히 도자기에 담긴 13%와 16%짜리 계명주는 최근 개발된 상품으로 일본과 미국 등지를 중심으로 해외에도 조금씩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주)계명주 제조원 이창수 사업본부장(50)은 “계명주는 국내 민속주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며 “품질을 알아본 미국의 관련 유통회사와 최근 5억원가량의 수출계약을 마쳤다”고 말했다. 최근들어 일본에서도 주문이 조금씩 늘고 있어 최씨는 일부 제조과정을 제외하고는 자동화 장치를 도입, 하루에 1만5천병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 유통망이 미흡해 실제 생산량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마치 잘 익은 와인처럼 오랫동안 감치는 새콤달콤한 맛이 입 안을 개운하게 해줘 계명주의 안주로는 고기류가 잘 어울린다. 특히 일반 돼지고기보다 느끼함이 덜한 멧돼지고기는 예부터 계명주와 궁합이 맞는 안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계명주는 이달말 국내 최대 규모로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에 완공되는 고양국제전시장(KINTEX) 내 주류 상설매장에 국내 유명 전통주와 함께 항시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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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08) ‘대한민국 대표소주’ 안동소주

 

경향신문 / 2005-04-20 16:36

 

 

화끈하게 취하고 깨끗하게 끝난다. ‘안동소주’가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우리나라 ‘대표 소주’로 불리는 까닭이다. 시인 유안진은 “사나이의 눈물 같은, 피붙이의 통증 같은, 첫사랑의 격정 같은 내 고향의 약술”이라고 노래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 화끈거리는 불의 힘이 느껴지는 45% 화주(火酒). 이 고장 시인 안상학의 구수한 술타령처럼 “뒤란 구석진 곳에 소주고리 엎어놓고 장작불로 짜낸 홧홧한 안동소주”에는 “취한 두어 시간 잠에서 깨어나 머리 한번 흔들고 짚세기 고쳐 매고 길 떠나는 등짐장수”와 같은 우리네 모습과 정서가 배어있다.

안동소주, 우리나라 소주의 역사
우리나라에 증류주인 소주가 전해진 시기는 쿠빌라이가 고려를 침략한 13세기로 전해진다. 몽골은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아랍의 알코올 증류법을 배워 소주를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 정벌을 위한 몽골의 전진기지가 있던 개성과 안동, 제주를 중심으로 전파됐다는 설이 보편적이다. 칭기즈칸 후예의 약탈 상흔과 함께 남은 증류주 문화가 재탄생한 것이 안동소주인 셈이다. 문헌상으로는 ‘고려사’에 김진(金眞)이란 무장이 임지인 경북 북부지방에서 소주 먹기를 즐겨하여 소주도(燒酒徒)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사대부들이 호사스러워져서 소주를 많이 마셔 취해야만 그만뒀다는 등의 내용이 눈에 띈다. 이같은 기록 등으로 미뤄 권문세가에서 소주를 빚어 마시거나 약으로 이용되다 일반 백성에게 보급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만주까지 명성 ‘명품소주’
안동소주는 안동지방 명문가에서 가양주로 전승돼왔다. 처음으로 대량 생산된 것은 1920년대 참사를 지낸 권태연이 안동시 남문동에 공장을 세우고 상품화한 ‘제비원 소주’다. 전통 누룩대신 배양균을 이식하는 일본식 흑국을 사용한 개량된 방식으로 생산, 일본과 만주에까지 판매되면서 명성을 떨쳤다. 64년 정부의 양곡정책에 따라 쌀을 원료로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면서 개량된 방식으로 생산되던 소주마저 생산이 중단됐다. 일제 강점기와 주세법 개정으로 안동소주의 전승이 위태로웠지만 민간에서는 몰래 만들어 마시며 맥을 이어왔다. 그러던 중 87년 안동소주 제조 비법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고 조옥화씨(83)가 기능보유자로 인정돼 90년 민속주로 생산과 판매가 이뤄지면서 ‘대한민국 대표 소주’로 부활했다.

밤이슬이 만들어 그윽하구나
안동소주를 만드는 재료는 깨끗한 물과 누룩을 만드는 밀, 고두밥을 만드는 멥쌀이 전부다. 다른 첨가물은 전혀 없다. 누룩은 통밀을 씻어 말린 다음 적당히 바수어 물을 섞어 버무리면서 꼭꼭 뭉쳐 누룩틀에 넣어 만든다. 20일 정도 띄운 다음 콩알 정도의 크기로 부숴 널어놓고 밤이슬을 맞힌다. 멥쌀로 고두밥을 쪄 그늘에 멍석을 깔고 넓게 펴서 식힌 다음 깨끗한 물을 부어가며 고두밥과 누룩을 손으로 버무려 술독에 넣어두고 15일 정도 숙성시키면 노르끄레하면서도 감칠맛나는, 증류하기 이전 단계인 전술이 된다. 발효된 전술을 솥에 넣고 소주고리와 냉각기를 솥 위에 얹은 뒤 불을 지펴서 열을 가하면 전술이 증발하면서 냉각기에 닿아 액체로 변해 소주 고리관을 타고 떨어진다. 처음에는 70~80%의 높은 도수의 소주가 흘러나오다 점점 도수가 낮아지는데 45%가 됐을 때 증류를 멈추면 맛과 향이 뛰어난 안동소주가 된다.

빨리 취하고 빨리 깨고 뒤끝 없고 ‘싸나이 술’
안동소주는 도수가 높은 만큼 빨리 취하고 빨리 깬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질이 쌀로 다져졌기 때문에 쌀과 밀 등 순곡으로 만들어진 안동소주의 위 흡수력이 빨라 빨리 취하고 몸에 부담도 덜 준다고 안동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도수가 높기 때문에 안주로는 육류 등 기름진 것이 좋다. 안동 특유의 음식인 가오리찜과 삶은 문어, 상어전, 고기를 넣은 파산적이 안주로 제격이다. 안동 사람들은 곧잘 ‘쌀과 보리의 만남’이라며 안동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기도 한다. ‘안동소주 폭탄주’인 셈이다. 애주가인 김휘동 안동시장(61)은 “안동소주에 맥주를 섞어 마시면 양주를 섞을 때와 달리 거품도 안 생겨 깨끗하게 마신 뒤 깨끗하게 깬다”며 “안동소주야말로 뒤끝없는 사나이의 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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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07) 순천 사삼주

 

경향신문 / 2005-04-13 16:39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낙안민속마을 인근 낙안 민속양조장(대표 박형모)에서 빚어내는 사삼주(沙蔘酒)는 달콤한 향이 이내 코를 자극하고 마시면 약간 씁쓰레한 게 입안을 개운하게 해준다. 이는 찹쌀과 더덕을 원료로 사용해 숙성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향이 우러나고 더덕의 씁쓰레한 맛이 술에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사삼주 맛의 비밀은 더덕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더덕(뿌리)을 한방에서 사삼이라 부른다. 인삼(人蔘)과 형태와 성분이 엇비슷해 일컫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삼은 인삼의 효능인 강장은 물론, 거담이나 위장을 튼튼히 해주는 약리성분을 갖고 있어 호흡기가 약하거나 위장이나 간이 부실한 사람에게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 박씨가 사삼주를 정부로부터 전통 민속주로 지정받아 본격 시판한 것은 1990년이다. 88년부터 낙안민속마을에 걸맞은 전통주를 개발하기 위해 관련 문헌을 뒤진 박씨는 시제품을 만들어 순천대 김용두 교수팀에 의뢰, 충분한 시험과정을 거쳤다. 지봉 이수광이 펴낸 승평(옛 순천지명)지에 낙안사삼주의 맛과 향취에 대한 설명이 있으며 고을 원님들이 즐겨 마셨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기록은 순천의 양반과 풍류객들이 기품있는 사삼주를 가양주로 빚어 마셨음을 설명해 준다. 현재 낙안에서 만들어지는 사삼주는 박씨의 부인 허효현씨(78)의 손끝에서 나온다. 허씨는 낙안과 인접한 보성군 득량면 오복리 양천 허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청정해역 득량만을 끼고 있어 다양한 어패류의 젓을 직접 만들어 밥상에 올리는 ‘발효식품’의 원조 마을이다. 허씨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의 밥상에 토하젓과 멸치·조갯살·대구아가미 등 매일 5종류 이상의 젓갈을 올렸다”고 술회한다.
제대로 된 젓갈맛을 내려면 좋은 재료에 천일염을 적당히 버무려 알맞은 환경과 기온에서 숙성시켜야 하고 이때 적정한 ‘발효’가 맛을 좌우하듯 전통주도 그렇다. 그는 18세때 보성읍에 사는 박씨와 결혼, 박씨 문중에서 가양주로 대를 이어온 사삼주를 접하게 된다. 결혼 직후 서울에서 살던 허씨는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남편의 고향인 보성읍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이곳에서 막걸리를 만드는 주조장을 15년가량 운영하다 70년 낙안읍성내로 이사하여 주조장을 계속했다. 91년 낙안읍성 정비계획에 따라 성밖 50여m 거리로 이주하여 생산시설과 안집을 마련,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때문에 허씨가 ‘발효주’인 사삼주와 인연을 맺은 것은 50년 세월을 헤아린다.

찹쌀+더덕+청정지하수
순천 사삼주는 땅이 비옥하기로 이름난 낙안 들녘에서 재배한 토종 찹쌀과 질좋은 더덕, 끓이지 않고 그냥 마셔도 배탈이 나지않는 낙안의 청정지하수가 어우러져야 제대로 빚어진다. 1차로 찹쌀 고두밥을 쪄서 누룩과 5:1 비율로 버무려 숙성실에서 사나흘간 익혀낸다. 여기다 2차로 다시 더 많은 양의 고두밥과 누룩·맑은 물을 더해서 혼합, 숙성시키고 술내리기 6일 전에 생 더덕즙을 넣어 3~4일간 5℃가량의 상온저장을 거치는 등 완제품까지는 20~25일이 소요된다. 이같은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더덕의 효능이 그대로 살아 있는 사삼주가 완성된다.

씁쓰레한 맛엔 생선회가 제격
사삼주가 갖는 씁쓰레한 뒷맛 때문에 안주로 농어와 도미 등 생선회가 최고로 꼽힌다. 이들 안주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지녀 더덕 특유의 맛을 반감시켜주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요즈음 많이 생산되는 멍게(우렁쉥이)도 궁합이 맞는 안주거리이며 더덕구이와도 잘 어울린다. 사삼주는 약간 차갑게 마셔야 제맛을 느낄 수 있으며 만취해도 다음날 머리가 아프거나 속쓰림 등 숙취가 거의 없다. 생 더덕즙이 갖는 효능이 호흡기의 가래를 삭이고 위장을 튼튼하게 해 뒤탈을 없애준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낙안읍성 민속양조장에서는 서민들의 술인 막걸리도 함께 만들고 있다. 92년 경희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가업을 이어가는 장남 장호씨(41)는 “낙안 사삼주야말로 ‘웰빙시대’에 걸맞은 술”이라고 말한다. 요즈음 젊은층이 소주와 맥주·양주 등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으나 언젠가 이같은 전통주의 진가를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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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06) 3大소주 ‘제주 고소리술’

 

경향신문 / 2005-04-06 16:18

 

 

‘눈물 한 방울에 술 한 방울’
장작불을 때며 술을 내리는 고소리술의 제조과정을 지켜보며 어느 시인은 이렇게 읊었다. 매캐한 장작불 연기에 눈물을 줄줄 흘려야만 고소리에서 흘러나오는 술 한 방울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소리술은 제주의 토종 좁쌀과 지하수로 빚어낸 증류식 소주로, 토기로 된 증류기인 고소리에서 술을 내린다 하여 고소리술이란 이름이 붙었다.

제주를 대표하는 민속소주
화산토양 제주도는 쌀이 매우 귀했다. 따라서 제주에서는 쌀보다 잡곡 등을 원료로 술이 빚어졌다. 그 대표적인 술이 좁쌀을 원료로 한 고소리술이다. 1520년 조선 중종때 김정이 쓴 ‘제주풍토록’에는 ‘쌀이 매우 적어 청주는 귀하고 소주를 쓴다’고 적혀 있다. 1653년 탐라지에도 ‘소주를 많이 마신다’고 적혀 있듯이 제주에서는 증류식 소주가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소리술은 이처럼 과거 제주선인의 삶과 혼이 깃든 전통주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전통적인 제조방법에 의한 고소리술은 명맥을 잃어가고 있다. 소주는 600년전 중국 원나라때 처음 생산됐다. 한반도에 들어온 소주는 지역마다 명칭을 달리했다. 특히 몽골의 전초기지가 있었던 제주, 안동, 개성에서 소주가 많이 빚어짐에 따라 제주소주, 안동소주, 개성소주가 유명해졌다. 고소리술은 우리나라 3대 소주의 하나인 셈이다.

힘든 제조과정만큼 귀한 술
고소리술은 오메기술을 만든 뒤 재증류과정을 거쳐 나오는 술로 전통적인 제조과정이 복잡하다. 우선 좁쌀을 갈아 가루로 만든 뒤 물에 반죽해 오메기떡을 만든다. 오메기떡을 물에 넣어 끓인 뒤 맥보리로 만든 재래누룩과 섞어 술독에서 발효시킨다. 숙성기간은 겨울은 15일, 여름은 7일 정도다. 이 과정에서 누룩을 다시 첨가, 술기운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 이를 술을 일으켜 세운다고 한다. 2차 숙성이 끝나면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구수한 맛이 배어나오는 오메기술이 된다. 고소리술을 만들려면 오메기술이 익었다고 판단된 상태에서 무쇠솥에 넣고 30분 정도 끓여줘야 한다. 이어 고소리를 무쇠솥 위에 올려놓고 장작불로 계속 끓인다. 이때 고소리와 솥사이는 띠로 친친 감아 증기가 새나가지 못하도록 하고 고소리 위에는 알코올 증기의 냉각이 잘 되도록 찬물을 채워넣는다. 고소리 안에서 알코올 증기가 이슬로 변하면서 주둥이를 통해 맑고 투명한 술이 한 방울씩, 한 방울씩 떨어지게 된다. 고소리 한솥에서 떨어지는 술방울을 다 모아야 겨우 1병을 채울 수 있다. 이처럼 전통적인 고소리술 제조방법은 최소한 한달 이상 걸려 상당한 고역이 따른다. 경조사나 제사에 대비해 고소리술을 빚는 어머니의 몸에서는 항상 술냄새가 배어있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고소리술은 어머니 향내를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모향주, 또는 사모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독특한 맛과 향, 해산물 안주 일품
고소리술은 알코올 농도가 약 40%로서 무색이고 향취는 약간 탄듯하면서도 고소하다. 목에서 깨끗이 넘어가며, 원료에서 오는 독특한 맛과 향이 일품이다. 많이 마셔도 몸을 괴롭히지 않고 뒤끝이 없다. 누룩의 종류에 따라 알코올 농도가 다르다. 고소리술 전수자의 한 사람인 고(故) 고익만씨는 70%까지 나가는 고소리술을 만들었다고 한다. 1960년대 후반까지도 제주 중산간 마을에서 고소리술을 제조, 주둥이가 좁은 술항아리인 옹기에 담아 팔기도 했다. 고소리술과 유사한 술로 허벅술을 들 수 있다. 허벅술은 1996년 제주 신라호텔에서 개최된 한·일정상회담 당시 일본 하시모토 총리가 무척 좋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하시모토 술’이라는 별명과 함께 유명세를 탔다. 허벅술은 오크통에 1년동안 저장, 숙성시킨 후 출하한다. 알코올 농도 35%의 독주이지만 맛이 부드러워 부담없이 마실 수 있다. 고소리술과 궁합이 맞는 안주는 육류보다 나물종류나 해산물이라 할 수 있다. 술 자체가 담백하기 때문이다. 산나물이나 제주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해산물로 만든 전, 옥돔구이 등을 안주로 곁들이면 술맛은 더욱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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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05) ‘경주 교동법주’

 

경향신문 / 2005-03-30 16:33

 

 

혀 끝에 착 감기는 달콤한 맛, 노르스름하고 투명한 빛깔, 곡주 특유의 향긋한 냄새. 경주최씨 가문에서 대대로 빚어온 교동법주는 조상 제사와 손님 접대를 위한 가양주(家釀酒)로 우리나라 민속주의 대표주자로 꼽히고 있다. 맛과 빛깔, 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경주 교동법주는 화학주가 아닌 살아 있는 술이다. 그래서 과음을 해도 취하는 줄 모르고, 마시고 난 뒤에도 숙취를 거의 느낄 수 없다. ‘경주 가서 교동법주 맛보지 못했으면 경주 헛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애주가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이 술은 경주최씨 가문에서 며느리의 손끝으로 전해져 독특한 맛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경주 최부자 집과 교동법주
교동법주는 만석꾼 집안으로 유명한 경주 최부자 집에서 350여년간 빚어오고 있다. 초기에는 제사용, 손님접대용으로 제조했으나 독특한 맛으로 인기를 더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최부자 집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준수하면서 인심을 쌓아왔다. 예부터 분에 넘치는 벼슬을 탐하지 말고 필요 이상의 축재를 멀리하라는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진정한 부자소리 들으려면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게 최씨 집안의 가훈이다. 사람 사는 집의 인심 소문은 과객의 입에서 난다는 말처럼 손님을 따뜻하게 대접해 왔다. 법주를 처음 빚은 사람은 현재 기능보유자인 배영신씨(89)의 남편 최종씨(작고)의 9대조인 최국선으로 전해져 온다. 그는 조선 숙종 때 임금님의 수라상 및 궁중음식을 감독하는 사옹원(司甕院)의 참봉을 지냈다. 그는 사옹원의 실무 책임자로 봉직하다가 낙향하여 법주를 빚었다. 이는 법주가 궁중으로부터 유래된 술임을 시사해 준다.

민속주의 대명사
찹쌀 특유의 진득한 감촉이 돋보이는 교동법주는 은은한 향기와 입에 달라붙는 맛이 일품이다. 놋잔에 담긴 교동법주는 밝고 투명한 미황색을 띠면서 고급스러움을 더해준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도 시각적으로 술맛을 음미하게 한다. 황남빵과 함께 경주의 대표적인 특산품으로 꼽히는 교동법주는 고종때 진상품으로 오르기도 했다. 경주시가 1998년부터 매년 주최하는 ‘한국의 술과 떡잔치’에 매년 출품되는 교동법주는 국내는 물론 외국인으로부터도 인기품목으로 인정을 받아왔다.

맛의 비밀은 토종찹쌀과 우물물
최상의 술을 빚기 위해 원료부터 차별화를 꾀한다. 원료는 비교적 간단하다. 찹쌀과 밀누룩, 우물물이 전부다. 그러나 일반 술은 멥쌀로 제조하는 데 비해 교동법주는 토종 찹쌀을 고집한다. 누룩도 엄선된 밀누룩만 쓴다. 물은 100년 넘은 구기자 나무 뿌리가 드리워진 집안 우물물만 사용한다. 배할머니는 ‘명주는 명수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술 담그기를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석달 열흘은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술은 원재료 못지않게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하루에 20여병(900㎖들이)만 생산하고 별도의 유통망도 갖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제조시설이 재래식인 탓도 있지만 최고의 술은 희소성과 품격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대리점이 없는데다 인터넷이나 우편으로도 구입할 수 없고 교동마을 최씨 고택에 가야만 살 수 있다. 술 빚을 양의 10분의 1에 해당되는 찹쌀과 누룩 물로 밑술을 만들어 약 10일간 발효시킨다. 밑술이 익으면 덧술을 만드는데 밑술에 물을 붓고 끓여서 식힌 뒤 찹쌀로 지은 고두밥을 섞어 넣는다. 20여일이 지난 뒤 용수(술 거르는 기구)로 거른 뒤 두 차례의 숙성단계를 거치면 술이 완성된다. 미황색을 띠며 찹쌀 특유의 진득한 감촉과 더불어 순하면서도 곡주만의 강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교동법주와 사연지 ‘맛있는 만남’
경주최씨 집안에 대대로 전해오는 사연지는 교동법주에 딱맞는 안주다. 싸서 넣은 김치라는 뜻의 사연지는 큰 새우 속살 등을 배추잎으로 싼 것으로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실고추에 버무린 해산물이 맛을 더해준다. 시원한 국물 맛도 빼놓을 수 없다. 톡쏘듯 찡한 맛으로 겨울철 별미 보쌈김치를 연상케 한다. 북어포를 참기름에 버무린 북어포무침, 송화·깨 등을 갈아 만든 다식, 전과 등도 교동법주와 궁합이 맞는 안주로 꼽힌다. 최씨 집안에서 내놓는 안주는 모두 손수 만들어 정성이 묻어나 입맛을 더욱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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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04) ‘앉은뱅이 술’ 한산소곡주

 

경향신문 / 2005-03-23 16:21

 

 

한산소곡주는 백제시대부터 건지산 맑은 물로 빚어내는 명주(銘酒) 중의 명주다. 기록에 남아 있는 우리나라 전통민속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술로 역사만큼이나 맛과 향이 뛰어나다. 백제시대부터 면면히 흘러온 제조비법은 지금은 충남 서천군 한산면 나씨 집안에서 전수해 장인정신으로 특유의 향과 맛을 이어가고 있다.

최고(最古)의 명주, 맛도 최고(最高)
옛 백제왕실에서 즐겨 마시던 소곡주는 백제 멸망후 망국의 한을 달래기 위해 백제 유민이 한산지역에서 다시 빚어 마신 게 유래가 됐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살펴보면 ‘다안왕(多晏王) 11년(318)에 추곡의 흉작으로 민가에서 제조하는 소곡주를 전면 금지하였다’고 기록돼 있고 ‘무왕 37년(635) 3월 왕이 조정 신하들과 백마강 부근에서 소곡주를 마시어 그 흥이 극치에 달했다’고 적혀 있다. 조선 초기에는 왕실은 물론 민가에 가장 많이 알려진 술로 기록돼 있다. 술에 얽힌 재미난 얘기도 많다. 조선시대 때 한양에 과거보러 가던 선비가 한산지방을 지나다 목이 말라 인근 주막에 들러 미나리부침을 안주로 소곡주 한잔을 마셨다. 그 맛이 너무 좋아 두잔째부터 취흥이 돋은 선비는 시를 읊고 즐기다 시간을 보내 결국 과거를 치르지 못했다. 여기에서 술맛에 취하면 자리에서 일어설 줄 모른다 하여 ‘앉은뱅이 술’이란 별명을 얻게 됐다.

독특한 들국화 향… 고혈압 방지효과도
한산소곡주는 저온에서 100일간 발효숙성시켜 제조한 곡주로 독특한 감칠맛과 깊고 그윽한 향이 으뜸이다. 피를 맑게 해주고 말초혈관을 확장, 혈관운동 중추를 억제하는 혈압강하 작용이 있어 고혈압 방지효과가 뛰어나다. 인공 첨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뒤끝이 깨끗하고 숙취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한산소곡주를 빚을 때 사용되는 재료는 찹쌀·메주콩·누룩·들국화 등으로 신토불이 재료만을 엄선해 사용한다. 특히 들국화는 그윽한 향과 강한 살균력으로 잡미를 없애 순수 곡주 그대로의 감칠맛을 낸다. 한산소곡주는 술을 내리는 정성에 따라 그 맛에 차이가 나는데 양력으로 12월, 음력으로 10월에 술을 내려 그 이듬해 1월까지 100일 동안 익힌 술을 으뜸으로 친다.

세계인의 명주 꿈꾼다
최근들어 청와대 만찬 등 각종 주요행사에 소개되면서 한산소곡주는 명성을 얻었다. 지난해 농림부 주최 ‘2004 한국전통식품 베스트5 선발대회’에서 우리 고유 전통주류부문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할 만큼 한산소곡주 명성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동안 대형 유통매장 등을 중심으로 탄탄한 판매망을 구축한 한산소곡주는 이제부터 세계시장을 향해 눈을 돌리고 있다.

미나리부침·육회 등과 찰떡궁합
한산소곡주와 궁합이 맞는 안주로는 단연 미나리부침이다. 과거를 보러 가다 술맛에 취해 주저앉은 선비가 먹던 안주도 바로 미나리부침이었다. 미나리는 향긋한 맛이 일품인 계절채소로 비타민A·C의 보고로 불릴 만큼 영양소가 풍부하다. 특히 한방에서는 신경통·류머티즘·혈압강하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고혈압 방지효과가 있는 한산소곡주와 닮은 꼴이다. 요즘에는 미나리부침 외에 육회, 아구찜 등이 애주가로부터 손꼽히는 안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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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03) 지리산 솔송주

 

경향신문 / 2005-03-16 16:18

 

 

은은한 솔향, 입안에 맴도는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맛. 지리산 솔송주의 매력이다. 솔송주는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사는 하동 정씨 집안에서 제조법이 대대로 전수되고 있다. 개평마을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반고을로 흔히 ‘좌(左)안동 우(右)함양’ 할 때 우함양이 지칭하던 곳이다. 그만큼 개평마을에서는 1년 내내 선비들의 시와 풍류가 끊이지 않았다. 바로 그 주안상에 오르던 술이 지금의 솔송주라는 이야기다. 1996년 주조허가를 받아 대량 생산의 길로 접어든 솔송주는 특유의 향과 맛으로 이제 대중적인 술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정여창과 솔송주
개평마을은 조선시대 동방오현(東方五賢)의 한 사람인 성리학의 대가 문헌공 일두 정여창(鄭汝昌·1450~1504) 선생의 고향이다. 중요민속자료로 보존되고 있는 선생의 생가는 한때 KBS 대하드라마 ‘토지’의 최참판댁 배경으로 활용돼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개평마을에 모여 사는 그의 후손들에게는 선생 때부터 솔송주가 가양주(家釀酒)로 명성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학문이 높았던 선생의 집에는 선비의 방문이 줄이었다. 선생에게 시집온 정종(定宗)의 손녀인 완산 이씨는 접대를 위해 솔순·솔잎을 넣어 술을 빚고 엿과 식혜를 만들었다. 술은 임금에게도 진상했다. 거기에 들어간 쌀이 많게는 한 해 300석에 달했다. 솔송주의 내력이 500년을 훨씬 웃도는 셈이다. 다만 선생의 집안에서 불리던 본래 술 이름은 송순주(松筍酒)였다는 점만 다르다. 주조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먼저 등록된 명칭을 피하다 보니 새 이름이 불가피해서였다. 개평마을 앞에 자리잡은 제조회사 ‘지리산 솔송주’의 정천상 대표(59)는 선생의 16대손이다.

약주(藥酒)의 ‘으뜸’
솔잎·솔순 등을 재료로 한 술은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이 즐겨 마신 약용주다. 송순주, 송주, 솔잎주 등 다양한 이름도 그 때문이다. 선비의 기개와 절개를 상징하던 늘푸른 소나무가 술의 재료로 널리 이용된 이유는 그 효능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소나무는 솔잎·속껍질·솔방울·송진은 물론 뿌리부터 마디에 이르기까지 유용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는 약재 덩어리로 통한다. 특히 솔잎에는 비타민·엽록소·칼슘·철분과 체내 합성이 불가능한 필수 아미노산 등 다양한 영양성분이 들어 있다. 또 혈당을 낮춰주는 글리코키닌도 함유, 당뇨병에도 도움을 준다. 비타민C와 철분이 풍부해 빈혈에도 좋다. 혈액순환을 개선해 고혈압과 중풍 등 성인병을 예방하는 데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솔송주의 시장개척
지리산 솔송주는 유사한 술 가운데 주류시장 입성에 성공한 브랜드로 평가받는다. 지리산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과 한국 토종 솔을 재료로 고집한다는 점이 먹혀들었다. 상품 다양화와 함께 국내외 주류 박람회를 쫓아다닌 정천상 대표의 마케팅 노력과 부인 박흥선씨의 정성이 담긴 제조도 밑바탕이 됐다. 1999년 농림부 주최 전국 우리식품 품평회에서 주류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솔송주는 알코올 13%의 약주와 40%의 리큐어주 두 가지가 독특한 모양의 도자기나 유리병에 담겨 전국 48개 대리점에서 판매되고 유통회사를 통해 백화점 등에도 납품된다. 회사측은 과실주인 복분자술과 머루주도 함께 생산하는 등 상품을 다각화했다. 세가지 술의 국내 매출액만 연간 50억원대에 이르렀다. 농가소득 향상 등에 기여한 공로로 민속주 제조업체로서는 드물게 2002년 철탑산업훈장을 받는 영예도 안았다. 2003년 하반기부터는 수출에도 눈을 돌렸다. 일본을 대상으로 처음 시작한 수출은 미국·홍콩 등으로 대상지역이 늘어났다. 수출액은 연간 20억원대를 돌파했다. 지금은 복분자술이 수출 주품목이지만 솔송주도 중국 등 바이어가 관심을 보이고 있어 전망이 밝다.

석이버섯과 먹으면 신선놀음
과거 개평마을에서는 지리산 솔송주의 안주로 석이(石耳)무침을 애용했다. 마치 바위에 붙은 귀같다고 해서 이름이 지어진 석이는 깊은 산 바위에 붙어서 자라는 지의류(地衣類)의 일종으로 담백한 맛을 지니고 있고 무침·튀김·탕 등의 재료로 이용된다. 동의보감에서는 석이를 ‘오랫동안 살 수 있게 하고 얼굴빛을 좋아지게 하며 배고프지 않게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선승들이 즐겨 먹어 신선의 식품으로 불리는 솔과 닮은 꼴이다. 담백한 석이는 솔송주의 깔끔한 뒷맛을 더욱 짙게 한다. 석이가 아니라도 송이 등 버섯류도 역시 솔송주와 어울리는 안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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