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Drink'에 해당되는 글 155건

  1. 2015.07.14 [우리 술 이야기] 100가지의 꽃으로 빚다, 백화주
  2. 2015.07.14 [우리 술 이야기] 단오날 축제와 함께 즐기던 세시주, 창포주
  3. 2015.07.14 [우리 술 이야기] 연꽃이 만개하는 소리를 들으며 즐기는 명주, 연엽주
  4. 2015.07.14 [우리 술 이야기] 선비들이 상비(常備)했던 반주(飯酒), 송순주
  5. 2015.07.14 [우리 술 이야기] 진달래꽃으로 빚는 명주, 두견주
  6. 2015.07.14 [우리 술 이야기] 눈 오는 밤, 청아한 매화향으로 고조되는 흥취, 매화주
  7. 2015.07.14 [우리 술 이야기] 한 해의 가족 건강을 기원하며 설날에 마시는 세시주, 도소주
  8. 2015.07.14 [우리 술 이야기] 전통주를 음미하기 위한 맛, 향, 색의 판별방법, 대모(大母)와 전통주 감정
  9. 2015.07.14 [우리 술 이야기] 깨끗한 맛과 다양한 향이 일품, 술제떡
  10. 2015.07.14 [우리 술 이야기] 우리 술 문화의 중심, 반주(飯酒)
  11. 2015.07.14 [우리술 이야기] 전통주에서는 누룩냄새만 나는 걸까? 방향(芳香) 2
  12. 2015.07.14 [우리술 이야기] 청향(淸香)을 자랑했던 우리의 전통 청주
  13. 2015.07.14 [우리 술 이야기] 조상들의 지혜와 정성이 담긴 전통양조의 우수성, 전통 양주법
  14. 2015.07.14 [우리 술 이야기] 술의 성패를 좌우하는 누룩, 전통 누룩의 종류
  15. 2015.07.14 [우리 술 이야기] ‘술의 뼈’, ‘술의 혼’이라 불리는 누룩, 누룩술
  16. 2015.07.14 [우리 술 이야기] 수많은 전통주를 분류하는 기초 상식, 가향주와 약주
  17. 2015.07.14 [우리 술 이야기] 수많은 전통주를 분류하는 기초 상식, 전통주의 종류
  18. 2015.07.14 [우리 술 이야기] 민족생활의 공감(共感)으로 형성된 우리 술, 전통주의 정의
  19. 2015.07.14 홈브루 키트만 있으면 우리 집 맥주 즐겨요
  20. 2015.07.14 Special Knowledge <306> 세계 각국의 대표 맥주
  21. 2015.07.14 개나리酒·진달래酒·목련酒… ‘홈메이드 약술’ 담가보세요
  22. 2015.07.14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통주 대표선수’가 뛴다
  23. 2015.07.14 [전통주 명인의 술 이야기] <7> 송화백일주 벽암 스님
  24. 2015.07.14 [전통주 명인의 술 이야기] <6> 지리산 솔송주 박흥선 씨
  25. 2015.07.14 [전통주 명인의 술 이야기] <5> 추성주 양대수 씨
  26. 2015.07.14 [전통주 명인의 술 이야기] <4> 민속주 안동소주 조옥화 씨
  27. 2015.07.14 [전통주 명인의 술 이야기] <3> 소곡주 우희열 씨
  28. 2015.07.14 [전통주 명인의 술 이야기] <2> 계명주 최옥근 씨
  29. 2015.07.14 [전통주 명인의 술 이야기] <1> 문배주 이기춘 씨
  30. 2015.07.14 [전통주 기행] (63) 경북 영주의 ‘오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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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百花)주는 그대로 풀이하면 100가지 꽃이 들어간 술을 뜻하는데, ‘백화’는 ‘많다’, ‘완성’ 이라는 뜻의 온갖 꽃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백화주가 새로 익어 그 기쁨에 긴 구절을 얻었다’

“처(妻)가 해마다 양잠하고 길쌈하며, 백화(百花)를 따서 술을 빚어 나에게 준다.” 조선시대 반가의 음식조리서 중 백미로 꼽히는 [규합총서(閨閤叢書)]의 저자 빙허각 이씨의 남편 서유본이 쓴 [좌소산인문집(左蘇山人文集)]에 소개된 글의 일부분이다. 이 글에는 “백화주신숙희이부장구(百花酒新熟喜而賦長句)”란 구절이 있는데, ‘백화주가 새로 익어 그 기쁨에 긴 구절을 얻었다’는 뜻 정도로 풀이된다. 서유본이 아내가 쓴 [규합총서]의 서두에 “산거일용(山居日用: 농촌생활에 두루 필요한 것)에 긴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 내가 이 책을 규합총서(閨閤叢書)로 명명한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혹시 책 이름도 손수 백화주를 빚어준 데에 대한 보답의 차원에서 지어 주어 준 것은 아니었을까. 남편 서유본은 해마다 양잠하고 길쌈하는 바쁜 가운데 때때로 꽃을 따 모으고, 그 꽃을 넣어 술을 빚는 아내의 정성과 오랜 시간을 거쳐서 곰삭아 나는 술맛과 향취를 자랑하고 싶었으리라. 아내 빙허각 이씨가 손수 빚어 상에 차려낸 백화주를 감상하는 서유본의 흥분된 표정과 거드렁거리는 걸음새가 느껴질 정도로, 그의 시에서는 음주 후의 진한 향취와 흥취, 정취가 묻어난다.

 

계절변화와 주제에 따른 시주풍류에 어울리는 으뜸의 술

예나 지금이나 애주가들의 자랑이자 멋진 풍류 가운데 하나가, 때를 맞춰 술 빚어 주는 아내와 그 술이 익기를 기다려 친구를 부르고 함께 흥취가 물씬 풍기는 술자리를 펴는 일, 곧 풍류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계절변화와 주제에 따른 시주풍류에 어울리는 으뜸의 술로, 그리고 무엇보다 술에 꽃향기를 불어 넣은 가향주 중 으뜸은 백화주(百花酒)가 아닐까 싶다. 백화주라고 하는 술 이름이 암시하듯 100가지 꽃이 들어간 술을 뜻하는데, 여기서 백화(百花)란 100 가지 꽃을 지칭하는 한정된 개념이 아니라 ‘많다’, ‘완성’이라는 뜻의 온갖 꽃을 가리킨다. 온갖 꽃향기가 어우러진 술 백화주의 향기는 어떠한 감흥을 주는 걸까?

 

우선 백화주를 빚는 법에 있어 옛 문헌을 상고하면 [음식보]를 비롯하여 [민천집설], [증보산림경제], [규곤요람], [김승지댁주방문], [임원십육지] 등이 있다. 이 중 [규합총서]의 백화주는 엄동설한에 반쯤 핀 설중매의 꽃잎을 비롯하여 1년동안 동백꽃, 개나리, 진달래, 살구꽃, 복숭아꽃, 자두꽃, 연꽃, 구기자꽃, 앵두꽃, 국화, 창포꽃, 목련, 백일홍, 장미, 맨드라미, 벚꽃, 취꽃, 목단 등 온갖 꽃을 꽃이 피는 때에 송이째 따서 물에 깨끗이 씻어 그늘에 말린 다음, 종이봉투에 담아 보관해 두었다가 국화가 피어나는 중양절에 맞추어 이 꽃들을 이용하여 술을 빚는다고 하였다. 또 “꽃 가운데는 채취했을 당시 생물(生物)일 때에는 비록 향기가 좋더라도 마른 후에는 향기가 가시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국화나 라일락과 같이 꽃은 마른 후에도 향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꽃을 주장을 삼고 복숭아, 살구꽃, 매화, 연꽃, 구지자꽃, 냉이꽃 등은 약효가 인정되는 꽃이므로 그 양을 넉넉히 넣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한편, [규곤요람]에는 “금은화, 국화, 송화, 매화 등 온갖 꽃 백가지를 모아서 말렸다가, 모시자루에 담아 항아리 밑바닥에 넣고 술을 빚는다.’” 수록되어 있어, 두 가지 양조방법이 존재했음을 볼 수 있다.

 

백화주를 빚는 법에 있어 유의할 일은 술 빚는 시기와 물의 선택이다. [규합총서]에 이르기를, “꽃을 모으되 송이째 그늘에 말렸다가 중양절에 술을 빚는다.”하였고, “술을 빚는 물은 특별히 강 한가운데서 떠온 물이나 돌 틈에 괴는 물을 써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술맛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중양절에 술을 빚는 까닭은 양의 수인 9가 겹쳤다고 해서 이 날은 일년 중 양(陽)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날로 여긴데서 기인한다. 또 양조용수를 강 한가운데에서 길어 온 물과 돌 틈에 괸 물을 사용한다는 것은 집안이나 마을의 우물물과는 다른, 다시 말해서 센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술은 양(陽)인데 양의 기운이 충만한 날에 술을 빚으면 술에 양의 기운이 왕성해져 지게 되므로, 술을 마심으로써 모든 사악한 음의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한편 센물을 사용한다는 것은 물의 성질로 인해서 마른 꽃이 지니고 있는 은은한 향기를 강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 되기도 하였다.

 

‘선비정신’에 입각한 전라북도 김제 ‘학성강당’의 백화주

우리나라 토속주 가운데 가전(家傳)되는 유일의 백화주를 전라북도 김제지방의 ‘학성강당’에서 맛볼 수 있다. ‘학성강당’은 조선 성리학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는 개인 서당으로, 안동의 도산서원이나, 영주의 소수서원, 서울의 도봉서원 등과 같이 조선시대 선비들이 학문을 닦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주인인 훈장은 경주김씨 종회(52세) 씨로, 선친 화석(和石) 김수연(金洙連) 선생의 뒤를 이어 기호학파의 맥을 잇고 있어, 조선 성리학의 뿌리를 온몸으로 지켜내면서 유학을 전파하고 있는데, 그가 예의 백화주를 빚는 사람이다. 백화주는 학성강당에서 250년 전부터 전수된 가양주(家釀酒)의 하나로, 백 가지 약초를 재료로 한 백초주(百草酒), 백화주와 백초주를 섞은 백초화주(百草花酒) 등 세 가지 비법이 전해온다. 그 중에 백화주가 백미인데, [규합총서(閨閤叢書)]의 백화주 빚는 법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학성강당의 백화주에 대한 유래는 훈장 김종회의 13대 조부 김호의(金好衣)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는 기묘사화와 함께 중앙정계를 떠난 조광조(趙光祖)의 제자였다. 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학문을 끊지 말 것이며, 높은 벼슬에 오르지 말 것이며, 큰 부자가 되지 말 것이며, 문집을 만들지 말 것이며, 매년 섣달에 백화주·백초주 중 한 가지를 빚어 제사와 손님 받들기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유훈(遺訓)을 [가승보]와 [경주김씨세보]에 남겨, 그의 후손들은 지금까지 이를 지키면서 몸소 실천하고 있다. 청빈한 삶 속에서 끊임없이 학문을 닦고 수행하는 선비의 단아한 기품을 지키라는 뜻의 그 유훈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 학성강당은 누구든 찾아와 제 힘으로 먹을거리와 입을거리를 마련하면서 무료로 한학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과 함께, 백화주는 판매도 되지 않을 뿐더러 자주 빚지도 않고, 순전히 제사용과 접빈용으로 1년에 쌀 한 가마 분량만 빚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 양이 60병 정도에 그친다는 사실만으로도 백화주를 조상들의 ‘선비정신’에 입각해 주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성강당의 백화주(百花酒)는 밑술에 두 차례의 겹술(덧술)을 한 뒤, 세 번째 겹술로 이른 봄 매화에서부터 늦가을 감국까지 김제 들판에서 자라는 풀꽃과 꽃나무에서 채취한 백 가지 꽃을 담아 최소한 40일에 걸쳐 익혀진다. 학성강당의 백화주는 도수(14%)에 비해 진하고 쓰다는 것이 일반적인 세평(世評)이다. 알코올기가 느껴지는 탕약 같기도 한 이 술을 마시고 나면 입에서 은은한 향기가 도는 술인 것이다. 이러한 백화주는 원기(元氣)를 보(補)하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규합총서]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실제적인 효능으로 첫째는 기력을 회복시켜주고 둘째는 기혈작용이 있으며, 셋째는 원기회복에 좋고, 다섯째는 당뇨치료에 효과가 높으며, 여섯째는 혈압을 낮춰주며, 일곱째는 피를 깨끗하게 하고 근육을 강화시켜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20여 년 전부터 백화주를 최상의 가향주로 그 가치를 홍보해 왔는데, [규합총서]의 방문을 따르되, 특히 국화 외에도 자두꽃을 주장으로 삼아 백화주를 재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 방법의 첫째는 구멍떡을 삶아 익힌 후에 떡 삶은 물과 누룩을 섞고 발효시킨 후에 이를 밑술로 삼아 물 없이 고두밥과 백화만을 사용하여 덧술을 하는 2양주법이다. 둘째 방법은, 쌀가루를 끓는 물로 반죽하여 익힌 떡에 누룩가루를 섞어 발효시킨 밑술에 고두밥과 백화를 합하고 고루 버무려 덧술을 빚는 방법이다. 이와 같은 방법의 백화주는 빚은 지 40일만에 발효가 끝나기 때문에 술에 용수를 박고 시간을 두고 채주를 하는데, 앞서의 방법은 부드럽고 향기가 은근하여 여성적인 술인데 비하여, 후자의 방법은 ‘콕 쏜다’ 할 만큼 강한 향취와 자극적인 맛이 남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다른 방법의 백화주가 갖는 공통점은 무엇보다 그 향기가 뛰어나다는 점이다. 마치 온갖 향수를 뿌려 놓은 것처럼 기이한 방향으로 정신이 혼미해 질 정도였으며, 그 맛이 특별히 뛰어나다는 사실에 이의가 없다.

 

백화주 빚어보기

고전문헌 [고려대규합총서]에 입각한 백화주 재현 방법을 알아보자.

 

백화주 밑술 만들기 – (1) 떡 빚기

백화주 밑술 만들기 – (2) 떡 삶기

 

백화주 밑술 만들기 – (3) 떡 으깨기

백화주 밑술 만들기 – (4) 빚기 (이후 빚은 밑술을 독에서 숙성시킴)

 

백화주 덧술 만들기 – (1) 범벅 만들기

백화주 덧술 만들기 – (2) 범벅에 밑술 혼합

 

백화주 덧술 만들기 – (3) 범벅에 누륵 혼합하기

백화주 덧술 만들기 – (4) 덧술 안치기

 

2차 덧술 – (1) 재료가 될 여러 꽃들

2차 덧술 – (2) 덧술 빚기

 

2차 덧술 – (3) 백화 혼합하기

2차 덧술 – (4) 술 안치기

 

2차 덧술 – (5) 백화 덮기

2차 덧술 – (6) 발효 중인 백화주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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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에 마시는 세시주인 창포주. 찹쌀고두밥에 누룩과 창포뿌리를 짓찧어 낸 즙으로 빚은 술이다. 사진은 창포주와 창포뿌리.

 

 

 

옛 문헌으로 살펴보는 창포주

단오날(端午日) 하면 ‘그네와 씨름’, ‘창포’가 연상되는 것은, 이 두 가지가 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남녀노소가 다 같이 즐겼던 철갈이 풍속이자 하나의 놀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조선시대 후기까지만 하더라도 단오는 설, 추석과 함께 4대명절의 하나였다. 5월에는 두레놀이가 성행했거니와 문밖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처녀들에게 있어 어쩌면 1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단오날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오날만큼은 산이며 들로 나들이도 가고, 또래들과 어울려 널이며 그네를 뛰는 등 ‘자유로운 하루’가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오날의 대표적인 시절식이 수리취떡이라면 이날의 세시주는 단연 창포주(菖蒲酒)라고 할 것이다. 창포주는 찹쌀고두밥에 누룩과 창포뿌리를 짓찧어 낸 즙으로 빚은 술인데, 단오날에 창포주를 마시는 풍습은 그 역사가 매우 깊다.

 

창포주에 대한 기록으로는 [포은집]과 [목은집]이 가장 오래된 문헌인데, 이들 기록이 여말, 조선 초기의 문헌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고려시대에 창포주를 마시는 풍속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포은선생문집(圃隱先生文集)에 ‘우차둔촌운(又次遁村韻)’이라는 시가 있는데, “둔촌은 색을 피할 수 있으니/반드시 산림 속에 있을 것은 없네 / 도가 곧아서 시속에 거슬리지만 / 시를 지으면 정음에 가깝네 / 서울에서 구차하게 노년을 보냄에 / 절기는 또 5월로 돌아왔네 / 창포주를 가지고 가서 / 그대와 함께 한번 취해서 읊조리고 싶네”라고 하여 창포주 마시는 풍속이 선비들 사이에 음주문화로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또 이황(李滉, 1501~1570)의 [퇴계선생문집별집] 중 ‘단오(端午)’라는 제하의 시에 “창포주를 권하며 머물라 하나 나는 머물지 않고 / 길 나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구름 낀 산이 근심스럽네 / 들새들은 서로 짝을 불러들이고 시냇물은 급히 흐르는데 / 해질녘에 말 위에서 머리를 자주 돌려 뒤돌아보네"라고 하여 선비들 사이에 완상의 대상이었음도 알 수 있다. 고려말기 학자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익제집(益齋集)]의 ‘단오(端午)’라는 시에서는 “주점(旗亭)에서 또 창포주 한 잔을 마시니 / 술에 깨서 읊은 초나라 신하(굴원)의 글을 배울 필요가 없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창포주가 주점에서도 취급되었던 사실과 일반에까지 뿌리 깊은 문화로 자리매김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대표적 시인이자 풍류객으로 알려진 최경창(崔慶昌, 1587~1671)의 [고죽유고(孤竹遺稿)]에 수록된 ‘단오첩자(端午帖字)’를 보면, 창포주는 명절에 임금이 신하들에게 하사하고,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술이었음도 알 수 있다. 시에 “천문을 열어보니 연로가 통하고 / 햇빛이 처음 비추니 파도가 붉네 / 이슬이 명협에 구르니 훈풍이 돌고 / 연기가 이두에서 일어나니 / 자색기운이 얽혀 있네 / 낮 누수는 선정전 밖에 들리고 / 이른 조회는 막 건양궁 동쪽에서 흩어지네 / 임금 앞에서 창포주를 올리지 않으니 / 시절의 순서가 지금은 무더운 때에 해당하네"라고 읊고 있다.

 

창포주는 임금뿐 아니라 선비와 일반 백성들까지 다양한 계층이 즐기던 술이었다.

창포 다듬는 모습.

 

담습을 없애고 입맛을 돋우며 독을 풀어주는 약리작용

조선시대 중기에 접어들면 [동의보감]을 비롯 [임원경제지], [고사십이집], [농정회요], [산림경제집요], [양주방] 등에도 창포주에 관한 기록이 전해진다. [임원경제지]나 [양주방]의 창포주 제조법을 보면, “5~6월 경에 창포뿌리를 캐어 즙을 낸 다음, 찹쌀로 지에밥을 쪄서 누룩과 합하여 빚는다.”고 하고 있다. 또 ‘별법(別法)’으로 잘 익은 청주에 단오일 며칠 전에 창포뿌리를 침지하여 빚는 창포주도 소개하고 있는데, 이렇듯 단오날 창포주를 빚어 마시는 풍습은 창포의 방향성과 약성을 함께 취함으로써, 더워지는 여름을 대비하여 건강을 도모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창포는 석창포라고 하는 천남성과의 다년초로 전국의 연못이나 호수, 물가에 자생하는데, 창포의 향기가 뛰어나 악병을 쫓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석창포의 약리작용을 보면, 주성분으로 정유성분(아세톤)과 배당체를 함유, 그 성질이 따뜻하고 매운 맛이 있으며, 정신을 맑게 하고 혈액순환을 개선시킨다. 또한 잘 익힌 창포주를 하루에 5홉들이 잔으로 한 잔씩 세 번 마시면 기운이 화(和)하고 무병하여진다고 믿었으며, 담습을 없애고 입맛을 돋우며 독을 풀어준다고도 한다. 이 밖에도 귀먹은데, 목쉰데, 배 아픈데, 이질, 풍한 습비에도 효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한편, 창포주는 이미 빚어 둔 부의주(浮蟻酒)나 동동주, 기타 청주에 때 맞추어 창포뿌리를 넣어 재차 숙성시키거나, 그 향기와 약성을 침출하여 술과 함께 마시는 방법이 있다.

 

창포주를 빚기 위한 고두밥, 밑술, 누륵, 창포 달인 물.

 

야외에서 축제처럼 즐기는 즉흥적인 술

조선 전기 소세양(蘇世讓, 1486~1562)의 문집인 [양곡선생집(陽谷先生集)]에 수록된 ‘단오(端午)’라는 시를 보면 “오늘이 바로 단오이니 / 소년들이 무리지어 즐겁게 노네 / 거리마다 다투어 씨름을 하고 / 나무마다 그네를 뛰네 / 술잔에 창포를 띄어 따뜻하고 / 문에는 애호를 엮어 달았네 / 노인들이 하는 것이 무엇인가? / 밤새도록 책을 덮고 잠자는 것이네”라고 적혀있다. 또한 오도일(吳道一, 1645~1703)의 [서파집(西坡集)] 중 ‘대전 단오첩(大殿端午帖)’이란 시에는 “창포를 오래 묵은 술에 띄울 제 / 석류는 5월에 꽃을 피우네 / 금화전에서는 부지런히 한낮에 강의하니 / 시대의 운수가 형통하게 되었네”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창포주는 단순히 고즈넉하니 사랑방에서 마시기 보다는, 단오 무렵 물가에 나아가 야음을 하면서 물가의 창포를 뜯어 술에 띄우기도 하고 창포향기는 물론 단양(端陽)의 좋은 절기를 시(詩)와 함께 감상하는 시주풍류(詩酒風流)와 어울리는 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창포를 캐다 머리를 감기도 하고 뿌리를 캐어 비녀꽂이를 하는 풍속이 여인네들의 습속이었다면, 잘 익은 술에 창포잎이나 넣고 술과 더불어 하루를 즐기는 풍속은, 아름다운 창포향에 젖어 하루나마 세상사를 잊고자 했던 남성네들의 풍류였다 할 수 있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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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00년 전부터 빚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연엽주. 연꽃이 피는 소리를 듣는 ‘개화성’과 잘 어울리는 술이다.

 

 

 

한여름, 연꽃 피는 소리를 듣는 즐거움

옛 선비들의 풍류 가운데 ‘개화성(開花聲)’이란 게 있다. 한여름 새벽에 배를 타고 연지(蓮池)에 나가서 연꽃이 피는 소리를 듣는 즐거움을 일컫는 말이다. 연꽃은 동트기 전에 꽃망울을 터트리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조그만 조각배에 몸을 싣고 천천히 천천히 나아가 숨죽이고 귀를 세우다 보면, 어디선가 ‘퍽’하고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신비스럽기도 하고, 숨죽이며 귀를 세우면서 듣는 긴장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동이 트면서 햇발이 연지에 다다르면, 그 신비스럽기만 하던 개화성은 더 이상 들을 수 없다고 한다.

 

말로만 들었던 이 풍류를 경험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새롭기만 하다. 어느 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연엽주를 빚기 위해 고향마을에 있는 연방죽을 찾았다. 연방죽이라고는 하지만 사방 4km나 되는 매우 큰 연지였다. 일제 강점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지금은 돌보는 이가 없어 수초밭이나 다름없는 폐허가 되어 있었는데, 아직도 연꽃은 피고지고를 계속하고 있었다. 주민들의 눈을 의식해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섰다. 널빤지에 함석을 대서 만든 조그만 배를 빌려 타고 방죽 안으로 들어가, 연잎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그때 어디선가 개화성이 들려왔다. ‘벅’하는 소리였다. 이윽고 꽃봉오리가 터질 것 같은 연꽃 옆으로 나아가 숨죽이길 십여 분이 지났을까. 여기 저기서 ‘벅’, ‘퍽’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생전 처음이었다. 꽃잎이 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개화성’은 참으로 멋진 풍류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친화적이면서도 멋과 풍류가 깃든 연엽주 빚기

연엽주는 여러 가지 가향재(加香材) 가운데 특이하게 한여름에 피는 연잎(蓮葉)을 술에 넣는 가향주(佳香酒)이자 계절주이다. 연엽주가 언제부터 빚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는데, 500년 전부터 빚어졌던 것만은 분명하다. 1600년대 말엽으로 추정되는 [주방문]에 연엽주 빚는 법이 비교적 자세히 수록되어 있고, 이후의 문헌인 [산림경제]를 비롯하여 [증보 산림경제], [고사십이집], [규합총서], [임원경제지], [양주방], [주선무쌍신식요리제법] 등 조선 중기 이후의 여러 문헌에 술 빚는 법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엽주에 대한 유래는 “조선조 무장이었던 이완 장군이 부하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빚었다.”는 설과, “금주령 때 궁중의 제례용 술과 허약한 왕의 보신을 위해 신하들이 빚었다.”는 설 등 두 가지 얘기가 전해오고 있는데, 그 어떤 것도 정확하지는 않다.

 

문헌에 따라 술 빚는 법에서 차이가 있는데, [증보산림경제]의 기록을 보면, “찹쌀고두밥에 백곡을 섞어 버무린 다음, 연잎으로 싸서 띄운다.”고 하였으나, 후대의 문헌인 [규합총서]에는 “고두밥에 물과 가루누룩을 섞어 빚은 술밑을 술독에 안칠 때, 연잎과 솔잎을 켜켜로 안치고 찬 곳에서 익힌다.”고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규합총서]보다 훨씬 후대의 문헌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증보산림경제]의 술 빚는 법과 같으나, “연못 가운데 있는 연잎에 찰밥과 누룩 섞은 것을 싸서 짚으로 동여매어 나뭇가지로 고정시켜 두면, 이틀쯤 뒤에 술이 익는다.”고 기록되어 있어, 지금은 사라져버리고 말았지만 보다 자연친화적이면서도 멋과 풍류가 깃든 술빚기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연꽃. 옛 선비들은 연꽃이 피는 소리, 즉 ‘개화성’을 듣는 풍류를 즐기곤 했다.

연엽주 담그는 모습.

 

 

 

한편, 충남 아산 지방에 전해오고 있는 ‘아산 연엽주’는 예안 이씨 가문의 종부(宗婦)에게만 그 비법이 전수되어 온 궁중의 술로 알려지고 있으며, [규합총서]와 같은 방법으로서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 기능보유자 최황규 여사에 따르면, “예로부터 ‘남성의 양기(陽氣)를 보(補)하고 혈관을 넓혀 혈행(血行) 개선과 함께 피를 맑게 해준다’고 하여 가용 약주로 빚어져 오는 바, 이 지방에서는 ‘명약주(名藥酒)’로 더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아산 연엽주의 유래는 “과거 극심한 가뭄이 들면 쌀 소비가 많은 술을 못 빚게 하고자 금주령이 내려졌는데, 임금께서 술을 못 드시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긴 신하들이 차(茶)보다는 도수가 높고, 여느 술보다는 도수가 낮은 약주인 연엽주를 빚어 드시게 했는데, 비서승감(秘書丞鑑)을 지낸 예안 이씨 5대조가 당시 연엽주의 양조(釀造)에 관여했던 관계로, 그 제조법이 사가에 전해져서 이후 가문의 가양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아산 연엽주의 방문을 보면, 먼저 멥쌀과 찹쌀을 섞어 물에 깨끗이 씻어 불렸다가 시루에 안친 다음, 아궁이에 불을 지펴 고두밥을 짓고 익으면 퍼내서 꾸들꾸들해질 때까지 식힌다. 이어서 잘게 부순 누룩을 비롯 솔잎, 감초 등의 약재와 물을 섞어 술밑을 빚는다. 술 버무리기가 끝나면 술독에 먼저 연잎을 깔고, 그 위에 술밑과 연잎을 한 켜씩 켜켜이 안친 뒤, 안방 아랫목에서 보름 정도 익히면 완성된다. 연엽주는 “대취(大醉)하도록 마셔도 소피 한 번만 보고 나면 술이 다 깰 정도로 뒤끝이 개운하다.”는 평(評)을 얻고 있는데, 이는 ‘술을 빚는 이의 손맛과 지극한 정성이 들어가야 고유한 술맛이 살아난다’고 믿고 있는 이득선 씨의 고집 때문으로, 그의 부인 최황규 씨는 아직도 손이 많이 가는 옛 양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연엽주 담그는 모습. 한여름을 피하고 서리가 내리기 직전인 늦여름이나 입추 무렵에 채취한 연잎을 이용해야 술이 시어지지 않는다.

 

 

 

한여름 열기가 가라앉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가 술빚기에 가장 좋을 때

연엽주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볼 수 있는 옛 문헌 가운데, 가장 후기의 방문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이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수록된 연엽주는 이양주법(異釀酒法)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여느 술빚기와는 달리 술독을 사용하지 않고 발효시킨다는 점에서 와송주(臥松酒)나 죽통주(竹筒酒)와 같은 이양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방문을 보면, 찹쌀로 지은 고두밥에 팔팔 끓여 식힌 물과 누룩을 혼합하여 만든 술밑을, 연못 속의 살아있는 연잎으로 싸서 자연 상태에서 그대로 발효시키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연엽주는 매우 까다로운 술이다. 따라서 연잎의 수분이 가장 많을 때인 한여름은 피하고, 서리가 내리기 직전인 늦여름이나 입추 무렵에 채취한 연잎을 이용하여 빚어야 술이 시어질 염려가 없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또한 연엽주를 빚을 때는 날물(生水)을 쓰지 않도록 하고, 또 한여름의 열기가 가라앉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가 술빚기에 가장 좋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여름 다 지내고 가을로 접어들 무렵이면 연잎의 수분은 점점 줄어들면서 향이 좋아진다. 따라서 이때의 연잎으로 싸서 술을 빚게 되면, 연잎 자체의 향도 오묘해질 뿐 아니라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후 때문에 적정 발효온도가 되어, 단시간 내에 술이 익게 되며 술맛이 좋아진다.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 누정에 올라 연지의 연꽃을 내려다보면서 그 자리에서 술자리를 가질 수 있다면, 기회가 되어 ‘개화성’까지 감상할 수 있는 풍류를 즐긴다면, 그 이상의 술자리는 없다 할 것이다.

 

 

 

좋은 술에 걸맞은 좋은 술자리 문화 조성이 필요

지난 10여년 간 각종 강연과 실기지도를 통해 연엽주에 대한 가치를 알려왔다. 최근에야 남양주시를 비롯한 김포, 대구, 상주, 무안 등지에서 연엽주와 연화주가 개발되어 선을 보이기 시작했고, 앞으로 얼마나 많은 연엽주와 연화주가 등장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러한 전통주의 개발과 상품화가 지역특산주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과다생산과 경쟁으로 공멸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나 어두컴컴하고 난잡스런 분위기, 현란한 조명과 귀청을 때리는 음악소리에 묻혀 술이 술을 부르는 자리가 아닌, 시간이 흐를수록 지난 봄날에 가졌던 두견주음이나 도화주음, 창포주와 같이 자연과 더불어 마셨던 술자리가 생각날 때 연엽주와 그 음주문화의 가치는 새로워질 것이다.

 

연엽주는 특히 ‘계절성’과 ‘개화성’을 떠올릴 수 있는 풍류를 답보할 때, 애주가들로 하여금 연엽주 감상을 손꼽아 기다리게끔 하는 격조높은 명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멋과 흥이 따르는 술자리문화가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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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주는 그 어떤 전통주보다 준비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술로 알려져 왔으며, 동시에 신비한 맛과 맑은 향기,

특히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독특한 술 빛깔로 애주가들로부터 가장 선호받는 가양주로 뿌리를 내렸었다.

 

 

 

맛과 향기뿐 아니라 약효도 뛰어난 소나무

30년 가까이 전통주를 연구하고 가양주의 대중화운동을 전개해오면서 입버릇처럼 주문하는 것이 “적게 마실 수 있는 술을 빚도록 노력하라”는 말이다. 술이 기호음료인 것은 분명하지만, 음주가 지나쳐서 반주(飯酒) 양을 넘어서게 되면 반드시 건강을 망치고 후회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어른들의 반주로 가장 적합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정취를 간직한 술을 꼽으라면, 단연코 나는 송순주(松荀酒)를 추천한다. 또한 송순주는 가장 세계적인 술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는, 그만큼 가능성이 무궁한 술이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이는 바로 우리나라 전통의 술빚기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부재료가, 바로 소나무라는 사실에서다. 우선, 소나무는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면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나무이며, 잎과 순, 꽃, 줄기, 가지, 열매, 수액, 뿌리 등 어느 부위를 막론하고 향기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성인병에 대한 치료와 예방에 따른 약효도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른 봄에 새로 자라나는 소나무의 새순을 이용한 송순주는 주독해소(酒毒解消)에 뛰어난 효과를 나타내며, 위장병과 풍치, 신경 관계 질환의 치료와 예방, 동맥경화 예방, 수족마비 등 풍증(風症)과 마비(痲痹) 증상을 다스리는 효과를 나타낸다. 때문에 소나무를 부재료로 한 여러 가지 약주류 가운데 으뜸으로, 또 무엇보다 맛과 향기가 뛰어나다는데 송순주의 가치가 있다.

 

 

 

송순의 선택에 술의 품질이 달려있어, 혼양주법은 세계적인 양조기술

송순주에 대한 기록은 [치생요람], [산림경제], [규합총서], [임원십육지], [양주방], [술 빚는 법], [시의전서] 등 여러 문헌에 다양한 방법이 수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들 문헌에 의한 술빚기를 보면, 고두밥과 누룩에 송순을 넣는 일반 발효주법(醱酵酒法)이 있고, 곡주를 증류하여 소주를 빚은 후 다시 곡주를 빚는 과정에서 송순과 소주를 넣어 발효시키는 혼양주법(混釀酒法)의 송순주가 있는데, 혼양주법이 선호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혼양주라야 저장성이 높고 송순주 고유의 맛과 향기를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혼양주법의 송순주는 유럽의 포트와인이나 일본의 합성주법 보다 앞서 개발된 것으로 가히 세계적인 양조기술이라 할만하다.

 

위의 두 가지 방법의 송순주는 조선시대 명문가의 가양주로 전승되고 있어, 송순주가 반가의 가양주로, 특히 집안 어른과 노인들의 반주로 자리잡았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먼저, 대전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은진 송씨 가문의 송순주는 발효주법으로, 충남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예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 송순주는 조선조 인조 때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조정에 나아간 뒤, 특히 효종 때 송시열과 함께 서인(西人)의 대표적인 인물로 국정을 주도했던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 가문의 술이다. 지금은 은진 송씨 20대손 송봉기(73세) 씨의 처 윤자덕(72세) 씨에 의해 예의 맥을 잇고 있는데, 그 비법이 가전 기록인 한글필사본 [우음재방 주식시의]에 수록되어 있다.

 

술 빚는 법을 보면, 중복 무렵에 40일간 띄운 백곡을 가루내고, 멥쌀로 지은 백설기와 물을 섞어 된 반죽을 만들어 밑술을 안치는데, 15~20일간 발효시킨다. 이어 찹쌀을 깨끗이 씻어 불린 뒤, 고두밥을 짓고 이내 차게 식혀 밑술과 혼합하고 물을 되직하게 부어 술독에 안치는데, 이때 봄에 채취하여 준배해 두었던 송순을 술독 밑에 한 켜 깔고, 그 위에 술밑을 안친다. 술이 익기까지는 한 달이 소요되는데, 송순주는 엷은 보리차와 같은 밝은 담황색으로 진한 송순 향기와 함께 감칠맛이 뛰어나 독한 줄 모르고 자꾸 마시게 되어 대취하기 일쑤다.

 

 

송순을 채취하여 찌는 모습. 송순은 이른 봄에 새로 자란 어린 순을 채취하는데, 길이가 15센티 이상인 것으로 모엽(母葉)을 제거하고, 수증기로 쪄서 수분을 제거한 이후에 사용하는 것이 비결이다.

 

 

 

한편, 임진란 당시 제봉 고경명(高敬命: 1533~92), 증봉 조헌(1544~1592) 등과 금산전투에서 순사(殉死)한 병조정랑 김택(金澤)이란 인물의 가문비주로 송순주가 전북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는데, 생전의 김택이 평소 위장병과 신경통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중, 어느 날 비구승 한 분이 찾아 와 그의 부인에게 비방(秘方)을 일러주고 갔다 한다. 이에 부인이 그의 처방대로 하여 병을 고치게 되었는데, 김택의 사후 그 비방인 송순주(松荀酒)는 경주김씨 가문의 전통이 되어 가양주로 뿌리를 이어오게 된 것이다. 현재는 김제에 사는 경주 김씨 가문의 며느리 김복순 씨에 의해 예의 맥을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규합총서], [임원십육지], [동국세시기], [시의전서], [술 빚는 법], [술방문], [양주방], [치생요람] 등 여러 문헌에도 소개되고 있다.

 

술 빚는 첫 일로 송순을 준비하는데 4월 하순부터 5월 중순경 소나무 곁가지에 새로 자란 송순을 채취하여 시루에 넣고 찐 뒤, 그늘에서 하루 정도 말려서 사용한다. 송순 준비에 이어 소주를 만드는데, 먼저 멥쌀을 깨끗하게 씻어 불렸다가 고두밥 쪄서 차게 식히고 누룩(황곡)과 물을 섞어 빚은 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쳐서 6~7일간 발효시킨 다음, 이를 소줏고리로 증류하여 알코올 함량 39%의 소주를 얻는다. 이어 본술인 송순주 빚기에 들어가는데, 멥쌀을 물에 불렸다가 건져 빻은 뒤, 백설기를 만들고 식혀서 백곡과 적당량의 물을 섞어 술독에 안친 뒤 5~6일 발효시켜 밑술을 얻는다. 덧술은 밑술의 4배 되는 양의 찹쌀 또는 멥쌀을 깨끗이 씻어 하룻밤 물에 불렸다가 고두밥을 쪄서 식힌 후, 누룩(황곡)가루와 쪄서 말려 두었던 송순을 밑술과 함께 버무려 술독에 안친 다음 밀봉한다. 발효에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 주기 위해 땅속 50cm 깊이로 술독을 반쯤 묻는다. 12~13일 후 발효가 끝나면, 미리 준비해 둔 소주 20ℓ를 붓고 용수를 박은 뒤, 다시 밀봉하여 80여일 숙성시켜 채주하는데, 이와 같은 송순주는 흡사 위스키와 같은 술빛깔과 은근한 솔향기를 자랑, 애주가라면 누구나 매료되고 만다. 앞서 대전지방의 송순주가 50일 정도의 발효기간을 거쳐 이루어지는 고급 가향주라고 한다면, 김제지방의 송순주는 100일이 넘는 양조기간을 거치는 장기 발효주이다. 명가(名家)의 가양주가 명주(銘酒)라는 설이 생각나는 지점이다.

 

이러한 송순주는 무엇보다 송순의 선택에 술의 품질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재료의 선택에 유의해야 한다. 송순은 이른 봄에 새로 자란 어린 순을 채취하는데, 길이가 15센티 이상인 것으로 모엽(母葉)을 제거하고, 수증기로 쪄서 수분을 제거한 이후에 사용하는 것이 비결이다. 이와 같이 준비한 송순이라야 술맛이 쓰지 않고 향이 좋으며, 이물질과 잡맛이 없는 맑고 깨끗한 송순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독특한 술 빛깔로 가장 선호받는 가양주

송순주는 그 어떤 전통주보다 준비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술로 알려져 왔으며, 동시에 신비한 맛과 맑은 향기, 특히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독특한 술 빛깔로 애주가들로부터 가장 선호받는 가양주로 뿌리를 내렸었다.

 

하지만 이러한 송순주는 일반 여염집이나 민가에서는 쉽게 빚어 마실 수 있는 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쌀을 이용하여 익힌 술을 증류하여 소주를 만들고, 다시 2차례에 걸쳐 술을 빚으려면 그만큼 쌀의 소비가 많고, 일손이 많이 들게 되며, 술이 익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요구되거니와 송순을 구비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송순은 15일 사이에 1년동안 자랄 수 있는 크기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때문에 그 채취시기를 맞추기가 어렵다.

 

경험한 바로는 두 사람이 하룻동안 채취할 수 있는 양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 모엽을 제거하는데 요구되는 시간과 고충이 여간이 아니다. 또한 쪄서 건조시키게 되면 허망하다 싶을 정도로 그 양이 20% 정도로 줄기 때문에 1년동안 사용할 송순을 구비하는 일은 적잖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연히 귀한 술이 될 수 밖에 없다. 송순주를 오랫동안 반주로 마실 경우, 혈관이 강화되고 혈액순환이 촉진되어 손발저림과 마비증, 신경통 등 노인성 질환에 두루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왔으며, 특히 위장병과 뇌졸중, 천식, 강장제로도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는 송순에 함유되어 있는 정유성분과 비타민A, C, 탄닌, 플라보노이드, 항균성 물질들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발효가 끝나가는 송순주.

용수를 박아 채주 중인 송순주의 빛깔.

 

 

 

이른 봄 송순을 채취하기 시작하여 술을 빚고, 그 술이 익기를 기다리다 보면 어느덧 뜨거운 여름을 맞게 되는데,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여름 손님’을 맞으시던 할아버지. 매해 여름이면, 뒤란의 초가로 이은 우상각(友想閣)에 올라 세모시로 지은 새하얀 옷을 떨쳐입고, 한 손에 합죽선을 펴 들고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와 손님 앞에 송순주와 파강회, 김부각을 차린 소반을 내려놓고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아 술을 따르시는 어머니. 어머니의 손놀림을 따라 하얀 백자잔에 푸르스름한 빛깔의 송순주가 드리워짐과 동시에 청량한 술향기가 퍼진다. 그처럼 황홀한 감상에 빠졌던 기억은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새롭기만 하거니와, 아직까지 그처럼 멋있는 정취의 술자리를 경험해 본적이 없다.

 

갖은 정성을 들이고도 부족해 푸른 봄의 기운과 색깔을 입히고, 더더욱 오랜 기다림으로 익힌 술향기, 그리고 우리의 넉넉했던 인정과 풍류를 다 아우르는 옛 선비들의 술자리와 반주의 중심에 항시 송순주가 있었다. 때문에 가장 한국적인 정취를 간직한 술이자, 세계적인 술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는, 무궁한 가능성의 술이 송순주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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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견주 덧술 모습.

 

 

 

진달래화전과 나물을 안주로 곁들이는 진달래술, 두견주

 

우리 풍속에 ‘꽃놀이’ 또는 ‘화류놀이’라는 게 있다. 춘 3월에 남녀노소가 날과 장소를 골라 하루를 즐겨 노는 놀이로, 제각기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하여 약속한 장소에 와서 서로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데, 성인은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며, 부녀자들은 꽃잎을 따서 화전을 부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꽃노래를 부르면서 꽃피는 봄날의 하루를 즐긴다. 놀이가 끝날 즈음, 소년소녀들은 진달래꽃을 꺾어 꽃방망이를 만들어 어깨에 둘러메고 꽃노래를 부르며 마을로 돌아온다. 이 화류놀이의 중심에 진달래꽃이 있었다. 우리 조상들이 진달래를 좋아하게 된 이유로, 민속학자 김열규 교수는 “진달래의 속성은 봄의 시작을 알려주는 꽃이라는데 있다. 때문에 강한 생명력과 치열한 생명력을 수반한 봄기운의 상징과 함께 죽음의 상징인 겨울을 이기고 살아남은 거듭살이의 힘을 상징한다. 특히 일제의 식민통치하 같은 상황에서는 진달래의 이 같은 원형적 상징이 증폭된다. 따라서 진달래는 겨레의 집단적인 봄 신명 자체의 상징으로 원형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야산은 물론이고 심심산천을 온통 연분홍으로 꽃물을 들이는 꽃이 봄의 진달래꽃이라면, 이 땅에 사는 우리 겨레의 가슴에 연분홍의 꽃물을 들이던 술이 진달래술이다. 두견주는 진달래가 들어가는 절식 가운데 으뜸으로, 진달래화전과 나물을 안주로 곁들이면 그만한 멋과 풍류가 없다. 진달래꽃은 전국의 산야 어디에서나 피는 까닭에 그 채취가 용이하였으므로, 진달래꽃을 이용한 술은 신분의 구별 없이 가장 널리 빚어 마셨던 가장 대표적인 ‘봄철 술’이었다. 특히 진달래술은 향기뿐만 아니라, 혈액순환개선과 혈압강하, 피로회복, 천식, 여성의 허리냉증 등에 약효가 인정되어, 약용주로서의 역할도 겸하였으므로, 봄철이면 농가와 특히 가난한 선비집안의 아녀자들은 진달래술을 빚기 위해 꽃을 따느라 분주하였다. 진달래술을 마련하여 두면, 약효에 따른 질병치료와 함께 계절변화와 풍류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두견주는 고려시대 때부터 대표적인 계절주이자 세시주로 자리잡았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술로, 상용(常用) 약주에 ‘청주’, ‘유하주’, ‘방문주’, ‘동동주’, ‘녹파주’가 있고, 특수 고급약주로 ‘춘주’, ‘천일주’, ‘신라주’와 향양주(香釀酒)로 ‘송주’, ‘국화주’, ‘포도주’, ‘두견주’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진달래술은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과 그의 딸 영랑에 관한 전설이 깃든 충남의 당진이 명산지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 받아왔던 세시주이자 가향주로써, 전래과정에서 지방에 따라 가전비법에 따라 술 빚는 법에서 약간씩 차이가 있다. 예컨데 민간의 전승주이자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면천지방의 두견주는 그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두 번에 걸쳐 찹쌀로 고두밥을 짓고 식혀서 누룩과 물을 섞어 술을 빚는데, 덧술을 할 때에 진달래꽃을 함께 버무려 넣고, 술을 안친 다음에 맨 위에 진달래꽃으로 덮어두는 제조방법으로 이뤄진다.

 

 

건조시킨 진달래꽃.

 

 

 

가정에서 빚어 마실 수 있는 방법

 

진달래술을 빚고자 하면, 우선 무슨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 요령으로 약효를 얻고자 할 때는 고두밥과 꽃잎을 직접 버무려 안치는 것이 좋고, 향기와 빛깔이 좋은 술을 빚으려면 시루떡을 안치듯 켜켜로 안쳐 발효시키는 것이 방법이다. 진달래술과 관련하여 조선시대 문헌인 [규합총서]를 비롯하여 [술 빚는 법], [시의전서], [김승지댁주방문] 등에서도 재료의 배합비율은 물론이고, 재료의 가공방법에서 각각 다른 방문이 수록되어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옛 문헌의 하나인 [규합총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가정에서 빚어 마실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멥쌀 2말을 백세작말(매우 깨끗하게 씻어 가루로 빻는 것을 일컬음)하여 끓는 물 1말과 함께 섞어 범벅처럼 갠 다음, 하룻밤 재워 밑까지 차게 식힌다. 누룩은 이슬을 맞혀 뽀얗게 바랜 것을 준비하여 생사로 된 깁체에 쳐서 내린 고운 가루누룩으로 1되 3홉을 밀가루 3홉과 함께 범벅에 넣고 고루 버무려 술밑(술거리)을 빚는다. 이 술밑을 준비한 술독에 담아 안치고 한지로 밀봉한 뒤, 상법대로 하여 12일간 발효시킨다. 밑술이 익으면 멥쌀 3말과 찹쌀 3말을 각각 물에 깨끗이 씻어 건져서 시루에 안쳐 고두밥을 짓는다. 고두밥은 각각 고루 펼쳐서 차게 식히고, 쌀과 같은 양의 물을 팔팔 끓여 차게 식혀 놓는다. 밑술을 동량으로 나누어 각각 메밥과 찰밥 한 켜, 진달래 꽃잎 한 켜씩 켜켜로 담아 안친 다음, 메밥을 맨 위에 덮는다. 차게 식혀 둔 물을 술덧 위에 부어주고, 상법대로 하여 14~21일간 발효시킨다.

 

일반적으로 술은 완전히 익었을 때 용수를 박아두고 청주(두견주)를 떠서 마시거나, 술체에 밭쳐 탁주(두견주)를 걸러서 마시는데, 진달래술과 같은 가향주류는 청주로 마시는 것이 좋다. 탁주는 일반 막걸리보다 풍미가 떨어지고 술 빛깔도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덧술-술밑 안치는 모습.

덧술- 꽃 안치는 모습.

 

 

 

풍부한 방향(芳香)과 오미(五味), 맛의 지속성, 황금빛 색깔 등 부족함이 없는 명주

 

술 빚는 방문의 차이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양조방법의 간편화와 함께 식량의 증산이 이뤄지면서 주재료인 쌀의 고급화를 추구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진달래꽃을 구할 수 있는 시기가 봄철에 한정되다 보니, 봄에 진달래를 채취하여 보관해두고 계절에 상관없이 필요할 때마다 빚는 사시주(四時酒)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진달래술을 빚는 풍습이 사라진 것은 해방 후의 “삼금(三禁)”이라 하여, ‘밀주단속’과 함께 ‘나무 베는 일’을 금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면서 자유로이 산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진달래꽃의 채취가 용이하지 못하였던 것도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진달래술을 빚을 때는 진달래꽃잎을 지나치게 많이 넣지 않도록 해야 한다. 꽃을 많이 넣게 되면, 술 빛깔이 붉게 되고 쓴맛이 돌아 좋지 못하다. 또한 꽃잎을 채취할 때는 가능한 만개한 꽃을 선택하도록 하여 꽃술을 완전히 제거하고, 흐르는 물에 깨끗이 헹궈낸 후에 건조시켜서 사용해야 한다. 진달래꽃을 생것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향기는 좋으나 약간의 산미가 있어 발효에 지장을 줄 뿐만 아니라, 술맛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가능한 건조시킨 것을 사용하도록 한다. 진달래꽃을 채취했을 때에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따온 즉시 꽃술과 꽃받침, 이물질 등을 제거하여 흐르는 물에 살짝 헹궈낸 다음, 키친타올이나 면보 등으로 물기를 뺀 후에 건조시키는 것이 좋다. 건조시킬 때에는 그늘지고 바람이 잘 통하는 응달에서 2~3일 간격으로 2차례 건조시키는 것이 꽃의 색깔과 향기를 그대로 유지시킬 수 있어 좋다.

 

일반 민가의 가양주로 전해오고 있는 방법으로 밑술과 덧술을 찹쌀로 빚고 덧술을 할 때 진달래꽃을 넣는 것이 상례가 되다시피 하였는데, 형편에 따라 멥쌀로 빚기도 하고 찹쌀을 섞어 빚기도 한다. 찹쌀로 빚은 진달래술은 끈적거릴 정도로 단맛이 강하고 진달래꽃의 빛깔이 그대로 술에 녹아들어, 진한 담황색을 자랑한다. 특히 재료로 사용되는 꽃 특유의 독특한 향취를 간직하고 있어, 가향주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예부터 “두견주 석잔에 5리를 못간다.”는 말이 전해 온다. 이는 두견주가 처음 마실 때의 부드러움과는 달리 알코올도수가 높아 마신 후에 은근하게 취기가 올라온다는 얘기이다. 명주가 갖춰야 할 조건으로, 과일과 꽃향기로 대변되는 풍부한 방향(芳香)을 으뜸으로 하고, 달고 시고 쓰고 떫고 매운 맛이 고루 느껴지면서도 깔끔한 오미(五味), 그리고 목넘김이 부드러우면서도 여운이 남는 맛의 지속성, 끝으로 맑고 깨끗하면서도 밝은 황금빛 색깔을 말하는데, 두견주는 그 어느 것 한 가지도 부족함이 없다 할 것이다.

 

특히나 봄의 상징인 진달래꽃을 이용한 두견주에는 여러 가지 기능성 효과가 입증되고 있어, 단순한 향양주가 아닌, 질병예방이나 치료목적에서 널리 이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견주에는 꽃의 성분인 아잘린(azalein)과 아잘리틴(azaleatin)이 함유되어 있어, 식욕을 촉진하고 소화액을 분비하며, 혈액순환촉진과 콜레스테롤을 억제시켜주는 효과와 저혈당을 높혀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니, 전통주가 아닌 서양의 어떤 술에서 이러한 멋과 가치를 찾을 수 있으랴 싶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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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입주법으로 양조한 매화주.

 

 

김홍도가 즐겨 했던 ‘매화음’

술을 공부하다 보면 한동안 호기심에 빠져 물불을 못가릴 때가 있기 마련이다. 주방문(酒方文) 곧, 술 빚는 법을 어느 정도 알게 되면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술 재료로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인데, 필자의 경우 그 시기는 ‘꽃으로 빚는 술’에 눈을 뜨게 되었을 때가 아닌가 싶다. 더욱이 옛 사람들의 풍류와 관련된 글을 대하고 나면 그 충동은 배가된다. 풍류를 말할 때 단원 김홍도를 빼놓을 수 없다. 김홍도가 정조(正祖)의 초상을 다시 그리고 그 상으로 충청도 연풍 현감에 제수되었는데, 중인 신분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직책이었으나, 그의 호방한 성격이 행정을 돌보는 관직에는 맞지 않았던지 3년만에 파직되었다. 이에 같은 시기의 화가였던 조희룡(1797~?)은 자신의 [호산외사]에서 김홍도의 낙천적인 성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집이 가난하여 더러는 끼니를 잇지 못하였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매화 한 그루를 파는데, 아주 기이한 것이었다. 돈이 없어 그것을 살 수 없었는데, 때마침 돈 3천을 보내주는 이가 있었다. 그림을 요구하는 돈이었다. 이에 그 중에서 2천을 떼어 매화를 사고, 8백으로 술 두어말을 사다가 동인들을 모아 매화음(梅花飮)을 마련하고, 나머지 2백으로 쌀과 땔나무를 사니 하루의 계책도 못되었다.”

김홍도가 기이한 매화를 사고 싶었던 것은 그림의 소재로 쓰는 한편으로, 동료들과 매화음(梅花飮)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가진 돈 대부분을 매화를 사고 나머지는 좋은 벗들과 함께 마시기 위해 술을 샀으니, 그가 얼마나 풍류를 즐길 줄 아는 한량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꽃향기를 술에 넣는 법, 매화주 만들기

돌이켜보면 ‘꽃술’을 빚는답시고, 시간만 나면 들로 산으로 발길을 재촉하고, 저녁 때 돌아와 채취해 온 꽃을 다듬고 씻느라 날이 새는 줄 몰랐던 날이 2~3년 계속되었다. 매화주도 그 중 한 가지였다. 어렵사리 매화를 구하고 나면 옛 사람들이 즐겼던 매화주의 향취를 감상해보자는 의미에서 매화주를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문헌을 보았는데, 바로 조선시대 중기의 서유구(徐有榘, 1764~1798)가 쓴 [임원십육지(林源十六志)] “정조지(鼎俎志)” 편에 수록된 ‘매화주 방문(梅花酒 方文)’이었다. [임원십육지]에 수록된 매화주 방문은 ‘화향입주법(花香入酒法)’으로, 술에 꽃향기를 불어 넣는 방법이란 뜻이다.

 

먼저, 멥쌀 5되를 백세(百洗)하여 물에 불렸다가, 고쳐 씻어서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쪄낸 다음, 차게 식기를 기다렸다가, 준비해 둔 누룩 5되와 물 1말을 섞어 술밑을 빚는다. 술밑을 술독에 안치고, 상법(常法)대로 하여 5일간 발효시켜 밑술을 얻는다. 이어, 술이 고이기 시작하면, 찹쌀 5되를 위의 방법대로 하여 고두밥을 짓고 돗자리나 삼베보자기 위에 고루 풀어 헤쳐서 차게 식힌 뒤, 밑술에 물 1말과 함께 섞는다. 밑술과 고두밥이 고루 섞이도록 버무려서 술독에 담아 안친 다음, 재차 2일간 발효시키면 술이 괴어오르기 시작한다. 3일 정도 지나면 밥알이 동동 떠올라 있게 되는데, 이때 구들에 말려서 준비해 둔 매화 8냥을 명주 주머니에 담아서 술독 안에 손가락 한마디만큼 떨어지게 매달아 놓는다.

 

이와 같은 방법에서 보듯 매화주는 별도로 빚어둔 술에 뜻풀이 그대로 꽃향기(花香)를 술에 넣는 법(入酒法)임을 알 수 있다. 매화꽃주머니를 술독에 매달아 둔 지 이틀 밤이 지난 뒤에 매화주머니를 거두고보니 술에서 매화향기가 그윽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체험하게 된 매화주 감상(感賞)은, 기대와는 달리 다소 실망스러웠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느낌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긴 하지만, 향기는 좋았으되 술맛은 다소 칼칼하고 거친 맛이 강한 데다, 술맛이 매화향기와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었다. 또한 며칠이 지나자 매화향기는 사라지고 독한 술맛에 그 향취마저 반감되고 말았다. 하지만 술 좋아하는 지인(知人) 몇을 불러 술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모두들 ‘꽃향기가 너무나 좋다’ ‘여태 이런 술향기는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면서, 술 빚는 법을 묻곤 하였다.

 

매화를 채취하는 모습.

채취한 매화를 건조하는 모습.

 

 

화양입주법과 직접 혼합법

필자의 취향에 맞는 매화주를 다시 빚어보기로 하고, 직접 주방문을 썼다. 남아있는 매화가 2홉 정도여서 매화를 직접 넣어 발효시키는 방법(直接混合法)을 시도해 보기로 하였다. 그 방법은 멥쌀을 백세작말(百洗作末)하여 그릇에 담고, 끓는 물을 부어가면서 쌀가루가 고루 익도록 주걱으로 개어 범벅을 만든 다음, 서늘한 곳에서 천천히 차게 식힌다. 준비해 둔 누룩가루를 차게 식힌 범벅에 넣고 술밑을 빚어 준비한 술독에 담아 안친다. 술독은 앞서의 방법대로 하여 따뜻한 곳에서 3일간 발효시킨다. 밑술이 익으면 이어 찹쌀을 물에 깨끗이 씻은 뒤, 하룻밤 재웠다가 씻어 건져서 고두밥을 짓는다. 고두밥이 무르게 푹 익혀졌으면 차게 식혀 두었다가, 밑술에 고두밥과 끓여 식힌 물, 매화를 합하고 고루 치대어 재차 술밑을 빚는다. 술독에 술밑을 안친 다음, 베보자기로 위를 덮고, 상온에서 상법대로 발효시켰는데 33일이 걸렸다.

 

술이 익자 화향입주법의 매화주를 경험했던 지인들을 다시 초청하여 직접혼합법의 매화주를 감상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매년 날씨가 풀릴 때쯤이면 그 향취를 즐기고자 매화주를 직접 빚어 즐기는 제자와 동인들이 많이 생겨났고, 그들로 하여 나는 지금까지 ‘술맛 감정(鑑定)’ 또는 ‘품평(品評)’ 이라는 미명 하에 매화주를 공짜로 얻어 마시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술을 빚고 연구하는 입장이다 보니 직접적인 양조에 비중을 두기 마련이어서, 화향입주법 보다는 직접혼합법을 선호하는데, 매화꽃을 구하기가 힘들어 자주 빚지를 못하고 있어, 그 어떤 술보다 안타까움이 크다. 그만큼 매화주는 나에게 인상적인 술이요, 향기가 좋은 술로 각인되어 있다. 술을 빚을 줄 아는 사람들은 다같이 화향입주법보다 직접 혼합법의 매화주가 향취나 맛에서 월등하다는 것을 공감하겠거니와, 왜 직접혼합법의 매화주가 아닌 화향입주법이 봄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주로 또 시주풍류의 대상으로 자리매김 되었을까? 특히 풍류객을 대변했던 옛 선비들과 시인묵객들은 화향입주법의 매화주를 즐기고, 시와 글에 그 감상을 담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술독에 매화 8냥을 명주 주머니에 담아서 손가락 한마디만큼 떨어지게 매달아 놓으면 며칠 후 술에서 매화향기가 그윽하게 풍겨 나온다.

 

 

현장성을 중시한 술 한 잔의 풍류

주지하다시피 매화는 그 향기가 매우 청아(淸雅)하고 기품이 있으며, 엄동설한을 다 이겨내고 가장 먼저 피는 꽃이라고 하여 굳은 절개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선비들과 시인묵객들 사이에서 완상의 으뜸이 되는 꽃으로 사랑 받아왔다. 남쪽 제주도지방에서는 음력 2월이면 활짝 핀 매화를 목격할 수 있으며, 보통 3월초에서 4월 초순이 되어야 본격적으로 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매화는 꽃의 빛깔에 따라 백매(白梅)와 홍매(紅梅) 두 종이 있는데, 홍매보다 백매가 더 향기가 좋은데다, 그 빛깔은 희다 못하여 푸른 빛깔을 띠므로 청매(靑梅)라고도 불리고 있다. 매화에는 매실에서 볼 수 있는 구연산과 사과산을 함유하고 있어, 피로회복과 소화불량 등에 효과를 나타낸다. 때문에 매화는 술뿐만 아니라 차(茶)로도 널리 사랑 받고 있는데, 작설차를 마실 때 반쯤 핀 매화 한 송이를 찻잔에 띄우면 코끝이 호강하게 된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매화주를 비롯하여 꽃향기를 술에 불어넣는 화향입주법의 양조와 음주문화는 현장성과 계절성을 반영한, 독특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주문화이자 풍류라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옛 선비들의 풍류는 현장성을 중요시하여, 매화가 피는 때를 기다려 술자리를 갖는다는 것으로, 서설이 내리는 창 밖을 내다보면서 술을 주거니 받거니 수작하는 하는 가운데, 화분의 매화를 한두 송이 따서 마시고 있는 술잔에 띄워 놓으면, 술의 알코올이 증발하면서 매화향기를 동반하게 되어 매화향기는 더욱 진가를 발하게 된다.

 

이렇듯 즉석에서 이뤄지는 매화주 제조가 화향입주법의 멋스럽고 기품이 있는 음주문화를 낳게 되었을 것이다. 상상해 보라. 추운 겨울 방안에서 창 밖의 서설이 내리는 풍경을 감상하는 심정은 지극한 정취(情趣)를 자극했을 터이고, 주향(酒香)에 더하여 매화향기까지 추가되니 설 중 매화주의 향취(香醉)와 한데 어울려 극치를 이루게 된다. 눈 오는 밤이었으면 그 정취가 시인묵객들의 감성을 더욱 충동질하게 되었을 것이니, 그날의 고조된 흥취(興趣)를 더 말해 무엇하랴.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매화주가 뜻깊은 술자리를 갖게 되는 날이나 결혼 당사자들에게 축하의 건배주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르고 마시는 와인보다는 우리 정서와 문화에 더욱 와 닿는 술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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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헌 [고사촬요]의 방식으로 도소주를 재현하는 모습. [고사촬요]에는 ‘오두거피, 대황, 거목, 완계, 천초, 계심 등으로 술을 빚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술

술이란 성인들에 한하여 즐길 수 있는 기호음료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함께 마실 수 있는 술이 있다. 설날의 세시주(歲時酒)인 ‘도소주(屠蘇酒)’가 그것이다. 도소주는 설날 아침에 차례(茶禮)를 마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나눠 마시는 술로서, 세시주(歲時酒)로 분류된다. 술 이름을 풀이하자면 ‘잡을 도(屠)’, ‘사악한 기운 소/깨어날 소(蘇)’, ‘술 주(酒)’이니 ‘사악한 기운을 잡는 술’ 또는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술’, ‘악귀를 물리치는 술’ 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도소주는 설날의 제의풍속(祭儀風俗)과 벽사풍속이 결합한 민간풍속에서 발생된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설날을 새 해 새 날의 새 시간을 맞이하는 엄숙한 시간으로, 매우 신성하게 맞으려 정성을 다했다. 설날의 어원을 ‘낯설다’에서 찾기도 하거니와, 이는 다가올 미래의 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되려 겸허하고 순결한 마음자세를 갖게 했으며, 천지신명과 조상신에 대한 보은과 감사의 제사를 올리게 된 것이라는 풀이다. 한편, 옛날에는 과학과 의술,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질병(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가장 컸을 것이므로, 새 해 첫 날을 맞이하는 시간에 가족 모두가 일년 내내 무병하고 건강하게 지내고자 하는 바램을 갖게 되었고, 그 처방으로 도소주를 만들어 마시게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나이 어린 사람이 먼저, 나이 많은 사람이 늦게 마시는 술

동양문명의 발상지가 중국이라는 사실과 관련하여, 도소주도 중국 후한대 화타(華陀)라는 성의(聖医)가 처방했다는 설과, 당대(唐代)의 손사막(孫思邈)이 처방했다는 두 가지 설이 양대(梁代)의 종름(宗懍)이 쓴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전해오고 있는데, ‘광운(廣韻)’편에는 “도소주원단음가제암기(屠蘇酒元旦飮家際癌氣)”라 하여, ‘설날에 도소주를 마시면 질병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는 기록을 엿볼 수 있어, 도소주의 제조목적과 용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을 근거로 한 풍속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것은 당나라와 교류가 깊었던 통일신라시대로 여겨지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한편, [동문선(東文選)]에는 “정조설(正朝雪)”이란 시에 “제야에 내린 눈이 설날 아침에 이르러, 불어오는 봄바람에 어쩔 수 없이 녹네. 쌍궐(雙闕)의 의장기는 그림자도 희미한데, 오문교 五門橋에는 벌써 가죽신 소리가 들리네. 늘어선 정조 축하 의식 반열의 조회에 옷이야 젖어도, 춤추는 악공들의 소매에 어울리네. 금년 새해엔 곧 서기가 많아, 초주(椒酒)를 가득 따라 올리고 민요도 함께 바치네.” 라고 하여, 설날아침에 왕께 초주를 올려 하례하는 풍속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초주는 도소주와 같은 의미에서 마시는 술로, 우리의 도소음 풍속이 민간에서만 행해졌던 풍속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열양세시기]의 ‘정월설날조’ 기록에 김창협(金昌協)의 시를 인용하여 “고관집에서는 손님의 명함을 사흘 동안 받아들이는데, 푸른 잔의 도소주가 손님의 흥을 돋운다.”하였으며, ‘사민월령(四民月令)’에는 “술잔을 올리는 차례가 어린이부터 시작된다.”하여 연소자에게서 먼저 잔을 받아 마신다고 풀이하고 있다.

 

도소주 재현 모습. [동의보감]에는 “백미, 대황, 천초, 거목, 길경, 호장근, 오두거피를 주머니에 넣어서 12월 회일(晦日)에 우물에 넣어서 정월 초일 평명(平明)에 꺼내어 술에 넣고 잠깐 끓여서 동쪽으로 향하여 마시면 1년 내내 질병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진 왼쪽은 도소주 약재를 우물에 담가 우리는 장면, 오른쪽은 끓여낸 도소주 모습이다.

 

 

그리고 조선조 문신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사가시집(四佳詩集)]에 수록되어 있는 ‘원일(元日)’이라는 제하의 시(詩)에 “사십은 강사(强仕)인데, 이제 또 두 번의 봄을 더하였네. 도소주는 마땅히 남보다 뒤에 마시는데, 노병은 이미 남보다 앞서네. 신세는 무엇을 탐하는가? 생애는 감히 가난을 꺼리네. 근면은 1년의 일을 풍부히 하니, 매화와 버들 또한 마음을 아름답게 하네.”라고 하여, 반가와 사대부들 사이에서 설날 아침에 도소주를 마시는 풍속을 엿볼 수 있고, 또한 이 도소주가 나이 많은 사람이 늦게 마시는 술임을 일 수 있다.

 

그리고 후일에 이르러서는 ‘一人飮之一家無疫, 一家飮之一鄕無疫’이라 하여 “한 사람이 마심으로써 한 집안에 병이 없고, 한 집안이 마심으로써 온 고을에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여기게 될 만큼 도소음의 풍속이 성형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의 문헌으로는 [동국세시기]를 비롯하여 [고사촬요], [동의보감], [임원경제지] 등에서 도소주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는데, [고사촬요]와 [임원경제지]에는 중국 기록의 풍속 그대로 ‘오두거피, 대황, 거목, 완계, 천초, 계심 등으로 술을 빚는다’고 하였으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지 않는 일부 약재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 풍속의 답습을 엿볼 수 있다. 이후 조선조 중엽의 의학 관련 문헌인 [동의보감]에도 “백미, 대황, 천초, 거목, 길경, 호장근, 오두거피를 주머니에 넣어서 12월 회일(晦日)에 우물에 넣어서 정월 초일 평명(平明)에 꺼내어 술에 넣고 잠깐 끓여서 동쪽으로 향하여 마시면 1년 내내 질병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 풍속이 나중에는 보통의 술도 ‘도소주’라고 하여 온 가족이 모두 둘러앉아서 마시었는데, 특이한 것은 어린 사람부터 먼저 마시기 시작하여 차례로 나이가 많은 사람 순서로 마신다.”고 했다.

 

도소주에 들어가는 재료 10가지. 강한 약재가 들어가지만 맛은 순하다.

 

 

강한 약재와는 상반되는 순한 맛


도소주는 과연 어떤 술일까 궁금하던 차에 2004년 KBS와 함께 설특집 “설날 이야기”의 주제로 ‘도소주’의 재현과정과 시음 풍속을 방송키로 한 바 있었다. 도소주의 주재(主材)가 되는 순곡청주를 먼저 빚어놓고, 그 술이 익기를 기다려, 부재료인 오두거피를 비롯하여 대황, 거목, 길경, 호장근 등 10가지 약재를 베주머니에 넣고 자정에 동네 우물에 매달아 두었다가, 이튿날 새벽 4시경(平明)에 약재주머니를 건져 올리고, 빚어 둔 술에 넣어 잠깐 끓여내니 도소주가 완성되었다. 도소주가 맥이 끊긴 지 실로 몇 십 년 만에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제작진은 물론 동참했던 제자들까지 도소주 제조과정을 지켜보았던 만큼 호기심에서라도 반응이 좋으리란 기대를 가졌으나, 어느 누구도 그 맛을 음미하려 들지 않았다. 도소주에 들어간 약재 중에 사약에 사용되는 독성이 강한 약재들이 두 가지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필자가 먼저 시음을 해 보기로 하였는데, 아무런 탈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모두가 달려들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바닥을 보았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기만 하다. 실제로 도소주는 술의 향기가 너무나 좋고, 그 맛이 매우 부드러우며, 어린 아이가 마시기에도 거슬림이 없을 정도로 순하다. 때문에 집안 어른이 주전자를 들고 아이들에게 술 한잔을 따라주며 “일년 내내 건강해라” “무병하고 공부 잘해라”시며, 덕담을 나눠주시고는 가장 나중에 도소주를 마시는데, 아이들도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세요”하고 인사를 드린다.

 

 

도소음 풍속에 담겨있는 여러 가지 의미

도소음 풍속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로, 도소주의 제조과정에 들어가는 약재는 거의가 기운을 돋궈주는 자양강장제 또는 각기병, 피부병, 혈관계 질환을 다스리는 약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두와 대황을 제외한 여러 가지 약재 중 길경과 백출을 제외하고는 팥 등 거의가 붉은 색을 띤다는 사실이다. 붉은 색 약재의 선택은 바로 벽사풍속(辟邪風俗)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오두거피, 대황, 거목(去目)에 대한 약재의 약성이나 형태의 파악이 안된 상태여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를 제외한 거피오두, 대황의 사용은 아주 흥미롭다. 오두나 대황은 다 같이 아주 독성이 강하여 전문가가 아니면 처방할 수 없는 약재들이라는 점에서, 전염병과 같은 무서운 질병에 대하여 이독치독(以毒治毒)의 효과를 얻고자 했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도소주는 대체로 길경, 육계, 방풍, 산초, 백출 등이 그 재료로 이용되며, 중국 풍속의 전래로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상류층에서 빚어 마시면서 일반에 퍼졌고, 고려시대 이후 매우 일반화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 약재를 설날 회일(晦日, 그믐)에 우물에 담근다고 하였는데, 우물을 온 마을사람들이 다 같이 사용하는 것으로, 약재를 우물에 담가두어 온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나눠 마심으로써, 약재의 성분이 우물물에 침출되어 그 약성으로 인해 온 마을에 질병이 없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우물은 동적(動的)으로 독에 길어 둔 정적(靜的)인 물에 반하여 양(陽)으로 비유되는 만큼, 양기로 받아들임으로써 사악한 기운인 음(陰)을 물리치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음력 섣달 회일은 저무는 해의 마지막 달 마지막 날로서 음일(陰日)을 가리키는데 비해, 정월 초일의 평명(平明)은 솟아 오르는 해(陽年)의 동이 트는 시간, 곧 양(陽)의 시간에 우물에 담가 둔 약재를 꺼냄으로써, 양의 기운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넷째, 도소주는 집안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부터 마시는 습속을 나타내고 있는데, 나이가 어린 아이일수록 질병이나 전염병에 약하기 때문에 ‘나이 많은 어른들의 배려’에서 비롯된 풍속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기회를 통해 어른들 앞에서 술 마시는 법과 예절을 가르치고자 했음을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도소음(屠蘇飮)은 전염병과 같은 질병에 대한 두려움 못지않게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시간에 그것도 나이가 어린 아이부터 마시는 것이 풍속이었고, 궁중에서는 왕이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술로 한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공음풍속이 있었으므로, 자연히 ‘술 마시는데 따르는 예절’을 가르치고자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주로 인한 사회적 병폐가 수위를 넘어서고 있고, 음주연령층이 초중등학생까지 확대되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는 시점에서, 부모나 어른들 앞에서 술을 배우게 하려는 조상들의 세심한 배려가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여러 의미와 상징이 담긴 도소음의 풍속을 민간에서 찾아보긴 어렵게 되었다. 이번 명절에는 온 가족이 모여 가족 건강 기원은 물론, 아이들 앞에서 술 마시는 법과 예절을 보여주며 우리 전통의 기운을 살려보는 것을 어떨까.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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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빚는 모습. 술 빚는 전문 장인을 주인(酒人) 혹은 대모(大母)라 불렀다.

 

 

술을 빚는 전문 장인, 주인과 대모

세계인의 관심사로 떠오른 ‘김치’가 채소발효식품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발효식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발효주인 막걸리가 이 시대의 트랜드가 되었다. 때를 같이 하여 이제부터라도 전통주의 ‘술맛 감정(鑑定)’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져야 할 듯 하다. 막걸리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현재시점에서 ‘막걸리 소믈리에 양성’에 대한 주장이 나오고, 교육기관도 생겨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입국식 막걸리와 개량식 주류가 대부분인 지금의 현실에서 전통주 감정의 기준을 세우기 보다는 우리 고유의 술향기와 맛을 찾아낸 다음 그 평가와 술맛 감정이 따르는 것이 온당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술맛 감정은 단순히 술에 대한 평가만이 아니라, 술을 통해서 그 술을 빚은 장인의 선험적 지혜와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할 수 있고, 보다 차별화된 한국 전통 식문화의 정수를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서구의 와인감정과는 다른 접근방식과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과거 가양주문화가 발달했던 조선시대의 술을 빚는 전문 장인으로 그 옛날의 ‘주인(酒人)’과 ‘대모(大母)’가 있었다. ‘주인(酒人)’은 고려시대부터 한말까지 궁궐의 양온서(良溫署)나 사옹원(司饔院)에 예속되어 있던 전문직 관료이면서 전문적으로 술 빚는 일을 관장하는 남성을 지칭하는 호칭이고, ‘대모(大母)’는 반가(班家)와 부유층, 객주(客主)에서 유모(乳母)나 침모(針母), 찬모(饌母)와 같이 전문적인 직능을 담당하는 기능인으로, 주인집의 가양주(家釀酒)와 접대주를 빚는 일이 그 소임인 전문직 여성을 가리킨다. 이들은 다 같이 아래에 사람을 여럿 두고 직접적으로 술방문을 비롯하여 술을 빚는 일을 수행하면서 재료나 그릇, 도구 등을 관리 감독하는 일이 주업무였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직능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보다 술맛을 감정하는 일로, 술방문에 따른 술의 향기나 맛, 술 빛깔, 알코올도수의 정도를 평가하였다. 이들은 지금의 IWSC위원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그들처럼 부와 명예는커녕 사회적 인정(認定)도 신분보장도 받지 못했던 초라한 직분이었지만, 우리 전통주가 갖춰야 할 향기와 맛의 감정에 관해서는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테면 방문에 따른 술의 빛깔이나 향기, 맛과 알코올도수 등에 대한 감정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 빚어 둔 술맛을 보고, 주재료의 가공이나 열처리 방법이 정상적이고 순서대로 이뤄졌는지, 심지어 술을 빚던 당시 그 사람의 감정이나 몸 상태가 어떠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술을 빚었는지도 가늠했다고 하니 소위 ‘귀신’ 소리를 들을 법한 경지가 아닐 수 없다.


술을 감정할 때 빚은 사람의 마음가짐을 가늠한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이는 술은 빚는 사람의 성격이나 감정과 심리상태에 따라 술의 맛과 향기가 달라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한다면 술을 빚는 사람은 좋은 재료를 선택할 수 있는 높은 안목 외에도 오랜 경험과 엄정한 공정, 지속적인 관리뿐 아니라 빚을 때의 태도와 자세, 마음가짐까지 바르게 해야한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주인(酒人). 술 빚는 일을 관장하는 남성을 지칭하는 호칭이다.

술독을 살균하는 모습.

 

 

향과 맛, 그리고 색으로 보는 좋은 술

예부터 “명주삼절(銘酒三絶)”이라고 하여 술의 ‘향’과 ‘맛’과 ‘색’을 두고 술을 평가했다. 이는 술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발효에 의해 생성된 순수한 물질 그 자체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어떤 분야이든 문화와 예술의 본질이 그러하듯이 술도 오랜 시일에 걸쳐 자연적인 발효와 숙성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향기와 맛, 아름다운 색깔을 간직하게 되고, 그 조화로움 역시도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할 것이다. 술이 천성적으로 지녀야 할 우아한 향기와 깊고 그윽한 맛, 맑고 깨끗하며 순수한 색깔도 우연히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재료의 선택과 전처리, 위생적이고 철저한 가공공정을 거치되, 무엇보다 장인의 온갖 정성이 녹아든 결정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술맛을 감정하는데 있어 가장 먼저 판별하는 것은 향기이다. 전통주의 향기는 ‘방향(芳香)’이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통주에는 곡자향(麯子香)이 난다고 했다. 누룩으로 빚기 때문에 누룩냄새가 난다는 것인데, 사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주와 일본주를 구분하면서, 조선주의 폄하정책의 일환에서 만들어낸 말이다. 쌀누룩으로 빚은 일본주의 맑은 향기가 더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에서 ‘청주(淸酒)라고 표시했고, 조선주는 약으로 마시는 까닭에 약주라고 하였고, 밀누룩으로 빚기 때문에 누룩곰팡이 냄새가 난다는 뜻에서 지어낸 ‘곡자향’ 또는 ‘누룩향’을 근래까지 멋모르고 사용해왔던 것이다.

 

전통주의 향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사과, 포도, 자두, 딸기, 수박, 자두, 홍시, 멜론, 문배와 같은 과실향기와 장미, 복숭아꽃, 매화, 국화와 같은 꽃향기가 있다. 이들 방향은 밀기울 중의 단백질 성분이 발효되면서 생성되는 향기로, 대개 장기발효와 저온 숙성시킨 술에서 느낄 수 있다. 둘째는 밀누룩의 독특한 향으로 구수한 냄새와 솔잎, 계피, 솜사탕과 같은 숙성향이 있는데, 특히 현대의 젊은이들은 이 누룩향을 좋아하지 않으나, 적당한 누룩향은 품격 높은 전통주에서 빼 높을 수 없는 향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 누룩향이 방향보다 강하게 드러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판별하는 것은 서구인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향기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맛이다. 전통주에는 6가지 맛이 있다. 단맛을 중심으로 신맛과 떫은맛, 구수한맛, 쓴맛과 매운맛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좋은 약주는 이 6가지 맛 가운데 어느 한 가지 맛도 두드러지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먼저, 전통주의 단맛은 누룩효소에 의해 쌀에서 생성된 전분당으로, 이 당을 효모가 이용하여 알코올로 만드는데, 이 발효정도에 따라 단맛이 줄어들게 된다. 이때 알코올 생성 속도보다 전분당 생성 속도가 앞서 농당(濃糖) 상태가 되면 자연적으로 발효가 점차 멈추고 잔당에 의한 단맛이 난다. 이 단맛은 인공 감미료와는 전혀 다른 단맛으로 매우 부드러운 맛을 자아내, 여러 가지 맛과의 균형을 잡아준다.

 

전통주의 신맛은 누룩 속의 미생물 구성과 발효경과에 따라 젖산 또는 구연산 등 다양한 유기산에 의해 생기는 자연 산미(酸味)로써, 이 유기산에 의해 발효과정 중 잡균의 억제되어 안전발효를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유기산에 의한 자연스런 신맛은 단맛과 함께 중요한 맛의 구성요소이며, 단맛보다 강해서는 안된다. 전통주의 맛의 가장 큰 특징인 산미는 구연산, 젖산, 호박산 등의 자연 산미와 잔당의 비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이 두 가지 맛은 특히 숙성과정과 기간에 따라 단맛이 강해지기도 하고 신맛이 감소되기도 하므로 무조건 오랜 숙성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주의 떫은맛은 도토리, 감, 녹차잎에서 많이 느낄 수 있는 맛으로, 전분이 덜 호화되었을 때, 누룩가루가 남아 있었을 때 더 많이 느껴지게 되고, 미숙주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불쾌감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가능한 삽미는 줄여야 하며, 단맛으로 부드럽게 하고 산미로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 이 쓴맛도 숙성여부에 따라 그 강도가 달라지므로 적절한 조절이 요구된다. 쓴맛과 매운맛은 기본적으로 알코올 성분에 의한 것과 누룩에 의한 맛이 있다. 


전통주에는 6가지 맛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좋은 약주는 이 6가지 맛 가운데 어느 한 가지 맛도 두드러지지 않고 함께 어우러진 약주이다.

 

별도로 약재를 사용한 약용약주의 경우에는 사용된 약재류 고유의 쓴맛이 영향을 주기도 하나, 효모 자체가 내는 쓴맛은 미미하다. 누룩에 의한 쓴맛은 지나치게 그 양이 많았거나 고운 가루누룩을 사용할 때 드러나므로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아무튼 알코올성분에 의한 쓴맛은 단맛으로 누를 수 있으며, 특히 오랜 숙성과정을 통해 다소 부드러워지긴 하나, 없어서는 안되는 맛이다. 이 밖에 구수한 맛은 전통주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긴 하나, 와인이나 맥주에 길들여진 외국인들의 기호측면에서는 장애요소이기도 하다. 구수한 맛은 곡물 발효주의 특징적인 맛으로써, 특히 곡물의 피질(皮質)에 많은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면서 생성되는 자연스러운 맛이다. 그러나 주재료의 전처리 과정의 부주의에서 오는 구수한 맛은 숙성과정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숙성 전에 구수한 맛이 드러나서는 안된다.

 

이상 여섯 가지 맛의 요인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좋은 술맛이란 이 여섯 가지 맛이 다 느껴지되 가능한 어느 한 가지 맛이 심하게 드러나서는 결코 좋은 맛이라 할 수 없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술맛은 적절히 균형잡힌 조화미를 중요시하고, 그러기에 숙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식품조리서의 하나인 [부인필지]에 “밥(飯) 먹기는 봄같이 하고, 국(羹) 먹기는 여름같이 하며, 장(長) 먹기는 가을같이 하고 술(酒) 먹기는 겨울같이 하라” 고 하는 말이 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습관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데, 현대사회에 와서 빼놓을 수 없는 맛의 요소가 이 청량미이다. 특히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청량음료와 탄산음료, 냉장식품에 길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청량미는 온도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어, 저온에서 단맛은 감소하고 신맛은 증가하며, 알코올의 자극성과 구수한 맛은 감소하나 청량감은 증가한다. 따라서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보다 차가운 온도인 6~8°C에서, 다소 무거운 맛과 향을 좋아하면 덜 차가운 12~15°C 정도 되게 해서 마시는 것이 전통의 음주예법이다. 그리고 추위를 잊고자 하거나 질병치료를 목적으로 마시는 술이라면, 오히려 따뜻하게 데워 마시면 알코올의 순기능과 그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마지막 판별 대상은 색이다. 전통주 고유의 색깔은 대체로 황금색을 띤다. 농도는 다르지만 엷은 색에서 짙은 담갈색까지 황금색 계열이다. 색이 옅을수록 담백한 맛을 나타내고 짙을수록 진하고 단맛이 나며 숙성된 술이다. 물론 물의 양이 쌀 양보다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되는 술은 처음에는 황금색이나 푸른 빛깔을 띠다가도 숙성과정에서는 포도주와 같은 술 색깔을 나타내기도 하고, 기타 약재나 꽃 등 부재료가 들어간 경우, 원료의 색깔에 따라 약간 달라지기도 하나, 일반적으로 좋은 전통주는 맑고 황금색을 띤다. 이 색깔이 물빛깔에 가까운 미색(微色)의 일본식 청주나 사케와는 다른 점이다.

 

발효를 위해 보쌈하는 대모의 모습.

 

 

“천하명주라도 속된 자와 마시면 속주, 소박한 술이라도 신선과 마시면 유화주”

전통주에 매달린 지 올해로 27년이다. 길다면 긴 세월이지만 아직도 옛 사람들의 술맛 감정 수준에 이르기에는 자신이 없다. 그러기에 술 빚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과거 가양주문화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조선시대의 술을 빚는 전문 장인으로, 그 옛날의 주인(酒人)이나 대모(大母)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내가 목표로 삼고 있는 술 공부의 끝이다. 우리 사회에 주인이나 대모와 같은 술맛을 감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우리가 지금에 와서 옛 사람들의 습속을 그대로 따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나 대모의 역할을 수행해내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들이 제대로 감정해 낸 맛있는 술과 좋은 향기의 전통주가 많을수록, 최소한 나쁜 술을 마셔서 심성이 파괴되고 그것이 지나쳐서 주정을 하는 사람과 건강을 망치는 사람들이 줄어들겠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기에 “천하명주라도 속된 자와 마시면 속주, 소박한 술이라도 신선과 마시면 유화주”라고 하지 않았던가.

 

명주가 특히 예술가와 선비(지식인)의 절친한 벗이 되었단 이면에는 명주의 진가를 군자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야 헤아릴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달고 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배가되기도 하고 반감하기도 하는 까닭에 명주 감상은 이처럼 잘 절제된 향과 맛과 색의 술을 다소곳이 음미하는 것을 멋으로 삼아야 할 것이고, 이에 더불어 뜻과 정이 통하는 사람과 더불어 취함으로써 흥의 경지에 오른다고 할 수 있겠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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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주를 만들기 위해 먼저 밑술이 되는 떡을 빚는 모습.

 

 

떡을 만들어 술을 빚는다

지금이야 술 빚는다 하면 너나 없이 쌀을 쪄서 만든 고두밥을 이용하여 술 빚는 것을 능사로 여기지만, 조선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바로 “술제떡”이라 하여 ‘백설기’를 비롯하여 떡을 만들어 술을 빚었다. 술제떡으로는 ‘구멍떡(공병)’, ‘인절미(인절병)’, ‘물송편(수송편)’, ‘범벅(니, 담)’, ‘개떡’ 등이 주를 이루었다.

 

조선시대 후기 순조~철종 때, 시와 해학에 뛰어나 주변의 칭송이 자자했던 정지윤(鄭芝潤, 1808년~1858년)이란 선비가 있었는데 그는 특히 술을 즐겨 마시고 슬픈 일, 즐거운 일 이해득실의 전부를 시로 잘 표현하였다고 전한다.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궁색한 생활을 면하지 못하던 그는 술을 너무 좋아했지만 주막집에 외상값이 쌓여 있어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어느 날 그가 주막집에 들어서 또 한번 외상 술을 청하자 화가난 주모는 거절했다. 허탈해하며 마당을 보니 구석 우리에서 돼지 한 마리가 튀어나와 멍석 위의 백설기를 먹고 있었다. 그가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주모가 이를 보고 그에게 돼지를 쫓지도 않고 물끄러미 보고만 있냐며 역정을 냈다. 그랬더니 그는 “나는 돼지도 맞돈 내고 먹는 줄 알았지 외상으로 먹는 줄 몰랐다.”라고 응수했고, 이에 주모는 할말을 잃어 술상을 내왔다고 한다.

 

정지윤이라는 선비의 해학과 위트에 관한 이야기지만, 전통주의 관점에서 우리가 이 이야기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돼지가 먹은 설기떡이 술을 빚기 위해 식히고 있는 떡, 곧 ‘술제떡’이라는 것, 그렇다면 당시만 해도 고두밥이 아니라 떡을 만들어 술을 빚는 것이 희귀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주막에서 파는 술이니만큼 일반 가정에서 상비해두고 부모봉양이나 손님 접대 목적의 술이 아님에도 백설기와 같은 술제떡을 만들어 술을 빚었다는 것은 술제떡이 가장 일반화된 전통 양조법의 한 가지였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떡을 만들어 술을 빚는다

전통적으로 술빚기에 이용되어 온 술제떡은 ‘백설기’뿐만 아니라 삶는 떡인 ‘구멍떡’이나 ‘물송편’, 찌는 떡인 ‘개떡’, 설익히는 ‘범벅’, 치는 떡인 ‘인절미’ 등 여섯 가지 방법의 다양한 떡이 있어왔고,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전한다. 고려시대 주막에서 빚어 팔았다고 하는 ‘방문주’나 ‘유하주’, ‘녹파주’, ‘도화주’, ‘두견주’, ‘백하주’ 등이 소위 ‘반생반숙’법의 범벅으로 빚는 술이고, ‘이화주’는 구멍떡으로 빚는 술이다. 또 ‘춘주’나 ‘죽엽주’ 등은 백설기로 빚는 술이었다. 그리고 이들 술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대중주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조선시대 음식과 관련한 여러 문헌에서도 보다 쉽고 다양하게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술과 관련하여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알려져 있는 [산가요록]의 ‘하숭사절주’와 ‘구두주’를 비롯하여 [수운잡방]의 ‘백화주’, [임원십육지]의 ‘급수청방’, [양주방]의 ‘댓잎술’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음식디미방]의 ‘하향주’나 ‘감향주’, [양주방]의 ‘점주’, [주방문]의 ‘이화주’, [산가요록]의 ‘과동감백주’ 등이 구멍떡으로 빚는 술이다. 이 밖에 [시의전서]의 ‘백일주’와 [임원십육지]의 ‘동정춘’ 등이 개떡으로 빚는 술이다. 특히 조선시대의 주품들은 일반 가정에서 볼 수 있는 대중주가 아닌, 반가나 부유층의 반주나 제주, 손님 접대를 위한 상비주로 자리매김되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1천여 가지의 양조를 통해서 경험한 바로는 개떡으로 빚는 [임원십육지]의 ‘동정춘’이나 구멍떡으로 빚는 [음식디미방]의 ‘동양주’와 ‘하향주’ 등은 그 향기가 매우 뛰어나며, 떡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이들 술의 향기를 능가하는 술을 만드는 것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술제떡의 다양한 형태.

 

 

한편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지역별 전통주로 무형문화재나 명인, 관광토속주 등 소위 <민속주>로 지정되어 국가나 지방자치제의 관리감독과 지원을 받고 있는 주류로, 경북의 ‘김천 과하주’는 인절미로 빚는 술이고, 제주도의 ‘오메기술’은 구멍떡으로 빚으며, 충남의 ‘한산소곡주’는 백설기로, 서울의 ‘삼해주’는 범벅으로 빚는 술이라는 사실에서 술제떡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술제떡으로 빚는 술의 특징은 부드러운 맛과 다양한 술향기라 할 수 있다. 전통주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방법의 한 가지로 전해지고 있는 ‘죽’으로 빚는 술은 부드럽고 순하며, 담담한 맛과 은근한 향기가 있지만 알코올도수가 낮았다. 반면, 가장 늦게 개발된 것으로 알려졌으면서도 간편하고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현대에 가장 널리 이용되고 있는 ‘고두밥’으로 빚는 술은 알코올도수가 높고 술이 맑은 것이 장점인 반면 술의 맛이 거칠고 향기도 떨어진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술제떡으로 빚는 술은 어떨까. 술제떡을 이용한 술빚기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러 가장 활발하게 이뤄졌던 양조방법이었다. 그 배경에는 가양주가 음식과 함께 한 집안의 솜씨를 자랑하는 잣대이면서 술맛이 좋으면 집안이 흥한다는 속설에 기인하는 바 적지 않지만, 무엇보다 술제떡으로 빚는 술이 가장 부드럽고 깨끗한 맛과 다양한 술향기를 자랑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향기 좋은 술을 가양주로 지켜오고 있는 집안은 선망의 대상이었던 만큼, 술제떡으로 빚는 술이 인기가 많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보다 간편하고 손쉽고 보다 빠르게, 그리고 보다 많은 이윤 추구를 우선시하게 된 것이 현대의 발효공학과 양조공정인데, 주질은 더욱 떨어지고 맛과 향기 좋은 술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술제떡과 같은 전통의 양조방법에서 오는 향기 좋은 술을 누구나 맛볼 수 있게 되는 시대가 다시금 오길 바랄 뿐이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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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만든 향기 좋은 술을 천천히 식사와 곁들이다

나의 술빚기는 순전히 술을 좋아하시는 부모를 위한 작은 배려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술에 대한 욕심을 덜어내 건강을 돌보시도록 하자는, 아주 사소하고 소박한 생각이 내가 처음 술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다. 처음에는 술 빚는 법만 잘 터득하여 손수 술을 빚어드릴 수 있으면 되리라는 생각에 시작했던 것이 좀 더 다양한 술을 공부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고, 술을 어떻게 빚는 것인지를 조금 알고 나자 13년이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술을 알면 알수록 좀 더 체계적인 연구와 기록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는데, 술 잘 빚는 일 못지않게 술을 빚는 목적이나 용도에 따라 술을 달리 빚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다시 7년이 걸렸다. 그러면서 술을 빚는 사람은 어떤 목적과 용도로 어떻게 빚을 것인지를 결정하여야 하고, 다음으로 어떻게 마시고 어떻게 즐기도록 할 것인가 하는 방법모색 등 음주자에 대한 배려와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술을 빚는 사람은 사람들로 하여금 술을 즐기되, 건강까지 고려하여 가능한 많이 마시지 않고도 흥취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여 맛과 향기 등 주질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얘기이다.

 

술 빚는 법을 교육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율배반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가장 좋은 음주방법은 반주(飯酒)이고, 훌륭한 주인(酒人/大母, 양조인)은 과음하지 않을 술 맛을 내는 방법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전통주’라는 말을 사용하기 이전 우리나라에서 빚어진 고유 술에 대한 총칭은 가양주(家釀酒)였다. 가양주란 “용도나 목적에 따라 집에서 빚어 집에서 마시는 술”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가양주의 뿌리를 캐다 보면 지금과는 달리 우리의 음주습관은 본디 ‘반주(飯酒)’와 ‘약주(藥酒)’ 개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가양주가 반주문화로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시대 때부터다. [삼국유사] “태종춘주공조”에 당시 왕의 식사 내용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왕의 식사는 하루에 쌀 서 말과 꿩 아홉 마리 먹더니, 경신년에 백제를 멸한 후로는 점심을 그만 두고, 다만 아침, 저녁뿐이었다. 그러나 계산하여 보면 하루에 쌀 엿 말, 술 엿 말, 꿩 열 마리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술이 상식(常食)으로 이용되었다는 것과 함께 식사 때 술을 겸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들어 유교를 바탕으로 한 ‘추원보본사상(追遠報本思想)’이 강조되자, 제주는 물론이고 반주와 접대주, 농주, 잔치술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면서 가양주 문화는 황금기를 구가하게 된다. 양반가는 물론이고 대개의 민가에서도 가전비법의 가양주를 즐기고 상비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맥이 끊겼거나, 한국전쟁 이후 식량위기에 따른 양곡관리법에 의해 가양주가 밀주로 취급되면서 자취를 감춘 반가와 부유층의 가양주들이 1천여 가지에 달했다.

 

실제로 필자가 그 동안 맥이 끊겼던 1천여종의 전통주 가운데 재현 또는 복원과정을 통해서 체험했던 절대 다수인 850여종의 주품들에서 단맛이 두드러진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고, 특히 과실향기나 꽃향기의 방향주(芳香酒)와 미주(美酒) 중심으로 전통주의 품질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향기 좋은 방향주나 미주는 그 향취를 즐기는데 있으므로, 마시는 일도 서두르지 않게 되고 아까워서라도 두고두고 즐기려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경향이 집에서 빚어 상비해두고 부모의 식사 때 한두 잔 곁들이는 반주와 귀한 손님 접대에 사용하는 가양주를 빚게 된 이유이다. 한편 부모와 노인을 위한 반주는 술을 즐기는 목적 외에 식사 후의 소화를 돕고 입맛을 돋궈주는 효과를 얻고자 하는 고유한 음주문화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고유의 전통주, 즉 대개의 가양주는 과음을 할 수 없게 양조되고 설사 과음을 하더라도 다음날 숙취 등 아무런 후유증이 없고, 궁극적으로 점차 주량이 줄어들어 하루 서너 잔에 그쳐도 더 이상 술 욕심을 내지 않게 되는 효과를 가지지 않을까 하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봄철 반주 접대용 상차림.

 

 

‘백약지장’이요, ‘장수약’으로의 술

흔히 술을 ‘백약지장’이요, ‘장수약’이라 일컫기도 한다. 이 말은 옛 조상들의 술을 빚는 과정과 그 용도에 연유한 것으로, 일상적인 술빚기는 특히 늙은 부모와 노인의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는 반주(飯酒)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사실, 그리고 반주를 위한 술이기에 과음하지 않도록 단맛이 나도록 빚음으로써, 술을 전혀 못 마시는 사람이라도 한두 잔은 마실 수 있어 궁극에는 반주가 일상생활화 되는 반주문화를 낳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반주는 많이 마시고자 하더라도 술이 갖는 단맛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마실 수 없어 서너 잔에 그치거니와, 아무리 술을 못하는 사람이라도 홀짝거리다 보면 한두 잔은 마실 수 있게 된다. 주량이 많아서 많이 마시고자 해도 서너 잔을 넘어설 수 없고, 술을 못 하더라도 한두 잔은 비우게 되니, 반주야말로 최상의 음주문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반주는 부모와 노인의 소화와 흡수를 돕기도 한다. 우리의 식사패턴은 밥으로, 밥은 쌀이 주재료인만큼 탄수화물(전분)이 주성분인데, 이 탄수화물은 소화가 잘 안되는 특성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 소화와 대사기능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는 영양결핍을 초래하게 된다. 따라서 식사 때 두서너 잔의 반주는 소화와 흡수를 도와 혈액순환과 함께 몸을 따뜻하게 하여 대사기능을 활성화시키게 되므로, 노화를 억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실제로 건강해진다. 그러기에 조선시대 중기 대표적 실학자였던 성호 이익(1681~1763년)선생도 그의 [성호사설]에 “노인을 봉양하고 제사를 받드는데 술 이상 좋은 것이 없다”고 했고, ‘반주는 근력이 생기고 묵은 병이 낫는다’, ‘설날 도소주, 중양절 국화주 등 헌주는 무병장수와 건강기원’이라는 공통의 정서가 다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육회와 청주.

죽순냉채와 오디주.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반주가 우리의 본디 술자리 문화요, 진면목이라는 것이다. 동서양의 의학자들은 건강을 위해서는 과음하지 말 것을 강조하면서도 두서너 잔의 반주를 권한다. 그 이유가 간이 하루(24시간)에 알코올을 분해할 수 있는 양이 25g~35g으로서, 막걸리와 맥주, 청주 등 주종 별로 각각 크기가 다른 잔에 마시는 것을 전제로 3잔 분량이면 알코올 25g 정도에 해당한다. 이 2~3잔의 음주가 “과음(過飮)의 선(線)”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이상이 되면 간이 피로하게 되고, 매일 2~3잔 이상의 술을 마시게 되면 지방간과 간경화, 간암으로 발전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옛 조상들이 반주나 평상시의 술을 음주자 스스로 절주를 하도록 술을 빚었다는 것, 그리고 반주를 하다 보면 어느 사이 주량이 저절로 줄어들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하루 2~3잔 정도면 만족하게 된다는 것은 수천 년을 이어오면서 체득한 양조기술과 조상들의 뛰어난 지혜에서 비롯된 결과라 생각된다.

 

무엇이든지 지나친 데서 문제가 따른다. 부모와 노인의 봉양만이 아닌,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도 반주문화는 반드시 가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늙어가는 부모의 건강과 장수를 위해 술을 빚고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술을 대접하는 민족이 어딨으랴.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1.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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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꽃이 피어있는 듯한 백화주와 채주한 청주.

 

 

 

술을 빚는 이의 솜씨와 쌀의 처리방법에 따라 각기 다른 향기를 품어내

한동안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전통 발효식품 가운데 하나인 장과 김치를 ‘썩힌 음식’으로 매도한 때가 있었으나, 이제 와서는 현대인들에게 최고의 건강식품이자, 성인병을 예방하는 기능식품으로, 또는 다이어트 식품으로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전통주도 예외는 아니다. 전통주가 특정 내국인을 대상으로 할 뿐, 외국인들의 기호에 부합되지 못하고, 수출이 안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곡자향(麯子香)’을 든다. 사실 말이 곡자향이지, 우리말로 하면 ‘누룩 냄새’이고, ‘곰팡이 냄새’다. 아무리 술이라고 한들 이 곰팡이 냄새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특히 외국인들의 경우는 더하다. 그들의 음주경향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주질 평가기준이 ‘향기’를 위에 두고 ‘마시는 술’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모든 음식을 ‘맛’으로 먹는 경향이다. 술도 예외는 아니어서 맛이 으뜸이고 향기는 그 다음이다. 술의 맛이 우선이고 누룩과 메주 등의 발효가 집안과 주변에서 이뤄지다 보니 누룩냄새와 메주냄새에 익숙해지게 되었고, 술에서 나는 누룩냄새를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양인들에게 있어 곰팡이 냄새는 ‘악취’ 그 자체일 뿐이고, 곰팡이는 식품의 부패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한국의 누룩으로 빚은 전통주는 부패된 술 또는 썩은 술로 인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사과향과 포도향 등 아로마나 부케향, 호프향에 길들여진 외국인들이 누룩곰팡이 냄새나는 우리 전통주를 사주고 마실 리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 전통주는 문제가 많다고 하고, 그 이유를 “전통주라고 해서 ‘옛날 방식’으로 하다 보니 비위생적이다” “집집마다 ‘비법’이라 하여 주먹구구식으로 하다 보니 그때그때 맛이 다르다”는 식으로 폄훼하거나, 원인을 다른 이유에서 찾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 전통주는 곡자향이 전부인가. 단언코 아니다. 오히려 전통주는 서양 와인의 포도향이나 사과향, 맥주의 호프향 보다 훨씬 아름답고 고급의 과실향기와 꽃향기가 있다. 서양의 술들이 원료가 갖고 있는 자체의 향을 포함하는 것인데 비하여, 우리 전통주는 과실이 아닌 전분질의 쌀과 곰팡이 냄새가 나는 누룩으로 빚은 술임에도 불구하고, 술을 빚는 이의 솜씨와 쌀의 처리방법에 따라 각각 다른 향기를 품어낸다. 이런 향기를 간직한 술을 방향주(芳香酒)라고 하는데, 사과향기를 비롯하여 포도향과 딸기향, 복숭아향, 수박향, 홍시향, 자두향, 연꽃향 등 다양하다.

 

 

백설기 떡. 백설기를 만들어 발효시킨 술은 감칠맛이 뛰어나고 은근한 홍시, 배, 수박, 멜론향이 난다.

 

 

 

1백년 전만 해도 팔도강산에 뛰어난 향의 명주 넘쳐나

다양한 방향을 간직한 전통주가 사라진 배경에는 무엇보다 일제 강점기를 시작으로 80여년간 단절되었던 사실에 기인한다. 이 기간은 밀주단속이 빈번해지면서 속성과 약식의 술빚기가 성행하게 되었는데, 일본의 조선주 폄하정책도 한몫 하게 된다. 특히 일본의 영향으로 ‘조선주의 향기는 누룩향’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고, 일본주 교육에 집중하게 된다. 그 결과 입국과 효모, 조효소제를 사용하여 발효시킨 입국식 개량주들이 등장했지만, 인곰감미료 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방향으로 치닫게 되었다. 또한 첨단과학과 선진양조기술을 도입하면서도 “현대 양조주들이 일체의 식품첨가물 없이 누룩만을 사용한 전통주의 깊고 그윽한 향기와 오묘하면서도 복잡한 맛에 결코 못미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통의 양조법이 외면당하는 이유는, 쌀 씻기를 비롯하여 재료의 다양한 변용, 재료의 혼합방법 그리고 발효방법과 기간 등에서 복잡하고 힘든 과정, 숙성과정이 길다는 점이 단점으로만 치부되어 왔기 때문이다. 물론, 근대에 이르러 식량의 절대부족에 따른 가양주와 밀주 금지 정책의 영향도 적지 않았지만, 문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빠른 시간 내에 뭔가를 이루겠다는 조급함과 함께 ‘쉽고 편하게’의 편의주의 사고방식으로 말미암아 수천 년을 이어왔던 정통의 술빚기가 외면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술을 공부하다 보면, 그 재료처리나 술을 빚는 요령, 특히 술독관리를 얼마나 과학적이고 지혜롭게 임해 왔는지를 알게 되고, 술 빚는 일에 임하는 옛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 그리고 술을 대하는 마음자세에 감탄하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 그 어머니의 할머니들은 지금처럼 체계적인 양조교육이나 합리적 과학적인 식품가공법을 알지도 못했고, 특히 요즘의 미디어나 인터넷에서처럼 정보도 얻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음에도, 오히려 현대인들보다 훨씬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양조기법과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굳이 찹쌀이나 멥쌀이 아니라도 저마다의 형편에 맞게 보리쌀과 좁쌀, 수수쌀, 기장쌀과 누룩으로만 빚는 술에서 돌배향이나 사과향, 수박향, 홍시향, 복숭아 향기를 맡을 수 있었고, 솔잎을 넣지 않았는데도 은은한 솔향과 계수나무 향기가 배여 있는 가양주로 하여, 집집마다 술을 잘 빚는 여인의 솜씨는 칭송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하여 익힌 범벅으로 발효시킨 술은 도수가 높으면서 복숭아, 파인애플의 향이 난다.

죽을 쑤어 발효시키면 포도, 수박, 복숭아 향의 술향기를 얻을 수 있다.

 

 

 

 

그 예로, 지금부터 1백년전만 하더라도 당시의 가양주 형태로 전해오던 우리 전통주들이 얼마나 좋은 향기와 맛으로 주품을 다투었는지, 팔도강산에 명주가 넘쳐났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나면 탄성을 지르게 된다. 실제로 지금은 맥이 끊어진 채로 활자 속에 갇혀 있는 전통주 가운데, ‘과하주’의 경우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으로 수출까지 하였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이름만 들어도 콧구멍이 벌렁거리고 입안에 침이 고이는 석탄향, 하향주, 인유향, 연화주, 송계춘, 광릉춘, 백화주, 만년향, 만전향, 감향주, 죽엽춘, 유화주, 청감주, 벽향주, 향설주, 무릉도원주, 청명향, 동양주, 녹파주, 경면녹파주, 하시절품주, 경액춘, 적선소주 등 수 없이 많은 고급 청주들이 고유의 향과 색깔, 맛으로 주질을 다투었었다. 

 

수십만 가지가 넘는 전통주 가운데 이처럼 술의 향기나 맛, 술 색깔에서 뛰어났던 명주들은 안타깝게도 자취를 감추었고 일제강점기와 밀주단속시기를 거치면서 서민과 기층민들이나 빚어 마셨던, 원형을 찾아볼 수 없는 막걸리와 동동주가 전통주의 전형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각종 향신료와 한약재에 의한 술향기가 일반화된 양조현실에서 서구의 유명 고급와인이나 프리미엄급 위스키가 갖고 있는 아로마나 부케향과 견줄 수 있는 우리 전통주의 청향(淸香)을 비롯한 방향(芳香)에 대해 운운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까.

 

결론적으로 전통주는 그 근간이 향기 중심의 쌀술이며, 쌀술은 곧 청주라는 근거에 도달한다고 할 것이다. 전통주가 “깨끗하고 신선하며 아름다운 향기로서 청향을 간직한 술”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누룩 냄새만 나는 술이 아니라 다양한 방향을 가진 술이라 인식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부터 전통주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것이다.

 

 

사라진 전통양조법 중의 하나인 구멍떡으로 술빚기. 구멍떡을 빚어 발효시키면 포도와 사과향의 술향기를 얻을 수 있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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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뜨는 모습.

 

 

 

사케는 청주이고, 전통주는 약주다?

프랑스 등 유럽의 와인 열풍에 이어 일본주 ‘사케’의 시장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증가추세라고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의 배경을 두고 전문가들은 일본 식당의 증가와 함께 막걸리시장의 활성화를 꼽고 있다. 국내의 막걸리 소비증가와 사케의 소비증가가 상관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막걸리 소비의 활성화가 위기에 처해 있는 전통주(약주, 청주)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사뭇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전통주(약주, 청주)시장의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로, “막걸리 등 전통주를 편하게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국내의 전문 막걸리샾이나 전통주점 등의 공간이 태부족이다.”는 지적과 함께, “막걸리의 제조방식이 입국 등 일본주 사케의 제조방식과 유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케=청주’ 라는 우리의 인식에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청주’는 곧 ‘고급술’ 또는 ‘손님 접대와 같은 중요의식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술’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는데다, 특히 술을 빚어 본 사람이라면 청주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술이자, 실용가치가 높은 술이기 때문에 누구라 할 것 없이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청주를 빚고자 한다는 것이다. 전통주의 근간은 누가 뭐라 해도 청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케가 청주라는 인식에 비해 ‘전통주=약주’라는 인식이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는 약주는 있어도 청주가 없다.”는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일제에 의한 ‘주세법’ 시행으로 사라진 우리의 청주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상숭배를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하여, 명절과 집안제사에 정성껏 빚은 맑은 술(淸酒)을 천신하는 것을 하나의 예법으로 지켜왔다. 천지신명에게 의지하고 보살핌에 대한 최고의 성의표시로써 맑은 술 이상의 현물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맑은 술 곧 청주는 조상들이 주식으로 먹어왔던 쌀밥이 술의 원료이자, 이 쌀로 빚은 술이 가장 순수한 향기를 간직한다는 인식에서 쌀술인 맑고 향기로운 청주를 제물로 천신(薦新)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조상제사나 차례에는 반드시 찹쌀이나 멥쌀을 이용한 청주를 빚고자 했고, 아무리 간단하고 쌀을 적게 사용하더라도 맑은 술을 얻고자 정성을 쏟았던 노력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양조학적 분류기준인 원료측면에서 보자면, 전통주는 전분질인 쌀로 빚은 만큼 ‘맥주(麥酒)’ ‘고량주(高粱酒)’처럼 당질에 따라 “미주(米酒)”라고 해야 옳다. 하지만 쌀로 빚은 맑은 술을 “청주”로 인식한 데에는,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안목과 양조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일제에 의한 ‘주세법’이 시행되면서 조선 땅에서는 가양주를 빚지 못하게 되자, 양조장제도의 도입으로 공장에서 생산 판매하는 술을 사다 쓸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주세법은 “조선주”는 ‘탁주(濁酒)’, ‘약주(藥酒)’. ‘소주(燒酒)’ ‘혼성주(混成酒)’로 묶어 주종분류를 단순화시키는 한편으로, “일본주”에 ‘청주’를 포함시킴으로써, 수천 년을 이어왔던 전통주의 근간이였던 청주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 결과 명절 차례와 집안제사에 정성껏 빚은 청주를 천신(薦新)하는 것을 예법으로 알았던 사람들은, 너나없이 “정종(正宗)”이란 상품명의 일본주(청주)를 사다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가 하면, 음복을 할 때에도 데워서 마시는, 차마 웃지 못할 풍습이 생겨났다. 이 땅의 청주가 사라지면서 일본주 정종을 사다 차례와 제사를 지내고, 일본인들의 음주습관까지 의식 없이 따라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일본청주’가 우리 술의 ‘청주’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으며, 이 주류분류 기준을 지금까지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청주라는 의미를 다시 되새겨 주세법에 “청주”의 자리를 되찾아줌으로써, 전통주의 근간을 다시 세우고, 무엇보다 전통주의 브랜드가치를 제고시켜야 한다.

 

 

청주의 발효 종료 단계. 밥알이 다시 가라앉기 시작한다.

술과 밥알찌꺼기, 누룩찌꺼기를 분리하는 작업의 모습.

 

 

 

깨끗하고 신선한 향기-청향(淸香)을 자랑했던 전통 청주에 관심 가져야

전통주를 빚어 본 사람이면 다 아는 기본적인 상식이지만, 찹쌀을 비롯하여 멥쌀 등 쌀이 주재료의 중심이고, 지리적 환경과 먹고 사는 형편에 따라 조나 수수, 기장으로 양조를 해왔는데, 통과의례를 비롯하여 각종 중요의식에 사용하는 술은 대개 다 찹쌀이거나 멥쌀로 양조를 해왔으며 맑은 술을 빚어 상에 올린다. 그런데 술빚기에 사용되는 쌀이나 물, 누룩 가운데 어느 것 한 가지도 좋은 냄새나 향기, 좋은 맛을 갖고 있는 재료가 없다. 그런데도 이들 재료가 어우러져 발효과정을 통해서 이뤄내는 조화는, 오미로 표현되는 복잡한 ‘맛’ 외에도 오묘한 ‘향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는 우리가 지금까지 잘못 인식해 왔던 누룩향(麯子香)이 아니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향기요, 과실의 향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꽃향기와 과실 향기를 우리 조상들은 방향(芳香)이라고 칭해 왔고, 이러한 방향 가운데 가장 깨끗하고 신선한 향기를 ‘청향(淸香)’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여러 고서와 선비들의 시문집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의 하나인 문배주라는 술이름에서 우리 전통주가 과실향기를 갖는 방향주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문배주는 차조와 차수수를 주원료로 하고 누룩과 물을 합하여 3차례 빚는 삼양주(三釀酒)를 증류한 증류식 소주인데, 이 소주에서 ‘문배의 향기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배는 야생 토종 돌배를 가리킨다.

 

결국 ‘전통주는 한국인이 주식으로 삼는 쌀로 빚는 술’이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쌀과 재래누룩, 물로 빚는 술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신비스런 청향이 난다’는 인식에서 우리 조상들은 집집마다 빚어 온 가양주와 고유의 비법을 지키려 애를 썼던 것이다. 따라서 아직까지도 우리 전통주의 향기가 누룩향(麯子香)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는 한, 일본의 사케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잃어버린 전통 청주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좀 더 깊은 관심을 보여야 할 때다.


나아가 지금까지 보다 손쉽고 빠르게, 값싸게 빚는 방법의 술을 능사로 여기고 전부로 알았다면, 이제부터는 보다 부가가치가 높고 특히 맑고 향기가 좋았던 전통 청주의 잃어버린 양조기법을 찾는 일에 골몰해야 한다. 그 길이 우리가 마시는 수입와인과 위스키, 고급 사케에 쏟아버렸던 달러를 찾는 일이고, 궁극에는 우리 전통주도 브랜드가치를 높여서 세계시장에 내놓아 달러를 벌어들여야 하는 시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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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는 흙으로 빚은 독에서 익혀야 제 맛과 향이 난다.

 

 

전통적 양조기법의 우수성


우리 조상들은 다른 나라와는 차별되게 주식이 되는 쌀로 양조를 하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양조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또한 같은 재료라도 그 가공방법을 달리 함으로써 맛과 향기, 색상, 도수를 달리하는 기술을 개발, 전승시켜왔다는 점에서 과학적으로도 양조기법의 우수성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소곡주(小麯酒)’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주의 하나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소곡주는 ‘누룩을 적게 넣는다’는 뜻에서 유래한 술이름으로 한산지방이 명산지가 되었다. 소곡주의 전통적인 양조기법은 누룩을 준비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그 과정을 보면 아래와 같다.


먼저 통밀을 갈아 거친 밀가루를 만들고, 20% 정도의 물과 섞어 치댄 반죽을 누룩틀에 담고 발로 밟아 디디는데, 볏짚에 묻어 30일정도 띄운 전통 누룩을 사용한다. 누룩이 마련되면 이어 본격적인 술을 빚는데, 먼저 ‘쌀을 백 번 씻어(백세)’ 하룻밤 물에 담가 불린 후, 이를 가루로 빻아 백설기를 찌거나 죽을 만들고, 식으면 누룩과 물을 적정 비율로 섞어 술밑을 빚는다. 술밑은 독에 담아 3~7일 정도 발효시키면 밑술(주모)이 된다. 그리고 다시 찹쌀을 백세하여 고두밥을 쪄서 식힌 뒤, 밑술과 합하여 술밑을 빚는데, 두 번째 술밑 역시 독에 담아 60일~70일 가량 발효, 숙성시킨 다음, 용수를 박아 청주를 뜨거나 체에 걸러 탁주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탁주를 거를 때 물을 섞게 되면 도수가 낮은 막걸리 소곡주가 된다.


위의 소곡주 제조 방법에서 전통적인 양주법에 있어 중요한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쌀의 가공에 따른 전처리 과정에 있어 백 번 씻는다는 것이다. 백세의 의미는 ‘가능한 많이 씻는다’는 것으로 그만큼 힘과 많은 시간을 들인다는 것인데, 백세를 통해 발효에 지장을 주는 여러 가지 영양소나 냄새, 부유물, 이물질을 제거하여 순수한 전분만을 취할 수 있다. 이 백세 과정을 현대 양조의 개념에선 도정을 많이 하여 쌀의 영양소 등 불필요한 쌀 성분을 제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렇게 씻은 쌀은 다시 물에 불리게 되는데, 이는 세척 과정에서 제거하지 못한 쌀의 영양성분을 침지 과정을 통해서 일정량을 제거함으로써 완전한 발효를 도모하는 과정이다. 쌀에 함유된 여러 가지 성분들은 탄수화물을 제외하고는 물에 용출되는 수용성이어서 불리는 과정을 통해서 해소된다. 이렇게 불린 쌀은 당화과정을 거쳐야 안전하게 발효시킬 수 있으므로, 분쇄하는 공정과 삶거나 끓이거나 찌는 방법 등 호화과정을 통해 당화작용을 돕고 촉진시키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또한 호화도를 높일수록 당화가 용이해져 발효가 원활해진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어, 1차 익힌 쌀을 다시 치거나 찌는 등 여러 단계의 가공공정을 거치는 방법을 추구하기도 했다. 특히 당시에도 알코올 도수를 높이고 맑고 향기로운 술을 얻기 위하여 주모에 해당되는 밑술을 빚어두었다가 덧술을 해 넣는 중양주법은 현대양조와 별반 차이가 없다. 또한 1차 발효에 이어 2차발효와 숙성기간을 거치는 장기발효공정을 도입함으로써, 누룩을 적게 사용하더라도 발효가 원활해지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향기를 발현하게 된다는 사실을 오랜 양조경험을 통해 체득해 왔던 것이다(소곡주를 비롯한 조선시대 전통 명주들의 공통점은 60~70일 또는 90~100일이라는 장기 발효와 숙성을 통해 술의 거친 맛을 줄이고, 술의 특성을 반영하는 향기를 살리려고 한 점이다).

 

 

조상들의 지혜와 정성을 본받아 명주의 맥 이어야

보다 쉽고 편하게 하고자 과학화된 첨단 설비를 도입하고 발빠르게 선진화된 외국 기술을 익히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술을 빚는 장인들의 정신자세이다. 술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빚고자 하는 술에 장인의 철학이 녹아 들어야만 한다. 주지하다시피 세계화된 명주들이 갖는 공통점은 한결같이 “처음 탄생한 순간의 마음가짐을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브랜드에서만 나올 수 있는 이념이며, 경제적으로 타협하고 싶은 사업적 유혹을 뛰어넘어 다소 무모한 열정을 가진 경영자만이 어렵게 이뤄낼 수 있는 궁극의 결과”라고 한다. 물론 “이와 같은 모든 시도를 존중해주는 사람과 문화 없이는 명품은 만들어질 수 없다.”고는 하지만, 결국 명품주의 기준은 오랜 시간을 인내하는 역사, 타협 없는 장인정신, 브랜드를 지켜낼 수 있는 열정적 경영자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장인에 대한 존중이 배어있는 문화를 가꾸어나가야 하는 과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기에 이미 삼국시대에 ‘신라주’가 중국(당나라) 지식인들 사이에서 찬사의 대상이 되었고, 고려시대엔 중국 현지에 양조장을 세워 고려술의 우수성을 자랑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신라주나 고려술의 맛은 물론 향기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짐작케 한다. 또한 소곡주가 그러하듯, 한 가지 술을 가지고 청주와 탁주, 심지어 막걸리에 이르기까지 용도나 목적, 대상에 맞춰 쓸 수 있도록 변용이 가능한 술도 세계적으로 드물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또 하나의 사실은, 이와 같은 전통주의 제조가 양조기술자나 전문가가 아닌, 이 땅의 평범한 가정주부면 누구나 체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증거로, 과거 반가와 여염집의 규수들이 출가를 하려면 부모의 반주를 비롯하여 27가지의 사계절에 맞는 술을 빚을 줄 알았고, 거기에 계절감각과 풍류를 끌어들이는 지혜와 정서가 있었다.


전통주 제조에서 술 저어주기 단계. 고루 발효되도록 뒤집어주는 모습이다.

 

결국 전통주 제조에 있어 중요한 것은 주재료의 배합비율이 아닌, 쌀의 가공을 목적과 용도에 따라 달리함으로써 각각의 향기와 맛, 도수가 달라진다는 것이고, 누룩의 양이 적어질수록 양조는 어려우나 향기가 좋아진다는 사실의 경험적 지혜에서 명주를 탄생시켰는데, 이러한 양조기술과 문화는 세계화된 명주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라는 사실이다.


여하튼 전통주를 빚는 방법이나 재료, 맛과 향에 대한 개선과 변화는 시대적 상황이나 환경 변화에 따른 요구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꼭 최선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시대의 조류와 기호의 변화에 순응한다는 것이 순수성과 국민 건강의 상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다. 술이 기호음료라고는 하지만, 마시는 술이 달라지면 술에 따르는 음식은 물론 식문화까지도 바뀌게 되어, 결국에는 사람의 성품까지도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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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누룩 ‘만전향주곡’을 복원하면서 사용된 재료. 한약재와 연꽃 등 다양하다.

 

 

누룩의 역할과 효소제와의 차이


전통주 양조에 있어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하고, 술의 성패(成敗)가 바로 이것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좋은 누룩을 장만하는 일은 술 빚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좋은 누룩을 얻기 위해서 최고의 재료를 장만하고, 하나하나의 처리 과정과 디디기, 특히 온도와 습도조절 등 띄우기에 남다른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또한 술 빚는 사람의 자세라고 할 것이다.


전통 누룩은 전분질 또는 왕겨 등을 단독 또는 혼합한 생원료에 곰팡이류와 효모균, 젖산균 등을 자연상태에서 번식시켜, 술의 발효 곧 당화와 발효를 일으키는 발효 효소제이다. 전통적으로 누룩은 ‘곡자(麯子)’ 또는 ‘국자(麴子)’라고 불러왔으며, 전분질 또는 왕겨 등을 단독 또는 혼합한 후 찌거나 가열하여 멸균시킨 뒤 종균(누룩곰팡이)을 파종하여 인위적인 상태에서 번식시켜 전분질의 당화작용을 하는 효소제 역할만을 하는 누룩을, ‘국(麴,)’ 또는 ‘효소제’라고 한다. 결국, 전통 누룩(麯子)이 국 또는 효소제와 다른 것은 효모의 유무라고 할 수 있다.


전통 누룩은 국이나 효소제와는 달리, 50종류 이상의 효소가 있는데, 그 주요기능은 원료미 중의 쌀 등 전분을 당화하여 당분으로 만들고, 단백질을 분해하여 아미노산을 만드는 효소작용과 당분을 분해하여 알코올과 CO2를 생성하는 한편, 아미노산으로부터는 정미성분이나 효모의 영양을 얻고, 고급 알코올 등의 향기성분을 만드는 효모의 발효작용이 누룩의 역할이다.

 

 

지방마다 다른 전통 누룩 빚기

누룩은 형태에 의해서도 술의 맛과 품질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를 테면 누룩의 지름이 너무 짧으면 수분이 너무 빨리 발산되어 누룩곰팡이균이 잘 증식되지 못해 숙성이 잘 이뤄지지 않고, 너무 얇으면 빠른 시일 내에 숙성이 이뤄지는 대신 향미가 좋지 못하고, 주박이 많아지며 주량이 적어진다. 또한 누룩이 너무 두꺼우면 내부의 수분이 발산되지 않아서 내부온도가 너무 높아질 가능성이 있으며, 그 결과 부패하기 쉽고 제조 후 건조시키기가 어려워진다. 누룩은 또 성형 시 발로 밟는 정도에 따라서도 품질에 차이가 있으며, 주질과 맛에 영향을 준다.


누룩은 지방마다의 독특한 기후와 재료의 영향으로, 모양과 제조법, 발효기간이 차이가 있다. 서울을 비롯 경기, 영남지방에서는 원료를 반죽하여 헝겊에 싸서 누룩고리에 넣고 발로 단단히 밟아서 성형한 뒤, 짚으로 싼 후에 온돌방에 쌓아서 띄운다. 반면, 호남, 충청도지방에서는 실내의 시렁이나 천정에 매달아서 10일~30일간에 걸쳐 띄우며, 서울, 경기, 영남지방은 편원형(片圓形)이 많고, 호남, 충청도 지방의 누룩은 원추형이나 모자형(정방형, 방형)으로 형태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누룩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때로 알려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도경]에 처음 누룩에 관한 기록이 보이고,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문헌에 ‘미온(美醞)’ ‘지주(旨酒)’ ‘요례(醪醴)’ 등 술에 관한 기록이 보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누룩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은 삼국시대 이전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누룩 디디는 모습.

 

이후 1450년대 [산가요록]을 시작으로 [사시찬요초], [음식디미방] 등 여러 조선시대의 문헌에 누룩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들 문헌에 보이는 누룩의 재료로는 밀을 중심으로 쌀, 보리, 녹두 등이 주로 쓰였음을 알 수 있으며, 한말에 와서는 분국(粉麴)이라 하여 밀가루로 만든 누룩과, 조국(粗麴)이라고 하여 밀가루와 밀기울을 섞어서 만든 누룩으로 나누어 그 용도를 달리 하였다.

 

 

가을철에 만든 추곡은 술의 향기와 맛이 좋아 절곡(節麯)으로 불려


전통 누룩은 재료에 따라, 만드는 시기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는데, 누룩의 재료에 따라 밀로 만든 밀누룩(小麥麯), 녹두로 만든 녹두국(綠豆麯), 보리로 만든 보리누룩(大麥麯), 쌀로 만든 쌀누룩(米麯)으로 분류된다. 보리나 밀을 원료로 하되, 기울의 유무에 따라 조곡(粗麯)과 분곡(粉麯, 또는 白麯)으로 나뉘는데, 일반에서는 조곡이 선호되었고, 부유층과 반가에서는 밀가루로 만든 분곡 또는 백곡이 널리 쓰였다. 또 만드는 계절에 따라서는 춘곡, 하곡, 추곡, 동곡 등이 있고, 형태에 따라 밀 등의 곡물을 가루로 만든 다음 뭉쳐서 일정한 형태로 성형한 떡누룩(餅麯)과 곡물의 낱알이나 곡분으로 만드는 산국(散麴, 흩임누룩)이 있으며, 빛깔에 따라서 황곡, 백곡, 흑곡, 홍곡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러한 누룩은 주로 8월~10월 사이에 만드는 추곡은 명문가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궁중법의 향온곡(香醞麯)은 향기가 좋은데다 여름철 양조용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특히 가을철에 만든 추곡은 술의 향기와 맛이 좋아 특별히 절곡(節麯)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과거 주막에서 손님이 오면 주모가 손님 앞에 술상을 차려 내오는데, “손님 이 방문주는 가을누룩으로 빚은 술로 한 병에 세 냥입니다.”하고 한마디를 건네면, 손님은 그 술을 다 마시고 가면서 술값 세 냥에 한두 푼을 더 얹어놓고 갔다고 한다. 과거 ‘가을철에 누룩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또한 가을누룩으로 빚은 술은 누룩냄새가 덜하고 맛이 좋으며, 특히 향기가 좋다’는 사실이 상식화 되었으므로, 누룩 만드는데 따른 수고비를 셈하여 주었다는 얘기다.

 

맥이 끊긴 누룩을 복원해 놓은 전통 누룩 중 신곡(좌)과 떡 형태의 병곡과는 다른, 낱알 누룩으로 빚은 신곡(우).

 

 

맥 끊긴 전통 누룩, 복원작업이 시급


하지만 주세법의 제정 발표 이후, 밀가루만으로 만든 분곡은 약주, 청주, 과하주 등의 고급술에, 조곡은 탁주, 소주용 누룩으로 쓰이는 경향을 띠었으며, 가양주금지와 밀주단속이 표면화 되었던 1927년부터는 국자제조회사에 의한 생산공업 형태로 바뀌게 됨에 따라 전통적인 방법의 누룩은 생산량이 감소하였으며, 이후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량식 제국법으로 통일됨에 따라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필자는 일제 강점기 이후, 사라져버린 조선시대 특수누룩 50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재현하여 양조실험을 하게 되었는데, 저마다 독특한 맛과 빛깔, 특히 형용할 수 없는 술향기에 매료된 바 있다. 그간 맥이 끊긴 누룩으로는 밀이나 보리를 주재료로 한 면곡과 추모곡을 비롯, 밀과 쌀 또는 쌀로 빚은 여곡, 설향곡, 연화곡, 홍곡, 백곡, 이화곡이 있고, 밀과 녹두를 이용한 향온곡, 백수환동주곡, 금경로곡, 내부비전곡, 녹미주곡은 특별누룩으로 취급되어 궁중을 중심으로 비전되었었다. 그 밖에 초재(草材)와 약재가 들어간 누룩으로, 연화곡, 요곡, 양능곡, 백주곡, 만전향주곡, 신곡, 정화곡, 동양주곡 등은 누룩이름에 따른 주품명을 갖는 등 특별한 향기와 맛의 주질을 위한 양조에 이용되었다. 이외에도 20여종의 전통누룩이 아직까지 활자에 갇힌 채 빛을 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넘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국가자원의 망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그 동안 옛 것이라고 해서 간과해버렸고, 무조건적으로 현대적인 사고에 바탕한 합리적인 개선점을 찾고자 개량을 거듭한 결과, 획일적이고 규격화되면서 단편적으로 치우쳐 전통성을 상실한 채,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한 예를 수 없이 경험했다. 그러기에 전통 누룩에 대한 무관심과 홀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더욱 금할 수 없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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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가 끝나 완성된 전통 누룩의 빛깔.

 

 

나라마다 독특한 문화적 양상을 띠는 누룩술


전통주의 양조에 사용되는 발효제는 누룩이다. 한자로는 ‘곡자(麯子)’, ‘국(麴)’, ‘국자(麴子)’로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 등 동양 3국은 공히 이 ‘누룩’으로 양조를 해왔다. 누룩은 춘추전국시대에 처음 등장하였다고 하는데, 한자의 구성으로 미루어 당시에도 밀(小麥)과 보리(大麥)를 이용하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누룩을 ‘곡자’라고 하여 떡 형태로 압착, 성형한 누룩을 주로 채택하여 왔다. 그 방법은 주로 밀이나 보리를 껍질째로 타개어 죽이나 물로 반죽하여 누룩틀을 이용해 디딘 후, 초재(草材)에 묻어 띄운다. 초재에 자연균 상태의 아스퍼질러스와 라이조프스 등 누룩곰팡이를 비롯하여 유산균, 효모균 등 다양한 발효균이 활착하여 발효에 관여하기 때문에 보다 복잡미묘한 맛과 향을 나타낸다.


누룩을 개발하여 동양권에서 처음으로 양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은, 지금까지도 우리와 유사한 막누룩이 주류(主流)를 이루지만, 기름진 음식과 추운 기후의 영향으로 도수 높은 술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증류주(백주/고량주)의 제조를 위한 누룩(大麯)과 황주 등의 발효주용 누룩(小麯)을 분리하여 발달시켰는데, 특히 정부 주도의 세계화를 위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나라나 일본과는 다른, 누룩의 차별화를 도모하고 있다.


중국은 누룩을 국자(麴子, 麯子)라고 한다. 간체자(簡體字)로는 곡자(曲子)라고 쓴다. 중국 본토에서 만든 술병을 보면 술 이름에 국(麴)은 없고 곡(曲)이 들어가 있다. 누룩은 술을 빚는데 있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에서 ‘술의 뼈(酒之骨)’ 또는 ‘술의 혼(酒之魂)’이라고도 한다. 중국 누룩에는 대국(大麴), 소국(小麴), 부국(麩麴) 세 가지가 있는데, 대국은 모양이 벽돌만큼 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원료로는 소맥, 대맥, 완두콩, 노란 콩 등의 곡물을 사용하며, 이것을 갈아 물을 부어 반죽하여 벽돌크기로 만든 다음, 석 달 가량 저장해 두면 미생물의 작용으로 발효가 되면서 누룩이 되는 것이다. 분주(汾酒) 등의 백주(白酒)는 이 대국을 사용한다.


소국은 크기가 대국보다 작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원료는 주로 쌀, 쌀겨 또는 소맥을 사용하며, 반죽할 때 약초를 넣으므로 약국(藥麴)이라고도 한다. 소흥주(紹興酒) 등의 황주(黃酒)는 소국으로 빚는다. 그러나 백주 중에도 소국으로 만드는 것도 있다. 부국은 밀기울로 만든 누룩이므로, 원가도 덜 먹히고 양식을 절약하는 장점이 있다. 금주국주(金州麴酒) 등이 이 부국으로 빚는 술이다.


반면, 삼국시대 때 백제로부터 막누룩으로 빚는 양조기술을 전해 받은 것이 일본 양조의 시작으로 알려져 왔다. 병곡에서 출발한 일본 누룩은 기후와 농작물의 영향으로 재료와 방법의 변화를 거쳐 코지로 발달하게 되었고, 이를 발효제로 하여 빚은 사케는 세계화에 접근하고 있다. 일본의 누룩은 ‘국(麴, koji)이라고 하는데, ‘흩임누룩’, ‘산국(散麴)’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에선 일본의 국(코지)을 ‘입국(粒麴)’이라고 한다. 일본의 국은 쪄서 멸균한 찐쌀(고두밥)에 종균(종국, 씨곰팡이)를 파종하여 단일균을 증식시킨 것으로, 양조장과 상품에 따라 각기 다른 균주를 배양한 누룩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본주는 표준화 과학화되어 있으며, 비교적 주질이 일정하고 맛이 깨끗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막걸리를 비롯한 다수의 술빚기에 사용하는 일본식 누룩인 입국(粒麴). 코지라고도 부른다.

완성된 애누룩. 형태가 쪄낸 떡과 같다는 뜻에서 병곡이라고 부른다.

 

 

각국의 양조방식은 누룩제조에 따른 균주의 선택과 배양방식, 형태에 따라 천차만별의 균주(菌株)와 발효 방식을 유지, 발전시켜왔다고 할 수 있으므로, 이에 따른 술의 맛과 향기, 색깔까지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양조방식에 따른 주질과 음주형태, 습관은 나라마다의 독특한 문화적 양상을 띨 수 밖에 없으므로 ‘누룩술’의 의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룩의 중요성


전통주를 빚어 본 사람이면 누구나가 경험하는 바와 같이 술을 알면 알수록 누룩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만큼 보다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술 빚는 일을 두렵게 여긴다. 특히 가양주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그 어느 때 보다 다양한 전통주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를 전통주의 전성기라고 하는데, 술빚기 또는 누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과 관련하여 “애는 버려도 누룩은 버리지 못한다.”는 속설이 생겨났다. 누룩의 장만과 관리가 얼마나 중요하였던지 오죽하면 아이를 버릴지언정 누룩은 버리지 못한다고 하였을까.


또한 고려말의 문신으로 그가 강릉대도호부사로 봉직했던 조운흘(趙云仡)이라는 사람과 관련된 축객고사(逐客故事)가 [고려사]에 전해오는데, 이는 누룩술의 의미를 일깨우는 중요한 예다.

 

강릉태수 조운흘의 집안 가양주는 맛이 좋아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접대에 지친 조태수가 어느 날 누룩을 밟는 하인들에게 ‘슬슬 밟으라’고 지시, 하인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편하게 누룩을 빚을 수 있어 좋아했다고 한다. 그렇게 ‘슬슬’ 밟은 누룩으로 빚은 술로 찾아 드는 손님들에게 접대하기 시작했는데, 접대 받은 손님들은 뜻밖의 술맛에 실망감과 함께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를 놓칠세라, 조태수는 너스레를 떨면서 ‘무슨 술맛이 이렇게 시큼털털하느냐. 더 이상 마실 수 없으니 술상을 물리라’고 지시하자, 하인들이 술상을 물렸다. 이후 조태수의 집안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져 한가한 나날을 보낼 수 있어 좋아했는데, 하루는 이러한 사실을 이상히 여긴 선비가 ‘일부러 누룩을 슬슬 밟게 하여 술맛이 나빠지면 손님이 찾아 들지 않을 것’이라는 조태수의 ‘손님을 쫓기 위한 궁리’를 알아차리게 되면서 ‘술 접대에 따른 축객’의 의미가 되었다.

 

누룩을 슬금슬금 밟게 되면, 발효 시 발생되는 열에 의해 수분증발이 빨라져 누룩곰팡이와 효모균의 증식시간이 짧아지게 되어 소위 누룩의 힘(당화, 발효력)이 떨어지게 된다. 누룩곰팡이와 효모균의 증식이 잘 안되면 결국 술의 당화와 발효가 잘 이뤄지지 않게 되고, 오염균의 증식 기회를 주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발효가 나빠져서 도수가 낮은 술이 되고, 이는 곧 초산발효나 산패로 이어지게 되어 시큼한 맛의 술이 되는 것이다.

 

누룩을 디디는 버선발의 모습.

누룩을 띄우는 과정 중 하나인 누룩 뒤집는 모습.

 

 

한편 누룩은 우선 좋은 재료의 선택은 물론 물의 비율과 혼합 정도에 따라 누룩의 품질이 달라지고, 그에 못지않게 집안환경과 누룩을 디디는 정도, 그리고 누룩을 띄우는 시기에 따라 발효의 정도와 술맛, 향기가 달라지는 특성이 있다. 한 집안의 술은 청결하고 좋은 환경 못지않게 술 빚는데 따른 누룩의 균에 따라 발효특성이 달라지게 되는데, 누룩 속의 효모를 비롯한 미생물은 그 집안의 주변 환경에 따라 균주의 분포와 특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애는 버려도 누룩은 못 버린다는’ 말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 집안의 술맛과 향기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누룩 속의 어떤 누룩곰팡이와 효모균이 존재하느냐이므로 환경을 인위적으로 바꿔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누룩 제조기술과 관리방법은 같은 재료로 술을 빚는 동양문화권 내의 다른 술들과 우리의 전통주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게 해주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팔도강산에 명주가 넘쳐났다”는 말에서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누룩을 얼마나 지키고 가꾸어 왔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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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주 제조 모습.

 

 

가향주와 약주가 주류를 이루는 우리의 전통주


우리나라 발효주류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가향주(佳香酒)와 약용약주(藥用藥酒)가 주류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의 전통주와 음주문화는 계절감각과 백약지장(百藥之長)이라는 효도사상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가향주(加香酒 또는 佳香酒)’는 술에 꽃이나 과일껍질 등 자연재료가 갖는 여러 가지 향기를 첨가한 술로써, 가향재의 대부분은 꽃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나, 더러 과일이나 그 껍질을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가향주를 즐기게 된 데에는 술을 단순히 기호음료로만 인식하지 않고, 일월순천(日月順天)의 계절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얻어지는 자연물을 섭생해 온 고유한 식습관에 기인한다. 즉, 봄이면 진달래며 개나리꽃을 술에 넣어 그 향기와 봄의 정취를 즐기고, 여름이면 장미나 박하, 창포와 같은 꽃으로 술을 빚어 더운 여름의 계절감각을 술에 곁들이기도 하고, 가을이면 유자며 귤과 같이 향기가 좋은 과일껍질로 술에 향기를 불어넣어 가을이 깊었음을 알리기도 하였다. 또,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엄동설한의 설중매는 그 향기가 뛰어나 반쯤 핀 매화를 술잔에 띄워 마시는 풍류로써 우리네 조상들은 저마다의 심성을 맑게 정화시키는 등 고유한 음주문화를 낳기도 하였다. 가향주로는 진달래술을 비롯하여 도화주, 행화주, 창포주, 국화주, 연화주, 연엽주, 백화주 등 셀 수 없이 많다.


창포주 제조 과정. 단오에 찹쌀고두밥과 누륵, 창포즙으로 빚은 창포주를 마시는 풍속이 전해지고 있다.

 

‘약용약주(藥用藥酒)’는 열매를 비롯한 초근목피 등 자연재료가 갖는 각각의 향기와 색깔, 맛 성분, 약성을 첨가한 술을 말하는데, 흔히 ‘약주(藥酒)’라고 한다. 예부터 술을 일컬어 “백약의 으뜸”이라고 여긴 것도 그러하고, 연년수명(延年壽命)이나 불로장생(不老長生)의 신비한 약초를 찾게 된 배경이나, 신선주라는 이름의 술이 전국 각지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러한 약용약주의 특징은, 건강 증진의 목적과 함께 전염병에 대한 예방과 치료, 성인병으로 상징되는 혈관계 질환과 신경관계 질환에 대한 예방과 치료, 강장 강정효과, 머리와 피부를 늙지 않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약재들이 선호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약주들을 장기간 복용하게 되면 늙지도 않고 머리가 검어지며, 동안이 되어 결국에는 장수하게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약재의 처리방법도 주로 민간에서 사용하는 탕약법(湯藥法)을 근간으로 술을 빚는 것이 일반적이나, 더러 찌거나 볶는 등 독특한 방법의 가전비법이 동원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술을 즐기는 한편으로 때에 따라서는 치료를 목적으로 약용약주를 빚어왔다. 한약재를 사용하여, 향과 색깔, 각종 약성을 술에 불어넣는다는 사실에서도 다양성과 특징을 꼽을 수 있다. 약용약주의 다양성은 곧 주질의 다양화, 맛과 향기의 다양화, 그리고 그 다양성만큼의 가능성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통주 가운데 약용약주류로는 한산 소곡주를 비롯하여 계룡 백일주, 가야곡 왕주, 달성 하향주, 안동 송화주, 청양 구기주, 남해 유자주, 낙안 사삼주, 함양 국화주, 완주 송죽오곡주, 청원 신선주, 서울 송절주 등 발효주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한편 가향주를 즐기는 민족과 나라는 드물다. 또한 수많은 민족과 나라가 양조문화를 일궈왔지만,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의 변화에 맞춰 그때그때 얻어지는 향기 좋은 꽃이나 잎, 과실껍질, 생약재를 이용한 다양한 양조문화와 풍류가 깃든 음주문화를 가꾸어 온 민족은 거의 없다. 따라서 가향주와 약주문화는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고유하면서도 차별화된 음주문화로써, 세계 어느 민족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우리 민족만의 정서와 아름다운 풍류(風流)가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계절변화에 따라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잎이 무성해지며, 가을이면 열매와 뿌리가 성해지는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술에 끌어들이는 지혜를 발휘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은 가장 두드러진 전통주의 가치이자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증류주류, 혼성주류, 혼양주류


증류주류(蒸溜酒類)는 자연상태에서의 발효나 양조과정을 통하여 발효된 술, 또는 술덧을 증류과정을 통하여 얻은 술을 증류주 또는 소주(燒酒)라고 한다. 따라서 앞서 예로 들었던 여러 종류의 발효주는 어떠한 방식으로 빚었든지 증류주와 혼성주의 원주(原酒)가 된다. 증류주는 발효주에 비하여 알코올농도가 비교적 높으며, 증류방법에 따라 일부 불순물과 원료주의 원료가 갖고 있던 특유의 성분들은 거의 제거되기 때문에 순수한 증류수와 알코올, 향기성분으로 그 구성성분을 나타낸다. 증류주의 범위에는 전통방식의 단식 증류에 의한 증류식 소주와 현대화된 공정의 연속식 공정에 의한 희석식 소주가 있고, 위스키와 브랜디, 일반증류주가 있다.


전통방식의 증류주류로는 문배주를 비롯하여 광주 산성소주, 한산 불소곡주, 안동소주 등 그 종류가 많지 않으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중주격으로 마시는 희석식 소주는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한 주정(순수 알코올)을 원료로 하여, 증류수를 희석하여 알코올 함량을 낮춘 것술이다. 자전적 해석을 빌면 희석식 소주가 순수한 소주로 인식되고 있으나, 인공감미료를 비롯하여 각종 식품첨가물이 들어가 있어, ‘조미주’라고 할 수 있다.

 

소주를 증류하는 모습.


혼성주류(混成酒類)는 양조주나 증류주에 과실이나 향료, 벌꿀 등의 감미료, 초근목피 등의 약성 한약재 등을 첨가하여 침출하거나 증류하여 만든 술을 가리킨다. 혼성주는 세계적으로 제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소위 ‘리큐르’라고 부르는 술이 혼성주에 속한다. 우리나라 일반 가정에서 소주에 인삼이나 오가피, 구기자 등을 넣어 우려마시는 술인 약용주가 그것으로, 가장 보편적으로 제조되고 있는 술이다.


일반적으로 발효주는 순하고 부드러우며 맛과 향이 좋긴 하지만, 알코올 도수가 낮아 상온에서 변질이 쉽게 일어난다. 이에 비해 소주는 도수가 높아 오래 두어도 변질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맛과 향이 좋아지며, 소량을 마셔도 빨리 취하고 깨끗하게 깨는 것이 장점이지만, 음주에 따른 건강의 피해가 자못 크다는 것이 단점이다. 따라서 발효주와 소주의 단점을 보완한 세계 최고(最古)이자 최초(最初)의 술이 우리의 혼양주(混釀酒)이다. 혼양주의 대표적인 술은 과하주(過夏酒)인데, 누룩과 곡식을 주원료로 술빚기가 이뤄지는 동양권을 비롯 세계에서도 우리나라만의 유일한 방법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하주의 제조과정을 살펴보면, 쌀 등의 곡식과 누룩, 물을 재료로 빚어 발효 중인 술에 증류식 소주를 넣어 재차 발효, 숙성시켜 완성한다.

 

일반인들이 ‘이론적으로 포트와인(Port Wine)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와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포르투갈에서 개발된 소위 알코올강화와인이라 불리는 ‘포트와인(Port Wine)’의 등장 이후부터이다. 우리의 과하주와 유사한 방법의 포트와인이 개발된 시기가 17세기 중엽인데, 우리나라의 과하주는 포트와인보다 50~100년 앞서 개발되었고, 일본의 합성주보다는 300년이나 앞선다는 사실이다. 전통주의 세계화 가능성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각각의 양조방법에 따른 주질의 다양성과 맛과 향기의 차별화는, 오히려 개성화 다양화로 대변되는 세계인들의 각기 음주기호와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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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주 막걸리 거르는 모습.

 

 

제조방법, 주류의 원료, 발효방식에 따라 분류되는 전통주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주류는 크게 원료에 따른 분류와 제조방법에 따른 분류, 주세법상 분류, 양조학적 분류로 구분할 수 있다. 원료에 따라서는 전분질, 당질 그리고 기타 증류주나 양조주에 과실 또는 식물약재를 첨가한 경우가 있고, 제조방법에 따라서는 양조주류, 증류주류, 혼성주류가 있다. 주세법상 주류 분류는 제조방법에 따라 주정과 발효주류(양조주), 증류주류, 기타주류를 포함하고, 양조학적 분류로는 주류의 원료가 당질이냐 전분질이냐에 따라 구분하고, 발효방식에 따라 단발효와 단행발효, 복발효와 병행복발효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주류 분류는 주세법에 의한 제조방법에 따른 분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발효주류는 과일이나 곡류, 서류 등과 기타 원료에 들어있는 당질과 전분질을 곰팡이나 효모의 작용에 의해 발효시켜 만든 술을 가리킨다. 이러한 양조주는 국적이나 그 종류를 불문하고 알코올 함량이 20% 이하로 비교적 낮아, 주변의 온도나 열에 의해 변질되기 쉬운 단점이 있으나, 원료 자체의 함유성분에서 유리된 특유의 향기와 부드러우면서도 독특한 맛이 있다. 특히 발효과정에서 생성되는 특유의 화합물은 미량이긴 하지만, 항암효과나 항산화작용 등 여러 가지 신진대사에 유익한 영향을 미쳐 선호되고 있다.

 

우리나라 발효주류 가운데 대표적인 전통주로, 전라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 25호인 ‘해남 진양주(海南 眞釀酒)’를 들 수 있다. 우선 해남 진양주는 주재료로 멥쌀과 찹쌀, 전통누룩, 샘물로만 빚으므로 순곡 청주(純穀淸酒)에 속한다. 술을 빚는 방법으로, 먼저 멥쌀로 죽을 쑨 뒤, 누룩을 섞어 만든 술밑을 발효시켜 밑술(酒母)을 만들고, 여기에 다시 찹쌀로 고두밥을 지어 보태는 과정인 덧술을 하여 다시 한 번 더 발효시키면, 15~17% 정도의 비교적 높은 알코올 함량을 자랑하는 해남 진양주가 얻어진다. 이와 같이 쌀로 죽을 쑤어서 빚은 술에 다시 고두밥을 지어 보태고 한 번 더 발효시키는 방법은 가장 오래된 양조방법의 하나로써, 주재료로 구분하면 쌀술에 해당하고, 두 번 빚고 두 번의 발효과정을 거쳤으므로 이양주(二釀酒)가 된다.

 

고두밥을 찌는 모습.

고두밥을 짓는 모습.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쌀로 빚은 술을 쌀술(米酒)이라고 하지 않고 청주(淸酒)라고 해왔으므로, 진양주는 순곡 청주가 되는 것이다. 또 진양주는 당화제인 아밀라제(전분분해효소)와 배양 효모 대신 전통누룩을 이용하는데, 이 전통누룩 속의 누룩곰팡이(당화효소제)에 의한 ‘당화(糖化)’와 자연균으로써의 야생 효모에 의한 ‘발효(醱酵)’ 과정을 동시에 거쳐 술이 만들어지게 된다. 따라서 전통주는 자연균인 누룩곰팡이와 효모균으로 발효시키는 양조방법을 추구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와 같이 당화와 발효를 동시에 거치게 되는 양조방식을 ‘병행 복발효(竝行複醱酵)’라고 한다. 그리고 전통주가 누룩 속의 전분분해효소에 의해 쌀의 전분질이 가수분해에 의해 두 분자의 이당류(전분당)로 환원되는 당화과정을 거쳐야만 발효가 이루어지는, 다소 복잡한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술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와인은 과실인 포도가 주원료이므로 포도주라고 하는 것이며, 포도의 단맛성분인 포도당이 원료가 되므로, 배양효모를 첨가하게 되면 당화과정이 없이도 바로 발효가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한번의 발효공정만으로 비교적 단순하게 이루어지는 양조방식을 ‘단발효(單醱酵)’라고 하며, 포도의 당농도에 따라 포도주의 알코올도수가 달라지는 것이나, 전통주에서도 쌀의 양에 따라 알코올도수가 달라지는 이치와 같다. 또 누룩을 이용한 전통주는 효모를 사용하지 않고 포도 과피 속의 자연효모에 의한 발효만으로 이루어지는 정통와인에 견줄 수 있어, 가장 자연친화적인 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전통주가 맑은 술인 청주와 흐리고 탁한 술인 탁주로 맛과 색깔, 향기 등 그 성격을 달리한다면, 와인은 포도 과피의 유무에 따라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으로 분류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효모나 젖산균 등 미생물의 존재여부에 따라 살균주(殺菌酒) 또는 생주(生酒)로 나누기도 한다.

 


같은 쌀이라도 여덟 가지 방법으로 가공하여 술을 빚어

우리나라의 전통주는 그 특징이 다양성에 있다. 전통주는 주로 멥쌀과 찹쌀이 사용되나, 지리적 여건이나 경제적 수준에 따라 보리, 조, 기장, 수수 등 열 가지 쌀이 전통주의 주재료이고, 같은 쌀이라도 여덟 가지 방법으로 가공하여 술을 빚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같은 쌀이라도 여덟 가지로 가공하는 방법은 우리나라에서만 이뤄지고 있는데, 그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앞서의 해남 진양주가 쌀을 죽으로 만들어서 빚은 술이라면, 한산 소곡주(小麯酒)는 찌는 무리떡의 한 가지인 백설기를 지어서 빚는 술이고, 김천 과하주(過夏酒)는 치는 떡인 인절미를 만들어서 빚는 술의 하나이다. 또 특급탁주로 알려진 이화주(梨花酒)는 삶는 떡인 구멍떡으로 빚는 술이고, 하향주(荷香酒)는 삶는 떡의 한 가지인 물송편으로 빚는 전통 청주이다. 흔히 ‘동동주’로 알려진 부의주(浮蟻酒)는 고두밥을 지어서 한번 빚는 청주이고, 국내 최고의 방향을 자랑하는 동정춘(洞庭春)은 찌고 친 다음에 다시 빚어서 찌는 개떡으로 빚는 독특한 방법을 자랑한다. 또 고려시대부터 주막에서까지 팔렸을 정도로 일반화되었던 두견주(杜鵑酒)와 도화주(桃花酒)도 독특한 방법의 하나인 범벅으로 빚는 술인데, 쌀가루를 끓는 물로 설 익히는 반생반숙(半生半熟)법이다.

 

이 밖에도 음력 정월 첫 해일에 시작하여 세 번에 걸쳐 술을 빚는 삼해주를 비롯하여 청명일에 빚는 청명주, 배꽃이 필 때 누룩을 만드는 이화주, 여름철에 술이 변하지 않게 빚는 과하주, 올벼쌀로 빚고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햅쌀술 등 술을 빚는 시기에 따라 분류하고, 발효제로 사용하는 누룩(곡자)의 종류에 따라서도 술의 종류가 달라진다. 이를테면 이화곡으로 빚는 이화주를 비롯하여 백수환동곡으로 빚는 백수환동주, 궁중비법의 향온곡이나 내부비전곡으로 빚는 내국법온(內局法醞) 등 그 종류는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이화주용 전용 누륵. 멥쌀 가루를 오리알처럼 뭉쳐 볏짚 속에 묻어 띄운다.

 

 

탁주와 청주

마지막으로 전통주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이해와 올바른 인식을 도모하기 위해 탁주류와 청주류를 요약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탁주류(濁酒類)는 어떤 술이든지 빚어서 익은 술을 고유여과기라고 할 수 있는 술체나 술자루를 이용하여 누룩과 밥알 등 술찌꺼기를 제거하여, 술 빛깔이 뿌옇거나 흐린 상태의 술을 가리킨다. 따라서 탁주는 ‘알코올도수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없이 술 빛깔이 흐리고 탁한 술’이라는 개념이다. 또한 ‘막(마구)걸렀다’ ‘함부로 아무렇게나 걸렀다’ ‘막되고 박한 술’로 인식되고 있는 막걸리를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특히 막걸리는 술을 거르는 과정에서 물을 타서 마구 거르기 때문에, 비교적 알코올도수도 낮고 저장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긴 하나, 탁주와 같이 여느 술에 비해 감칠맛과 영양가가 높아 신분의 차별 없이 전 계층에서 즐겨 마셨다.

 

전통주 빚기 체험 교육에서 청주는 뜨는(채주) 사람들 모습.

 

 

청주류(淸酒類)는 탁주와 마찬가지로 발효된 술체나 술자루를 이용하여 일체의 고형분이 남지 않게 여과한 술로, 탁주에 비해 술 빛깔이 맑고 깨끗한 술을 가리킨다. 그러나 청주는 탁주보다 독특한 방향(芳香)과 ‘일곱 가지 맛(七味)’을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귀하게 여겨 제사 등 통과의례를 비롯 각종의식에 널리 쓰였는데, 청주야말로 우리 가양주와 전통주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것이다. 청주는 그 종류가 수백 가지에 이르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현재 상품화 된 전통주 가운데 청주는 한 가지도 없다. 전통 청주는 주세법에 ‘약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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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중인 술독.

 

 

전통주란? 민족생활의 공감(共感)으로 형성된 술

‘전통주(傳統酒)’라는 용어의 정의에 대해 아직까지 법적 또는 문화적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거나 대중적으로 합의된 바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전통주라고 말하는 주류에 대해 자전적 해석을 빌면, ‘계통을 이어받아 전하는 술’의 의미와 ‘관습 가운데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특히 높은 규범적 의미를 지닌 술’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양조분야와 관련된 주세법에 근거하여 살펴보면, 전통주는 ‘무형문화재’와 ‘전통식품 명인’, ‘제주도개발특별법에 의한 주류’, 그리고 ‘관광토속주’에 대해 “민속주(民俗酒)”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주세법 상의 민속주가 대중이 지칭하고 인식하고 있는 전통주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 사실상 이들 업무를 주관하고 있는 부처마다 다른 명칭과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 일반인들로서는 그 성격을 쉽게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다.

 

전통주에 대한 정의는 전통주의 발달과 그 배경을 살핌으로써 그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전통주는 역사와 전통적으로 세시풍속(歲時風俗)을 바탕으로 발달과 변화를 거듭해왔다. 세시풍속이란 ‘일상생활에 있어서, 계절변화에 맞추어 관습적으로 되풀이되는 민속’을 가리킨다. 이는 인간이 같은 자연환경과 역사 속에서 생업과 언어생활을 함께 해오는 동안에 동질성(同質性)의 생활관습을 갖게 되는 것이므로, 민중의 생활사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민족생활의 공감(共感)으로 형성된 술’이 전통주라고 할 수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생활에서 체험하고 학습해야만 했기 때문에 선택되었을 것이고, 그러기에 전통주에도 우리 민족의 공감성(共感性)과 문화성이 배여 있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공감성과 문화성이 깃든 전통주로, 봄이면 씨 뿌리고 가을에 거두는 농경세시(農耕歲時)에 사용되었던 ‘농주’를 시작으로, 계절세시(季節歲時)에 따른 술로는 청명주와 두견주, 이화주, 국화주 등이 있고, 명절세시(名節歲時)와 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써, 음력 정월의 설날의 도소주를 비롯하여 단오날의 창포주, 추석날의 ‘햅쌀술’ 등 그때마다 다른 재료와 술 빚는 법을 달리하는가 하면, 목적과 용도에 따른 술을 빚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전통주가 우리 고유의 관습이자 전통문화의 한 가지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두견주(진달래꽃 술) 빚는 모습. 고두밥으로 빚은 밑술에 찹쌀고두밥과 진달래꽃을 넣고 빚는 장면이다.

완성된 두견주. 두견주는 삼월삼짇날의 절기주이다.

 

 

양조목적과 쓰는 용도에 따라 다른 전통주

전통주는 오랜 세월 조상 대대로 가문과 집안마다의 고유한 비법으로 대물림 해 온 가양주(家釀酒: 집에서 빚은 술)와 그 문화에서 그 정의를 찾을 수 있으며, 이는 전통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자 장점이기도 하다.

 

가양주는 자신의 사회적 생활환경과 거주지에 따른 지리적, 기후적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양조방법과 종류, 음주문화를 형성해 왔다. 예를 들면, 자신의 형편에 따라 농사를 짓고 생산한 멥쌀이나 찹쌀, 보리쌀, 좁쌀 등의 재료를 주식으로 이용해 온 식이다. 전통주는 이들 주식이 되는 재료로 빚고자 하는 술의 주원료로 삼았으며, 씻고 불려서 찌거나 끓이기도 하고, 가루로 빻은 뒤 삶거나 찌거나 끓이거나 하여 익힌 뒤에 누룩과 물을 섞고, 고루 버무려 독이나 항아리에 담아 발효시키는 방법을 기본으로 한다. 물론 여기에 다시 쌀이나 누룩, 물 등을 더 보태기도 하여 향기와 맛이 좋은 고급술을 빚는가 하면, 필요에 따라서는 꽃이나 한약재 등을 넣고 다시 발효시킨 향약주(香`藥酒)를 빚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익힌 술은 양조목적과 쓰는 용도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지는데, 맑게 떠낸 청주(淸酒)는 제사나 차례, 부모봉양과 반주 또는 귀한 손님 접대에 사용하고, 누룩과 밥찌꺼기만을 제거하여 만든 탁주(濁酒)는 집안 행사나 농사실 등 가용으로 사용해 왔다. 또 기후적으로 추운 지방에서는 추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술을 증류하여 소주를 만들어 즐기기도 하였고, 더운 지방에서는 도수가 낮은 탁주와 막걸리를 애용해 왔다. 물론 이때의 술은 일체의 인위적 가공품이나 합성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자연발효식품으로서 음주에 따른 폐해가 덜하다.

 

가향주의 하나인 백화주를 제조하는 모습.

 

 

이러한 가양주와 그 이용은 전국적으로 거의 동일하게 이뤄졌으므로, 전통주의 전형적인 제조법으로, 또 고유한 음주문화로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다른 나라의 양조역사와 음주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의 경우도 이들 가양주가 유명세를 타면서 마을과 향리의 술로 이름을 얻게 되었고, 지역적 특성과 산물을 반영한 토속주로 정착되었다. 특히 ‘이름난 가문에서 명주가 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사대부나 부유층에서는 자주 술을 빚게 되어 양조기술이 뛰어나게 됨과 동시에, 고급 재료를 많이 사용하는가 하면, 여러 번에 걸쳐 술을 빚는 중양주를 즐김으로써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명가명주(名家銘酒)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전통주는 고유한 생활문화의 하나로써, 또 세시풍속과 식문화적인 관점에서 볼 때도 “우리 땅에서 생산되고 한국인이 주식(主食)으로 삼는 쌀을 주재료로 하고, 전통누룩을 발효제로 하되, 전통성을 간직하면서도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 동안 갈고 닦아 온 고유한 양조방법을 바탕으로, 자연물 이외의 그 어떤 인위적인 가공품이나 식품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자연발효에 의한 술”로 정의할 수 있겠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1.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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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브루 키트만 있으면 우리 집 맥주 즐겨요

 

한국일보 / 2011-06-16 20:42

 

 


‘하우스’ 맥주라니, 내 집에서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방법, 있다. 시중에 판매하는 ‘홈브루(자가양조) 키트’를 이용하면 된다. 맥아와 홉, 첨가물 등을 섞은 맥주원액까지 들어있어 초보자들도 손쉽게 도전해 볼 수 있다. 실험정신을 발휘한다면 맛, 향, 알코올 도수를 다양하게 조절해 입맛에 꼭 맞는 나만의 맥주를 만들 수 있다. ‘홈브루 키트’는 인터넷 등에서 살 수 있는데, 30ℓ 이상 발효조(케그)와 맥주 원액, 효모, 부스터, 페트병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가격은 6만5,000원부터 12만원 대까지 다양하다. 키트를 이용해 맥주 만드는 과정을 알아봤다.

워트 만들기

먼저 발효조 속에 뜨거운 물을 3.5ℓ 붓고 여기에 맥주 원액을 넣는다. 이때 맥주 원액 캔을 통째로 미리 뜨거운 물에 담가두면 원액이 캔에서 잘 쏟아진다. 설탕 1㎏을 추가로 넣은 후 소독된 막대로 약 5분간 충분히 젓는다. 이후 찬 생수 20ℓ를 발효조에 부어 온도를 20~25℃로 맞춘다. 이 상태가 워트(Wort)다. 이때 끈적끈적한 맥주 원액이 발효조의 바닥에 붙거나 잘 섞이지 않으면 발효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발효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잘 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효모 넣기

온도 20~25℃로 맞춰진 워트에 효모를 넣는다. 온도가 너무 높으면 효모가 죽을 수 있으니 반드시 온도를 확인한 후 효모를 넣는다. 500㎖의 미지근한 물에 효모를 풀어서 넣으면 더 좋다. 넣고 세게 젓는다. 인삼, 초콜릿, 계피, 과일 등을 가루나 과즙 형태로 넣으면 그 향이 난다. 

1차 발효

공기차단기를 뚜껑상단에 있는 구멍에 설치한다. 청결하고 햇볕이 들지 않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고 실내온도(18~25℃)에서 발효시킨다. 보통 4~6일 정도 걸린다. 

2차 발효

발효조의 아랫부분에 있는 꼭지를 이용해 발효조 바닥의 침전물을 제외한 맥주를 압력병으로 옮겨 담는다. 막 옮긴 맥주에 탄산가스가 생기도록 설탕을 500㎖당 5g씩 첨가한다. 소독된 뚜껑으로 막고 여러 차례 세게 흔든 뒤 2,3일간 같은 온도에서 발효시킨다. 이후 서늘한 곳에서 일주일 이상 숙성시켜 병 안의 맥주가 투명해질 때 마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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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Knowledge <306> 세계 각국의 대표 맥주

 

중앙일보 / 2011-06-13 05:09

 

 

 

흑맥주 기네스 아일랜드의 상징… 레페, 중세 수도사들이 만들었어요

기온이 30℃를 오르내리며 시원한 맥주 한잔이 생각나는 계절이 왔습니다.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맥주 출고량은 전달에 비해 20.6%, 1월과 비교하면 70%가량 증가했다고 합니다. 맥주도 글로벌화하며 대형 할인점과 집 근처 호프집 등에서 전 세계의 다양한 맥주를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맥주의 계절 6월을 맞아 나라별 대표 맥주를 살펴봅니다.

 

독일
벡스(Beck’s·알코올 농도 5%) 1873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독일 정통 라거 맥주로 옅은 황금색을 띤다. 브레멘 지역에서 만들어지며 뒷맛에 약간 쓴 홉의 맛이 있다. 과일향이 나며 목 넘김이 좋다.
벡스다크(Beck’s Dark·5%) 벡스의 흑맥주로 독일에서 가장 많이 수출되는 맥주다. 첫 향은 강한 호프향이 나고 맥아(몰트)의 고소하고 달콤한 맛과 캐러멜 맛이 은은하게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뢰벤브로이(L·WENBR·U·5.2%) 오리지널 독일어로 사자의 양조장이라는 뜻이다. 맥주의 도시 뮌헨에서 만들어지는 500년 전통의 맥주다. 황금색을 띠며 끝맛은 약초 향과 함께 쓴맛이 있다.
크롬바커(Krombacher·4.8%) 필스 맥아와 홉의 맛이 섞여 비스킷 맛과 진하고 고소한 맛이 난다. 어린 고순도 맥아만을 사용해 순수한 맥주의 향과 맛을 즐기기에 좋다. 네덜란드·벨기에와 접한 크롬바흐 마을에서 만들어진다.
에르딩거(Erdinger·5.3%) 바이스비어 탁한 황금색을 띤 독일 대표 밀맥주. 부드러우면서 탄산기가 강하다. 바나나향이 나고 얕은 쓴맛으로 끝난다. 전용 잔에 마셔야 풍미를 느낄 수 있다.
파울라너(Paulaner·5.5%) 헤페 바이스비어 뮌헨에서 만들어지는 밀맥주. 부드러워 마시기 편하고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달달한 밀의 향과 바나나향이 나며 약간의 감귤맛도 드러난다.

아일랜드
기네스(Guinness·5%) 오리지널 1759년에 설립됐으며 아일랜드의 상징이다. 세계 기록집 기네스북도 이 회사의 작품. 기네스는 흑맥주만 생산하기로 유명하다. 루비 색깔을 띠고 크림 같은 풍부한 거품이 특징. 첫 맛은 홉과 맥아의 맛이 나고 과일과 초콜릿 맛도 느낄 수 있다.

벨기에
호가든(Hoegaarden·4.9%) 밀 재배지로 유명한 호가든 마을에서 유래됐다. 부드러운 맛에 오렌지 껍질 향이 나는 벨기에의 대표적인 화이트 밀맥주. 육각형의 전용 잔에 마셔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라이선스 계약을 한 오비맥주가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5.2%) 맥주마을 루벤에서 유래된 645년 전통의 라거 맥주. 스텔라는 라틴어로 별, 아르투아는 창시자의 성을 의미한다. 맥주 본연의 쌉쌀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
레페 블론드(Leffe Blond·6.6%), 레페 브라운(Leffe Brown·6.5%) 중세 수도사들의 양조기술과 전통을 계승한 맥주다. 전용 잔은 성배 모양이고 로고는 수도원의 스테인글라스다. 블론드는 정향나무와 사과향이 나고 바닐라 맛이어서 신선하고 담백하다. 브라운은 흑맥주로 쓴맛이 있지만 보리와 캐러멜의 끝맛이 쓴맛을 상쇄해 준다.

체코
필스너 우르겔(Plisner Urquell·4.4%) 체코 필젠 지방 맥주. 1842년 처음 만들어졌다. 흑맥주 일색이던 시절 은은한 황금빛 으로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황금색 맥주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체코산 사츠 홉의 씁쓸한 맛이 잘 조화돼 있다.

영국
뉴캐슬 브라운 에일(Newcastle Brown Ale·4.7%)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 파란색 별 모양의 로고가 눈에 띈다. 갈색에 견과류와 과일향이 나고 쓴맛이 적고 달달한 맛으로 끝난다.

네덜란드
하이네켄(Heineken·5도), 하이네켄 다크(Dark·5%) 1864년 창업한 하이네켄은 세계 3대 맥주회사다. 하이네켄은 달달한 곡물 향이 먼저 느껴지고 강하지 않은 홉의 맛이 이어진다. 하이네켄 다크는 진한 갈색에 거품이 풍부하고 무겁지 않은 흑맥주를 찾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그롤쉬 프리미엄 라거(Grolsch Premium Lager·5%) 스윙톱이라 불리는 독특한 마개가 특징. 일반적으로 4주간 숙성하는 다른 맥주와 달리 8주간 숙성해 향이 풍부하고 오래 간다. 맥아향이 강하고 씁쓸한 끝맛이 적당하다.

덴마크
칼스버그(Carlsberg·5%) 영국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축구단의 스폰서이고 칼스버그컵을 주최하는 등 축구와 함께하는 역동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잘고 부드러운 거품, 쌉싸름한 향과 맛, 부담 없는 목 넘김이 특징이다.

프랑스
크로넨버그1664(Kronebourg1664·5%) 프랑스 맥주 양조의 중심지인 스트라스부르 지역에서 1664년 만들어졌다. 부드럽고 청량감이 있으며 약한 맥아 맛과 홉의 쓴맛이 드러난다. 가볍게 마시기에 편한 맥주다.

오스트리아
지퍼(Zipfer·5.4%) 1858년 북오스트리아 지프 지역에서 창립됐다. 안정된 거품이 나온다. 독특한 홉의 향이 나고 적당한 쓴맛이 있다. 맛과 향이 진한 편.

캐나다
무스헤드 라거(Moosehead Lager·5%) 1867년 처음 만들어졌으며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중 하나다. 맥아의 달콤함과 홉의 쓴맛이 조화를 이룬다. 묵은 효모를 사용하고 오랜 시간 양조를 거치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
버드와이저(Budweiser·5%) 단일 맥주로는 부동의 세계 판매 1위. 체코의 부드바르를 기원으로 하지만 미국 방식으로 새롭게 만들어져 인기를 얻게 됐다. 특유의 쌉싸름한 홉 맛과 풍부한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버드아이스(Bud Ice·5.5%) 처음에 맥주 보관상의 실수로 우연히 만들어졌다. 강렬한 자극 없이 부드러운 목 넘김에 청량감이 특징이다.
밀러(Miller·4.6%) 특허를 받은 세라믹 여과기술로 맥주향이 날아가는 것을 막아 ‘병으로 즐기는 생맥주’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달콤한 옥수수향과 맛이 나므로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쿠어스라이트(Coors Light·4.2%) 1873년 설립된 쿠어스의 간판 맥주. 로키산맥의 깨끗한 물을 사용해 미네랄이 풍부하다. 다른 미국의 맥주들과 마찬가지로 맛이 강하지 않고 탄산기가 높아 청량감이 느껴진다.
새뮤얼 애덤스(Samuel Adams·4.8%) 보스턴 라거 미국 독립운동의 불을 지핀 보스턴 ‘티 파티’ 사건의 주모자이자 맥주 양조업자의 이름을 땄다. 독특한 꽃의 향과 소나무향에 캐러멜 맛이 난다. 홉의 맛이 강해 미국 맥주 중 가장 개성이 넘친다.

멕시코
코로나(Corona·4.6%) 데킬라와 함께 멕시코를 대표하는 술. 라임(레몬)을 넣어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선인장향이 가미된 가볍고 깔끔한 맛이 특징. 라임의 상큼함이 더해지면 청량감이 더 잘 느껴진다.

호주
포스터스(Foster’s·4.9%) 라거 비어 1887년 멜버른에서 설립된 호주 최대의 맥주회사 포스터스의 대표 맥주. 밝은 황금색에 크림과 같은 거품이 특징이다. 가벼운 맥아 향에 깨끗한 홉의 끝맛이 느껴진다.
포엑스(XXXX·4.5%) 엑스포트 라거 호주 퀸즐랜드에서 제조되며 깊은 청량감을 자랑한다. 탄산가스가 많은 편이지만 톡 쏘는 맛이 강하지 않고 깔끔한 맛을 낸다.

일본
아사히(Asahi·5%) 수퍼 드라이 수퍼 드라이 출시(1987년) 이전까지 아사히 맥주의 일본 내 시장점유율은 10% 정도였으나 출시 이후 50%까지 치솟았다. 가벼우면서 깨끗한 청량감이 느껴지며 드라이한 맛으로 마무리된다.
기린(Kirin·5.5%) 이치방 시보리 첫 번째로 짜낸 맥즙만을 사용하는 독특한 제조법을 사용한다. 다른 제조법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지만 풍부한 맛을 낸다. 섬세한 일본 음식과 잘 어울린다.
삿포로(Sapporo·5%) 실버컵 650mL의 대용량 실버컵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부드러운 첫 맛 뒤에 느껴지는 입안 가득한 향과 쌉쌀함이 그윽한 정통 일본 맥주를 느끼게 해준다.

중국
칭다오(Tsingtao·5%) 60여 개국에 수출되는 중국의 대표 맥주. 1903년 중국에 살던 독일인을 위해 독일인이 만들었다. 약한 곡류의 향과 달콤함이 느껴지며 짜릿한 끝맛이 중국 양꼬치구이 등과 잘 어울린다.

필리핀
산미구엘(San Miguel·5%) 페일 필젠 산미구엘은 1890년 설립된 동남아 최초의 맥주회사다. 고소한 향에 약간의 맥아와 홉의 맛이 난다. 색깔은 밝은 황금색이다. 맛이 엷은 편이어서 차게 해서 마시면 좋다. 필리핀에서는 얼음을 넣어 먹기도 한다.

싱가포르
타이거(Tiger·5%) 1932년 출시된 싱가포르 최초의 맥주. 상표에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아시아 지역을 비롯한 60여 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상쾌한 맛과 부드러운 목 넘김, 미세한 과일향이 감미롭다.

태국
싱하(Singha·5%) 고품질 홉의 향과 효모의 진한 맛이 특징인 100% 맥아 맥주. 하얀색 거품이 인상적이다. 탄산의 느낌이 강하고 터프한 목 넘김과 부담스럽지 않은 쌉쌀함이 조화를 이뤄 매콤한 태국 음식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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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酒·진달래酒·목련酒… ‘홈메이드 약술’ 담가보세요

 

한국일보 / 2010-05-06 21:33

 

 

두통과 현기증을 다스리는데 좋은 봄철 담금주인 목련주.
‘홈메이드 약술’ 담글 시기다. 봄에 나는 꽃과 과일로 집에서 직접 만드는 담금주는 허약해진 몸과 기운을 보강하고 인공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웰빙술’로도 사랑 받는다. 이맘때 담가 놓았다가 4∼5개월 뒤 마시면 된다. 봄꽃의 대명사 개나리로 만든 담금주를 하루 한두 잔 정도 식전이나 취침 전에 마시면 미용과 건강을 모두 챙길 수 있다. 개나리꽃을 살짝 씻어 그늘에서 물기를 말린 다음 담금주 전용술을 채우면 완성. 잘 밀봉해 그늘에 놓아뒀다 4개월쯤 뒤 체에 받쳐 거르면 맑은 술이 된다. 진달래와 목련은 재료 선택에 신경 좀 써야 한다. 진달래는 5월에 피는 독성 있는 철쭉과 생김새가 비슷해 혼동할 수 있어 잘 구분해야 한다. 진달래는 철쭉과 달리 꽃잎 안쪽에 검은 점이 없으며, 둥근 형태로 꽃이 핀다. 철쭉은 잎이 먼저 나오지만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었다 진다. 목련주에는 붉은 꽃보다 주로 흰 꽃을 쓰는데, 꽃을 너무 많이 넣으면 흑갈색이 되고 향이 너무 진해진다. 봄꽃으로 담근 술은 한방 효과로도 알려져 있다. 목련주는 두통과 코막힘 현기증을, 진달래주는 신경통과 두통 천식 월경이상을 다스린다. 민들레주는 위장의 운동을 돕는 효능이 있어 위가 약하거나 설사 변비가 잦은 사람에게 좋다. 담금주에 쓰는 꽃은 만개한 것보다 갓 피어난 게 좋다. 밑술의 양은 대체로 재료(꽃)의 3~4배 분량이 적당하다. 예전엔 밑술로 소주를 많이 썼지만 요즘 소주는 알코올도수가 20% 아래로 내려가 담금주의 제 맛을 내기가 어렵다. 꽃이나 과일의 성분이 잘 추출되려면 25% 이상의 담금주 전용술을 사용하는 게 좋다. 김지윤 국순당연구소 연구원은 “특히 수분이 많은 과일은 30~35% 정도의 고도주가 좋으며, 건조된 한약재는 25% 정도가 적당하다”고 설명했다. 봄철에 가장 인기 있는 과일인 딸기도 담금주 재료로 제격이다. 지나치게 익은 딸기로 술을 담그면 과육이 물러져 담금주가 탁해질 수 있기 때문에 적당히 익은 걸 고르는 게 중요하다. 약간 덜 익은 듯한 딸기도 괜찮다. 꼭지를 뗀 딸기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물기를 뺀 다음 마른 헝겊으로 하나씩 싸서 완전히 물기를 제거한다. 레몬이나 매실을 함께 넣고 밀봉하면 단맛과 신맛이 적절히 조화돼 더욱 맛있어진다. 서늘한 곳에 뒀다 2주 뒤 딸기를 꺼내고 거즈로 걸러 2개월간 더 숙성시키면 된다.

● 월별 담금주 캘린더

 

01월 | 다래 감초 건포도 엉겅퀴

02월 | 딸기 키위 두충 비자

03월 | 베고니아 쑥 깻잎 당귀 오미자
04월 | 진달래 개나리 목련 더덕 엄나무 두릅 대황
05월 | 골담초 귀룽나무 녹나무 모란 민들레 물푸레나무
06월 | 나무딸기 등꽃 밀나물 살구 앵두 참외 부추
07월 | 개다래 꼭두서니 복숭아 박주가리 도라지 자두 박하
08월 | 우산나물 삼백초 산지구엽초 쇠무릎 가지덩굴 키위 오가피
09월 | 오디 도꼬마리 가막사리 레몬 만삼 머루 대추
10월 | 구절초 배 산초 산수유 송이버섯 모과
11월 | 비파나무 국화 솔방울 생강 구기자
12월 | 귤 사과 석류 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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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제주까지… ‘전통주 대표선수’가 뛴다

 

한겨레 / 2009-12-16 10:06

 

 


전국팔도 우리술 지도… 김포 문배주·홍천 옥선주·전주 이강주·제주 오메기술… 지역의 맛과 향 담아 수백년 동안 ‘주류계 노장대결’
“서울의 참이슬, 강원은 처음처럼, 경북 참소주, 전남 천년의 아침, 부산에서는 시원(C1)….” ‘서민의 술’ 소주는 프로야구 리그와 더불어 오래전부터 지역 주류업체의 연고를 바탕으로 한 ‘전국 리그’를 구성하고 있다. 지역 대표선수를 자처하고 있는 소주는 “우리 동네 소주가 낫다”는 말이 술자리 말다툼의 원인이 될 만큼 높은 자존심을 자랑한다. 그러나 ‘소주 리그’ 탄생 이전부터 지역의 자존심을 걸고 수백년 동안 치열한 대결을 벌여온 ‘주류계의 어르신’이 있다. 멀게는 백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 이름은 ‘전통주 리그’. 전통주는 알코올 성분인 ‘주정’을 물에 섞어 만드는 ‘희석식 소주’와 달리 누룩(밀·찐 콩 등을 갈아 반죽한 뒤 누룩곰팡이를 피워 만든 술 발효제)으로 빚은 뒤 걸러 만들기 때문에 뿌리부터 다른 리그다. 걸러낸 술의 맑기에 따라 약주와 탁주(막걸리 등)로 구분하는 전통주는 지역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개성 있는 제조 방식이 있어 마치 ‘올스타전’을 보는 것처럼 화려하다.

■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수도권 리그

서울은 전통주 대표선수로 ‘삼해주’를 내세운다. 십이간지로 셈한 정월의 첫 해일(亥日·돼지날)로부터 12일이 지난 다음 해일, 그리고 그다음 해일까지 모두 세 번에 걸쳐 누룩을 앉힌다고 해 ‘삼해주’라고 이름을 붙였다. 맑고 푸른 빛이 도는 삼해주는 조선 중기 마포 나루터 일대 술집에서 인기를 끌어 술 항아리가 1,000개가 넘었다는 기록도 있다. 평양에서 경기로 남하한 술도 있다. 그 주인공은 ‘문배주’. 술에서 활짝 핀 배꽃 향이 난다고 해 문배주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 배를 원료로 쓰지는 않는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평양 술공장에서 대량생산도 했던 이 술은 1990년대 이후 경기 김포에서 생산되고 있다. 경기 화성에서 먹는 ‘부의주’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동주’의 원조다. ‘쌀알이 동동 떠 있다’는 뜻의 동동주는 원래는 뜰 부(浮)·개미 의(蟻)자를 쓰는 부의주를 풀어 쓴 말이다. 고려시대 문헌에 부의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 화려한 전통 내세우는 충청·강원권 리그

강원 홍천의 ‘옥선주’는 가문의 효심 덕에 세상에 나온 술이다. 조선 고종 38년 전주 이씨 가문의 이용필씨가 괴질에 걸린 부모를 봉양하고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도려내 고깃국을 끓였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고종은 이씨의 효심을 높이 사 정3품의 벼슬을 내렸고, 이씨는 감사의 표현으로 집에서 빚은 옥선주를 진상해 알려지게 됐다. ‘옥선’은 현재 기능 보유자인 이한영씨의 고조할머니 이름을 땄다. 충남 아산의 ‘연엽주’는 특이하게 연근과 솔잎이 재료로 쓰인다. 술을 빚을 때 마르지 않은 연잎이나 솔잎 등을 넣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당시 이완 장군이 병사의 몸보신을 위해 이 술을 빚어 먹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계룡의 ‘백일주’에는 진달래·국화꽃을 넣어 향기를 은은하게 낸다. 충남 서천의 ‘한산 소곡주’는 먹다 보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취기가 돈다고 해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이른다. 한양으로 과거길에 오른 선비가 목을 축이려 주막에서 소곡주를 먹다가 술맛이 좋아 주저앉은 뒤 결국 과거를 보지 못했다는 일화도 있다. 백제시대부터 빚어 먹었으나 전국적으로 알려진 때는 조선시대 초기다. 누룩을 적게 쓰는 방식 때문에 ‘소곡주’라고 한다. 충북 충주에서는 과거길에 오른 사대부에게 인기를 끌던 ‘청명주’가 있다. 한양으로 향하던 경상도 사대부가 충주에서 청명주 한 잔을 마시면 문경새재 마루턱에 가서야 취기가 가실 정도의 술이었다고 전해온다. 충북 청주의 ‘대추술’은 삼국시대 자리 잡고 있던 이 지역의 토성인 ‘상당산성’ 사람이 빚어 먹던 향토 술이다. 누룩에 대추·인삼을 넣고 찐 쌀밥을 버무려 맛을 냈다.

■ 상류사회 취기를 담은 영호남 리그

경북 안동의 ‘안동소주’는 그 유명세만큼이나 역사도 깊다. 13세기의 안동은 몽고의 쿠빌라이 칸이 일본원정 길에 오르면서 만든 병참기지 노릇을 하고 있었다. 당시 몽고식 소주가 안동에 전해지고, 고려시대 집권층 사이에서도 이 ‘안동소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1920년 ‘제비원’이라는 상표를 달고 처음 대량생산이 됐으나, 1962년 순곡 소주 금지령으로 잠시 명맥이 끊겼다. 1990년부터 다시 생산되고 있다. 경북 경주의 ‘교동법주’는 조선시대의 외빈 행사용 공식 건배주다. 당시 문무백관과 사신을 대접하기 위해 빚어 먹던 술로, 빚는 날·방법이 정해져 있다 해서 ‘법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절에서 빚어 먹어서 법주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주장도 있다. 전북 전주의 ‘이강주’는 조선시대 중기부터 전라·황해도에서 상류층이 빚어 먹던 약주다. 토종 소주에 배·생강이 들어가서 이강주(梨薑酒)라는 이름이 붙었다. 평양의 ‘감홍로’, 전북 정읍의 ‘죽력고’와 함께 최고의 술로 일컬어졌다. 조선시대 말기 고종이 ‘한미 통상조약’을 체결할 때, 통상 항목 가운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로 언급되기도 했다. 제주에는 ‘오메기 술’이 유명하다. 술독에 오메기 떡(차조가루로 빚어 삶아 콩고물을 묻힌 제주 지방 향토 떡)을 담가둔 뒤, 윗부분만 떠먹는 술로 제주에서는 ‘청주’라고도 했다. 새해에 세배할 때나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내던 술로 전해온다.

 

 


 

주세법 ‘전통주 헷갈려’… 민속·농민주로만 구분해 포괄정의… 주류정책 혼란 탓 ‘술족보’ 아리송
막걸리·동동주·청주…. 여기저기 전통주를 앞세운 술이 넘쳐나지만, 정작 그 술을 마시는 일반인은 ‘주류계의 족보’를 알아보기 힘들다. 전통주의 ‘법적 신분’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우선 우리나라의 주세법을 보면, ‘전통주’의 정의는 명확하지 않다. “전통문화의 전수·보전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주류, 주류 부문의 전통식품명인이 제조한 주류 또는 농업인·임업인 또는 생산자 단체가 제조하는 주류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류”로만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류 면허를 부과하기 위해 나눠 놓은 주세법 시행령에는 ‘민속주’와 ‘농민주’의 구분하고 있다. 농민주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추천하는 농·임업인·생산자단체가 스스로 생산한 농산물을 원료로 만든 술”로, 민속주는 “전통문화 전수 보전에 필요하다고 인정해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지자체장 등이 추천하는 술”로 규정돼 있다. 안동소주·문배주 등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전통주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처럼 주세법이 전통주 시장 전체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개선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소비자가 전통주라고 느끼는 막걸리나 약주 가운데 농민주나 민속주의 개념에 포함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농림수산식품부 등에서는 ‘전통주’를 농민주와 민속주 등을 폭넓게 포괄하는 개념으로 내부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다. 전통주의 족보가 복잡한 것은 혼란스러웠던 주류정책에서 비롯됐다. 쌀 부족 등의 이유로 전통주 빚는 것을 금지하는 등 약주·탁주 등 발효주에 대한 정책이 바뀌어 왔다. 앞서 일제 강점기인 1909년부터 주세를 매겼던 우리나라는 1916년부터 약주·막걸리·소주를 전통주로 통일해 지역별 주류 제조업자를 배정하기도 했다. 누구나 빚어 먹던 술이 정부 통제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8·15 광복 직후에는 외래 술과 밀조주가 성행했으며, 1962년 이후에는 국세청의 발족 등으로 징세를 위한 주류 체계의 개편이 이뤄졌다. 당시 양곡관리법에서 순곡 주정을 이용한 술 제조가 금지되면서 전통주의 상당 수가 생산·판매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뒤 주류 면허의 규제가 풀리는 등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전통주 시장은 다시 명맥을 이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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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명인의 술 이야기] <7> 송화백일주 벽암 스님

 

동아일보 / 2009-12-18 03:14

 

 

오곡 솔잎 송홧가루로 우려낸 ‘100일 곡차’

《좋은 술의 기본은 좋은 물. 좋은 물은 바위틈에서 나와야 하고 사철 온도가 일정해야 하며 무거워야 한다. 수많은 고승과 도인을 배출한 호남의 명산 모악산(794m). 이 산 정상 아래 자리한 수왕사(水王寺)는 ‘물왕이 절’로도 불린다. 수왕(水王)이니 물의 왕이다. 물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 이 절 주지에게 대물림으로 내려오던 술이 송화 백일주다. 스님이 술을 빚어 판다고? 절에서 술을 곡차라 부른다. 절마다 술이 있었다. 해인사 통도사 범어사 등 큰 절에는 그 절의 독특한 행사용 법주가 있었다. 곡차는 선승들에게 필요한 기(氣)음식이다. 얼음장 같은 산중 냉골마루나 바위에 앉아 수행을 하다 보면 몸에 병이 찾아든다. 고산병 위장병 냉병 영양결핍 등 직업병을 막고 치료하기 위해 곡차를 한 모금씩 마셔왔다. 술은 절에서 금기이지만 한편으로 수행의 방편이 되기도 했다. 경지에 이른 선사들에게 곡차는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진정한 차였다.》

수왕사에서는 송화 백일주를 진묵대사(1562∼1633) 기일(음력 10월28일)에 제상에 올린다. 수왕사에는 진묵대사를 모시는 조사전이 있다. 정유재란 때 불탄 수왕사를 중창한 진묵대사(1562∼1633)는 ‘작은 석가’라 불릴 만큼 경계를 넘는 도승이었고 술을 좋아했다. 호남에는 그의 기행과 이적에 관한 수많은 설화가 남아있다. 배고파 구걸하러 온 모녀에게 금부처의 팔뚝을 떼어 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잡은 물고기를 살려 보내기도 했다고 전해온다.

“하늘은 이불로, 땅은 깔개로, 산을 베개로 누워 보니. 달은 촛불이요, 구름은 병풍인데, 바다는 술통처럼 넘치는구나. 맘껏 취해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걱정이네.”

김삿갓도 탄복했다는 호방한 시를 남긴 진묵대사가 수왕사에서 빚어 먹고 그 비법이 전해 오는 술이 송화 백일주다. 전북 완주군 구이면 수왕사 주지 벽암 스님(속명 조영귀·60)은 1994년 송화 백일주 양조법으로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1호에 지정됐다. 열두 살에 출가해 열일곱 살부터 수왕사에 머물면서 술을 담가 온 지 30년 만이다. 1998년 민속주품평회 대통령상을 받았다. 2007년에는 대통령의 설 명절 선물로 선정됐다.

송화 백일주는 밀로 만든 누룩에 오곡과 솔잎 댓잎을 넣어 발효시켜 16도의 발효주를 만들고 이 술을 증류해 소주를 내린다. 16% 발효주는 송죽 오곡주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여기에 송홧가루와 산수유 오미자 구기자가 넣고 100일 동안 저온 숙성한다. 도수는 38%로 솔향이 강하다. 술은 투명한 노란빛. 첫맛은 쌉쌀하고 뒷맛은 달콤하다. 빨리 취하고 빨리 깬다. 몸이 가벼운 술이다. 스님은 “소나무 성분이 물에 잘 용해되지 않고 휘발성이 강해 알코올이 빨리 빠져나가기 때문이다”고 설명한다.

옛날 어머니들은 5월이면 고추장과 된장을 담은 장독 뚜껑을 열어 놓고 송홧가루가 장에 내려앉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송홧가루가 방부제 역할을 해 우리 몸에 좋은 효모와 효소가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송화 백일주에 들어가는 송홧가루도 같은 역할을 해서 술을 오래 두고 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 송화백일주는 3년을 숙성했을 때 맛과 향에서 가장 원숙한 상태가 된다. 스님은 1992년 절에서 멀지 않은 모악산 아래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에 아예 술도가(송화양조)를 차렸다. 돈보다 송화주의 맥을 잇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다. 그가 빚는 것은 술이 아니라 전통이요 약인 셈이다. 이곳에서는 소줏고리나 재래식 술독 대신 스테인리스로 만든 발효통을 사용한다. 옛날에는 술에 소나무의 기운을 담기 위해 소나무 큰 뿌리 밑에 술독을 묻었다.

“좋은 송홧가루와 솔잎 채취가 중요해요. 산꼭대기 소나무에서 한 번 수분이 빠진 늦가을 솔잎을 따고 잘 마른 송홧가루는 수분이 들어가지 않도록 특별히 밀봉 보관해야 합니다”

송화 백일주에는 과일이나 횟감이 안주로 제격이다. 독주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은 오리 등 육류와도 함께 즐긴다. 송화 백일주의 명맥은 등단 시인인 후계자 조의주 씨(36)가 잇고 있다. 스님의 속가 아들인 그는 “힘이 들지만 수백 년 내려오는 술을 후손에게 전수하는 보람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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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명인의 술 이야기] <6> 지리산 솔송주 박흥선 씨

 

동아일보 / 2009-12-11 03:15

 

 

《조선시대 영남 유림의 맥을 논할 때 ‘좌안동 우함양(左安東 右咸陽)’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경남 함양은 일찌감치 묵향의 꽃을 피운 선비 고을이다. 그 중에서도 지리산을 병풍 삼아 볕 좋은 곳에 자리 잡은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이 대표적이다. ‘조선5현(朝鮮五賢’) 가운데 한 사람인 일두 정여창 선생(1450∼1504)의 500년 된 고택(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86호)이 이곳에 있다. 하동 정 씨의 집성촌인 이 마을에는 200년 이상 된 기와집 수십 채와 아담한 돌담길이 세월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남아 있다.》

청정 암반수… 깊은 솔향… ‘지리산의 술’

또 하나. 늘 푸르고 꼿꼿한 소나무와 선비의 절개를 닮은 명주가 500년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정 선생 가문에서 500년째 내려오는 가양주(家釀酒)인 ‘지리산 솔송주’다.

“물 좋은 곳에서 좋은 술이 나기 마련이죠. 술의 절대량이 물로 채워지니 어떤 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명주가 결정됩니다. 솔송주는 지리산 지하 암반수에 지리산 골짜기에서 나는 찹쌀, 솔잎, 송순, 누룩을 버무린 지리산의 술입니다.”

솔송주의 맥을 유일하게 지켜오고 있는 박흥선 씨(57·전통식품명인 27호)는 정 선생의 16대손 며느리이다. 33년 전 개평마을에 시집을 와서 시어머니에게 술 빚는 법을 배웠다. 100세인 시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요즘엔 박 명인 혼자 맡고 있다.

“처음 시집왔을 땐 누룩 냄새를 맡지도 못했어요. 30년 넘게 술을 빚어왔지만 술은 한잔도 못 비워요. ‘이런 내가 가문의 술을 빚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지만 가양주의 맥을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에 제조법을 배웠습니다.”

술은 못하지만 혀끝으로 술이 잘 빚어졌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남편 정천상 씨(63)의 도움도 컸다. 정 씨는 20대 초반 총각 시절부터 맛본 솔송주에 대한 절대미각이 있다. 그의 기억으로는 솔송주 한잔을 맛보기 위해 전국에서 개평마을을 찾은 주당 나그네가 엄청났다고 한다.

지금 솔송주가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엔 술 이름이 ‘송순주(松荀酒)’였다는 점. 박 명인이 1996년 주조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타 지역에서 먼저 등록한 송순주와의 중복을 막기 위해 한글로 풀어 솔송주라고 이름 붙였다.

함양 선비들의 주안상에 오르던 솔송주의 제조과정은 이렇다. 찹쌀 죽에 누룩을 잘 섞어 독에 보관하고 사흘가량 발효해 밑술을 만든다. 식힌 고두밥과 살짝 찐 솔잎과 송순을 밑술과 섞어 보름가량 숙성한다. 송순을 찌는 건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서다. 숙성된 술을 채와 창호지에 걸러내 서늘한 곳에서 20일가량 보관한 뒤 맑은 윗술을 떠내면 비로소 솔송주가 완성된다.

발효과정에서 남은 당분(잔당)을 조절하는 건 박 명인만의 비법이다. 당분이 없으면 독한 술이 되고 너무 많으면 고유의 술맛이 사라진다. 솔향 가득한 술은 이렇게 후손의 손끝에서 가문의 명예를 지켜왔다.

여느 술 빚는 사람처럼 박 명인도 발효와 숙성을 중요시 한다. 날씨와 온도에 따라 숙성기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운다. “발효는 하늘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술을 빚는 과정에서 기도를 많이 드립니다.” 가톨릭 신자인 박 명인은 술 빚는 과정이 기도의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솔송주는 이름을 닮은 맛을 낸다. 진한 솔향이 먼저 코끝을 파고든다. 도수가 높지만 달짝지근한 맛에 목 넘김이 부드럽다. 뒤끝이 깨끗한 게 특징이다.

1996년부터 솔송주는 대변신을 꾀했다. 가양주 특성상 공급이 달리던 솔송주 명성을 전국과 해외로 확대하기 위해 대량 생산의 길로 접어들었다. 박 명인 부부가 개평마을 인근에 대형 술도가인 ‘명가원’을 차렸다. 현대식 술도가에서 만든 솔송주는 13%짜리 약주와 40%짜리 증류주로 나뉜다.

솔송주와 명가원에서 만드는 과실주는 해외에서도 인기다. 홍콩 중국 미국 일본 등 6개 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그동안 정천상 씨가 매년 서너 차례씩 국내외 주류 박람회에서 솔송주의 우수성을 알리고 다녔다. 박 명인도 직감과 손맛으로 전수된 제조법을 대중화로 이끌어내기 위해 술도가에서 몇 년을 연구했다.

전통을 간직한 노력 덕분에 솔송주는 지난해 경남 창원시에서 열린 환경 올림픽인 ‘2008 람사르 총회’에서 공식 건배주로 채택됐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북한 방문 때 남측이 내놓은 공식 만찬주 가운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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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명인의 술 이야기] <5> 추성주 양대수 씨

 

동아일보 / 2009-12-04 03:09

 

 

12가지 한약재로 빚은 ‘담양의 1000년 명주’

《‘깨끗한 찹쌀 5되, 멥쌀 1말 5되를 여러 번 씻어 물에 담그고…(중략). 엿기름 3근, 물 3말, 미지근한 물로 갠 누룩 11근에 두충, 창출, 육계, 독활 따위를 한 근 반씩 넣고…’. 전남 담양군 용면 추월산 자락에 자리한 ‘추성고을’. 양대수 씨(55)가 운영하는 술도가에는 120년 넘게 전해 내려오는 비방이 있다.》

‘추성주(秋成酒)’로 불리는 전통주 제조 기법이다. 양 씨 증조할아버지가 족자에 300여 한자로 써 놓은 것을 할아버지가 한글로 풀어 쓴 것이다. 4대에 걸쳐 내려오는 ‘원본’과 ‘번역본’은 양씨 집안이 가장 중히 여기는 가보(家寶)다.

추성은 담양의 옛 이름이다. 추성주는 통일신라 경덕왕 때부터 고려 성종 때까지 250여 년간 추성군으로 불린 담양의 지명에서 따왔다. 술은 추월산 인근 천년고찰인 연동사(煙洞寺)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1796년 담양부사 이석희는 이곳 풍물을 소개한 ‘추성지’에 ‘연동사 스님들이 절 주변에서 자라는 갈근, 두충, 오미자 등 갖가지 약초와 보리, 쌀을 원료로 술을 빚어 곡차로 마셨다’는 고려 문종 때 참지정사(參知政事·종2품)를 지낸 이영간의 증언을 적고 있다. 술맛이 어찌나 좋았던지 ‘마시면 신선이 된다’고 해 ‘제세팔선주(濟世八仙酒)’로 불렸다는 내용도 있다.

‘명불허전(名不虛傳).’ 1,000여 년 역사를 지닌 추성주는 역시 명주였다. 한약재에서 우러나오는 그윽한 향과 알싸한 맛이 혀를 간지럽혔다. 알코올 성분이 25%이지만 그리 독하지 않았다. 대나무 숯으로 걸러 낸 때문인지 뒷맛도 깔끔했다.

추성주의 독특한 맛과 향의 비밀은 발효와 숙성 과정에 있다. 제조 과정은 이렇다. 잘 씻은 쌀로 고두밥을 지은 후 누룩과 분쇄한 약초를 넣어 잘 섞는다. 다시 술덧(술밑)에서 15일 이상 저온 발효시킨 후 술지게미(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를 없앤다. 이어 술덧을 증류기에서 서서히 빼내면 특유의 향미가 나는 원주(배합·출하 공정 이전의 술)가 생긴다. 이를 다시 가라앉히고 대나무 숯으로 걸러내면 추성주가 만들어진다.

전통 비법에는 20여 가지 한약재가 들어간다고 돼 있지만 지금은 12가지만 사용한다. 독활, 강활 등이 식품 첨가 규제 약제여서 쓰지 않고 있다. 대량생산을 위해 현대식 설비를 갖췄지만 제조방법은 예전과 똑같다.

양 씨는 20년 전 만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지역농협에 다니던 그는 1988년 아버지 유지를 받들어 직장을 그만두고 양조장을 차렸다. 하지만 제대로 된 추성주를 빚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세한 양조기술을 전수하지 않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추성주는 한약재가 첨가되기 때문에 술을 빚는 과정이 까다로워요. 한약재 특성에 따라 달이거나 찌고 볶는 방식이 제각각이거든요” 약재를 다루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추성주를 빚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2년 가까이 약재 연구에 매달렸다.

“대학과 연구기관, 한약방을 열심히 찾아다녔습니다. 구기자와 갈근 등은 달이고, 오미자와 우슬 등은 볶고, 연뿌리는 쪄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죠.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더군요”

양 씨는 술을 빚어 주위 사람들에게 맛을 보였다. 하지만 ‘술이 싱겁다’, ‘냄새가 난다’는 등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숙성과정을 조절하고 약초를 줄이는 등 비방을 다듬은 끝에 2000년 국내 22번째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받았다.

‘추성고을’에는 담양의 명물 대나무로 만든 ‘댓잎술’도 있다. 추성주를 빚는 과정에서 나오는 증류수에 댓잎을 넣어 만든 12도짜리 발효주로 젊은층에게 인기다. 양 씨는 “요즘 우리 술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양 씨는 담양군의회 재선 의원으로 현재 군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그의 전통주에 대한 정성과 열정에 감동한 주민들이 심부름꾼으로 내세운 것이다. 의정활동에 바쁜 요즘에는 동갑내기 부인 전경희 씨와 딸 소영 씨(31), 아들 재창 씨(27)와 며느리가 추성주 명맥을 잇고 있다. 양 씨는 “우리 것을 지켜나간다는 신념이 없다면 벌써 그만뒀을 것”이라며 “좋은 민속주를 만들에 세상에 알리는 일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남에서 유일한 민속주 명인인 그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다. “엔화 상승의 여파로 2년 전 수출이 중단된 일본시장에 재도전하고 싶어요. 일본을 공략한다면 전통주 세계화도 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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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명인의 술 이야기] <4> 민속주 안동소주 조옥화 씨

 

동아일보 / 2009-11-27 03:10

 

 


“1200년 비법, 며느리에 전수” 

 

《‘이 풍진 세상을, 아모리 아모리, 저 세상의 마음으로 살아간다 해도, 때없이 맞닥치는, 겨울비 같은 좌절과 낭패를, 들켜지고 마는 굴욕과 수모를, 불싸질러 흔적없이 사루어주는, 45% 화주(火酒) 안동소주, 사나이 눈물같은, 피붙이의 통증같은, 첫사랑의 격정같은, 내 고향의 약술 그 얼로 취하여, 이 풍진 시대도, 저 시대의 너털웃음 웃어가며, 성큼 성큼 건너뛰며 나 살으리’. 경북 안동 출신의 한 여성 시인은 ‘민속주 안동소주’의 멋과 맛을 이렇게 예찬했다. 어떤 깊이 때문일까?》

기자가 최근 경북 안동시 수상동 ‘민속주 안동소주’ 공장을 찾았을 때 기능보유자(한국전통식품명인 20호, 경북 무형문화재 12호) 조옥화 씨(87·여)는 마침 제조방법을 견학하러 온 안동대 식품영양학과 학생 20여 명 앞에서 아들, 며느리와 함께 쌀과 누룩으로 안동소주를 빚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학생들은 “평생을 안동소주와 함께 사셨는데 어떤 마음인가요?”, “왜 45% 술이죠?” 같은 질문을 했다. 조 씨는 “술도 음식인데, 음식은 정성이고…. 제일 담백하고 개운한 느낌을 주는 상태가 45%여서 그렇지요”라고 답했다.

‘술도 음식이고 음식은 정성’이라는 조 씨 말은 제대로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저 좋은 술 한 가지를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떠나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삶이 녹아있다. 할머니를 보면 여러 가지 음식이 잘 차려진 상 위에 안동소주 한 병이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동소주를 판매하기 시작한 1990년부터 ‘민속주 안동소주’ 대표를 맡고 있으면서 ‘우리음식연구회장’을 비롯해 ‘궁중음식연구원 이사’, ‘성균관 여성유림회 예학연구원’ 같은 일을 지금도 한결같이 하고 있는 모습이 그 징표이다. 1999년 4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생일상을 차린 주인공도 바로 조 씨였다. 대한주부클럽이 2001년 그를 ‘33회 신사임당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할머니는 말이 별로 없다. “안동소주가 왜 좋은 술이냐. 좀 과음해도 뒤끝이 없느냐” 같은 질문은 어색하다. 누룩과 지에밥을 어떻게 만들어 어떤 비율로 섞으며, 불의 세기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를 할머니에게서 직접 듣기는 어렵다. 그의 삶을 몇 마디 파편 같은 물음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기껏 쌀 80㎏ 한 가마니로 70병가량을 만들 수 있고, 연간 20만 병가량을 생산한다는 정도이다. 민속주 안동소주는 공장의 지하공간 발효실에서 만드는데, 이곳은 오직 할머니와 며느리만 들어갈 수 있다. 조 씨는 “안동소주는 이제 우리 며느리한테 물어보면 되는데…”라고 한다.

며느리 배경화 씨(57)는 시어머니의 소주 만드는 기술 뿐 아니라 그의 삶도 닮으려고 한다. 서울에 살던 배 씨는 1997년 안동으로 내려와 민속주 안동소주를 계승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안동대에서 안동소주를 주제로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지난해 받은 박사학위 논문은 ‘민속주 안동소주 발효의 양조학적 특성 규명 및 자가 누룩 제조의 최적화’였다. 이후 안동소주 누룩의 발효 특성에 관한 논문을 학회지에 발표하기도 한 배 씨는 “시어머니의 평생 정성을 보면서 단순히 기술을 계승하는 것을 넘어 문헌적인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동소주의 전래 과정을 연구한 석사논문에서 그는 안동소주의 유래를 기존의 고려시대에서 9세기 신라시대까지 더 올라가 1,200년 역사로 재정립했다. 전통궁중음식을 연구하는 것도 시어머니를 닮았다.

배 씨는 1999년 민속주 안동소주의 기능후보자로 지정됐다. 남편 김연박 씨(63)는 기술적인 소프트웨어는 아내에게 맡기고 자신은 하드웨어 부분에서 안동소주의 발전을 고민하고 있다. 한양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아건설 이사를 마지막으로 고향에 내려온 김 씨는 2000년 ‘안동소주박물관’을 개관했다. 공장과 나란히 있는 박물관은 안동소주와 안동의 전통음식 체험장과 시험장으로 구성돼 있다. 각종 음식과 자료 등 660여 점이 전시돼 있다. 김 씨 역시 안동대에서 올해 2월 ‘향토산업으로서 민속주 안동소주 육성 방안’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할머니는 “아들보다 며느리가 든든하다”고 했다. 사진을 좀 찍자는 기자의 부탁에 할머니는 며느리의 한복 옷고름을 바르게 고쳐주면서 “우리 며느리가 더 나은 소주를 만들기 위해 늘 공부해서 정말 기분이 좋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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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명인의 술 이야기] <3> 소곡주 우희열 씨

 

동아일보 / 2009-11-26 14:32

 

 

혀끝에 와 닿는 첫맛은 술이라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달다.

곡주(穀酒) 맛이 늘 그렇지만 소곡주는 더더욱 부드럽다. 끈적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몇 순배 돌다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술기운이 순식간에 온몸에 퍼지고 맥박이 빨라진다. 취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오죽하면 ‘맛과 향에 취해 일어나지 않으려다 일어나려 해도 못 일어난다’고 했을까. ‘앉은뱅이 술’이라는 애칭이 붙은 연유다.

하지만 이런 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술이 깬다. 그만큼 뒤끝이 개운하다.

“애지중지 가꾼 밀과 찹쌀, 멥쌀을 재료로 하고 정성으로 빚기에 가능한 일이죠”

국내 유일의 소곡주 명인인 우희열 씨(74·여·충남무형문화재 제3호)의 얘기다. 소곡주는 온유하고 부드럽기에 ‘백제의 술’이라고도 부른다. 은은한 미색 빛깔은 마치 백제인의 미소를 닮은 듯하다.

“멸망한 백제의 한을 달래기 위해 하얀 소복을 입고 빚었다 해서 소곡주(素3酒)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마을 뒷산인 건지산 맑은 약수로만 빚어야 이런 맛이 납니다”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건지산 자락. 모시의 본고장인 이곳이 바로 소곡주의 본고장이다. 문헌에 의하면 소곡주는 나라 잃은 백제 왕실과 유민이 건지산에서 백제 부흥을 꿈꾸며 주류성을 쌓고 슬픔을 달래기 위해 빚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또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무왕 37년(636년) 3월에 조정 신하들과 부여 백마강 고란사 부근에서 소곡주를 마셨다”는 기록이 나온다. 1,400년 역사로 현존하는 한국 전통주 중 가장 오래된 술인 셈이다.

우 씨는 “100일이 지나야만 제맛을 내기에 ‘백일주’라고도 부른다”며 “모든 재료는 직접 또는 계약 재배한 것만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소곡주는 가을볕에 말린 들국화가 들어간다. 들국화의 독특한 향이 배어 있는 알코올 농도 18도의 최고급 곡주다. 소곡주를 빚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쌀을 찐 후에 누룩을 넣고 밑술을 만들어 3일 정도 발효시킨다. 밑술은 또다시 최고급 찹쌀로 만든 지에밥과 한몸을 이루며 덧술로 바뀐 뒤 15도 저온 항아리에서 100일간 발효 숙성된다. 메주콩과 엿기름도 들어간다. 우 씨는 그 위에 ‘잡귀’를 쫓는다며 홍고추를 꽂아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우 씨는 27세 때 서천 이곳으로 시집 와 처음 소곡주를 만났다. 친정집에서도 술을 빚었지만 시어머니 김명신 씨(1997년 작고)로부터 배운 소곡주는 주조 기법이 까다롭고 정성 없이는 제맛을 내지 못했기에 여간 고생한 게 아니다.

처음엔 김 씨가 가용주(家用酒)로 소곡주를 빚었다. 그러던 중 지나던 사람들이 이 집 소곡주를 맛보며 감탄했고 입소문을 타면서 1979년 선조들로부터 전수받은 제조 기법으로 충남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받았다. 1988년에는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받고 제조 면허를 취득하면서 소곡주는 드디어 세상에서 빛을 봤다.

1997년 시어머니 김 씨가 작고하자 우 씨는 전통식품 명인과 무형문화재를 고스란히 승계 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산면 일대에서는 소곡주를 빚는 가구가 200여 집에 이른다. 이들도 모두 건지산 약수만을 사용한다. ‘한산소곡주’라는 공식 상표로 출시되는 곳은 우 씨 집뿐. 올 추석 때 처음으로 청와대에 도자기형 4,000세트가 납품돼 2주 만에 모두 팔렸다.

소곡주에 얽힌 전설도 많다. 조선시대 때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소곡주의 향과 맛에 취해 과거를 놓쳐 버렸다는 얘기도 있다. 술을 빚던 새색시가 술맛에 반해 젓가락으로 찍어 맛보다가 취해 시아버지 앞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는 이야기는 실소를 자아낸다.

그만큼 소곡주의 향과 맛은 그윽하다.

우 씨 집 뒤편 창고 땅속에 묻혀 있는 술독은 군데군데 메운 흔적이 역력하다. 세월의 무게가 실려 있다. 그러다 보니 산소가 필요 이상으로 공급돼 맛이 변하기도 한다. 소곡주의 인기가 높아지고 현대화 필요성이 제기되자 아들 나장연 씨(44)가 도시 직장생활을 접고 아예 귀향했다. 지금은 우 씨로부터 제조 기술을 거의 전수받았다.

나 씨는 좀 더 과학적이고 위생적인 소곡주를 추구한다. 올해 안으로 현대식 주조 설비가 완료되면 이 꿈이 실현된다. 제품도 18% 전통약주와 이를 증류한 불소곡주(43%)를 비롯해 신세대 감각에 맞춘 13%짜리 등이 생산된다. 포장도 다양화해 세계 시장에 내놓을 포부다.

나 씨는 “전통주에 적합한 곡류의 품종 개발에 정부가 나서줘야 한다”며 “특히 전통주가 갖는 기능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세계 시장에서 설득력을 지녀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사나 차례상에서 일본 술 정종이 사라질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우리의 전통주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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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명인의 술 이야기] <2> 계명주 최옥근 씨

 

동아일보 / 2009-11-26 14:32

 

 


《목으로 넘어가는 첫맛은 시큼했다. 발효된 알코올 특유의 신맛 다음엔 곡류(穀類)의 단맛이, 마지막엔 입 안으로 솔잎의 은은함이 퍼졌다. 이제까지 마셔본 어떤 술과도 달랐다. 한국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 술로 인정받은 ‘계명주(鷄鳴酒)’ 이야기다. “황혼 무렵에 술을 빚으면 새벽닭이 울 때 마실 수 있다고 해서 ‘계명주’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간단하게 만들어 마실 수 있는 만큼 평안도 지역에서는 집집마다 퍼져 있던 술이 바로 이 계명주입니다.”》

“죽쒀 만든 北 제삿술 알고보니 고구려 술”

국내 유일의 계명주 명인인 최옥근 씨(66)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만큼 계명주는 평안도 지역에서 빨리 만들어 빨리 마실 수 있는 술이었다. 최 씨는 “당장 내일이 제사인데 집에 술이 없으면 계명주를 급하게 만들곤 했다”며 “그 특성 때문에 이북에서는 ‘잔치술’, ‘속성주’라고도 했고, 엿기름을 사용한다고 해서 ‘엿탁주’라는 이름도 붙었다”고 말했다.

계명주는 국내 전통주 중에서 보기 드물게 수수와 옥수수를 주원료로 쓴다. 쌀이 귀한 북쪽 지방의 특성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고구려인의 주식 중 하나였던 수수가 계명주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원료다. 옥수수가 도입된 이후에는 옥수수를 더 많이 넣어 지금은 술의 빛깔이 황색을 띄지만 원래는 수수의 붉은빛이 더 강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전통주는 지에밥으로 빚지만 계명주는 죽을 쑤어 술을 만든다. 일주일 동안 묵혀둔 누룩에 옥수수와 수수를 갈아 넣고 물을 부어 죽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죽을 삼베자루로 거르고 솔잎과 함께 발효시키면 계명주가 된다. 계명주의 신맛과 단맛, 그리고 향은 누룩과 수수, 솔잎이라는 세 가지 주요 원료가 어우러진 것이다. 알코올 도수는 7∼16%.

최 씨가 처음부터 ‘계명주’라는 이름을 알고 이 술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최 씨의 남편인 장기항 씨(2005년 작고)와 시어머니 고 박채형 씨는 6·25전쟁 당시 평남 용강군에서 서울로 월남했다. 이때 가지고 내려온 집안의 ‘기일록(忌日錄)’에는 조상의 제삿날과 함께 제주(祭酒) 담그는 방법까지 자세히 적혀 있었다.

“23세 때 시집 와서 그 이듬해부터 술 만드는 일을 했어요. 매일매일 제삿술 만들 죽을 쑤라고 시키니 처음에는 이 술이 뭔지도 모르고 시집 잘못 왔다는 생각만 들더군요. 지금이야 가스불이 있어서 금방 되지만, 가마솥에 불을 땔 때는 그야말로 중노동이었죠.”

그러다 경기 남양주에 멧돼지 식당을 차리면서 계명주의 진가가 드러났다. 오가는 손님들에게 집안 전통의 가양주(家釀酒)를 맛보라고 조금씩 만들어 줬더니 처음 보는 술의 기원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계명주의 ‘뿌리 찾기’가 시작됐다.

장기항 씨는 그때부터 이북5도청 등을 찾아다니며 평안도 가양주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옛 입맛을 알고 있는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계명주의 원래 맛을 찾기 시작했다. 1980년대 하루 매출이 200만 원이 넘을 정도였던 멧돼지 식당의 수익금도 술 연구에 쏟아부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이들은 집안에서 전통적으로 빚어 오던 가양주가 동의보감에 기록된 ‘계명주’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최 씨는 1987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1호로 등록됐고 1996년에는 농림부가 지정하는 ‘식품 명인’이 됐다. 자칫 잊혀질 뻔한 역사 속의 술이 개인의 노력으로 다시 살아난 셈이다.

어렵게 살아난 계명주지만 지금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공장을 남양주에서 경기 이천으로 옮기며 2년 가까이 술 생산을 하지 못하고 있다. 최 씨가 가끔씩 소규모로 술을 만들긴 하지만 대량 생산은 끊어졌다. 계명주라는 이름이 낯선 것도 그 탓이 크다. 한때 서울지역 전통주점에 납품해 좋은 호응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은 다시 ‘아는 사람만 사는’ 술이 됐다. 대량생산 시설과 술을 홍보할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장 씨와 최 씨로부터 계명주 제조기술을 전수받은 제자 이창수 씨(54)는 “술을 맛보는 사람마다 ‘이 술을 가지고 왜 팔지 못하느냐’고 타박하다 보니 가끔 전수자로서 자괴감까지 들 때가 있다”며 “내년 2월부터 공장을 다시 남양주에 세우고 본격 생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 내놓는 계명주는 최근 일고 있는 막걸리 열풍에 힘입어 ‘고급 발효주’답게 고급화와 젊은층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최 씨는 “제사를 지낼 때 일본 술인 ‘정종’을 제사상에 올리는 가정이 아직도 많다”며 “한국 전통주를 사용한다면 전통주가 다시 살아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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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명인의 술 이야기] <1> 문배주 이기춘 씨

 

동아일보 / 2009-11-26 14:25

 

 


천년비법, 곡주 금지법에 묻힐 뻔
《‘일본에 ‘사케’, 프랑스에 ‘코냑’이 있다면 한국에는 □가 있다.’ □에 들어갈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답은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그 나라 역사의 일부일 만큼 오랜 전통을 지닌 술이어야 한다. 또 세계 시장에 내놔도 손색없을 국가대표급이어야 한다. 이제부터 □를 채울 전통주의 명인(名人)들을 찾아 나선다. 명인들이 직접 빚은 술을 마시며 술술 들려주는 ‘술 이야기’다. 명인은 농림수산식품부가 정하는 식품명인들 가운데 소개한다.》

 

“‘문배주’의 고향은 평양 아닙니까. 이 술이 한국의 국주(國酒)로 꼽힌다는 건 실향민에게 꼭 대통령이 된 것 같은 자부심을 줍니다.” 1,000년 넘는 문배주의 명맥을 잇고 있는 이기춘 씨(67). 이 씨의 얼굴에 번지는 뿌듯한 미소가 문배주 향처럼 은은했다. 그는 문배주 술을 한 번에 들이켜며 문배주가 ‘남북의 화합과 평화’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문배주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만찬석상에 올랐던 술이다. 이 씨는 그 의미를 살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있다. 기자는 23일 이 씨, 그리고 그의 아들 승용 씨(34)와 함께 문배주를 음미하며 술 이야기에 빠졌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마련된 부친 이경찬 선생의 사당(祠堂)에서였다. 문배주를 빚어온 조상의 사진들, 이 선생이 생전에 아꼈던 술병들이 문배주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 문배주 4대 이기춘 씨의 술 이야기
기자의 귀에는 이 씨의 ‘평양’ 발음이 ‘푱양’으로 들렸다. 간간히 억양의 높낮이도 느껴졌다. 9세 때까지 유년 시절을 보낸 평양에서의 흔적인 듯했다. “얼마 전 현대중공업의 거대한 생산시설을 봤을 때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어요.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물려받은 평양의 평천양조장이 그렇게 컸었지요. 양조장이 어찌나 잘됐던지 연간 매출이 평양 한 해 예산이란 얘기까지 있었습니다. 1940년대 말이었는데 양조장 트럭들이 오가고 종업원도 수십 명이었을 정도니까요” 고려 태조 왕건 시대부터 내려왔다는 문배주 제조법은 이 씨 가문에서 증조모 때부터 이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문배주를 3대째 이은 부친 이 선생은 1951년 1·4 후퇴 때 서울로 피란 온 뒤에도 계속 문배주를 빚었다. 하지만 그는 곡물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하는 양곡관리법 시행에 따라 손을 놔버렸다. “아버지는 ‘알코올에 물 타 만드는 술은 안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 슬럼프에 빠져 끝없이 바닥으로 내려가셨죠. 한참 뒤 국가에서 국주를 찾는다고 하자 아버지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아버지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고, 문배주도 국주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죠” 문배주가 명맥을 이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선생의 고집스러운 장인정신 덕이었다. 그는 제사 때마다 집에서 법에 걸리지 않을 만큼 소량의 문배주를 빚었다. 알코올에 물 섞은 술은 찾지도 않았다. 그런 고집을 이어받은 이 씨도 1980년대 들어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저는 원래 대기업에 잘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 작업장에서 화물차 운전수가 된 옛 양조장 직원을 만났지 뭡니까. 그 직원이 ‘양조장집 주인 아드님이 어떻게 되신 거냐’고 묻더라고요. 부끄럽더군요. 가업을 잇겠단 생각으로 다 버리고 나와 버렸습니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온 결과는 흡족한 결실로 돌아왔다. 이날 그는 마침 ‘러브 콜’을 받고 일본에 다녀온 길이었다. “일본에서 열린 한국 전통주 행사에 다녀왔는데 바이어들이 상당히 많이 가져갈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술 마실 때마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다짐합니다. 외국 자본도 호시탐탐 문배주를 노리고 있으니까요. 세계 시장에 반드시 한민족 대표술로 키울 겁니다”

○ 5대 이승용 씨의 술 이야기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전수자인 아들 이승용 씨는 문배주에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포장을 입히고 있었다. “전통주는 품질 개선 노력이나 연구가 미흡한 편입니다. 문배주도 마찬가지였죠. 2년간 품질에 공들였습니다. 4년에 걸쳐 패키지도 다시 개발해냈어요. 요즘 소비자 취향에 맞게 40도짜리 외에 23도짜리도 개발했습니다. 앞으로 술병의 디자인에 더 신경을 쓸 생각입니다” 그는 1993년 작고한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의 문배주 명인의 길을 잇기로 했다. 아버지의 조언으로 대학에서 농화학, 그 가운데서도 발효 부문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일본시장을 타깃으로 삼고 있습니다. 도쿄 식품박람회에 5년째 참가하고 있는데 몇 년 동안 박람회에서 맛만 보고 갔던 대형 유통회사에서 드디어 주문을 했습니다. 8월에 납품을 시작해 반응이 좋아서 11월에 2차로 판매할 예정입니다” 아들 얘기를 듣던 아버지 이 씨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난 문배주 기술을 전하지만 돈 버는 데는 능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들은 양조장 사업을 잘 키웠던 할아버지를 빼닮았어요. 잘 지켜봐주세요”

문배주
평양을 중심으로 서북지방에서 전래돼 온 증류주. 고려 태조 왕건 때부터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잘 익은 문배나무 돌배 향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밀로 만든 누룩, 좁쌀, 수수 등을 주 원료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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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 (63) 경북 영주의 ‘오정주’

 

경향신문 / 2006-06-06 15:15

 

 

경북 영주는 선비의 고장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은 수많은 명현거유를 배출했다.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금성대군을 비롯,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역사를 간직한 금성단과 피끝마을은 선비의 올곧은 정신을 느끼게 한다. 이런 선비마을에선 술도 가렸다. 이 고장 사대부들이 즐겨 마시던 술이 바로 소백산 오정주(五精酒)다. 오정주는 소백산 청정 약수와 다섯가지 약초로 빚는다. 소백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 영주의 물은 맑고 좋다. 국망봉에서 발원, 소수서원 앞을 흐르는 죽계천은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솔숲 등과 어우러져 ‘죽계구곡’을 이룬다. 맑은 물과 좋은 약초를 섞어 만든 오정주는 봉제사 접빈객은 물론 옛 선비들이 소백산 어느 선경(仙境)에서 풍류를 즐기며 벗하거나 금성단 제주(祭酒)로도 올렸을 법 한 술이다.

오장육부의 정기를 북돋워준다 해서 오정주(五精酒)
오정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670년경의 문헌인 ‘요록(要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간략한 제조방법과 함께 기가 허한 것을 보해주고 강장·강정작용을 한다고 전하고 있다. 이로 미뤄 오정주의 역사가 삼백 수십년을 훨씬 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빚어졌는 지는 모른다. 조선시대에는 영주 등 특정지역의 사대부 집안에서 보편적으로 빚어오던 술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반남 박씨 집성촌인 영주시 고현동 귀내마을 박찬정씨(52) 집안에서만 전해내려오고 있다. 박씨의 어머니 이교희씨(78)는 1940년대에 시조모로부터 배운 오정주 담그는 법을 당시에 공책에 깨알같이 정리해놓았으며 박씨는 1996년 집 옆 텃밭에 제조장을 만들어 어머니와 함께 맥을 잇고 있다. 박씨는 “각종 문헌 등을 보면 오정주는 과거 사대부 집안의 보편적인 술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러나 일제시대와 이후의 양곡정책 등으로 모두 사라지고 우리 집안에만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소백산 약초로 빚어 강장·강정 효능이 있는데다 오장육부의 정기를 북돋워준다 해서 ‘오정주(五精酒)’이지만 우리 집안에서는 대대로 오선주(五仙酒)로 불렸다”고 전했다.

소백산 다섯가지 약초로 빚은 선비의 벗
오정주는 증류식 소주에 약재 등을 첨가한 리큐어에 속한다. 먼저 쌀 한 되에 누룩 일곱홉, 물 한되 비율로 밑술을 만든다. 쌀을 쪄서 고두밥을 만들어 식힌 뒤 누룩가루와 버무려 물을 넣고 밑술을 만들어 따뜻한 아랫목에 3일간 숙성시킨다. 같은 방법으로 쌀 한말에 누룩 다섯되, 황정·창출·솔잎 등 약초 다섯가지를 넣어 달인 물 한말 두되 비율로 중밑술을 만들어 밑술과 섞어 서늘한 곳에서 열흘가량 발효시킨다. 여기에 쌀 두말에 누룩 한말, 약초 달인 물 두말 석되 비율로 덧술을 만들어 섞는다. 열흘가량 발효시킨 뒤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떠낸다. 이를 소주고리에 넣고 증류, 알코올 도수 40~45% 상태에서 청정 약수를 부어 30~35%로 맞춘다. 서늘한 곳에서 100일 이상 두면 맛이 부드러워지게 된다. 청주 맛이 나는, 알코올 도수에 비해서는 순한 술이다. 뒤끝이 없고 개운해 옛날 사대부의 기품이 느껴진다. 풍기인삼으로 만든 인삼정과와 소백산 목초를 먹고 자란 영주 한우구이, 조갯살 말린 것이나 김 등의 건어물이 안주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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