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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칼로리, 맥주만 마시면 살 안 찐다! 문제는 안주

 

헬스조선 / 2015-08-11 11:17

 

 

 

무더운 여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은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맥주라고 대답할 것이다. 시원한 맥주가 주는 청량감은 더운 날씨와 스트레스를 잊게 해준다. 그러나 술 살이 걱정돼 맥주를 쉽게 입에 대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맥주를 마시면 정말 살이 찔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맥주를 마신다고 살이 찌는 건 아니다. 맥주에도 칼로리가 있다. 맥주의 열량은 200를 기준으로 약 96이다. 하지만 알코올이 내는 열량은 지방이나 단백질과 같이 체내에 잘 축적되지 않는다. 알코올은 체내에서 소화과정을 거치지 않고 열로 발산되거나 이산화탄소와 물로 완전히 분해돼 살을 특별히 찌우지는 않는다.

맥주를 마셔서 살이 찌는 이유는 바로 안주에 있다. 우리 몸은 다른 영양소보다 알코올을 먼저 분해한다. 따라서 알코올이 분해되는 시간 동안 다른 영양소들은 소화되지 못하고 그대로 체내에 축적되는 것이다. 또 알코올은 체내 단백질 합성을 방해하는 작용을 해 근육 생성, 유지를 막아 체내 지방의 양을 상대적으로 늘린다. 이 때문에 술과 함께 먹는 안주의 칼로리가 곧바로 술 살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맥주의 원료로 쓰이는 ‘호프’는 ‘알파산’이라는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데, 알파산은 미각을 자극해 식욕을 높이기 때문에 맥주를 마시면 더욱 안주를 찾게 된다.

안주 때문에 살이 찐다고 해서 술을 마실 때 안주를 먹지 않으면 몸을 상하게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맥주를 먹을 때는 저열량 안주를 먹는 것이 좋다. 흔히 치맥이라고 불리는 치킨과 맥주의 조합은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있다면 반드시 피해야 하는 조합이다. 감자튀김도 마찬가지로 고열량 식품이므로 맥주와 함께 먹는 것을 피해야 한다. 과일도 피해야 하는데, 맥주와 과일은 모두 찬 성질을 가지고 있어 배탈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맥주는 육포나 견과류, 닭가슴살, 샐러드 등 저 열량 음식들과 궁합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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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포도주.

 

요즈음 대형 서점의 베스트 셀러 코너에는 포도주에 관한 책들이 한 두 권은 있다. 지역적 특성 때문에 포도주를 많이 마시는 경우를 제외하면 국민소득이 2만불이 이상이 되면 수요가 증가하는 술이 포도주라는 통계가 있다. 이번에는 포도주, 주로 적포도주와 관련된 화학에 대해 알아보자.

 

포도주의 맛과 성분은?

 

포도주에는 상당히 많은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포도주 역시 물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에탄올(CH3CH2OH)이 많다. 포도에 있는 포도당(글루코스, C6H12O6)은 발효되면 이산화탄소와 에탄올로 변한다. 그런 포도당은 광합성을 통해서 포도나무가 식량으로 저축해 놓은 것이다. 보통 포도주의 에탄올 농도는 약 15%정도이다. 그것은 발효에 사용된 효모(yeast)의 활성이 유지되는 알코올의 한계 농도이기도 하다. 자연산 과일 주들의 에탄올 농도가 약 15%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도 발효에 사용되는 효모의 수명과 관계가 있다. 포도주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달콤함(sweetness)을 들 수 있다. 단맛 혹은 드라이 한 맛의 포도주는 설탕의 농도, pH, 알코올 농도, 탄닌을 비롯한 폴리페놀의 함량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

 

포도주의 색은?

 

적포도주의 붉은 색은 주로 말비딘(malvidin, C17H15O7) 이라는 화합물 때문이다. 말비딘 분자는 안토시아니딘(anthocyanidin)의 한 종류이다. 안토시아니딘과 포도당(혹은 다른 당)이 결합된 것은 안토시아닌(anthocyanin)이라 부른다. 현재까지 알려진 안토시아닌은 500종이 넘고, 종류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항 산화 기능을 갖고 있다. 안토시아닌은 물에 녹는 색소 분자이며, 그것이 녹은 용액의 pH에 따라 청색, 보라, 빨강색을 띤다. 식물이 나타내는 색의 색소는 대부분이 안토시아닌으로, 그것은 잎, 줄기, 뿌리는 물론 꽃, 열매 등 식물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검출된다. 안토시아닌에서 포도당이 분리된 안토시아니딘 분자는 독특한 기본 분자 구조를 갖추고 있다. 기본 분자구조에 결합되는 작용기의 종류나 수에 따라서 이름이 다르다. 말비딘은 약산성이나 중성일 경우에는 빨강색, 염기성일 경우에는 파란색을 띤다. 그러므로 적포도주의 pH는 약 산성 혹은 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안토시아니딘의 분자구조

적포도주의 붉은 색은 주로 안토시아니딘의 일종인 말비딘의 색이다. <출처: Gettyimage>

포도주의 화학성분 및 항산화 작용

 

적포도주에는 폴리페놀이 많이 들어 있다. 폴리페놀은 포도의 껍질처럼 과일에서 색을 나타내는 부분에 많이 포함된 것으로 페놀 혹은 페놀 유도체들이 융합된 분자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므로 안토시아니딘도 폴리페놀의 한 종류이며, 비타민 C 혹은 비타민 E와 마찬가지로 항산화 기능도 있다. 산화력이 매우 큰 화학종인 활성산소(예: 하이드록시라디칼(OH·))는 단백질을 비롯한 몸에 필요한 분자들을 무차별하게 공격해서 망가트린다. 그런데 활성산소는 대사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화학종이다. 그런데 항산화 물질이 활성산소와 반응하면 활성산소의 반응성이 약화되거나 혹은 대폭 감소된다. 항산화는 분자들의 산화를 막는다는 의미이므로, 결국 몸에 필요한 분자들의 산화를 막아준다는 뜻이다.

 

포도주에는 항산화 기능이 있는 폴리페놀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포도주에 포함된 퀘세틴(quercetin, C15H10O7), 레스버라트롤(resveratrol, C14H12O3), 탄닌(tannin)등과 같이 발음하기 조차 매우 힘든 이름을 가진 폴리페놀이 포함되어 있고, 그들 모두 항산화 기능을 갖고 있다. 안토시아니딘의 한 종류인 프로안토시아니딘(proanthocyanidin)도 폴리페놀이다. 프로안토시아니딘은 안토시아니딘과 유사한 분자구조를 갖고 있으며, 주로 색을 띠지 않지만 혈관의 노화 방지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장수 노인이 많은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사르디니아(Sardinia)에서 생산되는 포도에는 폴리페놀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연구결과, 그들 지역민들은 육식을 즐기면서도 심장혈관 질환의 발생 비율이 다른 지역의 주민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즐겨 마시는 포도주에 포함된 폴리페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연구로 알아냈다.

 

포도주의 떫은 맛과 쓴 맛은 탄닌(tannin) 계 화합물에 의한 것이다. 농축된 탄닌은 프로안토시아니딘의 고분자로, 가수분해 될 분자 구조를 갖추고 있다. 주로 포도 껍질과 씨뿐만이 아니라 줄기에서도 발견된다. 포도주를 담글 때 줄기를 걸러내지 않고 담은 포도주의 더 떫은 맛은 탄닌의 농도가 높기 때문이다. 탄닌은 덜 익은 과일의 떫은 맛으로, 탄닌 맛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덜 익은 감을 한 번 먹어보면 그 맛이 어떤지 오래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포도주 병 바닥에 쌓여 있는 침전에도 탄닌이 많이 들어 있다.

 

식물은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자체적으로 방어수단을 동원하여 물리치려고 든다. 식물은 박테리아 혹은 곰팡이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파이토알렉신(phytoalexin)을 사용한다. 파이토는 식물, 알렉신은 살균소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식물의 방어무기가 파이토알렉신인 셈이다. 따라서 식물에는 자연산 살균제로 상당히 많은 종류의 파이토알렉신이 존재한다. 포도주에 포함된 레스버라트롤은 파이토알렉신이며, 폴리페놀의 한 종류로 콜레스테롤의 산화를 방지해 준다. 포도 껍질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백 포도주에는 레스버라트롤이 적포도주보다 훨씬 적은 편이다. 미국 남부와 멕시코에 걸쳐서 생산되는 머스카딘(muscadine) 포도는 껍질과 씨에 레스버라트롤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의 의학 자료에 따르면 레스버라트롤은 치매 질환의 원인 물질로 알려진 아밀로이드(amyloid)의 분해 효과도 있다고 해서 치매 치료제의 후보 물질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포도주의 코르크 마개.

 

포도주를 따면 코르크 마개 부분에 유리 파편처럼 날카로운 결정이 있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다. 그것은 타타르산(tartaric acid, C4H6O6)염이 뭉쳐 있을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의 유명한 과학자 파스퇴르는 순수한 타타르산 염의 결정을 최초로 얻어냈다. 그가 포도주의 앙금에서 분리해 낸 타타르산 염 결정은 광학활성을 지닌 L-형의 타타르산 염이었다. 광학 활성을 지닌 타타르산은 L, D-형이 존재하며, 자연산 타타르산 염은 대부분 L-형이다. 타타르산 역시 또 다른 종류의 항 산화 물질로 숙성과정에서 포도주 원액의 pH를 낮추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박테리아의 번식이 억제되므로 포도주의 품질이 향상된다. 그 밖에도 포도주에는 아황산 염(sulfite salt), 과일 향이 나는 에틸아세테이트(ethylacetate), 포도 재배 혹은 술 제조과정에서 첨가되어 잔류하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화학물질들이 소량 포함되어 있다. 적포도주를 보통 진한 색 병에 담아 보관하는 것은 빛에 민감한, 심지어 분해되는 분자들을 보호하여 포도주의 맛과 향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노력이다.

 

포도주도 과유불급

 

우리는 포도주를 구입할 때 건강에 도움이 되는 화합물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따지지는 않는다. 색깔이 좋고, 맛과 향이 자신과 궁합(?)이 맞는 것을 선택하는 편이다. 아무리 몸에 좋은 포도주라 해도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으면 안 마시는 편이 정신 건강에도 좋고, 잘 맞는다고 너무 많이 마시면 알코올로 인해서 오히려 몸을 망칠 수 있으니 주의를 해야 된다. 즉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글: 여인형 / 동국대 화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화학과 교수이다. <퀴리 부인은 무슨 비누를 썼을까?>를 썼고, <화학의 현재와 미래>를 대표 번역하였다.

 

 

발행 201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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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화학물질임에 틀림없다. 즐거울 때 혹은 슬플 때는 물론, 예식을 진행할 때에도 술은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술 실력은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6년 주류공업협회 통계에 따르면 20세 이상 성인인구의 연 평균 술 소비량이 대략 소주 72병(360밀리리터 기준), 맥주 80병(640밀리리터 기준) 정도라고 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을 감안하면 애주가들은 입에 술을 달고 사는 것 같다. 도수가 높은 독한 술 소비량에서도 러시아, 라투비아, 루마니아에 이어 세계 4위에 속할 정도로 술에는 일가견이 있는 민족임에는 틀림없다. 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술 소비량이라 아니할 수 없다. 술로 인해 남자는 평균 3년, 여자는 1년 정도 수명이 단축된다고 하며, 음주로 인한 운전 사고, 건강 악화 등의 문제를 고려하면 금전적인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하는 술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술 = 물 + 에탄올

 

화학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술의 주성분은 물(H2O)과 에탄올(ethanol, CH3CH2OH)이다. 그밖에 맛을 내기 위한 몇몇 첨가물이 있다. 요즘 팔리고 있는 순한 소주의 경우에 에탄올의 성분은 약 20퍼센트이며, 물이 약 80퍼센트를 차지한다. 술을 도수로 나타낼 때는, 도수의 수치 만큼의 에탄올 퍼센트 농도를 가진다고 보면 된다. 즉 소주가 20도라면 에탄올 함량이 20퍼센트라는 말이다. 단, 양주는 에탄올의 함량을 나타낼 때 proof라는 말을 사용한다. 100proof라는 것은 에탄올과 물이 각각 약 50퍼센트 정도 섞여 있는 것을 의미한다. 알코올의 농도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과거에는, 마시는 술과 화약을 반반 섞어서 불을 붙여 파란색 불꽃이 유지되면 알맞은 술이라는 뜻으로 100proof라고 불렀다고 한다. 농도가 묽으면 잘 타지 않고, 너무 진하면 불꽃 색깔이 밝은 노란색을 띤 다는 것으로, 알코올의 농도를 구분했다고 전해진다.

 


에탄올의 분자 구조(CH3CH2OH). 술의 주성분은 물과 에탄올이다.

 

 

에탄올은 석유화학 공정을 거쳐서 혹은 발효과정을 통해서 생산할 수 있다. 석유화학 공정에서는 촉매를 이용하여 에틸렌(ethylene, C2H4)에 물을 첨가하여 만든다. 발효과정을 통해서 생산되는 에탄올은 산소가 없는 곳에서 특정 효모(yeast, Saccharomyces cerevisiae)를 이용한다. 효모가 글루코스(glucose, C6H12O6)를 소화하는 과정(대사작용)에서 내놓은 부산물 중 하나가 에탄올이다. 에탄올이 만들어 지면서 동시에 이산화탄소(CO2)도 발생한다. 만약에 대사과정에 산소가 존재하면 물과 이산화탄소만 생성되며, 에탄올은 생성되지 않는다. 술을 만들 때 사용하는 곡물인 쌀, 옥수수, 감자, 고구마에 포함된 녹말(starch)이 글루코스로 분해되어 효모의 대사과정을 거치면 술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술을 증류하여 대사과정의 불순물을 제거하면 비로소 비교적 순도가 높은 에탄올이 된다. 증류과정을 통해서는 100퍼센트 짜리 에탄올을 만들 수 없으며, 에탄올이 최대 96퍼센트 포함된 독한 술이 얻어진다.

 

 

효모 세포. 형광 물질에 의해 세포막이 시각화 된 효모 세포 모습.

아세트알데히드의 분자 구조(C2H4O). 에탄올은 간에서 아세트알데히드로 산화된다.

 

 

 

 

에탄올은 몸 속에서 어떻게 될까?


우리가 마신 술에 포함된 에탄올은 간에서 효소(alcohol dehydrogenase)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acetaldehyde, C2H4O)로 산화되며, 아세트알데히드는 또 다른 효소(acetaldehyde dehydrogenase)에 의해서 초산(acetic acid, CH3COOH)으로 산화된다. 두 종류의 효소를 몸에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술의 분해가 활발히 일어나므로 비교적 술에 강하다. 반면, 한잔의 술만 먹어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술에 약한 사람도 있는데, 이들은 분해 효소가 적은 사람이다. 술을 적절히 마시면 행복감도 느끼고, 긴장완화에 도움이 된다.

 

 

술에 포함된 에탄올은 우리의 몸 속에서 효소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 초산으로 차례로 산화된다.

 

 

 

체내에서 에탄올이 산화되어 생성되는 중간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는 두통, 구토, 불쾌감 등을 유발한다. 생성된 아세트알데히드는 또 다른 물질(glutathione)과 반응하여 결국 없어지지만 그렇게 없어질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이 생성된 아세트알데히드는 혈액에 남아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두통약을 먹고 나서 술을 먹으면 두통이 심화될 때가 있는데, 이것은 두통약이 아세트알데히드와 반응하는 물질(glutathione)의 농도를 감소시켜 혈액에 아세트알데히드의 농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강제로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약(disulfiram, (C5H10NS2)2)은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하는 효소의 기능을 방해(block)하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약을 복용한 사람은 알코올을 조금만 마셔도 마치 술을 많이 마신 것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술을 적절히 마시면 행복감도 느끼고, 긴장완화에 도움이 된다.

체내에서 에탄올이 산화되어 생성되는 아세트알데히드는 두통, 구토, 불쾌감 등을 유발한다.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즐거워도 한잔, 괴로워도 한잔이지만 사람마다 에탄올을 분해하는 효소의 양이 달라서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한잔의 강도는 매우 다르다.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에탄올 분해효소가 많지 않아서 술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지만, 같은 이유로 알코올 중독자 수가 적은 것은 고마운 일이다. 적절히 마시면 약이 되고, 과량으로 마시면 독이 되는 술 역시 다른 화학물질과 마찬가지로 이중성을 띠고 있다.

 

 

 

 

 

여인형 / 동국대 화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화학과 교수이다. <퀴리 부인은 무슨 비누를 썼을까?>를 썼고, <화학의 현재와 미래>를 대표 번역하였다.
 

 

제공 대한화학회


발행일 
201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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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지의 식탁식톡] 액체로 된 빵… 나를 그냥 술로 보지 마라

 

코메디닷컴 / 2015-05-15 11:40

 

 

 

(15) 맥주
뭔가가 정말 딱 어울리거나 좋을 때 저절로 나는 청량감 있는 소리 있잖아요. 그 감탄사~! 사람들은 저를 마시면서 딱 그런 소리를 내요. 꿀렁꿀렁~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키면서 쏟아내는 그 외마디! 맞아요~ 그 소리! “캬아~!” 바야흐로 저와의 만남이 한층 무르익기 시작하는 계절이네요. 오늘 금요일 저녁, 저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지금 입맛을 다시고 있진 않나요? 여기저기서 ‘캬아’ 소리가 시원하게 흘러나올 것이라 예상해 보는데요. 일과 후나 운동이 끝난 다음 차가운 맥주 한 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시원하죠? 저는 예부터 서양에서 액체로 된 빵이라고 불렸습니다. 빵에 들어가는 원료와 비슷하기도 하고 그에 견줄 정도로 영양가가 있는 음료라는 뜻이지요. 저요, 지방은 없지만 단백질, 당질, 미네랄, 비타민B군 등 없다고 하면 섭섭해할 영양소들이 풍부합니다. 보통 맥주 100㎖당 영양소는 단백질 0.5g, 탄수화물 3.1g, 칼슘 2㎎, 철분 0.1, 비타민B₂0.02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인체 에너지를 보강시키는 칼로리도 적당해서, 고대에는 맥주를 넣고 만든 ‘비어브레드(Beer Bread)’를 주요 양식으로 여길 정도였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제가 술이라는 이유로 건강상 이점은 과소평가 하고, 되려 각종 질환과 비만의 원흉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 옛날 서양에서 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닌, 실제 연구를 통해 밝혀진 저만의 건강학적 이점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르고 하는 소리죠. 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발효 주이면서도 가장 대중적인 알코올 중 하나입니다. 저의 쌉쌀하거나 산뜻한 맛, 누른 빛깔이거나 진한 흑색은 모두 자연의 원료로 만들어졌습니다. 방부제나 색소, 향료 등이 전혀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자연식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다른 주류에 비해 알코올 성분은 적은 편이고, 이산화탄소와 홉의 쓴맛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소화를 촉진하고 이뇨작용을 돕는 효능이 있습니다. 날씨가 갈수록 더워지고 있는 만큼, 수분 공급에 대해서도 어필하고 싶네요. 저는 93%가 물입니다. 더운 날 마셔도 탈수증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요. 스페인 연구팀에 따르면 햇볕 아래 땀을 흘릴 때에 맥주를 마시면, 오히려 물만 마실 때보다 수분 공급 효과가 더 좋습니다. 혹이 이 이야기 들으면 갸우뚱 할지도 모르겠네요. 사람들의 뼈와 관절을 튼튼하게 하는데도 효과가 있답니다. 여성들을 사례로 한 연구를 먼저 보실까요? 일주일에 2~4회 저를 마시는 여성들은 아예 저를 입에 대지 않은 여성들보다 류마티스성 관절염의 위험이 31% 낮았습니다. ‘관절염과 류마티즘(Arthritis Rheumatism)’ 저널에 실린 연구인데요. 제가 여성들의 관절염 위험률을 떨어뜨리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죠. 비슷한 연구로 ‘식품·농업과학저널(Journal of the Science of Food and Agriculture)’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제 안의 ‘소화규소’가 뼈 골밀도를 강화하는 작용을 합니다. 저는 종류에 따라 소화규소 함량이 6.4~56.5㎎/ℓ로 차이가 납니다. 소화규소는 체내 콜라겐을 묶어서 결합조직을 튼튼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화학물질이죠. 이 소화규소 성분은 또한 머리카락과 손톱, 피부를 윤기 있게 하는데도 도움을 줍니다. 아직 소화규소에 대한 일일 섭취 권장량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요. 과학자들은 한 두잔 가볍게 마시는 정도가 뼈 건강에 도움이 될만한 양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탈수증세와 소변 농축으로 인해 신장결석이 생길 위험이 높아지는데요. 앞서 탈수 방지에 제가 의외의 도움이 된다고 알려드렸죠? 이 연장선에서 신장결석 예방에도 도움을 줍니다. ‘미국신장학회임상저널(Clinical Journal of the American Society of Nephrology)’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저를 적당량 마시면 맥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보다 결석이 생길 확률이 41%나 줄어듭니다. 저 말고 탄산음료로도 비교 연구 했는데요. 저보다 탄산음료가 더 건강할 것 같죠? 그런데 오히려 탄산음료가 체내에 결석을 만드는 확률을 23% 증가시켰습니다. 우훗, 예상을 깨고 무알코올 음료와 알코올 음료의 차이가 이렇게 나다니 잠시 우쭐해지네요. 제 어깨에 더 힘이 들어가도 되는 사실은 여기 있어요. 기억력을 비롯한 뇌 건강을 지키는데도 맥주 몇 잔이 도움이 된다는 것인데요.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매일 저를 한잔씩 마시는 여성들은 전혀 술을 마시지 않거나 과음을 하는 여성들보다 뇌 활동의 능력이 감퇴하는 속도가 더딥니다. ‘유럽역학저널(European Journal of Epidemiology)’에 발표된 메타분석에서도 가벼운 한 두잔 정도의 맥주는 심장질환 위험률을 31% 낮춘다고 밝혀졌지요. 이렇게 예상을 빗나가게 만든 저의 건강학적 긍정적인 효과는요, 제 안에 수용성 섬유질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보리, 홉, 맥아 등으로 만들어 지지요. 이러한 원료에서 추출된 섬유질과 항산화제는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리는 혈중 LDL의 수치를 낮추는데 도움을 주고, 반면에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의 수치는 높입니다. 사람들이 저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맥주를 많이 마시면 뱃살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긴 하지만 이는 과음했을 때에 해당하죠. 오히려 하루에 한 잔 정도의 적당량을 마시면 체중 증가의 원인인 염증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제 원료인 홉에서 나오는 화합물이 항 염증 효능을 가진 성분을 활성화시키지요. 맥주 때문에 뱃살 나왔어 하는 분들은 과음하면서 안주까지 많이 먹어서이지, 콕 찍어 저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 알아주세요. 저는 하루 500㏄정도가 딱 적당량이라는 점 잊지 마시고, 오늘 저녁 친구들과 맥주 한잔 기울이면서 오늘 저에 대한 이야기 곱씹어 보는 것은 어떠세요? 제가 아무리 좋다 해도 과도한 음주는 금물입니다.

 


□ 담는 컵이 더러우면 거품내기 힘들어요
제 매력 중 하나가 따를 때 하얗게 부서지는 거품이죠! 그런데 컵이 더럽거나 기름이 묻어 있으면 거품이 나지 않습니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곤 하죠. 이는 톡 쏘는 탄산가스를 감싸고 있는 거품이 컵의 기름기 등에 의해 표면장력을 잃어 거품을 지탱하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컵이 잘 안 닦여 비누나 세제가 표면에 남아 있어도 저는 거품 만들어 내기가 힘이 듭니다. 제 거품매력에 빠지려면, 저를 따르는 컵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파인트와 같은 맥주 컵은 흐르는 물로 잘 헹구고 행주로 닦지 않은 채 그대로 건조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 치맥(치킨+맥주), 정말 최악 궁합일까요?
사실 저는 시원하게 쏘는 맛 덕에 여러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알코올입니다. 치킨은 말할 것도 없고, 오징어, 땅콩, 샐러드, 햄버거, 치즈 등뿐 아니라 다양한 퓨전요리와 함께 해도 손색이 없죠. 그런데 건강학적인 측면에서 치킨은 맥주와 궁합이 잘 안 맞다 하죠? 제가 식욕을 더 높이는 작용을 해서 고칼로리 고지방 식품을 곁들이게 되면 살찌게 하므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사실 외국에서도 우리의 ‘치맥’만큼이나 비어캔 치킨, 치킨 로스트, 치킨 샐러드 등 치킨 요리에 맥주를 상당히 즐겨 마십니다. 음식궁합을 따졌을 때 에일과 같은 라이트 맥주를 마시는 게 좋다고 권하고 있을 뿐, 치킨+맥주가 최악 궁합이라고 이야기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음식 매체에서는 맥주에 잘 어울리는 식품으로 치킨을 꼽습니다. 한국식 치킨이 기름에 튀겨져 나온 것이 많아 고지방 고칼로리라는 점 때문에 ‘치맥 궁합 나쁘다’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 아닌가 싶어요. 통풍이야기도 안 할 수가 없네요. 아직도 “치맥, 통풍 유발”하며 치맥 먹는 것을 경고 시 하는 듯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데요. 해외 논문 그 어디에서도 ‘치킨과 맥주’가 통풍을 유발한다는 연구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통풍 환자이면 퓨린이 요산 수치를 높이기 때문에 치킨과 맥주가 피해야 할 식품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사실 퓨린이 함유된 식품은 치킨 뿐이 아니라 다른 육류, 생선, 해조류 등에도 많습니다. 더욱이 알코올에서는 와인 또한 퓨린 함유량이 높구요. 이 대로라면 많은 안주들이 퓨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지요. 그러니 치킨과 저의 만남을 유독 지목해, 색안경 끼고 보진 말아주세요. 저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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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물, 누룩만 있으면 OK! 막걸리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조선일보 / 2013-11-14 09:35

 

 

쌀과 물, 누룩만 있으면 막걸리, 약주 등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술을 담그신다고 하실 때마다 늘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술이란 알코올이 어떻게 생길까란 것이었다. 뱀술을 만들든 인삼술을 만들든 인삼이 술을 만드는 것인지, 뱀이 술과 함께 화학작용을 일으켜 술을 만드는 것인지, 당시 어리기만 한 필자로서는 너무도 궁금한 것이 많았다. 또한, 시중에 그 많은 술 종류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증류식 쌀 소주와 희석식 소주는 뭐가 다른지 막걸리는 왜 쌀로 만들었다는데 새콤한 맛이 나는지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뱀술이나 인삼 술은 저렴한 희석식 소주에 각각의 원료에서 나오는 진액을 침출시키는 이른바 침출주가 많았고, 쌀 소주는 쌀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닌 쌀로 발효시킨 막걸리나 약주를 증류해 쌀 향이 살아 있는 술인 반면, 희석식 소주는 일반적인 양조용 알코올을 물로 희석하여 조미료를 첨가한 대량생산에 어울리는 술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뭐가 좋고 뭐가 나쁘고 어떤 술에 노력이 있고 없고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았다. 특히 발효라는 원리를 전혀 몰랐을 때는 말이다.

술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발효는?
우리는 흔히 발효식품, 발효 효과란 단어는 수도 없이 듣고 산다. 발효 식품은 먹어도 좋고 몸에 발라도 좋다고 한다. 그렇다면 발효란 과연 무엇일까? 발효란 간단하게 말해서 미생물이 가지고 있는 효소를 사용하여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인데, 부패와의 차이는 우리 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면 발효, 그렇지 않으면 부패가 된다. 결국 결과론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과정만 따지면 별반 차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생 막걸리에는 유산균 발효, 초산 발효 등 다양한 발효가 일어나는데, 술이란 것에 중점을 둔다면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알코올 발효, 즉 효모가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된다.

술이 되기 전에는 일단 주스가 되어야…
집에서 마시는 오렌지 주스의 뚜껑을 가볍게 덮고 섭씨 25℃ 정도의 상온에 놔두면 기포가 오르는 경우가 있다. 바로 공기 중의 효모가 오렌지 주스 안에 들어가 주스의 당분을 섭취하며, 분해하여 알코올을 만들어 내는 것인데, 이때 동시에 배출해 내는 것이 탄산. 즉 CO₂가 기포로써 보이기 때문이다. 오렌지 주스가 알코올 발효를 통해 술이 되어 가는 모습이다. 세상의 모든 술, 막걸리, 맥주, 와인, 사케까지 술이 되기 전에 주스의 단계를 거친다. 모든 것이 이 효모의 신비로운 작용으로 생성되는 것인데, 공기 중에 효모의 역할을 발견한 사람이 1861년 프랑스의 파스퇴르 박사에 의한 것이다. 그전까지는 효모의 알코올 발효역할을 몰랐기 때문에 술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거쳐 생성되는 모습으로 전 세계적으로 종교적인 행사에 꼭 활용되곤 했다. 참고로 순수한 생막걸리를 보면 언제나 탄산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순간에도 알코올 발효를 하고 있다는 증거, 즉 살아있는 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쌀이 어떻게 주스가 되는거지?
그런데 여기서 소박한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매일 쌀로 막걸리를 만든다는데, 어떻게 쌀이 주스가 되냐는 것이다. 쌀은 아무리 봐도 담백한 탄수화물이기 때문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언제나 쌀 주스를 꽤나 접하고 있다. 최근에는 Take out도 할 수 있게 만든 식혜가 가장 대표적인 쌀 주스다. 어머니들은 밥과 물에 엿기름을 넣고 밥통으로 찌는데, 이때 엿기름이 밥의 전분을 당으로 바꿔주고, 이것이 녹아 있는 것이 바로 식혜다. 술을 빚는 방법은 약간은 다르긴 하지만, 이렇게 쌀을 쌀 주스로 바꿔주고 효모투입을 하여 당을 먹게 하고 그것을 통해 알코올 발효를 일으키면 술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식혜의 엿기름, 효모가 가진 알코올 발효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누룩이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양조공학이 급진적으로 발전, 백년전부터는 효모가 배양되어 누룩과 효모를 따로 넣는 경우도 많은데, 그래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빚는 곳은 여전히 전통 누룩을 사용하고 있다.

쌀과 물에 누룩을 넣고 10여 일이면 14~15%의 원주 탄생
쌀 주스에 알코올 발효가 수일간 진행되며(실질적으로는 막걸리는 당화와 알코올 발효가 동시에 일어나는 제조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른바 덧술이라는 물과 쌀을 계속 넣어 효모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 10일에서 15일이 지나면 14~15% 정도의 원주라는 고도주 술이 생기게 된다. 여기에, 마시기 편하게 물을 넣어 알코올도수를 낮추고 간단한 여과를 통해 나오는 것이 막걸리이고, 살균처리를 안하면 생막걸리, 살균처리를 한 막걸리를 살균탁주라고 한다. 참고로 알코올 발효 시 온도가 최대 40℃정도까지 올라가는데, 30℃ 이상은 안 올라가도록 꾸준히 섞어가며 온도 조절을 하는 등 계속해서 신경을 써야 한다. 효모는 30℃ 이상의 온도가 되면 활동력이 약해지고, 40℃ 이상이 되면 죽어버리기 때문에 왕성한 효모활동을 통해 주질이 좋은 술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막걸리의 탄산은 지금도 계속 알코올 발효를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발효와 숙성의 차이

술빚을 때의 알코올 발효와 숙성의 차이는 발효는 직접적으로 알코올이 생성되는 과정이고, 알코올이 다 생성된 후에 분자끼리의 결합을 통해 맛이 부드러워지고 향이 그윽해지는 것을 숙성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발효와 숙성이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발효한 이후에 숙성이지 숙성한 이후에 발효란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짧게 발효하는 막걸리, 사람에 따라서는 100일 숙성도…
막걸리는 기본적으로 발효된 원료가 그대로 있는 만큼 원료의 성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술이라 짧게 발효해서 짧게 마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김치 냉장고 등에 100일 이상 숙성시켜서 마시는 사람도 있는데, 그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김치와 같이 넣지 않는다는 것. 김치와 같이 넣으면 김치 특유의 냄새가 막걸리에 배일 수 있기 때문에 100일 숙성이 의미 없게 돼 버리는 수가 있다.

빚는 이의 정성을 알 수 있는 홈메이드 막걸리 만들기
막걸리 만들기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간단히 만들어본다면 식은 밥이나 즉석밥을 구입해서 물을 넣고 누룩을 넣어주면 충분히 막걸리가 된다. 물론 장인이 만든 막걸리와 그 깊이와 풍미가 다르겠지만, 이렇게 알코올 발효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술의 원리와 빚는 이의 노력을 안다면 적어도 좋은 술, 나쁜 술의 구별 하는 것을 넘어 과음이나 주폭 등과 같은 일도 적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명주를 빚는 사람들이 의외로 과음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정성이 들어간 술을 함부로 마실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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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마니아들의 입맛을 새로잡은 벨기에 맥주의 모든 것

 

조선일보 / 2013-11-07 14:38

 

 

벨기에 맥주 중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호가든’.
벨기에 맥주의 역사와 종류, 음용법

지난 9월, 벨기에 대표 화이트 맥주 호가든(Hoegaarden)이 셀프바 형식의 맥주 할인 매장 ‘비어버켓’의 ‘수입 맥주 베스트 30’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입고 수량이 아닌 순수 판매량을 기준으로 집계된 순위로, 호가든의 대중적인 인기 정도를 체감할 수 있는 결과였다. 평소 호가든을 즐겨 마신다는 정은영씨(28세, 회사원)는 “처음에는 호가든이 벨기에 맥주인줄 몰랐다. ‘맥주’하면 막연히 독일이나 영국이 떠올랐기 때문에 ‘벨기에 브랜드’라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말하며, “일반 맥주와 달리 은은한 향과 깔끔한 뒷맛이 좋아 호가든을 찾게 된다”라고 호가든을 즐기는 이유를 덧붙였다.

소비자의 선호도에서 알 수 있듯, 최근 유럽의 맥주 강국들이 형성하고 있는 ‘비어 벨트’에서도 주목 받고 있는 곳은 호가든의 고향인 벨기에다. 독일과 체코는 라거, 영국 및 아일랜드는 에일의 전통이 강한 것과 달리 벨기에는 오랜 맥주 주조 역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종류의 맥주와 독특한 맥주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벨기에 맥주의 특징 중 첫 번째는 ‘역사’를 꼽을 수 있다. 중세시대에 수도원에서부터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던 벨기에에서는 최소 4백년 정도의 역사는 가지고 있어야 ‘맥주 좀 만드는군’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벨기에의 맥주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호가든은 15세기경, 벨기에 브뤼셀 동쪽에 위치한 호가든 지방 수도사들의 주조법에서부터 유례를 찾을 수 있다. 유럽 최고의 프리미엄 맥주,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는 1366년 이래 ‘맥주 마을’로 불려 온 벨기에 루벤에서 유래된 6백년 전통의 라거 맥주이며, 레페(Leffe)는 8백년 이상의 역사를 지녀 ‘유럽 최고(最古)’의 맥주로 불린다.

두 번째는 ‘다양한 종류’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맥주는 라거 계통으로 효모를 저온에서 발효시켜 상쾌하고 청량감이 느껴지는 맛이 특징이다. 벡스(Beck’s), 레벤브로이(Lowenbrau) 등 우리에게 익숙한 독일 맥주 대부분은 라거 계열인데, 1516년 독일의 빌헬름 4세가 맥주의 품질 유지를 위해 ‘맥주순수령(맥주를 만들 때 보리, 홉, 물 이외의 원료를 사용할 수 없게 규제)’을 선포함으로써 현재까지도 그 영향을 받아 독일 맥주의 주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이런 규제가 없었던 벨기에에서는 사람의 주거환경에 항상 존재하는 미생물을 더해 맥주를 빚기도 하고, 약초나 허브, 과일 등을 사용하여 맛을 내기도 했으며, 계절맥주도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 라거(스텔라 아르투아)를 비롯해 에일(레페), 밀맥주(호가든) 등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고루 발달하게 되었다. 현재 벨기에는 국민 1인당 맥주 생산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벨기에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상표 숫자만 해도 무려 800가지에 이르며, 저마다 다른 맛과 향을 가지고 있어 기호에 맞게 맥주를 선택할 수 있다.

8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는 유럽 최고의 맥주 ‘레페’.

마지막으로 벨기에 맥주는 맥주에 따라 각기 다른 고유의 맛과 향을 최상으로 끌어올려주는 ‘전용잔’과 ‘음용법(Ritual)’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호가든의 육각잔, 스텔라의 챌리스(Chalice), 레페의 고블릿(Goblet, 받침이 달린 잔)이 바로 그 것.

호가든 특유의 부드럽고 풍성한 맛과 아름다운 구름거품, 매혹적인 오렌지 시트러스 향을 100% 즐기고 싶다면 호가든의 특별한 전용잔이 필요하다. 호가든 전용잔은 두꺼운 육각 글라스인데 이는 맥주의 차가움을 유지하여 특유의 황금빛 구름 컬러가 지속될 수 있도록 특별히 디자인 된 것이다. 잔의 굴곡은 풍부한 거품을 생성시키며, 넓은 입구는 호가든을 마시는 순간 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전용 잔에 ⅔ 정도 호가든을 따른 후, 병을 한 바퀴 돌려 병 속에 남아있는 효모를 활성화 시킨 다음 글라스에 새겨진 로고의 위치만큼 거품을 내어 따라 마시는 것이 호가든을 가장 맛있게 즐기는 방법이다.

맥주를 마실 때는 전용잔에 따라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사진은 스텔라 아르투아와 전용잔.

스텔라의 전용잔은 ‘성배’라는 뜻의 챌리스로, 맥주 맛을 풍부하게 하고 거품이 잘 가라앉지 않게끔 특별히 제작되었다. 별모양의 손잡이가 있어 이 부분을 잡고 마시면, 맥주를 좀 더 오랫동안 차갑게 즐기실 수 있게 했다. 스텔라는 9단계에 걸친 섬세한 음용법을 가지고 있다. 깨끗하고 차갑게 보관한 챌리스에 맥주를 따르는데, 탭의 첫 번째와 마지막은 빠른 속도로 흘러 버린다. 이는 공기와 닿은 맥주가 산화되어 맛을 변질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런 다음, 챌리스를 45˚로 기울여 맥주를 따르다가 똑바로 낮게 들어 따른 후 탭에서 떨어지는 마지막 드롭을 피해 재빨리 잔을 옮기고 폼 커터를 45˚ 각도로 뉘어 거품을 정리한다. 스텔라 음용법 단계 중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잔 위로 솟은 큰 거품은 터지기 쉽고 다른 거품까지 날아가게 하기 때문에 없애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거친 거품이 제거되고 솜처럼 부드러운 거품이 3㎝ 정도 생성되게 따른 다음 전용잔 외부에 묻은 맥주를 씻어내고 드립 캐쳐를 꽂아 내면 최상의 스텔라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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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캔팅이란 병 안의 불순물을 가라앉혀 침전물을 걸러내고 깨끗한 와인을 분리해 따라내는 과정이다.

 

 

 

레드 와인이든 화이트 와인이든 멋들어진 디캔터 안에 와인이 담겨있을 때 훨씬 더 맛이 좋아 보인다. 또한 디캔터에 담긴 와인은 테이블의 분위기를 근사하게 만드는데 기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와인들은 사실 디캔팅(Decanting)을 할 필요가 없다. 디캔팅이란 병 안의 불순물을 가라앉혀 침전물을 걸러내고 깨끗한 와인을 분리해 따라내는 과정이므로, 침전물이 없는 와인은 굳이 디캔팅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에어레이션과 디캔팅은 다르다!

 

에어레이션(Aeration, 통기)은 와인이 ‘열리고’ 부드러워질 수 있도록 와인을 일부러 산소에 노출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에어레이션은 와인양조 과정 중에 와인을 한 오크통에서 다른 오크통으로 옮겨 부을 때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서빙하면서 어린 와인을 카라프나 디캔터에 붓거나 심지어 잔에 따른 후 돌릴 때도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와인을 부드럽게 하고 공기에 노출시키는 과정을 또 다른 용어로 브리딩(Breathing)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단순히 코르크를 뽑은 병을 개봉해서 그냥 몇 분 동안 놓아두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열어둔 병 입구의 조그마한 공간으로 유입되는 공기의 양 정도로는 와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의 하루 종일 열어놓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와인의 에어레이션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와인을 디캔터, 유리병 혹은 피처에 따르는 동안 와인이 공기와 섞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브리딩을 하면 거의 대부분의 와인, 특히 숙성 초기 상태이고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네비올로, 프티 시라와 같이 타닌이 많은 품종으로 만든 레드 와인의 경우 풍미가 살아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단, 섬세한 레드 와인이라면 특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오래된 섬세한 피노 누아를 디캔터로 옮긴다면 오히려 풍미가 둔해지고 무미건조한 맛이 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오래된 부르고뉴 레드 와인은 오래된 리오하 와인(템프라니요 품종으로 만든)이나 오래된 키안티(산지오베제 품종으로 만든)와 마찬가지로 에어레이션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화이트 와인을 브리딩할 경우 비록 그 효과가 적고 원래 병 속에 그대로 두어 차게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만, 레드 와인과 마찬가지로 산소와 접촉하면 풍미가 살아나기도 한다.

 

 

 

어떤 와인을 디캔팅할까?

 

디캔팅을 하는 와인은 빈티지 포트나 수년간 병에서 숙성하도록 만들어진 정상급 레드 와인들이며, 대개 이런 와인은 색상이 짙고 타닌 함유량이 높은 포도로 만들어진다. 와인의 침전물은 주로 색소 잔여물과 기타 미립자들로 이루어지는데, 일반적으로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빈티지 포트처럼 한때 짙은 빛깔을 띠던 오래된 레드 와인에 존재한다. 오래된 카베르네 소비뇽을 원래 놓아두었던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조명에 비춰보면, 병 안쪽에 달라붙어 있는 딱딱한 물질 같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침전물이다. 오래된 빈티지 포트 와인의 침전물을 눈으로 확인하기는 다소 어려운데, 이는 대부분의 포트 와인 병이 전통적으로 어둡고 불투명한 유리로 제조되었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침전물을 제거하기 전의 스파클링 와인으로, 와인의 침전물에 대한 시각적 이해를 돕고자 삽입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디캔팅이 필요할 만큼 오래된 와인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절대적인 법칙은 없지만 10년 이상 된 와인이 대체로 이 범위에 들어간다. 그러나 와인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침전물을 걸러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디캔팅하지 않고 침전물이 있는 상태 그대로 마셔도 상관은 없는데, 침전물은 해로운 것이 아니라 단지 와인의 색을 탁하게 만들고 입 안에서 약간 씹히는 느낌을 줄 뿐이다. 오래된 와인이지만 침전물이 생기지 않는 경우에도 디캔팅할 필요가 없다. 주의할 점은, 오래된 와인은 상태를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대체로 다소 연약하기 때문에, 산소와 접촉하면 향과 풍미가 피어 오르듯 하다가 금새 사라져버리기도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침전물이 많더라도, 디캔팅을 해서 향과 풍미를 잃어버린다면 차라리 침전물이 움직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병에서 직접 와인 잔에 따르는 것이 낫다.

 

과거 여과 기술이 와인양조에 도입되기 이전에는 모든 와인에 침전물이 생겼기 때문에 품질에 관계없이 와인을 디캔팅한 후 마셔야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숙성을 기다릴 필요 없이 빨리 마실 수 있는 저렴한 일상 와인에 대한 수요가 대부분이며, 이런 와인은 양조 기술의 발전 덕분에 침전물이 없고 매우 맑은 상태로 출시된다. 최근 프랑스 부르고뉴나 론 지방에서 여과나 정제를 거치지 않고 와인을 생산하는 유행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긴 하지만, 이 와인들은 저렴한 일상 와인이 아닌 정상급 와인에 해당한다. 그리고 여과를 거쳤든 그렇지 않든, 많은 정상급 와인(특히 정상급 레드 와인)들에서 침전물이 발생하므로 디캔팅이 요구된다. 또한 주석산염(Tartrate) 결정체가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화이트 와인을 간혹 발견할 수 있는데, 이 때에도 디캔팅을 통해 침전물과 와인을 분리시킬 수 있다. (‘How to decant’ - decanter.com)

 

어떻게 디캔팅할까?

 

디캔팅을 할 때에는 대개 유리로 만든 디캔터를 사용하지만 디캔터가 없다면 물병을 활용할 수도 있다. 이 때 와인을 부었다가 바로 다시 병에 넣으면 디캔팅 효과가 거의 비슷하게 나타난다. 이렇게 와인을 따라낸 후 헹궈낸 원래의 병에 디캔팅한 와인을 다시 붓는 경우를 더블 디캔팅(Double decanting)이라고 한다.

 

와인을 디캔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먼저 침전물이 모두 부드럽게 병 밑바닥으로 가라앉도록 하기 위해 와인병을 하루나 이틀 동안 똑바로 세워두어야 한다. 병을 집어 들거나 빙빙 돌리지 말고 코르크를 천천히 제거한다. 그 다음 병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병 뒤에 조명을 비추면서(양초, 작은 조명, 손전등 등) 깨끗한 와인을 디캔터에 천천히 따라 붓는다. 와인이 5cm 좀 안되게 남았을 때 침전물이 병목 쪽으로 나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이 때가 따르기를 멈추어야 하는 시점이다. 깨끗한 와인은 이제 모두 디캔터로 옮겨졌고 침전물은 병 속에 남아 있다.

 

 

오래되거나 침전물이 있는 섬세한 와인을 부드럽게 디캔팅하기 위해서는, 병의 바닥을 잡고 디캔터 위에 병목을 올려 미끄러지듯 와인을 흘러내리게 한다.
이 때 깔때기를 대고 와인을 따라도 된다. 와인을 따르는 동안 불빛을 통해 병 속을 지켜보았다가 침전물이 디캔터로 흘러 들어가기 전에 멈춘다.

 

 

 

침전물이 심하지 않은 경우, 부드럽고 깨끗한 면직물이나 커피 여과지를 사용하여 앙금을 걸러낼 수도 있다(종이가 와인의 맛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디캔터로부터 적당히 떨어진 높이에서 와인을 부으면 와인의 부케(Bouquet, 와인이 숙성되면서 나는 향)가 피어 오르며, 근육질의 거친 타닌이 부드럽게 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어린 와인이라면 마시기 얼마 전에 디캔팅하는가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오래된 와인일수록 디캔팅은 가급적 늦게 하는 것이 낫다. 일반적으로 오래되고 타닌이 강한 포트, 카베르네 소비뇽, 보르도, 바롤로, 론 같은 와인이라면 마시기 한 시간쯤 전에 디캔팅하는 것이 좋다. 타닌이 강하지 않거나 빛깔이 진하지 않고 많이 연약한 피노 누아, 키안티, 리오하 같은 와인은 디캔팅할 필요가 전혀 없지만 만일 침전물이 보인다면 마시기 직전에 디캔팅한다.

 

 

침전물을 걸러내거나 풍미를 발산시키기 위해 화이트 와인을 디캔팅하는 경우도 있다.

 

 

 

참고문헌

와인생활백서
1995년 세계 최우수 소믈리에 대회에서 일본인으로는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다사키 신야의 알기 쉬운 와인 입문서. 알아두면 편리한 와인 생활 상식을 200여 가지 수록하였다.


더 와인 바이블 (The Wine Bible)
30여 년 넘게 와인작가, 컨설턴트,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캐런 맥닐의 저서로, 미국 내 베스트셀러이자 수상작이다. 출간된 후 45만부 이상 팔렸다. 집필하는데 무려 십 년이 걸린 이 책은 와인을 주제로 쓴 가장 포괄적이고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와인 테이스팅의 이해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슈스터(Michael Schuster)는 전업 와인 교육가이자 와인 작가로서, 베스트셀러인 ‘Understanding Wine’(Michell Beazley, 1989)의 저자이며 ‘Oxford Companion of Wine’의 저작에도 참여했다. 또한 와인전문매체인 디캔터와 와인인터내셔널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글/사진 정보경/에디터/와인오케이닷컴
와인오케이닷컴(wineok.com)은 약 2만 6천여 개의 국내 최다 와인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와인 포탈 사이트로, 와인 관련 상식, 뉴스, 할인행사, 시음회 소식 등 다양한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폰 및 안드로이드 WineOK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와인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와인오케이닷컴은 현재 미투데이 공식 미투 파트너로 활동 중이다.
 
발행일 201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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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숙성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장하는 방법은 병과 코르크를 사용하게 된 18세기 이후에 비로소 관습화되었다.

 

 

와인이 식초로 변해버리지 않고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관하는 문제는 수천 년 동안 계속된 고민거리였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에서는 와인에 꿀을 섞고(당분이 보존제 역할을 함) 올리브 오일을 위에 부은 뒤(공기 차단) 커다란 도자기 항아리에 넣어 서늘한 땅속에 묻었다. 16세기에는 유럽에 수출하는 와인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브랜디와 섞어 알코올 도수를 높게 한 무겁고 강렬한 와인을 만들었다. 영국, 아일랜드 혹은 북유럽으로 수출되는 와인은, 도착지까지 도달해서도 여전히 마시기 좋도록 원래의 와인에 주정 강화를 충분히 하는 것이다.

 

주정 강화를 하지 않은 어리고 신선한 와인은 즉시 소비되었는데, 이런 와인은 대단히 매력적이었고 역사적으로도 오래된 와인보다 항상 값이 비쌌다. 와인을 숙성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장하는 방법은 병과 코르크를 사용하게 된 18세기 이후에 비로소 관습화되었다. 와인을 코르크 마개로 막아 병에서 숙성시키면 식초로 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와인은 품질이 향상되었는데, 특히 레드 와인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이때부터 처음으로 잘 숙성된 오래된 와인이 어린 와인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품질을 더욱 높이기 위해 ‘와인을 저장하는 것’이 낭만적이면서도 유행에 어울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코르크는 코르크 오크나무의 껍질로 만드는데 포르투갈 남부, 스페인, 알제리 등의 바위가 많고 메마른 토양이 원산지다. 코르크 조직의 구성성분은 경이롭다. 1인치 입방체당 14개 면적으로 된 약 2억 개의 공기로 채워진 세포가 들어있다. 비중(Specific Gravity)이 0.25인 코르크는 물보다 네 배 더 가볍고, 탄성이 대단해서 1인치 입방체당 6.350kg의 압력을 견딘 후에도 원래 모양으로 순식간에 돌아온다. 코르크는 공기가 투과하지 못하고 물도 거의 침투하지 못한다. 잘 타지 않고 온도 변화와 진동에 저항력이 있으며 썩지 않을 뿐 아니라 코르크를 넣는 용기의 윤곽에 맞게 자체의 모양을 형성하는 능력이 있다.

 

 

와인이 변했어요!

와인은 병입 및 운송 과정이 진행된 후에도 계속해서 변화한다. 심지어 와인 판매점 진열대 위에서도 이런 변화는 계속된다. 비록 좋은 상태로 생산자의 손을 떠났다 해도 소비자에게 가끔 손상된 와인이 배달되는 경우가 있는데, 가장 흔히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는 와인이 코르크화(Corked)되는 경우다. 이는 트리클로로아니솔(TriChloroAnisole 또는 TCA)이라는 화합물 때문인데, 주로 코르크에 번식하는 곰팡이로 인해 생성된다. 이렇게 코르크화된 와인은 곰팡내와 흙냄새(더럽고 축축하게 젖은 천 같은 냄새)가 난다. 이런 와인은 무미건조하고 씁쓸한 맛이 나며 과일 향이 사라지고 아무런 특징이 없다. 와인이 코르크화될 확률은 2-5%로 알려져 있다.

 

와인생산자에게 코르크 냄새의 발생이 특히 골칫거리인 것은 대부분의 소비자가 코르크 냄새를 지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코르크의 결함 때문에 와인이 변질됐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단지 와인이 맛이 없다고 판단하여 다시는 그 와인을 찾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와인이 코르크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와인생산량이 전세계적으로 증가하면서 좋은 품질의 코르크를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 때문이다. 좋은 코르크는 외관상으로나 감촉이 단단하고 견고한 반면,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스펀지 같고 코르크 안에 흠집이나 심지어는 구멍들이 있다. 양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많은 업체들은 와인의 품질을 훼손할 수도 있는 하급 코르크 사용을 배제하고, 합성 재질 마개나 돌려서 여는 스크류 캡(Screw cap)을 사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추세다. 연간 150억 개 정도 생산되는 코르크는 2000년대 들어서 판매량이 차츰 줄기 시작했으며, 스크류 캡과 같은 대체 마개의 등장은 코르크 마개 생산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호주, 뉴질랜드, 미국 등 신세계 와인생산자들을 중심으로 스크류 캡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가고 있지만,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닌 코르크에 대해 여전히 많은 와인생산자들이 애착과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들은 와인이 병 안에서 숙성하는데 코르크 마개가 많은 기여를 하며, 아로마가 풍부한 화이트 와인에 스크류 캡을 사용하면 산소 부족으로 인한 환원(reduction, ‘산화’의 반대) 작용으로 인해 풍미가 오히려 감소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와인생산자는, 이러한 점 때문에 그들이 생산하는 고급 소비뇽 블랑 와인에 다시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Telegraph, 2011.3). 와인생산자들이 이렇게 코르크의 기능에 집착하는 한편, 소비자들은 코르크가 주는 낭만적인 매력을 쉽게 뿌리치지 못해서 코르크 마개를 선호하기도 한다.

 

 

스크류 캡의 등장

스크류 캡은 TCA에 오염될 염려가 없어 코르크보다 더 안전성이 높고 와인이 코르크화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09년에는 전체 와인 마개 생산량 중 스크류 캡이 차지하는 비율이 15%에 달했는데(Decanter.com 2009.3), 특히 신세계 와인 산지를 중심으로 저렴하면서 코르크를 대체할 수 있는 마개가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뉴질랜드와 호주의 경우 스크류 캡은 저가 와인은 물론이고 점차 고가 와인으로도 사용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1970년대에 등장한 스크류 캡은 애초에는 저렴한 와인들 위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코르크 마개의 품질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뉴질랜드의 40여 개 일류 와인생산자들은, 2001년에 스크류 캡 사용을 지지하는 단체를 만들어 그들이 생산하는 고급 와인에 스크류 캡을 사용함으로써 그러한 편견을 깨고자 하였다.

 

 

스크류 캡을 사용할 경우 와인으로 침투하는 산소의 양이 매우 적기 때문에 와인의 과일 풍미가 오래 유지되며 와인이 산화되는 속도가 느리다. 과일 풍미가 지배적이며 4-5년 이내에 마실만한 와인을 주로 생산하는 신세계 와인 산지에서 스크류 캡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때 산소의 부족은 환원(reduction, 산화의 반대)으로 이어지는데, 환원 작용이 과다할 경우 와인에서 불탄 성냥, 양파, 마늘, 양배추, 견과류, 땀냄새 같은 유쾌하지 못한 향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확률은 코르크 마개를 사용할 경우 발생하는 TCA 오염의 확률(2-5%)보다는 훨씬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낮은 수준의 환원은 와인에 미네랄 풍미 또는 녹색 후추(green pepper)나 블랙 커런트(black currant)같은 향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는 과다한 산화(oxidation)는 문제가 되지만 일정한 수준의 산화는 와인의 풍미에 일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스크류 캡은 일찍 소비하는 신선한 화이트 와인이나 쉽게 마실만한 레드 와인에 주로 사용되고 있는데, 스크류 캡으로 밀봉한 와인을 장기간 숙성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는 아직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코르크의 역할이 외부의 공기가 병 속으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인 만큼, 스크류 캡과 같은 대체 마개가 코르크보다 품질이나 기능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타당하지 않다.

 

코르크냐 스크류 캡이냐의 문제는, 와인의 스타일이나 품질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환경에 대한 논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The World Wildlife Fund를 비롯한 몇몇 환경보호단체들은, 코르크 사용이 줄어들면 지중해 연안의 코르크 오크나무 숲의 4분의 3이 개발로 인해 사라질 수도 있으며, 이와 함께 관련 종사자들이 직업을 잃을 뿐 아니라 생태계 균형도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참고문헌

와인생활백서 
1995년 세계 최우수 소믈리에 대회에서 일본인으로는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다사키 신야의 알기 쉬운 와인 입문서. 알아두면 편리한 와인 생활 상식을 200여 가지 수록하였다.


더 와인 바이블 (The Wine Bible) 
30여 년 넘게 와인작가, 컨설턴트,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캐런 맥닐의 저서로, 미국 내 베스트셀러이자 수상작이다. 출간된 후 45만부 이상 팔렸다. 집필하는데 무려 십 년이 걸린 이 책은 와인을 주제로 쓴 가장 포괄적이고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글/사진 정보경/에디터/와인오케이닷컴 
와인오케이닷컴(wineok.com)은 약 2만 6천여 개의 국내 최다 와인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와인 포탈 사이트로, 와인 관련 상식, 뉴스, 할인행사, 시음회 소식 등 다양한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폰 및 안드로이드 WineOK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와인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와인오케이닷컴은 현재 미투데이 공식 미투 파트너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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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 년의 와인양조 역사에서 떼놓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와인과 오크(Oak)의 관계이다. 만약 오크가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많은 와인들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며, 와인은 지금과 같은 맛, 향기, 질감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와인이 오크통에서 숙성되면 산소와 만나 조금씩 산화되면서 와인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이 때 ‘산화’라는 말이 좋지 않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산화라는 것은 산소가 붙거나 수소가 떨어지는 화학반응을 뜻하므로, 와인이 신맛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크에는 와인을 변화시키고, 단순히 발효된 과일즙이라는 유형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하며, 깊이, 여운, 복합성, 강도를 부여하는 힘이 있다.

 

프랑스 마디랑 지역에 위치한 샤토 몽투스(Montus)의 양조장 내부. 오크통에서 와인이 숙성 중이다.

 

 

오크 사용의 효과


오늘날 양조학자들은 다음 두 가지의 오크 숙성 과정이 와인 변화에 관여하는 것으로 추측한다. 첫째는 증발 작용이다. 이는 물과 알코올이 오크통의 통널 사이로 빠져나가는 과정인데, 예를 들어 190L들이 오크통이라면 1년에 증발하는 와인의 양이 19-23L 정도이다. 이 때 판자 사이의 틈이 거의 없을수록 와인은 천천히 줄어들면서 숙성한다. 이와 동시에 미세한 양의 산소가 나뭇결을 통해 오크통 안으로 스며들기도 하는데, 이는 와인의 구성요소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와인에 더욱 부드러운 특성을 부여한다.

 

오크통이 와인의 품질에 기여하는 가장 큰 요소는, 오크통을 만들 때 오크통 내부를 불로 굽는 토스팅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열기는 나무의 가공되지 않은 요소들과 와인 사이에 보호벽을 형성하며, 나무의 구성 요소를 변화시켜 특징적인 오크의 향과 풍미를 준다. 오크가 와인에 미치는 영향은 오크의 종류가 무엇인지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미국산 오크가 와인에 부여하는 풍미는 프랑스산 오크와는 많이 다르다. 미국산 오크는 더 강렬하고 바닐린(Vanillin) 성분이 더 강한 반면, 프랑스산 오크는 좀 더 은은하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더 우수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크는 단지 와인의 향과 맛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재질감에도 그 흔적을 남긴다. 레드와 화이트 와인 모두에서, 오크는 힘과 뚜렷한 효과를 준다. 오크 덕분에 풍미들이 좀 더 뚜렷한 초점을 갖게 되며, 단순한 재질감이 강하게 향상된다. 오크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레드 와인에서 타닌을 부드럽게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가까이 하기 어려울 정도로 드라이하고 수렴성 있는 와인을 만들기도 한다.

 

 

전통적인 오크통 제작 과정

100년이 넘은 오크 나무 중에서 신중하게 선별된 흠 없는 가운데 부분을

사용하면, 225L들이 오크통을 겨우 2개 만들 수 있다. 아무리 민첩하고

유능한 통 제작자라 하더라도 하루에 오크통 1개 이상은 만들지 못한다.

 

 

오크통 제작을 위해서는 대체로 100년 이상 된 오크 나무를 사용한다. 여러 종류의 나무 중에서 오크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를 대신할 만한 나무가 없기 때문인데, 소나무나 삼나무는 나뭇결이 곱지 않아 산화가 빨리 진행되고 송진향이나 삼나무향이 너무 강해서 와인을 숙성시키기에 적당하지 않다. 또한 오크만큼 와인의 맛을 강화할 수 있는 나무도 없다.

 

오크통 제작을 위해 오크 나무의 가운데 부분을 자연적인 결을 따라 손으로 쪼갠 후, 통널을 야외에 쌓아두고 햇빛과 비에 노출되도록 하면서 2-3년 동안 자연 건조시킨다. 다음 단계는 통널을 될 수 있는 한 단단히 이어 맞추는 것이다. 불완전하게 붙이면 나중에 내용물이 새거나 통널 사이로 산소가 상당량 스며들어 와인이 산화하고 부패하는 원인이 된다.

 

오크통의 완만히 구부려진 형태를 잡기 위해, 통널을 화덕에 가열해 모양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유연해지도록 만든다. 이렇게 나무를 가열하면 나무의 천연 당분이 토스트, 향신료, 바닐라의 풍미로 변하게 되며, 가열로 인해 태운 풍미(toast flavor)와 함께 와인에 첨가된다. 와인 양조자는 오크통 제작자에게 자신이 원하는 풍미의 수준으로 오크통을 가볍게, 적당하게 혹은 많이 구워달라고 주문할 수 있다.  

 

오크통의 완만히 구부려진 형태를 잡기 위해 통널을 가열해 모양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유연해지도록 만든다.

 

 

오크통 형태를 만든 후 통 안쪽을 굽는 정도에 따라 1)가볍게 구운(10-15분) 상태에서는 구수하고 드라이한 느낌과 매운 향을 주고 2)중간 정도로 구운(15-30분) 상태에서는 전형적인 달콤한 코코넛, 바닐라 향과 녹은 버터 그리고 나무의 당분이 그을려져 나오는 캐러멜이 따라 나오며 3)강하게 구운(30-45분) 상태에서는 볶은 커피, 훈제 베이컨, 정향, 생강, 나무 연기, 심할 경우 송진의 숯, 석탄산과 타르 냄새가 나기도 한다.

 

오크통 안쪽을 얼마나 굽느냐에 따라 와인에 영향을 주는 풍미가 달라진다.

 

 

얼마나 오래 숙성시켜야 할까?

와인을 오크통에 넣는다고 해서 시간이 지나면 와인이 모두 좋아지는 것은 아니며, 와인의 성질이나 포도가 성장한 연도의 특성에 따라 오크통에서의 숙성기간도 조금씩 바뀐다. 또한 와인생산자의 결정에 따라 와인을 새 오크통에서 숙성시킬 것인지 중고 오크통에서 숙성시킬 것인지도 달라진다(오크통은 대체로 4-6년 사용하고 나면 풍미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사실 와인을 오크통에 얼마나 보관할 것인지에 대한 절대적인 시간은 없다. 가령 피노 누아는 오크통에 담은 지 1년이 지나면 부드러워지고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보통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보르도 와인은 2년, 네비올로로 만드는 바롤로 와인은 4년이 필요하다. 1970-1980년대 캘리포니아에서는 오크통을 사용한 샤르도네 와인의 인기가 높았는데, 그 이유는 캘리포니아의 와인애호가들이 토스트, 오크의 풍미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오크의 사용이 마치 강력한 와인 판매 전략처럼 레이블에 기재되어 있고 와인생산자들 사이에서 거의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되고 있지만, 모든 포도 품종들이 다 오크와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와인 맛에 대한 문화적인 선호도에 따라 오크통에서 얼마나 숙성시킬지 결정하기도 한다. 스페인 리오하의 양조자들은 주로 템프라니요 품종으로 최고급 레드 와인을 만들 때, 전통적으로 미국산 중고 오크통에 넣어 10년이나 숙성시키는데, 이곳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흙 냄새가 깃든 바닐라의 특징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와인 테이스팅의 이해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슈스터(Michael Schuster)는 전업 와인 교육가이자 와인 작가로서, 베스트셀러인 ‘Understanding Wine’(Michell Beazley, 1989)의 저자이며 ‘Oxford Companion of Wine’의 저작에도 참여했다. 또한 와인전문매체인 디캔터와 와인인터내셔널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더 와인 바이블 (The Wine Bible) 
30여 년 넘게 와인작가, 컨설턴트,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캐런 맥닐의 저서로, 미국 내 베스트셀러이자 수상작이다. 출간된 후 45만부 이상 팔렸다. 집필하는데 무려 십 년이 걸린 이 책은 와인을 주제로 쓴 가장 포괄적이고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글/사진 와인오케이닷컴 
와인오케이닷컴(wineok.com)은 약 2만 6천여 개의 국내 최다 와인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와인 포탈 사이트로, 와인 관련 상식, 뉴스, 할인행사, 시음회 소식 등 다양한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폰 및 안드로이드 WineOK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와인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와인오케이닷컴은 현재 미투데이 공식 미투 파트너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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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감상할 때 색을 포함한 외관을 살펴보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와인은 스타일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게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누구나 자신만의 취향이 있듯이 와인에 대한 선호 역시 오로지 개인적인 취향이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와인을 찾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을 마셔 보고 구분할 수 있어야 하고, ‘과일 맛이 많고 생기 있는 레드 와인’ 혹은 ‘가볍고 파삭한 화이트 와인’ 등 와인의 스타일을 분류할 수 있으려면 테이스팅 감각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 이 때 테이스팅 감각 훈련은 맛과 향을 기억하고, 경험을 토대로 와인을 비교 및 분류하되 체계적이어야 한다. 즉 누구나 와인을 마시고 즐길 수 있지만 와인을 감상하는 데는 기술이 필요하다.

 


와인의 색

와인을 감상할 때 색을 포함한 외관을 살펴보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와인의 외관은 와인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이며, 와인을 마시고 만족감을 주는데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뿐만 아니라 외관만으로도 와인에 대해 상당한 양의 정보를 알 수 있으며, 익숙해지면 외관과 향기만으로도 와인의 지역이나 맛 등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레드 와인은 포도를 포도 껍질과 함께 발효시키기 때문에 껍질에 포함된 색소의 양이 과즙에 얼마나 녹아 있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같은 조건에서 와인의 색이 짙다는 것은 그만큼 포도가 농축되어 수분이 적다는 것을 뜻한다. 기후 차이도 포도 색깔에 영향을 미치는데, 추운 지방의 레드 와인은 밝은 색을 띠고, 따뜻한 지방의 레드 와인은 색이 진하다. 또한 레드 와인은 숙성될수록 색상이 옅어지는데, 잉크색, 자주색, 보라색, 빨간색, 루비색, 가닛색, 마호가니색, 벽돌색, 오렌지색, 호박(보석)색, 갈색으로 점차 변한다.

 

와인 잔을 3분의 1 이상 채우지 않은 상태로 와인 잔을 기울여 흰색의 배경에 대비시켜 보면, 와인의 중심부로부터 가장자리로 옮겨가면서
색조가 미세하게 변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위 사진은 포도 품종과 기후가 레드 와인의 색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준다. 첫 번째 와인은 부르고뉴에서 생산된 2년 숙성 피노 누아 와인으로, 서늘한 기후를 선호하고 비교적 껍질이 얇은 피노 누아로 만든 와인은 대개 중간 정도의 색상을 지닌다. 이 색상은 부르고뉴 피노 누아에서는 전형적이지만 호주의 쉬라즈에 비해선 약하다. 겨우 2년 정도 되었지만 가장자리 색을 통해 와인이 어느 정도 숙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와인은 남호주에서 생산된 숙성 4년째인 쉬라즈 와인으로, 무더운 기후 지역 와인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잉크 빛 자주색을 띠며, 4년 숙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색이 짙다. 세 번째 와인은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숙성 8년째 와인으로, 따뜻한 기후에서 자란 카베르네 소비뇽답게 짙은 색상을 띤다. 중심부는 마호가니 색조를 보이고 가장자리는 벽돌 색상을 지녀 나이와 숙성 상태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화이트 와인에서는 색의 강도보다 맑기, 밝기, 종류와 숙성 단계에 따른 색상이 중요하다.

 

 

화이트 와인에서 색상의 강도는 레드 와인만큼 중요하지 않으며, 대신 맑기, 밝기, 종류와 숙성 단계에 따른 색상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초록색 계열이 강한 와인은 추운 북쪽 지방에서 만든 와인이고, 노란색이 강한 와인은 남쪽의 따뜻한 지방에서 만든 와인일 가능성이 높다. 갈색 계통의 황금색이 강하면 강할수록 오크통의 영향이나 숙성에 따른 영향이라고 판단한다. 화이트 와인은 숙성될수록 색상이 진해지는데, 물빛, 녹색 기운을 띤 노란색, 연한 노란색, 레몬색, 밀짚색, 황금색, 오래된 황금색, 호박색, 갈색으로 점차 변한다.

 

위 사진은 포도 품종과 기후가 화이트 와인의 색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준다. 첫 번째 와인은 독일의 모젤 지역에서 생산된 2년 숙성된 리슬링 와인으로, 서늘한 기후에서 자란 리슬링은 생기 있고 투명하지만 색깔이 거의 없는 와인을 생산하며, 색상이 매우 더디게 진해진다. 두 번째 와인은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숙성 2년째 샤르도네 와인으로, 오크통 발효와 숙성을 거쳐 밝고 맑으며 엷은 색을 띤다. 더운 기후 지역에서 잘 익은 포도로 생산한 것으로, 낮은 산도의 이 와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온화하고 깊은 색으로 변하며 리슬링보다 더 빨리 진해진다.

 

 

와인의 향

와인을 감상할 때 후각은 아주 중요한 감각이다. 우리가 ‘맛’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향’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감기에 걸리면 음식을 맛보기 어려운 것처럼). 품질이 좋은 와인은 매우 풍부한 향을 가지고 있으나, 단순한 와인은 향이 평이한데 그 차이를 분간하는 것이 바로 후각이다. 충분한 훈련을 통해, 와인을 맛보기 전에 향만 맡아도 와인의 특성과 원산지, 품질을 알 수 있다.

 

와인의 향은 어디서 오는 걸까. 고급 양조용 포도 품종들은 각각 향의 특징이 서로 구별되고 매우 뚜렷하며, 이렇게 특징적인 향은 해당 품종으로 만든 와인의 개별 특성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포도의 향은 포도가 어디에서 재배되었고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익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예를 들면,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은 품종 고유의 향이 명확한데, 같은 소비뇽 블랑으로 만들었음에도 프랑스 상세르(Sancerre) 지역 와인의 향은 매우 다르다. 또한 포도의 생산량(생산량이 많을수록 향은 옅다), 전반적인 기후(시원할수록 향이 더 상쾌하고 진하다), 포도나무의 수세(나뭇잎이 많으면 그늘을 만들어 햇빛을 덜 받게 하므로 풀 냄새가 나기 쉽다) 등의 요소도 향에 영향을 준다.

 

양조 과정과 관련해서는, 유산 발효에서 비롯되는 부드러운 유제품 같은 냄새와, 새 오크와 접촉해 나타나는 바닐라 계열의 향이 두드러진다. 와인에서 맡을 수 있는 가장 미묘하고 매력적인 향의 일부는 오랜 시간 병 숙성을 거친 고품질 와인에서 발견되는데, 수년에서부터 수십 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이 흐른 뒤 맡아지는 향이다.


우리가 ‘맛’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향’인 경우가 많다.

 

 

향의 종류

꽃: 장미, 제비꽃, 아카시아, 재스민, 라임나무 등


식물: 풀 향, 피망, 소나무, 송진, 차, 민트, 송로버섯, 건초, 올리브 등


과일: 오렌지, 레몬, 라임, 자몽, 감귤, 배, 복숭아, 살구, 멜론, 사과, 모과, 체리, 딸기, 블랙베리, 블루베리, 리치, 파인애플, 망고 등


광물질: 흙냄새, 화산재, 편암, 돌, 자갈, 휘발유, 왁스


동물성: 사슴고기, 사냥고기, 젖은 모피, 젖은 양털, 가죽, 사향, 고양이 오줌


향신료: 검은/흰 후추, 정향, 삼나무, 감초, 아니스 열매, 계피, 바닐라


말린 과일: 견과류, 헤이즐넛, 호두, 아몬드, 무화과, 말린 자두, 건포도, 과일 케이크, 잼


탄 향: 타르, 커피, 토스트, 버터, 캐러멜, 초콜릿, 꿀, 연기, 담배


화학적인 향: 결점이 있는 와인에서는 갈변한 사과, 씁쓸하고 달콤한 캐러멜, 시큼한 식초, 매니큐어액, 그을린 성냥, 썩은 달걀, 타는 고무, 마늘, 양파, 곰팡이, 습기 찬 지하 창고, 먼지 냄새가 난다.

 

 

리슬링 와인에서 맡을 수 있는 다양한 향(좌). 블라우프랜키쉬 와인에서 맡을 수 있는 다양한 향(우). 

 

 

 

향과 색의 관계

포도가 잘 익었다는 것은 포도 자체의 향이 좋고 달콤하며 농밀한 상태라는 뜻인데, 이것이 와인의 향에도 나타난다. 레드 와인의 향을 표현할 때 라즈베리, 블루베리, 블랙베리 같은 과일 향기를 들곤 하는데, 이 세 가지 과일향 가운데 라즈베리가 가장 상쾌한 향기이고 블랙베리가 가장 진한 향기라고 할 수 있다. 즉 포도의 숙성도에 따라, 색이 밝을수록 라즈베리향이 나고 색이 진할수록 블랙베리향이 나며 그 중간쯤 블루베리향이 난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 화이트 와인은 녹색이 강할수록 감귤류나 풋사과 같은 향이 강하고, 노란색이 강할수록 서양배나 노란 복숭아 등 노란색 과일 향기가 나며, 짙은 노란색이라면 열대과일의 향기가 난다.

 

 

와인의 맛

우리가 맛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상 대부분 냄새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와인에서 발견하는 품질은 대부분 미각돌기로 느끼는 것 외의 요소들, 즉 향이나 질감 또는 힘과 균형 등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다. 맛을 볼 때 혀는 신맛, 단맛, 쓴맛, 짠맛, 알코올을 감지한다. 와인을 마실 때 함께 입 안으로 들어온 공기는 향을 코 위쪽으로 보내어 풍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입 안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감촉, 산도의 생기, 과일 맛의 원숙도, 알코올의 무게감과 온기, 레드 와인의 경우 타닌의 드라이한 정도를 분석하는 것 또한 맛의 영역이다.

 

맛을 이루는 이런 요소들이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지 판단함으로써 와인의 품질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해도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면 기분 좋게 마실 수 있으며, 만일 와인을 삼킨 후에도 풍미와 균형이 입 안에서 계속 기분 좋게 지속된다면 그 와인은 품질이 좋은 와인이다. 하지만 균형이 잘 잡혀 있지 않은 와인은 양조 방법에 문제가 있었거나, 아직 마실 시기가 안 되었거나, 마실 시기가 지난 것이다.

 

 

와인의 품질을 평가할 때는 향이나 질감 또는 힘과 균형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맛의 표현

와인에서 ‘드라이’라는 용어는 ‘스위트’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단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드라이 와인에서 단맛을 느낀다면 그것은 자연적으로 잘 익은 과일 또는 알코올에서 오는 풍미이다. 반면 스위트 와인에서의 단맛은 알코올로 변하지 않은 포도즙의 과당과 포도당에서 나오는데, 이를 잔여 당분이라고 한다. 와인을 마실 때 ‘밋밋하다’, ‘신선하다’ 등의 느낌은 산도와 관련이 있는데, 포도 자체가 산을 가지고 있으며 발효 과정을 통해 산이 생성되기도 한다. 산도는 특히 화이트 와인에서 중요하다. 타닌이 없기 때문에 산도가 와인의 구조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잘 익지 않은 적포도에서 나오는 설익은 타닌, 포도 껍질과 씨를 으깨는 과정, 높은 알코올 등 쓴맛을 느끼게 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진한 블랙커피 맛과 비슷한 이 쓴맛은 타닌과 혼동되기도 하는데, 쓴맛은 미감의 일종이며 타닌은 촉감에서 오는 느낌이다. 쓴맛은 숙성이 필요한 어린 레드 와인에서 많이 느껴지며, 이탈리아 레드 와인 같은 경우에는 쓴맛이 가볍고 원만하다.

 

엄밀하게 말해 촉감이나 질감은 ‘맛’이 아니지만, 와인의 균형에 중요한 작용을 하며 와인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면 알코올은 단맛과 쓴맛 외에 촉감의 느낌도 가지고 있으며, 와인의 풍미를 실어 입 안 곳곳에 전달해주며 여운까지 길게 이어지게끔 한다. 또한 알코올이 과도하면 와인이 ‘뜨겁게’ 혹은 ‘불타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수렴성 또한 촉감의 하나로, 입 안에서 느껴지는 건조함, 오므라드는, 뻑뻑함 등의 느낌을 말한다. 와인에서 느껴지는 수렴성은 대부분 타닌에 의한 것이며 주로 레드 와인에서 나타나는데, 익지 않은 포도나 세련되지 못한 양조 기술을 사용할 경우 타닌은 풀 냄새와 쓴맛, 그리고 과도한 수렴성으로 나타난다.

 

 

 

참고문헌

와인 테이스팅의 이해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슈스터(Michael Schuster)는 전업 와인 교육가이자 와인 작가로서, 베스트셀러인 ‘Understanding Wine’(Michell Beazley, 1989)의 저자이며 ‘Oxford Companion of Wine’의 저작에도 참여했다. 또한 와인전문매체인 디캔터와 와인인터내셔널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글/사진 와인오케이닷컴 
와인오케이닷컴(wineok.com)은 약 2만 6천여 개의 국내 최다 와인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와인 포탈 사이트로, 와인 관련 상식, 뉴스, 할인행사, 시음회 소식 등 다양한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폰 및 안드로이드 WineOK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와인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와인오케이닷컴은 현재 미투데이 공식 미투 파트너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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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와인이라도 잔의 종류에 따라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와인을 마실 때 향을 음미하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와인 잔에 와인의 향이 담겨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와인의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잔 입구가 큰 와인 잔으로 와인을 마시면 자연스레 머리가 숙여지면서 와인이 혀에 닿는 부위가 넓어지며, 반대로 입구가 좁은 잔은 고개가 뒤로 젖혀져 혀에 닿는 부위가 좁아지고 와인이 혀의 앞부분에 먼저 닿기 때문에 같은 와인이라도 다른 맛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와인이 입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혀의 어떤 부분에 얼마나 넓게 접촉하는지에 따라 느끼는 맛이 달라진다. 혀끝은 단맛을, 혀의 양 옆은 산미를 감지하는데, 와인 잔 입구가 좁으면 와인이 혀끝에 먼저 닿기 때문에 단맛을 먼저 느끼게 된다. 반면 와인 잔 입구가 넓을수록 와인은 혀 끝보다는 혀의 양 옆으로 퍼지므로 산미를 주로 느끼게 된다.

 

 

와인 잔 입구가 나팔처럼 바깥쪽으로 벌어져있다면 와인이 향을 많이 잃게 되어 와인의 맛이 덜하며, 반대로 입구가 안쪽으로 둥글게 휜 와인 잔은 와인의 향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와인의 맛이 더욱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향기가 약하고 가벼운 와인을 큰 용량의 볼륨 있는 와인 잔에 따르면, 원래부터 와인에 향기가 그다지 없던 탓에 향기가 더욱 약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향기의 강약에 맞춰 와인 잔을 선택하면 좋다.

 

직접 입으로 불어서 형태를 만들고 수작업으로 와인 잔을 제작하는 모습.

 

 

와인 잔의 구조

 

 

와인 잔의 종류

▷ 보르도 레드 와인 잔
대개 레드 와인은 화이트 와인 잔보다 좀더 크며, 와인의 향기를 더욱 풍성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보르도 레드 와인 잔은 전형적인 튤립 모양으로, 프랑스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처럼 타닌이 강한 와인을 위해 고안되었는데, 타닌의 텁텁함을 줄이고 과일향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글라스의 경사각이 완만하다. 와인이 혀끝부터 안쪽으로 넓게 퍼질 수 있도록 입구 경사각이 작으며 볼은 넓다. 또한 와인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줌으로써 다양한 부케와 풍부한 아로마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 부르고뉴 레드 와인 잔
부르고뉴 레드 와인 잔은 보르도 와인 잔보다 약간 짧고 뚱뚱하다. 특히 보울 부분이 더 볼록하고 잔 입구로 갈수록 점점 좁아진다. 보울이 넓으면 공기와 접촉하는 와인의 면적이 넓어지므로 와인의 향을 더욱 풍부하게 맡을 수 있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정상급 와인이나 이탈리아의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등을 이 잔에 담았을 때 와인의 풍미가 최대한 발산된다. 특히 부르고뉴의 주요 포도 품종인 피노 누아는 카베르네 소비뇽에 비해 타닌이 적으나 신 맛이 강하므로 와인 잔의 볼이 커야 하고, 좀더 오랜 시간 향을 담기 위하여 글라스의 경사각이 크다. 값이 싼 와인은 향의 수준이 낮으므로 이런 잔에 따라 마시면 향이 부족하게 느껴져 더 싸구려 와인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 화이트 와인 잔
화이트 와인은 기본적으로 타닌 성분이 없기 때문에 볼의 크기가 작아도 된다. 화이트 와인 잔은 레드 와인 잔보다 작으며, 차게 마시는 화이트 와인의 특성 때문에 온도가 올라가지 않도록 용량을 작게 만든다. 또한 레드 와인 잔보다 덜 오목하며, 화이트 와인의 상큼한 맛을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와인이 혀 앞부분에 닿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 스파클링 와인 잔
스파클링 와인 잔은 길쭉한 튤립(또는 플루트, flute) 모양으로, 와인의 탄산가스가 오래 보존될 수 있고 거품이 올라오는 것을 잘 관찰할 수 있다. 좋은 스파클링 와인일수록 조그만 기포들이 길쭉한 와인 잔 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고급 샴페인의 경우 끊임없이 발생하는 작은 기포와 병 속에서 일어나는 2차 발효에서 생긴 독특한 향이 특징인데, 이러한 기포와 향을 잘 간직하기 위해 샴페인 글라스는 튤립 모양이나 계란형의 긴 잔이어야 하며, 입구는 좁고 잔의 높이가 높아 샴페인의 고운 기포를 감상하며 즐길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다.

 

왼쪽부터, 보르도 레드 와인 잔, 부르고뉴 레드 와인 잔, 화이트 와인 잔, 스파클링 와인 잔.

 

 

집이나 야외에서는 어떤 잔을 쓰면 좋을까

흔히 보는 나팔 모양의 작은 잔은 와인을 맛있게 마시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와인을 가득 차게 따르므로 향도 나지 않을뿐더러 맛있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부르고뉴의 둥근 풍선형 와인 잔을 조금 길게 늘인 듯한 모양이나, 보르도의 튤립형 와인 잔을 조금 땅딸막한 모양으로 만든 듯한 모양이면 좋은데, 딱 부르고뉴 타입과 보르도 타입을 합쳐서 반으로 나눈 듯한 이미지를 생각하면 된다. 와인 잔의 스템은 너무 가늘지 않아야 잘 부러지지 않고 실용적이다. 재질은 크리스털이든 강화유리든 상관없다. 최근에는 잘 깨지지 않는 강화 크리스털 소재도 자주 사용한다. 캠핑, 야외에서 여는 바비큐 파티, 피크닉 등 아웃도어 활동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 깨질 염려가 없고 가격이 저렴한 플라스틱 재질의 와인 잔도 많이 쓰이고 있다.

 

캠핑, 야외에서 여는 바비큐 파티, 피크닉 등 아웃도어 활동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 깨질 염려가 없고 가격이 저렴한 플라스틱 재질의 

와인 잔도 많이 쓰이고 있다.                                              

 

 

와인 잔의 올바른 사용

와인 잔을 어떻게 잡고 마실 것인지에 대해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볼 부분을 잡을 경우 손의 열기가 와인에 전해져 와인의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보통 스템을 잡는다. 와인을 제대로 마시기 위해서는 와인 잔의 청결 또한 중요한데, 와인 잔을 씻을 때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가급적 뜨거운 물로 씻는 것이 좋다. 잔에 세제 성분이 남아 있게 되면 와인의 맛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씻은 와인 잔은 깨끗한 리넨을 사용해 부드럽게 닦는데, 한 손으로 와인 잔의 볼 부분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와인 잔 안쪽을 닦은 후 거꾸로 세워 자연 건조시키는 것이 좋다.

 

 

참고문헌

와인 테이스팅의 이해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슈스터(Michael Schuster)는 전업 와인 교육가이자 와인 작가로서, 베스트셀러인 ‘Understanding Wine’(Michell Beazley, 1989)의 저자이며 ‘Oxford Companion of Wine’의 저작에도 참여했다. 또한 와인전문매체인 디캔터와 와인인터내셔널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와인생활백서 
1995년 세계 최우수 소믈리에 대회에서 일본인으로는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다사키 신야의 알기 쉬운 와인 입문서. 알아두면 편리한 와인 생활 상식을 200여 가지 수록하였다.

 

 

 

글/사진 와인오케이닷컴 
와인오케이닷컴(wineok.com)은 약 2만 6천여 개의 국내 최다 와인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와인 포탈 사이트로, 와인 관련 상식, 뉴스, 할인행사, 시음회 소식 등 다양한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폰 및 안드로이드 WineOK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와인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와인오케이닷컴은 현재 미투데이 공식 미투 파트너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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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장에서 1980년대까지만 해도 레드 와인을 압도했던 화이트 와인 소비는, 1990년대 중반 “레드 와인을 마시면 심장병 발병률이 낮다”는 프렌치 패러독스가 확산되자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대형마트의 화이트 와인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레드 와인 매출 신장률을 상회하는 등, 화이트 와인의 인기가 다시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건강에 좋은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닭고기나 해산물 등 흰 살 고기로 만든 요리가 인기를 얻고 있으며, 레드 와인보다는 이런 요리와 더 잘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을 소비하게 되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와 여성들의 와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이들이 선호하는 가볍고 신선한 화이트 와인의 인기도 더불어 높아져가고 있다. 또한 한국 음식을 비롯한 아시아 음식에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린다는 와인기업들의 마케팅 전략도 이러한 인기 상승에 한몫 하고 있다. 실제로 나물, 야채가 많이 들어가는 요리, 구운 생선 등의 해산물 요리같이 풍미가 강하지 않은 담백한 음식이 주를 이루는 한식에는, 산미가 있고 신선하며 청량한 화이트 와인을 함께 마시면 좋다.

 

풍미가 강하지 않은 담백한 음식이 주를 이루는 한식에는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린다.

 

 

샤르도네(Chardonnay)

샤르도네는 매우 뛰어난 적응력 덕분에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재배되며, 그만큼 생산량 또한 많아서 ‘ABC(Anything But Chardonnay, 샤르도네만 빼고 뭐든지)’라는 슬로건이 생길 정도이다. 샤르도네 와인은 바닐라, 버터, 사과, 열대 과일, 레몬, 파인애플 같은 매력적인 풍미를 지니며, 크림처럼 풍성하며 넘칠 듯한 질감을 가진다. 모든 샤르도네가 우아하게 숙성하는 것은 아니며 대다수는 신선할 때 마시는 것이 최상이다. 특히 더운 기후 지역 와인일수록 빨리 마시는 것이 낫다.

 

프랑스의 명품 와인 샤블리 같은 경우 상쾌하고 파삭하면서 가벼운 반면, 뫼르소와 몽라셰 같은 부르고뉴 지역이나 신세계 지역의 훌륭한 화이트 와인들은 풍성하고 화려하다. 특히 부르고뉴의 일등급 와인과 신세계의 정상급 와인은 10년 이상 숙성시킬 경우 견과류, 꿀향을 지닌 섬세한 복합미를 연출한다.

 

샤르도네.

 

 

리슬링(Riesling)

와인전문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기품 있고 독특한 청포도 품종으로 리슬링을 꼽는다. 리슬링 와인은 아주 드라이한 것에서 농축된 달콤한 와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이 있으며, 양조 과정에서 오크를 활용하지 않는다. 뛰어난 리슬링 와인은 막 솟아오르는 산도와 상당한 풍미를 지닌다. 리슬링의 정제된 구조감은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신선하고 잘 익은 복숭아, 살구, 멜론의 풍미로 보완되며, 때로는 산속 개울의 돌 위를 흐르는 물맛처럼 강한 미네랄의 특징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장 우아하고 정교한 리슬링은 서늘하거나 추운 기후 지역에서 생산되는데, 독일, 프랑스의 알자스 지방, 오스트리아 북부, 미국 뉴욕의 북부 등이 그러하다. 캘리포니아같이 약간 따뜻한 기후 지역에서 생산된 리슬링은 대개 더 부드럽고, 약간 더 풍성하며, 좀 더 산만한 풍미를 내곤 한다.

 

리슬링.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버터 같은 부드러운 느낌의 샤르도네와는 반대로, 소비뇽 블랑은 깔끔하고 유연하며 허브 향이 나고 날카로운 산도를 지닌다. 소비뇽은 프랑스어로 Sauvage(야생, wild)에서 유래하는데, 잘 길들여진 맛이 아니라 짚, 건초, 목초, 초원, 녹차, 부싯돌의 풍미가 놀라운 힘과 더불어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이 품종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다. 어떤 소비뇽 블랑은 고양이 오줌이라고 묘사하는 특징을 보이기도 하는데, 와인의 품질이 비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면 이런 표현은 보통 긍정적인 속성으로 간주된다.

 

가장 뛰어난 소비뇽 블랑은 프랑스의 루아르 밸리와 뉴질랜드에서 생산된다. 그 뒤를 잇는 것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오스트리아이며, 프랑스의 보르도에서는 거의 모든 화이트 와인을 소비뇽 블랑과 세미용을 섞어 만든다.

 

소비뇽블랑.

 

 

세미용(Semillon)

리슬링처럼 세미용 역시 완전히 드라이한 것에서부터 감미롭고 달콤한 와인까지 생산된다. 드라이한 세미용 와인은 가볍고 연약하며 오크 숙성을 거치지 않는 반면, 달콤한 세미용 와인은 묵직하고 감미로우며 오크 통에서 발효를 거친다.

 

프랑스 보르도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세미용을 종종 소비뇽 블랑과 섞어 와인을 만드는데, 산도가 강한 소비뇽 블랑과 둥그스름한 느낌의 세미용은 정반대의 특징을 지니면서 서로 완벽하게 어울리는 한 쌍이다. 보르도의 드라이 화이트 와인과 소테른 지역의 스위트 와인은 모두 세미용을 주축으로 해서 소비뇽 블랑을 소량 섞어 만든다. 보르도 외에 세미용으로 유명한 곳은 호주인데, 대다수는 순수 세미용 와인이지만 샤르도네나 소비뇽 블랑과 블렌딩하기도 한다.

 

세미용.

 

 

슈냉 블랑(Chenin Blanc)

슈냉 블랑은 매우 드라이한 것부터 미디엄 스위트, 귀부균의 영향을 받은 리큐어까지 굉장히 광범위한 스타일의 와인을 만드는데, 이러한 점에서 리슬링을 닮았다고도 볼 수 있다. 때로 슈냉 블랑은 고품질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는 데에도 쓰인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생기 넘치는 슈냉 블랑은 프랑스의 루아르 밸리에서 생산되는데, 완전히 드라이한 것에서 아주 달콤한 것까지 당도가 다양한 와인을 만든다. 아주 달콤한 슈냉 블랑은 경이로운 감동마저 일으킨다. 슈냉 블랑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표적인 청포도 품종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스틴Stee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슈냉 블랑은 대체로 단순하고 단조로우며 부담 없이 마시기 좋은 정도의 수준으로 만든다.

 

슈냉 블랑.

 

 

게부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

분홍빛 껍질을 가진 게부르츠트라미너는 짙은 노란색의 와인을 만들며, 장미 꽃잎, 통조림 리치, 사향, 터키 과자 등의 향을 풍긴다. 이렇게 다양한 과일의 풍미를 때로는 달콤함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게부르츠트라미너는 대부분 매우 드라이하다. ‘Gewürz’는 독일어로 향신료를 뜻하는데, 이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향기롭고 풍미가 자유분방하고 대담하며 활기차기 때문에 종종 ‘스파이시하다’라고 묘사된다. 게부르츠트라미너의 향기로운 아로마와 외향적인 스타일은 쉽게 인지되기 때문에 와인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호감을 주는 품종이다.

 

세계에서 가장 복합적이고 깜짝 놀랄 만큼 드라이한 게부르츠트라미너는 프랑스 알자스에서 생산된다. 알자스처럼 추운 기후의 독일 역시 맛 좋은 와인을 만들며, 캘리포니아와 뉴욕 주에서도 이 품종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게부르츠트라미너.

 

 

피노 그리(Pinot Gris)

피노 그리(또는 피노 그리지오, Pinot Grigio)는 피노 누아의 돌연변이종이며, 푸르스름한 은색에서 연한 자줏빛이 도는 분홍색 그리고 회색빛 도는 노란색 등의 빛깔을 띤다. 다시 말해 이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은 색깔이 은은하면서도 다양하다. 대체로 피노 그리 와인은 높지 않은 산도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생기를 가지고 있는데, 포도가 어디에서 재배되느냐에 따라 현저히 다른 맛이 난다.

 

가장 인상적인 스타일의 피노 그리 와인은 프랑스 알자스에서 생산되며, 웅장하고 화려하며 때로는 스파이시하다. 이탈리아의 피노 그리지오는 대개 단순하고 가벼우며 파삭파삭한 와인을 만든다. 미국 오리건에서 생산되는 고급 피노 그리는 복숭아와 향신료 케이크의 풍미가 있으며, 캘리포니아의 피노 그리는 파삭파삭하고 신선하며 때로는 후추 같은 쌉쌀한 맛이 느껴진다.

 

피노그리.

 

 

비오니에(Viognier)

비오니에는 아주 훌륭한 품종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가장 진귀한 프랑스 청포도 품종에 속한다(이 품종의 본고장인 프랑스 북부 론, 콩드리유에서 조차 귀한 포도 품종이다). 와인의 알코올 함량이 매우 높고 산도는 낮으며 실크 같은 재질을 가지고 있다. 또한 복숭아와 살구 같은 과일 향에서 비롯된 섬세함과, 인동덩굴의 매력적인 풍미, 사향냄새 나는 과일 맛, 원숙한 보디감을 보여준다.

 

비오니에는 1990년대에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프랑스의 랑그도크루시용 지방과 미국 캘리포니아와 호주에서 재배량이 증가하였다. 자연적으로 소출량이 적을 뿐만 아니라, 특유의 향기로움과 밀도를 얻기 위해서는 아주 잘 익어야 하는데, 이는 비오니에 와인이 결코 저렴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비오니에.

 

 

참고문헌

와인 테이스팅의 이해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슈스터(Michael Schuster)는 전업 와인 교육가이자 와인 작가로서, 베스트셀러인 ‘Understanding Wine’(Michell Beazley, 1989)의 저자이며 ‘Oxford Companion of Wine’의 저작에도 참여했다. 또한 와인전문매체인 디캔터와 와인인터내셔널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더 와인 바이블 (The Wine Bible) 
30여 년 넘게 와인작가, 컨설턴트,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캐런 맥닐의 저서로, 미국 내 베스트셀러이자 수상작이다. 출간된 후 45만부 이상 팔렸다. 집필하는데 무려 십 년이 걸린 이 책은 와인을 주제로 쓴 가장 포괄적이고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글/사진 와인오케이닷컴 
와인오케이닷컴(wineok.com)은 약 2만 6천여 개의 국내 최다 와인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와인 포탈 사이트로, 와인 관련 상식, 뉴스, 할인행사, 시음회 소식 등 다양한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폰 및 안드로이드 WineOK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와인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와인오케이닷컴은 현재 미투데이 공식 미투 파트너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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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와인에 익숙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 두 가지는, 같은 포도 품종으로 만든 다른 와인을 비교하는 것과 서로 다른 포도 품종의 와인을 비교하는 것이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맛이 비슷한 것 같아도 약간씩 차이가 느껴지는데, 이는 원산지, 기후, 포도 재배 방식의 차이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양조라는 또 다른 측면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와인 맛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기본적으로 포도 품종이다. 훌륭한 와인은 언제나 그 와인의 원료가 되는 품종 고유의 풍미를 드러낸다. 와인의 매력이나 좋은 맛을 내는 성분의 일부는 품종 고유의 순수한 풍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적포도 품종들의 특징을 설명함으로써 각 품종으로 만들어진 와인이 어떤 특징을 갖는지 알아보도록 한다.

 

훌륭한 와인은 언제나 그 와인의 원료가 되는 품종 고유의 풍미를 드러낸다.

 

 

레드 와인과 건강의 관계

육류 등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데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이 심장질환에 걸리는 확률이 낮은 현상을 두고 ‘프렌치 패러독스’라고 한다. 최근의 연구결과들을 보면 프랑스의 심장질환 발병률이 낮은 이유를 레드 와인에서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바로 레드 와인에 들어 있는 폴리페놀(정확히 말하자면, 폴리페놀의 일종인 프로시아니딘)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프로시아니딘은 혈관벽과 내피세포를 튼튼하게  해주고 혈전을 막아줌으로써 고혈압 및 심장질환 요인을 제거해준다. 즉 프로시아니딘이 많이 들어있을수록 건강에 좋다는 얘기다.

 

프로시아니딘은 포도껍질에 들어있으며 떫은 맛을 내는데, 적포도의 경우 그 함유량이 청포도의 20배에 가깝다. 프로시아니딘 함량은 포도의 품종과 재배지역, 와인 양조 방식에 따라 현저히 다른데, 특히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에 월등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마디랑 와인이 특히 더 많은 프로시아니딘을 함유하고 있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카베르네 소비뇽은 색상, 타닌, 산도가 풍부하고 전세계 대부분의 와인산지에서 재배되는 품종이다. 특히 향과 풍미가 무척 매력적인데, 블랙베리, 블랙커런트, 카시스, 민트, 유칼립투스, 삼나무, 가죽, 자두 등의 향과 풍미가 와인에 스며든다. 또한 이런 요소들은 오크통 숙성과 병 숙성을 통해 더욱 복합적으로 발전하는데, 이는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이 장기 숙성에 적합한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카베르네 소비뇽은 프랑스 보르도의 메독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보르도의 고급 와인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근래에는 신세계 지역에서도 아주 광범위하게 재배하고 있으며 특히 캘리포니아와 호주에서 성공적이다.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 누아(Pinot Noir)

피노 누아의 이름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솔방울 모양과 비슷하게 생긴 것에서 비롯되었다. 피노 누아는 껍질이 얇고 색상이 부드러우며 타닌이 낮고 산도가 높다. 피노 누아로 만든 와인은 색이 연하고 알코올은 중-상 정도이며 비교적 섬세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또한 가볍고 과일 맛이 많으며 실크 같은 질감과 더불어 밝은 빛깔에 풍부한 향기를 발산한다. 만약 과도하게 익었거나 신선함이 없는 피노 누아로 만든다면 와인은 부드럽긴 하지만 잼 같이 느껴질 것이다. 피노 누아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잘 숙성되며 블랙체리, 가죽, 향신료, 바닐라, 버섯 등 상당히 다양한 풍미를 보여준다.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역에서는 보졸레를 제외하고 모든 레드 와인을 피노 누아로 만드는데, 이 지역은 이 품종에 관한 한 가장 전설적인 곳이다. 프랑스 샹파뉴, 뉴질랜드, 미국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에서도 피노 누아를 주로 재배한다.

 

피노 누아.

 

시라(Syrah) / 쉬라즈(Shiraz)

영국 학자이자 와인 작가인 조지 세인트베리는 시라 품종으로 만들어진 프랑스 론 와인 에르미타쥬(Hermitage)에 대해 ‘내가 마셔본 와인 중 가장 남성적인 와인’이라고 표현하였다. 프랑스 론 지역의 시라는 포도알이 작으며 원숙하고 부드러운 와인을 만드는데, 견고한 타닌과 산도, 조화로운 알코올, 우수한 숙성 잠재력을 보인다. 또한 가죽, 젖은 흙, 후추, 향신료의 향과 풍미가 화려하고 강렬한 것이 특징이다.


17세기에 프랑스 위그노 교도들이 프랑스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으로 시라를 가지고 왔는데, 여기서 쉬라즈라고 새로 이름을 붙였고, 이것은 다시 호주로 전해졌으며 여기서도 쉬라즈라고 불리게 되었다. 호주와 남아공의 쉬라즈 와인은 일반적으로 강렬하고 잼같이 느껴지는 진하고 풍성한 특징을 보인다.

 

시라/쉬라즈.

 

메를로(Merlot)

‘작은 검은 새’라는 뜻의 메를로는 카베르네 소비뇽에 비해 복합적인 면은 덜하지만 풍미가 매우 비슷해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쉽게 혼동을 일으킨다. 메를로의 향과 풍미는 블랙베리, 구운 체리, 자두, 초콜릿, 모카, 때로는 가죽 향도 나타낸다. 메를로로 만든 와인은 좋은 빛깔을 띠며 부드럽고 순하며 잘 익은 과일 맛이 풍부하고 입 안에서는 벨벳 같은 질감이 느껴지며, 일찍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와인을 새 오크통에 숙성시킬 경우 기존의 진한 과일 향에 버터나 크림향이 가미된다.

 

카베르네 소비뇽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메를로 생산지는 프랑스의 보르도 지역으로(보르도에서 재배되는 적포도의 절반 이상을 차지), 생산량은 카베르네 소비뇽의 두 배나 된다. 이 외에 칠레, 미국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주 등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메를로.

 

네비올로(Nebbiolo)

네비올로는 아주 늦게 익는 품종으로, 수확할 때가 되는 늦은 10월 정도가 되면 피에몬테의 구릉 지대를 뒤덮는 가을 안개(nebbia)가 발생하는데, 품종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형적인 네비올로 와인은 매우 높은 알코올과 높은 산도, 풍부하고 섬세한 결이 있는 그러나 매우 드라이한 타닌을 가지고 있으며, 색상은 진하지 않아서 몇 년만 지나면 곧 벽돌 색을 띠기 시작한다. 또한 풍부한 과일 풍미가 특징이며, 훌륭한 부케를 표현해 내기까지는 병 속에서 오랜 시간 숙성시켜야 한다.

 

아르헨티나와 캘리포니아에서도 소량 재배하고 있지만, 네비올로 재배는 주로 이탈리아의 북서부에 위치한 피에몬테(Piemonte) 지방에 한정되어 있다. 특히 피에몬테의 알바(alba) 지역 북쪽과 남쪽에 각각 위치한 바르바레스코(Barbaresco)와 바롤로(Barolo) 마을에서 이 포도를 사용한다.

 

네비올로.

 

기타 알아두면 유용한 적포도 품종들

왼쪽부터 산지오베제, 말벡, 템프라니요, 진판델.

 

 

산지오베제(Sangiovese): 이탈리아에서 가장 대중적인 포도 품종이며, 토스카나(그 중에서도 키안티), 움브리아, 마르케 등 중부 이탈리아가 본거지이다. 일반적으로 온화한 색감을 가지며, 미디엄 바디로서 높은 산도와 타닌을 지닌다. 산지오베제로 만든 키안티와 브루넬로 같은 이탈리아 와인이 유명한데, 향기가 부드러우며 장미꽃잎, 품질 좋은 차, 희미한 오일의 향이 배어 있다.

 

말벡(Malbec): 이 품종은 프랑스의 카오르와 아르헨티나에서 빛을 발한다. 카오르 와인은 한때 ‘검은 와인’이라 불릴 만큼 짙고 강하며 힘차고 씹히는 듯한 느낌의 와인이었으나, 최근 그러한 거친 특징들이 다듬어져 세련된 스타일을 보여준다. 아르헨티나의 말벡은 좀더 색다르다. 안데스 산맥의 800-1000 미터 고지대에서 생산되는 말벡은 걸쭉한 와인으로, 건포도처럼 잘 익은 잼의 향기, 타르와 가죽, 부드러운 블랙베리와 씁쓸한 초콜릿 열매의 느낌을 지닌다.

 

템프라니요(Tempranillo): 템프라니요는 스페인 중북부를 비롯해 포르투갈에서도 와인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품종이다. 전형적으로 부드러운 산도와 타닌에 짙은 색상을 지닌다. 고급 피노 누아에서 느끼는 맛을 내기도 하며, 신선하고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향기롭고 비교적 섬세하다. 가장 유명한 와인은 리오하(Rioja)에서 생산되며 이 지역에서는 가르나차(Garnacha)라는 품종과 블렌딩되는데, 전통적으로 부드럽게 잘 익은 체리 풍미와 미국산 오크의 바닐라 풍미가 강하게 결합된 향을 갖는다.


진판델(Zinfandel):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재배되는 진판델은 호주, 칠레, 남아공에서도 소량 재배된다. 발그레한 엷은 로제에서 진하고 감미로운 포트 같은 와인까지 모든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진판델 와인의 표준형은 개성이 강하고 드라이한 레드 와인 스타일이다. 스타일은 다양하지만 진판델에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은 생기 있는 산도, 잘 익었을 경우 나타나는 산딸기와 블랙베리의 풍미 그리고 장미 향 등이다.

 

 

참고문헌

 

와인 테이스팅의 이해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슈스터(Michael Schuster)는 전업 와인 교육가이자 와인 작가로서, 베스트셀러인 ‘Understanding Wine’(Michell Beazley, 1989)의 저자이며 ‘Oxford Companion of Wine’의 저작에도 참여했다. 또한 와인전문매체인 디캔터와 와인인터내셔널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더 와인 바이블 (The Wine Bible)
30여 년 넘게 와인작가, 컨설턴트,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캐런 맥닐의 저서로, 미국 내 베스트셀러이자 수상작이다. 출간된 후 45만부 이상 팔렸다. 집필하는데 무려 십 년이 걸린 이 책은 와인을 주제로 쓴 가장 포괄적이고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글/사진 와인오케이닷컴 
와인오케이닷컴(wineok.com)은 약 2만 6천여 개의 국내 최다 와인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와인 포탈 사이트로, 와인 관련 상식, 뉴스, 할인행사, 시음회 소식 등 다양한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폰 및 안드로이드 WineOK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와인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와인오케이닷컴은 현재 미투데이 공식 미투 파트너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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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어느 정도 마셔본 사람들에게도 와인을 구매하는 일은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다. 산지와 빈티지, 와인을 같이 마실(혹은 선물할) 상대의 기호, 좋아하는 와인의 스타일, 적당한 가격대와 와인의 용도 등을 사전에 꼼꼼히 체크해야 하기 때문이다.

 

와인은 ‘생물(生物)’이라고 표현할 만큼 온도에 민감하다. 와인은 보관과 운송, 서빙 환경 등 약간의 온도 변화에도 아주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똑같은 와인을 마셔도 한달 전에 마신 것과 오늘 마시는 와인이 다르고, 외국에서 마셔 본 와인이라도 지금 이 순간에는 그 때와 또 다른 맛과 향을 낸다. 이처럼 와인은 숙성하는 과정과 시간, 보관상태와 와인을 마시는 내 몸의 컨디션이나 기분에 따라서 시시각각 다르게 느껴진다. 따라서 와인 구매 시 고려해야 될 민감한 환경과 조건들을 체크하면서 와인을 구매해야 상한 와인, 병든 와인, 맛없는 와인을 고르는 위험을 피해갈 수 있다. 또, 그래야 제 값을 하는 와인을 고를 수 있다.

 

와인은 보관과 운송, 서빙 환경 등 약간의 온도 변화에도 아주 많은 영향을 받는다.

 

 

 

와인의 보관상태, 온도부터 따져라

많은 요소들이 있겠지만 온도야말로 제대로 된 보관과 관리의 핵심이며,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온도에 맞춰 와인을 마셔야 최상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와인은 보관상태의 온도가 매우 중요한데, 12-14도 내외의 온도와 60-70%의 습도가 최적의 보관 조건이다. 또한 심한 냄새와 강한 빛에 노출되면 안 되고, 진동이 심한 곳도 피해야 한다. 따라서 와인을 사러 와인가게를 방문했는데 와인이 강한 자외선이나 태양광에 노출되어 있다든지, 온도 변화가 심할 것으로 판단되는 환경에서 보관되고 있다면 일단 발길을 돌려야 한다. 오랫동안 상품 회전이 안되어 먼지를 뒤집어 쓴 동네 와인 가게 같은 곳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청결하지 않고, 보관 온도나 보관 상태가 불량하면 판매자로서의 자격을 의심해 봐야 한다.

 

 

상한 와인 골라내기

와인의 라벨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와인의 온도가 높아졌다가 다시 내려가는 현상을 ‘와인이 끓어 넘쳤다’고 표현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운송 시 냉장 보관하지 않는 저가 와인에서 주로 발생하며, 컨테이너 속 혹은 갑판 위에서 적도를 넘나들며 30도 이상의 고온에 노출되어 병 안의 액체 온도가 상승할 때 일어난다. 이렇게 끊어 넘친 와인 때문에 와인병 라벨에 얼룩이 남거나 병목을 둘러싼 포일이 병과 들러붙기도 한다. 와인병을 잡고 포일을 비틀었을 때, 상태가 좋고 청결하게 보관된 와인이라면 포일이 병과 따로 돌아간다. 또한 와인이 끓어 넘쳤거나 쏟아져서 생긴 빈 공간에는 공기가 가득 차게 되는데, 이는 와인의 산화를 유발한다.

 

 

와인을 올바르게 구매하기 위해 병목을 둘러싼 포일도 잘 살펴봐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끓어 넘친 와인들이 그대로 판매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이런 와인을 만약 선물이라도 했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북향이나 직사광선이 없는 서늘한 곳에 보관 되어있고, 10만원이 넘는 고급와인 정도라면 별도의 전용 셀러 속에 보관된 와인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와인을 판매하는 사람의 신뢰감이다. 이들은 소믈리에 자격증보다도, 와인 지식과 정보를 올바르게 조언해줄 수 있는 자질을 갖춰야 한다. 만약 이익에만 집착하는 사람이라면 악성 재고와 마진 높은 덤핑 물건들만 추천할지도 모른다.

 


빈티지 차트 활용하기

5-6만 원 대 이하의 중저가 와인이고, 칠레, 미국, 호주, 아르헨티나 등에서 생산된 와인이라면 빈티지 차트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 이들 와인들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기후 변화가 심하지도 않고 토양이 비교적 균질적인 곳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에 빈티지 마다 품질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프랑스 보르도나 부르고뉴,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스페인의 리베라 델 두에로 등 기후변화가 심한 유럽의 와인들은 빈티지에 따라 품질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빈티지 차트를 잘 활용하면 좋지 않은 와인을 선택할 위험을 줄이고 맛과 품질이 좋은 와인을 고를 수 있다.

 

 

빈티지 차트.

 

 

 

특정 상황에 어울리는 와인 고르기

와인을 구매할 때에는, 와인을 함께 마시거나 선물할 사람, 와인의 구매가격, 음식과의 매칭 여부, 와인을 마시는 장소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생일, 결혼 기념일, 졸업이나 입학, 합격, 위로 등의 시기적 특성에 와인의 성격을 맞추면 그 와인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결혼이나 프러포즈 등 사랑과 관계 있는 상황이라면, 와인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난 러브스토리를 갖고 있는 와인들 - 예를 들면, ‘사랑하는 연인들’이라는 이름을 간직한 프랑스 부르고뉴의 로버트 그로피에 레 아므로즈(Robert Groffier Les Amoureuses)-이 어울릴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슬픔에 가득 찬 사람에게는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의미를 지닌 프랑스 보르도 와인인 샤스 스플린(Chasse-Spleen)이 어울릴 수도 있다. 누군가의 생일에 그 사람이 태어난 빈티지의 와인을 함께 마신다면 이 또한 엄청난 이벤트가 될 것이며, 자녀가 탄생한 해의 빈티지 와인이나 결혼한 해의 빈티지 와인 등도 고려해 볼만 하다.

 

와인을 같이 마시는 공간적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인의 집들이에 들고 갈 와인이라면, 상대방의 기호와 연령, 사회적 위치 등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친한 이웃들과 편안한 차림으로 스포츠 중계를 보며 와인을 한잔 나눌 때는 시원한 스파클링 와인, 마트에서 저렴하게 구매한 와인을 가정에서 간단한 안주와 함께 마시는 거라면 2-3만 원 대 칠레와인도 좋다. 10월~11월 같은 단풍철에 야외에서 바비큐 파티라도 연다면, 5만 원 이상의 비싼 와인보다는 저렴하고 타닌이나 알코올이 어느 정도 느껴지는 칠레나 호주와인이 적당하다.

 

 

가격대별 와인구매 요령

사실 와인구매 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격이다. 대형 할인 마트에 진열된 1만 원 대 전후의 와인은 흔히 ‘Daily wine’ 또는 ‘Easy drinking wine’이라 부른다. 이 와인들은 저녁 식사 때 반주로 곁들여 마실 법한 와인들로, 품질이 아주 높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구매할 필요는 없다. 3-8만 원 대 사이의 와인이라면 가격대비 품질이 좋은 밸류 와인(Value wine)을 고르는 것이 포인트다. 밸류 와인을 고르는 안목을 키우려면, 마셔본 와인에 대해 기록하고 다양한 와인을 마셔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주 가는 와인 전문점의 직원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해 놓는 것도 밸류 와인을 추천 받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7-8만 원이 넘어가는 고가의 와인을 구매하는 경우에는 신경이 많이 쓰일 수 밖에 없다. 병목의 포일을 비틀어 병과 반대방향으로 잘 돌아가는지 보고, 와인과 코르크 사이에 산소공간이 충분히 좁은지도 살펴보자. 또한 와인의 맛, 스타일, 품종, 빈티지 등 많은 복합적 요인들을 하나씩 점검하면서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한다.

 

 

자주 가는 와인 전문점의 직원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해 놓는 것도 밸류 와인을 추천 받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글/사진 와인오케이닷컴 
와인오케이닷컴(wineok.com)은 약 2만 6천여 개의 국내 최다 와인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와인 포탈 사이트로, 와인 관련
상식, 뉴스, 할인행사, 시음회 소식 등 다양한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폰 및 안드로이드 WineOK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와인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와인오케이닷컴은 현재 미투데이 공식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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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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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종류를 나누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색상이다. 와인은 색상에 따라 화이트, 레드, 로제 와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때 와인의 색에 영향을 주는 것은 포도껍질이 함유하고 있는 색소인 ‘안토시아닌’이다. 즉 포도즙을 포도껍질과 오래 둘수록 안토시아닌이 더 많이 추출되어 와인이 보랏빛을 띠게 된다.

 

안토시아인 함량에 따라 와인은 다양한 색을 가지게 된다.

 

 

와인의 종류를 나눈 다음에는 와인의 스타일을 살펴볼 수 있는데, 와인의 스타일은 세부적인 맛(알코올, 당도, 탄산가스, 기능 등)에 따라 분류한다. 이 글에서는 색상에 따른 와인의 세 가지 종류를 살펴본 후, 당도를 지닌 와인의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주는 스위트 와인과, 탄산가스를 함유한 와인의 스타일을 대표하는 샴페인에 대해 추가로 알아보도록 한다.

 

 

레드 와인의 비밀은 포도의 껍질

포도껍질은 안토시아닌 색소와 함께 떫은 맛을 지닌 ‘타닌’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레드 와인의 경우 포도즙이 포도껍질과 함께 발효되기 때문에 많은 양의 안토시아닌과 타닌을 보유하게 되며 이것이 와인에 붉은 자줏빛 색깔과 떫은 맛을 부여한다. 특히 타닌은 와인의 구조나 골격을 형성하며 천연방부제 구실을 하기 때문에, 타닌이 들어 있는 레드 와인은 화이트 와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적포도 품종이 똑 같은 양의 타닌을 함유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카베르네 소비뇽은 타닌을 상당량 함유하고 있지만, 피노 누아는 보통 정도로만 들어 있다.

 

카베르네소비뇽(좌), 피노누아(우).

포도를 밟아 으깨는 모습.

 

 

레드 와인은 보통 두 가지 스타일로 나뉜다. 하나는 과일 맛이 많은 레드 와인으로, 부담 없이 마시기에 좋지만 이것은 통이나 발효조에 몇 개월 동안 저장했다가 병입하는 와인은 아니다. 다른 하나는 잠재적인 복합성과 구조에 따라 몇 개월에서 몇 년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는 레드 와인으로, 오크통 내에서 복잡한 화학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며 이 과정에서 와인의 향, 풍미, 질감이 서서히 미묘하게 변한다. 고급 레드 와인은 대체로 이러한 숙성 과정을 거친다.

 

 

화이트 와인의 생명은 신선함!

레드 와인을 만들 때는 발효과정에 색소가 잔뜩 포함된 껍질을 그대로 즙 속에 남겨두었다가 발효가 끝난 후 제거하지만, 화이트 와인은 발효를 시작하기 전에 즙과 껍질을 분리한다. 샴페인도 마찬가지로, 샴페인은 세 가지 주요 품종으로 만드는데 이 중 두 가지가 적포도 품종이며 착색이 일어나기 전에 붉은 껍질을 포도즙에서 빠르게 분리해낸다.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데 쓰이는 다양한 색의 포도품종들.

 

 

화이트 와인은 과일의 신선함과 섬세함을 보존하는데 중점을 두는데, 이는 긴 시간 저온에서 가장 잘 유지된다. 이러한 점에서 온도조절형 스테인리스 발효조만큼 화이트 와인에 깊이 영향을 준 것은 없다. 이 발효조를 사용하면 서서히 낮은 온도에서 발효가 일어나며 과일 향과 섬세함이 느껴지는 화이트 와인을 만들 수 있다.

 

20세기 후반 스테인리스 발효조가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 화이트 와인 대다수가 약간 산화된 맛이 나고 무미건조했다. 그리고 최고의 화이트 와인은 대체로 독일과 프랑스 샹파뉴 또는 부르고뉴 북부 지역에서 생산되었는데, 이는 서늘한 기후 덕분에 와인의 신선함과 섬세함을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레드 와인과 달리 화이트 와인은 통상적으로 유산발효(사과산이 젖산으로 변하는 과정)를 거치지 않는데 그 이유는 화이트 와인에서는 신선한 산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비뇽 블랑, 리슬링, 피노 그리지오 같은 포도 품종으로 화이트 와인을 만들 때는 대개 유산발효를 거치지 않는다.

 

 

장밋빛 로제 와인의 비밀

과일 맛이 많고 신선한 로제 와인은 사람을 기분 좋고 유쾌하게 만들며 피크닉이나 가든 파티에 즐거움을 더한다. 로제 와인은 차갑게 해서 마시고, 만일 식사와 함께 마실 예정이라면 와인을 식사하는 내내 차가운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제 와인은 가벼운 점심 식사 때 식전주로 마셔도 좋다.

 

과일 맛이 많고 신선한 로제 와인은 사람을 기분 좋고 유쾌하게 만든다.

 

 

로제 와인을 만들 때는 단순히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섞는 것이 아니라, 포도를 껍질과 함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둠으로써 약간의 색깔이 배어 나오게 한다. 좋은 로제 와인은 밝은 빛깔을 띠고, 색의 농도는 연한 톤에서 중간 톤의 장미꽃잎 색깔을 띤다. 로제 와인은 숙성 초기에 마시며 보통 어릴수록 맛이 더 좋다. 또한 2-3년 이상 저장하는 와인이 아니기 때문에, 오래된 것은 구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스위트 와인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디저트처럼 달콤한 와인은 당분이 아주 높은 포도로 만들어지는데, 포도의 당분을 높이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정규 수확일이 지난 뒤 포도의 당분 함량이 아주 높은 시기에 수확한다.
· 포도를 말려 당분을 농축시킨 뒤 수확한다.
· 포도를 얼려 당분을 달콤한 즙과 분리시킨다.
· 포도의 탈수를 유발하는 귀부균을 번식시켜 당분을 농축시킨다.

 

이 방법 모두 위험을 수반하는데, 동물들이 달콤한 포도를 따먹거나 해충이 포도를 공격하기도 하고, 폭우나 해일을 동반한 날씨가 포도를 손상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방법으로 포도를 수확하는데 까지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스위트 와인은 무척 귀하고 값이 비싸다. 이렇게 수확한 포도의 포도즙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당분 함량이 높다. 그리고 효모가 당분을 모두 알코올로 바꾸기 전에 양조자가 발효를 중지시키거나, 발효 중 생성된 알코올이 효모의 작용을 멈춤으로써 와인에 천연 당분이 남아 달콤한 와인이 만들어지게 된다.

 

얼린 포도를 수확 중인 농부들(좌), 얼린 포도의 내부(우).

귀부균에 감염되어 수분이 줄어든 포도.

 

 

이 때 ‘가당(발효 전이나 중간에 당분을 첨가하는 것)’ 과정을 디저트 와인을 만드는 과정과 혼동하면 안 된다. 가당은 알코올 함량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므로 가당한 와인에서는 당도를 느낄 수 없다.

 

 

승리의 순간에는 샴페인을!

“승리의 순간에 샴페인은 당연하다. 그건 패배의 순간도 마찬가지다.” 윈스턴 처칠이 샴페인을 두고 즐겨 했던 말이다. 

 

샴페인은 셰리나 포트와 함께 세계적으로 만들기 복잡한 와인에 속한다. 여러 과정과 고된 노력이 필요한데다가 양조 자체에 빈틈없는 수완을 발휘해야 한다. 샴페인은 수십 가지의 베이스 와인을 혼합해서 양조하며, 병 안에서 일어나는 2차 발효가 탄산가스를 생성하여 열었을 때 거품을 일으킨다. 샴페인 한 병을 열었을 때 얼마나 많은 기포가 생성될까? 답은 약 5,600만 개 정도인데, 기포의 크기가 작을수록 와인의 품질이 우수하다.

 

현재 생산되는 대부분의 샴페인은 ‘브뤼(Brut)’라고 하는 드라이한 형태를 띠는데, 식전주로 혹은 식사와 함께 마시기에 가장 좋다. 식사 후 마시기에는 브뤼보다 약간 더 달콤한 ‘엑스트라 드라이’ 샴페인이 훨씬 잘 어울린다. 엑스트라 드라이 샴페인은 그렇게 달진 않지만 브뤼보다는 좀 더 부드럽고 크림 같은 질감이 있다. ‘드라이’와 ‘드미 섹(Demi-Sec)’샴페인은 엑스트라 드라이보다 약간 더 달콤한데, 식사 후 마시거나 과일 디저트와 아주 잘 어울린다.


승리의 순간에 잘 어울리는 샴페인.

 

기포가 있다고 해서 모두 샴페인으로 불리는 것은 아니며, 프랑스 부르고뉴의 샹파뉴라는 지역에서 생산된 것만 샴페인이라 부른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에서는 스푸만테(spumante), 스페인에서는 카바(cava), 독일에서는 젝트(sekt)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참고문헌: 더 와인바이블 (The Wine Bible)
30여 년 넘게 와인작가, 컨설턴트,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캐런 맥닐의 저서로, 미국 내 베스트셀러이자 수상작이다. 출간된 후 45만부 이상 팔렸다. 집필하는데 무려 십 년이 걸린 이 책은 와인을 주제로 쓴 가장 포괄적이고 권위 있는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글/사진 와인오케이닷컴 
와인오케이닷컴(wineok.com)은 약 2만 6천여 개의 국내 최다 와인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와인 포탈 사이트로, 와인 관련 상식, 뉴스, 할인행사, 시음회 소식 등 다양한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폰 및 안드로이드 WineOK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와인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와인오케이닷컴은 현재 미투데이 공식 미투 파트너로 활동 중이다.
 
발행일 201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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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을 찾아보면, 라벨은 “종이 등에 물건에 대한 정보를 적어 붙여 놓은 표”라고 설명되어 있다. 프랑스어로 에티켓(Etiquette), 이탈리아어 에띠께따(Etichetta), 독일어 에티켓(Etikett) 등도 모두 영어의 라벨(Label)과 동일한 의미로 쓰인다. 기본적으로 라벨에는 누가, 언제 수확한 포도로, 어디서 와인을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며, 추가적으로 알코올 함량, 병입 관련 정보, 포도밭 이름, 와인양조에 사용한 포도 품종 등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기도 한다. 때로는 품질 등급이나 수상경력도 라벨에 표기한다.

 

라벨은 생산국가의 정부기관 혹은 와인을 공급하는 국가의 기관에 의해 승인되어야만 한다. 유럽 연합에서는 어떤 정보를 정확하게 표기해야 하는지 혹은 어떤 것들이 담길 수 없는지에 대한 자세한 규정이 있다. 병의 크기, 알코올 농도는 기본이고 활자의 최대 사이즈까지 규정하기도 한다. 뒷면의 라벨은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데 포도품종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와인 양조 방식, 적정한 음용 온도,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 추천 등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요즘은 어딜 가든 좋은 와인을 구입하기가 수월하다. 그리고 언제든 서적, 잡지, 웹사이트 등에서 와인에 대한 정보를 풍부하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와인가게의 진열대에서 와인을 고를 때, 라벨마다 타입과 정보의 양이 너무 다양해서 와인 라벨을 읽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어떤 때는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오히려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따라서 와인 라벨을 보고 필요한 정보만 골라내는 능력은 소비자들이 와인을 선택하는데 있어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빈티지’는 와인의 생년월일?

와인라벨에 있는 연도는 수확연도 즉 와인의 원료인 포도를 수확한 해를 의미하는데 ‘빈티지(프랑스어로는 밀레짐)’라고 한다. 따라서 빈티지는 와인을 병에 담은 해도, 와인이 출하된 해도 아니다.

 

‘빈티지 차트’는 각 연도의 기후 상황이 좋았는지 아닌지를 표현하거나 점수를 매겨 평가해 놓은 표로써, 소믈리에나 와인 수입상 등이 와인을 구입하거나 평가할 때 이를 참고하기도 한다. ‘좋은 해, 나쁜 해’라는 표현은 간혹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나쁜 해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은 맛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며 단지 그 해 날씨가 좋지 않았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런 해에는 좋은 해와 비교했을 때 좀 더 가벼운 스타일로 만들어지며,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숙성도 빨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또한 이렇게 날씨가 좋지 않은 해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이야말로 와인 명가라 할 수 있다.

 

 

 

라벨에 적힌 샤또(Chateau)의 의미

프랑스에서 샤또(Chateau)는 원래 봉건시대의 성곽이나 요새를 의미하지만, 와인 라벨에서는 포도원이나 양조장을 가리킨다. ‘샤또 OO’라는 표현에 고급 와인 이미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단순한 브랜드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이런 명칭을 사용하는 곳은 대체로 프랑스의 보르도 지방인데, 보르도는 지역이 매우 넓기 때문에 밭에 따라 세분화, 차별화하려고 생산자들이 각각 자신의 밭에 이름을 붙이고 ‘샤또’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프랑스 부르고뉴나 론, 알자스 같은 지역의 와인에서는 샤또 대신 도멘(Domaine)을, 이탈리아 와인은 까스텔로(Castello)나 테누타(Tenuta)를, 스페인 와인은 보데가스(Bodegas)나 까스띠요(Castillo)를, 독일 와인은 바인굿(Weingut)을, 미국이나 칠레를 비롯한 신세계 와인생산국가에서는 와이너리(Winery), 빈야드(Vineyard), 셀러(Cellar) 등을 이름에 붙이기도 한다.

 

 

 

라벨을 보면 와인의 등급을 알 수 있다

위 라벨에서 보듯이 라벨에 APPELLATION PAUILLAC CONTROLEE 라고 표기되어 있다면, 이는 와인이 포이약 지역의 AOC 등급 와인임을 나타낸다. 프랑스의 경우 이렇게 AOC 등급을 명시함으로써 와인의 품질을 보증하는데,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은 자국 와인의 품질을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해 국가나 정부기관 차원에서 규정을 만들어 와인의 품질을 통제 및 관리하고 있다. 프랑스는 1935년 최초로 품질관리 제도를 설립한 모범 사례로 기록되며, 다른 나라들 역시 뒤를 이어 자국의 전통이나 특성에 맞추어 변형시킨 등급 체계를 설립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상위

AOC

DOCG

DOCa

Qmp

 

VDQS

DOC

DO

QbA

 

Vin de Pays

IGT

Vino de la Terra

Landwein

하위

Vin de Table

Vin da Tavola

Vino de Mesa

Tafelwein

 

 

 

라벨에서 피카소를 만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라벨의 첫 번째이자 기본적인 의무는 “병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가?”라는 간단한 질문에 대답해주는 것이다. 두 번째로, 라벨은 마케팅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는데, 이는 라벨이 와인의 스타일을 반영하는 이미지를 간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문의 오랜 문장이 새겨져 있는 라벨의 경우 ‘이 와인은 대단히 전통 있는 와인’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지막으로, 라벨 자체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새롭게 창조하는 경우가 있다. 창조성이 돋보이는 라벨의 대표적인 예로 ‘샤또 무똥 로칠드’를 들 수 있다. 1923년 샤또 무똥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의 바론 필립 드 로칠드는, 최초로 당대의 유명한 예술가들이 디자인한 라벨 시리즈를 선보이겠다는 기발한 발상을 내놓았다. 그리고 1924년에 쟝 카르루가 첫 번째 아트 작업을 맡았고, 1945년 필립 로칠드 남작이 아트 시리즈를 부활시켜 그의 딸인 필리핀 여사가 지금까지 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무똥 로칠드의 와인을 마실 때면 피카소, 샤갈, 칸딘스키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 예술가들에게는 그림의 대가로 현금 대신 와인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아래 이미지는 1973년 샤또 무똥 로칠드의 라벨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작품이다. 

 

 

 

이런 와인 라벨은 피하자

간혹 와인가게에서 라벨이 더러운 와인을 싸게 파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라벨이 왜 더러워졌는지가 중요하다. 특히 와인이 새서 더러워졌다면 그 와인은 구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병 입구 부분의 코르크가 부풀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병목을 감싼 포일이 더러운지 그렇지 않은지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물론 라벨이 깨끗한 와인을 사는 것이 가장 좋은데, 이 때도 와인가게의 신뢰도가 높은지 여부가 중요하다. 즉 좋은 와인가게를 알아두는 것이 가장 좋다.

 

 

 

글/사진 와인오케이닷컴 
와인오케이닷컴(wineok.com)은 약 2만 6천여 개의 국내 최다 와인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와인 포탈 사이트로, 와인 관련 상식, 뉴스, 할인행사, 시음회 소식 등 다양한 읽을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폰 및 안드로이드 WineOK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출시하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와인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와인오케이닷컴은 현재 미투데이 공식 미투 파트너로 활동 중이다.
 
발행일 201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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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사(奉祭祀: 조상의 제사를 받들어 모심)와 접빈객(接賓客: 손님을 접대함)은 조선 시대 생활문화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러므로 아녀자의 음식 솜씨는 가문의 자랑이요, 가문에 평안을 주는 미덕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당시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손이 가야 마련되는 음식은 그 노하우 전수가 문제였다. 조선 사회에서 조리법의 전수는 오로지 면대면(面對面)의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했고, 축적된 경험만이 새로운 조리 비법을 탄생시켰다.

 

1670년경 여성이 쓴 최초의 한글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의 필사기에는 “이 책을 이리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잘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 가되, 이 책을 가져갈 생각일랑 마음도 먹지 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여 쉽게 떨어지게 하지 말라”라고 하여 집안의 음식 솜씨가 대물림 되기를 바라는 안동(安東) 장씨(張氏)의 염원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식생활에 대한 기록은 여성들이 쓴 규방의 지침서뿐만 아니라 농서(農書)나 유서(類書)에도 등장한다. 특히 18세기는 실학사상이 꽃을 피우면서 식생활 관련 기록이 증폭되는 시기였다. [산림경제(山林經濟)],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해동농서(海東農書)], [고사신서(攷事新書)], [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 [소문사설(謏聞事說)], [온주법(醞酒法)], [음식보(飮食譜)] 등이 바로 그런 사실을 입증한다.

 

이들 자료에 기록된 내용 중 조리 관련 부분의 필수 항목은 술 빚기였다. 술마저도 가가호호(家家戶戶) 자가제조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당시, 술 빚기는 전수되어야 하는 가장 긴요하고도 난이도가 높은 조리기술이었다. 그래서 몇몇 조리서는 술 빚기로 시작되기도 하고, 기록된 내용의 반 이상이 술 빚는 방법인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주방문(酒方文)]ㆍ[온주법]ㆍ[역주방문(歷酒方文)]ㆍ[술 빚는 법]ㆍ[술 만드는 법]처럼 아예 조리서의 이름에 술이 들어가 있기도 하니, 이들 조리서를 남긴 조상들의 의중이 짐작된다.

 

조선인들이 가장 사랑한 술

 

 

삼해주는 18세기 조리 관련 자료에서 기록 빈도가 가장 높은 술로,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술이었다.

정월 첫 번째 해일(돼짓날)에 시작하여 해일마다 세 번에 걸쳐 빚는다고 해서 삼해주(三亥酒)라는 이름이 붙었다.

 

18세기 조리 관련 자료에는 100여 가지가 넘는 술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가운데 기록된 빈도가 가장 높은 술은 삼해주(三亥酒)였다. 삼해주는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온주법]에는 세 가지의 주조법이, [증보산림경제]에는 두 가지의 주조법이 기록되어 있으니, 당시 조선인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술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삼해주라는 술 이름은 정월 첫 번째 해일(亥日)부터 술을 빚기 시작하여 돌아오는 두 번째와 세 번째 해일마다 덧술을 하여 빚은 술이라는 뜻이다. 돼짓날을 골라 빚은 삼해주는 돼지의 ‘꿀꿀’거리는 소리를 닮아 꿀처럼 단 술이 되었을까?

 

술은 당(糖)성분이 함유된 곡물류나 과실류, 유즙(乳汁) 등을 발효시켜 만드는데,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곡주(穀酒)가 주를 이루었다. 삼해주는 찹쌀과 멥쌀로 빚는 술이다. 밑술과 두 번의 덧술 과정 중 [온주법]에 기록된 첫 번째 주조법과 [음식보]에서는 멥쌀을 세 차례 모두 사용했지만, [온주법]에 기록된 또 다른 방법이나, [산림경제], [고사신서], [해동농서], [증보산림경제]에는 찹쌀과 멥쌀을 번갈아 쓰거나 혼용하기도 하였다.

 

술을 빚을 때 찹쌀이나 멥쌀은 물에 담가 충분히 불린 후 고두밥을 쪄서 쓰기도 하지만, 가루를 내서 뜨거운 물에 개거나, 죽을 쑤거나, 되직하게 반죽하여 둥글게 빚은 후 가운데 구멍을 내어 마치 도넛 모양으로 만든 구멍떡을 삶아 익히거나, 백설기로 쪄서 쓴다. 삼해주의 밑술은 찹쌀이나 멥쌀을 가루 내어 묽은 죽을 쑤거나 익반죽하였는데, [온주법]에 기록된 첫 번째 주조법과 [증보산림경제]에 기록된 두 번째 주조법에서는 백설기로 찐 후 끓인 물을 섞어 다시 풀어주는 방법을 택하였다. 호화도(糊化度: 전분에 물을 넣고 가열하여 팽윤되어 소화되기 쉬운 상태로 된 정도)가 높은 죽을 이용하여 신속한 발효를 돕기 위함이다. 익힌 곡물과 누룩, 좋은 물을 섞어 항아리에 담아두면 술이 익는다. 이렇게 빚은 술은 단양주(單釀酒)다. 첫 번째 빚은 술을 밑술로 하여 곡물로 다시 밥을 지어 섞어준 후 숙성시키면 이양주(二釀酒)가 된다.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 삼양주(三釀酒)가 되고, 또 하면 사양주(四釀酒)가 된다. 삼해주는 삼양주이다. 삼해주를 빚는 마지막 덧술에서는, [증보산림경제]의 두 번째 주조법에서 찹쌀을 사용한 것을 제외하면 통상적으로 대개 멥쌀을 이용하여 고두밥을 지었다. 고두밥을 넣으면 맑은 술을 얻을 수 있다. 덧술을 반복할수록 발효가 안정되어 저장성이 높아지고, 술의 양이나 알코올 도수가 올라간다. 무엇보다 술의 맛과 향이 중첩되어 좋은 술이 된다.

 

그런데 삼해주의 주조법 중 특이한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온주법]에 기록된 세 가지 방법 중 제일 처음 나오는 방법이다. 멥쌀가루로 떡을 찐 후 끓인 물을 섞어 고루 퍼지게 한다. 여기에 누룩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밑술을 빚는다. 그런데 두 번의 덧술도 똑같은 과정으로 반복했다. 맛 좋은 술은 쌀, 누룩, 물 삼총사의 화음이 잘 맞아야 한다. 이때 누룩은 발효제다. 누룩은 밀, 보리, 쌀, 녹두, 쑥, 여뀌, 도꼬마리, 솔잎, 연꽃 등으로 만드는데 술의 종류에 따라 재료, 모양과 크기별 개성이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술을 빚을 때 밑술에서는 누룩이 반드시 들어가지만, 대개 덧술을 할 때는 밑술이 스타터(starter)로 발효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온주법]의 첫번째 주조법에서는 마지막 덧술까지 계속해서 누룩을 넣는데, 오히려 그 양이 많아진다. 아마도 이는 술의 안정적인 발효를 지속시키고, 알코올 도수와 바디(body)감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청주와 탁주

 

 

김홍도, <풍속화첩-주막> 18세기 후반, 종이에 담채, 27×22.7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잘 익은 술은 거르는 방법에 따라 탁주(濁酒)와 청주(淸酒)로 나뉜다. 탁주는 막걸리다. 막걸리는 한자로 부의주(浮蟻酒)라 했다. 발효된 밥알이 마치 개미가 뜬 것처럼 모인다는 의미이니 참말로 운치 있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청주는 술이 익은 항아리에 용수(술을 거를 때 쓰는 싸리나 대오리로 만든 둥글고 긴 통)를 박아 떠낸 맑은 술을 말한다.

 

18세기 대표적인 풍속화가인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에서 술을 즐기는 대조적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김홍도의 〈주막(酒幕)〉에서는 먼 길에 허기진 배를 채우는 나그네가 국밥 그릇을 기울여 남은 국물 한 숟가락까지 싹싹 먹어 치우는 고단한 모습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그리고 그 옆에 술독을 끼고 자리잡은 주모가 큰 그릇에 술을 떠 담는 중이다. 풍채 좋은 중년의 주모가 들고 있는 술잔과 복자(국자처럼 생긴 술을 뜨는 기구)의 크기가 크고, 술 항아리는 입이 넓은 것으로 보아 막걸리가 담긴 것이리라. 나그네는 마지막으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고 다시 걸음을 재촉해야 할 것이다.

 

신윤복의 〈주사거배(酒肆擧盃)〉는 담장 높은 기와집 안에 있는 고급 술집의 모습이다. 대청마루 옆에는 술국을 끓이기 위한 부뚜막까지 설치되어 있다. 또한 주모는 얹은머리를 하고, 소매통이 좁고 짧은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은, 그야말로 당시 패션 트렌드를 충실히 따른 젊고 고운 여성이다. 이런 호사스런 술집에서는 당연히 향기로운 청주가 항아리에 그득할 것이고, 비싸게 팔리리라. 마당에 핀 진달래가 삼해주의 계절임을 알려준다. 정월부터 담근 삼해주는 세달 정도의 숙성기간을 거쳐 봄철에 술맛이 절정을 이룬다. 주모의 손에 들린 복자가 가늘고, 작은 술잔들이 놓인 것으로 보아 술값은 마신 잔의 수대로 계산하는 듯하다. 이곳에서 철릭을 입은 관리들의 낮술은 가지가지 이유로 이어진다.

 

신윤복, <주사거배(酒肆擧盃)> 제작연도 미상, 종이에 채색, 28.2×35.6 cm, 간송미술관 소장.

 

조선의 술맛에 반한 것은 외국인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을 방문했던 프랑스의 지리학자이자 민속학자 샤를 루이 바라(Charles Louis Varat, 1842~1893)는 조선의 양조 기술을 소개하며 그 술맛을 극찬했다.

 

조선의 술은 대개 붉거나 흰색으로 쌀이나 밀 또는 그 밖의 곡물로 빚어내며, 발효하기 전 단계에 불붙은 숯을 집어넣음으로써 맑은 빛깔을 낸다. 그것은 질적인 면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술을 저만치 따돌릴 만한데, 입천장에서 착착 달라붙는 그 부드러운 맛이 흡사 우리의 포도주를 연상시켰다. 너무도 맛이 좋아 친구들을 위해 프랑스에도 좀 가지고 가고 싶었지만 운반할 수 있게 포장이 된 것도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장시간 보관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쉽지만 포기해야 했다.

- (샤를 루이 바라(Charles Louis Varat)/샤이에 롱(Chaulle-Long) 지음, 성귀수 옮김, [조선기행], 눈빛, 2001

 

그녀는 바다 건너 친구들에게 이 좋은 술을 맛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면 조선 사람들이 즐긴 술은 대부분 증류를 하지 않은 술이었으므로 장기간의 보관이나 유통에 적합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성껏 빚은 술은 그대로 두면 발효가 진행되어 식초가 되어버렸다.

 

술을 증류하는 기술은 고려 때 원나라로부터 전해졌다. [증보산림경제]에는 소주의 독성을 줄이는 방법이 나와 있어 당시 증류주를 만드는 고도의 기술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아예 방법이 없었던 걸까? 그렇지는 않다. 빚은 술을 증류하면 오래 보관하는 것이 가능했다. 술을 증류하는 기술은 고려 때 원나라로부터 전해졌다. 비록 증류하지 않은 술을 더 많이 마셨지만, 증류주인 소주를 만들기도 했다.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우선 잘 익은 술을 솥에 넣고 소줏고리를 얹어 고면 소주가 된다. 열에 의해 기화된 알코올은 소줏고리 위의 찬 냉기와 만나서 액화되어 이슬처럼 다시 떨어진다. 그래서 소주의 다른 이름이 노주(露酒)다. [증보산림경제]에서는 소주를 고는 법이 기록되어 있는데 윗물을 열두 차례 갈면 그 술맛이 독하지도 묽지도 않지만, 여덟아홉 차례만 갈아주면 술맛이 매우 독하다고 하였다. 또 소주를 내릴 때에는 참나무나 보릿짚, 볏짚 따위를 땔감으로 써야 하고, 불의 세기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소주의 독성을 빼는 법으로는 술을 받는 병 바닥에 꿀을 바르면 독이 빠지고 술맛이 좋아진다 하였는데, 소주의 독한 기운을 줄이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또 당시 증류주를 만드는 고도의 기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해주 또한 소주로도 즐겼다. 대개 청주로 마시는 술이지만, [증보산림경제]에 기록된 두 번째 주조법은 삼양증류주인 것이 특이하다. 마지막 덧술까지 잘 익어 밥알이 위로 뜨면 지게미를 걸러내고, 증류하여 소주를 만드는데 술맛이 매우 독하다고 하였다.

 

독한 소주는 물을 타서 희석식 소주로 만들기도 하였고, 얼음을 넣어 차고 짜릿한 칵테일로 즐기기도 하였다. 청주를 빚어 소주를 혼합한 혼성주는 더운 여름철, 술맛이 쉽게 상하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었다. 이 소주는 증류 과정에서 계피와 사탕가루 또는 생강이나 배를 넣어 맛을 더하거나 지초(芝草)나 치자를 술병에 달아 농염한 빛깔을 내어 애주가들을 유혹하기도 하였다.

 

임금도 못 말린 술맛

 

 

삼해주의 사랑은 몇몇 문집에서 확인된다. 일찍이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삼해주를 선물 받고 아래와 같은 화답시를 남겼다.

 

쓸쓸한 집 적막하여 참새를 잡을 만한데                   閑門寂寞雀堪羅
어찌 군후의 방문 생각이나 했으랴                            豈意君侯肯見過
다시 한 병의 술 가져오니 정이 두터운데                  更把一壺情已重
더구나 삼해주 맛 또한 뛰어났네                                況名三亥味殊嘉

-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또,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은 무등산을 돌아보고 식영정(息影亭)에 당도해 가진 술자리에서 삼해주를 마시는 즐거움을 노래하기도 했다.

 

맑은 바람 늙은 나무에 불고                                             淸風吹老樹
밝은 해는 봄 정자에 걸리었네                                         白日麗春亭
좋은 술 삼해를 기울이고                                                  美酒傾三亥
아름다운 나물 오성을 대하누나                                      嘉蔬對五星
조용히 산수를 구경하고                                                   從容見山水
오연히 문정에 있도다                                                       偃蹇在門庭
그대 나와 함께 취미 같으니                                             君與吾同趣
배회하매 구름은 창가에 가득하구나                              徘徊雲滿扄

- [고봉집(高峯集)]

 

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연속된 자연재해로 곡물 조달이 어려워지자 금주령이 내려졌다. 그래도 번번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에는 이를 두고 대책 논의에 골몰한 대목도 보인다. 정조 17년 [일성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조의 명을 기록하고 있다.

 

“작년 겨울에 술을 빚지 못하도록 금하였을 때에 평시서(平市署: 조선시대 시전, 도량형, 물가 등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청)가 5일마다 계본(啓本: 조선시대에 임금에게 큰일을 아뢸 때 제출하던 문서 양식)으로 보고한 시가(市價)를 보니, 쌀값이 여전히 치솟아 있었다. 그러니 또한 시험해 보았으나 실효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흉년에 곡물을 낭비하는 것은 참으로 엄히 금할 수 있지만, 나는 “백성이 소요하지 않도록 한다(不擾民)”라는 석 자가 시행하기 어려운 명령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지금 시행할 계책으로는 한성부 판윤에게 분부하여 술을 빚는 것을 절제하라는 뜻으로 성심껏 방곡에 타이르고 깨우쳐주어 선량한 백성들로 하여금 가르침을 따를 줄 알게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또 삼해주 등 대규모로 빚는 술은 이미 저장해 놓은 것을 제외하고는 역시 판윤으로 하여금 거듭 밝혀 금지하고 절제하게 하여 기어코 실효를 거두게 하라.”

- [일성록] 정조 17년 계축 

 

국 먹기는 여름같이, 술 마시기는 겨울같이 하라

 

 

술은 맛있는 안주가 있어야 그 맛을 더한다. 18세기를 대표하는 술안주 하나를 살펴보자. 앞서 신윤복의 그림에서는 술국을 끓이기 위한 솥이 있었다. [성협풍속화첩(成夾風俗畵帖)]에 실려 전하는 그림, 〈야연(野宴)〉에서는 사람들 가운데 화로가 놓여 있고, 위에는 전골을 지져먹는 그릇인 벙거짓골이 올려져 있다. 강한 불기운이 느껴지는 화로 위에서는 가장자리의 둥근 부분에서 뭔가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사내들은 연신 이를 주워 먹기에 바쁘다. 움푹 팬 중앙에는 국물이 끓고 있다. 즉, 고기나 채소를 번철 부분에 구워서도 먹고, 뜨거운 국물에 넣어 살짝 데치듯 익혀서도 먹는 즉석요리를 술안주로 즐기고 있다. 좋은 벗들과 향기로운 술, 즉석에서 바로 해먹는 안주까지 있으니 술이 절로 넘어갈 것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꼴깍 삼켜진다.

 

<야연(野宴)>, [성협풍속화첩(成夾風俗畵帖)] 수록. 제작연도 미상, 종이에 담채, 20.8×28.3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세기 말의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술상차림 그림이 실려 있다. 먼저 술상에 진안주, 마른안주, 김치, 정과, 숙실과가 차려져 있다. 옆의 곁상에는 전골, 장국, 나물, 계란, 기름종자가 있다. 이 상은 아래 있는 신선로상을 위한 상이다. 신선로상에는 신선로, 장국시(국수), 사시(숟가락)가 있다. 신선로는 궁중음식으로 사대부가에서도 즐기던 제일의 안주였는데 열구자탕(悅口子湯)이라고도 한다. 얼마나 맛이 좋았으면 입을 기쁘게 한다는 이름이 붙였을까? 선인들의 풍류가 느껴진다.

 

[시의전서(是議全書)]에 기록된 술상차림. 아래의 신선로상을 위해 술상과 곁상이 차려져 있다.

궁중음식으로 알려진 신선로는 사대부가에서도 안주로 즐겼다.

 

[규합총서]에는 우리나라의 전통음식문화를 한 문장으로 대변하고 있다. “밥 먹기는 봄같이 하고, 국(羹) 먹기는 여름같이 하고, 장(醬) 먹기는 가을같이 하고, 술 마시기는 겨울같이 하라” 고 했다. 밥은 따뜻하게, 국은 뜨겁게, 장은 서늘하게, 술은 차게 즐겨야 제맛이라는 것이다. 삼해주의 차고 독한 술기운을 뜨거운 국으로 달랬을 조선인들을 떠올려 본다.

 

 

‘18세기의 맛’은 한국18세기학회의 기획으로서, 문학동네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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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차경희 / 전주대학교 한식조리학과 교수
발행 201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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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맥주는 유럽에서 제일가는 것이다…… 싸움에서 담판을 지을 때면 꼭 두세 사발의 맥주를 들이켜야 했다. 영국에서 맥주 없이 성사되는 거래란 없기 때문이다.”
                                                                                         - 제어빈 로시포트(Jarevin de Rochefort), 1672

 

맥주는 영국의 음료수였다. 식수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영국에서 오랜 시간 식수를 대체하는 음료로, 노동과 행군의 피로를 씻어주는 활력의 근원으로 사랑받던 것이 맥주였다. 맥주가 처음 등장한 16세기 이후부터, 각종 제조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19세기 이전까지 맥주 주조 산업은 영국 산업의 근간을 차지하는 주요 생산업 중 하나였다. 이 기간 동안 맥주는 생산과 판매, 소비 전역에 걸쳐 영국의 경제와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주요한 상징이자 핵심 물품으로 그 기능을 담당했다. 특히 18세기에 이르러서 거주양식과 생활양식이 도시 중심, 상업 중심으로 급격하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맥주는 누구나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품목이 되어 18세기 영국 문화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커피, 초콜릿, 담배, 브랜디처럼 상류계급이 즐겨 소비하던 수입 사치품이나 진과 같은 저렴한 대체재와는 또 다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정 계급과 지역, 문화권에서 소비되던 사치품과 달리, 맥주는 그런 것에 구속받지 않고 폭넓게 소비되었으며, 이러한 까닭에 맥주는 광범위한 소비대중을 이어주고 이들의 결속을 다지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생산에 활력을 불어넣는 맥주의 힘

 

 

18세기 커피하우스(coffehouse)가 ‘공론의 장’이라는 공적 영역을 형성한 것과 유사하게, 맥주를 판매하던 에일하우스(Alehouse), 혹은 펍(pub: 퍼블릭하우스(Public house)의 줄임말)이라 불리던 술집은 소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집단적 쾌락을 공유하는 ‘여흥(entertainment)의 공간’을 형성했다. 커피하우스에 모여든 사람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을 즐기면서 자신들의 사회적ㆍ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확인했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에일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면서, 즉 소비의 쾌락을 공유하면서 공동체적 정체성을 만들고, 또 확인했던 것이다.비슷한 기능을 하던 태번(Tavern: 숙소와 식당, 술집이 함께 있는 여흥 공간)과 인(Inn: 고급 숙소와 술집이 결합된 형태)이 점차 고급화되고 진 숍(Gin shop, Dram shop)이 기층민을 빠르게 흡수해가는 와중에도 맥주를 주로 판매하던 에일하우스와 펍은 그 수와 영향력을 꾸준히 확대해나갔다.

 

그런데, 맥주는 앞서 언급된 소비재들과는 다른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치재가 영국의 교역 확대에 힘입어 국내 유입이 증가된 수입품이었던 데 반해, 맥주는 원료와 생산 시설 모두 영국의 내수 경제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18세기 들어 농업은 급속도로 발전했으며, 맥주 주조 업체는 대규모 생산 시설을 갖추기 시작했다. 국가 경제에서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도 자연스레 커져갔다. 맥주는 단순히 영국의 오래된 전통 음료일 뿐 아니라, 성장하는 영국의 미래를 보장하는 기간 품목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다음 광고는 이러한 당대의 인식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작자 미상, 〈위트브레드 주조장의 맥주 광고(Whitbread’s Porter)〉, 8×12㎝, 18세기

18세기 들어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포터 맥주(porter: 에일이라 불렸던 기존의 맥주보다 더 진하고 도수가 높아서 18세기에 크게 유행한 맥주의 종류) ‘위트브레드(Whitbread)’의 광고다. 이 광고 도안은 남성으로 의인화된 맥아(왼쪽)와 여성으로 의인화된 호프(가운데)의 결합으로 포터 맥주(오른쪽)가 생겨난다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세 인물 뒤에 보이는 배경의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광고는 맥주의 탄생을 건강한 가정의 축복받은 생산으로 의인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 생산의 배경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왼쪽의 농장과 오른쪽의 주조 공장은 맥주가 상징하는 행복감과 번영, 축제의 정서가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상품의 소비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을 만들어내는 경제 기반의 확장과 연결된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맥주는 사적이고 소모적인 쾌락을 주는 단순한 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번영의 포석이 되는 상품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이 한 장의 광고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번영의 이미지가 가득한 맥주 거리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맥주 거리(Beer Street)〉, 38×32㎝, 1751, 영국 박물관 소장

 

 

1751년 처음 발표된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판화 〈맥주 거리(Beer Street)〉 역시, 앞서 제시한 광고 도안과 마찬가지로 맥주를 국가 경제적 번영과 연관 지어서 그려내고 있다. 1751년 초판본과 1759년 재판본은 둘 다 당시 큰 문제가 되고 있던 진의 폐해를 강조하기 위해 모두 〈진 거리(Gin Lane)〉와 함께 연작으로 출간되었다. (참조: 문희경, <네이버캐스트 - 영국 빈민을 사로잡은 진 광풍>) 활력을 상징하는 맥주와, 각종 사회적 폐해를 낳는 진을 극명히 대비해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축제의 장인 맥주 거리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건강과 번영이다. 호가스는 국왕의 생일(왕의 건강을 기원하고 경축하는 국가적 행사)에 벌어진 한바탕 축제의 순간을 묘사하면서 이를 〈맥주 거리〉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고 있다.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맥주 거리(Beer Street)〉, 38×32㎝, 1759, 영국 박물관 소장

 

 

1759년 작 〈맥주 거리〉를 보면, 그림의 정중앙에는 맥주 통이 매달려 있고(〈진 거리〉에서 동일한 장소에 매달려 있는 것은 관이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한바탕 축제의 기분에 빠져들어 있다. 화가는 붓을 들고, 생선장수는 생선 꾸러미를 이고, 마부는 열쇠를 쥐고, 푸줏간 주인은 돼지 넓적다리를 들고 휴식을 취하면서 맥주를 즐기고 있다. 그림의 중앙 하단에 있는 남녀의 다정한 모습(〈진 거리〉에서는 이 위치에 병색이 완연한 매춘부가 아이가 무릎에서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술에 취해 있다)이나 다른 인물들의 육중한 신체 묘사는 다양한 종류의 육체적 건강을 맥주와 연결시키고 있으며, 이러한 건강은 단순히 개개인의 신체적 건강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것이기도 하다. 축제에 모여든 군중은 단순히 쾌락을 향유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자신의 직업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경제적 생산 주체임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번영하는 거리에서 단 한 군데 폐업 상태인 곳이 전당포라는 점 역시 이를 반증한다. 경제가 건강하지 못할 때, 즉 생산이 더 이상 담보되지 못할 때 번성하는 곳이 전당포인데, 전당포가 문을 닫았다는 것은 경제가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맥주 거리>의 부분(왼쪽)과 <진 거리>의 부분(오른쪽).<맥주 거리>에서 유일하게 폐업한 곳이 전당포(pawnbroker)인 반면, 〈진 거리〉에서는 진을 사기 위해 목수는 공구를, 여인은 가사 도구를 전당잡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전당포가 성업중이다.

 

 

〈맥주 거리〉의 부분(왼쪽)과 〈진 거리〉의 부분(오른쪽). 〈맥주 거리〉 한가운데에는 혈색 좋은 남녀의 다정한 모습이 묘사돼 있다. 여자가 들고 있는 열쇠에 대한 해석은 분분한데, 마부가 자신의 마차를 과시하기 위해 여자에게 건네준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성적인 유혹, 암시 정도로 해석한다. 반면 〈진 거리〉에서는, 성병에 걸린 듯한 여인이 아이가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진에 취해 있다.

 

 

호가스의 판화에서 맥주를 통해 이뤄지는 건강과 번영은 단순히 생산을 담당한 노동 계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맥주 자체가 영국의 재료와 기술로 생산되는 상품인 만큼, 이는 당시 영국의 국가 정체성과 긴밀한 연관을 지닌다. 일례로, 1751년판 〈맥주 거리〉를 보면, 검은 옷을 입은 대장장이가 프랑스인을 집어 들어 패대기치려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 이 장면은 맥주에 내포된 국가중심적, 혹은 민족주의적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장장이는 단순히 하나의 직업이라기보다, 국가의 위용을 과시하는 군수물자와 각종 생산의 수단이 되는 도구들을 만든다는 점에서 영국의 힘을 상징하며, 이러한 상징성을 부여받은 대장장이가 세련된 차림을 한 프랑스인을 거리 한가운데에서 힘으로 제압하는 설정은 맥주 축제가 찬양하는 번영과 건강이 다분히 영국이라는 국가 전체의 번영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실제로 맥주는 프랑스에서 수입되는 와인의 주요 경쟁자였으며, 끊이지 않던 프랑스와의 무역 마찰과 정치적 충돌 속에서 맥주의 국가적 위상과 문화 정체성은 한층 강화되었다. 호가스의 판화 하단에 인용된 타운리 목사(Rev. J. Townley)의 시는 이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맥주! 우리 섬의 축복받은 특산물,                         Beer! Happy produce of our isle, 

늠름한 힘을 줄 수도 있고,                                   Can sinewy strength impart,

또 노고에 지쳤을 때,                                          And, wearied with fatigue and toil,

사나이 마음을 북돋아줄 수도 있네.                       Can cheer each manly heart.

 

노동과 예술은 당신 덕에                                     Labour and Art upheld by Thee

성공적으로 발전하고,                                         Successfully advance,

우리는 당신의 감미로운 즙을 기쁘게 들이켜고,       We quaff Thy balmy Juice with Glee

맹탕은 프랑스로 떠나네.                                     And Water leave to France

 

건장의 재사, 당신의 기분 좋은 맛은                      Genius of Health, thy grateful Taste

신의 음료와 견줄 만하고,                                    Rivals the Cup of Jove,

넓은 영국인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네                     And warms each English generous Breast

자유와 사랑으로!                                               With Liberty and Love!  

 

이 축시가 묘사하는 맥주의 맛은 개인적, 국가적 ‘건강’을 이루는 신성한 맛이며 자유와 사랑이라는 이념과 정서로 공동체를 아우르는 맛이다. 건강, 활기, 축제와 같이 맥주가 수반하는 긍정적인 개념들은 맥주 산업이 국가에 가져다주는 경제적 번영과 무관하지 않으며 맥주의 맛은 이러한 국가 경제의 번영에 대한 직관적 묘사라 할 수 있다.

 

거래는 펍(pub)에서

 

 

맥주는 그 자체로 영국의 국가 경제 번영을 상징하는 문화적 소비재였을 뿐 아니라, 실제로 급속하게 성장하는 국가 경제의 한 축으로 기능했다. 맥주가 영국의 국가 경제에 끼친 영향을 간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 크게 유행했던 또 다른 주류인 진과 비교해볼 수 있다. 맥주와 진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긴장관계를 형성했다. 주로 국가의 통제 범위 밖에서 유통, 소비되었던 ‘위험한 술’ 진과는 달리 맥주는 다양한 규제하에 생산되고 유통된 ‘관리 가능한 쾌락’의 대표적 상품이었다. 음성적으로 뻗어나간 진의 유통 경로와는 달리, 맥주를 판매하는 대부분의 장소는 합법적인 인허가를 받은 곳으로, 판매량에 대한 세금을 꾸준히 지불했으며 맥주 제조업체들도 점차 대형화 되어가면서 경영이나 운영 기술에 있어 그 방식이 더욱 투명해졌다. 맥주 제조는 단순한 가내수공업 형태의 방식을 벗어나 합법적 기업의 형태로 진화했다. 실제 1747년 발간된 잡지 <런던 상인(The London Tradesmen)>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포터 맥주 주조장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자본 규모가 은행을 제외한 모든 사업 중 가장 크다고 설명했을 정도다.

 

이렇게 양성화된 맥주산업은 오히려 불법적인 진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를 제어하는 역할까지 담당했다. 18세기 내내 폭증했던 진의 수요는 정부의 골칫거리였다. 진의 생산과 유통을 양성화하여 이를 제어하고자 수차례에 걸쳐 다양한 세법과 인허가법을 입법했으나, 결과적으로 진 유통의 지하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영국 의회가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합법적인 맥주 유통을 활성화하는 법안이었다. 1830년 마침내 공표된 비어하우스 법(Beerhouse Act)는 이러한 노력을 집대성한 법안이다. 이 법안은 가정이나 펍에서 맥주를 팔기 위해 내야 하는 인허가세를 2파운드로 크게 하향 조정했고, 이전에 요구되었던 요식 행위들이 모두 철폐되었다. 맥주의 유통을 확산시켜 음성적인 진의 유통을 위축시키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18세기 내내 음성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어 각종 사회, 경제적 문제를 일으키던 진은 그 영향력이 크게 감소하였다.

 

맥주는 다양한 경제 행위에 개입하여, 거래의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했다. 흔히 18세기 커피하우스의 역할을 논할 때 이곳에서 이루어졌던 상거래와 정치적 토론이 함께 다루어지곤 하는데, 각종 보험 업무를 제외한 상거래 행위 대부분은 태번이나 인, 에일하우스와 같이 맥주를 주로 파는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주식거래소나 영국은행 근방에 있는 태번은 거래자들로 항상 성황을 이뤘고, 각종 이익 단체나 클럽 들은 단골 에일하우스나 펍을 지정해서 그곳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사업을 논하고 각종 계약을 체결했다. 맥주는 이들에게 일정 정도의 흥분을 허락하면서, 그 흥분의 경험을 공유하는 동료들과의 상호 교류를 통해 더 큰 이익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담당했다. 맥주는 흥정을 부추기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매개였던 셈이다.

 

이처럼 맥주는 단순히 전통적 의미에서 영국 문화를 상징하는 소비재일 뿐 아니라, 18세기 들어 나타난 성장의 징후들―도시화, 상업화, 산업화―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중요한 상품이었다. 호가스의 〈맥주 거리〉가 찬양하는 맥주의 맛, 번영과 만족, 행복의 맛은 18세기 전반에 걸쳐 나타난 시장경제에 대한 기대와 낙관을 축약해서 드러내고 있다.

 


‘18세기의 맛’은 한국18세기학회의 기획으로서, 문학동네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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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영 /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BK21 박사후과정 연구원
 
듀크대학교에서 18세기 영국소설로 2011년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귀국하여 현재 이화여대 영어영문학 BK21 프로젝트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에서 초기영국소설을 강의중이다. 박사논문의 제목은 [Novel Addiction: Consuming Popular Novels in Eighteenth-century Britain]이며 문화연구와 장르론, 18세기 근대성 이론 등이 주요 관심사이다.
 
발행 201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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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영국 사람들이 즐겨 마시던 술은 맥주였다. 맥주보다 알코올 농도가 높은 증류주는 16세기경부터 보급되었으나, 수입품으로 가격이 매우 비쌌던 까닭에 귀족이나 부유층이 주로 마셨고 서민들은 접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18세기 초반에 진(gin)이라 불리는 값싼 증류주가 대량으로 공급되면서 영국에서는 소위 ‘진 광풍(Gin Craze)’이라 일컬어지는 알코올 과잉 섭취 열풍이 유행처럼 번져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 현상은 1720년대 초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약 30년간 지속되었으며, 도시 빈민층, 특히 런던 빈민가를 중심으로 크게 확산되었다. 소설가 헨리 필딩(Henry Fielding, 1707∼1754)은 <최근 절도범이 증가하는 이유>라는 글에서 이러한 사회적 열풍을 크게 우려하면서, 만일 이와 같은 현상이 앞으로 20년간 더 지속된다면 진을 마실 수 있는 서민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진, 조금만 마셔도 취할 수 있는 빈민층의 술

 

진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처음 개발된 음료로, 맥아(malt)를 원료로 하여 만든 증류주를 노간주나무 열매로 가미하고 다시 증류하여 부드럽고 마시기 좋게 만든 술이다. 그래서 노간주나무의 이름(genèvre)에서 유래해 처음에는 지니바(Geneva)라고 불렸으며, 진(gin)이라는 이름도 이것이 변형된 것이다. 진은 영국 내에서 생산되기 전까지 네덜란드에서 수입되었기에 홀란드(Hollands)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1720년 즈음 영국의 증류주 생산자들은 곡물에서 맛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는 증류주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 영국의 곡물 가격이 하락하면서 보다 질 좋은 곡물을 증류주 재료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진은 두 단계의 생산 과정을 거쳐 상품화되었다. 먼저 대규모 주조장에서 곡물을 원료로 알코올 농도가 높은 순수 증류주를 생산했다. 그러면 이 증류주를 보다 영세한 제조자가 공급받아 물에 희석시키고 설탕과 과일즙(노간주나무 열매, 아니스 씨, 체리 등에서 추출한 것)을 첨가하여 상품으로 판매했다. 이렇게 생산된 진은 마치 과일 주스 같은 맛이 나는 데다, 싼값으로 저소득층에 공급되었기에 인기가 높았던 것이다. 게다가 진은 맥주와 달리 알코올 농도가 높았기 때문에 조금만 마셔도 취할 수 있었다. 18세기 영국의 진 광풍은 이렇게 값싼 진이 다량으로 널리 보급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진 거리Gin Lane〉, 38×32㎝, 1751, 영국 박물관 소장. 이 판화에서 호가스는 런던 빈민가 진 중독 사태의 심각성을 고발하고 있다.

 

 

얼마나 마셨나?

 

18세기 영국에 불붙었던 진 소비는 이름에 걸맞게 광풍이었다. 역사적 사료에 따르면 18세기에 진의 연간 소비량은 수백만 갤런(영국에서 1갤런은 4.55리터)에 달했다고 한다. 1700년부터 진 열풍이 나타나기 시작한 1720년 사이에 영국의 진 판매량은 두 배로 늘었다. 그리고 1729년에 와서 진 판매량은 또다시 두 배로 증가했다. 이렇게 급증하는 진 소비와 이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부는 주세를 인상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1700년에 영국에 성인 한 명이 1년 동안 마신 진은 1/3 갤런이 조금 넘었는데 30년 후에는 그것이 2.2갤런으로 일곱 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진 광풍이 절정을 이룬 1743년에는 약 8백만 갤런의 진이 소비되었다.

 

진 광풍의 심각성은 진을 소비한 계층이 극히 일부 서민층에 한정돼 있었다는 데 있다. 즉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의 저소득층, 특히 수도 런던의 빈민가에서 진이 주로 소비된 것이다. 18세기 초 런던은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였으며, 당시 60만에 육박하던 인구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다.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온 빈민들은 주로 런던의 동쪽 지역(East London)이나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지역에 밀집해 살았다. 이들 지역은 심한 주택난과 도시 위생 문제에 시달렸으며, 구걸과 매춘, 음주로 인한 소란 행위 등이 만연했다. 절도와 같은 각종 범죄 또한 증가하여 많은 사회적 우려를 낳았다. 그리고 진 광풍 또한 이러한 지역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났다. 맥주가 광범위한 지역의 다양한 계층에서 비교적 ‘온건하게’ 소비된 점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현상은 이례적인 것이었다.

 

진은 주로 ‘진 숍(gin shop)’이라 불리는 곳에서 팔았는데, 이 또한 빈민가에 밀집되어 있었다. 1736년의 어느 기록에 의하면 당시 영국 전역에 진 숍이 무려 12만 곳이나 되었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열 가구당 한 곳이 진 숍이었다는 뜻이다. 다소 과장된 이 기록의 정확성은 확인할 수 없으나 진을 파는 주점들이 빈민가에 밀집되었던 것은 사실이고, 이 외에도 길거리에서 무허가로 진을 판매하던 사람들도 있어 진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술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은 또한 가격 경쟁을 일으켜 진의 값을 내리는 데도 한몫을 하였다.

 

 

〈진 거리〉(부분). 진 숍 입구 위에 “1페니로 취할 수 있고, 2페니면 만취할 수 있다”는 문구가 있다.

 

〈진 거리〉(부분). 진 중독으로 죽은 한 여인을 관에 넣고 있으며, 옆에는 그 여인의 자식으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방치되어 있다. 오른쪽의 남자는 진 중독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잔인성을 상징하고 있다.

 

진의 가격은 매우 싸서 1페니면 진 1/4 파인트(약 142밀리리터로, 오늘날 사용하는 30밀리리터짜리 스트레이트 잔으로 넉 잔 넘게 마실 수 있는 양)를 살 수 있었는데, 이는 작은 빵 한 덩어리의 값과 같았다. 진 광풍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화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가 그린 〈진 거리(Gin Lane)〉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을 보면, 주점은 “1페니로 취할 수 있고, 2페니면 만취할 수 있다”는 광고까지 내붙일 지경이었다. 맥주를 대량으로 마셨던 영국인들에게 술에 취한 사람들의 모습은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강한 알코올에 익숙하지 않았던 영국 서민들은 진을 맥주 마시듯이 마셨고, 심지어는 내기를 하면서 진 4파인트(약 2.27리터)를 연속으로 들이킨 사람이 죽었다는 기록도 있다. 더욱이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던 대부분의 도시 빈민들은 이렇게 강한 술을 견뎌낼 수 없었고, 그래서 더 빨리 취했을 뿐만 아니라 건강도 급속히 악화되었다. 이렇게 만취한 사람들을 위해 2페니 정도의 돈만 내면 술이 깰 때까지 잠을 재워주는 방도 등장했으며, 여러 사람이 빽빽이 누워 자던 이런 방이 항상 만원이었다는 사실에서 이 진 광풍이 얼마나 심각한 사태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방을 이용할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은 흔히 길거리에 쓰러져 잤으며, 지나가는 마차에 깔리거나 하수구에 빠져 변을 당하는 경우도 흔했다. 헨리 필딩은 진이 이들의 주식(主食)이었다고 묘사했으며, 기록에 의하면 진 광풍이 한창일 때 우유 소비량이 줄었다고 한다.

 

 

〈진 거리〉(부분). 진 광풍으로 인한 사업실패로 자살한 사람을 그리고 있다.

 

〈진 거리〉(부분). 진을 사기 위해 전당포에서 목수는 공구를, 여인은 가사 도구를 전당 잡히고 있다.

 

 

진과 여성

 

진 광풍의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진이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술이었으며, 여성들이 진의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판매자로도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진은 ‘여성들의 기쁨(the Ladies’ Delight)’, ‘마담 지니바(Madam Geneva)’ 혹은 ‘진 어머니(Mother Gin)’와 같은 이름으로도 불리었다. 여성들이 진을 판매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비교적 적은 돈으로, 단속의 손이 잘 미치지 않았던 빈민가에서, 무허가 노점상을 할 수 있었던 데 있다. 이처럼 저소득층 여성이 무방비 상태로 진에 중독되자, 이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진 가게에서 여성이 남성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것은 전에 못 보던 모습으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더욱이 임산부나 유모의 진 중독은 태아나 어린아이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기에 더욱 심각한 우려를 자아냈다.

 

<진 거리>의 중앙에는 다리에 상처를 입은 여인이 아이가 계단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진에 만취한 상태로 앉아있다.

 

〈진 거리〉(부분). 여성들이 진을 마시고 있는 판화의 부분. 한 여인은 어린아이에게도 진을 먹이고 있다.

 

호가스의 그림 〈진 거리〉의 중앙에는 진에 만취한 한 여인이 무릎에 있던 아이가 계단 아래로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퍼질러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여성의 다리에는 성병의 증상으로 보이는 염증이 있는데, 이처럼 진에 중독된 여성은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매춘 등에도 노출돼 있다고 여겼다. 가임기 여성이 진에 중독된 경우, 병약한 아이를 출산한다는 점도 우려의 대상이었다. 당시 여러 식민지를 거느리고 제국으로 발돋움하던 영국은 군인과 노동자 등 많은 인력을 필요로 했다. 그러한 측면에서, 미래의 노동력인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진 광풍은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하는 일이었다. 이렇듯 저소득층의 주 음료가 된 진은 지배층에게는 혐오와 우려의 대상이었다. 그리하여 진 판매를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정부는 1729년부터 1751년 사이, 수차례에 걸쳐 각종 규제와 법안을 통과시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진 규제법(Gin Acts)

 

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 중독이 사회적 질서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았다.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0~1731)는 이미 1727년에 진 판매를 규제할 것을 주장했다. 영국의 지배 계층은 진에 찌들어 통제가 불가능해진 저소득층과 빈민층의 불만이 폭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동시에, 진을 매춘, 살인, 절도 등 각종 범죄를 증가시키는 원인이라고 보았다.

 

무분별한 진 소비와 무허가 진 판매를 막기 위해서 영국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주세(酒稅) 인상과 진 판매 허가제, 무허가 판매 단속 등 각종 규제 조치를 시행했으나, 18세기 중반까지는 큰 성과가 없었다. 그런데 진 광풍 뒤에는 몇 가지 복합적인 정치ㆍ경제적 요인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우선 주류에 부과된 세금은, 당시 프랑스와 전쟁 중이었고 이로 인해 재정난을 겪고 있던 영국정부에 매우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또한 영국의 양조업체는 막강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들 뒤에는 증류주의 주원료인 곡물을 제공하는 지주들이 버티고 있었으며, 특히 곡물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던 18세기 초에 진 생산은 곡물 가격을 높게 유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처럼 진 뒤에는 정부와 의회에서 막강한 세력을 행사하던 집단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으며, 이런 복합적인 관계는 진 판매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단순히 진의 소비를 줄이는 데만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1729년부터 통과된 일련의 법이 효과를 보지 못하고 무허가 진 판매가 난무하자 1736년, 영국 의회는 획기적인 조치를 취했다. 진을 포함한 모든 주류에 부과된 세금을 인상하고, 진을 판매하려면 50파운드라는 천문학적인 영업 허가료를 내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당시 세관 직원의 연봉이 50파운드 정도였다). 이 법은 서민들에게 엄청난 반발을 샀다. 런던에서는 “진 없이는 국왕도 없다(No gin, no King)”는 구호와 함께 일련의 폭동이 일어났으며, 이 법을 풍자하는 [진 여왕의 폐위와 죽음(The Deposing and Death of Queen Gin)]이라는 극작품까지 등장했다. 결국 현실성 없는 이 법은 1743년에 폐지되었고, 영국 정부는 1751년에 마지막 진 규제법을 통과시키면서 진에 대한 과세를 올리고 판매 규제를 강화했다.

 

 

작자 미상, <마담 지니바의 불행한 추락(The Lamentable Fall of Madam Geneva)>, 34.6×29.6㎝, 1736, 영국 박물관 소장. 1736년 영국정부가 진 판매를 규제하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자, 서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같은 해에 그려진 이 판화는 그 당시 정부가 취한 규제를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진 규제법이 통과될 즈음, 진 소비는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진 광풍은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18세기 후반에는 그 같은 감소세가 더욱 가팔라져, 1인당 연간 진 소비량이 0.6갤런(약 2.73리터) 정도에 머물면서 안정적인 소비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진 광풍이 이렇듯 수그러든 것은 정부의 법이 효력을 발휘한 때문만은 아니었다. 18세기 중반 영국은 몇 차례나 심각한 흉작을 겪었으며, 이는 곡물가격을 상승시켰다. 동시에 18세기 중반부터 인구 증가로 인해 저소득층의 평균 임금이 하락하면서 진의 주 소비자였던 빈곤층의 경제적 형편이 더 어려워졌다. 여기에 진이 온갖 범죄와 성적 문란, 무질서 등을 조장하여 사회의 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로 반(反)음주 운동에 적극적이었던 개혁파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18세기 영국의 진 광풍은 복합적인 성격을 띤 현상으로, 마치 현대사회의 마약중독과도 같은 일종의 신드롬이었다. 이는 도시 빈곤층 형성, 중독성 물질의 대량생산과 유통, 범죄, 국민 건강 문제 등 도시화된 현대문명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회적 문제들을 일찍이 예고한 현상으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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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경 /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으로 학사를 받고 동 대학에서 석ㆍ박사를 취득했다. 르네상스와 17ㆍ18세기 영문학을 전공했고, 저서로 [고전영문학의 흐름] 등이 있다. 한국18세기영문학회장, 한국18세기학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중세르네상스영문학회 회장으로 있다.
 
발행 2012.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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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의 주산지인 전라도가 명산지로 알려진 술, 죽력고(竹瀝膏). 죽력은 간, 심장, 위, 폐 등의 질환에 작용하는 치료제로도 사용된다.

 

 

명약주로 널리 화자된 죽력고

앞서 소개한 관서감홍로와 이강고에 이은 ‘조선 3대 명주’의 한 가지는 전라도지방의 죽력고이다. 일반적으로 죽력(竹瀝)이라고 하는 것은, 푸른 대(靑竹)의 줄기를 숯불이나 장작불에 쪼여 흘러나오는 수액같은 기름(膏)을 가리킨다. 이 죽력은 ‘죽즙(竹汁)’, ‘담죽력(淡竹瀝)’으로도 불려지고 있어, 그 성질이나 형태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죽력을 섞어서 증류한 소주를 죽력고(竹瀝膏)라고 하며, 한의학에서는 이 죽력고를 만들 때 생지황, 꿀, 계심, 석창포 따위와 함께 조제하여 아이들이 중풍으로 별안간 말을 못할 때 구급약으로 쓴다고 알려져 있다. 전통적으로 알려져 온 최고급 상품의 술로, 죽력고는 술의 주재(主材)가 대나무에 있으므로 대나무의 주산지인 전라도가 명산지로 알려져 왔다.

 

이러한 죽력고가 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소위 ‘녹두장군’으로 불렸던 전봉준(全琫準, 1853~1895)과 관련된 얘기가 세간에 회자되면서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전하는 얘기로, 조선 말기의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이 쓴 [오하기문(梧下奇聞)]에 “전봉준이 관원에게 사로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여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지역 주민들이 이 사실을 알고 죽력고를 가져다 마시게 했으며, 죽력고 3잔을 마시고는 몸이 나았으며, 수레 위에서 꼿꼿하게 앉은 채로 서울로 압송되었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이후 ‘죽력고는 멍들고 병든 몸을 추스르는 이만한 약도 없다’ 하여 명약주로 널리 회자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죽력은 간과 심장, 위, 폐 등의 질환에 작용하여 치료제로 사용되는데, [별록(別錄)]에는 “갑작스런 풍사의 침법으로 저리고 흉부에 열이 심한 증상을 치료하고, 가슴이 번잡하고 답답한 증상과 갈증을 해소한다.”고 전하며, [본초강목]에는 “임신으로 인한 어지럼증과 중풍증상을 치료하며 초오(草烏)의 독을 푼다. 혈압을 다스리고 중풍 등 혈관관계 질병과 기관지천식, 어혈을 풀고, 뇌졸중으로 인한 언어장애와 해열작용에도 효과가 있다.”고 전해온다. 특히 조선 중기 1766년에 발간된 [증보산림경제]를 비롯하여 1827년 간행된 [임원십육지], 그리고 1924년 출판된 한글조리서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도 죽력고의 제조법과 효능에 대해 언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증보산림경제]와 [임원십육지]에 수록된 죽력고의 주방문(酒方文)을 보면, “죽력을 꿀과 소주를 적당히 넣어 항아리에 담고 끓는 물에 중탕한 다음, 꺼내어 사용한다. 혹 생강즙 약간을 넣어도 좋다.”고 하여 그 제조법이 매우 간단하다. 하지만 훨씬 후의 기록인 1924년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주방문은 “죽력과 꿀을 마음대로 소주병에 넣고 중탕하여 쓰는데, 강즙(薑汁)을 넣어도 좋으니라. 죽력은 법제(法製)로 내야 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죽력은 대나무의 진액을 가리키는데, 이 죽력을 얻는 간단한 방법으로 푸른 대나무를 마디마디 잘라서 마디의 한 가운데를 숯불로 달구면 마디의 양 옆으로 눈물같은 죽력이 새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하여 필요한 양의 죽력을 얻으려면 대나무의 소요량도 많거니와 하루이틀에는 마칠 수 없다. 한편 법제한 죽력을 얻기는 이보다 까다롭다. 이를 보아 죽력고가 그 제조과정이 까다롭다고 하는 데에는 주재료라고 할 수 있는 ‘죽력’의 제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나무와 죽여(속껍질). 30~40cm 길이로 잘라 쪼개 사용한다.

 

 

길고 힘든 제조과정을 거쳐 탄생되는 죽력고

한편, 누대에 걸친 전승 가양주로 양조되어 오다가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의 가양주 제조금지와 밀주단속으로 말미암아 단절된 후 최근 복원되어 상품화된 전라도 태인지방의 죽력고가 있다. 그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송명섭(52세,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3호)에 의해 복원된 죽력고의 주방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대밭에서 청죽을 마디마디 잘라 다시 여러 조각으로 쪼갠 대나무를 항아리 안에 채곡채곡 채운 뒤, 같은 크기의 항아리에 엎어서 올린다. 항아리의 입구 사이를 젖은 한지로 메우고 황토를 개서 항아리 몸 전체를 발라준다. 땅바닥에 콩대를 깔고 황토 바른 항아리를 올린 다음, 그 주변에도 쌓아 올린 후 불을 붙여 불기운이 항아리를 덥히도록 한 후에 왕겨로 두텁게 항아리를 완전히 덮어준다. 이때 왕겨 속의 콩태에 붙은 불은 일정량의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시름시름 타오르게 되고, 위쪽의 대나무조각을 채운 항아리 주변을 일정한 온도로 덥히게 되는데, 그 뜨거운 열로 인하여 대나무의 수액이 빠져 나오게 되고 밑에 밭쳐 둔 항아리 안으로 고이게 된다. 이와 같은 작업은 3일~5일간 진행되는데, 중간에 눈, 비로 인해서 불이 꺼지거나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불길이 솟아올라서는 망치게 되므로, 질 좋은 죽력을 얻기 위해서는 불을 잘 조절하는 일 못지 않게 더러 날씨 선택이 중요한 관건이 되기도 한다.

 

죽력을 만들기 시작한지 3~4일이 지나 왕겨의 불이 스스로 다 꺼지면 작업이 끝나는데, 항아리가 완전히 식기까지 하루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한다. 항아리가 다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항아리에 발랐던 황토를 털어내야 항아리가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난한 작업 끝에 엷은 보리차 색깔의 죽력을 얻을 수 있는데, 정작 죽력고 제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죽력고를 빚기 위해서는 소위 ‘기주(起酒)’가 필요하다. 감홍로나 이강고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기주는 소위 소주의 원료주(술밑)를 지칭하는데, 특별한 방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법(常法)으로 발효시킨 술이면 된다. 상법의 술은 흔히 ‘멥쌀을 백세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고두밥을 짓고, 고두밥이 식으면 누룩과 물을 적당량의 비율로 섞고 발효시켜’ 술밑을 빚는다. 그리고 술밑은 한 차례로 끝내기도 하고 두세 차례 빚기도 하며, 양조횟수를 거듭할수록 좋은 소주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소주를 많이 내야 하므로, 일반적인 주방문보다 누룩의 사용량이 많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발효가 되면 3~5일간 숙성을 시킨 후에 청주나 탁주, 막걸리를 만들어 가마솥에 담아 안치고 불을 지펴 술을 끓인다. 이어 솥 위에 소줏고리를 앉히게 되는데, 이때 솔잎과 죽엽·생강·계피·석창포 등의 약재를 먼저 만들어 둔 죽력에 흠씬 적셔서, 소줏고리 몸 안의 빈 공간에 가득 채운 다음, 술이 끓고 있는 솥 위에 앉히고, 소줏고리 위에 냉각수 그릇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솥과 소주고리, 소주고리와 냉각수 사이의 틈새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소줏번(밀가루반죽)을 붙여 증류시 기화(氣化)된 알코올이 새어 나오는 것을 막아주어야 한다. 이제 죽력고를 빚을 수 있는 준비가 모두 끝난다. 보통 증류할 술이 1말(18L)이면 증류과정을 통하여 대략 30%~35%의 증류식 소주 5.4~6L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증류된 죽력고는 ‘울창한 대숲에서 느끼는 죽풍의 상쾌한 느낌의 향기와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맛, 그리고 마시고 난 뒤의 은은한 흥취를 주는 술’로, 고도주를 선호하는 일부 현대인들의 취향에도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듣고 있다.


대나무에 불을 쬐이면 그 열로 수액인 죽력이 추출되게 된다.

 

감홍로, 이강고, 죽력고는 과음을 해도 어느 정도까지는 취하지만 필름이 끊기는 현상 같은 부작용이 없고, 다음날에도 몸이 오히려 개운해지는 느낌 때문에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꾸준하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반응이다. 육당 최남선이 이들 주품에 대하여 ‘조선 3대 명주’라는 작위를 부여하게 된 이유가 다름 아닐 것이다. 그가 이들 주품에 대하여 어느 정도 섭렵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 수 없어 뭐라고 단정할 수 없지마는, 필자의 견해로는 그의 술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 상식이 아닌 혜안을 지녔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제 와인이나 맥주, 사케에 쏟았던 관심만큼만 우리 전통주에 기울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확한 근거나 이유 없이 그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구태의연한 얘기가 아니라, 보다 차별화, 개성화를 추구하고 있는 세계화 속에서 우리 전통주가 양주와 어떻게 차별화되고, 또 어떤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무시’를 당하지 않는 길이자, 그것이 곧 전통주의 브랜드 가치를 부여하는 수단이 되기에 하는 말이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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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고는 전라도 전주가 명산지라고도 하고, 황해도 봉산이 그 본거지로 유명하였다고도 한다.

 

 

조선 3대 명주, 이강고

좋은 술이란 무엇보다 ‘자꾸 마시고 싶다’거나 ‘자신도 모르게 입에 가져가게 되는’ 술이 아닐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눈으로 보았을 때 ‘아름답다’거나 ‘환상적이다’는 생각을 주어야 한다. 특히 술 빛깔이 화려한 황금색이라면 더욱 매료될 것이다. 둘째는 진한 향기로 후각을 자극하여 뇌로 하여금 입안에 침을 돌게 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술 향기는 특히 과일향기나 꽃향기를 우선으로 하는데, 이 두 가지 향기가 동시에 느껴지면 더욱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셋째는 시각과 후각을 통한 기대감에 부응하여, 술이 입술에 닿았을 때의 감각으로, 농밀한 질감과 함께 달고 부드러운 ‘꿀맛’을 연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입에 머금었을 때 달고 시고 맵고 쓰고 떫은 다섯 가지 맛에, 시원한 맛 또는 상쾌한 맛을 다 느낄 수 있어 ‘마시고 싶다’거나 ‘맛있다’는 감동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이와 더불어 마실 때나 마시고 났을 때 ‘즐겁다’거나 ‘기분이 좋다’는 느낌이 가능한 오래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 명주의 조건이다. 소위 좋은 술만이 줄 수 있는 ‘향취’요 ‘흥취’이며, 또한 ‘아취’이다. 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춘 명주를 대하면 누구든 기꺼이 비싼 대가를 지불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조선 3대 명주’ 가운데 하나가 ‘이강고’라는 술이다.

 

 

유래에 대한 설과 옛 문헌 속 이강고

이강고는 전라도 전주가 명산지라고도 하고, 황해도 봉산이 그 본거지로 유명하였다고도 하는데, 울금의 재배지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과 울금 재배지와는 무관하게 이강고의 제조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동시에 존재한다. 전라도 전주 유래설과 관련하여 제조법의 한 예를 보면, “전주는 조선왕조의 본향으로, 당시 궁중의 전매품이었던 울금의 재배지였고, 인근에 봉동의 생강과 이서의 배가 유명하여 이들을 재료로 하는 이강고의 명산지가 되었다.” 한다. 황해도 유래설로는 “황해도 봉산의 배가 유명하였으며, 전주와 함께 울금의 재배지였다.”는 사실과 함께, “이들 특산품이 공히 진상품이었다.”는 점에서 황해도 명산지 설이 등장하게 된 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정확한 기록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조선 중엽의 문헌인 [증보산림경제(1766년 간)]의 이강고 주방문을 보면, “배를 껍질 벗기고 기와돌 위에 갈아 즙을 내어 고운 헝겊으로 밭쳐 찌꺼기를 버리고, 생강도 즙을 내어 밭쳐 찌꺼기를 버린다. 이 두 가지와 흰 벌꿀을 섞어 소주병에 넣은 후 중탕한다.”고 하였고, 1827년의 [임원십육지]에는 “아리(鵝梨, 거위의 깃털처럼 희고 향과 맛이 진하며, 껍질이 얇고 즙이 풍부한 배)의 껍질을 벗기고 돌 위에서 갈아 즙을 고운 베주머니에 걸러서 찌꺼기는 버리고, 생강도 즙을 내어 밭친다. 배즙, 좋은 꿀 적당량, 생강즙 약간을 잘 섞어 소주병에 넣은 후 중탕하는 방법은 죽력과 같다.”고 하여 울금의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임원십육지]의 기록보다 100년 후인 1925년에 간행된 것으로 알려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수록된 ‘리강고(梨薑膏)’ 주방문을 살펴보면, “배(梨鵝)를 껍질 벗기고 갈아 즙을 내어 전대(錢帶)에 짜 찌끼는 버리고, 생강도 집을 내고 꿀에 타서 소주병에 들어붓고, 그 병을 끓는 물에 넣고 중탕하였다가 꺼내어 쓰느니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최근의 조사자료라고 할 수 있는 고려대학교 [한국민속대관(1982년간)]에는 “약주의 하나이며, 배 껍질을 벗겨 기와돌 위에 갈아 즙을 내고 찌꺼기는 버린다. 여기에 생강즙과 흰 벌꿀을 잘 섞어 소줏병에 넣은 후 중탕한다.”고 하여, 역시 생산지와 관련한 제조법에서처럼 울금이 사용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말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에 의해 1935년 간행된 [조선주조사]의 이강주에는 “담황색의 감미료 주정음료의 일종으로, 상류사회에서 칭찬받고 있다.”고 전제하고, 그 제법은 “외피를 제거한 배 5개와 생강 50급을 진유제어판(眞鍮製御板)으로 갈아 뭉개어 이것을 울금 및 계피의 조분 각 18.7g을 소주와 함께 끓여서 침출한 용액 1~2홉을 포대에 넣어서 소주 1말에 750g의 설탕을 가한 액중에 투입하여 2~3시간 방치하면 울금에서 오는 황색과 계피, 배, 생강에서 울어 나오는 특이한 향기의 술 약 9되 5홉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울금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전주지방에 5대째 누대로 전승되어오고 있는 가양주이자, 이 지방의 대표적인 특산주로 알려진 ‘이강주(전라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 6호)’가 있는데, 전주 이강주 기능보유자인 조정형(73세)씨에 따르면, “멥쌀을 깨끗이 씻어 하룻밤 불렸다가 건져서 고두밥을 짓고 차게 식힌 후, 누룩과 물을 섞어 술밑을 빚어 발효시켜 밑술을 얻는다. 이 밑술에 보리쌀을 깨끗이 씻어 하루 동안 불린 뒤, 건져서 물기가 빠지면 고두밥을 찌고 차게 식힌 다음, 누룩과 물을 섞고 고루 버무려 다시 4~5일간 발효시킨다. 이렇게 빚은 보리술을 체에 걸러 가마솥에 안치고 가열한 뒤, 소줏고리를 얹어 중간불로 가열하여 증류식소주를 얻는데, 이 소주는 이취가 심하여 재차 증류하여 이취를 없앤 뒤 증류수를 첨가하여 알코올도수 30%의 소주를 만든다. 이 소주 1말에 대하여 배 5개 생강 20g을 강판에 갈아 걸러낸 즙과 미세하게 간 계피가루와 울금, 벌꿀을 고루 섞어 숙성시키면, 알코올함량 25%의 이강주를 얻는다.”고 하였다.

 

이강고의 주재료(증류식소주)와 부재료(배즙, 울금가루,계피가루) 모습.

강판에 갈아낸 배즙을 여과해 소주에 넣는 모습.

 

 

정리하면, 조선 전기까지 울금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울금이 전주지역의 전매품이자 특산품으로 자리잡으면서 이 울금을 술에 넣게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증류식 소주에다 배와 생강, 벌꿀, 울금 외에 ‘계피’가 추가되는 경향도 그러하거니와, 도수 높은 술의 목넘김을 부드럽게 하고 알코올 도수를 다소 낮추는 목적으로 제조법을 자연스럽게 변형하는 것이 가양주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때 더욱 그렇다.

 

어떻든 이강고는 배와 생강, 울금, 계피, 벌꿀 등의 약재를 넣고 우려내거나 중탕한 술이라는 사실에서, 술을 여러 차례 증류하여 약재를 넣은 형태인 감홍로주와 차별화되는 전통주라고 할 수 있다.

 

 

전주 이강주로 맛보는 청량감

이강고는 알코올도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벌꿀이 사용되어 목넘김이 부드럽고 좋아 자꾸 마시고 싶어지며, 마시고 나면 입안이 화해지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받게 된다. 알코올도수 30% 이상의 술에서는 어지간해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런 맛이다. 더욱이 “과음을 하고 난 후에도 숙취가 없으니 두고두고 취흥을 얘기하게 된다.”는 것이 이강고를 마셔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이고 보면, 육당 최남선 선생이 이강고를 ‘조선 3대명주’로 소개한 내력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

 

전해오는 바, 이러한 이강고는 조선 후기 “고종(高宗) 때 한미통상회담의 대표들이 마셨다.”는 기록과 함께 “예로부터 주향과 맛이 뛰어나 신선들과 잘 어울린다.”는 평을 얻어 상류층을 대표하는 전통주로 자리매김되어 왔다. 특히 시원한 단맛의 배와 매운맛의 생강이 어울려 자아내는 청량감이 일품인데, 생강은 술맛을 좋게 하면서도 위에 자극을 주지 않게 해주는 건위작용과 함께 고유의 향과 매운 맛은 향취를 돋궈준다고 하겠다. 또한 피로회복은 물론 중화작용으로 신체의 기능조절에 도움을 주는 울금과 수족냉증치료는 물론 관절염 치료와 위궤양억제효과 및 소화촉진 등의 효능이 알려진 계피는 벌꿀과 조화를 이뤄 심장병 예방효과로 이어진다고 한다.

 

풍부한 계피향기로 말미암아 이강고의 향취는 더욱 배가되는데, 조선 3대 명주 가운데 이강고가 유일하게 현대화 과정을 거쳐 ‘전주이강주’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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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이 조선의 3대 명주 중 하나로 뽑은 관서감홍로. 곱게 물든 것 같은 붉은 색이 특징이다.

 

 

조선시대 관리들이 아끼던 술

‘명주삼절(名酒三絶)’이란 말이 있다. 술의 향기와 맛, 색을 가리키는 것으로 ‘명주삼절’ 중 특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색깔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술인 관서(關西) 지방의 감홍로(甘紅露)을 소개하고자 한다.

 

관서감홍로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밀주단속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겼던 술인데, 한말의 학자이자 시인이기도 했던 육당 최남선에 의해 먼저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고 최근에 다시 조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남선은 그의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의 3대명주’ 가운데 관서감홍로를 으뜸으로 꼽고, 다음으로 전라도의 이강고와 죽력고를 다음으로 소개하면서, 제조방법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소개해 놓았다.

 

관서감홍로는 술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관서지방에서 생산되고, 그 맛이 달고(甘) 붉은 빛깔(紅)을 띄는 이슬 같은 술(露)’이라는 뜻이다. 평양을 중심으로 한 관서지방의 특산명주로 알려져 왔던 까닭에 ‘관서감홍로’ 또는 ‘평양감홍로’로도 불려져 오게 되었다. 관서감홍로는 조선시대 중기 1787년의 간행된 것으로 알려진 [고사십이집]을 비롯 1827년의 [임원십육지], 1849년의 [동국세시기] 등의 여러 옛 문헌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들 문헌에 “관서감홍로는 세 번 고아서 만든 소주를 이용하여 만든 만큼 맛이 매우 달고 맹렬하며, 술 빛깔이 연지와 같아 홍로주 가운데서도 으뜸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관서감홍로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구전해온다. 과거 조선시대에 외직(外職)의 지방 관리로서 최고의 선망 관직은 평양감사였다고 한다. 때문에 벼슬길에 오른 사람이면 평양감사가 되는 것을 가문의 영광이자 출세를 보장받는 길로 여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정기간 그 직에 있게 되면 승진이나 보직 순환의 예에 따라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중앙부처에서 어느 평양감사를 내직(內職)으로 승차시켜 불러들였는데, 정작 당사자인 평양감사는 ‘내직승차는 감사하나 계속해서 평양감사로 봉직(奉職)할 수 있게 해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한다. 그 이유를 알고 보니, ‘감홍로를 못 잊어 평양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평양감사도 저 싫다 하면 하는 수 없다’는 말이 생겨났다는 속담도 있고 보면, 감홍로의 맛을 보지 않고서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이 불가하다고 하겠다. 관서감홍로의 향기와 맛이 과연 어떠하였기에 권세도 부귀영화도 마다하였을까?

 

한편 관서감홍로 외에도 조선시대 관리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았던 또 다른 술로 영광지방의 강하주(薑荷酒)가 있다. 영광지방의 강하주에 얽힌 다음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영광고을 현감이 내직으로 승차해 홍문관으로 발령을 받았는데도, 내직 승차를 마다하고 ‘이 고을 현감으로 봉직할 수 있게 해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한다. 그 연유를 물으니, ‘영광고을의 강하주와 참조기가 맛이 좋은데 승차해 한양으로 가게 되면, 더 이상 강하주와 조기를 맛볼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는 것이다.

 

과거 조선시대 선비들이 간구했던 대망(大望)은, 과거에 등과해 입신양명하는 것이었다. 특히 홍문관의 관원이 되는 것은 학문하는 선비들 사이에서는 명성과 함께 출세를 보장받는 요직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도 홍문관 관원이 되는 것 보다 영광고을 현감으로 봉직하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얘기는 당시 이 고을의 특산주였던 강하주의 명성을 뒷받침해준다고 할 것이다. 강하주는 현재 보성 회천면 율포리에 사는 도화자 씨가 맥을 이어 전라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45호가 되었다.

 

가마솥에 물을 붓고 술을 다시 붓는 모습.

술이 뜨거워지면 다시 물을 붓고 끓기를 기다린 후 다시 술을 붓는다.

 

 

독한 술에 벌꿀을 넣어 주독을 풀게하다

관서감홍로의 특징은, 무엇보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 어떤 전통주보다도 밝고 붉은 선홍색의 자극적이고 화려한 색깔에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선홍색의 발현은 증류과정 또는 증류 후의 착색과정에 기인한 것으로, 부재료로 사용되는 지초(芝草)라고 하는 건근 약재에 의한 착색에서 비롯된 색깔이다. 그 빛깔이 어찌나 붉고 밝던지, 혼례 때 신부들의 볼에 바르는 연지와 같다 했으며, 이 색깔에 따른 강한 시각적 자극은 구미를 돋우는데 적격이다 할 수 있다. 또한 여느 소주류와는 다르게 두세 차례 증류를 한 까닭에 알코올도수 45~70%에 이르는 고도주인 데도 벌꿀을 사용하여 그 맛은 달고 부드럽거니와, 마시고 나면 타들어가는 듯 강한 자극적인 맛에 오히려 시원하다는 느낌을 준다.

 

사실 감홍로는 진도지방의 홍주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증류식 소주는 탁주나 청주, 약주 등 여느 전통주처럼 그 양조과정이 같다. 다만, 진도홍주는 주재료를 보리쌀로 빚는 데다 소줏고리로 한 차례 증류하는데, 그 과정에서 소줏고리의 귓대 밑에 지초(芝草)를 밭쳐둠으로써 귓대를 통해 떨어지는 소주방울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지초를 통과하게 되는 순간 지초 고유의 색깔인 선홍색의 옷을 입게 되어 붉은 빛깔을 띠게 되므로 붉은 술 빛깔 그대로 ‘홍주(紅酒)’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감홍로는 진도홍주와 같은 방법을 기본으로 하여 소주를 얻는데, 일반 소주와는 달리 한두 차례 증류과정을 더 반복하여 보다 더 높은 알코올도수의 증류주를 얻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감홍로의 특징이랄 수 있는 붉은 색과 단맛을 부여하기 위하여 소주에 지초와 벌꿀을 넣어 술 빛깔과 단맛을 얻게 되는데 술을 빚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홍국(紅麴)’을 비롯하여 용안육(龍眼肉), 진피(陳皮), 방풍(防風) 등을 추가시키기도 하는 것을 여러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임원십육지]에는 지초 대신 ‘장미꽃’이나 매화, 감국, 당귀, 생강 등 각각의 약재를 넣어 빚어, ‘장미로(薔薇露)’, ‘매화로(梅花露)’, ‘감국로(甘菊露)’, ‘생강로(生薑露)’, ‘당귀로(當歸露)’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관서감홍로는 소주에 사용되는 부재료에 따라 술 이름이 달라지는, 이른 바 혼성주의 한 가지로, 진도지방의 홍주나 궁중의 홍로주(紅露酒)와 별반 차이가 없는 같은 홍주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관서감홍로는 단지 독한 술에 감미와 향기를 주어 독한 맛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벌꿀이 추가될 뿐이다.


소줏고리로 증류하는 모습.

 

하지만 같은 홍주라고 할지라도 관서감홍로가 평양지방의 명주(銘酒)로 뿌리를 내리게 된 배경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관서지방은 북쪽에 위치해 있어 한 겨울철의 추위는 뼈를 에이는데, 이때 추위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수단을 필요로 하게 된 것이 감홍로의 알코올도수가 높아진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도수가 높은 술을 상용하게 되면 주량이 큰 사람이라도 주독(酒毒)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바다. 따라서 주독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으로 달고 부드러운 맛의 벌꿀을 넣음으로써 그 맛을 부드럽게 하는 한편, 과음을 억지시킬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벌꿀에는 주독을 풀어주고 가슴앓이나 근육통·치통을 해소하는 작용과 장의 대사기능을 활성화를 비롯하여 비타민 B군이 풍부하여 신경 자극을 완화시켜주는 효능이 있다. 또한 불면증을 다스려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감홍로는 맹렬하다할 만큼 독한 맛을 간직하면서도 매우 달고 부드러운 맛과 연지와 같은 아름다운 술 빛깔을 특징으로 애주가들을 사로잡아 왔다. 필자는 관서감홍로를 재현하여 수십 차례 지인들에게 명절 선물로, 또는 평소 연구소를 찾아오는 손님들의 접대와 특별한 술자리에 이용해 오고 있는데, 그 반응은 한결같다. “어떻게 하면 이 술을 자주 맛 볼 수 있겠습니까?” 또는 “왜 이와 같은 좋은 술들은 상품화가 안되는 것입니까?” 하는 반응이다. 필자 역시 하루빨리 관서감홍로가 상품화되어 더욱 널리 대중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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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전통주 가운데 그 역사가 매우 깊은 술로 전해져 오는 소곡주.

 

 

가장 대중적인 명성을 누렸던 토속주

우리나라의 전통성을 간직한 술로써 가장 대중적인 명성을 누렸던 토속주의 하나가 소곡주(小麯酒)이다. 소곡주는 현존하는 전통주 가운데 그 역사가 매우 깊은 술로 전해오고 있다. 사실 그 어떤 사실적 기록이나 뚜렷한 근거는 없으나, [박씨전]에 “백제의 마의태자가 개골산에 들어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술로 풀었는데, 그 맛이 소곡주와 같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 이미 삼국시대 때부터 명성을 얻었던 술로 추측된다. 구전 되는 이야기 중에는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 함락된 후 백제 유민들이 지금의 한산의 주류성에서 마지막 항거를 하며, 나라 잃은 슬픔과 한을 달래기 위해 빚어 마셨다.’는 일화와 함께 ‘한양에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가 한산을 지나다 타는 목을 축이려고 주막에 들렸는데 기막힌 술맛에 반해 취하여 시를 읊고 즐기면서 시간을 허비하다가, 결국 한양을 가지 못하고 과거 또한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다안왕 11년에 추곡이 흉작이 되자 식량이 부족하므로 민가의 사양주(私釀酒)의 하나인 소곡주를 전면 금지시켰다.” 하였고, “무왕 37년(서기 635년) 3월에 왕이 신하들과 더불어 사비하북포(백마강변)의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강상(江上)에서 이 술을 마시고 그 흥이 극치에 달했다.”고 하는 얘기가 전해오는 것으로 미루어, 이 술 역시 백제의 영토였던 한산지방의 사양주인 소곡주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후 소곡주는 특히 한산 지역 주민들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오다가 한때 정부의 밀주단속으로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는데, 1980년대 초 정부의 민속주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다시금 옛 명성을 구가하기 시작했다.

 

 

일명 ‘앉은뱅이 술’, 한산 소곡주

한산 소곡주는 한산면 호암리에 사는 우희열(禹喜烈, 74세) 씨가 그 기능보유자로, 유일하게 전통의 맥을 이어와 지난 1979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상품화되어 옛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첫손가락을 꼽는 유명주가 되었다. 한산소곡주의 전승내력을 살펴보면, 우희열 씨의 시어머니(고 김영신, 1916~1997)의 “8대조 김정현(金正鉉, 1740~1806년) 때부터 가양주로 빚어 온 것으로 전”하며, “기록으로는 5대조 김현황(1812~1888)의 부인 담양 전씨(숙부인)로부터 김씨 집안의 여인들에 의해 전수되었으며, 시어머니께서 한산의 나씨(나인원) 집안에 시집오면서 나씨 집안의 가양주로 뿌리내리게 되었고, 시어머니께 배워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한다.

 

한산 소곡주는 엷은 담황색을 띠며 은은한 향과 혀끝을 감아도는 감칠맛이 일품이다. 또 아스파탐이나 올리고당 등 식품첨가물이 전혀 함유되지 않은 순수한 곡주의 맛과 향을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찹쌀로 빚어 맛이 순하고 부드러우며 뒤끝이 깨끗하다. 사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비롯한 여러 기록에도 ‘한산지방의 소곡주는 그 맛이 좋다’ 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옛날부터 유명세를 얻었으며, “한번 앉아서 마시다 보면 그 맛에 취해 일어날 줄 모른다.” 하여 ‘앉은뱅이 술’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려지고 있다. 이 밖에도 한산 소곡주는 감국과 콩, 홍고추 등으로 인한 청혈해독의 약리작용과, 말초혈관을 확장하고 혈관운동 중추를 억제하는 혈압강화작용이 있어, 고혈압 방지에 좋은 술로 알려져 있다. 무형문화재 한산 소곡주는 음력 9,10월에 생산된 햅쌀과 햇찹쌀로 술을 빚기 시작하여 이듬해 2,3월까지가 술빚는 적기라고 하며,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는 양력 3~4월 경에 거른 술이 가장 맛이 좋은데, 무엇보다 한산면 지현리 건지산기슭의 샘물로 빚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술 이름도 원래는 누룩을 적게 쓴다는 뜻의 ‘소곡주(小麴酒, 小麯酒)’였으나, 이 지방에서만이 소곡주(素麯酒)로 불려지고 있다.

 

‘소곡주’가 이 지방에서만 소곡주(素麯酒)로 불려지게 된 배경은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일본 최고(最古)의 정사(正史)인 [고사기(古事記)]를 보면 ‘백제사람 인번(仁番)이 술 빚는 법을 처음 알려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인번이 일본에 표류했을 당시 백제의 대표적인 술이 소곡주였으므로, 인번이 일본에 전한 술도 소곡주였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국주(國酒)’라 불리는 사케(청주)의 원조가 바로 소곡주이다.”고 하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 그것이다. 그 배경은 ‘일본의 사케는 우리나라 전통주보다 밝은 술 빛깔을 자랑하는데, 소곡주에서 유래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견해는 좀 다르다. 한산소곡주가 문화재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가양주로 소곡주를 빚고 있었던 고 김영신씨의 소곡주 제조과정을 수 차례 취재하게 되었는데, 필자를 만날 때마다 김영신 씨가 주로 매달리는 작업은 누룩을 분쇄해서 햇볕에 말리는 소위 ‘법제(法製)’ 과정이었다. 법제된 누룩은 예사 누룩보다 곱고 뽀얗다고 할 정도로 하얗게 바랜 상태였다. 김영신 씨에 따르면, “이렇게 햇볕에 바래야 술이 깨끗하고 맑아진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필자는 ‘햇볕에 하얗게 바랜 흰누룩으로 빚은 술’이라는 의미에서 소곡주(素麯酒)로 불려지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소곡주라는 술이름과 같이 누룩의 양에 따른 술이름을 갖는 주품이 없거니와, 국내 최고의 기록인 [산가요록]을 비롯하여 1915년에 쓰여진 [부인필지]와 1936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문헌에서도 소곡주(素麯酒)라는 명칭의 표기를 발견할 수 없을뿐더러 문헌상의 어떤 소곡주보다 한산 소곡주가 누룩의 양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더욱이 지방마다의 세시풍속을 수록하고 있는 [동국세시기]에도 한산지방의 소곡주를 ‘소곡주(少麴酒, 小麴酒)’로 기록하고 있어, 소곡주(素麯酒)로 불려지는 이유를 밝힐 수 없었다.

 

 

한산소곡주와 다른 문헌들 속의 소곡주

어떻든 이러한 소곡주는 [산가요록]을 시작으로 [산림경제], [규합총서], [요록], [규곤시의방], [임원경제지], [역주방문], [시의전서], [양주방] 등 조선시대 양조 관련 수 많은 문헌에 다양한 방법의 소곡주 제조법이 등장하고 있고, 문헌마다 다르지만 대략 7가지 방법이 알려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소곡주가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술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 문헌에 소개되고 있는 소곡주는 대개가 두 번 빚는 이양주법(二釀酒)의 순곡주이고, 더러 삼양주(三釀酒) 소곡주를 볼 수 있으나, 한산 소곡주는 유일하게 부재료가 들어가는 약주(藥酒)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한산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소곡주와, 옛 문헌에 수록된 채 맥이 끊겨버렸던 여러 종류의 소곡주를 재현하여 서너 차례의 시음회를 가져 본 결과, 한산 소곡주는 부드러운 감미와 감칠맛이 뛰어났고, [산림경제]와 [임원십육지], [규합총서]의 소곡주는 쌉쌀한 듯 하면서도 달콤한 맛과 독특한 방향(芳香)이 뛰어났다. 특히 한산 소곡주는 술을 빚는 과정에서 쌀을 가루로 빻아 쪄서 만든 백설기(흰무리) 상태로 하여 밑술을 빚고 찹쌀고두밥과 국화, 엿기름, 콩, 홍고추 등 부재료를 넣어 덧술을 하는 반면, 기록에 나와 있는 소곡주들은 멥쌀과 누룩, 물이 주재료의 전부이고, 밑술을 빚는 과정에서 멥쌀을 가루로 빻아 죽이나 범벅을 만들어 밑술을 빚고 이어 멥쌀로 고두밥을 지어 덧술을 빚는다는 점에서 일반 소곡주와는 다른, 약주류(藥酒類)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편 200여년 전의 기록으로 1815년에 쓰여진 [규합총서]에는 “정월 첫 해일에 냉수 8되를 술독에 붓고, 섭누룩 7홉을 넣어 3일간 불렸다가 제물에 체로 걸러 밭친 다음, 멥쌀 5되를 백세작말하여 흰무리를 짓되, 열어 보지 말고 쪄서 슬슬 헤쳐서 더운 김에 수곡에 풀어 넣는다. 이어 술을 3일간 발효시킨 후, 3일만에 동도지(東桃枝)로 흰무리가 풀어지도록 저어 차게 덮어 둔다. 2월쯤 밑술의 맛을 보아 달콤 씁쓸하면 멥쌀 1말을 백세하여 하룻밤 담가 불렸다가 다음날 건져서 고두밥을 짓는데, 이때 찬물을 7~8되 가량 뿌려 주면서 무르게 푹 익힌다. 고두밥이 익었으면 슬슬 헤쳐서 더운 김에 밑술에 퍼 넣고 동도지로 풀어지게 고루 저어 준 뒤, 비교적 서늘한 곳에 두고 21일만에 뜨면 좋다.”고 하였다.

 

반면 앞서의 기록보다 365년 앞선 1450년경에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가요록]의 소곡주는, 먼저 “멥쌀 7말 5되를 씻어 물에 담갔다가, 가루로 내어 끓는 물로 죽을 쑤어 식힌다. 누룩가루 7되와 밀가루 5되를 합하여 술을 빚어 익힌다. 다시 멥쌀 7말 7되를 씻어 담갔다가, 온 채로 쪄서 식혔다가, 누룩가루 3되와 함께 섞고, 밑술에 합하여 빚는다.”고 하여 한산소곡주와 상이한 방문임을 알 수 있다. 위의 방문들은 법주나 방문주와 같이 죽이나 범벅 형태로 빚는 술에 이어 개발된 백설기 형태의 양조방법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전통주의 원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후 가양주문화가 발달하면서 개인의 취향에 따라 방법이 바뀌기도 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개발, 발전되면서 국화와 콩, 엿기를 등의 부재료가 추가되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게 한다.

 

어떻든 소곡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청주류의 한 가지로 자리매김 되어 왔는데, 소곡주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누룩을 적게 사용한다는 점이다. 누룩을 적게 사용함으로써 술 빛깔이 맑고 깨끗하며, 또한 아름다운 향기를 간직하게 된다. 둘째는 덧술을 할 때 고두밥에 온기를 남겨 밑술과 합하고 1차 발효시킨 뒤, 저온에서 오랜 기간 2차 발효 숙성시킨다는 점이다. 끝으로 술 빚는 시기에 대하여 ‘음력 정월 첫 해일에 밑술을 담기 시작’한다는 것으로 소곡주를 빚는 시기가 삼해주와 같이 겨울철이라는 점에서 장기발효주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소곡주와 같이 백설기로 밑술을, 고두밥으로 덧술을 해 넣는 술의 맛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향에 알맞고, 누구나 선호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곡주는 달고 부드러운 맛에서 떡으로 빚는 고급 방향주(芳香酒)를 빚는 요령과 비슷하고, 맑고 깨끗한 향과 깊은 맛을 얻기 위해 겨울철(저온발효)에 빚는 삼해주와 같이 장기저온발효 방법을 혼용함으로써, 명주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 몇 안되는 전통주라는 사실에서 소곡주의 중요성과 우리나라 전통주의 위상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소곡주 빚는 과정

1) 술을 빚어 발효시킬 술독은 연기를 피워 살균소독을 하고 안쪽을 깨끗하게 씻어내야 한다.

2) 밑술에 사용할 범벅은 쌀가루가 최대한 골고루 익도록 끓는 물을 나눠 붓고 주걱으로 고루 갠다.

 

3) 고두밥은 무르게, 고르게 익혀야 한다.

4) 고두밥을 고루 펼쳐서 차디차게 식힌 후 사용한다.

 

5) 고두밥에 밑술을 섞는 과정.

6) 밑술과 고두밥을 골고루 치대어 덧술을 빚는다.

 

7) 밑술과 고두밥이 잘 섞이도록 치대주는 작업은 전통주 제조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8) 잘 치대서 빚은 덧술은 술독에 담아 안친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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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변질을 막기 위해 발효과정 중에 특별처리를 한다는 점에서 과하주는 서양의 포트와인과 유사하다. 하지만 포트와인이 완성된 포도주에 주정을 첨가하여 재발효를 중지시키는 방법이라면, 과하주는 발효 중인 술에 소주를 첨가하여 발효 숙성시키는 개념의 양조기술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 전통술은 쌀 등의 곡식과 누룩, 물을 기본원료로 하여 발효시키는 ‘발효주(醱酵酒)’ 곧 ‘곡주(穀酒)’가 주류를 이루며, 이 발효주를 증류하여 소주(燒酒)를 만든다. 그런데 발효주는 순하고 부드러우며 맛과 향이 좋긴 하지만, 알코올 도수가 낮아 상온에서 변질이 쉽게 일어난다. 이에 비해 소주는 도수가 높아 오래 두어도 변질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맛과 향이 좋아지고, 소량을 마셔도 빨리 취하고 깨끗하게 깨는 것이 장점이지만, 음주에 따른 건강의 피해가 자못 크다는 것이 단점이다.

 

이러한 발효주와 소주의 단점을 보완한 술이 세계 최고(最古)의 과하주(過夏酒) 제조법이다. 과하주는 혼양주(混釀酒)로 분류하는데, 이 술빚기는 누룩과 곡식을 주원료로 술빚기가 이뤄지는 동양권을 비롯 세계에서도 우리나라만의 유일한 방법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통 과하주의 제조과정을 살펴보면, 쌀 등의 곡식과 누룩, 물을 재료로 발효시킨 술에 따로 빚어 증류한 소주를 넣어 재차 발효, 숙성시켜 완성됨을 알 수 있는데, 이와 같은 과하주의 주방문(술 빚는 법)을 기록한 옛 문헌으로 [규곤시의방], [술 만드는 법], [치생요람], [역주방문],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임원십육지], [양주방], [주찬] 등이 있다. 이들 문헌을 보면, 쌀과 누룩, 물을 주재료로 하여 빚은 술이 한차례 발효되면 익히는 과정, 곧 후발효에 들어갈 때쯤, 같은 방법으로 빚어 증류한 소주를 붓고 재차 발효, 숙성과정을 거치는 방법이다. 세계 최고의 양조기술을 개발해 낸 조상들의 뛰어난 지혜를 발견하는 부분이다.

 

흔히 일반인들이 양주의 하나인 와인에 대해 ‘오래될수록 좋은 과일주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포르투갈에서 개발된 소위 알코올강화와인이라 불리는 ‘포트와인(Port Wine)’의 등장 이후부터이다. 이 포트와인이 개발되게 된 배경과 그 방법이 우리의 과하주와 너무나 유사한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포트와인보다 개발 시기 앞선 과하주

17세기 견원지간이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100년 전쟁을 치르면서, 프랑스와인의 절대 소비국이었던 영국은 자국 와인 공급의 절대적 빈곤 상태에 처하게 되자 포르투갈 와인으로 대체하게 된다. 이때 포르투갈 와인이 배로 운반되면서, 오랜 항해 중에 변패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에 와인 변패의 진행을 막을 방법을 찾던 중 우연히 와인에 ‘브랜디(Brandy)’를 첨가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효모 증식과 발효를 정지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와인의 발효가 일정한 정도가 되었을 때 포도 속 당분의 절반 정도가 변화를 일으켜 알코올로 변하게 되는데, 이때 브랜디를 숙성 또는 완성된 와인에 적당량 첨가하여 알코올 농도가 20% 정도가 되도록 하면, 단맛이 있으면서도 일반적인 와인보다 알코올 농도가 강한 와인이 된다. 이것을 오크통(Oak)에 다시 일정기간 숙성시키면 포트와인이 되는데 제조 방법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포트와인이 만들어지고 상온에서도 저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과하주와 포트와인은 그 방법에서 유사하지만 기술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다. 즉, 포트와인이 완성된 포도주에 주정을 첨가하여 재발효를 중지시키는 방법이라면, 과하주는 발효 중인 술에 소주를 첨가하여 발효 숙성시키는 개념의 양조기술이라 할 수 있으며, 재발효를 중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또 한번의 발효를 일으키며 저장성을 획득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기술적인 면에서 앞선다고 볼 수도 있겠다.

 

또한 과하주의 발효법은 포트와인보다 앞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포트와인이 개발된 시기가 1750년 경인데 반해 과하주는 1600년대 초에 이미 제조되어 반가와 부유층을 중심으로 일반화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과하주는 우리나라의 기후상 온도와 습도가 높은 여름철에는 일반적인 양조가 힘들었으므로, 온도와 습도 등에 따른 술의 변패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발견한 술이였으며, 소주의 음용에 따른 주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개발된 것으로 부유층과 사대부가에서 여름철에 특별히 빚어 마시는 고급술이었다. 고급술이라는 말은 일반에 보급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는 말이고, 1670년에 발간된 [규곤시의방]에 과하주가 처음 언급된 것을 보아, 이미 한참 전(1600년대 초반)에 과하주가 개발된 것임을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지역과 재료에 따른 과하주

1450년경 저술된 것으로 알려진 [산가요록]에 과하백주가 등장하는데, 이때 과하백주는 소주가 사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1670년에 간행된 [규곤시의방]의 과하주와 17세기의 [온주볍]의 과하주는 후발효 과정에서 소주를 붓고 30~40일간 발효, 숙성시킨다고 나와있다. 또한 1827년의 [임원십육지]에 수록된 '오향소주'는 '찹쌀고두밥에 누룩가루와 끓인 물로 빚어 술이 발효되면 단향, 목향, 천궁, 정향, 인삼 등을 가루로 만들고, 호도, 대추 등과 함께 술독에 넣고 소주를 부은 뒤, 김이 새지 않도록 단단히 밀봉하고 7일 후에 술독 뚜껑을 한 번 열어보고 다시 밀봉하여 29일간 숙성시켜 마신다.'고 하였다. 문헌에 수록된 과하주는 그간 거의 맥이 끊겼고, 현재는 인삼, 대추 등 여러 가지 약재를 넣어 빚는 약용 목적의 지방색을 띤 토속주, 곧 전승 가양주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과하주이면서 강하주로 불리우는 술이 또 있는데, 수원시에 사는 김명자씨 댁의 약소주(藥燒酒)와 전남 영광읍 조희자씨 댁의 강하주(薑荷酒), 보성군 회천면의 도화자씨 댁의 강하주, 그리고 남원의 김길임씨 댁의 신선주(神仙酒)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이들 술이 각기 다른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도 과하주류에 속하는 것은 제조방법의 공통점과 부재료의 이용법에 따른 차이점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들 주류 모두 두 번 빚는 이양주이면서 술덧에 소주를 붓고 발효, 숙성시킨다는 것은 공통점이지만, 술 이름을 결정짓는 부재료의 종류나 사용방법을 보면 각각의 특징과 차이가 나타난다.

 

먼저, 수원의 약소주는 술에 넣을 재료 중 용안육은 그대로 사용하는 반면, 볕에 건조시킨 건삼(인삼)과 찜통에 넣어 찐 대추, 생강즙, 적당한 크기로 쪼갠 계피를 사용하는 등 소위 ‘법제’한 재료를 자루에 담아 발효 중인 술독에 깊이 쑤셔 넣어 발효, 숙성시키는 방법으로 빚어진다. 남원의 신선주는 부재료로 솔잎, 녹두, 밤, 인삼, 백복령, 죽엽을 물에 넣고 끓여서 절반으로 줄어들면 건더기와 함께 소주도 넣는다. 한편, 영광 강하주와 보성 강하주는 이름이 같지만 부재료가 다른 술이다. 영광 강하주는 부재료로 볶은 구기자, 찐 대추, 강활, 용안육과 함께 주머니에 담아서 술독에 쑤셔 박은 후 생강즙을 맨 마지막에 넣어준다. 보성강하주는 대추, 생강, 곶감을 부재료로 넣는데, 생강즙, 두 쪽 낸 대추와 곶감을 고두밥과 함께 섞어 덧술을 해 넣는다는 점에서 약재의 종류와 사용법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과하주류는 그 빛깔이 마치 오랜 세월 숙성시킨 브랜디와 같아, 시각적인 자극과 함께 여느 혼성주에 비해 향기와 부드러운 맛을 으뜸으로 친다. 과하주류의 이러한 맛과 특징은 주재료로 찹쌀을 사용한데다 대추, 계피, 생강, 인삼 등 감미와 방향성이 강한 약재가 들어가기 때문으로, 달고 부드러운 맛에 한 번 빠지면 취하는 줄 모르고 거푸 마시게 된다. 이 과하주의 술맛이 어떠하였는지, 조선시대엔 지방 수령들이 내직으로의 승차도 사양하거나 홍문관 관원들마저도 특히 굴비와 함께 이 술맛을 즐기려 전남 영광의 수령이 되기를 자원(自願)했을 정도였다고 전한다.

 

 

과하주 빚는 과정

 

1) 쌀가루에 끓는 물을 섞어 범벅을 쑨다

2) 범벅에 누룩가루를 섞는다

 

3) 밑술 혼화하는 과정

4) 밑술 안치는 모습

 

5) 발효가 끝난 밑술의 모습

6) 밑술을 손으로 주물러 놓는다

 

7) 고운체에 밑술을 걸러 찌꺼기를 제거한다

8) 누룩 찌꺼기를 제거한 밑술의 모습

 

9) 쪄서 차게 식힌 덧술용 찹쌀 고두밥 모습

10) 고두밥에 거른 밑술을 섞고 고루 치대어 술밑을 빚는다

 

11) 술밑 혼화가 끝나고 안치는 모습

12) 주발효가 진행중인 과하주 술독 모습

 

13) 소주를 부어 놓은 후의 술덧 상태

14) 소주를 부은 다음 후발효 중인 과화주 덧술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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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이 뛰어나 “차마 삼키기 안타깝다”라는 뜻을 가진 석탄주.

 

여러 문헌을 통해 살펴본 석탄주

이미 사라지고 기록이나 활자로만 남아있는 1천여 종의 전통주 가운데 필자가 맨 먼저 재현에 도전했던 술은 [임원십육지]에 수록되어 있는 ‘석탄향(惜呑香)’이라는 이름의 다소 생소한 주품이었다. 석탄향은 [임원십육지]를 비롯 [음식방문] 등 여러 문헌에서 그 기록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대중화되었던 술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시의전서]에는 ‘성탄향(聖呑香)’, [양주방]과 [음식방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석탄향(惜呑香)’으로 수록되어 있어, 그 특징이 아름다운 향기에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맥이 끊긴 채 활자에 갇혀있는 수 많은 전통주 가운데 특별히 석탄향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우리의 전통음식 가운데 ‘석탄병(惜呑餠)’이란 떡을 맛 본 경험 때문이었다. 석탄병은 궁중음식으로 알려져 왔거니와, 그 맛과 향기가 뛰어나 임금이 드시던 떡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이에 술도 석탄병 못지않게 맛이 뛰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 것이다.

 

[임원십육지]라는 1820년대의 기록을 토대로 한 석탄향 재현 과정은 정말 고비의 연속이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재현 실패가 거듭되었다. 일차적으로는 양조 자체가 되질 않아 산패하거나 변질되기 일쑤였고 설혹 술이 되더라도 술 이름과 관련된 단서라거나, 술맛과 향에서 석탄향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을 전혀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재현과정의 문제점과 실패원인을 찾기 위해 [임원십육지]를 비롯하여 1800년대 말엽의 [음식방문]과 [시의전서] 등 시대별 다른 고문헌에 등장하는 기록을 비교분석하기에 이르렀고, 1700년대~1800년대 중기의 ‘석탄향’과 1800년대 중기 이후의 ‘석탄향’ ‘성탄향’ 빚는 법을 토대로 재현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옛 기록에 등장하는 석탄향 제조방법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백미 두되 곱게 빻아 물 한말에 죽 쑤어 누륵가루 한되와 함께 빚어 넣고 겨울은 7일, 봄가을은 5일, 여름엔 3일만에 덧술한다. 찹쌀 한말 무르게 쪄서 고루 빚어두면 7일이면 술이 익는데, 달고 입에 머금은 채 있고 싶을 뿐 삼키기에 아깝다.”

-[임원십육지]의 ‘석탄향’ 주방문 전문

 

“백미 이승 백세세말하여 물 한말로 죽 쑤어 차거든 가로누룩 한 되 섞어 동절은 칠일, 하절은 삼일, 춘추는 오일 만에 점미 일두 백세하여 무르게 쪄 식거든 밑술에 섞어 칠일 만에 쓰나니라. 달고 가장 좋으니, 입에 머금어 삼키기 아까우니라.”

-[음식방문]의 ‘성탄향’ 주방문 전문

 

“희게 쓴 멥쌀 두되를 물 한말에 죽 쑤어 채워서 가루누룩 한되를 섞어 두라. 봄가을엔 닷새, 겨울엔 이레, 여름엔 사흘 만에 찹쌀 한말을 푹 익게 쪄서 채워라. 차디차거든 먼저 한 술에 섞어 빚어두라. 이레 뒤에 따라 쓰라. 맛이 달고 매와 입에 머금었지 차마 삼키기 아깝다.

-[양주방]의 ‘석탄향’ 주방문 전문

 

기실 한국 최초의 한글 조리서로 알려진 [음식디미방]을 비롯하여 고래(古來)의 술 빚는 법은 대개가 다 이와 같다. 이 짤막한 몇 줄의 문장 속에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삼키기 안타까운 맛과 향기’의 전통주 비법이 깃들어 있다. 십여 차례에 걸친 실험양조 결과 [시의전서]와 [음식방문]의 술 빚기는 [임원십육지]의 방법과는 같은 술이면서도 사뭇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석탄주나 석탄향, 성탄향이 모두 밑술을 죽으로 빚으면서도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덧술은 똑같은 방법인 고두밥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석탄주는 그 특징이 ‘죽’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석탄향은 기록에 언급된 바와 같이 정확히 7일 또는 21일(세이레) 후에 오묘한 맛과 사과, 포도 등의 과실향기를 뿜었고, 다시 7일 후에는 보다 달면서도 부드러운 깊은 맛을 안겨주었다. 결국 석탄향은 밑술의 죽을 잘 쑤는 것이 그 요결로, 아홉 번의 실패 끝에 비로소 [임원십육지]와 [음식방문], [시의전서]의 기록대로 “차마 삼키기 안타깝다”는 뜻을 가진 석탄향의 이름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석탄주의 뛰어난 향

어림잡아도 300여년만에 처음으로 재현된 석탄향의 맛과 향기는 사과, 포도와 같은 향취와 꿀물과 같은 단맛, 그리고 ‘혀끝에 착 달라붙는’ 감칠맛을 지녔다. 필자는 왜 이와 같이 아름다운 향기와 부드러운 흥취의 명주들이 사라지게 되었는지 그 배경과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되었다. 필자가 술빚기를 30년 가까이 해오면서 이제 새로이 술을 배우려는 제자들에게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말이 있다. 얘긴즉 “술은 머리로 빚는 것이 아니다.”는 것인데, 대개의 사람들이 양조이론에 지나치게 얽매여 자신들이 의도하는 대로 술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실패를 초래하게 된다. 술 빚기를 할 때는 그 술에 대한 한 가지 생각만 해야 한다. 석탄향과 같이 소위 맛과 향기가 뛰어난 명품주는 주방문에 비법이 있으므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주방문 그대로 술빚기에 임해야 하는 데도 더 맛좋은 술, 향기가 더 뛰어난 향기를 발현하는 술을 만들겠다는 욕심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필자가 석탄향 재현에 임하면서 실패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17년동안 전국을 답사하며 배우고 터득했던 여러 가지 술빚기 방법들을 석탄향을 빚는 방법에도 그대로 적용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또 술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익기를 기다려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의도하는 대로 때에 맞추어 익히고자 했으므로, 본래의 술맛도 향도 나질 않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옛 사람들이 경계한대로 ‘술은 어떤 음식보다 빚는 사람의 성격을 닮아간다’는 교훈을 스스로 확인하고 만 것이었다.

 

석탄향의 재현을 계기로 그간 맥이 끊긴 채 사장되고 말았을 전통주들에 대한 복원작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는데, 주변의 권유로 석탄향을 비롯하여 부의주, 감향주, 하향주, 백수환동주, 동양주 등 재현된 20여종의 재현주들에 대한 시음평가회를 갖기로 하였다. 필자의 연구소에서 4차례에 걸쳐 일반인을 대상으로 시음회를가졌는데, 많은 이들이 석탄향에 대해 ‘향기가 너무 좋고 감미롭다’라거나 ‘진짜 전통주가 맞느냐?’ ‘어떻게 이런 향기와 맛이 날수가 있느냐?’ ‘정말 삼키기 아까운 술이다’ 등 그야말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우리 전통주의 참맛에 새삼 놀라는 표정이었다.

 

석탄향의 향기를 통해 깨닫게 된 것은 우리 전통주는 ‘곡자향(麯子香)’이라는 표현으로 술향기를 얘기하곤 했는데 왔는데, 사실 곡자향은 누룩향기라 는 뜻으로 그간 우리 전통주를 말살하고 폄하해왔던 일제의 잔재에서 기인된 잘못된 인식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필자의 첫 전통주 복원이 석탄향처럼 뛰어난 향을 가진 술이 아니었다면 우리 전통주에 대한 우수성이나 가치에 대한, 특히 무궁한 잠재적 개발 가능성에 대해 간과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언제까지고 전통주는 농가에서나 구습(舊習)에 따라 세습적 답습과정을 밟아 온 그대로 한 걸음도 발전을 보지 못한 채, 누룩곰팡이와 간장 냄새가 술향기로 인식되고, 시큼털털한 동동주와 막걸리가 전통주의 전부로 인식되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면 등골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전주시와 전통술박물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국선생선발대회’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유의 방법에 의한 전통주만을 대상으로 한 시음평가대회이다. 2011년 11월에 있었던 ‘제3회 국선생선발대회’에서 탁주부문 대상 수상 주품이 석탄주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석탄주 빚는 과정

01) 죽으로 밑술 만들기

02) 죽에 누룩 섞기

03) 밑술 혼화하기

04) 항아리에 안치기

05) 발효된 밑술

06) 식혀둔 고두밥

07) 밑술과 고두밥 섞기

08) 덧술 혼화하기

09) 덧술 안치기

10) 완성된 석탄향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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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에 걸쳐 빚는 삼해주. 양곡이 많이 들어가고 증류하여 얻는 소주가 적어 고급 술에 속한다.

 

 

정월 첫 돼지날(亥日), 세 번에 걸쳐 담근 술이라는 뜻

우리나라 전통주 가운데는 술 빚는 시기에 따른 이름의 주품이 몇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삼해주(三亥酒)와 청명주(淸明酒), 납주(臘酒) 등이다. 삼해주는 음력으로 ‘정월 첫 해일(亥日) 해시(亥時)에 술을 빚기 시작하여 12일 후나 한 달(36일) 간격으로 돌아오는 해일 해시에 모두 세 번에 걸쳐 술을 빚는다’ 하여 삼해주라 하였고, 청명주는 ‘음력으로 청명절(淸明節) 100일 전 또는 청명일에 술을 빚어 마신다’ 하여 청명주라 부르게 되었는데, 청명주 역시도 음력 정월 첫 해일에 술을 빚기 시작한다. 또 납주는 ‘음력 12월인 납월에 빚어 마시는 술로, 먹고 남은 식은 밥을 이용하여 빚는 까닭’에 술을 빚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절기주에 속한다.

 

동양철학은 하늘과 땅의 운행은 오운(五運) 육기(六氣)의 운동이고, 오운 육기가 각기 음양(陰陽)이 있다고 본 데서, 천체의 운행궤도가 양과 음의 기운이 순차적으로 운행한다는 음양오행설을 기초하게 되었다. 즉, 양의 기운인 천간(天干)을 10(甲, 乙, 丙, 丁, 戊, 己, 庚, 申, 壬, 癸)으로 나누고, 음의 기운인 지간(支干)을 12 가지 동물(子, 丑, 寅, 猫,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로 나누었다.

 

결국 삼해주에서의 해(亥)는 이 12지간 중 마지막 순서인 돼지를 뜻한다. 따라서 삼해주는 정월 첫 해일(亥日), 곧 처음 맞이하는 돼지날에 세 번에 걸쳐 담근 술이라는 뜻이다. 즉, 해일은 12일 간격 또는 36일 간격으로 돌아오는데, 그 해일에 매번 술을 해 넣는 만큼 고급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처음 술을 해서 안친 지 36일 또는 96일 만에 술이 익게 되므로, 술의 맛이나 향, 색상이 뛰어난 명주이다.

 

삼해주는 조선시대 반가의 대중주였으나, 그 어떤 문헌이나 기록에서도 그 유래나 발생 배경에 대해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민간의 벽사풍속의 일환으로 장(醬) 담그는 길일로 말날(午日)과 술 빚는 날로 해일(亥日)을 선호했던 것을 볼 수 있는데, 장은 색깔이 진해야 맛이 좋고 술은 그 빛깔이 맑고 밝아야 맛과 향이 좋으므로, 지간의 12지신(十二支神) 가운데 말의 피가 가장 진하다는 사실에서 말날(午日)을 장 담그는 날로, 돼지의 피가 가장 붉으면서도 밝은 색깔을 띠므로 돼지 날(亥日)을 술 빚는 날로 잡았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삼해주는 여느 전통주와는 다르게 ‘분곡(粉麴)’ 또는 ‘백곡(白麴)’이라고 하여 밀기울을 제거한 흰 밀가루만을 이용한 삼해주 전용의 특수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는 만큼, 밀기울이 섞인 맥곡(麥麴)으로 빚은 술보다 맑고 밝은 색을 자랑하다. 또한 삼해주는 세 번 빚는 삼양주(三讓酒)인만큼 두 번 빚는 이양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쌀 양에 비해 누룩의 양이 적게 들어가므로 누룩에서 오는 누르스름한 빛깔이 엷어져 상대적으로 밝고 맑은색을 띠게 된다는 점에서 일반 전통주와는 차별화된다고 할 수 있다.

 

 

“춘주는 삼해에 빚으니 사흘밤 취해도 몸은 우뚝 구천에 닿았네”

삼해주라는 술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서거정(徐居正)의 작품으로, 조선조 초기(1420~1488년)에 간행된 [태평한화골지전]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미 고려시대 때부터 널리 성행했던 술로 추측하고 있다. 또한 전통주 전성기의 대표적인 명주들을 춘주(春酒)라고 하여 호산춘, 약산춘, 여산춘, 경액춘, 동정춘, 광릉춘 등이 그 주품을 자랑하였는데, 삼해주는 맛과 향이 좋아 춘주류의 반열에 올랐다.

 

조선 초기 문인이었던 이행(李荇, 1478~1534)의 [용재선생집]에 “관등(觀燈)”이란 제하의 시에는 삼해주가 언급된다.

“다시 오기로 미리 약속하니, 산을 내려갈 때가 지레 걱정이네. 하늘과 땅 사이에 낀 쓸모없는 이 몸, 산수에 오로지 흉금을 부쳤네. 춘주는 삼해에 빚었으니, 남은 꽃은 틀림없이 북쪽 가지일 것이네. 취중에 참으로 마음이 너그러워, 거친 말도 추리지 않고 그냥 두네. 천성이 게을러 아침저녁도 없이, 열흘도 넘게 서당에 드러누웠네. 벼슬길에 이제는 마음을 점점 여니, 산행의 흥은 늙어서도 오히려 새롭네. 글은 남이 비웃는 것 상관하지 않고, 잔과 동이를 날마다 앞에 벌여놓네. 높이 시 읊고 다시 크게 술 마시니, 나를 한가한 사람이라 이르지 말게나. 사흘 밤을 편안히 술 마시니, 우뚝 구천에 닿은 몸이네. 등불 빛은 별빛과 서로 엇갈리고, 시내와 산은 저잣거리와 몹시 가깝네. 꽃은 늙은이 머리 털 부끄러워하고, 달은 취해서 돌아가는 사람 비추네. 좋은 시구 지어도 때때로 숨기니, 시명이 날로 새로워진지 오래 되었네”

삼해주는 고려시대부터 빚어져 여러 가지 방법이 전해오는데, 조선조 중엽 이후에는 소주의 술덧으로 쓰이는 예가 많아지면서 이후 소주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삼해주처럼 세 번에 걸쳐 빚어지는 삼양주는 예로부터 사대부나 부유층이 아니면 빚어 마시기 힘들었다. 술맛이나 향취 등이 빼어나긴 하지만, 일반 가정에서 취흥을 돋우기 위해 마시는 술로는 삼해주에 사용되는 쌀의 소비가 많기 때문이다.

 

삼해주는 본래 세시주 또는 계절주의 성격을 띤다. 술을 빚는 시기가 가장 추운 때인 한겨울로, 여느 술과는 다르게 술을 빚는 기간과 술을 익히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관계로, 백일주(百日酒)라고도 부를 만큼, 그 과정이 길고 까다로워 자칫 실패하기 쉽다. 따라서 삼해주의 발효방법은 저온에서 발효시키는 방법을 취하게 되는데, 완성된 술은 빛깔이 맑고 깨끗하며, 높은 알코올 함량을 자랑한다.

 

 

삼해주를 증류하여 소주를 만들면 그 양이 30%에 그쳐 고급 소주가 나온다

삼해주는 술 이름에서 보듯 ‘한겨울에 빚어 버들가지가 피어날 때쯤인 봄이면 술이 익는다’ 해서 ‘유서주(柳絮酒)’라는 낭만적인 술 이름을 얻었다. 그 제조방법에서 여러 가지 방문을 엿볼 수 있는데, 밑술과 덧술을 12일 간격으로 빚고, 덧술이 익어 2차 덧술을 해 넣을 때는 36일 간격으로 술을 빚어 땅 속에 묻고 40일 간 발효 숙성시키는 방문, 그리고 밑술과 덧술을 36일 간격으로 해 넣은 후, 마지막 덧술을 12일만에 해 넣는 방문 등 기록이나 가문마다 고유의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이러한 삼해주를 증류하여 소주를 만들게 되면, 그 양이 30%에 그쳐서 정말 고급 소주가 된다.

 

삼해주는 서울 등 중부지방의 사대부와 부유층에서 주로 빚어 마셨던 춘주(春酒), 곧 고급약주로, 현재 서울지방에만 세 가지 삼해주가 있으며, 이들 삼해주는 원료의 처리방법 등 각각 다른 방법으로 술을 빚고 있다. 삼해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50년경 전순의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산가요록]을 시작으로 1600년대의 [주방문], 1670년대의 [규곤시의방/음식디미방]에 4종류가, 그리고 이후의 [산림경제]에 ‘삼해주법’이, [임원십육지]에 ‘삼해주방’이, [고려대 규곤요람]을 비롯 [시의전서], [증보산림경제], [고사십이집], [양주방], [요록], [음식보], [역주방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각기 다른 방법의 삼해주가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어, 가정 형편에 따라 약식(略式)으로, 또는 재료의 가감과 처리 방법에 변화를 주는 등 술 빚는 방법의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예로, [규곤시의방]에는 “정월 첫 해일에 찹쌀 석되를 백번 씻어 가루를 만들어 죽을 쑤어 식힌 후 누룩 한 되를 섞어두었다가 두 번째 해일에 흰쌀 서말을 백 번 씻어 가루로 만들어 물송편을 만들고, 이것을 차게 식혀 먼저 만든 밑술에 섞어 넣고, 세 번째 해일에도 다시 한 번 덧술하여 빚는다.”고 하였으며, [산림경제]에서도 “정월 첫 해일에 찹쌀 한 말을 백 번 씻어 가루로 만들어 묽은 죽을 쑤어 식힌 데에다 누룩가루와 밀가루 각 한 되를 섞어서 독에 넣고, 다음 해일에 찹쌀과 멥쌀 각 한 말을 백 번 씻어 가루로 만들고 이것으로 술떡을 푹 끓여서 술밑에 섞고, 또 세 번째 해일에 백미 다섯 말을 백 번 씻어 떡으로 쪄서 식힌 것을 끓인 물 세 양푼에 풀어서 다시 덧술하여 3개월 동안 익혀낸다.”고 하였다.

 

한편, 서울시 지정 무형문화재 약주 삼해주 방문(方文)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음력 정월 첫 해일 하루 전날 멥쌀 1되(大升)를 깨끗이 씻은 뒤, 한나절(10시간)가량 물에 담갔다 건져서 고운 가루로 빻아 둔다. 다음 날(亥日) 해시(亥時)가 되면 준비해 두었던 쌀가루와 팔팔 끓인 물(4~5대접)로 익반죽하고, 여기에 누룩을 고운 가루로 만들어 1되를 섞고, 술독에다 메주를 뭉치듯 하여 안친다. 술독은 깨끗한 베보자기나 한지로 두세 겹을 씌우고 뚜껑을 덮어 밖이나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덧술은 음력 2월 해일 하루 전날 그 재료를 준비하였다가, 다음 날 해시에 멥쌀 1말(大斗)을 밑술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하여 가루로 빻고, 여기에 밀가루 2되(大升)를 섞어 끓는 물로 익반죽을 하는데, 반죽 덩어리를 양을 같게 하여 두 개로 나눈다. 끓는 물에 반죽덩어리를 넣어 한 개는 익히고, 다른 한 개는 설익은 상태로 꺼내서 전량 송편 크기로 잘게 끊거나, 수제비를 만들 때와 같이 잘게 떼어서 발효가 끝난 밑술과 고루 섞어 새 술독에 안친다. 덧술을 안친 술독은 밑술에서와 같이 밀봉하여 보관하는데, 따뜻한 기가 남지 않도록 차게 식힌 뒤, 깨끗이 씻어 물기가 없는 술독에 안치고 서늘한 장소에 내놓아, 3월 첫 해일까지 밀봉해 놓는다.

 

2차 덧술은 3월 첫 해일 하루 전날 멥쌀 3말을 깨끗이 씻어 물에 12시간 담갔다가 건져서 고두밥을 지어 차게 식히고, 물도 35대접 정도를 팔팔 끓여 차게 식혀 둔다. 다음 날 해시가 되면, 발효가 끝난 덧술과 고두밥과 물을 잘 풀어서 섞고, 미리 준비해 둔 술독에 한 켜씩 켜켜로 안친 다음, 서늘한 곳에서 20여일 발효시키면 삼해주(약주)가 완성된다.

 

 

양곡 낭비 방지를 위해 삼해주를 금지해야 한다는 상소 빗발쳐

삼해주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지방보다 서울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그 이유는 당시 귀하게 여겼던 쌀을 3차까지 덧술을 하여 만든, 값이 비싼 고급주여서 권력과 상권의 중심지였던 서울의 사대부와 반가에서 애음하였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러다가 후에는 일반인들에게까지 애음되었는데, 그 폐해가 막심하였던지 ‘삼해주로 인한 양곡의 소비가 심하니 금주령을 내려야 한다’는 상소(上訴)가 빗발쳤다고 한다.

 

실례로 영조 5년인 1781년 박일원이 편찬한 [추관지]에 형조판서 김동필(金東弼:1678~1737)이 올린 상소문에 “세수(歲首)에 매주가(賣酒家)에서 삼해주를 많이 만들어 내니 서울에 들어오는 미곡이 죄다 이리로 쓸려 들어가니 미곡 정책상 이를 금함이 옳다.”고 기록되어 있어, 당시 서울에서 일반인들의 삼해주 수요가 어떠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정월에 빚어야 하는 계절적인 제한으로 삼해주의 공급이 한정되자, 서울 근교의 마포 ‘옹막이’를 삼해주의 대량 제조공장으로 사용하였다 한다. 겨울에는 옹기를 굽지 않는 까닭에 옹기 굽는 가마를 이용하면 대량의 삼해주를 빚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으로 [동국세시기] [3월령(三月令)]에, “燒酒則孔甕幕之間三亥酒甕釀千百最有名稱……”라고 하여, 지금의 마포구 공덕동 소재 옹기 굽는 옹막에서 삼해주를 소주로 고아 냈음을 알 수 있다.

 

또 조선조 헌종 7년의 [일성록(日省錄)]을 보면, “정월에만 담그던 삼해주가 아무 해일에나 담그던 술이 되었고, 또 이것을 청주보다 소주의 원료로 쓰게 되고, 그리하여 전년에 가을, 겨울부터 담는 소주의 밑술까지도 삼해주라 일컫는 풍이 생겨서, 근래에는 삼해주 하면 도리어 소주의 밑술 이름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당시 삼해주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삼해주 빚는 과정

[규곤시의방] 방문을 바탕으로 빚는 삼해주.

 

1) 쌀가루에 끓는 물을 부어 익힌 후 범벅을 만든다.

2) 범벅을 차게 식힌다.

 

3) 범벅에 누룩가루를 섞고 술밑을 빚는다.

4) 혼화가 끝난 술밑.

 

5) 고두밥을 식혔다가 밑술을 섞는다.

6) 밑술과 고두밥을 고루 섞어 덧술을 빚는다.

 

7) 덧술을 독에 담아 안친다.

8) 발효가 끝난 덧술.

 

9) 다시 고두밥을 쪄서 식혔다가 덧술을 섞어 2차 술밑을 빚는다.

10) 2차 술밑을 독에 담아 안치고 발효 숙성 시킨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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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이화주는 잔으로 따라 마실 수 없고 수저로 떠먹어야 할 정도로 걸죽한 수프처럼 생겼다. 좌측의 큰 그릇은 막걸리처럼 물을 탄 이화주.

 

 

유기산이 풍부한 고급탁주

봄이면 어느 들녘에서나 꽃바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광양 섬진강변의 설중매화(雪中 梅花)를 시작으로 여수의 동백꽃과 개나리, 살구꽃, 진달래가 남풍을 타고 북쪽으로 치달리는데, 4월 하순부터는 경기 북부지방까지 과수원마다 특히 눈 같이 희고 고운 자태의 배꽃(梨花)이 하얀 꽃동산을 이룬다.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지만 이 배꽃이 절정에 달하면 집집마다 빚는 술이 있는데, 바로 ‘이화주(梨花酒)’이다. 하지만 이화주는 “배꽃이 필 때 술을 빚는다.”하여 명명하게 된 술이지, 실제로 배꽃이 사용되는 가향주(加香酒)는 아니다.

 

이화주는 고려시대 때부터 빚어졌던 술로, 술 빛깔이 희고 된죽과 같아 그냥 떠먹기도 하고, 한여름에 갈증이 나면 찬물에 타서 마시기도 하는 매우 특별한 술로, 여느 술과는 달리 특별히 멥쌀로 누룩을 만드는데다 멥쌀가루로 구멍떡이나 설기떡을 만들어 술을 빚는데, 알코올도수는 낮지만 유기산이 풍부하고 감칠맛이 뛰어나 고급탁주로 분류된다.

 

이화주는 술 빚는 방법이 매우 독특하다. 술을 빚는데 물이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며, 방문에 따라서는 백설기, 구무떡(구멍떡) 등 다양한 방법이 전해오고 있다. 이화주에 대한 기록으로 [동국이상국집], [한림별곡] 등으로 알려져 있으며, 술빚는 방문을 기록한 최초의 기록은 1450년경 전순의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산가요록]을 시작으로, [규곤시의방]과 [요록], [주방문], [역주방문], [산림경제], [고사십이집], [임원경제지], [양주방], [언서주찬방] 등을 들 수 있다. 이화주에 대한 기록이 이렇게 많은 문헌에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화주가 사대부나 부유층에서 빚어 마셨다는 사실의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기록으로 전해지는 이화주 담는 법

이화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인 1450년경의 [산가요록]에 수록된 이화주 방문을 보면, “2월초가 좋다”고 하였고, 술 빚기 전에 별도의 전용 누룩인 ‘이화곡(梨花麯)’을 빚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화곡 만드는 법은 “2월 상순쯤 멥쌀 다섯 말을 물에 담갔다가, 이튿날 곱게 빻아 깁체에 여러 번 쳐서 물을 적당량 부어 치대서 오리 알 모양으로 만들어 그대로 쑥으로 싸되, 쑥 길이 그대로 맞추어 싸서 빈 섬에 담아 온돌방에 놓고 빈 섬으로 덮어 띄우는데, 7일이 지나면 뒤집어놓고 또 7일 후에 뒤집어 놓으며, 다시 7일 후에 꺼낸다. 거친 껍질을 벗기고 서너 조각으로 쪼개서 마른 상자에 담고 홑 보자기로 덮어서 날씨가 맑은 날이면 매일같이 볕에 말린다.”고 하였다.

 

이어, 이화주를 빚는 법은 “배꽃이 필 무렵 누룩(이화곡)을 꺼내어 가루로 빻고 깁체에 쳐서 내리고 다시 고운 모시베로 다시 쳐서 고운 누룩가루를 만든다. 멥쌀 10말을 가루를 내어 깁체에 쳐서 손바닥 크기의 구멍떡(공병)을 빚어서 끓는 물에 삶아 잠시 두었다가, 큰 그릇에 담아 뚜껑을 덮어 밖에 두면 식는다. 떡을 아주 조금씩 떼어 술독에 담는데, 준비해 둔 누룩가루를 쌀(떡) 1말당 5되 분량으로 넣고 두세 번 짓이겨 섞어준다(떡이 말라 있으면, 떡 삶았던 물을 조금씩 뿌려주면서 섞는다). 구멍떡은 손바닥 크기로 충분히 식혀서 독 안쪽 가장자리에 돌려 안치고 가운데는 비운다. 빚은 지 3~4일 후에 독을 열어보아 온기가 있으면 바로 밖에 내어 차게 식힌 후, 다시 제자리에 옮겨 놓는다. 서늘한 곳에 두었다가 5월 15일쯤 열어 사용하면 그 맛이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하였다.

 

이화곡을 제조하는 모습.

완성된 누륵밑.

 

한편, [규곤시의방/음식디미방]의 이화주 방문은 “복숭아꽃이 필 때에 쌀 튀겨 작말하여 누룩을 만들어 서늘한 곳에 두었다가, 여름에 백미를 깨끗이 씻어 곱게 빻아 구멍떡을 만들어 익도록 삶아 식거든, 쌀 한말에 누룩 서되 혹은 두되씩 넣되, 누룩가루를 두서너 번 체에 쳐야 부드러워진다, 서되를 넣으면 오래 있어도 상하지 않고, 두되를 넣으면 오래 못 둔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이화주를 빚는 시기와 방법에서 [산가요록]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문헌이나 가문비법에 따라 주방문이 다른 것은 이화주만이 아니지만,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이화주’라는 명칭과 관련하여 문헌기록이나 전승 가양주마다의 술이름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배꽃이 필 때 술을 빚는다”는 [산가요록]의 기록에 따른 이화주류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규곤시의방/음식디미방]에서는 누룩에 대한 언급 없이 3가지 방법의 술(이화주) 빚기와 함께 “배꽃이 필 무렵 누룩을 빚는다.”다고 하는 한 가지 방문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화주는 술을 빚는 시기와 누룩을 빚는 시기의 차이에 따른 두 가지 방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 익은 후 수저로 떠서 먹거나 냉수에 타서 마셔

필자가 옛문헌을 바탕으로 해석한 기본적인 이화주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가장 중요한 일은 쌀누룩 곧 이화곡(梨花麯)을 만드는 것이다. 쌀을 하루나 이틀간 불렸다가 가루 내어, 적당량의 물을 섞어 달걀만한 크기로 뭉쳐서 볏짚이나 솔잎 속에 묻고, 온돌 위나 실내에 두고 7~10일가량 띄운다. 완성된 누룩은 껍질 부분을 벗겨내고 서너 조각으로 쪼개서 햇볕에 바짝 말렸다가 매우 고운가루로 빻아 술을 빚는데 이용한다.

 

이화곡이 만들어지면, 씻어 불린 멥쌀을 가루 내어 백설기를 짓거나 구무떡을 만들어 삶고 건져서 인절미 형태로 만든 다음, 이화곡 가루를 섞고 버무려 술독에 담아 안치는데, 이때 떡과 누룩가루 외에 물을 넣지 않는 까닭에 누룩가루와 떡이 골고루 섞이지 않는다. 따라서 떡과 누룩가루가 잘 섞어지게 하려면 절구에 담고 절굿공이로 매우 치거나, 누룩가루를 혼합하기 전에 미리 고운 엿기름가루를 조금 넣고 주물러서 떡반죽이 매우 질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떡반죽과 누룩가루를 혼합하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술독에 안칠 때 꼭꼭 눌러서 다져 담는 것이 요령이다. 떡이 삭지 않고 굳어지게 되면 망치기 십상이다.

 

이화주를 빚을 때 술맛을 달게 하려면 누룩가루의 양을 늘리도록 하고, 술을 독하게 하려면 누룩가루를 적게 넣도록 하는 것이 요령이라고 하겠다. 또한 일체 날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여야 술이 산패하지 않는 비결이다. 또한 여름철에 이화주를 빚을 경우에는, 술독을 서늘한 물속에 담가 두고 술을 익히면, 술이 지나치게 끓어 넘치거나 산패하는 일이 없어 좋다.

 

이렇게 하여 발효가 끝난 이화주는 흡사 농축 요쿠르트와 같은 된죽 형태를 띤다. 날씨가 더워지는 여름철에도 빚어 마실 수 있으며, 그 빛깔은 엷은 미색이거나 흰색을 간직하고 있어, ‘백설향(白雪香)’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화주는 다 익은 후에도 수저로 떠서 먹는데, 여름철에 걸쭉한 이화주를 냉수에 타서 마시면 유기산과 여러 가지 영양소가 풍부하여 한결 시원한 맛과 함께 갈증까지 씻어준다. 흔히 달고 부드러운 맛을 가리켜 ‘달보드레하다’는 말을 쓰는 것을 보는데, 바로 이화주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독특한 맛과 시원스레 느껴지는 달콤한 향이 특징이다.

 

발효가 끝난 이화주는 흡사 농축 요쿠르트와 같은 된죽 형태를 띤다.

 

나이 많은 노인과 어린 아이들의 간식, 혹은 사돈댁 인사음식으로 사용돼

한편, 20여년 전에 이화주를 가양주로 빚어오고 있는 영주지방의 무안박씨 가문과 안동지방의 안동김씨, 문화류씨 가문에 대한 이화주 조사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은, 과거에는 이화주가 나이 많은 노인과 갓 젖을 뗀 어린 아이들의 간식으로 곧잘 이용되었고, 부유층이나 사대부가에서는 출가할 자녀의 혼사에 사돈댁 인사음식으로 장만해가는 것이 풍습이었다는 것이다.

 

안동김씨 가문에 전해오는 이화주(가루술)에 대한 얘기로, “옛부터 넉넉한 집안에서나 빚어 노부모 봉양에 사용하는 술이었다. 또 출가한 딸이 친정에 오면 딸에게 만들어 주어 사돈집에 보내는 인사음식으로 쓰는 등 귀한 술이었다. 쌀로만 만들기 때문에 영양식으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즐겨 마셨으며, 더울 때와 배고플 때 갈증해소와 허기를 달래주는 청량음료로 즐겼다. 술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나 여인네들도 취기를 조금 느낄 정도여서 다들 애음했다.”면서, “이화주는 배꽃이 필 때 빚는 술인데, 특히 한여름에 더위를 탈 때 냉수나 얼음물에 풀어서 한잔 들이키고 나면 갈증이 말끔하게 씻기는 까닭에 집안 어른들이 즐긴 술인데 반하여, 젖을 뗀 어린 아이가 배고파 할 때는 젖 대신 간식으로 이 이화주를 떠먹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팔자 좋은, 귀한 집 자식들은 젖 뗄 무렵부터 어머니에게서 술 마시는 일부터 배운 셈이구나’하는 우스운 생각과 함께, 이화주보다 훌륭한 영양간식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화주가 요쿠르트 보다 훨씬 더 훌륭한 전통 발효식품이라는 사실이 국내 학자들의 연구 결과로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 영주전문대학 가정학과 김정옥 교수는 [전통 이화주의 주조와 그 품질에 관한 연구]란 박사학위 논문에서 ‘“20일간 주조된 이화주의 수분 함량은 47.01%, 잔당 28.07% 글루코스 29.09%였으며, 1년간 숙성된 이화주에도 글루코스가 17.43% 함유되었다. 무기질 중 Ca, Mg, K 및 Na이 다량 함유되었고(0.7-33mg%), Mn, Fe, Zn, Cu, Cr 및 Pb이 미량(0.12-35ppm) 함유되었다. 총 아미노산은 담금 직후가 4.23%, 담금 100일 후에는 4.55%이었고, 아스파르트산 등 17종의 아미노산이 정량되었으며, 주조 중 메티오닌(methionine)과 타이로신(tyrosine)이 현저하게 증가하였다.”면서, “숙성 1년 된 이화주는 풍미와 전반적 기호성이 가장 높게 평가되었으며, 저장성에 있어서도 가열처리나 보존제의 첨가없이 장기 저장이 가능할 뿐 아니라, 저장 후에도 아밀라아제(amylase)의 활성도가 상당히 높아서 소화를 촉진할 수도 있는 저알코올성 전통주로써 개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고 발표,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화주가 건강주로 인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맥이 끊긴 데에는, 앞서 기록에서 보았듯 누룩을 쌀로 빚는데다 물을 넣지 않는 까닭에 술을 빚기가 힘든데 반해, 알코올 도수가 낮아 막걸리보다도 취기가 오르지 않아 서민들의 기호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탁주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밀누룩에 가급적 적은 양의 쌀로 빚는 경제적인 술을 가리키는데, 대부분이 물을 많이 타서 양을 늘려 막걸리로 마셨던 까닭에 이화주처럼 누룩까지 쌀로 빚은 술은 값이 비싸고, 술빚는 방법에서 차이를 보여 고급탁주로 분류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서민층에선 엄두도 내지 못하였을 것이고, 사대부나 부유층이 아니면, 비경제적인 술이란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이화주가 일반화되지 못하고 맥이 끊어진 이유라고 생각된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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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춘은 빚기 까다로운데다 한번 주조할 때마다 얻을 수 있는 양이 적어 매우 고급술에 속한다.

 

 

“지난 해 마셨던 동정춘의 향내가 아직도 손에서 난다”

[입원십육지]에 수록된 동정춘방(洞庭春方)이란 주품을 만나게 된 것은 필자에게는 참으로 다행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불행한 일이기도 했다. 다행이란 생각은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전통주를 포기하지 않았던 끝에 이렇게 뛰어난 술도 만나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에서 연유하는 것이고 불행하다는 것은 동정춘 이후 앞으로는 그 어떤 방문에서도 이와 같은 술맛과 향기를 다시 경험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길한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갖가지 방법과 요령을 동원하여 술빚기를 시도해 보았지만 기대 이하였다.

 

중국의 주선(酒仙)이라 불리울만큼 술을 좋아했고 특히 감정에도 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동파 소식(東坡 蘇軾)의 시에서도 동정춘에 대한 감상은 단연 돋보인다 할 수 있다. “지난 해에 마셨던 동정춘(洞庭春)의 향내가 아직도 손에서 난다/금년의 동정춘은 옥빛처럼 술이 아닌 것만 같네/병 속의 향기는 방에 가득하고 술잔의 빛은 문창에 비친다/좋은 이름을 붙이고 싶을 뿐 술의 양은 묻고 싶지 않네/시를 낚는 갈고리라고도 하겠고 시름을 쓸어버리는 비라고도 하겠네/그대여!/그 잔에 넘실넘실하게 부어 나의 친구도 마시게 해다오.”

 

 

동정춘 빚기의 요령

동정춘방을 기록하고 있는 [임원십육지]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방문을 빌면, “흰쌀 1되를 작말하여 구무떡(孔餠) 3개를 만들어 물 1사발의 물로 쪄낸 다음 식으면 누룩가루 1되와 어우러 밑술을 빚고 4일간 발효시킨다. 다시 찹쌀 1말을 고두밥지어 식혀서 먼저 빚어둔 밑술과 한데 버무려 독에 넣고 익거든 주조에 올리되 딴물과 쇠그릇을 대기하나니라.”고 나와있다.

 

위의 방문에서 생각할 수 있듯, 동정춘의 주조법은 어떻게 보면 매우 간단하면서 별다른 특징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동정춘의 비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밑술을 빚는 방법은 지금까지 목격하지 못했던, 개떡 형태의 술빚기이다. 그런데 밑술에 사용되는 물은 떡을 쪄낼 때 시루밑물 한 사발과 쌀가루를 익반죽할 때 사용되는 2홉 정도의 따뜻한 물 외에 별도의 양조용수가 사용되지 않는다. 또한 덧술에서도 찹쌀고두밥 외에 누룩이나 술 등의 다른 재료가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먼저 빚어 둔 밑술의 양이 1되 정도의 분량으로, 이 밑술 양을 가지고 덧술의 고두밥 1말을 버무려서 발효가 잘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동정춘은 그 어떠한 술보다 잘 치대어 주어야 한다. 또 밑술용 떡을 찔 때는 미리 물을 끓여두었다가 팔팔 끓는 물을 시루밑물로 사용하고, 반죽은 무르고 질게 얇게 만들어야 하며, 쪄낸 떡을 풀 때도 뜨거울 때 재빨리 멍우리 없이 해내야만 한다. 떡이 식어 풀어지지 않으면 1사발 내의 뜨거운 물을 쳐가면서 풀도록 하는 요령도 필요하다. 덧술을 버무릴 때는 밑술을 골고루 나눠 붓도록 하고, 힘껏 치대어 주되, 인절미처럼 늘어지지 않으면서 고두밥이 삭게 만들면 더욱 좋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요령을 터득하기까지 9말의 찹쌀이 필요했고, 동정춘을 빚으면서 신혼 때도 멀쩡했던 두 무릎이 두 번이나 벗겨졌다. 때문에 내겐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방문이다.

 

 

빚기 힘든 데다,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양도 적은 고급 술

동정춘이 문사들 사이에서 명주로 알려졌으면서도, 이 땅에서 꽃 피워보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까닭은, 아마도 소동파가 “좋은 이름을 붙이고 싶을 뿐 술의 양은 묻고 싶지 않네” 라고 하여, 안타깝게 여겼던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술 빚는데 따른 정성과 노력은 물론이고, 술에 사용된 재료의 양에 비해 거기서 얻어지는 술의 양이 너무나 적다는 사실이다.

 

방문에서 보아 알 수 있듯 동정춘은 물이 거의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밑술 작업도 어렵거니와 덧술 빚기는 더욱 힘들다. 주재료로 사용되는 쌀의 양이 1말 1되인데, 쌀가루를 익반죽할 때 사용되는 물 이외에는 밑술에서나 덧술에서도 물이 사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재료의 혼합은 물론이고 발효과정에서도 세심한 관리와 정성이 요구된다. 동정춘은 술을 빚기 시작해서 다 익기까지 빨라야 4~6주 정도가 요구되는데, 여기서 얻어지는 술의 양이 청주 1.5L, 탁주 3.5L 정도에 그쳐, 너무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따라서 동정춘은 그 어떤 술보다 빚기 힘든 데다, 양이 적으니 그만큼 비싼 술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동정춘 빚는 과정

1) 구멍떡 빚기

2) 완성된 구멍떡 3개

 

3) 구멍떡 찌기

4) 구멍떡 풀어서 식히기

 

5) 구멍떡에 누룩가루 섞기

6) 술밑 혼화하기

 

7) 술밑 안치기

8) 발효가 끝난 밑술

 

9) 식힌 고두밥에 밑술 섞기

10) 술밑 혼합하기

 

11) 술밑 안치기

12) 주발효가 끝나 숙성 중인 동정춘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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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춘의 이름은 지명(地名)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에 소재한 주산(主山)을 ‘호산(壺山)’이라고 불렀으며, 이 지방에서 빚은 술이 특주로 명성이 높았으므로 주산의 옛 이름을 따서 호산춘(壺山春)이라고 지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술빚기가 세 번에 걸쳐 이뤄지는 삼양주, ‘춘주(春酒)’

흔히 좋은 술을 가리켜 ‘명주(銘酒)’라고 하고, 맛과 향취가 특히 좋은 고급술을 가리켜 ‘춘주(春酒)’라고 한다. 따라서 명주는 춘주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다. 춘주(春酒)는 술빚기가 세 번에 걸쳐 이뤄지는, 이른 바 삼양주(三釀酒)를 가리키는 말로, 일반적으로 두 번 빚는 이양주(二釀酒)에 비해 술맛이 뛰어나고 향도 기특하며, 술 빛깔도 더 맑은 것이 특징이다. 술 이름에 춘(春)자를 붙이게 된 것은, 중국 당나라 때부터 생겨난 풍습이다. 이 풍습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고려시대 때부터 춘주가 등장했음을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주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조선시대 중엽에는 지방의 특산주들이 등장하여 저마다의 맛과 향을 다투었는데, 대표적으로 서울의 삼해주를 비롯하여 평양의 벽향주, 충청도의 청명주와 노산춘, 전라도의 이강고와 죽력고, 진도의 홍주, 김제의 송순주, 여산의 호산춘, 김천의 과하주 등이었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호산춘은 춘주라고 하는 술빚기 과정의 전형적인 특징과 함께 특정한 지명(地名)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에 소재한 주산(主山)을 ‘호산(壺山)’이라고 불렀으며, 이 지방에서 빚은 술이 특주로 명성이 높았으므로, 주산의 옛 이름을 따서 호산춘(壺山春)이라고 지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여산춘(麗山春)’이라고 하는 춘주가 있는데, 이 술도 삼양주(三讓酒)로서, 다른 호산춘과 비교하여 술 빚는 방법이나 과정에서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여산지방의 술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붙이게 된 이름으로, 호산춘의 별칭이 아닐까 생각된다.

 

호산춘은 조선시대 후기로 접어들면서 삼양주가 아닌 이양주로 간소화되는 경향을 나타내었다. 조선 중엽 이후의 문헌인 [산림경제보]와 [임원십육지] 등의 기록을 보면 삼양주로써의 호산춘이 등장하고, [양주방]을 비롯한 대부분의 문헌에 수록된 호산춘은 이양주(二釀酒)법이다. 또한 현재 경상북도 지정 무형문화재인 문경지방의 호산춘(湖山春) 역시도 이양주라는 사실에서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가정마다의 술 빚기가 보다 간소화 되었을 것이란 추측을 할 수 있다.

 

반생반숙법의 특징과 호산춘의 매력

보통 밑술을 범벅이나 죽, 설기떡 형태로 빚고, 밑술 양의 2~10배가 되는 쌀 양을 고두밥의 덧술로 하는데 그 맛과 향은 밑술의 재료처리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양주방]의 호산춘과 같이 밑술을 소위 ‘반생반숙법(半生半熟法)’이라 하는 범벅으로 할 경우 달고 부드럽지만 쏘는 듯한 강한 맛과 높은 알코올도수를 나타내고 포도를 비롯한 사과, 자두, 복숭아와 같이 향이 진하면서 복잡한 과실향을 띠게 되어 죽이나 구멍떡과 같은 떡류, 고두밥으로 밑술을 빚는 방법의 일반 전통주와는 다른 맛과 향기를 자랑한다. 이러한 반생반숙법의 양조패턴은 1450년대의 기록으로 알려진 [산가요록]을 비롯하여 [산림경제],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등 조선시대의 여러 문헌에서 자주 목격되는데, 이미 고려시대 때부터 널리 행해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 주막에서까지 양조되어 판매되었을 만큼 널리 행해졌던 것으로 알려진 백하주(白霞酒)나 방문주(方文酒), 도화주(桃花酒)와 같은 주품의 제조법이 호산춘과 같은 반생반숙법을 취하고 있다.

 

쌀가루를 끓는 물에 개어 살짝 설익히는 호산춘의 반생반숙법은 얼핏 보면 간편하고 쉬운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가장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 이유는 다른 주류들이 원활한 발효와 실패를 줄이기 위해 원료인 전분을 보다 많이 또는 완전 호화상태에서 발효제를 투입하여 발효시키는데 반하여, 호산춘은 쌀을 끓는 물로 데치는 정도의 설익은 상태로 술을 빚기 때문에 여느 방문에 비해 당화가 어렵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발효도 더디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성공하면 호산춘과 같은 반생반숙법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향과 고른 맛, 높은 도수를 자랑한다 할 수 있다.

 

특히 조선초기에 등장하는 삼양주법의 호산춘과 여산지방의 전승주 호산춘은, 조선 중기 이후에 등장하는 이양주 호산춘과 비교했을 때 다음의 몇 가지 사실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밑술과 덧술, 덧술과 2차덧술을 섞지 않고 위에 덮는 방법으로 술밑을 빚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밑술은 죽을, 덧술은 쌀가루에 팔팔 끓는 물을 부어 익히는 방법의 범벅(죽)으로 하며, 2차덧술은 고두밥으로 하되 필요에 따라서는 설기를 만들고, 여기에 다시 끓는 물을 부어 한 번 더 익히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덧술의 발효가 빨리 일어나게 하기 위한 방법이긴 하지만 술독을 따뜻한 곳에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셋째는 이양주 호산춘이 밑술을 죽이나 범벅으로 하고 덧술은 5배의 찹쌀고두밥인데 반하여 삼양주 호산춘은 3차례에 걸쳐 멥쌀만으로 술을 빚는 데다, 덧술은 밑술 양의 2배, 2차덧술은 밑술 양의 3배로서 단계별로 쌀의 양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호산춘과 같이 삼양주에서 쌀의 양이 밑술의 2배, 3배로 사용되는 예는 극히 드물기도 하거니와 그 양이 매우 적다는 점에서, 아주 경제적인 방문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더 좋은 술을 빚고자 한다면 2차덧술의 쌀 양을 4배나 5배로 늘리는 것을 권하고 싶다.

 

넷째는 3차례에 걸쳐 누룩을 넣고, 또한 밑술과 2차덧술에 밀가루를 사용하는 예는 보기 드문 방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2차덧술의 누룩은 넣지 않는 것이 술의 향기를 좋게 하는 비결이다. 명주를 비롯하여 춘주류의 공통점이자 통상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양조 경향은, 가능한 누룩을 적게 사용하고 덧술이나 2차덧술에는 누룩을 넣지 않음으로써 술의 향기를 드러내려는 노력을 강구하기 때문인데, 예의 호산춘은 3차례에 걸쳐 누룩을 넣는다는 점과 함께 그 양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해주의 경우 술 빚는 간격이 12일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산춘의 덧술 간격이 13일이라는 사실은 눈여겨 볼 일이다. 또한 호산춘의 경우, 밑술과 덧술은 서늘한 곳에서 천천히 발효시켜야 제맛을 낼 수 있으며, 2차덧술의 발효기간도 21일 정도는 되게 가능한 낮은 온도에서 숙성시키는 것이 좋은 향기와 맛을 낼 수 있는 비결임을 기억할 일이다.

 

여산지방에 전승되어왔던 호산춘이나 문헌에 수록된 채 단절되어버린 삼양주법의 호산춘을 비롯하여 소곡주, 백일주 등이 조선 중기로 접어들면서 이양주법으로 간소화된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 그 어떤 기록에서도 이유를 찾지 못하다가 조선시대 기록 중 누룩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누룩의 제조법이 갈수록 과학화, 체계화되는 경향을 발견하였다. 즉 각각의 주품마다 전용누룩이 갖춰지기 시작하고, 특히 위생적인 제조법과 각종 다양한 부재료를 이용하여 우수한 미생물(누룩곰팡이, 효모)의 배양과 증식을 도모함으로써, 전에 비해 발효제인 누룩의 품질이 좋아져 술의 발효상태도 비교적 안정적이고 향기가 좋아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 술의 발효상태가 안정적이고 향기가 좋아졌다는 것은, 발효가 활발해져 알코올도수가 높으면서도 맛이 있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는 것으로 후숙이나 숙성과정을 거쳐도 맛이 변하지 않는 양조기술을 뜻하기도 한다. 정리하면, 발효기술의 발달로 이양주법만으로 충분히 좋은 맛을 낼 수 있게 되었다라는 의미가 된다. 조선 중기 이후 전통주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지방마다의 다양한 토속주들이 등장, 전통주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배경 또한 아마도 이러한 누륵 제조법의 발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호산춘 빚는 과정

1) 범벅 쑤기.

2) 범벅에 누룩가루 섞기.

3) 술밑 혼화한 후 상태를 살피는 모습.

4) 술밑 안치기.

5) 술밑 안치기가 끝난 밑술.

6) 덧술용 고두밥 식히기.

7) 발효가 끝난 밑술에 고두밥을 섞는 모습.

8) 덧술용 술밑을 혼화하는 모습.

9) 덧술용 술밑을 안치는 모습.

10) 발효가 끝난 호산춘에 용수를 박아두면 맑은 청주(호산춘)가 고인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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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국화는 고려시대부터 술에 이용된 것으로 추측되며, 국화주는 음력 9월 9일 중앙절의 세시주로 내려오고 있다.

 

 

 

“연명국주설(淵明麴酒說)”이란 게 있다. 옛날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당시의 정치에 환멸을 느껴 시골로 들어간 후, 오막살이집의 담 밑에 국화를 심어 즐겨 심었으며, 그 이유가 자신이 술을 매우 즐겼으므로, 술 속에 국화를 넣기 위해 또는 술안주로 국화를 먹기 위해 재배한 것’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이 설의 진의는 접어두더라도 국화가 예로부터 술에 이용되어 온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 국화에는 진통작용이 있어 두통, 복통을 가라앉히며 진정, 해열의 목적으로도 쓰인다. 또한 식욕을 증진시키고 건위 정상, 피로회복에도 효과를 나타내며, 오래 복용하면 눈이 밝아지고 건강에 좋다고 한다.

 

사대부들과 시인들의 완상의 대상이었던 중양절의 세시주

국화는 국화과에 딸린 다년생 풀로서 전세계에 약 200종이 분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수국, 산국, 울릉국화 등의 야생종이 10여종 있으며 개량품종이 매우 많다. 예로부터 불로장수 및 상서로운 영초로써 상용되고 있으며 약용 및 양조용 향료로 쓰여 왔다. [본초강목]에도 국화를 이용한 술은 “두풍을 낮게 하고 이목을 밝게 하며, 위비를 제거하고 백병을 없앤다.”고 수록되어 있을 만큼 국화는 동양 특유의 꽃으로 알려졌으며, 근대에는 유럽에서도 재배량이 급속히 늘어 네덜란드, 벨기에 등지에서는 훌륭한 국화 전시회가 개최되는가 하면, 특히 벨기에서는 국화를 쓴 리큐르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고려시대에 국화주가 사대부들과 시인들의 완상의 대상이었음을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의 세시주로 깊게 뿌리내렸음을 알 수 있다. 중양절 은 ‘중구(重九)’라고도 하는데, 9(九)는 양(陽)의 수로 이 양의 수가 겹쳤다는 뜻에서 중양, 중구라고 한다. 따라서 이 날은 양기(陽氣)가 아주 강한 날이라고 여겨 명절로 삼았다. 이날 산에 오르는 등고풍속(登高風俗)이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는데, 양의 극치인 태양에 보다 가까이 감으로써 강한 양기를 받아들이게 되면 사악한 기운으로부터 안녕을 도모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또 이날 산에 올라 만산만야 붉게 물든 단풍을 즐겼으며, ‘상국(賞菊)’이라고 하여 주위에 피어 있는 국화를 감상하는 풍속이 있다. 마을에서도 노인들을 모셔 잔치를 크게 베푸는 동시에, 친족끼리 조상에게 시제(時祭)를 지내기도 한다.

 

이날 민가에서는 시식을 즐겼는데, 찹쌀가루 반죽에 산에서 채취해 온 국화꽃잎을 얹어 화전(花煎)을 부쳐 먹기도 하고, 잘 익은 술에 국화꽃잎을 띄워 만든 국화주를 마셨다. 이때의 산에 핀 들국화는 향기가 매우 강하여 술을 빚기에 적격이었다. 작고 노랗게 핀 들국화는 감미가 있어 감국(甘菊)이라고 하는데, 이 감국을 따서 씻어 말린 다음 베주머니에 담아 술 위에 띄우는가 하면, 고두밥과 누룩을 버무릴 때 직접 넣어 숙성시킨 방법이 이용되었다. 예를 들어, 활짝 핀 국화(감국, 들국화, 황국)을 채취하여 햇볕이나 그늘에 말려서 숙성된 술에 넣는 것인데, 꽃을 고운 보자기에 싸서 술독에 쑤셔 박거나 주머니에 담아 술독의 술 위에 매달아 하루나 이틀 뒤에 꽃을 들어내면 꽃향기가 술에 배어 가향(佳香)의 국화주가 되는 것이다.

 

이 외에 현재 경남지방의 토속주로 빚어지고 있는 국화주는 침출법을 이용하고 있는데, 백설기에 누룩을 섞어 만든 밑술에 찹쌀 고두밥과 누룩을 섞고 여기에 감국을 비롯 생지황, 구기자 뿌리와 껍질을 달여 만든 침출액을 넣어 발효 숙성시킨 것으로, 가향주라기 보다는 약용약주류에 속한다.

 

국화주의 재료들.

국화가 없을 경우 구절초를 넣기도 한다.

 

아름다운 때를 저버릴 수가 없어서 백주(白酒)에 노란 국화를 띄워 마시네

국화주를 마시는 풍속은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478년(성종 9)에 서거정(1422~1492)이 신라 때부터 조선 숙종 때까지의 시문(詩文)을 모아 엮은 시문집 [동문선]에 ‘경인 중구(庚寅重九)’라는 시가 있는데, 내용인즉, “서울에서 병란이 일어나, 사람 죽이기를 삼을 베는 듯하네. 그래도 아름다운 때를 저버릴 수가 없어서 백주(白酒)에 노란 국화를 띄워 마시네”라고 하여 몸에 배인 국화주음의 풍습을 알 수 있고, [목은선생문집]의 ‘초파일(初八日)’이란 시에도 “노란 국화와 흰 막걸리가 하염없이 생각나니, 내일 중양절이 또 다시 돌아오겠네. 옮겨 심는 것이 늦었으나, 오히려 푸른 꽃술을 따는 것이 낫네. 집이 가난하니 묵은 술을 마셔도 무방하네”라고 하여, 이미 고려시대 이전부터 국화주음 풍속이 뼛속 깊이 뿌리내렸음을 알 수 있다.

 

국화주에 대한 또 다른 기록으로 고려시대의 문인 이인로(1152~1220)의 [파한집]과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국화주가 수록되어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국이상국집]에 “추위 견디며 어찌 홀로 꽃피워 낼 줄을 아는가, 차라리 말라붙을지언정 모래에 떨어지지 않네. 모두가 중양절에 술잔을 띄우기 위해서이니, 그렇지 않으면 삼월의 봄꽃이 되었을 것이네.”라고 하였다. 이렇듯 국화주는 이후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데, [동의보감]을 비롯하여 [요록], [고사십이집], [고려대 규곤요람], [규합총서], [임원십육지], [농정회요], [조선세시기] 등에 세시주, 가향주로 소개하고 있다. 이들 문헌에 수록된 국화주의 대부분은 ‘화향입주법(花香入酒法)’을 기본으로, 꽃향기를 술로 침출해 내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국화주는 국화꽃을 넣어 빚은 술을 일컫기도 하지만, 운치있게 현장성을 즐기려는 멋에서 술에 국화꽃을 띄워 ‘국화주’라 부르기도 하기도 했다. 특히 문사들 사이에서는 국화주를 벗삼아 시를 짓고, 풍월을 읊는 시주풍류(詩酒風流)를 한껏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초기의 문신이었던 성삼문(1418~1456의 [성근보선생집]에 수록된 ‘무계수창시(武溪酬唱詩)에 차운하다’라는 시에, “세상 번뇌는 스러지고 도의 의미는 깊은데, 하늘은 또 가을 기운으로 내 마음을 맑게 해주네. 술동이엔 중추절 밝은 달빛이 잠기고, 술잔엔 중양절의 국화꽃 향기기 가득하네. 서리에 물든 단풍가지는 임야를 수놓았고, 바람으로 우는 솔잎은 산의 풍류를 보내네. 동문을 일찍이 잠가두지 않았으니, 포로 만든 버선과 짚신 또한 한번쯤 찾아올 것이네.”라고 하여, 중구에 국화주를 마셨음을 알 수 있고, 김종직(1431~1492)의 [점필재집]에도 “대관림에서 술을 받아 마시니 깊은 가을에 초목들은 푸른빛이네. 어찌 꼭 그대 즐기는 것이 관현악 소리뿐이겠는가? 단풍소리도 쓸쓸하고 계곡도 쌀쌀하다네. 푸른 항아리엔 아직도 중양주가 남아 있으니, 국화꽃을 띄워서 그대에게 축수하려하네. 세간의 온갖 일은 이내 사라지는 것이니 숲속의 청풍아래서 술잔을 주고받을 만하네.” 라고 하여 선비들 사이의 국화주음 풍속에 대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또 시인으로 유명했던 고죽 최경창(1539~1583)의 [고죽유고]에 수록된 ‘중양’이란 시에서는 “왼손으로 국화꽃을 잡고, 오른 손으로 백주(白酒)를 따르네. 용산 서쪽에서 모낙하니, 9월 9일 좋은 날이네.”라고 읊고 있어 국화주가 시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화양입주법 재현 모습. 꽃을 주머니에 담아 술독의 술 위에 매달아 하루나 이틀 뒤에 꽃을 들어내면 꽃향기가 술에 배어 가향(佳香)의 국화주가 된다.

 

하루에 세 번 한잔씩 따뜻하게 데워 마시면 뼈와 근육이 튼튼해지고 장수한다

이렇듯 국화주는 우리 조상들이 가장 즐겼던 대표적인 계절주의 하나이다. 국화주는 누룩, 물을 섞어 빚은 곡주에 국화향기를 넣는 화향입주법(花香入酒法)의 국화주를 근간으로 하고, 술을 빚을 때 만개한 국화를 함께 넣어서 빚는 직접혼합법의 가향(加香) 국화주, 국화 외에 여러 가지 생약재를 달인 물을 함께 넣어 빚는 약용(藥用) 국화주, 그리고 국화는 넣지 않으면서도 국화주와 같은 술빛깔을 띤다는 뜻에서 이름을 얻은 ‘황금주’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국화주는 아름다운 향기 외에 뼈와 근골을 튼튼히 해주며, 몸이 가벼워지고 말초혈관확장과 청혈해독의 효능이 있어 장수한다고 알려지고 있다.

 

화향입주법의 국화주는, 숙성되면 황금색이 술빛깔과 함께 향기가 좋으며, 말간 개미가 떠서 구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약용약주로서의 국화주는 엷은 암갈색의 술빚깔을 띠는데, 여러 가지 약재로부터 오는 그윽한 향기가 있어,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대표적인 세시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세간에서는 ‘국화주를 하루에 세 번 한잔씩 따뜻하게 데워 마시면 뼈와 근육이 튼튼해지고 장수한다.’고 전해지면서 너나 없이 국화주를 즐겨 마셨던 것 같다.

 

국화주를 빚기 위해서 국화를 선택할 때는 황국(黃菊) 중에서도 향기가 좋고 맛을 보아 감미가 도는 감국(甘菊)을 선택하는 것이 좋고, 꽃 필 때 채취하여 술을 빚을 때 씻어서 그늘에 말렸다가 술 위에 띄우거나 매달아두어 향을 즐기기도 한다. 국화주를 빚을 때 국화를 지나치게 많이 넣으면, 그 맛이 쓰고 신맛이 강해지므로 적당량 사용해야 한다.

 

최근 함평에서 400년전의 기록을 바탕으로 재현한 국화주가 등장하여 인기를 끌고 있는데, 고구려인들의 양조기술을 오늘에 다시 되살린 듯 하여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거니와, 잘 익은 국화주는 은은한 국화향과 함께 황금빛깔을 자랑, 취흥을 절로 일으키므로 상비해두면 국화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록담
시인, 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
 

 

 

 

 

발행일 201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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